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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1일 금요일

'좌클릭' 때문에 패배? '우향우'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10일자 기사 ''좌클릭' 때문에 패배? '우향우' 민주당에 미래는 없다'를 퍼왔습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12) 민주통합당의 패인, 진보의 지표와 재구성

민주통합당의 패인과 진로

이번 18대 대선에서 국민은 할 만큼 했다. 추운 날씨에도 75.8%인 3072만 명이 투표장으로 달려갔고, 민주통합당의 연이은 졸전과 패착 속에서도 48%, 1469만 명이 박근혜 후보에게 반대표를 던졌다. 80%가 현 정권을 반대하고 60%가 정권교체를 바라고, 99%가 생존위기에 있는 상황에서 진 것이기에, 필자는 18대 대선의 패인이 전적으로 민주당에 있으며 이를 제대로 성찰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이 당은 곧 '호남당'으로 전락하리라 확신한다. 한 사람의 대통령 당선이 몇몇 노동자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비상시국'에서 대선의 패인을 분석하고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진보의 지표와 대안을 모색해본다.

대선의 패인에 대해 해몽 식,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 분석이 난무하는데, 필자는 지난 총선 때부터 당시 야당의 압승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으로는 반드시 진다는 내용의 글인 "민주통합당, 새로운 프레임을 짜라"라는 칼럼을 (프레시안) 3월 1일자로 기고하였으며, 18대 대선에서는 (한겨레신문) 12월 3일자에 "새로운 프레임 없이는 야권 승리 어렵다", (프레시안) 12월 13일자에 "과거의 박근혜가 아닌 미래의 박근혜를 얘기하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거기서 제기된 문제제기와 대안은 무시되고 결국 민주통합당은 양 선거에서 졌다.

대선 전의 객관적 상황에 대해 돌아보자. 860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한다.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57.6%가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고, 이도 여의치 않아다단계 판매로 나선 415만 명 가운데 4분의3이 단 돈 1원도 벌지 못했다. 공공기관과 지방 정부를 합한 국가부채는 938조 원에 이르며, 아파트 전세 시가총액 908조 원을 포함한 실질적인 가계부채는 2000조 원에 달하는데, 집값은 하락하고 전세와 물가는 폭등하고 교육비 부담은 가중됐다. 국민의 절대 다수가 생존위기에 직면해 있고 미래는 불안하다. 50대도 대개 자영업이나 비정규직에 종사하면서(상용 근로자는 38.6%) 간신히 마련한 집을 줄여가며 교육비, 혼수비, 노후자금으로 활용해왔는데, 부동산은 폭락하고 빚은 늘어만 간다.

반면에 정권은 자본과 유착관계를 맺고 기득권에 유리한 정책만 고집하였으며 대통령 측근이 모두 구속될 정도로 부패했다. 정권은 70%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 공사를 강행했고, 쌍용자동차 사태에서 잘 드러나듯 부당한 정리해고와 부패와 불의에 항의하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정의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는 주로 가진 자의 편이었고 검찰은 스스로 개혁을 이야기할 정도로 썩었는데, 이를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은 철저히 통제당하고, 야당은 제대로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진보는 분열되었고, 노동조합 또한 거의 괴멸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국민을 지배한 것은 치끓는 분노와 끝을 알 수 없는 불안이다. 결국 불안을 잘 이용한 여권은 승리하였고, 분노를 잘 조직하지 못한 야권은 패배했다. 대중의 분노는 대선을 기점으로 좌절로 바뀌었다.

총선 직후 좌클릭을 해서 졌다는 민주당의 총선 평가를 보고, '대선도 지겠구나' 생각했다. 대선 이후 또 다시 좌클릭론과 경상도의 인구가 전라도의 1.6배이고,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유권자가 1618만여 명으로 30대 이하 유권자인 1547만여 명을 넘어서기에 진보가 이길 수 없는 구조라는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펴는 것을 보니, 다음 선거가 걱정됨은 물론 민주통합당은 해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단일화의 실패, 단일화에 매몰되어 골든크로스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함, 선거 막판에 투표율에 집중하여 정책대결을 벌이거나 '왜 문재인인지' 보여주지 못함, 콘트롤 타워가 없음, 여성성 비하 발언으로 인한 여성 표의 상실, 리더십을 갖춘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 초점을 맞춘 광고의 실패도 패배의 원인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패인은 국민 대다수가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불안'과 '분노'가 지극한 상태에 있음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이를 새로운 프레임의 창출과 정책으로 전환하지 못한 데 있다.

