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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4일 일요일

나는 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을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4-12일자 기사 '나는 알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의 모든 것을'을 퍼왔습니다.

탤런트 고 장자연씨에게 성상납 강요 등의 혐의를 받아온 소속사 대표 제이슨 김이 2009년 7월3일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김씨는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인터폴 수배로 현지 경찰에 붙잡혀 118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성남/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9) 고 장자연 소속사 대표 제이슨 김


이종걸 의원 지적처럼
언론사주의 포함 여부 때문에
검찰과 경찰은 장자연 리스트
못 밝히는건가 안 밝히는 건가


연예인 장자연씨 자살 뒤
일본으로 출국 뒤 잠적해버려
“수사에 자존심 건다”던 경찰
인터폴 수배로 김씨 데려오고
41명 수사팀 118명 조사하고도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



1996년, 연예계는 술렁거렸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 심은하가 이름도 생소한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듬해에는 이미숙, 최진실 그리고 2001년에는 김남주, 2003년에는 장서희, 2004년에는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 2005년에는 정다빈으로 이어졌다. 당시 ‘스타즈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제이슨 김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를 졸업한 수재로 할리우드에 넓은 인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2001년 홍콩에 ‘서클이엔티’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중화권 시장을 공략하는 등 ‘한류 열풍’에도 일조를 하고, 홍콩에서 활동하던 데니스 오를 한국 연예계에 데뷔시켰다. 2002년에는 대기업 씨제이홈쇼핑과 공동출자해 ‘더모델 엔터테인먼트’를 세워, 광고업계에서도 큰손으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더모델’은 월드컵의 영웅 히딩크 감독을 필두로 세계적 스타 장쯔이와 리밍(여명)을 국내 광고모델로 출연시키기도 했다.

2006년부터는 ‘스타즈’ 대신에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사이 연예계에서는 ‘버클리대학 졸업 학력을 믿을 수 없다’, ‘소속 연예인을 폭행하고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등 성품이 좋지 않다’, ‘조직폭력과 연계되어 있다’, ‘유력 정치인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등 ‘제이슨 김’의 정체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과 의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벼락같은 성공을 질투하는 경쟁자들이 퍼뜨린 루머일까, 아니면 속사정을 아는 내부인이 몰래 전한 ‘사실’일까?



소속사 여배우들의 연이은 자살


2002년 서울지검 강력부(당시 부장검사 김규헌)에서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소속 연예인들로 하여금 정계, 재계, 관계 유력인사들에게 성상납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에 착수했다. 곧 10여명의 고위층 관계자 리스트가 확보되어 정식 수사에 들어가려는 순간, 대상자인 케이(K)씨가 홍콩으로 출국한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K씨가 잠적하자 리스트에 오른 고위층들도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의 수사는 흐지부지 결말 없이 종결됐고, K씨는 다시 귀국해 버젓이 사업을 재개했다. 그해 9월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준표 의원(현 경남도지사)은 “민주당 의원 세 명이 연예인 성상납을 받았고,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 당시 강력부장은 지방으로 좌천됐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홍준표 의원은 후에 그 K씨가 ‘고 장자연 사건’에 연루된 제이슨 김이었다고 언론사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뒤에도 김씨와 관련된 연예인 성상납 의혹은 거의 2년 주기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소속 연예인에게 성상납, 술시중을 강요한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던 김씨의 기획사에 소속된 적이 있던 여배우들이 연이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하나같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서둘러 종결됐다. 2007년 1월, ‘섹시 가수’로 이름 날리다 갑자기 자살한 유니 등이 그들이다.

