레이블이 재벌회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재벌회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4월 7일 일요일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재벌회장의 무차별 폭력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06일자 기사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재벌회장의 무차별 폭력'을 퍼왔습이다.

한 악인이 범죄를 저질렀다. 재판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의인으로 묘사된다. ‘강한 남자’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욕망은 재판 과정에서 관찰됐다. 2007년 5월12일 김승연 한화 회장이 ‘술집 종업원 보복 폭행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중앙지검에서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한화 김승연, 의인과 악인 사이


그 유명한 2007년 북창동 사건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이 돕고
검찰의 솜방망이 구형에도
1년6개월의 실형이 떨어졌지만
동정론·의인론 피어오르며
얼마 안 살고 금방 집행유예


‘법정 탈출’은 오래 못 갔다
2013년 4월 배임·횡령 혐의로
1심 징역4년 선고받고 입원
항소심에선 징역 9년 구형



2007년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청담동 한 술집 앞에 검은색 차량 6대가 갑자기 줄지어 들이닥쳤다. 곧이어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십여명이 술집 안으로 난입한 뒤 종업원들을 위협해 한곳에 모았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남자들은 종업원들에게 “오늘 새벽 이곳에서 발생한 폭행사건 가해자들이 누구냐?”고 다그쳤다.

곧 가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서울 북창동에 있는 유흥주점 임원과 종업원들이었다. 남자들은 보스인 듯한 중년 남자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연락을 취한 뒤 북창동 유흥주점 종업원 5명을 청담동 술집 ‘현장’으로 불러냈다. 저녁 8시였다. 일행은 다시 이들을 차량에 태운 뒤 청계산 자락에 있는 한 공사장 창고 건물로 끌고 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 라이터 불을 켰다. 불은 건장한 남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종업원 5명의 얼굴을 차례로 비췄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번갯불 같은 섬광이 일었다. 전기충격기였다. 라이터 불빛 너머로 양복 입은 남자들 손에 쇠파이프와 몽둥이 등 흉기가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종업원들의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라이터 불빛 속으로 한 중년 남자가 불쑥 나섰다. 모자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긴 했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었다. ‘한국화약(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었다.



최문기 전 경찰청장은 왜 전화를 했나


“내 아들 때린 놈이 누구야?”

액션활극 영화에서나 들을 법한, 나지막하고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다.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는 종업원들에게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며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한 종업원이 울기 시작했다.

“전 그냥 종업원인데, 우리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대충 몇 대 맞고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자초지종을 캐물어 대강의 상황과 아들을 폭행한 가해자들이 누구인지 파악한 김 회장 일행은 곧바로 북창동 유흥주점으로 달려갔다.

밤 10시 북창동 유흥주점 앞, 다시 번쩍거리는 검은색 최고급 세단의 행렬이 들이닥쳤다. 김승연 회장과 눈에 붕대를 댄 아들,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10여명의 건장한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전자충격기와 쇠파이프 등 흉기를 들고 줄줄이 차에서 내려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검은 정장 청년들’은 술집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술집은 저항 없이 순식간에 장악됐다. 선두에 선 선글라스 차림의 김승연 회장이 소리질렀다.

“다 나와, 이 자식들. 북창동을 다 없애버릴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다 여기서 무릎을 꿇을래, 아니면 가게 문 닫을래?”

