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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2일 화요일

암 걸려도 걱정 말라더니, 박근혜 국민 속였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12일자 기사 '암 걸려도 걱정 말라더니, 박근혜 국민 속였나?'를 퍼왔습니다.
[시험대 오른 박근혜 복지‧下] 말 바꾼 4대 중증질환 공약

복지 공약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2010년 '무상급식' 이후 야권의 이슈였던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박 당선인은 자신의 이슈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정치 감각을 선보였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관련 공약이 휘청거린다. 특히 표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과 '4대 중증질환 치료비 100% 국가 보장', 이 두 가지 간판 공약이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선거가 급하다보니 공약이 졸속으로 제시된 데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고 복지 정책이 새 정부 국정운영의 중심 축으로 자리잡는 것이 불편한 일부 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당선인 주변에 뚝심있는 '복지 전도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박 당선인에게 돌아간다. 복지 정책에 대한 체계화된 이해와 그에 따른 실천 의지가 과연 있느냐는 물음이다. 시대적 화두인 복지 문제가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축소·왜곡 조짐을 보이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감도 식어간다. 박 당선인이 이런 안팎의 저항을 견뎌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라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전편에 이어 4대 중증질환 치료비 국가 보장 공약의 속내를 살펴본다. 편집자

설 나흘 전인 지난 6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짤막한 보도자료를 냈다. 내용은 "4대 중증질환 관련 공약 수정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인수위는 공약 취지에 맞게 서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덜어드리는 4대 중증 질환 공약 이행 계획을 수립 중이다"는 것이 전부였다.

인수위가 언급한 '공약 수정 보도'란 언론에서 크게 다뤄진 여권 고위관계자의 발언을 지칭한다. 이날 언론들은 '인수위가 2016년까지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혜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되 본인부담금제는 현행대로 유지하며,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보험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 거의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때문에 인수위의 보도자료는 이같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것으로 비쳤다. 마침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도 "인수위에서 그같은 결정을 내린 바가 없음을 공식 확인한다"며 보도를 부인한 다음이었다.

그러나 2시간 후, 인수위는 보도자료를 수정해 다시 발송한다. 인수위는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에는 당연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며 "공약의 취지는 질병치료에 꼭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보장하는데 있으며, 필수적 의료서비스 외 환자의 선택에 의한 부분은 보험급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본인부담금에 대해서도 "(건강보험) 급여항목에 적용되는 법정본인부담금 제도는 합리적 의료이용을 위한 장치로 보장성 확대와는 별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부담금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결국 보도 내용을 시인한 것이다.

ⓒ연합뉴스

인수위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 부분은 단지 '공약 수정이 아니다'라는 뜻이었던 셈이다. 왜? 원래 공약이 아니었기 때문이란다. 인수위는 "당선인도 보도자료와 언론 답변 등을 통해 이 점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며 대선 전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가 보낸 보도자료를 발췌해 첨부해 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보도자료나 언론사의 정책질의답변, 당선인의 후보 시절 유세 연설 내용과 TV 방송연설, 야당 후보와의 TV토론 등에서 나온 발언들이 일반 유권자들에게 과연 그렇게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었을까?

4대 중증질환 관련, 박 당선인의 공약집 내용 및 발언 내용

△ 4대 중증질환(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 총 진료비(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를 건강보험으로 급여 추진. 현재 75% 수준인 4대 증증질환의 보장률(비급여부문 포함)을 (2013년 85%, 2014년 90%, 2015년 95%, 2016년 100%)로 확대 (박근혜 대선후보 공약집, 2012.12.10.)

△ 후보는 간병비가 진료비에 포함되지 않음을 명확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음을 충분히 공감하고 있음. 간병비는 개인이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것이며, 이는 진료비나 급여, 비급여 항목에 포함되지 않음. 다만,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 상급병실료와 간병비와 같은 환자의 부담이 큰 항목에 대해 재원이 마련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단계적으로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분명히 밝힘. (박근혜 대선후보 보도자료, 2012.12.18.)

△문재인 : 간병비는 보험 대상이 되나?박근혜 : 치료비에 전부 해당이 되니까 그런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문재인 : 지난번에는 기본급여는 해당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박근혜 : 왜요? 비급여를 커버해서 거기에 대해 100% 책임진다고 했다.문재인 : 그런 간병비, 선택진료비를 다 보험급여로 전환하는 데에도 1조5000억으로 충당(가능)하나?박근혜 : 네.문재인 : 어떻게 충원하나, 암 질환만 갖고도 1조5000억인데?박근혜 : 암 질환만 1조5000억 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3차 대선후보TV토론, 2012.12.16) △ 암이나 중풍 같은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100% 건강보험을 적용하게 하여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병에 걸리면 가정경제가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만들겠다. (박근혜 대선후보 서울 코엑스 유세 연설, 2012.12.15.) △ 병원비 때문에 가장 경제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데, 암과 같은 4대 중증 질환은 100% 건강보험이 책임을 지도록 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박근혜 대선후보 서울 마천시장 유세 연설, 2012.12.7.)이같은 박 당선인의 발언을 '현재 보험 적용이 안 되는 주사비 등에 한해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되, 선택진료비와 간병비, 4인 이하 병실료 등은 지금처럼 알아서 각자 부담해야 하고, 본인부담금도 유지된다'라고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됐을지는 의문이다.

