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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원전 피난민 5만여명 앞으로도 최소 4년 집에 못돌아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11일자 기사 '원전 피난민 5만여명 앞으로도 최소 4년 집에 못돌아가'를 퍼왔습니다.

일본 이와테현 리쿠젠다카타시의 다카타초등학교에서 10일 열린 3.11 일본 대지진 2주년 추모행사에 참가한 한 주민이 고개를 숙인 채 묵념하고 있다. 리쿠젠다카타시는 대지진 당시 사망 1556명, 실종 217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재송 제공

후쿠시마 원전사고 2년
 무너진 주민들의 삶 살펴보니

지금도 시간당 세슘 1천만 베크렐
대기중 방사선량 도쿄의 13배
지하로 하루 400t 오염수 스며
농산물 3.9%인 1171건 판매금지
원자로 내부 아직도 파악안돼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의 나미에마치는 원전 사고로 전 주민이 33개 시·정·촌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치(한국의 읍·면에 해당) 사무소가 옮겨간 니혼마쓰시에 나미에마치에 있던 기존 6개 학교를 통합해 초등학교 1곳을 설립했는데, 4월 새 학기엔 입학 희망자가 아직 한 명도 없다. 전교생 30명 가운데 6학년 12명이 이달 중 졸업하면 학생이 18명으로 줄어든다. 방사능을 피해 어린이들을 현외로 대거 피난시켰기 때문이다.원전 사고로 일본 정부가 피난 지시를 내린 원전 주변 지역 주민은 약 8만4000명이다. 현재 자치단체별로 피난구역 재편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10일 집계한 것을 보면, 피난민 가운데 5만4000여명은 거주지가 거주제한구역과 귀환곤란구역으로 새로 지정돼 앞으로도 최소 4년간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문부과학성이 집계한 최근 후쿠시마현의 대기중 방사선량은 시간당 0.78마이크로시버트로 도쿄(0.057)의 13.6배다.사고 원전은 사고 초기에 견주면 8000만분의 1로 양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시간당 1000만 베크렐(세슘 기준)의 방사성물질을 대기로 내뿜는다. 원전은 원자로 안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다 수습할 때까지 위험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 없는 형편인데, 도쿄전력은 아직도 원자로 안의 상태조차 상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 지하로는 하루 400t의 지하수가 스며들어 오염수로 바뀌고 있다. 도쿄전력은 걸러서 방사능 농도를 크게 낮춘 저농도 오염수를 담은 탱크를 쌓아둘 곳이 부족해지자, 어마어마한 양의 오염수를 바다에 내버릴 궁리를 하고 있다.음식물 오염도 여전히 심각하다.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잡은 대구는 지난해 봄 기준치를 초과하는 방사성 세슘이 검출돼 판매가 금지됐다가 올해 1월에야 경매가 재개됐다. 원전 사고 이전 10㎏에 1만엔을 넘기도 했던 이곳의 대구는 지난달 중순 겨우 1600엔에 거래됐다. 오염을 우려해 사람들이 꺼리는 탓이다.후쿠시마 원전 북쪽의 미야기현에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검사한 2만3645건의 농산물 가운데 163건이 방사능 기준치를 넘었다. 후쿠시마현산은 오염이 더 심해서, 검사한 3만232건 가운데 3.9%인 1171건이 방사능 기준치를 넘어 판매금지됐다. 후쿠시마산 채소의 평균가격은 2010년 ㎏당 350엔에서 지금은 250엔을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지인들은 이 일대에서 생산된 쌀을 방사능 수치가 낮은데도 여전히 외면한다. 교토대학의 소비자조사 결과 도호쿠·북간토 지역에서 생산한 쌀은 꺼린다는 대답이 50%를 넘었다.일본 정부와 후쿠시마현 지방자치단체는 지금도 오염된 땅에서 겉흙을 긁어내 오염도를 낮추는 제염작업을 벌이고 있다. 2011년 10월 가장 먼저 제염작업이 시작된 후쿠시마시 오나미지구의 스다 요시하루(62)의 집은 겉흙을 걷어내고 새 흙을 덮은 뒤 시간당 2.9마이크로시버트이던 방사선량이 0.7로 떨어졌다가 지금은 0.4까지 내려가 있다. 그러나 스다는 “눈이 녹으면 다시 올라갈지 모른다. 수치가 낮아졌다고 방사능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2012년 7월 23일 월요일

후쿠시마 원전노동자에 ‘피폭량 조작’ 강요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22일자 기사 '후쿠시마 원전노동자에 ‘피폭량 조작’ 강요'를 퍼왔습니다.

도쿄전력 자회사 하청업체 임원
“방사선 측정기 납판으로 덮어라”
거부한 노동자엔 작업제외 보복

일본 도쿄전력 자회사의 한 하청업체 임원이 방사능 유출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일하던 작업원들의 방사선 측정기에 납판으로 만든 덮개를 씌우도록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선량계를 납으로 덮으면 방사선 수치가 10분의 1 정도로 떨어진다. 고선량을 무릅쓰고 작업을 강행하게 하려했던 이 조처는 ‘원전노예’로까지 불리는 원전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일본 후생성은 노동안전위생법 위반 혐의로 뒤늦게 조사에 착수했다.22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도쿄전력 자회사 도쿄에네시스의 하청업체인 빌드의 한 임원은 지난해 12월1일 원전 노동자 12명에게 납판을 건네면서 소형 방사선 선량계를 덮으라고 지시했다.노동자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 부근에서 오염수 처리 시스템의 호스를 보온재로 덮는 작업을 맡았다. 12명의 노동자 가운데 3명은 납판 덮개를 씌우는 것을 거부했다. 회사 임원은 이들을 작업에서 제외했다. 다른 노동자들은 약 3시간 가량 자재 운반 작업을 했다.업체 임원은 이튿날 한 여관에서 지시를 거부한 근로자 3명을 강한 어조로 설득했고, 이 때 한 노동자가 대화내용을 휴대전화로 녹음해 두었다가 (아사히신문)에 제공함으로써 사건이 알려지게 됐다. 이 임원은 “현장에 처음 갔을 때 선량계의 경고음에 놀라 그렇게 했다”며 “납판 덮개를 씌우게 한 것은 한 번 뿐이었고, 사용한 뒤에는 쓰레기장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당시 납판 덮개를 사용한 한 노동자도 “현장의 방사선량이 그리 높지 않아 한번만 쓰고 버렸다”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후생노동성은 노동안전위생법 위반 혐의로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에 조사원을 파견해 노동자 신원과 피폭기록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며, 피폭량 조작이 상시적으로 이뤄졌는지 실태파악을 서두르고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2012년 3월 9일 금요일

후쿠시마, 겨우 최악의 사태를 막았을 뿐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9일자 기사 '후쿠시마, 겨우 최악의 사태를 막았을 뿐'을 퍼왔습니다.
[후쿠시마 이후,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① ] 폐로는 가능한가

