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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1일 금요일

'좌클릭' 때문에 패배? '우향우'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0일자 기사 ''좌클릭' 때문에 패배? '우향우'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를 퍼왔습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12) 민주통합당의 패인, 진보의 지표와 재구성

민주통합당의 패인과 진로

이번 18대 대선에서 국민은 할 만큼 했다. 추운 날씨에도 75.8%인 3072만 명이 투표장으로 달려갔고, 민주통합당의 연이은 졸전과 패착 속에서도 48%, 1469만 명이 박근혜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80%가 현 정권을 반대하고 60%가 정권교체를 바라고, 99%가 생존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진 것이기에, 필자는 18대 대선의 패인이 전적으로 민주당에 있으며 이를 제대로 성찰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이 당은 곧 '호남당'으로 전락하리라 확신한다. 한 사람의 대통령 당선이 몇몇 노동자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비상시국'에서 대선의 패인을 분석하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진보의 지표와 대안을 모색해본다.

대선의 패인에 대해 해몽 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 분석이 난무하는데, 필자는 지난 총선 때부터 당시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으로는 반드시 진다는 내용의 글인 "민주통합당, 새로운 프레임을 짜라"라는 칼럼을 (프레시안) 3월 1일자로 기고하였으며, 18대 대선에서는 (한겨레신문) 12월 3일자에 "새로운 프레임 없이는 야권 승리 어렵다", (프레시안) 12월 13일자에 "과거의 박근혜가 아닌 미래의 박근혜를 얘기하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거기서 제기된 문제제기와 대안은 무시되고 결국 민주통합당은 양 선거에서 졌다.

대선 전의 객관적 상황에 대해 돌아보자. 86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57.6%가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고, 이도 여의치 않아다단계 판매로 나선 415만 명 가운데 4분의3이 단 돈 1원도 벌지 못했다. 공공기관과 지방 정부를 합한 국가부채는 938조 원에 이르며,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 908조 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2000조 원에 달하는데,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와 물가는 폭등하고 교육비 부담은 가중됐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고 미래는 불안하다. 50대도 대개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면서(상용 근로자는 38.6%) 간신히 마련한 집을 줄여가며 교육비, 혼수비, 노후자금으로 활용해왔는데, 부동산은 폭락하고 빚은 늘어만 간다.

반면에 정권은 자본과 유착관계를 맺고 기득권에 유리한 정책만 고집하였으며 대통령 측근이 모두 구속될 정도로 부패했다. 정권은 70%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를 강행했고,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잘 드러나듯 부당한 정리해고와 부패와 불의에 항의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정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는 주로 가진 자의 편이었고 검찰은 스스로 개혁을 이야기할 정도로 썩었는데, 이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은 철저히 통제당하고, 야당은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진보는 분열되었고, 노동조합 또한 거의 괴멸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을 지배한 것은 치끓는 분노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이다. 결국 불안을 잘 이용한 여권은 승리하였고,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한 야권은 패배했다. 대중의 분노는 대선을 기점으로 좌절로 바뀌었다.

총선 직후 좌클릭을 해서 졌다는 민주당의 총선 평가를 보고, '대선도 지겠구나' 생각했다. 대선 이후 또 다시 좌클릭론과 경상도의 인구가 전라도의 1.6배이고,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유권자가 1618만여 명으로 30대 이하 유권자인 1547만여 명을 넘어서기에 진보가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펴는 것을 보니, 다음 선거가 걱정됨은 물론 민주통합당은 해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단일화의 실패, 단일화에 매몰되어 골든크로스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함, 선거 막판에 투표율에 집중하여 정책대결을 벌이거나 '왜 문재인인지' 보여주지 못함, 콘트롤 타워가 없음, 여성성 비하 발언으로 인한 여성 표의 상실, 리더십을 갖춘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 초점을 맞춘 광고의 실패도 패배의 원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패인은 국민 대다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불안'과 '분노'가 지극한 상태에 있음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를 새로운 프레임의 창출과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데 있다.

