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성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성장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1월 7일 월요일

장하준 “복지 안 하면 성장도 안돼”


이글은 레디앙 2013-01-02일자 기사 '장하준 “복지 안 하면 성장도 안돼”'를 퍼왔습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복지를 소홀히 하면 성장도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2일 오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장 교수는 “국제환경이 안 좋다는 걸 핑계삼아 ‘박 당선인이 했던 복지 관련 공약을 지키지 말아야 된다’는 얘기가 슬슬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그렇게 되는 건 굉장히 나쁜 일”이라고 우려했다.
장 교수는 “이제 ‘복지 같은 거 하지 말자’는 식으로 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지나친 대외의존도를 줄여 자본시장 통제를 강화한다든가, 아니면 무역의존도를 줄인다든가 단기적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과 관련해서도 “사실 지금 당장 하겠다는 복지정책 같은 것은 큰 정책들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거 싫어하는 분들은 핑계를 댈 것”이라며 “우리나라 재정 상태라든가 이런 것들이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좋은 편이기 때문에 약속을 공식적으로 해놓고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그 약속을 지키지 마라고 하는 건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장하준 교수(사진=부키출판사)

장 교수는 현 시점에서 ‘복지보다 성장 아니냐’는 질문에 “저는 한편으로는성장주의자라고 욕을 먹는 사람”이라며 “복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성장도 안 되는 단계에 왔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서도 복지예산을 깎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영양실조 환자가 옆에 있는 비만 환자가 살 빼려고 다이어트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밥을 안 먹는 것과 같다”고 일축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서 “과거 줄푸세 같은 소위 신자유주의 노선을 내세웠을 때와 비교해서는 엄청나게 좌경화 됐다”며 “어떻게 보면 그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다. 당선되려면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이라면 우파건 좌파건 거기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로는 “우리나라는 계급갈등, 지역갈등, 세대갈등 이런 게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통합을 위해서는 복지 제도를 확대하고, 요즘 자살을 통해서 절규하는 노동자들을 감싸 안고, 그 다음에 또 파산직전에 몰려 있는 영세상인들과 자영업자들도 돕는 정책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여진

2013년 1월 3일 목요일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장하준 교수


이글은 경향신문 2013-01-03일자 기사 '[신년 기획 - 2013년을 말한다](3) 장하준 교수'를 퍼왔습니다.

ㆍ“복지 없인 성장 없다는 사회적 합의 틀 2년 내 안 다지면 20년 까먹어”ㆍ“사회환원 차원서 재벌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노동문제 해결 나서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50)는 경향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복지 없인 성장이 없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 합의해야 한다”며 “1~2년 사이에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틀을 다지지 않으면 20년을 까먹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재벌 오너들을 향해 “재벌이 크는 데 국민들의 피땀이 들어간 거 사실 아니냐.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면 갚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현대차 사내하청·쌍용차 정리해고 등의 문제로)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달씩 하늘로 올라가서 고공농성하는 상황이 있으면 되겠나. 재벌 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저녁 국제전화를 통해 1시간 넘게 진행됐다.

도서출판 부키 제공

▲ 미국 수준의 복지 하려면 복지 지출 비중 2배 늘어증세 없는 실현은 거짓말… 세금과 복지 개념 바꿔부자들한테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증세 필요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공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의 개혁적 경제학자들은 박 당선인의 공약이 재벌을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박 당선인이 과거에 언급한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와 비교했을 때 많이 ‘좌클릭’이 된 것 같다. 약속을 지키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좌클릭을 한 것은 긍정적이다. 한국 사회의 논쟁 지형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해도 ‘부자되면 될 것 아니냐, 억울하면 부자돼라’는 분위기지 않았나. 하지만 최근엔 중소기업, 중소상인, 농민 등 경제적 약자를 돕는 것과 복지, 노동 등이 우선적인 과제가 됐다. 이런 그림 속에서 보면 재벌 지배구조는 부차적인 문제다. 지배구조를 개혁한다 해도 어떤 식으로 할 건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저는 ‘왜 5%의 주식을 가지고 50% 이상의 권리를 휘두르냐’며 재벌 총수체제를 비판하는 분들하고 다르게 가자는 것이다. ‘왜 그런 기업을 운영하는 데 노동자, 하청기업, 지역사회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느냐’는 게 제 생각이다. 또 ‘재벌의 부가 왜 국민경제의 이익으로 반영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해를 해서 제가 재벌개혁에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출자총액제한제, 순환출자 금지 등은 기본적으로 주주권을 더 확실하게 행사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인데 이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1주 1표’를 철저히 관철하기 위해 순환출자를 통해 많은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가진 것 이상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걸 막자는 건데 저는 이것이 주주들끼리의 싸움이지 국민들 생활하고는 한발 떨어진 이야기라고 본다.”

-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는 ‘1원 1표’의 원칙을 강화하려는 초국적 금융자본과 국내 재벌의 ‘합작품’이기 때문에 양극화 해소를 위해선 재벌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처음에는 제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를 꺼냈다. (초국적 금융자본 때문에) 재벌들이 옛날 식으로 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때 바로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대타협을 하자고 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수의 재벌들이 국제 금융자본에 영합해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재벌들이 불쌍한 희생자’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계속 제가 금융자본을 겨냥하는 것은 ‘둘 중 뭐가 더 무서운 적이냐’라는 측면에서 보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재벌은 역사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는지 국민들이 다 안다. 총수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대강 알고 있지 않나. 이들이 압박을 받는 것은 한국에 뿌리가 있고 과거의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넘어가버리면 어디 가서 싸우고 데모하나. 원래 돈 갖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러시아 등의 산 속에 숨어 사는 엄청난 부자들이고 이들의 돈을 운용하는 사람도 얼굴 없는 국제 펀드 매니저다. 국민들을 위해 어떤 자본을 상대로 타협을 하는 게 도움이 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이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 금융자본을 겨냥하는 것이다.”

- 예전에 주장한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은 현재 어려워졌다고 보나.