Ⅰ. 지난 연말 일본정부의 사고 수습 선언은 시기상조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벌써 1년을 맞는다. 지구 대부분을 방사성물질로 오염시킨 이 사고는 아직 수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육지뿐만 아니라 해양의 광범위한 방사능오염 실태까지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특히 아직도 15만 여명의 피해지역 주민들이 일본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원전 난민'의 피난생활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어린 자녀의 피난문제로 인한 의견대립으로 이혼으로 발전하는 사례, 심리적으로 불안증세를 보이는 청소년의 증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자포자기한 주민들이 도박 및 음주에 빠지는 등 원전사고에 따른 사회적 문제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작년 12월 16일 노다 수상은 원전사고가 수습됐다는 선언을 국내외적으로 발표하였다. 즉, 사고 원전 3기 원자로의 밑부분 온도가 섭씨 100도 이하로 내려갔고, 방사성물질 배출량이 감소했다는 2가지 사항을 판단근거로 하여 사고 원전이 '냉온정지'상태'에 도달하였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수습선언은, 수상이 2011년 9월 유엔본부 회의에서 2011년말까지의 냉온정지를 국제적으로 표명하였던 만큼, 외교상의 입장 및 방사능오염에 따른 수출과 외국인 관광객의 감소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국내적으로는 2012년 1월부터 시작되는 오염지역의 제거(이하 제염)작업과 함께, 피난주민들에게 귀향에 대한 가능성 및 안심(安心)감을 전하려는 정치적인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습선언은, 마치 중환자에 대한 수술을 하기도 전에 간단한 응급처치로 완치되었다는 식으로, 사고 원전의 실태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외로부터 '졸속한 판단'이라는 비판뿐만 아니라, 일본 국민 특히 후쿠시마현 주민들의 정부 사고대책에 대한 불신감을 증폭시키는 등, 도리어 역효과를 가져 왔다. 심지어, 후쿠시마현의 도지사가 수상에게 수습선언의 취소를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사태로도 발전하여, 수상이 '원전부지 내의 수습작업이 안정되었다'는 의미였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수습 선언 1주일 후 도쿄전력이 발표한 후쿠시마원전사고의 수습에 관한 중장기대책에 따르면,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완전수습(폐로)까지는 최소 4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어 있다.

게다가, 중장기대책의 내용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단순히 나열한 것으로, 수습계획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노력목표에 가까운 것이다. 또, 이 수습기간 동안의 피해주민에 대한 배상 및 제염작업, 녹은(melt down) 핵연료의 추출과 원자로의 폐로 등에 백조엔(약 1500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비용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제염작업의 경우, 후쿠시마현 면적의 약 7할을 차지하는 산림지역의 제염은 사실상 포기한 상태로, 산림지역의 낙엽이나 풀더미 등에 쌓여 있는 방사성물질은 비바람과 함께 주민의 생활환경으로 유입되면서, 또 먹이사슬을 통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성장 및 생명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일본에 있는 상업용 원전 54기 중 52기가 가동 정지된 상태이며, 나머지 2기도 각각 3월 26일과 4월말(늦어도 5월초)에 정지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추진파들은 마치 원전사고가 없었던 것처럼, 올 여름의 전력부족이 기업의 해외이전을 촉진시켜 실업률의 증가 및 경기후퇴를 가져 온다고 위협(?)하면서, 그 해결책으로서 원전의 조속한 재가동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최근, 일본 국내의 매스컴들도 원전사고의 실태보다는, 도쿄전력의 경영권을 둘러싼 문제 즉 국유화논쟁에 보도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매스컴의 보도자세가, 도쿄전력 및 일본정부의 의도적인 정보의 은폐 및 왜소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하에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1년을 돌아보면서 사고 원전의 주요한 변화 및 피해의 현황을 살펴본 후, 금후 예상되는 일본의 원자력정책을 전망해 본다.

Ⅱ. 사고 수습과 방사성오염수의 증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직접 피해에 의한 사망자는 그리 많지 않다. 쓰나미가 오기 전, 점검 차 지하에 들어갔다가 사망한 원전 종업원 2명과 사고 후 수습작업 중 과로사로 인정받은 종업원 1명 등 3명이 전부이다. 이밖에 사고 당시 피난 과정에서 중환자 14명이 사망했고, 유기농 농민과 (무덤으로 피난 간다며 자살한 93세의) 노인 등 4명이 자살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의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후쿠시마 사고 피해에 의한 사망자는 고령자를 중심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앞으로 4,5년 후부터 어린이의 갑상선암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주민 15만명이 아직까지도 난민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제인 것은 거대한 방사능 오염원으로 변해버린 사고 원자로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사고를 당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6기의 원자로가 있는데 이 가운데 정기 검사 중이었던 5,6호기 제외한 1,2,3,4호기가 피해를 입었다. 4호기의 경우 정기점검 중의 노심 수리로 가동이 정지된 상태였고 1,2,3호기가 사고 당시 가동 중이었다. 1,2,3호기의 경우 수소 폭발, 멜트다운(노심 용융)을 거쳐 멜트스루(melt-through: 용융된, 즉 녹은 핵연료가 원자로 강철용기를 뚫고 나와 격납용기에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도쿄전력의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1호기는 핵연료 90% 이상이 멜트스루이고, 2,3호기는 40-56%정도라고 한다. 물론 정확한 상태를 알려면 내시카메라로 원자로 내부를 들여다보아야 하나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며 앞으로 수 년이 지나야 한다.

이들 피해 원자로에서는 사고 직후만큼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방사능물질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따라서 사고 수습을 위해서는 사고 원자로를 냉각수로 냉각시켜 상황을 안정시키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사고 원자로 내의 사용중 핵연료 및 사용후 핵연료를 끄집어내 안전하게 처리하고 사고 원자로를(1,2,3,4호기) 봉인, 폐로해야 한다. 도쿄원전 측의 자체 계획에 따르면 이 모든 조치를 마치는 시기는 앞으로 40년 후인 2051년 쯤에나 가능하다. 이와 함께 사고 당시 뿜어져 나온 방사능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된 후쿠시마 주변지역에 대한 오염제거 작업도 진행돼야 한다.

1.최악의 사태를 겨우 막았을 뿐

현 시점에서 후쿠시마 사고원전들의 수습작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로에 대한 냉각수의 안정된 주입과, 고준위 방사성오염수의 안전한 처리・처분이다. 작년 10월 이후, 새로운 오염수 정화장치의 도입으로 원자로에의 냉각수 주입은 비교적 안정되어, 현재 원자로 밑부분의 온도는 섭씨100도 이하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원자로에서 나오는 방사성물질의 배출량도 가장 많았던 작년 3월 15일에 비해 8000만분의 1 수준으로 줄어 든 상태이다. 방사성물질의 배출이 크게 줄어든 것은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파괴된 건물외벽을 완전히 덮는 차폐시설을 설치한 것과 2호기의 필터가 있는 환기장치의 설치가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원전의 현황을 간단히 개괄하면, 핵분열이 다시 발생하는 재임계(再臨界) 및 붕괴열의 급상승 등의 리스크는 현저하게 줄어 들었으나, 수소폭발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불안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작년 3월 22일에 일본정부가 원자력위원회에 작성시킨 '최악의 사고 시나리오' 에 따르면, 원전1호기의 폭파로 작업원이 철수한 상태에서 4호기 사용후 핵연료의 수조의 파괴가 발생하고, 이후 주위의 다른 원전들도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인류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예상되어 있다. 이 경우, 강제피난지역이 원전으로부터 반경 170km, 그리고 자주피난지역도 250km까지로 확대되어,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 인구 약 3,000만명이 피난하는 사태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태가 된다.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의 수조에는, 1호기의 수조보다 3.78배나 많은 핵연료가 저장되어 있었고, 특히 정기검사기간을 이용하여 원자로의 노심(爐心)을 수리하기 위해, 사용중이던 원자로내의 핵연료도 함께 보관되어 있어 원전수조 중에서 발열량도 가장 높았다.