 
▲ 18대 대선 당일은 지난 19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새로운 프레임을 창출하지 못하고서 진보가 선거에서 이긴 전례가 없다. 그는 망나니 부시 부자에게 민주당이 두 차례나 패배한 원인을 그에서 찾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린다. 여당의 정책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그를 비판하는 순간 그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내내 네거티브 프레임에 몰두했다. 유신정권과 연결시키려다 효과가 크게 없자 '이명박근혜' 공동심판론으로 불을 붙였고, 연일 박 후보에 관한 비리성 의혹들을 폭로했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차별화를 단행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그리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심판론을 외치니, 상대편은 나는 상관이 없다 하였고, 민주당은 왜 문재인이 당선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유신 독재에 대한 비판 또한 헛다리를 짚기는 마찬가지였다. 조희연 교수의 지적대로 역설적으로 박정희 향수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서 싸웠던 민주세력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때 박정희 향수는 없었다. 국민은 경제 위기와 불안 속에서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안티로서 유신독재 비판만 했다. 국민은 생존위기를 맞아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못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구성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만 말하니, 국민들은 아마 밥그릇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심판하였음을 민주당은 뼈저리게 성찰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 속에서 생존위기에 처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한 국민에게 노무현 정권은 대안이 아니었다. 만약 노무현 정권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단행했다면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그의 분신인 문재인을 지지하였을 것이다. 진보· 노동 진영 또한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노동자를 강력하게 탄압한 제2의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대선을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프레임을 짜고, '과거 대 미래, 절망 대 희망, 낡음 대 새로움'의 구도로 몰고 갔어야 했다.

민주통합당은 대선정국을 정책대결로 끌고 가지도, 차별적인 정책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우클릭하면 중도의 지지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민주통합당 보수파와 주변 학자들의 근거 없는 추측과 진단이다. 여러 실험에서 입증되었듯, 이념적으로 중도인 유권자는 없다. 그들은 정책에 따라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선택할 뿐이다. 16대 대선 때처럼 한 사람이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도록 진보의 열정을 결집하고, 서울시장 선거 때 무상급식으로 전선을 형성하여 승리한 것처럼 중도의 아주머니들도 달려갈 혁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여야 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수사적으로나마 선점하였는데, 문재인 후보는 노상 뒷북만 쳤고 그렇게라도 나온 정책이 그리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50%가 아니라 100% 정규직화, 입시철폐와 대학평준화와 같은 과감한 교육개혁, 10년 동안 성실하게 주택부금을 납부한 이에게는 무조건 공공주택을 주는 제도 등을 정책으로 내세워 그 정당성과 현실적 가능성 논쟁으로 판을 끌고 갔어야 했다.

계급전쟁으로 가지 않고 세대전쟁으로 간 것도 치명적인 패인이다. 민주통합당은 '젊은이=진보', '중장년층=보수'로 좌단하고 젊은이의 투표율만 높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세대전쟁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세 가지를 잃었다. 계급에 바탕을 둔 진보적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고, 서민의 불만과 분노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중장년층의 반발을 불렀다. 극단의 신자유주의 모순에 처해진 서민들에게 그들이 생존위기에 놓인 원인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그런 삶으로 몰아놓은 자들이 바로 여권의 기득권 세력임을 분명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대중의 분노는 100% 민주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잘 조직해내지 못했고, 대중의 불안 또한 민주당의 지지로 연결시킬 수 있었는데 양자 모두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지도력 상실, 문재인 후보의 모호한 행보,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에 대한 설명 부족 등으로 분노한 대중은 과연 문재인 후보가 자신들의 분노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통치를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품게 됐다.

다수의 대중들은 그래도 문재인을 찍자고 투표소를 찾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기권했다. 대중은 안정과 여당을 동일시하기에 대중의 불안에 대해선 여당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대중의 불안을 선점하는 자'가 지지를 얻는다. 대중의 불안이 기득권의 수탈에서 온 것임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그를 안정으로 이끄는 것은 선별적 복지나 생색내기용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와 증세를 통한 경제 민주화 정책임을, 복지를 통하여 외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충분히 알렸어야 했다.

더구나 대선은 5년의 미래를 다스릴 지도자를 선출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미래의 문재인'을 보여주고 '미래의 박근혜'를 비판해야 하는데 '과거의 박근혜'만 비판했다. "현 정권이 고환율정책만으로 여러분에게 빼앗아 부자들에게 준 것이 174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후보의 정책을 보면 이것이 재발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중의 분노와 미래의 박근혜를 연결시키는 전략을 텔레비전 토론 때라도 구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여권은 총력을 다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는데,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당원은 열정을 다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들의 동맹 안에서만 맴돌았다. SNS에서 벌어진 진보적 담론은 그 바깥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세력은 세련된 전략, 경제민주화에 대한 선점 및 온정적인 복지정책을 통하여 이명박 정권이 만든 보수우파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했다.