'4대 중증질환 공약'의 현주소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이른바 '3대 비급여' 항목이 중요한 것은 중증환자 발생시 가계에서 차지하는 부담이 가장 큰 항목이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영위원인 김종명 내과의사는 지난 4일 (프레시안) 기고에서(☞바로보기) "암질환과 희귀난치성 질환의 법정본인부담률은 현재도 5~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암질환의 보장률은 현재 70.4%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는) 높은 비급여 진료비 비중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암질환의 비급여진료비 항목 비중은 선택진료비 34.6%, 병실료 14.4%, 치료재료비 11.4%, 처치수술료 10.4%, 주사료 8.3%, 초음파 6.6% 등이다.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 드는 암 진료비 가운데 본인 부담분이 30%나 되고, 그 가운데 절반을 선택진료비와 병실료가 차지하는 것이다. 한 달200만 원 수준인 간병비는 아예 비급여진료비에서도 빠져 있는 비보험 비용이다.

암을 포함한 '4대 중증질환'으로 넓혀 봐도 비슷하거나 더 나쁜 형편이다. 4대 중증질환 전체의 건보 보장률은 2010년 기준 71.4%(2009년 67.8%)다. 병종별 보장률은 심장질환 69.2%, 뇌혈관질환 66.1%, 희귀난치성질환 74.6% 등이다. 이들 질환의 비급여진료비 가운데 선택진료비와 병실료 비중을 보면 심장질환 환자의 경우 선택진료비가 41.4%, 병실료가 10.4%로 나타나 암과 마찬가지로 50%를 넘었고, 뇌질환의 경우 각각 33.1%-12.2%(선택진료비-병실료), 희귀난치성질환은 28.1%-14.2%였다.

이 때문에 김종명 운영위원은 "(선택진료비, 병실료, 간병비 등) '3대 핵심 비급여'를 제외하겠다는 것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약속에서 약간 후퇴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실상 공약 폐기에 가깝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예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 중증질환 관련 공약 실천 방안이란 뭘까? 일부 언론에 따르면 현재 비급여 진료비로 돼 있는 치료재료대, 검사료, 주사료, 고가 표적항암치료제 등의 약제비와 같은 일부 항목을 보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행 200~400만 원(소득하위 50%는 200만 원, 50~80%는 300만 원, 상위20%는 400만 원)인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액의 경우 최소 50만 원~최대 500만 원으로 구간을 조정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과 마찬가지로 소득 수준에 따라 더 가난한 사람이 더 적게 부담하는 구조다.

이 방안대로라면 환자 부담은 얼마나 경감할까? 복지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김연명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부)는 7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 "선택진료비나 상급병실료를 빼고 나머지 모두(식대, 주사료, 처치 및 수술료, 검사료, 치료재료대, MRI, 초음파, 기타)를 급여화해도 (의료비 보장률이) 현재의 75%에서 80% 정도(로 높아지는) 선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5개 의료단체들의 연대체인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도 "3대 비급여가 빠진 '전액국가보장' 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며 "대부분의 중증질환 환자들이 빈곤층으로 추락하며 남은 재산을 팔아 의료비를 대게 되는 이유는 3대 비급여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박 당선인의 말 바꾸기는 예견된 일?

하지만 박 당선인의 이러한 '말 바꾸기'는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4대 중증질환 100% 무료 공약에서 3대 비급여 부분이 빠진 것을 두고 대폭 선회한 후퇴가 아니라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한다. 공약을 그대로 추진할 경우 막대한 돈이 들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전무했다는 게 이유다.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부담액이 2010년 기준으로 6조3000억 원에 이르는데, 4대 중증질환을 100% 보장하려면, 지금보다 국가부담이 50% 가량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건강보험료 인상은 없음을 누차 강조했다. 복지정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정마련임에도 이에 대한 해법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셈이다.

더구나 이 공약을 진행하기 위한 예산 계획도 미흡했다. 실제 지난 달 1일 통과된 2013년 예산안에는 '4대 중증질환 국가부담'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박 당선인 계획대로라면 4대 중증질환을 위해 올해 최소 8400억 원의 비용이 들어가지만 이에 대한 예산 책정은 없었다.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의지가 없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이번 공약 수정으로 박 당선인 복지정책에 '빨간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정책은 큰 시각에서 '무상의료'가 아닌 '선별의료'다. 특정 질병에 한해 100% 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 진료비(비급여 포함)가 500만 원 이상인 고액 진료비 환자 중 45%가 일반 질환 환자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55%가 중증질환을 앓지 않는 환자인 셈이다.