(사고 원자로 1호기에는 사용중 핵연료가 400개, 2호기와 3호기에는 각 548개가 있다. 또 1호기 수조에는 사용후 핵연료가 392개, 2호기 615개, 3호기 566개가 있다. 사고 당시 수리 중이던 4호기에는 수조에 사용중 핵연료 987개와 사용중 핵연료 548개 등 1535개가 보관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핵연료는 핵연료봉 수십개를 한 다발로 묶은 집합체로 핵연료 1개의 무게는 172 Kg에 이른다. 사용중 핵연료는 물론이고 사용후 핵연료도 핵분열 및 핵붕괴에 의해 방사능 물질을 발생시키므로 모두 안전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정상가동의 경우, 4호기의 핵연료는 강철판(두께 20cm)으로 된 원자로 안에서 핵분열을 하며, 원자로의 바깥에도 강철판(두께 3cm)과 철근콘크리트(두께 2m)로 된 격납용기도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4호기의 사용중 핵연료는, 수조 속에서 원자로와 격납용기라는방호벽도 없이, 핵분열(임계)을 하여 대기중으로 방사성물질 방출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당시, 4호기의 수조는 수소폭발의 영향으로 외벽이 파괴되고, 기둥 및 밑부분의 바닥 등도 강도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만약 재폭발로 수조의 핵연료 1,535개(우라늄 약 265톤)가 임계상태 또는 파손되어 핵분열생성물 (죽음의 재)가 대량으로 나왔다면,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은 것이, 지난 1년간의 사고수습작업에서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3월초 현재, 원전부지내의 지상에 흩어져 있었던 폭발잔해물은 대부분 정리된 상태이다. 단, 사고 직후 사용할 소방차・주수(注水)차 및 중장비의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높은 방사능에 오염된 폭발잔해물을 불도저로 지하에 꽤 묻어 놓았는데, 언젠가 다시 안전화를 위한 처분작업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4호기의 파괴된 수조시설의 부분적인 보강을 마쳤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수조 내의 핵연료의 이송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재, 수조 속의 핵연료를 끄집어 낼 크레인을 설치하기 위해, 4호기 건물 위의 폭발잔해물를 철거하고 있는 중이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원전의 공동수조에서 보관중인 사용후 핵연료 6,375개를 먼저 옮긴 후, 이 곳에 4호기의 사용후 핵연료를 옮길 계획이다. 습식방법의 공동수조에서 꺼낸 사용후 핵연료는 특수용기에 넣어 당분간 원전부지 내에 건식방법(공기냉각)으로 보관할 계획이다.

사고 직후 약 5개월동안 일본정부・도쿄전력의 사고종합대책본부의 자문역할을 했던 한 원자력 전문가는, 최근 자신의 저서에서 최악의 사태를 회피할 수 있었던 데는 '행운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사고 직후에 발생한 몇 차례의 지진이 수습작업에 큰 지장을 줄 정도의 규모가 아니었고, 또 쓰나미 및 추가적인 수소폭발도 없어 최악의 사태를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었다면, 일본 국토의 약 3할의 포기 및 일본 국민의 4분의 1이 피난을 하는 사태가 되었을 것이다. 약 3할이라 하지만, 사실상은 일본을 둘로 양단하는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일본의 면적은 한국보다 약 3.8배 정도 되는데,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가 한국 국내에서 일어났다면, 과연 국민들이 안전하게 피난할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2. 핵연료의 추출 및 폐로작업은 미지의 영역이다

도쿄전력의 사고 수습의 중장기대책에 따르면, 1) 2013년까지 1~4원전의 수조 내의 사용후 핵연료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2) 로보트 및 기기개발을 통해 원전건물 내의 제염작업 및 파손부분의 수리, 오염수의 처리, 그리고 격납용기 전체를 물로 채워 냉각한다. 이후 3) 녹은 핵연료의 추출작업에 착수하여, 2036년 후까지 완수한다. 마지막으로, 4) 2051년까지 원전을 해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핵연료의 추출방법과 관련기기 등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당분간 최소 3~4년은 냉각수의 안정적인 공급에 전념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묘책이 없는 실정이다. 용암같이 녹은 핵연료의 표면은 물로 냉각이 되고 있겠지만, 내부는 여전히 섭씨 약1000~2000도의 높은 붕괴열을 내고 있을 것이므로 계속적인 냉각수의 공급이 불가결하다. 핵연료의 붕괴열은 3~4년후에는 공기의 방(放)열로 냉각이 가능할 정도로 낮아지겠지만, 그 이후에도 방사선 차폐와 녹은 핵연료의 추출를 위해서는 물을 채워 두어야 한다.

작년 11월말에 도쿄전력이 발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원전1, 2, 3호기의 녹은 핵연료의 대부분은 원자로의 강철판(두께, 16~20cm)을 뚫고, 약 12m 아래의 격납용기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있다. 심지어, 1호기의 경우는 핵연료의 약 90%가 제어봉의 삽입구 등을 통해 낙하하여, 격납용기 밑부분의 콘크리트(두께, 2.6m)를 녹인 상태로, 가장 심한 곳은 격납용기밑의 철판까지의 콘크리트가 약 37cm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결과였다. 1호기의 경우, 무게 69톤에 달하는 핵연료가 녹을 때, 높은 열로 주위의 제어봉 및 구조재, 콘크리이트 등도 함께 녹여, 현재는 무게가 약 2배 이상으로 늘어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핵연료 덩어리의 무게당 발열량도 상대적으로 낮아진 만큼, 핵연료 덩어리가 격납용기를 뚫고 나가는 '차이나 신드롬'은 발생하지 않은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핵연료 덩어리가 격납용기의 강철판(두께 3cm)을 뚫고 나가, 그 밑의 콘크리트(두께 7.6m)의 어딘가 멈춰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지난 1월 20일, 도쿄전력은 핵연료의 위치 및 냉각수의 높이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원들이 주위의 높은 방사능을 휴대한 납판으로 막으면서 2호기의 격납용기 속에 공업용 내시(內視) 카메라를 넣어 보았으나, 강한 방사선과 수증기에 의한 시야불량으로 약 70분간의 확인작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스리마일스섬(TMI) 원전사고는, 핵연료의 45% 정도가 녹았으나 원자로 속에 머물고 있는 상태였고, 또 원자로 벽면에 금이 간 것 이외에는 순환냉각시스템도 유지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사능이 낮아지는 것을 기다려, 원자로의 두껑을 여는 데 6년, 연료추출에 5년 등 합계 11년이 걸렸다. 또, 5년간에 걸쳐 TMI 2호기의 정화작업을 실시하였으나, 지금도 원자로는 감시상태이며, 폐로작업은 2034년 무렵 TMI 1호기의 운전종료 후에 함께 시작될 예정이다.