필자는 지금도 여론조사에서 계속 지고 있는 데도 왜 문재인 후보가 과단성 있게 판을 바꾸고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는 파이팅을 보여주지 못하였는지, 토론에서 왜 더 과감하거나 공격적이지 못하였는지, 압도적인 승리 조건에서도 정권심판론을 펼쳐서 총선에 지는 '기적'을 연출했는데도 왜 그것을 대선에서 반복했는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정치쇄신을 열망하는 자들인데 왜 친노의 일선 후퇴를 비롯한 당의 혁신을 감행하지 않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나 문재인 후보의 판단력이나 결단력이 상식 이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선거는 졌고, 정치 쇄신을 열망하는 안철수 현상과 권력의 횡포와 불의에 분노하는 '도가니 현상', 대다수 국민을 생존위기로 던져놓은 신자유주의 모순은 남아있다. 박근혜 정권은 선별적이고 온정적인 복지를 펼치면서 노동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노동의 저항을 받겠지만 서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에 바탕을 둔 강력한 헤게모니를 획득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박근혜 정권과 차별성을 드러내야 하고 이는 새누리당이 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적인 정치쇄신과 좌클릭 뿐이다. 모든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고, 호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정책을 지향해 그 모순에 던져진 99%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불의에 분노하는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여 검찰 개혁을 비롯하여 모든 정의롭지 못한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자유주의 우파들은 전면에서 후퇴하고 자유주의 좌파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획득한 박근혜 정권에 5년 내내 끌려다니며 새누리당을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공룡여당으로 만들 것이다. 중도 보수이지만 상대적으로 청렴하고 정치쇄신을 한 안철수의 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 중도파는 이 당에 흡수될 것이며, 다수 대중 또한 그 당의 지지로 전환할 것이다. 더구나 진보 정당이 단일화 할 경우 민주당은 제3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진보의 지표와 재구성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 진영은 어떤 지표를 설정하고 재구성할 것인가.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대 문재인',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 대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세력'의 대결은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에서 정리해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노무현 정권에서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노동자를 탄압하였기에, 누가 되든 신자유주의 정권이 20년으로 연장되는 것이었다. 다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선점하면서 민주당이 좀더 좌클릭했고, 그 틈으로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대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 강화'의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진보 진영에 약간이나마 기대를 걸게 했는데, 결국 대선의 패배로 그 기대조차 사라져버렸다.

대선 개표 직후 고(故) 최강서 열사 등 노동자들이 연이어 네 명이나 자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투쟁하던 활동가였다는 점이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위해 회계조작까지 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을 강요하여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자본, 이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늘 자본의 편만 들어주는 국가, 노동자들을 과격분자나 경제혼란범으로 매도한 보수언론, 이들의 문제를 외면한 시민과 야당만이 아니다. 분열된 진보, 희망을 보이지 않는 노동운동이 그들을 더욱 절망시켰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

권영숙 교수의 지적대로, 노동배제의 사회, 노동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노동을 외면하는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고립'이 첫째 문제이고, 그런 노동계급의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 주체화하고, 노동현안을 사회의 중심적 쟁점으로 삼아 이 나라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노동주체, 나아가 노동자의 대중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무능함과 계급적 성격의 모호함이 둘째 문제이다. 한국은 갈수록 파업 빈도가 줄어들지만 파업을 시작하면 장기파업이 된다. 이는 노동자들이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이 비타협적이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고, 보수-자유 양당이 노동배제적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야금야금 노동 배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되고, 국가와 자본, 대형교회, 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카르텔과 노동 사이의 권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칭이다. 진보는 분열되고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했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사람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는데, 이 또한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로, NL과 PD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노동진영은 어떻게 길을 낼 것인가.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길은 늘 막다른 곳에서 열린다. 파괴는 창조다. 절망의 극단에까지 나아가서 뼛속까지 성찰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지금이라도 정파주의, 관료화, 종업원 이기주의, 구태의연함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굳건히 연대한다. 금융과 토지, 공장을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유화, 노동이 진정한 자기실현인 사회,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는 세상을 향한 굳건한 목표 아래 모든 정파와 갈등을 녹여내야 한다.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활발한 소통을 하며, 정당이든 조합이든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의 민주주의를 확보한다. 종업원 이기주의를 일소하고 끈끈한 동지애와 굳건한 투쟁의지를 갖고서 민주 노조 깃발 아래 연대한다. 김혜진 정책위원장의 제안대로, 한 사업장의 투쟁이 그 사업장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싸우자. 단순히 노동악법을 개선하는 방어적 자세에서 노동배제를 심화하고 노동자의 죽음과 장기사업투쟁을 야기하는 노동법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싸움을 하자.