 
▲ 18대 대선 당일은 지난 19일,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무거운 표정으로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새로운 프레임을 창출하지 못하고서 진보가 선거에서 이긴 전례가 없다. 그는 망나니 부시 부자에게 민주당이 두 차례나 패배한 원인을 그에서 찾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린다. 여당의 정책이 아무리 문제가 많더라도 그를 비판하는 순간 그 프레임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민주당은 선거 내내 네거티브 프레임에 몰두했다. 유신정권과 연결시키려다 효과가 크게 없자 '이명박근혜' 공동심판론으로 불을 붙였고, 연일 박 후보에 관한 비리성 의혹들을 폭로했다. 하지만, 이미 박근혜 후보는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차별화를 단행하였고 대다수 국민들도 그리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권심판론을 외치니, 상대편은 나는 상관이 없다 하였고, 민주당은 왜 문재인이 당선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유신 독재에 대한 비판 또한 헛다리를 짚기는 마찬가지였다. 조희연 교수의 지적대로 역설적으로 박정희 향수는 박정희 독재정권과 맞서서 싸웠던 민주세력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사독재정권 때 박정희 향수는 없었다. 국민은 경제 위기와 불안 속에서 박정희를 그리워하고 있는데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안티로서 유신독재 비판만 했다. 국민은 생존위기를 맞아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주지 못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을 구성하고 있는데 민주주의만 말하니, 국민들은 아마 밥그릇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도 심판하였음을 민주당은 뼈저리게 성찰하여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 속에서 생존위기에 처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한 국민에게 노무현 정권은 대안이 아니었다. 만약 노무현 정권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단행했다면 압도적 다수의 국민들이 그의 분신인 문재인을 지지하였을 것이다. 진보· 노동 진영 또한 비정규직법을 제정하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노동자를 강력하게 탄압한 제2의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기 어려웠다. 대선을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의 프레임을 짜고, '과거 대 미래, 절망 대 희망, 낡음 대 새로움'의 구도로 몰고 갔어야 했다.

민주통합당은 대선정국을 정책대결로 끌고 가지도, 차별적인 정책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우클릭하면 중도의 지지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민주통합당 보수파와 주변 학자들의 근거 없는 추측과 진단이다. 여러 실험에서 입증되었듯, 이념적으로 중도인 유권자는 없다. 그들은 정책에 따라 진보적이든 보수적이든 선택할 뿐이다. 16대 대선 때처럼 한 사람이 수백 통의 문자를 보내도록 진보의 열정을 결집하고, 서울시장 선거 때 무상급식으로 전선을 형성하여 승리한 것처럼 중도의 아주머니들도 달려갈 혁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여야 했다.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수사적으로나마 선점하였는데, 문재인 후보는 노상 뒷북만 쳤고 그렇게라도 나온 정책이 그리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50%가 아니라 100% 정규직화, 입시철폐와 대학평준화와 같은 과감한 교육개혁, 10년 동안 성실하게 주택부금을 납부한 이에게는 무조건 공공주택을 주는 제도 등을 정책으로 내세워 그 정당성과 현실적 가능성 논쟁으로 판을 끌고 갔어야 했다.

계급전쟁으로 가지 않고 세대전쟁으로 간 것도 치명적인 패인이다. 민주통합당은 '젊은이=진보', '중장년층=보수'로 좌단하고 젊은이의 투표율만 높이면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세대전쟁으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세 가지를 잃었다. 계급에 바탕을 둔 진보적 의제를 설정하지 못했고, 서민의 불만과 분노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중장년층의 반발을 불렀다. 극단의 신자유주의 모순에 처해진 서민들에게 그들이 생존위기에 놓인 원인을 깨닫게 하고 그들을 그런 삶으로 몰아놓은 자들이 바로 여권의 기득권 세력임을 분명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대중의 분노는 100% 민주당의 지지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인데 이를 잘 조직해내지 못했고, 대중의 불안 또한 민주당의 지지로 연결시킬 수 있었는데 양자 모두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지도력 상실, 문재인 후보의 모호한 행보,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에 대한 설명 부족 등으로 분노한 대중은 과연 문재인 후보가 자신들의 분노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통치를 할 수 있는지 의심을 품게 됐다.