멈칫하던 종업원들이 복도에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곧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2시간여 공포의 폭행이 계속되던 밤 12시, 경찰관 몇 명이 술집 안으로 들어와 “112로 폭행신고가 들어왔는데, 신고한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곧이어 업소 사장이라는 남자가 나서 “우리 종업원끼리 잠깐 다퉜는데, 누가 오해하고 신고를 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경찰관들은 ‘조심하라’는 경고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곧이어 김 회장은 종업원들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스스로 ‘폭탄주’를 만들어 조 전무와 폭행당한 종업원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과 함께 건배를 했다. 그러곤 ‘서로 때리고 맞았으니 이제 남자답게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한 뒤 ‘술값’이라며 100만원을 건네고 자리를 떴다.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로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이 구형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4월1일 오후 항소심 결심 공판을 마친 뒤 구급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다음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김승연 회장이 조폭을 동원해 보복폭행을 저질렀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시작했다. 남대문경찰서 역시 현장조사와 주변 목격자 대상 탐문수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3월12일, 한화그룹의 고문으로 재직중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이 남대문경찰서장 장희곤 총경에게 전화를 해 “한화그룹 폭행사건을 수사중이냐”고 물었다. 그 뒤 현장에 나가있던 남대문경찰서 수사 인력은 모두 철수됐다. 그즈음 홍영기 당시 서울경찰청장도 최기문 전 청장의 전화를 받았고, 이택순 당시 경찰청장은 한화증권 유기완 고문과 함께 골프를 쳤다. 한화리조트 감사 김아무개씨는 ‘폭행 피해자 관리 및 경찰 로비자금’으로 김승연 회장으로부터 5억8000만원을 받아서 그중 2억7000만원을 거대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아무개씨에게 건넸다. 폭력조직을 동원해 ‘입막음’을 시도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그렇게 깊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던 사건은 4월24일, 언론에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다시 떠올랐다. ‘사건 무마 의혹’을 벗으려는 경찰은 4월26일 김 회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요청했지만 검찰은 혐의사실 소명이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5월10일,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김승연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다음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그사이 ‘조폭 동원’의 연결고리였던 맘보파 두목 오씨는 캐나다로 출국, 도피했다. 6월5일, 검찰은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 경호과장 진아무개씨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김문수 지사까지 “너무 그러지 말자”


피고인 김승연 회장은 거물급 ‘전관 변호사’들로 변호인단을 구성했다. 재판을 맡은 판사의 사법연수원 시절 교수, 직속상관인 부장판사였던 변호사, 법원장 출신 변호사 및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등 법조계 드림팀이었다. 어떻게 보면 복잡한 미스터리였던 미국의 ‘오 제이 심슨’ 사건을 연상케 했지만, 이 사건은 전혀 사실관계나 법률관계를 복잡하게 다툴 여지가 없는 ‘단순한 보복 폭행’ 및 ‘수사 무마를 위한 청탁과 압력’ 사건이었다.

물론, 쟁점은 있었다. 조폭을 동원한 혐의가 추가된다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5조(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적용돼 징역 3년 이상의 형이 추가되고, 다른 폭행 혐의에도 ‘가중처벌’ 요인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역량있는 변호사의 변론 능력’이 아닌, 판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관 변호인의 위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김 회장은 이 부분에 분명한 확신을 가졌던 듯하다. 이미 피해자들과는 ‘합의’를 마친 상태였다. 일부 언론은 주요 대기업 회장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기업활동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되고 국가경제에 악영향이 초래될 것이라는 논조의 사설과 기사를 실었다. 이에 힘입은 김 회장은 ‘집행유예가 내려질 것’이라는 ‘스스로 재판’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개법정에서 여유만만한 태도로 “권투하듯이, 아구를 몇 번 돌렸지”, “귀싸대기를 올려붙였지”, “내가 때리다 때리다 지쳐서 애들 시켜서 대신 때리게 했거든”, “검사 양반은 술집 한 번 안 가봤어요?” 등의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내뱉었을 리가 없다. 재판 도중 방청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기도 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에는, 야간에, 흉기 등을 사용하여, 집단적으로 폭행을 한 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아무리 초범 등 작량감경(정상 참작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낮추는 것)을 통해 감형을 한다 해도 그 절반인 ‘2년6개월 형’이 최하 형량이다.

그런데 검찰은 제3조가 아닌 상대적으로 가벼운 제2조(두 명 이상의 공동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 그리고 징역 2년형을 ‘구형’했다. 피고인의 감형 주장에 판사가 귀 기울일 것을 고려해 가능한 한 높은 형량을 구형하는 검찰의 관행에서 벗어난 ‘솜방망이 구형’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낮은 구형량은 사실상 검찰이 ‘집행유예로 풀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월2일 1심법원은 세간의 이목을 의식해 김승연 회장에게 집행유예 없이 ‘1년6개월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를 예상하고 갈아입을 평상복을 준비한 채 법정에서 대기하던 한화그룹 직원들의 표정이 머쓱해진 순간이었다.