머리는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은 발을 이기지 못한다. 희망은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 집회와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시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99%로부터 꽃필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엔엘(NL,민족해방) 중심의 진보 운동의 종언을 의미한다. 진보정의당은 유시민 세력과 단절하지 않는 한, 진보의 대열에 설 수 없다. 쌍용차에서, 현대자동차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보신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노동전선 등을 아울러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을 제외한 진정한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혁신을 통해 다시 구성된 민주노총이 결합해야 한다. 이제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로 전선을 명확히 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고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하되, 탈핵 등생태와 복지와 사회정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하자. 노동과 환경, 소수자, 소위 적녹보(적색·녹색·보라색, 각각 노동·생태·여성을 상징) 동맹을 맺자.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되, 용산참사, 강정마을, 4대강에서 싸우던 이들과 함께 하자. 멀리 보고,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운동을 하고 또 이를 통하여 조직을 확대하자. 한국인의 강한 공동체 지향성을 꼬뮨에 결합하고, 신명이 나는 싸움을 하자.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투쟁과 함께 노동현안을 사회적 쟁점으로 삼는 담론 투쟁을 하자. 그리하여 노동배제의 이 사회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자. 어두울수록 별은 밝게 빛나고 길은 멀리 열려 있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2012년 10월 8일 월요일

문재인 지지율 상승의 비밀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08일자 기사 '문재인 지지율 상승의 비밀은?'을 퍼왔습니다.
[이철희 칼럼] 안철수, 좌클릭이 필요하다

안철수 효과, 현재의 대선 구도를 주조하고 움직이는 힘이다.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인해 이른바 '박근혜 대세론'은 자취를 감추었다. 박 후보가 대세론을 구가하던 시점이 언제인가 싶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더 커졌다. 그 결과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의 상승하고 있다.

안철수 효과의 첫 번째 부분은 박근혜 후보의 대세론이 사라진 것이다. 안 후보는 중도와 무당파를 지지기반으로 삼는 포지셔닝(positioning)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로 인해 중도보수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도 상당수 안 후보의 지지층으로 묶여 있다. 만약에 안 후보가 없었더라면 이들은 대체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안철수는 잠재적 주자일때나 후보일 때나 야당 후보가 약할 때 박 후보의 확장을 막는 방어벽이다.

지난 7월에 발간한『안철수의 생각』에서 밝힌 입장에 비하면 9월 19일 출마 선언문은 일종의 우클릭으로 불릴 만한 것이었다. 성장과 안보를 말했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의 후보로 선출된 마당이니 그의 블루 오션은 중도와 무당파이다. 이들을 겨냥한 우클릭으로 인해 보수성향을 일부 가진 중도ㆍ무당파들이 안 후보 지지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곧 박 후보의 지지율 확장이 벽에 부딪히게 됐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역사인식 논란이 더해져 박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고, 결국 대세론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안철수 효과의 두 번째 부분은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늘어난 것이다. 안 후보의 출마선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즉 새누리당 후보보다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여론이 많이 늘어났다. 안 후보와 문 후보의 경쟁이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이기도 하지만 마침내 박 후보를 이기는 강자가 선수로 나섰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정권교체의 열망이 더 깊어지는 것이라 하겠다.