다수의 대중들은 그래도 문재인을 찍자고 투표소를 찾았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기권했다. 대중은 안정과 여당을 동일시하기에 대중의 불안에 대해선 여당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대중의 불안을 선점하는 자'가 지지를 얻는다. 대중의 불안이 기득권의 수탈에서 온 것임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그를 안정으로 이끄는 것은 선별적 복지나 생색내기용 경제 민주화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와 증세를 통한 경제 민주화 정책임을, 복지를 통하여 외려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음을 충분히 알렸어야 했다.

더구나 대선은 5년의 미래를 다스릴 지도자를 선출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미래의 문재인'을 보여주고 '미래의 박근혜'를 비판해야 하는데 '과거의 박근혜'만 비판했다. "현 정권이 고환율정책만으로 여러분에게 빼앗아 부자들에게 준 것이 174조 원에 달한다. 박근혜 후보의 정책을 보면 이것이 재발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대중의 분노와 미래의 박근혜를 연결시키는 전략을 텔레비전 토론 때라도 구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여권은 총력을 다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는데, 민주당의 국회의원과 당원은 열정을 다하지 않았다. 보수언론의 압도적 우위 속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들의 동맹 안에서만 맴돌았다. SNS에서 벌어진 진보적 담론은 그 바깥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세력은 세련된 전략, 경제민주화에 대한 선점 및 온정적인 복지정책을 통하여 이명박 정권이 만든 보수우파의 위기를 극복하고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했다.

필자는 지금도 여론조사에서 계속 지고 있는 데도 왜 문재인 후보가 과단성 있게 판을 바꾸고 혁신적인 정책을 펼치는 파이팅을 보여주지 못하였는지, 토론에서 왜 더 과감하거나 공격적이지 못하였는지, 압도적인 승리 조건에서도 정권심판론을 펼쳐서 총선에 지는 '기적'을 연출했는데도 왜 그것을 대선에서 반복했는지,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정치쇄신을 열망하는 자들인데 왜 친노의 일선 후퇴를 비롯한 당의 혁신을 감행하지 않았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민주당 지도부나 문재인 후보의 판단력이나 결단력이 상식 이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선거는 졌고, 정치 쇄신을 열망하는 안철수 현상과 권력의 횡포와 불의에 분노하는 '도가니 현상', 대다수 국민을 생존위기로 던져놓은 신자유주의 모순은 남아있다. 박근혜 정권은 선별적이고 온정적인 복지를 펼치면서 노동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할 것이다. 노동의 저항을 받겠지만 서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대중의 자발적 동의와 설득에 바탕을 둔 강력한 헤게모니를 획득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민주당이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하려면, 박근혜 정권과 차별성을 드러내야 하고 이는 새누리당이 할 수 없을 정도의 혁신적인 정치쇄신과 좌클릭 뿐이다. 모든 공천권을 국민에게 주고, 호남에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모순을 극복하는 정책을 지향해 그 모순에 던져진 99%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불의에 분노하는 대중의 분노를 조직하여 검찰 개혁을 비롯하여 모든 정의롭지 못한 제도와 정책을 개선하는 운동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의 자유주의 우파들은 전면에서 후퇴하고 자유주의 좌파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압도적인 헤게모니를 획득한 박근혜 정권에 5년 내내 끌려다니며 새누리당을 일본의 자민당과 같은 공룡여당으로 만들 것이다. 중도 보수이지만 상대적으로 청렴하고 정치쇄신을 한 안철수의 당이 생길 경우 민주당 중도파는 이 당에 흡수될 것이며, 다수 대중 또한 그 당의 지지로 전환할 것이다. 더구나 진보 정당이 단일화 할 경우 민주당은 제3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진보의 지표와 재구성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 진영은 어떤 지표를 설정하고 재구성할 것인가. 진보 진영의 입장에서 볼 때 '박근혜 대 문재인', '신자유주의 보수 세력 대 신자유주의 자유주의 세력'의 대결은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김대중 정권에서 정리해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노무현 정권에서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노동자를 탄압하였기에, 누가 되든 신자유주의 정권이 20년으로 연장되는 것이었다. 다만, 박근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정책을 선점하면서 민주당이 좀더 좌클릭했고, 그 틈으로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완화' 대 '상대적 신자유주의 규제 강화'의 블록이 형성되었다. 이것이 진보 진영에 약간이나마 기대를 걸게 했는데, 결국 대선의 패배로 그 기대조차 사라져버렸다.