김승연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이 끝난 7월7일, 캐나다로 도주했던 폭력조직 맘보파 두목 오씨가 자진귀국해 검찰에 구속됐다. 그의 진술에 따라 김승연 회장에 대한 추가 혐의(범죄단체 등 이용·지원)가 확인되면 김 회장은 형량이 추가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씨는 폭행사건 발생 이후 ‘개인적으로, 지인의 부탁에 따라’ 피해자들과의 합의 유도 등 ‘사건 무마’를 도와준 사실만 인정했다. 김승연 회장의 ‘조폭 동원’ 혐의는 기소되지 않았다. 법원의 실형 선고 직후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기업에 대해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사람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더구나 큰 기업인데 약점은 분명히 있다 … 너무 그러지 말자”며 김승연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동료 경제인들과 일부 언론에서도 유사한 논조를 펴며 ‘동정론’을 불러일으켰다. 김승연 회장이 그동안 행했던 숨은 선행들도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1981년 창업주인 부친의 사망으로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회장 자리에 오른 김승연씨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그룹을 수십배 이상 성장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에 빠졌던 ‘예술의 전당’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살아나게 해 주었다. 아마 야구와 복싱 등 스포츠 분야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특히 미국 해군정보부서 소속으로 북한 군에 관한 첩보를 대한민국에 제공해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로버트 김에게 남몰래 거액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인’이라는 평가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7월12일, 김승연 회장은 건강 악화를 이유로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아주대학교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9월11일, 항소심에서 김승연 회장은 ‘징역 1년6개월 형, 하지만 그 집행을 3년 유예한다’는 집행유예 선고를 받으면서 ‘20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추가로 받고 풀려나게 된다. 실형선고를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 지 딱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병원 입원 기간을 제외하면 사실 실제 교도소 수감 기간은 며칠 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떠돌며 ‘사법 불신’, ‘사회 불신’을 낳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김 회장은 재수감될 걱정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화려한 부자들의 향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6년 만에 더 큰 피해 본 회사·주주·투자자


김승연 회장의 ‘법정 탈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3년 4월1일, 검찰은 차명으로 소유한 개인 회사의 빚을 그룹 계열사 돈으로 메워 계열사에 3000억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한 채 항소심 재판을 받아 온 김승연 회장에게 징역 9년과 벌금 1500억원을 구형했다. 어린 시절 공격적 기업가인 부친으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고 군사독재 시절 공군장교 생활을 한 김승연 회장은 ‘무력과 폭력이 상징하는 남자다움’을 동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젊은 나이에 대그룹 경영권을 승계받으며 주변의 도전과 공격, 비판에 시달리면서 더욱 공격욕구와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갔다. 복싱과 사격 등 관련 스포츠단체 회장직 등을 역임하고, 주변에 조폭과 연계된 사람들이 모이면서 스스로 ‘강한 남자’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편에선 문화와 예술, 스포츠, 애국자 등을 통 크게 지원하며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는 보상심리도 컸다.

인간적으로는 충분히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범죄자치고 그 정도 ‘안타까운 사연’ 없는 이는 드물다. 더욱이 자신의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을 과신한 김 회장에게 사법당국의 선처는 ‘역시 난 아무도 못 건드려’라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연결됐고, 결국 더 큰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보게 된 회사와 주주, 투자자 그리고 우리 사회는 경찰, 검찰, 법원의 부패와 전관예우라는 망국적 폐습에 눈 뜨고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2013년 1월 3일 목요일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장하준 교수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03일자 기사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장하준 교수'를 퍼왔습니다.