▲ '박근혜 대세론'이 꺼지고 '문-안 대세론'이 떠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홍준표 전 의원이 '박' 대세론에서 '문ㆍ안' 대안론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말을 했다. 박 후보가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하고 있다고도 했다. 여론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는 지적이다. 아직 박 후보가 앞서고 있긴 하지만 야권의 두 후보 지지율을 합하면 박 후보를 제법 앞선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 2007년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맞붙은 새누리당의 당내 경선에서 누가 이기는지가 대선의 핵심 관심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야권의 단일후보로 누가 되느냐가 핵심 포인트가 됐다. 이런 구도에서는 박 후보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자연스레 지지율도 정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철수 효과의 세 번째 요소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다. 야권 후보에 대한 관심이 주목을 받다보니 당연히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후보 정체성을 보면 큰 틀에서 안 후보나 문 후보는 비슷하다. 그 결과 안 후보가 1:1 대결에서 박 후보를 앞서니 그와 비슷한 문 후보의 지지율도 동반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1:1 대결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에게 밀리지 않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안 후보의 지지율 상승과 박 후보의 지지율 정체로 인해 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자 민주당 지지층이 이제 심리적 여유를 갖고 문 후보를 지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의 경우 자당의 문 후보도 박 후보에게 이기는 흐름이니 같은 값이면 문 후보를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것이 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문 후보나 민주당이 그리 흥분할 일은 아니다.

요컨대, 안철수 효과로 인해 심리적 안도감을 갖게 된 민주당 지지층이 문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문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 결국 안철수 효과의 수혜자는 안 후보가 아니라 문 후보라는 것이다. 안철수 후보로는 의외의 결과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민주당이 문재인을 후보로 선출한 순간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보는 게 옳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지금은 안철수가 후보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1:1의 대결에서 문 후보가 안철수 효과를 누리고 있다. 만약 안 후보가 없다면 과연 안 후보를 지지하는 층이 얼마나 문 후보 지지로 결집할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안 후보가 단일후보가 되었을 때보다 문 후보가 단일후보로 되었을 때 '잃어버리는 표'가 더 많다. 안철수가 후보로 존재할 때조차 이런 데 만약 그가 더 이상 후보로서 게임의 당자사가 아니라면 '잃어버리는 표'는 더 많아질 것이다.

여론조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문 후보의 상승세는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에 힘입은 바 크다. 안 후보의 지지율 하락은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에다 무당파가 부동층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이탈한 일부는 박 후보에게로 갔다. 만약 지금보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더 빠지고, 그에게서 이탈한 표의 일부가 박 후보에게로 옮겨가면 1:1 대결에서 박 후보가 우위에 서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안철수 효과가 사라지면 박근혜 대세론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문 후보가 각별히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지지율이 오른다고 배짱 튕길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이제는 안 후보와 문 후보 간에 차별화의 경쟁과 더불어 일체화의 공조가 필요하다. 서로의 지지층이 합일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컨대, 투표시간연장과 같은 이슈를 중심으로 안 후보 쪽과 문 후보 쪽이 함께 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투쟁의 경험을 통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한편 두 후보의 지지층이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두 후보의 지지층이 공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책대안이 비슷한 어젠더를 중심으로 공동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필요하다.

안 후보는 이제 선택의 지점에 서 있다. 안철수는 대선후보로의 등장 그 자체로 변화의 상징이 됐다. 그러데 박근혜, 문재인 등과 후보로서 경쟁하는 구도에 익숙해지다 보면 대중의 눈에 그의 존재가 상징하는 변화의 선명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제는 메시지와 정책, 그리고 리더십에서 변화의 차별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변화 대 안정 또는 정체의 구도가 희석되면 될수록 안 후보의 강세는 퇴색할 것이다.

조직이 없으니 안 후보가 믿을 것은 대중의 동원뿐이다. '안철수 구하기'의 대중적 운동이 일어나야만 기존 정당의 후보들과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를 좋아하기는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줘야겠다는 심리적 열정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후보는 계속 밀릴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선택을 해야 한다. 계속 중도ㆍ무당파를 결집시키는 데에만 집중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중도ㆍ무당파는 결집력, 충성도에서 정당 지지층에 비해 밀리기 때문이다.

또 안 후보가 고려해야 할 점은 중도(moderate)나 무당파(independent)라고 해서 기존 정당에 대한 선호가 아예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중도에서도 보수적 중도와 진보적 중도가 있다. 흔히 중도우파나 중도좌파로 불리는 것이다. 무당파라고 해도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을 찍어온 사람들, 즉 편향된(lean) 무당파가 적지 않다. 따라서 무당파라고 해서 정당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제 안 후보는 보다 분명한 좌클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정권교체 담론을 꺼내 든 것은 적절해 보인다.

