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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7일 월요일

“손석희의 도전, 성공하기를 바란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3-05-27일자 기사 '“손석희의 도전, 성공하기를 바란다”'를 퍼왔습니다.
[박용진의 브리핑 막전막후(幕前幕後)]

“저 손석희입니다. 정말 다르게 해보겠습니다”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모르는 번호 전화가 왔다. 새로 국회 출입하는 기자의 경우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런 전화인 줄 알았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받았다. 화장실에서 ‘솔’톤 전화 목소리도 부담이거니와 웬만하면 점잖게 끊으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저 손석희입니다” 전화통화가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라디오 연결 목소리와 전화기 목소리의 차이를 더듬어 그가 누군지 알아채는데 몇 초는 걸렸던 것 같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갔다. “고민 많으셨겠다. 어쨌든 새로운 도전 잘되기를 바란다. 축하한다.”
손석희 사장은 주로 각오를 이야기 했다. “그냥 온게 아니다. 허니문으로 생각하고 한 달 정도만이라도 지켜봐 달라. 잘 못하면 세게 비판해 달라. 정말 다르게 해보고 싶다”
신임사장으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취임 전화도 하고 자신의 생각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둘이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기보다는 그의 방송에 몇 번 출연해서 알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아마도 의례적인 전화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의 전화대화를 통해 나는 손석희 사장의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우려와 비판을 보란듯 넘어서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랐다.


▲ MBC 시선집중 진행당시,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 (MBC 제공)

5.18 왜곡…종편방송과의 난타전

5월 13일, TV조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해괴한 방송을 내보냈다.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에서 탈북인사 등을 출연시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충격적인 유언비어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탈북인사인 임천용 씨는 “북한군 1개 대대가 들어왔다”, “광주시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쏟아냈다. 일개 종편의 프로그램이지만 워낙 그 내용이 황당하다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강력 규탄과 함께 TV조선의 공식사과를 요구했고 이틀에 걸쳐 반박 논평을 내보냈다.
민주당 입장은 “대한민국이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민주항쟁에 대한 부정과 정신훼손 행위는 마치 3.1운동 정신을 부정하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력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이며 범죄행위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더 커졌다. 이틀 뒤인 5월 15일 이번엔 채널A가 비슷한 내용의 막장방송을 내보냈다. 처음엔 대변인실 차원에서 대응하려 했던 민주당은 전당적인 차원에서 이를 대응하기로 했다. 대변인으로서 3일 연속 반박 브리핑을 진행했고, 관련 상임위 의원들에게 해당 방송사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및 제재’를 요구하도록 요청했다. TV조선의 (장성민의 시사탱크),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 두 프로그램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해 (JTBC)는 진보성향 (한겨레)와의 공동사설 계획을 발표한 (중앙일보)의 결정 등의 영향을 받으며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얻는 듯 했다.

종편 대응 전담 대변인?


▲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JTBC도 사고를 쳤다. 5월 22일 (임백천의 뉴스콘서트)에서 출연한 이석우라는 정치평론가가 “노무현 종북으로 볼 수 있다”는 막말을 내뱉은 것이다. 하필 내가 다음날 당직 대변인이었다. 이러다가 ‘종편 대응 전담 대변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며 즉각 대응했다.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브리핑 내용에 일부러 손석희 사장 이름을 넣었다. 그가 아프길 바랐다.
“민주당은 방송사의 편집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방송사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와 전직 대통령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고도 단순히 출연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태도가 손석희 신임사장의 보도제작 방침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이 손석희 사장 시대를 맞은 JTBC를 대해 매우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JTBC 측에서는 보도국라인과 책임자가 “유감 및 해당발언자의 출연금지” 입장을 알려왔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관련 시정조치를 당의 지적이 있고나서 곧바로 했다는 점에서 다른 종편과는 좀 달랐다.
이를 두고 ‘종편은 어쩔 수 없다.’거나 ‘거봐라. 손석희도 별수 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이번 일로 손석희의 도전이 좌절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 일로 손석희의 도전이, ‘조중동 종편’의 한축이 허물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바람이 꺾이지 않기 바란다.
섣불리 조중동 종편의 삼각편대가 공고하다고 선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보수적인 인사들 뿐 아니라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손석희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을 손석희가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 한다.

손석희의 도전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손석희가 실패하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가 실패하면 진보개혁진영은 손석희를 잃고, 보수진영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의 도전과 각오가 성공해야 보수진영이 하나를 잃고, 진보 개혁진영이 하나를 얻는다. 손석희의 도전이 진영의 도전은 아니지만 그의 개인적인 도전이 우리사회의 불균형을 허무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낳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래서 나는 손석희의 도전을 응원하고 그가 쉽사리 자신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격렬하게 촉구한다. 그가 13년 동안 (시선집중)에 쏟아 부었던 열정보다 더 큰 열정으로 반드시 성공해야, 내가 온갖 욕먹을 각오하고 그를 공개 방어해주는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  |  mediaus@mediaus.co.kr

2013년 1월 10일 목요일

출세를 안겨준 '블로그'를 성공하자 차버린 '윤창중'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3-01-10일자 기사 '출세를 안겨준 '블로그'를 성공하자 차버린 '윤창중''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창구가 윤창중 대변인으로 단일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윤창중 대변인의 입도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인수위가 가동된 첫날 윤 대변인의 브리핑은 딱 3분뿐이었습니다.