대선 개표 직후 고(故) 최강서 열사 등 노동자들이 연이어 네 명이나 자살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투쟁하던 활동가였다는 점이다. 누가 이들을 죽였는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라 '극단의 이익'을 위해 회계조작까지 해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수백억 원의 손해배상을 강요하여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무력화하는 자본, 이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늘 자본의 편만 들어주는 국가, 노동자들을 과격분자나 경제혼란범으로 매도한 보수언론, 이들의 문제를 외면한 시민과 야당만이 아니다. 분열된 진보, 희망을 보이지 않는 노동운동이 그들을 더욱 절망시켰고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

권영숙 교수의 지적대로, 노동배제의 사회, 노동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노동을 외면하는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사회적 고립'이 첫째 문제이고, 그런 노동계급의 자기 목소리를 만들어 주체화하고, 노동현안을 사회의 중심적 쟁점으로 삼아 이 나라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노동주체, 나아가 노동자의 대중적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의 무능함과 계급적 성격의 모호함이 둘째 문제이다. 한국은 갈수록 파업 빈도가 줄어들지만 파업을 시작하면 장기파업이 된다. 이는 노동자들이 비타협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자본이 비타협적이고 국가가 일방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고, 보수-자유 양당이 노동배제적 정치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야금야금 노동 배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되고, 국가와 자본, 대형교회, 보수언론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카르텔과 노동 사이의 권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칭이다. 진보는 분열되고 정당성의 위기에 직면했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10%도 되지 않는 사람만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는데, 이 또한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로, NL과 PD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진보·노동진영은 어떻게 길을 낼 것인가.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길은 늘 막다른 곳에서 열린다. 파괴는 창조다. 절망의 극단에까지 나아가서 뼛속까지 성찰하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지금이라도 정파주의, 관료화, 종업원 이기주의, 구태의연함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가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임을 직시하고,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굳건히 연대한다. 금융과 토지, 공장을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유화, 노동이 진정한 자기실현인 사회, 노동이 자본을 통제하는 세상을 향한 굳건한 목표 아래 모든 정파와 갈등을 녹여내야 한다. 노조 간부들의 관료화를 극복하고 아래로부터 활발한 소통을 하며, 정당이든 조합이든 절차적 민주주의와 내용의 민주주의를 확보한다. 종업원 이기주의를 일소하고 끈끈한 동지애와 굳건한 투쟁의지를 갖고서 민주 노조 깃발 아래 연대한다. 김혜진 정책위원장의 제안대로, 한 사업장의 투쟁이 그 사업장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싸우자. 단순히 노동악법을 개선하는 방어적 자세에서 노동배제를 심화하고 노동자의 죽음과 장기사업투쟁을 야기하는 노동법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싸움을 하자.

머리는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은 발을 이기지 못한다. 희망은 노동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노동자들, 집회와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시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99%로부터 꽃필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엔엘(NL,민족해방) 중심의 진보 운동의 종언을 의미한다. 진보정의당은 유시민 세력과 단절하지 않는 한, 진보의 대열에 설 수 없다. 쌍용차에서, 현대자동차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진보신당,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 노동전선 등을 아울러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을 제외한 진정한 진보좌파정당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혁신을 통해 다시 구성된 민주노총이 결합해야 한다. 이제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로 전선을 명확히 하고 노동을 중심에 놓고 계급적 성격을 명확히 하되, 탈핵 등생태와 복지와 사회정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를 결합하자. 노동과 환경, 소수자, 소위 적녹보(적색·녹색·보라색, 각각 노동·생태·여성을 상징) 동맹을 맺자.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되, 용산참사, 강정마을, 4대강에서 싸우던 이들과 함께 하자. 멀리 보고, 지역에서부터 풀뿌리 운동을 하고 또 이를 통하여 조직을 확대하자. 한국인의 강한 공동체 지향성을 꼬뮨에 결합하고, 신명이 나는 싸움을 하자.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투쟁과 함께 노동현안을 사회적 쟁점으로 삼는 담론 투쟁을 하자. 그리하여 노동배제의 이 사회를 끝장내고 진정으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자. 어두울수록 별은 밝게 빛나고 길은 멀리 열려 있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2013년 1월 6일 일요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이글은 한겨레21 2012-12-31일자 제942호 기사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밭’이 좋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4월 총선과 12월 대선 패배… 파도가 아니라 조류의 흐름을 살펴본 ‘2012 야권 멸망의 해’