문 후보의 지지율 상승은 잘못하면 '속빈 강정'이 될 수 있다. 민주당 지지층은 결집하지만 중도ㆍ무당층의 지지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이면 후보단일화 게임에선 이길 수 있지만 본선 경쟁력은 강화되기 어렵다. 여전히 문 후보는 약하다. 아직 안 후보를 더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층의 일부를 잡기 위해서나,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거나 그에 대한 지지와 이탈을 반복하는 중도ㆍ무당층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혁신이 필수적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친노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그의 몫이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안 후보는 민주당 쇄신을 간접적으로 촉구했다. 미흡하다. 보다 강하고 분명한 어조로 민주당 혁신을 압박했어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당에 대한 변화를 공개적으로 다시 요구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편 새누리당이 인적 쇄신이 수순에 들어갔다. 따라서 이제 공은 다시 문 후보에게로 넘어왔다. 이런 때에 어정쩡한 행보는 큰 손실을 낳을 것이다. 그의 선택에 따라 향후 경선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2012년 9월 3일 월요일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3) 정책변화, 진화냐 말 바꾸기냐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02일자 기사 '[새누리 후보 박근혜 뒤집어보기](3) 정책변화, 진화냐 말 바꾸기냐'를 퍼왔습니다.

ㆍ성장에서 복지로 ‘좌클릭’ 급변… 어떻게 납득시킬지가 과제

“규제를 풀어 세계의 사람과 자본이 한국으로 몰려들도록 하면 주가 3000 시대도 가능하다.”(2007년 4월11일 증권업협회 증권사 지점장 간담회)

“그동안 양적 발전이나 성장을 중요시해왔지만 이제는 질적 발전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2011년 12월4일 경향신문 김호기·이상돈의 ‘대화’ 인터뷰)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 사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정책은 급격한 변화의 궤적을 그린다. 5년 전 ‘성장 담론’은 분배 쪽에 초점을 둔 ‘복지와 경제민주화’ 담론으로 ‘좌클릭’했다. 작은 정부론을 앞세워 감세를 주장했던 박 후보는 조세부담과 복지 수준의 접점을 찾기 위한 국민 대타협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증세 논란에 불을 댕겼다는 평가, 자기 책임하에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국민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양존한다.

그는 2007년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한반도 대운하 정책’을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 변형판이라고 할 4대강 정책에는 입을 닫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종합편성채널 승인 등을 골자로 한 미디어법안은 ‘언론의 다양성’을 들어 반대하다가, 일부 내용이 손질되자 “이 정도면 됐다”고 찬성했다. 이에 힘입은 여당은 미디어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정치인의 철학은 ‘정책’과 그 정책을 담은 ‘법안’으로 표출된다. 

정치인이 내세우는 정책을 살펴보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지향점을 알 수 있다. 박 후보의 정책과 그 행보를 짚어봐야 할 이유다.

2007년 3월12일 한나라당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가 서울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장 담론 위주의 경제공약이 담긴 ‘근혜노믹스’를 발표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5년 새 급격한 정책 변화… 경제민주화 등 진보 의제 앞세워친박선 “박은 복지론자… DJ·노에 반발 2007년 성장 경쟁”

▲ 미디어법 원칙 없이 찬성, 사학법 땐 ‘색깔’ 덧씌우기도당시 원희룡 “박의 리더십, 과거 회귀적… 민생 등 주장 다 패션”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성장 담론이 지배했다. 이명박 후보는 ‘7% 경제성장, 10년 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골자로 한 ‘747 공약’을 내세웠다. 