김씨는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성상납 강요 의혹뿐 아니라 자신을 떠나려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벌이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1997년 탤런트 최정윤씨, 2004년 배우 김민선씨, 2006년 탤런트 정다빈씨 등이 대상이었고, 2013년 현재도 배우 송선미씨 및 이미숙씨를 대상으로 고소를 제기해 법정 분쟁 중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 알려진 사실과 정황들만을 바탕으로, 제이슨 김은 “확인되지 않은 미국 명문대 졸업 학력과 할리우드 인맥 등을 내세워 당대의 톱스타들을 끌어들인 뒤, 이들의 이름을 보고 기대감에 부풀어 찾아 온 신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들 중 일부에게 고위층 성상납 강요 등을 하기도 했고, 불만을 품고 자신에게서 떠나려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고소·고발 등으로 괴롭혀 온 ‘악덕 업자’”라는 비난이 제기됐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과정에서 친분이 형성된 사회 유력인사들의 든든한 영향력에 힘입어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도 무력화시켜 온 것으로 추정할 여지도 있었다. 이런 배경과 맞물려 그와 관련있는 연예인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언론사 사장을 둘러싼 진실 게임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장자연 사건의 핵심은 “기획사 대표에게 고위층에 대한 술시중과 성접대 강요 및 폭행에 시달리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그녀의 친필 유서에 담긴 내용을 밝혀내고, 그녀가 쓴 편지에 적힌 10여명의 유력인사 등 그를 죽음으로 내몬 ‘악마’들을 처벌할 수 있느냐 여부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으로 불린 이 기록에는 언론사 대표, 방송사 피디, 기업체 대표 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전 다른 연예인 사망 사건처럼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려던 경찰은 장자연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가 유서와 편지 내용을 공개해 언론에 보도되는 등 파문이 일자 ‘범죄 사건’으로 인지하고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장자연씨의 유족 역시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의심되는 용의자 7명에 대해 ‘성매매 혐의’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런데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주범’으로 지목된 소속사 ‘더컨텐츠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씨가 일본으로 출국한 다음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렸다. 2002년 ‘연예인 성상납 비리 사건’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경찰은 김씨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 요청을 했고 일본 경찰에게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외교부를 통해 김씨의 ‘여권 무효화’ 조처도 단행됐다. 김씨는 ‘불법체류자’ 신분이 된 것이다. 김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일본에 연고가 없는 김씨의 오랜 잠적은 ‘비호세력’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다. 주범 김씨가 사라진 상태에서 경찰 수사 역시 벽에 부닥쳐 중단됐다. 또다시 ‘실체 없는 소문’으로 묻혀버릴 뻔했지만, 2009년 6월24일 일본 경찰은 숨어 있던 김씨를 찾아내 검거했다. 그리고 7월3일,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 형사들은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의 항공기 안에서 김씨의 신병을 일본 경찰로부터 인도받았다. 일본으로 도주한 지 118일 만이었다.

당시 최고의 인기 드라마였던 ‘꽃보다 남자’ 출연 여배우의 자살과 성상납 강요 의혹은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2009년 4월, 국회에서도 대정부질문을 통해 뜨거운 공방이 전개됐다. 2002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민주당 의원들을 지목해 공격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조선일보사 방상훈 사장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며 이 때문에 경찰이 늑장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를 한 것이다. 당시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도 방 사장의 이름을 언급했고, 국회 밖에서는 인터넷언론 서프라이즈 대표 신상철씨가 합세했다. 조선일보는 이 세사람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한편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조선 고위간부 이름이 장자연 문건 명단에 있다’고 확인했다. 이후 세간의 관심은 대한민국 최다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사장의 관련성 여부에 집중됐는데, 그사이 주범 김씨가 일본으로 출국하면서 수사가 중단되어 ‘실체 없는 공방’으로 4개월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이었다.

김씨의 귀국으로 다시 활기를 띤 경찰은 ‘그동안 피의자 신문을 위해 모든 자료를 준비했다’며 진실규명에 대해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조현오 당시 경기경찰청장은 “경찰의 자존심을 걸고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은 김씨를 공항에서 압송해 오자마자 휴식 없이 조사를 강행하는 열의를 보였다. 7월6일, 긴급체포 시한에 맞춰 신청한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 상태에서 본격적인 조사가 벌어졌다. 그동안 41명으로 꾸려진 경찰 수사팀은 총 27곳을 압수수색했고, 14만여건의 통화 내역을 조사했으며, 118명의 참고인을 조사했고, 955건에 이르는 계좌 및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했다.

그 결과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행, 협박, 횡령 및 도주 등 네 가지였다. 의혹의 본질인 ‘성상납 강요’ 혐의는 적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김씨가 사무실에서 장자연씨를 ‘페트병 등으로 폭행’한 혐의, 자살 1주일 전인 2월25일 장씨에게 “함께 마약 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 문자를 보낸 일, 2008년 11월26일 다른 여성 연예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조사받던 중 도주한 혐의 및 장씨의 영화출연료 542만원 중 242만원을 ‘횡령’한 단서를 확보해 이 혐의들만 적용했다고 밝혔다. 언론사 대표를 포함한 사회 유력인사에게 성상납을 강요한 혐의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조선일보사 쪽은 고 장자연씨가 ‘스포츠조선 사장’을 ‘조선일보 사장’으로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스포츠조선 사장은 이를 부인했다.