ㆍ“복지 없인 성장 없다는 사회적 합의 틀 2년 내 안 다지면 20년 까먹어”ㆍ“사회환원 차원서 재벌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노동문제 해결 나서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50)는 경향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복지 없인 성장이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 합의해야 한다”며 “1~2년 사이에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틀을 다지지 않으면 20년을 까먹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벌 오너들을 향해 “재벌이 크는 데 국민들의 피땀이 들어간 거 사실 아니냐.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면 갚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현대차 사내하청·쌍용차 정리해고 등의 문제로)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달씩 하늘로 올라가서 고공농성하는 상황이 있으면 되겠나. 재벌 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저녁 국제전화를 통해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도서출판 부키 제공

▲ 미국 수준의 복지 하려면 복지 지출 비중 2배 늘어증세 없는 실현은 거짓말… 세금과 복지 개념 바꿔부자들한테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증세 필요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의 개혁적 경제학자들은 박 당선인의 공약이 재벌을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박 당선인이 과거에 언급한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와 비교했을 때 많이 ‘좌클릭’이 된 것 같다. 약속을 지키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좌클릭을 한 것은 긍정적이다. 한국 사회의 논쟁 지형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해도 ‘부자되면 될 것 아니냐, 억울하면 부자돼라’는 분위기지 않았나. 하지만 최근엔 중소기업, 중소상인, 농민 등 경제적 약자를 돕는 것과 복지, 노동 등이 우선적인 과제가 됐다. 이런 그림 속에서 보면 재벌 지배구조는 부차적인 문제다. 지배구조를 개혁한다 해도 어떤 식으로 할 건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저는 ‘왜 5%의 주식을 가지고 50% 이상의 권리를 휘두르냐’며 재벌 총수체제를 비판하는 분들하고 다르게 가자는 것이다. ‘왜 그런 기업을 운영하는 데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느냐’는 게 제 생각이다. 또 ‘재벌의 부가 왜 국민경제의 이익으로 반영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해를 해서 제가 재벌개혁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출자총액제한제, 순환출자 금지 등은 기본적으로 주주권을 더 확실하게 행사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데 이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1주 1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 순환출자를 통해 많은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가진 것 이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걸 막자는 건데 저는 이것이 주주들끼리의 싸움이지 국민들 생활하고는 한발 떨어진 이야기라고 본다.”

-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는 ‘1원 1표’의 원칙을 강화하려는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재벌의 ‘합작품’이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처음에는 제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를 꺼냈다. (초국적 금융자본 때문에) 재벌들이 옛날 식으로 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바로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대타협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재벌들이 국제 금융자본에 영합해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재벌들이 불쌍한 희생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계속 제가 금융자본을 겨냥하는 것은 ‘둘 중 뭐가 더 무서운 적이냐’라는 측면에서 보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재벌은 역사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국민들이 다 안다. 총수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대강 알고 있지 않나. 이들이 압박을 받는 것은 한국에 뿌리가 있고 과거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넘어가버리면 어디 가서 싸우고 데모하나. 원래 돈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러시아 등의 산 속에 숨어 사는 엄청난 부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도 얼굴 없는 국제 펀드 매니저다. 국민들을 위해 어떤 자본을 상대로 타협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금융자본을 겨냥하는 것이다.”