“사회적 대타협을 이야기한 게 2003~2004년쯤이다. 당시하고는 지형이 변했다. 하지만 문제가 뭐냐 하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완전히 시장주의로 다 해버리자고 해서 출총제·순환출자 금지 등을 도입해 재벌 깨고 재벌을 초국적 금융자본이 접수하면 그 다음엔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되겠느냐. 어떻게 보면 제가 영국에 살면서 영미권 영향 속에서 그런 걸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미워도 한국에 뿌리가 있고 사람들이 그 죄를 아는 재벌과 타협하는 게 낫지, 금융자본이 잡기 시작하면 인정사정 보지 않는다. 사회적 대타협은 예전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복지를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합의가 있으니 복지를 늘릴 때 재벌이 세금을 얼마나 더 낼지, 재벌이 의료 민영화를 어떻게 포기하도록 할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 ‘재벌이 한국 땅에서 발 붙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 어떤 식으로든 타협을 해야 하는 게 당위라 해도 재벌은 때로는 국가보다도 우위에 있고 노동자 계급은 취약하다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국가와 노동자 계급이 힘을 키워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력과 힘을 규합하느냐는 정치인들이 할 일이다. 하지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잘못됐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정부는 왜 존재하나. 시장으로 다 넘겨버리지. 자본주의의 역사를 보면 시장의 영역이 축소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초기엔 노예를 사고팔았고, 아동 노동도 존재했다. 모든 것이 다 시장에 맡겨져 있었다. 하지만 일정 부분 국영화가 이뤄지고 노예 매매·아동 노동을 금지하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왔다. 정부가 규제할 능력이 없으면 왜 아까운 국민세금으로 (공무원들은) 월급을 받고 있나. 복지를 중심으로 담론 구조가 완전히 바뀌고 있으니 이걸 지렛대로 해서 새로운 사회구도를 짜야 한다. 국제적으로 볼 때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면서 각국에서 불평등이 증가했지만 스위스, 브라질 등은 불평등이 되레 줄어들었다. 그냥 앉아서 ‘재벌은 밉고 노동자 계급은 약하고 국민은 보수적이고 초국적 자본은 상대가 안된다’고 해선 안된다. 초국적 자본의 경우 자본 통제를 하면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최근 필요할 땐 규제를 해야 한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건희 회장이나 정몽구 회장 같은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건희·정몽구 회장은 세습을 받긴 했지만 기업을 업그레이드한 점은 인정해줘야 한다. 다만 한국의 재계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재계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를 키우고 있다. 이들의 자식 세대만 해도 지금 하는 방식으론 경영을 할 수가 없다. 21세기인데 삼성이 노조 없이 경영하는 게 말이 되나. 노조가 파괴적이라고 생각되면 이런 부분은 안 했으면 좋겠다고 대화를 해야 하지 않나.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고 몇 달씩 하늘로 올라가서 고공농성하는 상황이 있으면 되겠나. 재벌 회장들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 이들의 공헌을 인정할 부분이 없지 않지만 재벌들이 크는 데 국민들의 피땀이 들어간 거 사실 아니냐. 재벌이 ‘거지 같은 물건’을 만들던 시절 정부가 국민들이 나쁜 물건을 쓰도록 했고, 세금으로 재벌을 보조해줬다. 자기들이 사회에서 받은 게 있으면 갚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한쪽을 완전히 부정하기 시작하면 진전이 없다. 한쪽에선 ‘노조는 다 없애야 한다’, 다른 한쪽에선 ‘재벌 총수들은 악마다’라는 식으로 가면 무슨 대화가 되겠나.”

- 영국에서 한국의 대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게 빠졌다’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나.

“무상급식 이후 활발해진 복지국가 논의가 상대적으로 희미해진 것도 문제였지만 제일 부족한 건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에 대한 논의였다.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 비중을 보면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낮은데 사실상 꼴찌라고 봐야 한다. 복지지출 비중이 10%에도 못 미친다. 복지가 취약하다고 하는 미국이 20% 수준이고, 덴마크·프랑스 등은 30%를 넘는다. 하다 못해 미국 수준으로만 가려고 해도 지금보다 2배 이상 늘려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또 장기적인 먹을거리가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1970~1980년대에 짜여진 산업구조에 머물러 있는 한국 경제를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건지에 대한 이야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첨단산업과 정복하지 못한 기계, 부품소재 분야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등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 기계, 부품소재 분야가 발전한 독일, 일본, 스위스 등을 보면 이들 분야는 중소기업이 담당하는 업종이다. ‘중소기업이 불쌍하니까 봐주자’는 차원의 이야기 말고 중소기업을 어떻게 ‘고급 중소기업’으로 키울지, 복지하고 경제를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사회적인 토론이 필요하다. 이제는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경제성장을 못하는 시대가 왔다. 예전에는 산업이 단순했다. 예를 들어 봉제 공장 다니다 이 산업이 기울어져 전자산업 공장에 다니려면 4~6주 정도 훈련을 받으면 됐다. 하지만 최근의 산업환경에선 교육훈련에 최소 6개월, 길면 2년도 걸린다. 한국은 실업급여가 취약하고 교육훈련 시스템도 잘돼 있지 않아 사람들이 실업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낀다. 이 때문에 젊은이들이 진취적으로 진로를 찾기보다 의사, 공무원 등 안정된 직장만 찾는다.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하려면 그 나라의 복지가 취약하면 안되는 시대가 왔다.”

장하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벌이 성장하는 데 국민들도 희생한 만큼 재벌 회장들이 현대차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저녁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출자총액제한제 등 재벌 개혁 논리는국민과 한 발 떨어진 얘기

▲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둘 중 누구와 타협하는 게 옳은 일인지 잘 따져봐야

- 다시 박근혜 당선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박 당선인은 대선 후보 TV토론에서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양립 가능하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텐데 제가 정의하는 경제민주화는 ‘1원 1표’라는 시장원리를 ‘1인 1표’로 견제하는 것이다. 이런 정의에 입각해서 보자면 법질서 세우기는 몰라도 규제 풀고 세금 줄이는 건 경제민주화와 잘 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 잘못 생각했다’라고 솔직히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치인들이 예전에 한 말을 뒤집으면 자기에게 흠집이 생길까봐 그런 것 같다. 양립하든 안 하든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면 되는데 예전의 레토릭에 미련을 두면 새롭게 하려는 게 왜곡될 수 있다.”