졌다. 야권이 이기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2012년 두 번의 선거에서 모두 졌다. 야권 지지자가 받은 충격이 크다. 아무리 밥을 먹어도 남는 불가해한 공복감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숟가락을 들었다가 밥을 남기고 일어선다. 축젯날 캠프파이어 장작처럼 타던 정치적 열기는 12월20일부터 보이지 않는다. 2010년과 2011년의 선거 승리를 기억하는 야당 지지자들은 2012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생각한다. (한겨레21)은 지난 5년 동안 야권의 승리와 패배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개별 선거운동의 잘잘못을 따지는 정치공학보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를 짚고자 했다. 파도의 움직임이 아니라 조류의 흐름을 찾고 싶었다. 진보언론 스스로 패배의 일부였으므로, 그 작업은 타고 남은 장작을 마취하지 않은 맨손으로 헤집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냥 만졌다. 장작 잿더미 아래 불씨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위해서. _편집자

이겨야 정상이었던 건 1972년 대선의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대한민국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다. 1960년대는 진보와 대중운동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냉전이 시작됐다. 자유와 진보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비난받았다. 1968년부터 여러 민권운동이 벌어졌다. 먼저 흑인 민권운동. 진보언론 대접을 받는 (뉴욕타임스)가 처음으로 흑인 기자를 뽑은 게 1945년이다. 흑인들은 1965년에야 투표권을 획득했다. 도처에 인종차별이 상존했다.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여성운동. 최초로 선거권 연령이 18살로 낮아져 젊은 유권자가 변수로 여겨졌다. 베트남전 반대를 명확히 내건 민주당 내 진보파 조지 맥거번이 경선에서 승리해 대선 후보로 뽑혔다. 가수 존 레넌 등 많은 진보적 명망가들도 민주당을 지지했다. 맥거번은 대패했고 보수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재선에 성공했다. 닉슨은 이후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cy)이라 비판받았다. 미국 민주당과 시민사회는 예상치 못한 선거참패에 충격에 빠졌다. 진보적 정치 에너지도 급격히 사그라졌다.

» 12월20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고개를 수그렸다. 상처는 깊고 화두는 오래갈 것 같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시민들의 진보적 에너지→야권 대선 패배’는 정확히 2008~2012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개별 선거 캠페인 대신, 주요 사회적 사건과 선거를 조금 높은 산에서 관찰하면 뚜렷해진다. 관찰은 2007년의 잿더미에서 시작되어야 옳다. 2002년 대선에서 1201만4277명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더 왼쪽에 있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95만7148표를 받았다. 5년 뒤 참여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진보는 매력을 잃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688만6802명만 진보개혁 후보에게 표를 줬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1149만2389표를 얻었다.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찍은 355만9963명까지 고려하면, 압도적인 보수의 귀환이었다. 2008년 총선에서도 89석(범진보개혁) 대 184석(보수)으로 참패했다. 자민당이 수십 년간 장기 집권했던 일본처럼 ‘보수정치의 고착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야권이 승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야권이 분열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완벽하게 단일화되었다. 이것은 구조나 조건의 문제라기보다 선거를 승리했어야 할 야권이 못해서 진 것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여전히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자, 정당인, 정치부 기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우려에 반대되는 사건이 잇따랐다. 정치적 에너지 분출이라 부를 만하다. 2008년 5월부터 수개월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이어졌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조차 시민들의 자발적 정치 에너지에 개입하지 못했다. 정치적 에너지가 분출되는 사건이 더 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전국에서 5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추모했다. 2011년 가을부터 2012년 여름까지는 ‘안철수 현상’이 벌어졌다. 정치 신인 안철수 전 안랩 대표가 유력한 대선 후보로 지지를 받았다.
야권은 정치 에너지의 덕을 봤다. 2010년 6·2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겼다. 야당은 왼손에 ‘무상급식 등 복지’라는 비전과 오른손에 ‘야권 단일화’라는 전술을 들고 승리했다. 거기까지였다. 정작 이겨야 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졌다.
왜 졌을까? 지금 한국 진보개혁 세력처럼, 1972년의 미국 민주당도 답을 알지 못했다. 맥거번 자신도 대패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대선 패배 직후 인터뷰에서 르포 작가 헌터 톰슨이 “득표 차이가 왜 그렇게 컸는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묻자 맥거번은 “여전히 패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당대 어떤 정치학자와 언론도 설명하지 못했다. 공화당 닉슨이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획기적으로 받아들인 점, 반전이 이슈인 상황에서 공화당이 어렴풋하게 베트남전 종식을 내건 점, 진보의 시대에 침묵했던 보수의 반격, 맥거번에 패배한 다른 민주당 정치인의 배신 등이 근거로 거론됐다. 물론 닉슨은 당선 직후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기는커녕 북폭을 강화했다.
한국의 야권은 왜 2012년에 몰락했을까? 진보적 에너지가 진보개혁적 정당의 승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결과는 분명하다. 민주통합당의 공천 기득권 논란, 통합진보당 사태, 김용민 막말,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 파열음 등 일련의 사건도 분명 눈에 띈다. 에너지와 제도정당 시스템 사이 회로 어디가 끊어진 것일까.