김씨는 검찰에 송치된 뒤 구속적부심을 통해 보석으로 풀려났고 불구속 기소된 다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다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2013년 3월에는 연예인 지망생을 대상으로 한 성적 착취를 주제로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인 김부선이 “고 장자연 전 소속사 대표로부터 식사하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한 내용을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 3명은 누구인가


2011년 연말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자살하면서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한 유서를 남기자, 경찰은 유서에 언급된 가해 혐의 중학생 2명을 구속했고 검찰 역시 구속 기소했다. 아직 미성숙한 10대 중학생이지만 친구를 자살에 이르게 한 괴롭힘 행위의 죄질이 무겁다는 판단이었다.

비슷한 다른 사건에서도 유서가 남겨진 자살 사건은 반드시 그 유서에 적힌 내용과 사람들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실시하고 혐의를 규명해 그에 따른 조처를 취한다. 과연 장자연씨의 유서와 편지에 남긴 절규와 고발이, 성인이며 지속적으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여성 연예인을 착취하고 괴롭혀 끝내 죽음으로 내몬 것으로 의심된 소속사 대표의 혐의가, 이 중학생 가해자들의 잘못보다 가벼울까? 경찰과 검찰 그리고 법원은 오직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고위직 인사들 보호에 급급한 나머지 김씨에 대한 단죄를 엄하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2013년 2월8일 서울고등법원은 조선일보와 방상훈 사장이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이 고 장자연씨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보도 내용은 허위사실이지만, 공익성과 상당성 등 위법성 조각 요건을 갖춰 보도한 언론사 등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솔로몬의 판결’을 내렸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친필로 확인된 장자연씨 유서에 담긴 성상납 강요 사건의 실체와 가해자들은 무엇이고 누구인가? 못 밝히는가 아니면 안 밝히는가? 이와 관련해 한때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 높았던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2002년 김씨의 연예인 성상납 사건’을 제대로 수사해 처벌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홍 도지사가 언급한 세 명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은 누구인가? 진정 장자연씨 죽음을 애통해한다면 지금이라도 밝혀야 한다. 한 연예인을 죽음으로 내몬 이 사건의 열쇠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는 당시 기획사 대표 김씨는 지금이라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경찰과 검찰은 재수사를 통해 김씨로 하여금 진실을 밝히도록 해, 책임있는 자에게 법의 엄정한 단죄가 내려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하길 촉구한다.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진실 말했다고 기자 고소하는 나라, 또 있을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2일자 기사 '진실 말했다고 기자 고소하는 나라, 또 있을까'를 퍼왔습니다.
명예훼손 형사처벌 폐지 추세… 장자연 리스트, 안기부 X파일 등 “의혹 보도 못하면 권력 감시 어떻게 하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불거진 지난 4월 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김종욱·YTN 노조)는 한건의 문건을 폭로했다. YTN 주요 간부들이 민간인 불법사찰 증거 인멸이 이뤄지던 시기(2010년 7월)를 전후해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 1팀 조사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내역이 담겨 있는 검찰의 수사기록이었다.
YTN 노조가 YTN 주요 간부들이 불법사찰과 증거 인멸에 조직적으로 공모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자 많은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그러자 해당 간부 중 일부는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 6명을 형사고소하고 4개 언론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런 기류와 달리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소장 박경신 고려대 교수)가 지난 4일 국회에 형법상 모욕죄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폐지 등을 담은 형법개정 입법청원안을 제출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 내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형법상 명예훼손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연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입법청원=형법 307조 1항에 따르면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307조 2항은 허위 사실을 적시했을 경우 처벌 조항을 담고 있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규정은 언론사 기자가 허위가 아닌 사실을 기사화해도 기소되는 근거조항이 됐다.
실제 검찰은 지난 7월 배석규 YTN 사장이 폭우로 직원들이 비상근무에 들어간 평일에 골프를 쳤다는 이른바 ‘황제골프’를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자에게 징역 8개월을 구형했다. 애초 이 사건은 배석규 사장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었으나 검찰과 경찰 조사과정에서 기사에 적시된 내용이 사실로 밝혀졌다. 그랬더니 검찰이 허위사실 적시가 아닌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를 기소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 4일 △형법 307조 1항의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폐지 △형법 307조 2항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공직자의 직무에 관한 내용 제외 △명예훼손죄를 본인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에 들어갈 수 있는 ‘친고죄’로 변경 △형법 311조 모욕죄 폐지 등을 담은 형법개정안을 입법청원했다. 참여연대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표현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법조항 때문에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위법적인 행위에 대한 의견 제시, 정치적 풍자나 비평, 패러디나 기사화 논평 또는 사설마저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 6월 형법개정안 대표발의=국회에서도 지난 6월 비슷한 내용의 형법개정안이 발의됐다. 국회 법사위 소속인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개정안에 따르면 참여연대 입법청원안과 마찬가지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허위 사실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추가했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주된 목적으로 하거나 상대방이 공인일 경우, 사회 여론형성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죄로 처벌하지 않도록 했다.
현행법상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다. 피해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지만, 고소를 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이 독자적 수사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이 조항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참여연대는 형법개정 입법청원안을 제출하면서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변경하는 내용을 넣었다. 박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개정안에도 이런 내용이 포함됐다.