- 예전에 주장한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은 현재 어려워졌다고 보나.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한 게 2003~2004년쯤이다. 당시하고는 지형이 변했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완전히 시장주의로 다 해버리자고 해서 출총제·순환출자 금지 등을 도입해 재벌 깨고 재벌을 초국적 금융자본이 접수하면 그 다음엔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 어떻게 보면 제가 영국에 살면서 영미권 영향 속에서 그런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미워도 한국에 뿌리가 있고 사람들이 그 죄를 아는 재벌과 타협하는 게 낫지, 금융자본이 잡기 시작하면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사회적 대타협은 예전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복지를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합의가 있으니 복지를 늘릴 때 재벌이 세금을 얼마나 더 낼지, 재벌이 의료 민영화를 어떻게 포기하도록 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재벌이 한국 땅에서 발 붙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해야 하는 게 당위라 해도 재벌은 때로는 국가보다도 우위에 있고 노동자 계급은 취약하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와 노동자 계급이 힘을 키워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력과 힘을 규합하느냐는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하지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정부는 왜 존재하나. 시장으로 다 넘겨버리지.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시장의 영역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초기엔 노예를 사고팔았고, 아동 노동도 존재했다. 모든 것이 다 시장에 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국영화가 이뤄지고 노예 매매·아동 노동을 금지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왔다. 정부가 규제할 능력이 없으면 왜 아까운 국민세금으로 (공무원들은) 월급을 받고 있나. 복지를 중심으로 담론 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으니 이걸 지렛대로 해서 새로운 사회구도를 짜야 한다. 국제적으로 볼 때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각국에서 불평등이 증가했지만 스위스, 브라질 등은 불평등이 되레 줄어들었다. 그냥 앉아서 ‘재벌은 밉고 노동자 계급은 약하고 국민은 보수적이고 초국적 자본은 상대가 안된다’고 해선 안된다. 초국적 자본의 경우 자본 통제를 하면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최근 필요할 땐 규제를 해야 한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 같은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건희·정몽구 회장은 세습을 받긴 했지만 기업을 업그레이드한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한국의 재계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재계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를 키우고 있다. 이들의 자식 세대만 해도 지금 하는 방식으론 경영을 할 수가 없다. 21세기인데 삼성이 노조 없이 경영하는 게 말이 되나. 노조가 파괴적이라고 생각되면 이런 부분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대화를 해야 하지 않나.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달씩 하늘로 올라가서 고공농성하는 상황이 있으면 되겠나. 재벌 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 이들의 공헌을 인정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재벌들이 크는 데 국민들의 피땀이 들어간 거 사실 아니냐. 재벌이 ‘거지 같은 물건’을 만들던 시절 정부가 국민들이 나쁜 물건을 쓰도록 했고, 세금으로 재벌을 보조해줬다. 자기들이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면 갚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쪽을 완전히 부정하기 시작하면 진전이 없다. 한쪽에선 ‘노조는 다 없애야 한다’, 다른 한쪽에선 ‘재벌 총수들은 악마다’라는 식으로 가면 무슨 대화가 되겠나.”

- 영국에서 한국의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빠졌다’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나.

“무상급식 이후 활발해진 복지국가 논의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진 것도 문제였지만 제일 부족한 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 대한 논의였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을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데 사실상 꼴찌라고 봐야 한다. 복지지출 비중이 10%에도 못 미친다. 복지가 취약하다고 하는 미국이 20% 수준이고, 덴마크·프랑스 등은 30%를 넘는다. 하다 못해 미국 수준으로만 가려고 해도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려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또 장기적인 먹을거리가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1970~1980년대에 짜여진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첨단산업과 정복하지 못한 기계, 부품소재 분야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기계, 부품소재 분야가 발전한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을 보면 이들 분야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업종이다. ‘중소기업이 불쌍하니까 봐주자’는 차원의 이야기 말고 중소기업을 어떻게 ‘고급 중소기업’으로 키울지, 복지하고 경제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이제는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경제성장을 못하는 시대가 왔다. 예전에는 산업이 단순했다. 예를 들어 봉제 공장 다니다 이 산업이 기울어져 전자산업 공장에 다니려면 4~6주 정도 훈련을 받으면 됐다. 하지만 최근의 산업환경에선 교육훈련에 최소 6개월, 길면 2년도 걸린다. 한국은 실업급여가 취약하고 교육훈련 시스템도 잘돼 있지 않아 사람들이 실업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진취적으로 진로를 찾기보다 의사,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만 찾는다.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려면 그 나라의 복지가 취약하면 안되는 시대가 왔다.”

장하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벌이 성장하는 데 국민들도 희생한 만큼 재벌 회장들이 현대차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저녁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출자총액제한제 등 재벌 개혁 논리는국민과 한 발 떨어진 얘기

▲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둘 중 누구와 타협하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따져봐야

- 다시 박근혜 당선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박 당선인은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양립 가능하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텐데 제가 정의하는 경제민주화는 ‘1원 1표’라는 시장원리를 ‘1인 1표’로 견제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에 입각해서 보자면 법질서 세우기는 몰라도 규제 풀고 세금 줄이는 건 경제민주화와 잘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 잘못 생각했다’라고 솔직히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치인들이 예전에 한 말을 뒤집으면 자기에게 흠집이 생길까봐 그런 것 같다. 양립하든 안 하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면 되는데 예전의 레토릭에 미련을 두면 새롭게 하려는 게 왜곡될 수 있다.”