-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경제적인 의미로 해석해보자면 어떤가. 베이비부머 세대인 50대가 박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인 것 같은데.

“물론 민주통합당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경제정책만 놓고 보면 좌파가 이긴 것이다. 경제정책의 승부는 이미 선거 전에 갈렸다고 본다. 새누리당의 일부 사안은 민주당보다 더 좌파적인 경우도 있었다.”

- 박근혜 후보가 대선 기간 약속한 정책을 어느 정도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보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서 실천을 안 하려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는 쉬워서 했나.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쉬워서 포항제철 짓고, 조선소 지었나. 박 당선인이 아버지의 정신을 잇는다고 한다면 경제위기 때문에 못한다는 건 하기 싫다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국민들이 견제를 해야 한다. 한번 딱 뽑고 5년 뒤에 심판하면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약속하고 틀리지 않으냐’며 계속 감시를 해야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지키도록 할 수 있다.”

- 장 교수는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으로 경제발전을 이뤄낸 박정희 시대의 성장 전략에 대해 점수를 주고 있다. 박정희식 경제 모델이 한국 경제에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는지.

“박정희 정책이 무엇인가에 대해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세 가지가 주요 요소다. 하나는 정부가 산업정책을 통해 강력히 개입해 신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외국자본을 규제해서 한국 기업들이 성장하기도 전에 먹히는 걸 막는 것이다. 당시 한국이 외국인 투자에 완전히 개방됐다면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있겠나. 미국이나 일본의 자회사가 됐거나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빈부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걸 제약하고 부자들이 너무 눈에 띄게 잘사는 걸 막았다. 이런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독재정권이라는 논란 등이 있었지만 통치가 유지됐던 측면이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정주영 회장한테 전화해서 ‘조선소 안 지으면 죽인다’고 할 순 없으니 산업정책을 관철시키는 방식이 더 민주화돼야 한다. 또 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식도 분야별 대응보다는 포괄적인 복지국가라는 형태로 접근해야 한다. 또 예전처럼 문을 걸어잠그고 살 순 없으니 개방에 따른 해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이렇게 당시와 방법은 달라져야 하지만 일정 부분 배워야 할 부분은 있다고 본다. 박정희 때 했던 게 다 잘한 건 아니다. 불필요한 노동탄압, 인권침해, 잔혹행위 등은 심각한 문제다.”

- 박정희 정권 당시 노동계급에 대한 억압이 강력했는데 빈부격차가 제약됐다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단 고성장을 하면서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아주 가난한 시기에는 일자리가 없는 게 문제다. 노동자 계급이 굉장히 탄압받긴 했지만 일자리가 없어 굶는 것보단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의 초창기부터 노동자한테 관용적이었던 나라는 드물다. 미국 같은 경우는 파업하면 사설 탐정단을 고용해서 쏴죽이기까지 했다. 현재 노동자들의 힘이 가장 강한 나라로 분류되는 스웨덴도 1920년대까지만 해도 파업률이 세계 최고였고 파업을 진압하는 데 경찰의 과잉 대응, 폭력이 많았다. 싸우면서 쟁취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단순히 ‘박정희가 다 노동계급을 탄압해서 그랬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물론 반공주의, 냉전구도 속에서 노동운동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보고 폭력적으로 탄압할 이유는 없었다.”

- 장 교수는 한국 사회가 좇아야 할 현존 모델로 스웨덴식 사민주의를 꼽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이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된 것은 박정희 정권이 과도하게 노동계급을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기원이 박정희 정권이 아니냐는 것이다.

“글쎄요. 그런 영향이 없다곤 할 수 없지만….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노동계급은 약하지만 시민사회는 센 측면이 있다. 이 부분을 활용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 ‘조상 탓만 하지 말고 지금 노동운동이 잘 안되고 있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국민들에게 어필할 건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 위주로 조직된 노동운동에도 문제가 있다. 물론 노조라는 게 조합원의 이익을 최우선하긴 하지만 크게 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국민들에게 인기를 더 얻을 것이다. 재벌들이 세습한다고 비판하면서 자기 애들 채용 때 특혜를 달라고 하기 시작하면 그런 노동운동을 누가 믿겠나. 노동운동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역사는 이미 벌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고 하기보다 그렇다면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할까를 능동적으로 고민했으면 좋겠다.”

- 올해 한국 사회에선 경제위기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 위기론이 한국 경제를 개혁하려는 흐름을 막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같다.

“개혁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경제위기론을 걸림돌로 만들려고 하겠죠. 아까도 이야기를 했지만 복지를 제대로 안 하면 성장이 안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둘 중 하나 고르는 차원이 아니다. 복지가 취약하니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할 거냐. 여성들을 고급 인력으로 키워놓고 보육, 육아 등이 해결 안되니 투자한 자원들이 다 없어진다. 신산업을 키우려면 복지가 잘 받쳐줘서 여기서 실패하더라도 재기의 기회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 성장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진보세력이 담론 지형을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장이 안되더라도 복지는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경제위기론에 밀릴 수밖에 없다. 프레임을 잘못 잡은 것이다.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가 ‘성장과 분배는 상충관계에 있다’는 논리다. 이걸 받아들이면서 ‘아니 그래도 분배가 중요해’라고 이야기를 하면 위기론에 말려든다. 앞으로 계속 경제가 어려울 텐데….”

- 박근혜 당선인은 복지공약을 실현하는 데 연간 소요재정을 26조3000억원이라고 제시했다. 재정지출 개혁, 조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증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증세 없이 복지공약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나. 만약 증세가 필요하다면 부자증세로 가야 하나, 아니면 중산층까지 참여하는 보편 증세로 가야 하나.