박근혜 후보는 이에 맞서 이른바 ‘5+2 경제성장론’을 주장했다. 5%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고, 플러스 2%가 지도자 몫이라는 얘기다. 박 후보는 여기에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 공약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의 증세 주장을 ‘세금 폭탄’이라고 규정한 당시 한나라당은 규제를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와 감세 주장을 펴왔다. 당 대표였던 박 후보는 2005년 참여정부를 비판하면서, “현 정부는 규제를 더 강화하고, 세금을 더 많이 거둬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서민만 더 큰 고통에 처했다”며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무시하고 시장의 생리와 사람들의 본능을 무시하는 아마추어식 발상이 국민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는 2004년 8월4일 MBN에 출연해 “대한민국이 투자 기피국이 되고 있고 한국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는 좌파적인 정책과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2006년 1월2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저와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작은 정부와 큰 정부, 감세와 증세 어느 것이 선진 한국으로 가는 길인지 밝히고 국민 선택을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2012년 박 후보 입장은 크게 달라졌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복지’ 키워드를 자신의 것처럼 가져왔다. 생애주기별 복지정책 구상을 담은 사회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출마선언문에서 가장 눈에 띄게 내세운 것도 ‘경제민주화’ 구상이다.

박 후보의 변화는 2009년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언급한 뒤부터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지 못했고, 그 때문에 성장보다는 분배 쪽에 초점을 두도록 정책기조의 변화가 필요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2011년 3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회의에서 박 후보는 “성장이 전체 국민의 후생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는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며 “성장이 전체 후생에 골고루 도움이 되기보다는 일부에 편중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후보 변화의 시작은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한 200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때라는 분석도 있다. 한 친박 핵심 인사는 “돌이켜보면 박 후보는 ‘성장’보다는 ‘복지’를 중요하게 여겼지만, 2007년 경선 때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이 컸기 때문에 성장 경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박 후보가 과거와는 생각 자체가 많이 변했다”고 말했다.

‘감세’를 고집해오던 입장은 ‘증세 논의를 열어두자’는 쪽으로 변했다. 박 후보는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복지비용의 60%는 세출을 절약하고, 40%는 세입을 늘려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에 대한) 기대 수준과 (비용의) 조달 수준의 접합점을 찾겠다”며 “국민 대표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하고 국회에서 논의도 해서 우선 순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의 진화’냐, ‘말 바꾸기’냐

박 후보는 정책 변화를 ‘변화’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는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줄·푸·세에서 경제민주화로 바뀐 것은 경제상황이 바뀐 것이냐, 경제철학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박 후보의 대답은 이랬다.

“ ‘줄’은 저소득층, 중소기업 세율을 내리자는 것이고, ‘푸’는 규제의 불필요한 것을 풀어 국민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것, ‘세’는 법치를 바로 세워 공정거래와 경제 남용을 바로잡자는 부분이다.”

하지만 2007년 ‘줄·푸·세’를 주장할 당시 ‘줄’은 주로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에 혜택이 가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푸’는 “기업의 의욕을 북돋우고 기업의 자율을 최대한 확대하자”(서울 파이낸셜포럼 특강)는 규제 완화에 강조점이 찍혔다.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제적 지배력 남용에 있어서는 규제가 필요하지만 쓸데없는 규제가 많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세’이다. 2007년 박 후보는 “법 위에 떼법이 존재해서 폭력을 쓰고 우기면 된다”며 파업 등 노조 활동을 겨냥한 바 있다.

박 후보의 ‘입장이 변화한 것이 없다’는 발언은 외부적으로 “일제강점과 8·15 독립이 같다는 말”(노회찬 의원)이라는 등의 비판을 받았다. 

캠프 내부에서도 “경제 상황이 2008년 이후 급속하게 바뀌었고 2009년부터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꾸준히 말해왔으니 변화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캠프 핵심 관계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성장에서 복지로, 국가에서 국민으로 담론이 변화했다는 것이 박 후보 소신이라면, 이전에 했던 주장이 어떤 이유에서 어떻게 진화됐는지 설명이 곁들여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 실천 의지가 있느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4·11 총선에서는 당의 정강·정책에 담았던 경제민주화를 실천할 인물을 공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현재도 박 후보 주변에서는 “경제민주화는 선거전략인 측면이 많다. 지금 언론에 경제민주화란 의제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뜨니까 더 많이 부각됐는데 실제로 박 후보를 만나서 들어보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입장은 아닌 것 같다”(한 의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특히 박 후보보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경제민주화라는 의제에 동참해줄지도 의문이다. 원내외 40여명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을 꾸려 관련 법안을 시리즈로 내고 있지만, 모임 내부에서는 “당내 설득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 박 후보의 입장이 궁금한 정책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후보가 주장하거나 반대한 정책들 중 여전히 입장이 모호한 것들도 있다. 박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정책을 두고 당시 정책 청문회에서 “아버지 시절에도 검토했다가 폐지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대에도 그랬다. 그래도 계속 추진할 것이냐”고 묻는 등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대운하 정책의 변형인 4대강 정책을 두고는 별다른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분명히 대운하는 반대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부에서 4대강은 대운하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분명히 밝혔으니 믿어야 할 것”이라며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만 말했다.