도쿄전력은 본격적인 내부조사의 개시시기로서 격납용기는 2017년, 원자로는 2019년 무렵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원전의 경우는 녹은 핵연료의 무게, 형태 및 위치도 알 수 없는 상태이며, 게다가 원자로 및 격납용기도 크게 파손되어 있다. 수소폭발로 인해 연료추출용의 크레인같은 시설들도 파괴된 만큼, 건물의 보강을 통해 이런 부대시설의 설치도 불가결하다. 그리고, 로보트 및 기기 등을 개발하여 원전건물 내의 제염작업과 격납용기의 파손부분의 보수가 어느 정도 끝나면, 작년 6월에 시도하다 실패한 수관(水棺)방식 즉 격납용기 전체에 물을 채워 핵연료를 냉각시킬 계획이다.

약 35m 위의 격납용기의 윗부분에서 크레인으로, 원자로를 통해 격납용기 속에 떨어져 있는 최소 100톤 이상의 녹은 핵연료를 끄집어 낼 계획이다. 그러나, 중장기대책의 실행 중에 대형 재해가 발생한다든가, 또는 경제적 및 기술적으로 추출작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체르노빌원전처럼 시멘트로 원전건물 전체를 덮는 석관(石棺)방식의 등장도 부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높은 방사능 때문에 격납용기의 부소작업에도 적잖은 곤란이 예상되는데, 여러가지의 물질 심지어 바닷물의 염분까지 섞인 핵연료의 추출작업은 여태껏 어느 나라도 경험한 적이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그 성공여부는 그 누구도 모른다. 참고로 덧붙이면, 수관방식으로 격납용기에 물이 차 있을 경우, 지진의 진동과 물의 공명(空鳴)작용이 발생하여 파괴되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또 원자로의 기반이 약화되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을 수도 있다.

3. 지하수의 유입과 방사성오염수의 지속적인 증가

앞으로 수년에 걸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준위 방사성오염수의 처리일 것이다. 현재, 도쿄전력은 원전건물 하에 고여 있는 고준위 방사성오염수를 정화하여 약 4km의 배관을 통해서, 원자로에의 냉각수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오염수의 정화장치는 작년 6월말부터 도입되었는데, 특수약품과 필터 등을 이용하여 고준위 방사성오염수의 기름(油), 방사성 세슘(Cs), 염분을 차례로 제거・처리하여, 정화과정이 끝난 저준위 방사성오염수의 일부분을 원자로의 냉각수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별도의 저장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도쿄전력이 발표한 작년 4월의 계획으로는, 작년말까지 원전건물 하에 있는 것을 포함한 약 25만톤의 고준위 방사성오염수의 대부분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낙관적인 계획과는 달리, 고준위 방사능오염수가 오히려 늘고 있는 실정으로, 중장기대책에서는 처리종결의 시기를 2020년으로 변경하였다. 올 3월 6일까지 처리한 오염수의 양은 약 20만톤이나, 여전히 원전 건물 지하의 약 8만톤을 포함하여 여전히 약 20만톤이 남아 있다.

오염수의 증가는 원전건물로 스며드는 비의 영향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건물지하로 매일 200~400톤 정도 유입되고 있는 지하수 때문이다. 지하수는, 격납용기로부터 새나오는 원자로의 냉각수와 섞여 고준위 방사성오염수로 바뀌고 있어, 유입되는 지하수량만큼 처리해야 할 고준위 방사능오염수도 늘고 있는 셈이다. 도쿄전력은 오염수의 증가를 막기 위해 냉각수의 주입량을 최소로 하고 있으며, 또 지하수의 유입을 줄이기 위해 건물지하의 방사성오염수 수위와 지하수 수위와의 미묘한 균형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원자로의 온도를 충분히 낮추기 위해 주입 냉각수를 늘리면 새나오는 고준위 방사성오염수가 증대하고, 또 건물지하의 방사성오염수를 많이 처리하면 수위변화로 지하수의 유입이 늘어나는 진퇴양난의 상태이다.

한편, 정화 과정을 거친 후에 늘어나는 저준위 방사성오염수의 저장문제도 있다. 작년 12월 도쿄전력은 이 물을 올 3월경에 바다로 배출하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의 정화장치로 제거하지 못했던 스토론튬(Sr)까지 처리한 후에 배출할 계획이었지만, 주변지역 어업조합들의 반발로 계획을 철회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도쿄전력은 원전부지 내의 숲을 벌채한 곳과 바닷가에 약 16.5만톤의 저장탱크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6일 현재 저장용량의 72%에 달하는 약 12만톤이 차 있으며 원전 건물 지하의 오염수가 계속 늘고 있는 만큼, 저장탱크의 계속적인 증설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저준위 방사성오염수를 대량 보관할 방법으로, 대형유조선의 이용도 고려할 수 있지만 비용문제와 현행법(원자로 등 규제법)때문에 실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원전부지내에 저장탱크의 증설부지가 한계에 달할 경우, 이 물은 바다로 배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행법에서는 규제치 이하의 방사능오염수는, 전력회사가 임의로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왼쪽)과 <요미우리신문>이 찍은 부지 내의 저장 탱크. 2월25일부터 원전의 공중 접근 금지구역이 20km에서 3km로 완화되었다.

게다가, 오염수의 정화장치에 사용된 특수약품, 필터, 폐기물 등과 2차 폐기물의 보관장소도 계속 확보해야만 한다. 미세한 구멍이 많은 광석인 제오라이트(Zeolite)를 이용한 필터 및 슬러지 등은 핵분열생성물이 농축된 상태로 방사능이 매우 높고, 잦은 교환으로 그 폐기물 양도 많다. 또한 염분에 의한 저장탱크의 부식문제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격납용기의 파손부분을 수리하여 한정된 수량에 의한 순환냉각시스템을 이용하지 않는 한, 방사성 오염수의 증가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현재 원전부지내의 정화장치들도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으로, 잦은 고장에 의한 가동 정지, 배관 및 비닐호스의 파손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러한 시설은 지진 및 쓰나미가 덮칠 경우에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시설도 아니며, 시설에서 새나온 방사성 오염수가 바닷로 유출된 적도 있다.

결국, 작년에 발표된 일본 수상의 냉온정지[상태]의 선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불편한 진실'을 감추는 한편, 자의(恣意)적이며 근거없는 낙관적 해석에만 근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자력 전문용어로서 '냉온정지'가 있으나, 이는 정상상태의 원전, 즉 장치의 파손이 전혀 없는 정상상태에서 원자로의 내부온도가 섭씨100도 이하로 낮아 진 상태를 가리킨다. 전력회사는 섭씨 60도 정도 이하으로 낮아지면, 사용후 핵연료의 교환 또는 원자로 점검 등을 한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원자로 및 격납용기에서 냉각수가 줄줄 새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냉온정지[상태]라는 낱말을 억지로 지어낸 꼴이다. 한편, 도쿄전력은, 고준위 방사성오염수가 지하수맥을 통해 바다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차수(遮水)벽의 건설에 착수하였는데, 작년 10월말부터 약 2년 계획으로 원전부지에서 바다쪽 4m 지점에 길이 약 800 m에 약 30m의 강판 700여개를 박고 있다. 완성 후, 육지와 차수벽사이를 매립할 계획이다.