“박 당선인의 공약에 정확히 얼마의 돈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실현하려는 복지의 사이즈가 작다면 증세를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 그 정도의 복지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복지라는 개념을 온 국민이 다 같이 사회보험에 들어 비용을 낮추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은 다 개인별로 AIG, 삼성생명 같은 곳에서 민간보험을 들고 있다. 하지만 유럽을 보면 의료가 국유화돼 있어 3000만명분을 구매하기 위해 제약회사와 협상을 하니 안 깎아줄 수가 있나. 이처럼 비용을 절감해서 빠지는 부분 없이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미국 수준으로 가려면 지금보다 복지지출 비중이 2배는 돼야 하는데 세금 안 걷고 하겠다는 건 거짓말이다. 부자들한테만 돈 받아선 안되고 월급쟁이 등 중산층으로부터도 걷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세금과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왜 자꾸 세금을 내기 싫어하느냐 하면 정부가 어디 가서 돈을 태워버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금이 곧 학교요, 병원이요, 연금보험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세금은 보험을 공동 구매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국가한테 뜯기는 게 아니다. 다 같이 내고 많이 받는 것이다. ”

-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통해 아시아 귀환 전략을 짜고 있고,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한·중·일 FTA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복잡한 걸 하지 말자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만든 건데…. 미국이나 EU처럼 센 나라들은 WTO에서 자기들 맘대로 안되니 각개격파로 들어가서 만만한 나라를 불러 FTA를 체결했다. 한국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나서서 다자무역 질서를 흩트리고 다녔다. 이걸 주도한 분들은 국익을 위해 했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되지도 않는 통합을 하려고 한 것이다. 한국이 잘살게 됐다고 자랑하지만 아직도 왜 국민소득이 2만달러냐. 미국, 스위스 등은 5만달러다.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세계 수준에 도달한 것은 몇 개 분야 정도다. 한국이 겁 없이 나선 것이다. EU하고 FTA 하면 부품소재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건가. 무역장벽을 쓸 수도 없고. 정부에서 특혜를 주려고 하면 협정 위반이라고 상대방이 걸고넘어질 것이다. 길게 보면 나라 망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서명된 것을 되돌릴 수도 없고…. 한국이고 미국이고 중국이고 WTO나 잘하는 게 좋은 일 같다.”

- 2013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아울러 2013년 세계 경제 전망을 듣고 싶다.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고 산 넘어 산이다. 미국 재정절벽 문제도 있고, 유로화도 일단 최악은 진정이 됐지만 올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2월에 그리스에 갔었는데 25%가 실업자에다 직장 갖고 있는 사람들도 급여가 40~50% 깎였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 유로권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중국, 인도도 경제가 감속 중이고 여러 가지 불확실한 요소들이 많다. 다만 이처럼 어려운 상황을 핑계로 쓰면 안된다.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그래도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든 사회통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합이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어떻게 바꿀지 합의를 도출하지 않으면 저는 정말 늦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15년간 혼돈의 시대였다.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고 다른 한편에선 그걸 막아보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 합의도 없었고 반목이 지속됐다. 1~2년 사이에 틀을 다지지 않으면 또 5년이 흐지부지 지나가고 20년을 까먹게 된다. 다 같이 조금씩 양보하며 잘살 수 있는 장기적인 틀을 짜야 한다. 지금처럼 반목하면 결국은 힘 있는 사람들만 챙기고 나갈 수밖에 없다.”

▲ 장하준 교수는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어려운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도 못한 채 말하는 사람, 어려운 내용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 어려운 내용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50)는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일반인들에겐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제를 평이한 말로 풀어 설명하는 데 남다른 재능이 있다. 장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이래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의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재벌 옹호론자’ ‘박정희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그는 지난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공저)를 출간한 뒤 개혁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들과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등이 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3) 정책변화, 진화냐 말 바꾸기냐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02일자 기사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3) 정책변화, 진화냐 말 바꾸기냐'를 퍼왔습니다.

ㆍ성장에서 복지로 ‘좌클릭’ 급변… 어떻게 납득시킬지가 과제

“규제를 풀어 세계의 사람과 자본이 한국으로 몰려들도록 하면 주가 3000 시대도 가능하다.”(2007년 4월11일 증권업협회 증권사 지점장 간담회)

“그동안 양적 발전이나 성장을 중요시해왔지만 이제는 질적 발전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2011년 12월4일 경향신문 김호기·이상돈의 ‘대화’ 인터뷰)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정책은 급격한 변화의 궤적을 그린다. 5년 전 ‘성장 담론’은 분배 쪽에 초점을 둔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으로 ‘좌클릭’했다. 작은 정부론을 앞세워 감세를 주장했던 박 후보는 조세부담과 복지 수준의 접점을 찾기 위한 국민 대타협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증세 논란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 자기 책임하에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양존한다.

그는 2007년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 변형판이라고 할 4대강 정책에는 입을 닫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종합편성채널 승인 등을 골자로 한 미디어법안은 ‘언론의 다양성’을 들어 반대하다가, 일부 내용이 손질되자 “이 정도면 됐다”고 찬성했다. 이에 힘입은 여당은 미디어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정치인의 철학은 ‘정책’과 그 정책을 담은 ‘법안’으로 표출된다.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을 살펴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지향점을 알 수 있다. 박 후보의 정책과 그 행보를 짚어봐야 할 이유다.

2007년 3월12일 한나라당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장 담론 위주의 경제공약이 담긴 ‘근혜노믹스’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5년 새 급격한 정책 변화… 경제민주화 등 진보 의제 앞세워친박선 “박은 복지론자… DJ·노에 반발 2007년 성장 경쟁”

▲ 미디어법 원칙 없이 찬성, 사학법 땐 ‘색깔’ 덧씌우기도당시 원희룡 “박의 리더십, 과거 회귀적… 민생 등 주장 다 패션”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성장 담론이 지배했다. 이명박 후보는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골자로 한 ‘747 공약’을 내세웠다. 