‘열차 페리’ 공약도 설명이 없다. 한·중 열차페리 정책은 복합화물운송 시스템으로 육상에서 화물을 실은 열차를 고스란히 페리에 실어 수송하는 방식을 말한다. 박 후보 쪽에서는 당시 중국 옌타이항~다롄항 구간 시험운행 등 증명된 사례가 있고 기존 중국 횡단철도와 연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정책’에 비해 현실성이 높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현재 공약에서 이 부분은 빠져 있다.

박 후보가 납득되는 설명 없이 입장을 바꾼 사례로는 2009년 미디어법도 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종편 승인 등을 골자로 미디어법 제정을 추진했다. 박 후보는 “제대로 된 미디어법이 되려면 미디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고 독과점 문제도 해소돼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강행 처리 땐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다 이런 입장을 밝힌 지 불과 일주일여쯤 지나 언론 관련 법안이 본회의에서 직권상정으로 처리될 당시 박 후보는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강행 처리된 법안은 구독률 20% 이상 신문사의 방송 진출을 불허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선·중앙·동아일보의 구독률은 그보다 낮았고, 결국 이들 신문사의 종편은 출범됐다.

박 후보 쪽에서는 “그나마 25%였던 기준을 박 후보가 버텨 20%로 낮췄다”는 설명뿐이었다. 당시 박 후보 측근 사이에서도 “박 후보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 정치에 타격을 입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앞서 대표 시절인 2004년 말부터 여야 대치의 주요 법안이었던 신문법 개정안에 반대한 박 후보는 “시장점유율 규제 조항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조항”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 때는 ‘국제적 기준’과 ‘자유시장 경제’를 앞세웠던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사립학교법 개정에도 박 후보가 깊숙이 개입했다. 2005년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주도로 개방이사제 도입과 인사위원회 권한 강화, 부패사학에 임시이사 파견제 등을 내용으로 한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박 후보는 이른바 ‘사학법 투쟁’을 하며 거리로 나갔다.

박 후보는 당시 사학법에 ‘색깔’을 입혔다. 그는 “그들(정부와 여당)의 목표는 비리척결이 아니라 전교조에 사학을 넘겨줘서 지배구조를 바꾸고 아이들에게 특정 이념을 주입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 2006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후보는 “이번에 날치기한 사학법은 전교조가 10년 전부터 주장한 법이다. 이 법의 독소조항인 개방형 이사제, 임시이사제, 교사의 노동운동 허용 같은 것은 모두 전교조 숙원 사업이다. 전교조가 사학의 경영에 간섭하고 갈등을 일으켜 이사회를 장악하고 학교를 접수하는 길을 터 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박 후보를 향해 원희룡 당시 최고위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이념적 편견은 병”이라고 밝혔다. 2007년 개방형 이사제 추천 조항 등 일부 내용을 수정해 사학법이 재개정되긴 했지만 여야 모두 이 법안에 불만을 갖고 있다.

다시 원희룡 전 최고위원 말로 돌아가보자.

“박 대표가 사학에 개방이사를 넣는 것은 빨갱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김정일도 만나고 이념적 지평이 넓다고 말하는 것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이 아니다’라는 이야기와 같다. 자기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박 대표의 리더십 밑바닥은 과거회귀적·대결적·관념적 이념 틀이고, 민생 등 나머지 주장은 다 패션일 뿐이다.”

실제 보수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직접 면담한 이가 박 후보다. 박 후보는 자서전에서 2002년 5월13일 백화원 영빈관 회의실에서 이뤄진 김 위원장과의 독대에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금강산댐 남북 공동조사단 구성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재 박 후보는 대북·안보 정책에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로 설명되는 포용정책과 압박정책의 중간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6·15 공동선언, 10·4 선언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이지선·강병한 기자 j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