/장정욱 일본 마쓰야마대 경제학부 교수

2012년 3월 2일 금요일

체르노빌 사람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3-02일자 기사 '체르노빌 사람들'을 퍼왔습니다.
[정욱식의 '핵과 인간'] 원전은 안전한가?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핵 발전소 4호기가 수 차례의 폭발 후 무너져 내렸다. 대재앙을 몰고 온 원전은 출력 100만킬로와트로 소련의 신형 흑연감속로이었다. 1984년 3월부터 가동된 이 원전의 노심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2,600개에 달하는 '죽음의 재'가 쌓여 있었다. 사고 결과 5천만 Ci(퀴리)의 방사성 핵종이 방출됐고, 이 가운데 70%가 이 원전과 인접한 벨라루스를 덮쳤다. 마을 485개가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이 가운데 70개는 땅속으로 영원히 묻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죽음의 재는 지구촌 전체로 퍼져갔다. 체르노빌 사고를 그저 먼 나라의 참사 정도로 간주하기에는 방사능은 넓고 지구는 좁았다. 당초 소련은 이 사고를 감추려했지만, 체르노빌 원전에서 1,250킬로미터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막 원전에서 4월 29일고농도의 방사능이 검출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뒤이어 유럽 전역에서 고농도 방사성 물질에 측정되기 시작했고, 5월 2일 일본, 4일 중국, 5일 인도, 그리고 6일에는 미국과캐나다에서도 방사능이 차례로 검출됐다. 당시 교토대학 원자로연구소에서 방사능 측정을 담당했던 고이데 히로아키의 증언을 들어보자.

"처음에는 이상한 방사능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8,2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데 설마 일본에까지 날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5월 3일이 되고, 내가 호흡하고 있는 공기중에서 이상 방사능이 발견되었습니다. 방사능이 8,200킬로미터라는 지리를 날아서 일본에 당도한 것입니다. 그때의 오염 수치는 그 후 날이 가며 서서히 내려갔습니다. 그러다가 5월 하순이 되자 다시 수치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의 상공까지 날아온 오염이 태평양을 넘어서 아메리카대륙을 통과하여 유럽, 아시아를 넘어서 이렇게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사고 수습을 위해 약 50만명의 인력과 180억 루블이 투입됐다. 사고 피해가 가장 컸던 벨라루스는 사고 전 암환자가 10만명당 82명이었으나 2002년에는 6천명으로 급증했다. 해체작업에 두입된 노동자들도 하루 2명꼴로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 인한 사망자 수는 추정기관에 따라 4000천명에서 100만명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도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그 고통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 발생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은 미하엘 고르바초프였다. 그는 이 참사를 목도하고는 핵과 인류의 미래는 양립할 수 없다는 신념을 더욱 굳건히 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보다 20여년 앞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했다. 이러한 '신사고'는 미-소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할 수 있었던 결정적 힘이었고, 노벨상 위원회는 1990년 고르바초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고르바초프는 원전 사고 발생 및 악화의 큰 원인을 소련의 경직되고 불투명한 관료주의에 있었다고 보고 정치 개혁(glasnost)에도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한때 미국과 세계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뤘던 소련 몰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될 정도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폭발한 원전 4호기의 이름은 '우크리티예'이다. 2000톤의 우라늄과 1톤의 플루토늄을 비롯해 약 200톤의 핵 물질을 품고 있는 이 원전은 사고 직후 거대한 석관으로 봉쇄되었다. 그러나 체르노빌 참사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석관의 수명은 30년에 불과한 2016년까지이다. 석관 곳곳에 균열이 생겨 지금 이 시간에도 방사능이 새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또한 빗물이 스며들면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날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제 사회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강철관 공사에 들어갔다. 높이 150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에는 무려 2만톤의 금속이 사용되고,수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지어지고 있는 이 강철관의 수명은 100년이다. 국제사회의 미진한 기부로 공기가 계속 늦춰졌으나, 후쿠시마 참사가 일어나면서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7억8천5백만 달러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 체르노빌 피해자들 ⓒ뉴시스

'체르노빌의 목소리'

우크라이나 출신의 세계적인 저널리스트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역작 에는 '체르노빌레츠(체르노빌 사람들)'의 증언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그녀는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체르노빌의 증인"을 자처한 알렉시예비치는 "사고가 발생한 지 벌써 20년이나 흘렀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이 과거인지, 또는 미래인지" 자신에게 묻고 있다며,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더욱 잔인하고 총체적인 과제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역설한다.

약 20년에 걸쳐 체르노빌레츠를 인터뷰해 내놓은 이 책에 담긴 증언의 일부를 보자. 마을 주민들은 주변의 겉모습은 너무나도 익숙하기만 한데, 그 익숙한 환경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린 현실에 몸서리쳤다. "낚아 올린 물고기가, 사냥한 들새가,사과가" 말이다. "해도 떴고, 연기도 안 보이고 가스 냄새도 안 나는데……. 총도 안 쏘는구먼. 이게 전쟁이야? 그런데 피난을 가라니……." 사고 발생 직후 소련 정부는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주민들을 대비시키고 "흙을 흙으로 묻었으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와고양이 등 동물들을 죽였다.

체르노빌 사태 직후 소련 정부나 언론은 거의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주민들은 큰 불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발생했다. "아침에 정원에 나가보니 익숙했던 소리가 들리지 않았소. 왠지 벌이 한 마리도 없었소. (중략) 나중에야 원전에 사고가 났다고 들었는데, 그 원전이 옆에 있던 거였소. 벌들은 알았는데, 우리는 모른 거지." 늙은 양봉가의 말이다. "텔레비전으로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렸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얘기해줄 줄 알았어. 그런데 지렁이가, 평범한 지렁이가 땅 깊숙이 들어갔어. 그런데 우리는 모르잖아. 그래서 땅을 파고 또 팠지. 그런데도 지렁이를 한 마리도 못 찾아 고기를 못 잡았지." 어부들의 증언이다.

사랑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임산부의 사연은 "셰익스피어도, 위대한 단테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입 맞추면 안 됩니다! 만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원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소방대원의 젊은 아내 류드밀라 이그나텐코는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편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켰다. 몇 개월 후 이 여인은 나타샤라는 딸을 낳았다. 남편이 죽기 전에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4시간만에 숨졌다. 2년 후 다른 남자를 만난 이그나텐코는 사내 아이를 낳았고 안드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주위의 걱정과는 달리 건강해 보이는 아이였다. 그녀가 말한 "행복한 때"였다. 그러나 모자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졌고 아들 역시 한 달에 보름은 의사와 함께 집에서 지낼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지 25년 후, 고르바초프는 '핵과학자협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3/4월호 기고문을 통해 '체르노빌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장엄한 임무를 되새기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이정표"라며, "우리 모두 체르노빌을 기억하자. 체르노빌 사태의 부정적 측면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고 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희망의 횃불로써 되새기자"고 호소했다. 고르바초프는 25년 전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제2의 체르노빌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예방, 재생 에너지, 투명성, 테러리즘과 폭력에의 취약성 등 4가지문제에 인류사회가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재생 에너지'이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핵 에너지를 쉽게 거부할 수는 없지만, 핵 발전이 에너지 공급과 기후 변화에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마치 핵 발전이 '비용 절감형' 에너지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이는 "과장된 것"이라며,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 정부는 1947년부터 1999년까지 원자력 분야에 모두 2천6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 반면에, 풍력과 태양열 발전에는 불과 55억 달러밖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원자력만큼이나 재생 에너지에 투자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안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원, 즉 바람, 태양열, 지열, 수소 등에 투자"해,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깨지기 쉬운 지구를 보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원전은 안전한가?