박근혜 후보는 이에 맞서 이른바 ‘5+2 경제성장론’을 주장했다. 5%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고, 플러스 2%가 지도자 몫이라는 얘기다. 박 후보는 여기에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 공약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의 증세 주장을 ‘세금 폭탄’이라고 규정한 당시 한나라당은 규제를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와 감세 주장을 펴왔다. 당 대표였던 박 후보는 2005년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현 정부는 규제를 더 강화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서민만 더 큰 고통에 처했다”며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하고 시장의 생리와 사람들의 본능을 무시하는 아마추어식 발상이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2004년 8월4일 MBN에 출연해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있고 한국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적인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2006년 1월2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저와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 어느 것이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인지 밝히고 국민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2012년 박 후보 입장은 크게 달라졌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 키워드를 자신의 것처럼 가져왔다. 생애주기별 복지정책 구상을 담은 사회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출마선언문에서 가장 눈에 띄게 내세운 것도 ‘경제민주화’ 구상이다.

박 후보의 변화는 2009년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언급한 뒤부터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지 못했고, 그 때문에 성장보다는 분배 쪽에 초점을 두도록 정책기조의 변화가 필요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2011년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박 후보는 “성장이 전체 국민의 후생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며 “성장이 전체 후생에 골고루 도움이 되기보다는 일부에 편중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 변화의 시작은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한 200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때라는 분석도 있다. 한 친박 핵심 인사는 “돌이켜보면 박 후보는 ‘성장’보다는 ‘복지’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2007년 경선 때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이 컸기 때문에 성장 경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박 후보가 과거와는 생각 자체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감세’를 고집해오던 입장은 ‘증세 논의를 열어두자’는 쪽으로 변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복지비용의 60%는 세출을 절약하고, 40%는 세입을 늘려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에 대한) 기대 수준과 (비용의) 조달 수준의 접합점을 찾겠다”며 “국민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하고 국회에서 논의도 해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진화’냐, ‘말 바꾸기’냐

박 후보는 정책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 바뀐 것은 경제상황이 바뀐 것이냐, 경제철학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박 후보의 대답은 이랬다.

“ ‘줄’은 저소득층, 중소기업 세율을 내리자는 것이고, ‘푸’는 규제의 불필요한 것을 풀어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 ‘세’는 법치를 바로 세워 공정거래와 경제 남용을 바로잡자는 부분이다.”

하지만 2007년 ‘줄·푸·세’를 주장할 당시 ‘줄’은 주로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에 혜택이 가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푸’는 “기업의 의욕을 북돋우고 기업의 자율을 최대한 확대하자”(서울 파이낸셜포럼 특강)는 규제 완화에 강조점이 찍혔다.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적 지배력 남용에 있어서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쓸데없는 규제가 많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세’이다. 2007년 박 후보는 “법 위에 떼법이 존재해서 폭력을 쓰고 우기면 된다”며 파업 등 노조 활동을 겨냥한 바 있다.

박 후보의 ‘입장이 변화한 것이 없다’는 발언은 외부적으로 “일제강점과 8·15 독립이 같다는 말”(노회찬 의원)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캠프 내부에서도 “경제 상황이 2008년 이후 급속하게 바뀌었고 2009년부터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꾸준히 말해왔으니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캠프 핵심 관계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성장에서 복지로, 국가에서 국민으로 담론이 변화했다는 것이 박 후보 소신이라면, 이전에 했던 주장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진화됐는지 설명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4·11 총선에서는 당의 정강·정책에 담았던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을 공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현재도 박 후보 주변에서는 “경제민주화는 선거전략인 측면이 많다. 지금 언론에 경제민주화란 의제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뜨니까 더 많이 부각됐는데 실제로 박 후보를 만나서 들어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입장은 아닌 것 같다”(한 의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특히 박 후보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경제민주화라는 의제에 동참해줄지도 의문이다. 원내외 40여명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꾸려 관련 법안을 시리즈로 내고 있지만, 모임 내부에서는 “당내 설득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 박 후보의 입장이 궁금한 정책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가 주장하거나 반대한 정책들 중 여전히 입장이 모호한 것들도 있다. 박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정책을 두고 당시 정책 청문회에서 “아버지 시절에도 검토했다가 폐지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대에도 그랬다. 그래도 계속 추진할 것이냐”고 묻는 등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운하 정책의 변형인 4대강 정책을 두고는 별다른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분명히 대운하는 반대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4대강은 대운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믿어야 할 것”이라며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열차 페리’ 공약도 설명이 없다. 한·중 열차페리 정책은 복합화물운송 시스템으로 육상에서 화물을 실은 열차를 고스란히 페리에 실어 수송하는 방식을 말한다. 박 후보 쪽에서는 당시 중국 옌타이항~다롄항 구간 시험운행 등 증명된 사례가 있고 기존 중국 횡단철도와 연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정책’에 비해 현실성이 높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공약에서 이 부분은 빠져 있다.

박 후보가 납득되는 설명 없이 입장을 바꾼 사례로는 2009년 미디어법도 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종편 승인 등을 골자로 미디어법 제정을 추진했다. 박 후보는 “제대로 된 미디어법이 되려면 미디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독과점 문제도 해소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강행 처리 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런 입장을 밝힌 지 불과 일주일여쯤 지나 언론 관련 법안이 본회의에서 직권상정으로 처리될 당시 박 후보는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강행 처리된 법안은 구독률 20% 이상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불허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일보의 구독률은 그보다 낮았고, 결국 이들 신문사의 종편은 출범됐다.

박 후보 쪽에서는 “그나마 25%였던 기준을 박 후보가 버텨 20%로 낮췄다”는 설명뿐이었다. 당시 박 후보 측근 사이에서도 “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 정치에 타격을 입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앞서 대표 시절인 2004년 말부터 여야 대치의 주요 법안이었던 신문법 개정안에 반대한 박 후보는 “시장점유율 규제 조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항”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 때는 ‘국제적 기준’과 ‘자유시장 경제’를 앞세웠던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사립학교법 개정에도 박 후보가 깊숙이 개입했다. 2005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주도로 개방이사제 도입과 인사위원회 권한 강화, 부패사학에 임시이사 파견제 등을 내용으로 한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박 후보는 이른바 ‘사학법 투쟁’을 하며 거리로 나갔다.