담론만 있고 디테일은 없고

일단 2012년 총선·대선 모두 야권이 이기는 게 자연스러웠다는 의견이 많다. 속칭 밭이 좋았다는 말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대선 전 정권이 바뀌는 게 필요하다는 유권자 여론조사가 정권이 안 바뀌어도 좋다는 의견보다 많았다”며 “야권이 승리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야권이 분열된 것도 아니고 사실상 완벽하게 단일화되었다. 이것(대선 패배)은 구조나 조건의 문제라기보다 선거를 승리했어야 할 야권이 못해서 진 것”이라고 말했다. 고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의 진단도 비슷하다. “2010년 지방선거를 전후로 무상급식 등 진보적 의제와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대중적 에너지가 선거 안으로 들어오자 선거 지형이 바뀌게 되었다. 4·11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그 에너지가 활발하게 작동했던 것 같은데 총선과정에서 그게 꺼졌다. 총선도 그렇고 대선도 정치세력(야당)의 전략적 실패가 크다.”
제도정당이 에너지를 이용하려고만 했을 뿐,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점도 공통적으로 지적된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생경제 대책을 전면에 부각시켜야 하는데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다투는 사이에 ‘민생이 정치 혁신이다’라고 치고 나간 건 바로 박근혜 후보였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대표는 패배 이유로 △붉은색 로고 채택 등 새누리당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혁신을 한 것 △야당은 담론만 있을 뿐 디테일이 없는 점 △민주당 당내 경선 후유증이 치유되지 않아 당이 움직이지 않은 점 △4·11 총선 때 김용민 막말과 대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지나친 언행으로 보수표 결집을 부른 것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된 중도층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 점 등을 거론했다.
‘밭이 변했다’는 반론도 있다. 최태욱 한림대 교수는 12월20일치 대담에서 “정치 지형이 바뀐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 시대다. 50~60대가 늘어가고 20~30대는 적다. 확대해석하면 보수가 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혼자 단독과반을 하거나 집권할 수 있다는 환상을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훈 대표나 고원 교수와 다른 전제 위에 서 있다.
야권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비슷하고 야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사회, 안철수 지지세력 등이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원론적 지적이 나온다. 고원 교수는 “민주당, 안철수 캠프, 진보정당, 정당 바깥의 진보적 시민사회를 다 아울러도 (야권의) 정치적 역량이 여전히 약한 것 같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리버럴들이 출현한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정치의 이행기라 민주당 사람들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리버럴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대단히 심각한 총체적인 위기라고 봐야 한다.”-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야권이 혁신했구나’라는 믿음 줘야