체르노빌 참사 25주년이 다가오면서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바로 그 때, 원전 선진국이라고 자부했던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체르노빌을 과거지사로 묻고 또 다시 원전 르네상스에 심취해 있었던 인류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는 기술자의 실수로, 체르노빌 참사는 과학자들의 무리한 실험 과정에서,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는 지진과 쓰나미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지진 8.0 규모에도 끄떡없다던 일본의 자존심은 9.0이라는 수치 앞에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또 다시 참사를 거치고서야 인류 사회는 다시 묻기 시작했다. '핵과 인간'은 양립가능하냐고.

우리는 원자력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저렴한 에너지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방사능에 피폭되더라도 "기준치 이하는 안전하다"라는 말에도 익숙하다. 화석 연료가 주범으로 일컬어지는 지구 온난화 시대에 원전은 유력한 대안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죽음의 재'로 일컬어지는 방사능 물질이 인체에 들어가면 DNA를 포함한 분자결합을 절단‧파괴‧손상되고 피폭 수준에 따라 그 증상은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고, 아주 서서히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원전은 어마어마한 양의 '죽음의 재'를 만들어낸다. 이는 히로시마 원폭과 비교하면 그 심각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히로시마의 8킬로그램의 우라늄 핵폭탄에서 실제로 연소된 우라늄의 양은 800그램 정도였다. 그런데 100만킬로와트의 현대식 원자로가 1년에 태우는 우라늄의 양은 약 1천킬로그램으로 히로시마 핵폭탄보다 1200배 가량 많다. 당연히 죽음의 재도 이에 비례해서 만들어진다. 이를 세슘-137로 비교해보면, 히로시마 원폭이 뿜어낸 양은 약 3,000Ci였고, 체르노빌 원전사고료 방출된 양은 약 250만Ci, 그리고 100만킬로와트 원전이 1년간 만들어내는 양은 약 300만Ci 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표준이 된 100만킬로와트급 원전은 원자로 내부에서 300만킬로와트의 열을 만들어내는데 이 중에 전기로 전환되는 양은 100만킬로와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200만킬로와트는 바다에 버리는 구조로 운전된다. 원전의 효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이유는 연료 건전성의 제약에 있는데, 터빈으로 보내는 증기의 온도를 280도 이상 올릴 수 없다. 반면 화력발전소는 500도까지 올릴 수 있어 발전 열효율이 50% 이상이다. 원전은 바닷물을 냉각수로 이용하는데, 100만킬로와트 원전 1기는 초당 바닷물 70톤의 온도를 7도 가량 상승시킨다. 이를 두고 도쿄대의 미토 이와오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바다 데우기 장치'야"라고 지적했다. 수온의 급격한 상승은 해양 생태계에 여러 부작용을 동반할 뿐만 아니라, 바닷물의 수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산화탄소도 늘어나게 된다.

'죽음의 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인류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숙제이기도 하다. 핵폐기물은 원전 전과정에서 나온다. 우라늄을 채굴‧정련할 때에도, 이를 농축‧가공해 핵 연료봉을 만들 때에도, 원자로를 가동할 때에도 나오고, 무엇보다도 사용후연료봉은 그 자체가 엄청난 방사능 덩어리이다. 죽음의 재 가운데 반감기가 짧은 것으로 알려진 세슘-137은 30년이고, 플루토늄-239는 무려 2만4천년이다. 장갑, 옷, 장비 등 저준위 폐기물의 반감기는 300년이다. 사용후 연료를 일컫는 고준위 폐기물은 무려 1백만년에 달한다.

과학자들은 반감기도 대단히 길고 또 방사능 농도도 대단히 높은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후연료봉 처리에 골몰해왔다. 우주에 갖다버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고, 해양 처분은 런던 조약에 의해, 남극 깊이 파묻는 것은 남극조약에 의해 금지돼 있다. 그래서 처분 방법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재처리인데,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재처리를 하더라도 고준위 폐기물은 남는다. 심지층 처분이다. 그런데 원전이 가동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핵 폐기물의 처리를 확실히 하고 있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다. "인류는 원전이 만들어내는 폐기물의 처분방법도 없이 오늘날까지 와버린" 셈이다.

원자력이 지구 온난화를 늦출 유력한 대안이라는 주장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적 에너지로서 지구환경문제를 방지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기후변화협약에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원자력이 발전할 때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우라늄 채굴, 제련, 농축 및 가공, 원자로 건설 및 운전, 핵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엄청난 자재와 에너지가 소모되고, 소모되는 자재와 에너지의 상당 부분은 화석 연료에 의존하고 때문이다. 더구나 원전의 원리가 되는 핵분열 반응시 이산화탄소는 배출되지 않지만,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위험한 방사성 물질, 즉 죽음의 재를 배출한다.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라는 말도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여기서 기준치는 IAEA가 정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WHO가 IAEA에 굴복한 결과라는 비판이 많다. 동국의대 미생물학과 교수인 김익중은 이렇게 반박한다. "방사능은 그 피폭량에 비례하여 암을 발생시킨다. 이는 기준치 이하에서도 마찬가지다. 안전한 방사능은 없다." 방사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미국과학아카데미위원회는 2005년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소한의 피폭이라도 인간에게 위험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일본의 원자력 전문가인 고이데 히로아키 역시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피폭량에 비례해서 영향이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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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후쿠시마 핵재앙, 4~5년 후에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15일자 기사 '"후쿠시마 핵재앙, 4~5년 후에는…"'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쿠마토리 6인' 원자력 전문가 이마나카 데츠지

내년 3월이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방사능오염의 정도와 건강에 미친 영향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식품에서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는 등의 단편적인 소식만 전해질 뿐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은 14일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가 주최한 '미래 세대를 위한 한일 원전정책의 길' 강연자로 한국을 방문한 이마나카 데츠지 씨와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일본의 상황을 들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의 조교로 방사능 오염 사고를 연구해온전문가다. 그는 원폭이 있었던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핵무기 실험 장소로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있었던 세미 팔라틴스크 지역 등에서 방사능 영향 조사 등을 벌여왔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일본의 피해 지역 역시 예정에 없던 연구대상으로 추가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지난 3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인근의 이이다테무라 지역의 방사능 오염도를 조사하고 실태를 알려 일본 정부가 '피난 지역'으로 지정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교토대학 원자로 실험소에는 이마나카 데츠지 씨 외에도 고이데 히로아키 등 원자력 이용의 위험성을 연구해온 연구자가 6명이 있다. 원자로 실험소가 있는 지역 명칭인 쿠마토리(熊取)를 따 '쿠마토리 6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데 앞장서 왔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이번 사고 역시 "인재"라고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사고 직후 정보를 공개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거듭 비판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당장 방사선 노출로 인한 급성 방사성 장애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향후 4~5년 후에는 만발성 장애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미 위험을 완전히 피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시민들이 방사능에 대한 상식을 갖추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지역의 오염에 대해서는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이 유출됐던 체르노빌과 달리 반감기가 짧은 세슘이 주로 유출됐기 때문에 향후 10년 후에는 안정적인 수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력 전공자 가운데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이마나카 데츠지 씨를 비롯한 '쿠마토리 6인'은 특이한 존재다. 그는 "원자력 학회는 과학을 목적으로 한 학회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일본의 원자력촌(村, 원자력 마피아를 지칭)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든 핵무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핵 옵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기는 기회'라며 원자력 산업 확대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에 대해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여전히 원자력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이는 역시 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음은 이마나카 데츠지 씨와의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이마나카 데츠지 씨 ⓒ프레시안(최형락)