이랬던 윤 대변인의 브리핑이 갑자기 20분으로 늘어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박근혜 당선인의 말을 적은 발언록을 그대로 낭독한 것입니다. 

윤창중은 박근혜 당선인의 입이 확실히 맞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그녀만의 어법이 그대로 윤창중의 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출처: 사진공동취재단,동아일보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를 출범시키자마자 보안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수위원들은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으며, 그들을 향한 기자들을 피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인수위원 대부분은 아예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고 출근하거나 비서에게 휴대전화를 맡기고, 출근과 동시에 인수위 건물로 도망치듯 숨어버리고 있습니다.
인수위원들이 기자들을 피하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는 인수위원을 쫓는 기자와 쫓기는 인수위원 사이의 실랑이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인수위원은 기자를 피해 사이드 브레이크도 안 풀고 차를 출발하는 촌극까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를 위한 도구 '막말 윤창중'

그렇다면 도대체 왜 박근혜 당선인은 철저하게 인수위원의 발언을 윤창중 대변인의 입으로만 통일시켰을까요? 그 해답은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던 김지하의 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답은 막말은 윤창중이 하고 박근혜 당선인은 뒤에서 숨어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변인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막말'이기 때문에 어이가 없으며, 앞으로 있을 정권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네티즌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 방식이나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수준을 논하는 시대에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대외 공표 및 홍보 등의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대변인의 수준을 어찌 두고 볼 수가 있겠습니까?
막말이 무기인 그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막말' 하나로 출세한 정치인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언론 왜곡의 대가, 나에게 덤비지 마라'

윤창중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영양가(기사로 쓸 만한 가치가)가 있는지 없는지 대변인이 판단한다"며 기자들의 반복적인 질문에 짜증을 내며 훈계를 했습니다. 이런 그가 자주 써먹는 말이 30년 정치부 기자 운운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아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30년 정치부 기자와 논설위원, 논설실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언론이) 국가 요직에 대한 인선 때마다 엄청난 오보를 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는 것을 아주 통감한 사람…(취재원과) 언론과의 신뢰가 형성돼야 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언론관…”(프레시안 2013년 1월 7일)
윤창중 대변인의 말을 들으면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기자를 훈계하는 이유가 자신이 했던 과거를 돌이켜서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는 그렇게 이용했으나 '너희는 감히 나에게는 하지 말라'는 뜻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에도 권력의 단맛을 향유하려는 교묘한 속셈.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 마을에 지금 노무현은 퇴임 후에 돌아가 살 성(城)을 쌓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일개 촌을 자신의 성터로 상전벽해시키고 있다. 마치 전두환이 퇴임을 앞두고 경기도 성남에 고래등 같은 일해재단을 세웠던 것처럼. ‘물러난 뒤에라도 제발 조용히 살아줬으면’하는. 이렇게 눈 감아주고 싶은 사이 ‘노무현 캐슬’이 올라가고 있다” [문화일보 ‘노무현 캐슬’ 칼럼 중(2008년 1월 31일 게재)]
윤창중은 2008년 문화일보에 '노무현 캐슬'이라는 칼럼을 쓰면서 봉하마을을 캐슬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왕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 시골 영지로 내려가 성을 쌓고 권력의 단맛을 누리려는 교묘한 속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 봉하마을 농촌체험 프로그램 연근캐기 행사 참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밭에 나와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 출처:노무현재단

요새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하고 있는 농촌체험 행사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지금까지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어찌 그리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당선인의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들고 나온 '월간 박정희'의 필진이었던 조갑제는 윤창중이 사실이 아닌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짜 그럴까요?
2007년 9월 윤창중은 문화일보 칼럼에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며 대선에 출마하자 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신정치 청산을 선언한데 따라 권노갑,한화갑,설훈등 가신들이 집단 기자회견을 열어 "DJ가 집권해도 청와대나 정부요직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중에 새빨간 거짓말로 입증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동교동 가신 중에 남궁진 전 의원만 문화부 장관을 맡았지, 권노갑,한화갑,김옥두,설훈 등은 장관이나 청와대 고위직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박지원은 엄밀히 따지면 동교동 가신 출신은 아닙니다.) 