-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경제적인 의미로 해석해보자면 어떤가.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가 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인 것 같은데.

“물론 민주통합당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좌파가 이긴 것이다. 경제정책의 승부는 이미 선거 전에 갈렸다고 본다. 새누리당의 일부 사안은 민주당보다 더 좌파적인 경우도 있었다.”

- 박근혜 후보가 대선 기간 약속한 정책을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보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실천을 안 하려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는 쉬워서 했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쉬워서 포항제철 짓고, 조선소 지었나.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정신을 잇는다고 한다면 경제위기 때문에 못한다는 건 하기 싫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견제를 해야 한다. 한번 딱 뽑고 5년 뒤에 심판하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약속하고 틀리지 않으냐’며 계속 감시를 해야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지키도록 할 수 있다.”

- 장 교수는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뤄낸 박정희 시대의 성장 전략에 대해 점수를 주고 있다. 박정희식 경제 모델이 한국 경제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지.

“박정희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주요 요소다. 하나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강력히 개입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외국자본을 규제해서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먹히는 걸 막는 것이다. 당시 한국이 외국인 투자에 완전히 개방됐다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있겠나. 미국이나 일본의 자회사가 됐거나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빈부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걸 제약하고 부자들이 너무 눈에 띄게 잘사는 걸 막았다. 이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독재정권이라는 논란 등이 있었지만 통치가 유지됐던 측면이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한테 전화해서 ‘조선소 안 지으면 죽인다’고 할 순 없으니 산업정책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더 민주화돼야 한다. 또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식도 분야별 대응보다는 포괄적인 복지국가라는 형태로 접근해야 한다. 또 예전처럼 문을 걸어잠그고 살 순 없으니 개방에 따른 해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당시와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일정 부분 배워야 할 부분은 있다고 본다. 박정희 때 했던 게 다 잘한 건 아니다. 불필요한 노동탄압, 인권침해, 잔혹행위 등은 심각한 문제다.”

- 박정희 정권 당시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이 강력했는데 빈부격차가 제약됐다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고성장을 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아주 가난한 시기에는 일자리가 없는 게 문제다. 노동자 계급이 굉장히 탄압받긴 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굶는 것보단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노동자한테 관용적이었던 나라는 드물다. 미국 같은 경우는 파업하면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서 쏴죽이기까지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힘이 가장 강한 나라로 분류되는 스웨덴도 1920년대까지만 해도 파업률이 세계 최고였고 파업을 진압하는 데 경찰의 과잉 대응, 폭력이 많았다. 싸우면서 쟁취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박정희가 다 노동계급을 탄압해서 그랬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론 반공주의, 냉전구도 속에서 노동운동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고 폭력적으로 탄압할 이유는 없었다.”

- 장 교수는 한국 사회가 좇아야 할 현존 모델로 스웨덴식 사민주의를 꼽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이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된 것은 박정희 정권이 과도하게 노동계급을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기원이 박정희 정권이 아니냐는 것이다.

“글쎄요. 그런 영향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노동계급은 약하지만 시민사회는 센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을 활용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조상 탓만 하지 말고 지금 노동운동이 잘 안되고 있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어필할 건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 위주로 조직된 노동운동에도 문제가 있다. 물론 노조라는 게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하긴 하지만 크게 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에게 인기를 더 얻을 것이다. 재벌들이 세습한다고 비판하면서 자기 애들 채용 때 특혜를 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그런 노동운동을 누가 믿겠나. 노동운동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역사는 이미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하기보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할까를 능동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 올해 한국 사회에선 경제위기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위기론이 한국 경제를 개혁하려는 흐름을 막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같다.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경제위기론을 걸림돌로 만들려고 하겠죠. 아까도 이야기를 했지만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성장이 안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둘 중 하나 고르는 차원이 아니다. 복지가 취약하니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할 거냐. 여성들을 고급 인력으로 키워놓고 보육, 육아 등이 해결 안되니 투자한 자원들이 다 없어진다. 신산업을 키우려면 복지가 잘 받쳐줘서 여기서 실패하더라도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 성장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담론 지형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장이 안되더라도 복지는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제위기론에 밀릴 수밖에 없다. 프레임을 잘못 잡은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가 ‘성장과 분배는 상충관계에 있다’는 논리다. 이걸 받아들이면서 ‘아니 그래도 분배가 중요해’라고 이야기를 하면 위기론에 말려든다. 앞으로 계속 경제가 어려울 텐데….”