"후쿠시마도 사고도 '인재'다"

프레시안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인 3월 말 이이다테무라에서 직접 방사능 오염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고 들었다. 현장을 가보니 당시 상황이 어땠나?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경 20km 이내의 7~8만 명 정도가 피난을 갔는데. 오염 상황이 어떤지에 관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조사했던 이이다테무라는 후쿠시마에서 30~40km 떨어진 곳으로 오염이 심한 곳이었다. 실제로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수치가 나왔다. 내가 일하는 원자로 실험소에서도 시간당 20마이크로시버트 이상 나오는 곳은 '고선량 지역'이라고 해서 특별한 표시가 있고 우리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이다테무라에서는 높은 곳은 한 시간당 30마이크로시버트까지 나왔다. 이런 곳을 어린이나 노인들까지 평상시와 똑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프레시안 : 사고 직후에 일본 정부가 오염도를 조사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마나카 데츠지 : 당시 우리 조사팀은 이이다테무라의 전체적인 오염도를 바로 발표했다. 이곳은 일본의 허술한 방제 대책 지침에 비추어도 바로 피난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정부 쪽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서 4월 22일에 계획적 피난 지역으로 지정됐다. 그 이후 6000명의 마을 사람들이 피난했다. 정부의 오염에 대한 대응이 이토록 늦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분명 대책 본부는 오염이 이렇게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정보 공개도 하지 않았고, 피난을 가라거나 외출을 삼가라, 식품을 조심하라는 등의 주의도 하지 않았다. 그 책임 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보통 원자력 추진파에서는 '체르노빌은 인재에 의한 것이고 후쿠시마는 천재다'라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등 원자력 발전소 사고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 사고도 분명 인재다. 물론 지진과 쓰나미가 계기가 됐지만, 원전 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더 갖고 있었다면 그런 사태는 쉽게 예측을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50년이나 100년 한번씩 쓰나미가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후쿠시마에 원전을 설계하는 사람이 쓰나미에 대한 대책을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마땅히 세웠어야 할 대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피해의 정도로 비교하면 어떤가? 후쿠시마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를 넘어서는 피해를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고 간의 중요한 차이는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의 오염 간의 차이다.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방출된 주된 방사선 물질이 세슘이고 스트론튬이나 플로토늄은 적다. 세슘134와 세슘137은 각각 반감기가 2년과 30년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 10년이 지나면 안정적인 수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체르노빌의 경우는 반감기가 2만 4000년인 플로토늄이 확산됐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원자로 자체가 폭발한 체르노빌과 멜트다운 이후 주로 휘발성 방사성 물질이 나온 후쿠시마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은 비등점이 높아 날아가지 않고 많이 원자로 내에 남았다. 그래서 체르노빌에 비해 후쿠시마는 비교적 처리하기 쉬운 오염이라고 본다.

"앞으로 만발성 방사성 장애를 걱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많은 수의 주민들이 이이다테무라처럼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된 곳에서 일상 생활을 했고, 일부는 지금도 하고 있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주민들의 건강에 방사능 관련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이마나카 데츠지 : 사고 직후에 에다노 관방장관이 계속 말했듯이 지금의 방사능 오염은 즉각 몸에 영향이 나타나는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후에 나타날 백혈병이나 암에 대한 대책을 빨리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피폭에 대한 건강 영향을 생각할 때는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일단 한꺼번에 많은 양을 피폭당했을 때 나타나는 급성 방사성 장애가 있다. 이것은 한꺼번에 500미리시버트 정도를 맞아야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도 주민들이 그렇게까지 심한 피폭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중에 증상이 나타나는 만발성 방사선 장애는 우려할만하다.

체르노빌의 경우 요오드131에 피폭되서 사건 4년 후부터 갑상선암이 많이 발생했다. 요오드131 같은 경우 반감기가 8일이라, 일찍 줄어드는 만큼 빨리 대응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암에 걸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안 했고, 우려스럽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최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소장이 식도암에 걸린 것으로 드러나고, 후쿠시마 채소를 시식한 방송 캐스터가 급성 백혈병에 걸리는 등의 사건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전문가로서 의견은 말씀드리자면 후쿠시마 사고와 발병 간에 관계는 없다고 본다. 체르노빌의 경우 방사선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아이들이 암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 4년 후다. 사고 영향을 보려면 5년, 10년 단위로 시간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관계가 없다고 본다. 다만 요시다 제1원전 현장소장 같은 경우는 9개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했고, 그 스트레스가 암을 키웠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급성 백혈병이 걸린 캐스터는 원인을 잘 모르겠다.

"이제, 완전히 오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프레시안 : 최근 일본 최대 식품회사인 메이지에서 만든 분유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아무래도 식품 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을 텐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이것은 너무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라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일본 전국의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걱정이 많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닐 때마다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 때마다 '이미 오염되버렸기 때문에 완전히 오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도쿄에서 후쿠시마에 걸친 동북 지방, 태평양 쪽에는 무시할 수 없는 오염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하는 수 없으니 베크럴, 시버트 라는 말에 익숙해지세요. 그리고 만발성 암이나 나중에 나타날 위험에 대비하도록 합시다'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기준치다. 일본 정부는 1kg에 500베크렐을 잠정 기준치로 정하고 그 이상의 식품에 유통을 금지시키고 '1kg당 500베크렐 이하는 안전하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한다. 일본 시민들이 다들 '이건 아닌거 같다'고 느끼고 있다.. 501베크렐이면 위험하고 499베크렐은 안전한가. 그럴 수는 없다. 방사능은 노출양에 따라 위험도가 높아지는 비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501베크렐이면 501베크렐의 위험성이 있고, 10베크렐이면 그만큼의 위험이 있다. 즉 안전하다, 위험하다는 기준으로 선을 긋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오염을 참을 것인가, 인내를 강요당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나와 같은 전문가들은 그간 연구해왔던 것에서 이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의 판단은 각각 개인이 해야한다.