'출세를 안겨준 블로그를 성공하자 차버린 윤창중'

그의 막말과 거짓말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대선을 앞둔 작년 4월부터 운영하던 '윤창중 칼럼세상'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 대부분이 막말과 왜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의고 뭐고 한다지만 지역작전에 불과한 것! 다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들의 행태를 지켜봐야 한다. 왜? 이들은 원래 '쓰레기 인간'들이니까." - 2012년 5월 14일 (대국민 사기극, 야권연대의 종말) ]"노무현이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환생해 못다 이룬 한을 풀어달라고 대신 스피치를 써준 것 같다." - 2012년 6월 18일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환생한 노무현) "정말 가증스러운 안철수와 '안빨'들이다. 대한민국을 졸로 보는 이런 기만극도 조만간 거대한 종말을 고하고야 말 것이다." - 2012년 9월 4일 (안철수의 딱지)

▲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운영하던 블로그

윤창중 대변인은 과거 10년간 문화일보에 시론 203개와 개인 블로그에 165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중에서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165개개 중에서 적대적인 성향의 칼럼의 75.3%가 야권을 향해 2012년에 쓴 글들입니다. 2012년 윤창중에게 대선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블로그를 통해 '막말'무기를 흔들었고, 그것에 성공해서 대변인까지 임명됐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은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그간 자신이 썼던 글이 문제가 되자, 운영했던 블로그를 폐쇄했습니다. 사실 전업블로거 입장에서 윤 대변인의 블로그 폐쇄를 보면서 그에게 블로그란 출세의 도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족한 글이지만 '아이엠피터'라는 블로거는 그간 썼던 글이 수준이 낮건 오류가 있든 없든 블로그를 폐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글에는 당시의 시대를 바라 본 저만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지금의 '아이엠피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블로거는 윤창중을 가리켜 '곡학아세'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곡학아세는 '배운 것을 왜곡해서 시세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 취재진에 둘러싸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 / 출처: 오마이뉴스

블로거에게 블로그 폐쇄는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관, 그리고 자신이 행동했던 모든 것을 숨기거나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게 블로그는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으로 오르는 기회의 도구였을 뿐이겠지만, 블로거 입장에서 보면 그 무엇이 두렵기에 블로그를 폐쇄하고 언제까지 충성할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하기도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던 윤창중 대변인은 '막말'에서 이제는 언론을 훈계하면서 뉴스의 가치를 대변인이 판단해서 알려주겠다는 '언론 통제'의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마치 유신 시절 방위병이 변심한 애인 집에 불 지른 사건을 보도한 것은 '민군관계 이간질'에 해당하고, '달동네 연탄값이 비싸다'라는 기사는 하층민을 선동했다는 혐의여서 기자가 구타당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국민의 판단까지 좌지우지하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기까지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막말'이라는 무기를 블로그를 통해 사용했던 그를 대변인에 앉혀 놓은 박근혜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은 저 같은 일개 블로거에게도 윤창중과 같은 '표현의 자유'를 허락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 블로그의 어느 글에서도 '쓰레기','저주받아야 마땅한'과 같은 원색적인 막말은 없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은 그보다 더한 말을 하고도 막강 권력 중심부에 있는데 설마 저 같은 일개 블로거에게는 손을 대지 않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봅니다.
그리고 '아이엠피터'는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블로그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며, 그 글에 관한 어떠한 책임을 묻는다면 기꺼이 질 것을 약속합니다.

아이엠피터  |  impeter701@gmail.com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30일자 기사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를 퍼왔습니다.

ㆍ올 대선, 2002년과 닮은꼴

역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주로 야당이 즐기는 메뉴였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의 ‘DJP 연합’이 본격적인 시초다. 이어 2002년 16대 때에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두 차례 모두 단일화 후보가 승리했다. 

이번 대선도 2002년 대선과 양상이 비슷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그해 4월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지방선거 참배와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15%대까지 떨어졌다. 추석을 앞둔 9월17일 한·일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노 후보의 지지율을 상회했다. 

민주당에서는 후보 교체론이 제기됐고, 10월4일 반노·비노파 의원 34명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을 발족시켰다. 노 후보는 10월31일 “경선을 정식 제안해오면 단일화를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11월3일 정 후보 측에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11월9일 공식 협상이 시작됐다. 17일 세부 절차가, 22일 최종 협상안이 타결됐다. 24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밤 12시 결과가 발표됐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였다. 후보 등록일인 25일 바로 직전이었다. 

당초 정 후보 측은 협상을 통한 담판을, 노 후보 측은 당원이 50% 참여하는 국민경선안을 꺼내들어 평행선을 그었지만 노 후보 측이 여론조사안을 수용했다. 다만 여론조사 세부안 확정에 보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지금보다 늦어지면 단일화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2002년에 비해 이념적 차이가 적은 데다 일정도 늦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성공한 단일화’였던 1997년 DJP 연합은 호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이자, 중도를 겨냥한 ‘개혁과 보수’의 이념 연합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패하면서 자민련과 정책공조가 시작됐다. 1997년 7월 공식 협상에 착수했고, 9월 김대중 총재 비자금 사건이 터지며 수세에 몰리자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11월3일 양 총재가 회동해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동거 정부가 처음 실험됐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독자 출마했다. 11월18일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문 후보가 거절했다. 11월26일 세 후보가 모두 등록하고 대선운동에 돌입했다. 

12월4일 문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고 양측은 협상에 나섰지만 8일 협상이 결렬됐다. 11일에는 정동영·이인제 후보 단일화도 무산됐다. 범여권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