패배 뒤에는 늘 노선 논쟁이 뒤따른다. 이번에도 그럴 게다. 당 노선을 중도로 틀자는 견해든, 선거 전술 차원에서 중도층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든, ‘중도’ ‘리버럴’ ‘자유주의’ 등의 단어가 한동안 야권의 화두가 될 것 같다. 일본식 ‘자민당 1.5당제’(자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해 야당이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정치 지형)에 대한 우려가 다시 나온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12월21일치 (한겨레) 대담에서 “한국 민주주의의판을 바꾸지 않는 한 (야권의 대선 패배가) 되풀이될 것이다. 보수가 압도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집권이 1.5정당제로 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새로운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의 등장을 강조했다. “안철수 현상이 새로운 형태의 리버럴들이 출현한다는 걸 보여줬다. 기존 진보의 고정관념에서 유연한 북핵관, 경제관을 가진 그룹들이 부분적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정치의 이행기라 민주당사람들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리버럴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대단히 심각한 총체적인 위기라고 봐야 한다.” 고원 교수는 “(야권이) 진보와 개혁이 포괄하지 못하는 세력이나 대중의 반감과 비토정서를 대선에서 해소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러나 4·11 총선 이후에도 그렇듯 ‘중도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석해서는 안 되고 자기 혁신의 문제를 해결해서 사람들에게 ‘정말(야권이) 혁신했구나’라는 시그널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겨야 했던 건 미국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게 하나 있다. 맥거번은 닉슨에게 선거인단 기준 520 대 17로 대패했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대통령의 득표율 차이는 3.6%(약 108만 표)다. 박상훈 대표는 “더 걱정은 진보 쪽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이길 거라 생각해서 진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 상태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이게 문제가 뭐냐면 선거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패배의식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현실은) 보수 우위 체제가 아니고 보수가 다수가 아닌데 (패배주의가) 진보적 유권자들을 너무 불활성화 상태로 만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고원 교수도 “진보개혁 세력이 성찰·쇄신해서 정비하면 미국 진보세력이 2004년 패배 뒤 2008년 정권 교체했던 것처럼 (야권이) 좋은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보수 진영의 정치적 미래가 진보에 비해 더 밝은 게 아니다”라며 ‘한국형 1.5당 체제’ 가능성을 잘라 비판했다.

이길 거라 믿었는데 진 선거, 상처 더 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살아 있는 것만이 위로가 된다. 지식인들의 해석은 아직 야권 유권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잔치 뒷날 불 꺼진 캠프파이어 장작 주변을 지나치는 사람처럼,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고개를 떨구고 서성인다. 장작 아래 온기가 남아 있는지는, 시간이 가르쳐줄 것이다.

참고 문헌 (미국사산책 10)(강준만·인물과사상사), (72년 대선의 공포와 증오)(Fear and loathing: on the campaign trail 72·헌터 톰슨·워너)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2012년 12월 20일 목요일

패배한 문재인… 훈장이자 멍에가 된 친노, ‘정권 교체’ 문턱서 좌절


이글은 경향신문 2012-12-20일자 기사 '패배한 문재인… 훈장이자 멍에가 된 친노, ‘정권 교체’ 문턱서 좌절'을 퍼왔습니다.

ㆍ안철수 지원으로 막판 상승세 탔지만 역부족

‘운명은 여기까지였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그가 현직 의원으로 향후 어떤 정치 행보를 보일지는 모르지만 다시 그에게 큰 기회가 주어질 지는 미지수다. 

문 후보는 19일 밤 11시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서울 영등포 당사로 나와 기자회견을 열고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송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저의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모두 다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18대 대선에서 패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왼쪽)가 19일 밤 서울 영등포 당사로 가기 위해 서울 종로구 구기동 자택을 나오던 중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 후보의 정치 역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떼어놓을 수 없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전력으로 인해 판사를 포기하고 변호사의 길을 택한 뒤 부산으로 내려갔을 때 평생의 친구 노무현을 만났다.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고, 노동·인권·시국 사건을 도맡아 변호했다. 

노 변호사가 1988년 13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두 사람은 잠시 이별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문 후보는 노 후보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을 맡았다. 

청와대에 들어간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맡았다. ‘왕수석’으로 불렸지만 5년간 국정운영 경험은 영광만큼 상처도 많았다. 2007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뒤엔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으로 여론이 악화됐다.

정권이 끝나고 친구를 따라 고향으로 낙향한 문 후보는 조용히 초야에 묻혀 지냈다. 2009년 그의 운명을 바꾼 대사건이 일어났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발표하고 장례를 주재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조용한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1년 정치에 입문했다. 문 후보는 올해 4·11 총선에 부산 사상에서 출사표를 내고 당선됐다. 부산·경남 지역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문 후보는 지난 6월 지지자들의 기대를 현실로 받아들여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꿔왔던 사람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5년을 참을 수 없어 나왔다.” 