물론 일반인들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1년간 1미리시버트가 가장 적절한 기준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연간 1미리시버트는 원자로 규제법 그리고 방사선 장해 방지법 등에서 일반 사람들의 연간 한계치로 설정된 수치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맞고 있는 자연 방사선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년간 1미리시버트 정도다. 따라서 우리가 얼마나 참을지를 생각하는 출발점으로서 1미리시버트의 수치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방사능에 안전한 역치는 없으며 위험은 방사능 노출과 비례 관계를 가진다'는 주장은 국제적으로는 공인된 이론이라고 하나 한국에서는 일부 의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어떤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저선량 피폭은 건강에 위험이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늘어나서 놀랐다. 너무 신기하다. 그러나 암이나 급성 백혈병 등이나 역학 데이터 등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선형 모델이 가장 합리적이고 반박의 여지 없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방사선에 의해서도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사실상 대책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더라도, 방사능의 건강 영향을 생각할 대는 피폭선량을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이미 도쿄도 오염 지역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도쿄 지역의 오염은 어느정도인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단 3월 15일에 도쿄에서도 높은 방사능 수치가 관측 됐는데 그때도 정부는 '마스크를 착용하라', '외출을 삼가하라'는 대책은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은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이후 3월 20일과 22일 내린 비로 오염 먼지가 떨어져서 땅이 오염됐다. 이렇게 도쿄에도 오염이 있지만 피난 가야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구석구석에 '핫스팟'이 있기 때문에 시청등이 나서서 오염제거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도쿄와 같은 도시에는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의 물이 배수구로 쓸려가면서 배수구에서 오염이 집중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오염이 심한 지역이 국소적으로 생기게 되는 셈이다. 도쿄 주민들로서는 오염이 심할지도 모르는 곳에서 사는 것이 불안할 텐데, 그래서 집 주변의 어디가 오염이 됐는지를 제대로 측정, 조사하는게 중요하다고 권하고 있다. 도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어른이라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프레시안 : 도쿄전력이 원전 내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후 바다로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혀서, 어민단체나 한국이나 중국 등 인접 국가에서 우려하고 있다. 추가 오염의 우려는 없을까?

이마나카 데츠지 : 결국 방사능 농도가 문제일텐데 상당부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염 이후의 방사능 농도를 알 수 없으니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제염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들 뿐 농도를 낮춘 물을 방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법에서 정해진 배출 기준치 이하라면 내보낼 수 있다. 기준치 이하로 낮춘다면 3월에 방출된 오염수의 방사능 양에 비해서는 100만분의 1이라든가 1000만분의 1수준이 될 것이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촌(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핵 옵션'"

프레시안 : 이마나카 데츠지 씨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한국의 경우 원자력을 전공한 학자 중에서는 원자력에 비판적인 분들이 하나도 없다. 원자력 학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도 원자력학회의 한 멤버지만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20년 동안 학회 모임에 참석을 안했다. 원자력학회는 원래 원자력을 추진하는 학회로, 그런 의미에서 과학을 목적으로 한 학회가 아니다. 원자력 추진은 기술개발에만 치중된다. 요즘 들어 잘 알려진 대로 원자력학회도 원자력촌(村), 원자력 마피아의 일각이다. 원자력 학회가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주범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어떻게 원자력에 비판적인 원자력 전문가가 되셨는가.

이마나카 데츠지 :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원자력은 원자력학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꿈의 미래에너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닐 즈음에 각지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자 반대 운동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전력회사는 원전이 들어오면 절대 사고도 안 나고, 일자리도 생기고 돈이 들어오는 등 지역에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는데,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좋은 곳을 왜 시골에 짓는가.' 그래서 알아보니 사고가 났을 경우 엄청난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됐다. 30년 전에 정부와 전력회사가 돈과 권력의 힘으로 억지로 시골에 떠맡기려 한다는 것을 간파했고 나는 '만약 사고가 일어나면 어떤 피해가 나는가'를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원자력 추진파는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원인이 뭘까?

이마나카 데츠지 : 애초에 일본의 원자력 개발은 '핵의 평화 이용'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됐다. 이 논리에는 '원자력은 좋은 것이다'라는 선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나는 '상업 이용'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개발 과정에서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그 이권과 연결된 정치인, 예산을 쥐고 있는 관리, 연구 예산이 필요한 학자, 지원금을 끌어오려는 지자체장, 광고비를 원하는 언론 등이 얽히고 설킨 일종의 공동체, 원자력촌(村)이 형성됐다. 만약 관료든, 교수든, 언론이든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 왕따당하거나 조직에서 쫓겨나거나 광고비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자기들끼로 돌고도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핵 옵션'이다. 1968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3원칙을 발표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실제 결정은 '지금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지만, 만약의 경우 언제든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고속증식로, 재처리, 농축우라늄 제조 등 이 세가지 기술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기술이다. '언제든 가능하도록 기술을 갖고 있는다'는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자력촌을 유지하는 하나의 큰 이유다.

프레시안 : 페쇄적인 원자력 학계에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마나카 데츠지 :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만약 내가 도쿄대학에 있으면서 그런 연구를 했으면 왕따를 당하거나 쫓겨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토대학은 칭찬해주지도 않았지만. 야단 맞을 일도 없었다. '그 문제는 그것대로 중요하니까 해보라'는 식이었다. 직장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연구한 동료들이 여섯 명이 있었다. (이들을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가 있는 쿠마토리(熊取)의 지명을 따 '쿠마토리 6인'이라고 부른다.)


ⓒ프레시안(최형락)
그간 우리는 '원전은 위험하다'는 경종을 울려왔지만, 실제로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줄은 생각 못했다. 머리로는 '반드시 사고가 일어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래도 몰랐다. 그래서 사고 후 몇달 간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렸지만. 2,3개월 동안 영화속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일반 시민들에게 강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 체르노빌도 사고 이전과 이후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전을 짓고 추진해 온 그 빚을 갚게 된 것 아닌가요"

프레시안 : '다른 시대를 살고있다'고 하셨지만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기는 기회다'라며 원자력 발전을 오히려 확대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마나카 데츠지 : 내가 한국에 대해 뭐라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만, 일본도 역시 원자력을 수출하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너무나 흉하다. 우리는 일본 원전의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원전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검토는 전혀 없이 당장 경제만 생각해서 '원전 수출' 등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위험을 진다는 것이고, 그런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한 다음에 시민들이 추진할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 아직 어느나라도 폐기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폐기물도 처리하지 못하는 에너지원을 쓰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일본은 4개의 원자로가 파괴도어 앞으로 40~50년 간은 폐기물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현재 일본은 54기의 원자로 가운데 40여 개가 원전이 정지된 상태다. 우리는 이 기회에 다 정지시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진짜 우리가 원전을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가 확실해진다. 결정단위는 물론 지역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보고 나서, 모든 시민들이 '원자력 괜찮다'고 하면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원자력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원자력 사고는 원자력발전소가 많은 순서대로 일어났다. 다음은 한국이다'라는 주장을 많이 한다. 정부나 원자력 학계는 인정하지 않지만.

이마나카 데츠지 :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지진이 일어나던 3월 11일에 나는 간사이 공항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손님을 모시러 갔다. 체르노빌 25주년을 맞아 키에프의 친구를초대해서 세미나를 열려고 했다. 그 친구가 온 다음날 사고가 일어났고, 15일 히로시마로 가는 기차안에서 NHK와 그 친구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지난 40년 간 많은 원전을 짓고 추진해 온 일본이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살아남있으니까 일본 사람들도 살아남겠지요'라고 말하더라. 눈물 나올 것 같았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독일의 사례와 같은 탈핵은 가능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그 쪽으로 가는 흐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런 에너지를 낭비하는 생활을 바꿔가는 것을 통해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채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