- 박근혜 당선인은 복지공약을 실현하는 데 연간 소요재정을 26조3000억원이라고 제시했다. 재정지출 개혁, 조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증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증세 없이 복지공약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 만약 증세가 필요하다면 부자증세로 가야 하나, 아니면 중산층까지 참여하는 보편 증세로 가야 하나.

“박 당선인의 공약에 정확히 얼마의 돈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실현하려는 복지의 사이즈가 작다면 증세를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 그 정도의 복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복지라는 개념을 온 국민이 다 같이 사회보험에 들어 비용을 낮추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다 개인별로 AIG, 삼성생명 같은 곳에서 민간보험을 들고 있다. 하지만 유럽을 보면 의료가 국유화돼 있어 3000만명분을 구매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협상을 하니 안 깎아줄 수가 있나. 이처럼 비용을 절감해서 빠지는 부분 없이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미국 수준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복지지출 비중이 2배는 돼야 하는데 세금 안 걷고 하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부자들한테만 돈 받아선 안되고 월급쟁이 등 중산층으로부터도 걷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세금과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왜 자꾸 세금을 내기 싫어하느냐 하면 정부가 어디 가서 돈을 태워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이 곧 학교요, 병원이요, 연금보험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세금은 보험을 공동 구매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국가한테 뜯기는 게 아니다. 다 같이 내고 많이 받는 것이다. ”

-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통해 아시아 귀환 전략을 짜고 있고,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한·중·일 FTA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복잡한 걸 하지 말자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만든 건데…. 미국이나 EU처럼 센 나라들은 WTO에서 자기들 맘대로 안되니 각개격파로 들어가서 만만한 나라를 불러 FTA를 체결했다. 한국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서서 다자무역 질서를 흩트리고 다녔다. 이걸 주도한 분들은 국익을 위해 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되지도 않는 통합을 하려고 한 것이다. 한국이 잘살게 됐다고 자랑하지만 아직도 왜 국민소득이 2만달러냐. 미국, 스위스 등은 5만달러다.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것은 몇 개 분야 정도다. 한국이 겁 없이 나선 것이다. EU하고 FTA 하면 부품소재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건가. 무역장벽을 쓸 수도 없고. 정부에서 특혜를 주려고 하면 협정 위반이라고 상대방이 걸고넘어질 것이다. 길게 보면 나라 망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서명된 것을 되돌릴 수도 없고…. 한국이고 미국이고 중국이고 WTO나 잘하는 게 좋은 일 같다.”

- 2013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아울러 2013년 세계 경제 전망을 듣고 싶다.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고 산 넘어 산이다. 미국 재정절벽 문제도 있고, 유로화도 일단 최악은 진정이 됐지만 올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2월에 그리스에 갔었는데 25%가 실업자에다 직장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급여가 40~50% 깎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유로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국, 인도도 경제가 감속 중이고 여러 가지 불확실한 요소들이 많다. 다만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핑계로 쓰면 안된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그래도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합이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 합의를 도출하지 않으면 저는 정말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15년간 혼돈의 시대였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다른 한편에선 그걸 막아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 합의도 없었고 반목이 지속됐다. 1~2년 사이에 틀을 다지지 않으면 또 5년이 흐지부지 지나가고 20년을 까먹게 된다. 다 같이 조금씩 양보하며 잘살 수 있는 장기적인 틀을 짜야 한다. 지금처럼 반목하면 결국은 힘 있는 사람들만 챙기고 나갈 수밖에 없다.”

▲ 장하준 교수는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려운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도 못한 채 말하는 사람,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50)는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에겐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제를 평이한 말로 풀어 설명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재벌 옹호론자’ ‘박정희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그는 지난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공저)를 출간한 뒤 개혁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등이 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