박 후보는 당시 사학법에 ‘색깔’을 입혔다. 그는 “그들(정부와 여당)의 목표는 비리척결이 아니라 전교조에 사학을 넘겨줘서 지배구조를 바꾸고 아이들에게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200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는 “이번에 날치기한 사학법은 전교조가 10년 전부터 주장한 법이다. 이 법의 독소조항인 개방형 이사제, 임시이사제, 교사의 노동운동 허용 같은 것은 모두 전교조 숙원 사업이다. 전교조가 사학의 경영에 간섭하고 갈등을 일으켜 이사회를 장악하고 학교를 접수하는 길을 터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박 후보를 향해 원희룡 당시 최고위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이념적 편견은 병”이라고 밝혔다. 2007년 개방형 이사제 추천 조항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해 사학법이 재개정되긴 했지만 여야 모두 이 법안에 불만을 갖고 있다.

다시 원희룡 전 최고위원 말로 돌아가보자.

“박 대표가 사학에 개방이사를 넣는 것은 빨갱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김정일도 만나고 이념적 지평이 넓다고 말하는 것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와 같다. 자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박 대표의 리더십 밑바닥은 과거회귀적·대결적·관념적 이념 틀이고, 민생 등 나머지 주장은 다 패션일 뿐이다.”

실제 보수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면담한 이가 박 후보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2002년 5월13일 백화원 영빈관 회의실에서 이뤄진 김 위원장과의 독대에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남북 공동조사단 구성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재 박 후보는 대북·안보 정책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설명되는 포용정책과 압박정책의 중간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선언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지선·강병한 기자 jslee@kyunghyang.com

2012년 8월 22일 수요일

"복지 비중 낮을 때, 국민은 필연적으로 보수화"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1일자 기사 '"복지 비중 낮을 때, 국민은 필연적으로 보수화"'를 퍼왔습니다.
장하준의 경제민주화란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인 문재인 의원의 지지모임인 ‘담쟁이 포럼’은 21일 성공회 서울주교 대성당에서 장하준 캠브리지대학 교수를 초청해 강연회를 가졌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의 저서를 통해 명성을 쌓은 대표적 비주류 경제학자로 대중적 지지가 높다. 특히, 최근에는 ‘경제 민주화’가 주된 시대적 요구로 등장함에 따라 기존의 경제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장 교수의 책들은 정책결정권자들의 필독서로 각광받고 있다.
이날 강연회에는 문재인 캠프에 관여 중인 관계자들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 전현직 국회의원과 기관장,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한 장 교수 역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과 복지를 둘러싼 현안을 설명하고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했다.

▲ 21일 오후 정동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에서 열린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의 강연에 참석한 문재인 의원과 장하준 교수의 모습ⓒ연합뉴스

'민주당, 책임 인정하는 자세 보여야'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 논의에 앞서 주최 측을 의식한 듯 “한국이 OECD 최고의 자살률과 자영업 비율을 갖게 된 데에는 시장의 자유화와 금융 개방화 노선을 택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정부 10년 동안 복지 지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운 경제적 구조를 갖게 된 점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책임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주요 유럽 국가의 현황과 한국의 상황, OECD국가들의 평균을 비교하며 복지 문제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장 교수는 “GDP 대비 10% 수준의  한국의 복지 수준은 OECD 국가 중 가장 가난한 나라인 멕시코 보단 조금 높지만 미국의 절반, 스웨덴의 1/3수준으로 OECD 평균 복지에는 갈 길이 멀다”며 “복지 수준이 낮으면 계층 간 이동이 어렵고, 계급 구조가 고착된다”고 강조했다.

복지는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 

복지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인 ‘복지=반성장’ 논란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시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복지가 잘 되어있으면 구조 조정이 더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고 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며 “성장을 위해 반드시 복지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장 교수는 “복지는 공동구매와 같은 것으로 사기업에 맡겨 놓으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을 세금을 통해 공동으로 싸게 구매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복지와 계층 고착의 상관에 대해 “과거, 기회의 땅이라고 불렸던 미국은 복지 비중이 낮기 때문에 계층 이동이 어려워 계급구조가 고착화되어 가고 있는 반면 스웨덴 등 복지 비중이 높은 국가는 상대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의 계층적 상관관계가 낮아 기회 실현이 이뤄지고 있다”며 “미국의 자동차 노조들이 조합원의 이익에 목숨을 걸고 싸우며 쟁의를 벌이는 이유 역시 미비한 복지 제도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경우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장하준 교수의 강연모습 ⓒ 연합뉴스

핵심은 시민권에 기초해야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인 ‘경제민주화’ 관련해 장 교수는 가감 없는 의견을 표명했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 민주화 문제를 이미 거론했던 바 있는 장 교수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 국가”라고 규정한 뒤 “기본적으로 1원 1표의 원리에 의해 작동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논리를 민주주의의 논리인 ‘1인 1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장 교수가 규정하는 경제민주화의 수준은 ‘주주자본주의’로 대표되는 ‘1원 1표’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장 교수는 “‘1원 1표’의 주주자본주의는 상식적인 것일 뿐”이라며 “이 정도 수준을 요구하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을 진전시키지 못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의 추진 과제로 ‘자본 거래세 도입’, ‘인수합병에 대한 규제’ 등을 포함한 ‘자본 시장의 통제’와 기업 경영에 노동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등을 꼽았다.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로 꼽히는 스웨덴 사민당의 구호 가운데 ‘생활이 안정된 사람이 더 모험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가난한 사람만 도와주는 ‘잔여적 복지’가 아닌 시민권에 바탕 한 ‘보편적 복지’가 실현될 때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사회적 창발성이 높아질 수 있단 선언적 구호이다.
장 교수는 “우파들의 주장대로 가난한 사람만 도와주는 복지 정책을 펼칠 경우 중산층의 반발로 복지 문제의 정치적 지속성이 떨어지고, 이는 복지의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며 “복지 비중이 낮은 국가의 국민은 필연적으로 보수화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2012년 7월 4일 수요일

[사설]균형재정 늦추더라도 경기회복에 주력해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7-03일자 사설 '[사설]균형재정 늦추더라도 경기회복에 주력해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내년 예산 짜기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는 6월말까지 정부 부처별로 예산 요구안을 모두 받았다. 올해 예산과 비교하면 6.5%(21조2000억원) 늘어난 346조6000억원이다. 이를 토대로 9월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낸다. 정부 예산은 한 나라의 살림살이를 운영하기 위한 계획이다. 어떤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올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있고 내년은 정권 교체 첫 해다. 어느 때보다 복지 예산과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 대한 요구가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돈 나갈 곳은 늘어나는데, 들어올 돈은 줄어드는 게 문제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로 낮춰 잡았다. 성장세가 내림세로 돌아서면 세수는 줄어든다. 개인 소비가 줄고 기업이 내는 법인세가 줄기 때문이다.