▷PD수첩 제작진에서 정봉주 전 의원까지=언론의 보도를 형사상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려고 했던 대표적인 사례는 MBC (PD수첩) ‘광우병’ 편 제작진을 기소한 사건이다. 검찰은 이 보도로 제작진이 허위사실을 적시해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의 명예를 훼손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자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제작진 5명을 기소했다. 제작진에게는 수갑이 채워지고 포승줄에 묶여 검찰청까지 이송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제작진의 무죄로 판명났다. 이 밖에도 제작진은 6건의 민사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대법원은 “정책 결정에 관여한 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이라는 형태로 언론인을 처벌할 때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지적한 것이다.
형법상 명예훼손죄는 공직선거법으로 그대로 이어진다는 점도 문제이다. 선거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했을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한 것이다. 당선자가 형사사건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확정 받으면 당선 무효가 돼 정치인들에게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BBK의 연관성을 언급했다가 허위사실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현재 실형을 살고 있다. 이에 반해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 8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 형평성 논쟁을 낳기도 했다.

▷노조 성명에도 명예훼손죄를 적용한다면?=서울중앙지법(형사25단독 서정현 판사)은 지난달 31일 배석규 YTN 사장의 ‘황제골프’를 비판하는 성명을 올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김종욱 YTN 노조 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서정현 판사는 판결문에서 “배석규 사장은 사회의 여론형성을 주도하는 뉴스 전문 방송사인 YTN의 대표이사로 공적 인물”이라며 “김종욱 위원장은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와 같은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만약 이 판결에서 유죄 선고가 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됐을까.
노조에서 성명을 내는 경우 비판 대상은 대부분 회사 경영진이다. 노조가 내는 성명에까지 명예훼손죄를 들이댄다면 노조의 일상적인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장균 전 한국기자협회장(YTN 해직기자)은 “명예훼손죄의 취지는 거대 언론사가 힘없는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보호하자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권력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 시민과 노동자·언론사 기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더 보호받기 위해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는 대다수의 기업에 노조가 있는데 노조 성명서에 명예훼손죄를 적용한다는 것은 사장 기분이 나쁘면 기소된다는 의미”라며 “(유죄 판결이 났을 경우) 자칫 엄청난 노동과 언론 탄압 위기의 순간을 맞을 뻔 했다”고 말했다. 

▷의혹 보도 못하면 기업·정부 권력은 누가 감시하나=선진국에서는 언론보도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은 주로 민사소송을 통해 처리된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형사처벌을 폐지하는 것이 국제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뉴질랜드는 1992년, 아프리카 가나는 2001년, 스리랑카는 2002년, 멕시코는 2007년 명예훼손죄를 폐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나 언론보도에 형사적 책임을 묻겠다며 고소하는 일도 잦다. 손동권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18일 “언론매체 종사자를 고소해 그들이 구속되거나 형사재판을 통해 처벌받도록 해 다소나마 피해감정을 보상받고 재범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민사소송과 합의를 유리하게 이끄는 방책으로 형사절차가 활용되는 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형사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를 수집하기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 증거를 수집하는 어려움을 덜 수 있고, 가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심리적 압박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현행법에 따르면 허위 사실이든 진실이든 간에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가 인정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은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불완전한 정보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고, 허위 사실과 진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있다.
안기부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가 실제 떡값을 받았는지,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된 언론사 사장이 성상납을 받았는지,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 감염 가능성이 얼마나 높은지 등의 경우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나 정치인이 모든 것을 다 입증할 수는 없는 사례들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기소했고, PD수첩 제작진을 체포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장자연 리스트와 안기부X파일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비리의 단서를 제시하는 자체까지 처벌하는 것은 권력비리에 대한 고발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조현미 기자 | ssal@med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