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대선 승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대선 승리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이제, 문재인에게 달렸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2-07일자 기사 '이제, 문재인에게 달렸다'를 퍼왔습니다.
[이태경 칼럼] 민주당의 전면적 혁신이 대선 승리를 가져올 것

대선의 풍향이 바뀌었다. 안철수가 문재인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선언한 것이다. 안철수는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고, 결심이 서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다. 안철수가 설렁설렁 문재인을 지지할 것이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분명 안철수는 최선을 다해 문재인을 도울 것이다.
안철수의 분투를 고스란히 표로 연결시킬 책임은 이제 온전히 문재인의 몫이 됐다. 문재인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며, 살아온 과정도 박근혜와는 비교불가의 우위에 있는사람이다. 민주당이 객관적인 전력과 지니고 있는 자원이 박근혜 새누리당에 비해 현저히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호각을 유지하는 건 문재인의 매력에 힘입은 바 크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이번 대선을 보면서 가장 놀랍고 실망스러운 건 민주당이다. 전세가 기우는 기미가 역력한데도 민주당은 부자 몸조심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현재의 민주당 안에는 승리에 대한 열망도, 충만한 투쟁의지도, 대의를 위한 헌신과 희생도,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긴장감도 없다. 이 정당이 정권교체를 위해 나선 야당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야박한 말이지만 도리어 민주당이 정권교체의 걸림돌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후보가 6일 오후 서울 정동 한 음식점에서 단독회동을 가진 뒤 포옹을 하고 있다. 이날 안 전 후보는 "아무 조건 없이 제 힘을 보탤 것"이라며 문 후보에 대한 전격 지원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누리는 알량한 특권을 포기하기 보다는 대선패배가 났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당은 존재이유가 사라진 불임정당 신세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미래가 없는, 잔존하거나 연명하는 수준의 정당으로 전락한다는 말이다. 한계가 많지만, 그래도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은 민주당이 고작 정치자영업자들의 생명연장 수단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민주당이 스스로 전면적 혁신을 못한다면 문재인이 해야 한다. 안철수의 지원과는 별개로 문재인은 민주당을 전면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프로세스도 발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민주당은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국민들에게 주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재창당까지 염두에 두고 민주당을 대표와 책임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정당, 한국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균열들을 포착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정당, 대의를 위해 헌신돼 있고 실력도 갖춘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문재인의 최종 승부수가 될 것이다. 일신의 삿됨이 없이 대의를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완전히 연소시켜 싸우는 사람과 세력에게 유권자들도 감동하고 행운의 여신도 미소 짓는 법이다.
다행히 객관적인 조건은 문재인에게 여전히 우호적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무도함에 질린 유권자들의 정권교체 열망이 아직 살아있고, 박근혜는 개혁 코스프레를 걷어치우고 재빨리 수구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대담하게, 더욱 대담하게, 언제나 대담하게 도전하고 전선을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완전판 문-안-심 연대가 낡은 박-이-이 연대에 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red1968@naver.com  

문재인 "이제 아름다운 단일화 완성"


이글은 시사IN 2012-12-06일자 기사 '문재인 "이제 아름다운 단일화 완성"'을 퍼왔습니다.
安의 적극적 지원 약속후 대선 승리 자신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는 6일 밤 "이제 아름다운 후보단일화가 완성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문 후보는 이날 밤 수원역 앞 `차 없는 거리' 유세에서 "여기 오기 전 안 후보가 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적극적으로 지원활동을 하겠다 약속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아침에는 국민연대가 출범했다. 우리 국민을 대표할만한 분들이 다 모였다"며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염원하는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정권교대'"라면서 "저 문재인이 돼야만 정권교체가 맞다"며 정권교체를 호소했다.

그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염원하는 모든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며 “이제 남은 것은 정권교체와 새 정치,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간절함으로 투표하는 것”이라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r그는 안 전 후보의 적극적 지원을 약속받은 직후인 수원 유세에서 시종 밝은 표정에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선 승리를 자신했고,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연호했다.