정부가 잡은 내년 예산 편성 기본 방향은 균형 재정 회복과 경기회복 뒷받침이다. 4월에 만든 예산 편성 지침에 있던 성장-일자리-복지의 선순환 구조가 사라지고 대신 경기회복이 들어갔다.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정부는 내년 균형 재정 목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균형 재정은 세입과 세출의 균형이 맞아 적자가 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균형 재정을 회복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현 정부 들어 지난 4년 동안 계속된 대규모 재정적자로 국가채무가 49%(146조원)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균형 재정 목표에 무리하게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본예산 기준으로 균형 재정을 이룬 것은 2003년 한번뿐이다. 균형 재정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도 좋지만 경기 침체를 보면서 손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무리하게 두 마리 토끼를 잡기보다 경기회복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한다.

내년 복지 분야 예산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 양극화를 줄이려면 당연히 지출을 늘려야 한다. 반면 SOC 투자는 크게 줄일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R&D) 분야도 줄이는 게 좋다. 물량을 투입한다 해도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꼭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의 우선 순위를 따져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는 사업은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 각 부처 요구안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정부의 예산 편성은 단순히 재정을 분배하는 차원이 아니다. 어떤 가치에 따라 정책을 만드는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준이다. 균형 재정을 당분간 늦추더라도 경기 회복에 방점을 찍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본다.