당내 대선 경선 초기부터 불거진 모바일 투표 경선 문제로 후보들의 감정 싸움이 비화됐고, 문 후보와 친노 진영은 또다시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본선은 더 치열했다. 9월16일 민주당 후보가 됐지만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 후보가 곧바로 공식 출마해 야권 후보 자리를 놓고 그와 맞섰다. 둘은 단일화 방식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협상 테이블은 안 후보의 사퇴로 개운치 않게 마무리됐다.

결승전에서는 박근혜 후보를 향한 공동전선으로 안 전 후보와 함께 유세를 했다. 상승세를 탔고, 야권의 지지층과 부동층 일부도 결집했다. 

하지만 결국 문 후보의 ‘운명’은 대통령 당선까지 연결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출마선언 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정치초년병 문재인은 불꽃같은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부산 사상 지역구 국회의원 문재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향후 전개될 민주당의 정계개편에도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제 또 다른 운명을 맞게 된 셈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30일자 기사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를 퍼왔습니다.

ㆍ올 대선, 2002년과 닮은꼴

역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주로 야당이 즐기는 메뉴였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의 ‘DJP 연합’이 본격적인 시초다. 이어 2002년 16대 때에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두 차례 모두 단일화 후보가 승리했다. 

이번 대선도 2002년 대선과 양상이 비슷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그해 4월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지방선거 참배와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15%대까지 떨어졌다. 추석을 앞둔 9월17일 한·일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노 후보의 지지율을 상회했다. 

민주당에서는 후보 교체론이 제기됐고, 10월4일 반노·비노파 의원 34명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을 발족시켰다. 노 후보는 10월31일 “경선을 정식 제안해오면 단일화를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11월3일 정 후보 측에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11월9일 공식 협상이 시작됐다. 17일 세부 절차가, 22일 최종 협상안이 타결됐다. 24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밤 12시 결과가 발표됐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였다. 후보 등록일인 25일 바로 직전이었다. 

당초 정 후보 측은 협상을 통한 담판을, 노 후보 측은 당원이 50% 참여하는 국민경선안을 꺼내들어 평행선을 그었지만 노 후보 측이 여론조사안을 수용했다. 다만 여론조사 세부안 확정에 보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지금보다 늦어지면 단일화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2002년에 비해 이념적 차이가 적은 데다 일정도 늦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성공한 단일화’였던 1997년 DJP 연합은 호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이자, 중도를 겨냥한 ‘개혁과 보수’의 이념 연합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패하면서 자민련과 정책공조가 시작됐다. 1997년 7월 공식 협상에 착수했고, 9월 김대중 총재 비자금 사건이 터지며 수세에 몰리자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11월3일 양 총재가 회동해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동거 정부가 처음 실험됐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독자 출마했다. 11월18일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문 후보가 거절했다. 11월26일 세 후보가 모두 등록하고 대선운동에 돌입했다. 

12월4일 문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고 양측은 협상에 나섰지만 8일 협상이 결렬됐다. 11일에는 정동영·이인제 후보 단일화도 무산됐다. 범여권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2012년 4월 15일 일요일

신경민의 탄식, "반동의 세월이 시작됐다"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4-14일자 기사 '신경민의 탄식, "반동의 세월이 시작됐다"'를 퍼왔습니다.
박원순 "진실과 정의는 지는 법이 없답니다"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 당선자는 14일 야권의 총선 패배로 파업중인 방송사 노조들이 깊은 충격을 받은 반면 사측은 희희낙락하고 있다고 전하며 "반동의 세월이 시작된 셈"이라고 탄식했다.

신경민 당선자는 14일 트위터에 "총선결과에 MBC, KBS, YTN 직원들이 충격을 받았다. 파업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각 회사수뇌부는 '웃음소리가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경계령을 내렸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침묵하고 있다. 봄이 따스하지 않다"며 방송파업 사태에 대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침묵을 꼬집기도 했다.

한편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시민이 트위터를 통해 "힘든 시기입니다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그들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주세요! 부디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주세요!”라고 부탁하자, "진실과 정의는 지는 법이 없답니다“라고 격려했다.

최병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