그는 7일 오후에는 안 전 후보와 함께 최대 승부처인 부산을 찾아 합동유세를 벌일 예정이다.

최병성 기자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문재인-안철수 전격 회동 "조건 없이, 적극적 지원"


이글은 미디어스 2012-12-06일자 기사 '문재인-안철수 전격 회동 "조건 없이, 적극적 지원"'을 퍼왓습니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6일 오후 4시 20분 전격적으로 만난다.ⓒ뉴스1

안철수 전 후보가 전격적으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조건 없는 지원에 나선다. 안 전 후보는 6일 오후 4시 20분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문 후보와 회동을 가질 예정이다.
안 전 후보는 단독 회동에 앞서 유민영 대변인을 통해 "저는 지금부터 문 후보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단일화를 완성하고 대선승리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그것이 국민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안 후보는 또한 "제가 후보직을 사퇴한 이유도 후보단일화 약속을 지킴으로써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여망을 온전하게 담으려고 한 것"이라면서 "지금의 상황은 이 두 가지 모두 어려울 수 있다는 국민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현 대선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안 전 후보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며 "오늘 문 후보가 새정치 실천과 정당혁신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했고, 이는 정권교체를 통한 새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그 길을 위해 아무 조건 없이 제 힘을 보탤 것"이라며 "국민이 제게 주신 소명, 상식과 선의의 길을 가겠다. 저를 지지해주신 분들도 함께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김완 기자  |  ssamwan@gmail.com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30일자 기사 '역대 단일화 성공 땐 대선 승리, 실패 땐 대선 패배'를 퍼왔습니다.

ㆍ올 대선, 2002년과 닮은꼴

역대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는 주로 야당이 즐기는 메뉴였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DJ) 총재와 자유민주연합 김종필(JP) 총재의 ‘DJP 연합’이 본격적인 시초다. 이어 2002년 16대 때에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했다. 두 차례 모두 단일화 후보가 승리했다. 

이번 대선도 2002년 대선과 양상이 비슷하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그해 4월 대선 후보로 선출됐지만 지방선거 참배와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지지율이 15%대까지 떨어졌다. 추석을 앞둔 9월17일 한·일월드컵 열기에 편승한 무소속 정몽준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노 후보의 지지율을 상회했다. 

민주당에서는 후보 교체론이 제기됐고, 10월4일 반노·비노파 의원 34명이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을 발족시켰다. 노 후보는 10월31일 “경선을 정식 제안해오면 단일화를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11월3일 정 후보 측에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11월9일 공식 협상이 시작됐다. 17일 세부 절차가, 22일 최종 협상안이 타결됐다. 24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밤 12시 결과가 발표됐다.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였다. 후보 등록일인 25일 바로 직전이었다. 

당초 정 후보 측은 협상을 통한 담판을, 노 후보 측은 당원이 50% 참여하는 국민경선안을 꺼내들어 평행선을 그었지만 노 후보 측이 여론조사안을 수용했다. 다만 여론조사 세부안 확정에 보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지금보다 늦어지면 단일화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2002년에 비해 이념적 차이가 적은 데다 일정도 늦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성공한 단일화’였던 1997년 DJP 연합은 호남과 충청의 지역 연합이자, 중도를 겨냥한 ‘개혁과 보수’의 이념 연합이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가 패하면서 자민련과 정책공조가 시작됐다. 1997년 7월 공식 협상에 착수했고, 9월 김대중 총재 비자금 사건이 터지며 수세에 몰리자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11월3일 양 총재가 회동해 단일화에 합의했다. 이로써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고, 동거 정부가 처음 실험됐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독자 출마했다. 11월18일 정동영 후보는 문국현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문 후보가 거절했다. 11월26일 세 후보가 모두 등록하고 대선운동에 돌입했다. 

12월4일 문 후보가 정동영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하고 양측은 협상에 나섰지만 8일 협상이 결렬됐다. 11일에는 정동영·이인제 후보 단일화도 무산됐다. 범여권 분열 속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