2012년 6월 3일 일요일

프랑스발 증세 도미노 본격화하나


이글은 Economy Insight 2012-06-01일자 기사 ' 프랑스발 증세 도미노 본격화하나'를 퍼왔습니다.
Cover Story - 프랑스 대선 이후 유럽연합- ④ 감세에서 증세로 전환하는 유럽 국가들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증세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화 방안이 각국 유권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좌초했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재정건전화 방안이 유럽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유럽에서 정권 교체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실패한 긴축'의 후폭풍이다. 특히 프랑스 대선에서 프랑수아 올랑드의 승리는 긴축 중심에서 성장을 중심에 놓는 재정건전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재의 유럽 경제 상황에서 증세와 재정지출 증대를 결합한 점진적 재정건전화는 불가피하다. 유로존은 2011년 2분기부터 '사실상'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2분기와 3분기 성장률은 연속 0.1%, 4분기에 -0.3%, 그리고 올 1분기 0%를 기록했다. 그 결과 실업률이 11%에 이르고, 빈곤층이 급증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이 이미 기술적으로 침체 국면에 진입했고, 프랑스 역시 1분기 성장률이 0%일 정도로 성장이 멈췄고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 있다. 독일을 제외하곤 유럽 주요국들이 침체에 빠졌거나 성장이 멈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긴축을 통한 재정건전화는 성장 둔화, 고용 악화와 세수 감소, 국가 부채 악화와 은행 부실 증대, 그리고 다시 성장 둔화라는 '악순환의 피드백 루프'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정권 교체와 긴축에 대한 저항은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프랑스의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86%에 이르고 있음에도 성장과 증세, 그리고 점진적인 재정건전화가 선택된 것은 정부 지출이 GDP에서 56%나 차지하는 구조에서 지출 삭감이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긴축 거부가 재정건전화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고실업과 저금리의 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지출 삭감은 재정 악화를 만들 뿐이다. 한마디로 세수 증대 없는 재정건전화는 실현될 수 없다.
프랑스 대선 이전부터 많은 국가가 증세로 전환해왔다. 세계 최대 채무국 중 하나로 2조유로(GDP의 120%)에 육박하는 국가 부채를 지닌 이탈리아의 마리오 몬티 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위해 복지 축소 등 지출 감축(130억유로)과 더불어 증세(170억유로)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1주택 보유자에게는 재산세가 면제됐는데 1주택 보유자에게도 주택 가격의 0.4%를 부과하고, 다주택 보유자에게는 중과세(0.64%)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부유세와 금융자산세를 신설하는 등 부자 증세를 도입했다. 위기로 치닫고 있는 스페인도 지난해 말 집권한 우파 정부가 지출 삭감(89억유로)과 더불어 소득세율 및 부동산 세율 인상 등 증세(62억유로)를 추진하고 있다.
긴축 실패로 잇따라 정권 교체
유럽에서의 이런 증세 트렌드에 프랑스 대선은 쐐기를 박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건전화 방식에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올랑드는 기본적으로 세수 증대 중심과 점진적 균형재정 달성, 그리고 공공부문 역할 증대에 의한 성장 추진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즉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는 기존 수준을 유지하는 대신 부유층 증세와 대기업 법인세의 인상으로 세수를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교사직 6만 개를 신설하고 청년층 15만 명을 위한 공공부문 일자리를 만들어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를 목표로 내세웠다. 게다가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서 추진하던 연금개혁법을 수정해 연금 최초 수령 연령을 62살에서 60살로 낮추기로 했다. 그리하여 균형재정도 사르코지 정부가 목표로 하는 2016년보다 1년 늦춘 2017년 달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방식은 노동개혁이나 연금개혁 등에 의한 지출 삭감을 증세와 병행 추진하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의 방식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국가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증세가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아가는 이유는 지출 삭감 중심의 재정건전화 방식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긴축 중심의 재정건전화를 주도하고 여전히 고집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고립되고 있는 배경이다.
선진국이 지난 30년 이상 추진하던 감세가 증세로 전환할지는 올해 미국 대선의 결과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대선에서도 증세는 큰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부채가 유럽보다 더 심각하다.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2007~2011년 GDP 대비 정부 부채가 40%나 증가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여름 의회가 설정한 국가 채무 한도(14.3조달러)를 초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국 공화당은 연방정부의 부채 상한을 2조1천억달러 늘려주는 대신 2013년부터 10년간 정부지출 1조2천억달러의 감축을 끌어냈다. 올해 미국 대선이 중요한 이유는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부자 증세'와 경기부양, 그리고 지출 삭감의 결합을 주장하는 반면 공화당은 어떤 세금 인상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밋 롬니는 소득세율 전반을 인하하겠다고 주장한다. 재정건전화 방안에 대한 합의 도출에 실패함에 따라 미국은 내년부터 재정지출의 자동 삭감이 시작되고, 올해 말이면 1년간 연장했던 긴급 실업수당 지원과 근로소득세 감세, 그리고 조지 부시 행정부의 감세가 만료된다. 그 결과 GDP가 2.8%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월 말 미국 경제주간지 가 "종말의 시간 2013년 1월1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를 보낸 배경이다.
프랑스 대선, 증세 전환 기폭제 될 듯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증세 정책을 상징하는 '버핏세' 도입은 지난해 여름 재정건전화 방식을 둘러싼 미국 정치권의 갈등이 미국 신용등급의 강등으로 이어지자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슈퍼부자'에 대한 증세로 재정 적자 해결을 주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버핏은 자신이 2010년에 낸 실효 소득세율이 17.4%에 불과한 반면,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20명이 낸 평균 실효세율은 자신의 2배가 넘는 36%에 이른다고 밝히면서 미국 소득세율의 불공정성을 지적했다. 참고로 미국 국세청(IRS)에 따르면, 미국 납세자 약 1억4천만 명 중 상위 1%에 해당하는 약 140만 명의 실효세율은 1995∼2007년 29%에서 23%로 하락했다. 그런데 1% 중에서도 '초슈퍼'부자 400명의 실효세율은 30%에서 17%로 하락했다. 0.0003% 안에 드는 '초특급'부자 400명의 실효 소득세율이 최상위 1% 소득자의 나머지 139만9600명보다 낮은 국가가 오늘날의 미국이다.
오바마가 추진하는 부자 증세는 이런 현실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오바마는 최상위 소득자들이 세금 감면과 자본소득의 우대 조치 등으로 중산층 소득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연간 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사람들에게 최소 30%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이 35%인데 30%의 세금도 내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소득세율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1940~50년대 80%대에서 1960년 91%까지 인상됐다가 1970년대에 내려 1980년에 70%였다. 이후 공화당 정권 12년간 절반에도 못 미치는 28%까지 내렸고, 1990년대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에서 39.6%까지 올랐던 것을 2000년대 공화당 조지 부시 정부에서 35%로 다시 내렸다. 그런데 클린턴 정부의 증세 정책은 임기 후반부에 자본소득세 인하로 빛을 바랜다. 1990년대 후반부터 미국 상위 1%의 소득 증대는 자본소득에서 비롯됐는데, 1997년 자본소득세를 28%에서 20%로 인하시켰던 것이다. 2003년 부시 정부는 자본소득세를 15%로 다시 내리면서 최상위 소득자의 실효세율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미국 소득세율의 역사에서 보듯이, 감세론자들의 협박과 달리 높은 세율을 보이던 시절에 미국 경제는 더 높은 성장을 구가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성장세 약화가 높은 세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도 세율 높을 때 한 단계 도약
오바마 행정부의 부자 증세는 지속 불가능한 미국 국가 채무 구조를 고려할 때 궁여지책이기도 하다. 공화당이 주장하는 지출 삭감만으로는 재정건전화가 어려울 뿐 아니라 사태를 악화시킬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언론들조차 국가 부채 규모를 우려하면서도 지출 삭감만을 주장하는 공화당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라고 비난하고 있을 정도다. 증세가 '성장을 저해하고 일자리를 죽이는 악마'라는 공화당의 주장은 지나치게 이념적일 뿐만 아니라 잘못됐음이 역사적으로도 입증된 것이다. 1993년 클린턴이 세금을 인상했을 때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이던 딕 아미는 "경제를 침체로 밀어넣고 일자리를 죽이는 증세"라고 비난했지만, 클린턴의 증세는 2300만 개 일자리와 2360억달러의 재정 흑자를 만들어냈다. 반면 부시의 두 차례 감세는 300만 개 일자리를 만들었을 뿐이고, 재정 흑자의 유산을 1조2천억달러의 적자로 바꿔놓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최근 오바마가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며 감세론자들의 정치적 지주인 1980년대의 레이건 대통령을 "공정 과세와 세금 증액을 위한 계급전쟁 전사이자 사회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을 '작은 정부'의 교주 격으로 아는 이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레이건이 1981년 집권한 뒤 무리한 감세를 추진하다가 1982년 증세로 전환했고, 증세를 위해 내세운 논리가 '공정 과세'였기 때문이다. 레이건의 증세는 1983년과 84년의 경기회복으로 이어졌고 레이건의 재선을 가능케 했다.
부자 증세 문제는 연방정부 차원에서만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미국 경제성장의 동력이던 캘리포니아주가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견디지 못해 제리 브라운 주지사가 연수입 25만달러 이상 부유층에게 소득세를 더 물리는 증세 결정을 오는 11월 주민투표로 결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캘리포니아주는 증세를 하지 않을 경우 초·중·고의 학업 일수를 줄이고 주립대학 등록금을 올려야 하며, 노인과 극빈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캘리포니아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대다수 주가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뉴욕·일리노이·애리조나·네바다·캔자스·메인 등 7개 주는 부실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이처럼 선진국에서 부자 증세의 좌초는 선진국 경제는 물론이고 글로벌 경제에 큰 암운이 될 것이다. 선진국 부자들이 재정건전화와 미래를 정말 우려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필요한 때다. 지속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한 오바마식 해법을 프랑스가 수용하고, 프랑스의 선택이 다시 오바마의 재선 성공이라는 긍정적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낸다면 부자 증세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경우 2013년 '퍼펙트 스톰'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상학부 trustne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