박 당선인의 공약은 이들 55%를 배제한 공약인 셈이다. 참고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제시한 100만 원 상한제 공약은 질병에 상관없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방점을 찍고 있기에 무상의료에 거의 접근했다고 평가됐다.

ⓒ연합뉴스

사라진 복지국가로 가는 교두보

그간 무상의료를 주장해온 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이 마뜩잖으나 첫 술에 배가 찰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은 "아쉽긴 했으나 3대 비급여 부분을 급여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무상의료로 가는 교두보로서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박 당선인의 공약을 평가했다.

하지만 비급여 부분이 빠지면서 중간단계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건강보험가입자포럼은 성명서을 통해 "4대 중증 질환처럼 특정질환 중심의 보장성 강화는 보편을 원칙으로 하는 건강보험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형평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과의 보장률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렇게 한계가 있는 공약이지만 그럼에도 의료비 부담의 주범인 3대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고 중증 질환부터 단계적 실현방안을 제시한다면 지지부진했던 건강보험 보장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거기다 지금 비중이 큰 3대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시키지 않는다면 하루에도 몇 가지씩 새로 만들어지는 비급여 항목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종명 운영위원은 "수천가지나 되는 비급여 항목은 병원에서 작위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병원의 돈벌이 수단으로까지 이용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건강보험에서 지급하지 않고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비급여 항목은 현재 1~2인실 등 6인 이하 병실료나 특정 의사를 지정해 진료를 받는 선택 진료비를 비롯해 600여 개에 이른다. 김 위원은 "인수위는 여기서 몇 개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항목으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3대 비급여 항목을 급여항목으로 개선하지 않는 이상은 병원에서는 지속해서 또 다른 비급여 항목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당선인이 3대 비급여의 급여화를 포기함으로써, 의료 복지로 가는 최소한의 교두보마저 사실상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냉랭한 여론, 임기 내내 발목 잡을 듯

이유야 무엇이든 3대 비급여의 급여화 공약 포기는 앞으로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발목을 잡을 듯하다. 이명박 정부도 5년 임기 내내 반값 등록금 거짓말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더구나 '약속은 지킨다'을 강조해온 박 당선인이기에 그 여파는 이전 정부보다 더 심하면 심하지 덜 하진 않을 거라는 분석이다.

8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따르면 인수위는 설 연휴(9~11일) 이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주재하는 분과별 국정 과제 토론회를 마무리하고 이달 중순께 100개 안팎의 국정 과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국정 과제에는 그동안 박 당선인이 국정 과제 토론회에서 강조했던 복지와 직접 연관된 정책들이 대부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복지 관련 핵심공약인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공약이 원상 회복되지 못할 경우 새 정부는 여론의 상당한 질타를 감수하고 출범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곽재훈 기자,허환주 기자

2013년 2월 4일 월요일

메디컬 푸어'의 공포,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04일자 기사 '메디컬 푸어'의 공포,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은…"'을 퍼왔습니다.
[서리풀 논평] 만성 질환, 사회 정책이 필요하다

만성 질환, 사회 정책이 필요하다

41만 가구가 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금을 빼내거나 재산을 처분했다. 13만 가구는 치료비를 충당하느라 빚이 늘어났다. 며칠 전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정책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한국의 건강 보장 체계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수치다. 4대 중증 질환을 가지고 설왕설래가 있지만 문제는 더 근본에 있다. '퍼주기' 식 복지에 '도덕적 해이'를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되묻는다. 이래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가.

질병이, 또한 그로 인한 치료비가 가난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은 새삼스러운 소리가 아니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또한 가난 구제는 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였다. 그렇다면 가난을 낳은 중요한 원인인 질병에 대처하는 건강 보장은 아울러 빈곤 대책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질병과 빈곤의 상관 관계는 아주 생소하지는 않다.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생각해 보면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는 인과 관계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이번 자료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던 사실 한 가지를 보탰다. 돈이 크게 들어가는 병 가운데 암이나 중풍과 같은 중병의 비중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흔한 짐작과 조금 어긋난다. 짐작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 중요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4대 중증 질환의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심각한 치료비 지출의 원인이 딴 데 있다면?

전체 소득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퍼센트 이상인 가구가 문제다. 왜 하필 10퍼센트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소득 중 의료비 지출이 이 정도라면 생활이 안정될 리 없다.

그런 가구 100가구가 있다고 칠 때 위암이 1.2퍼센트인 데 비해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차지하는 비율은 32.2퍼센트나 된다. 치료비 때문에 심한 곤란을 겪는 가구 셋 중 하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심각하게 아는 병, 예를 들어 중풍과 뇌혈관 질환은 100가구의 3.7퍼센트, 대장과 직장암은 1.3퍼센트, 유방암은 1.2퍼센트, 만성 신부전은 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들여다보면 집안이 거덜 나는 불행이요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이 더 크고 급한 문제인가 하는 우선순위를 따져야 하면 달라진다.

▲ 전체 소득에서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퍼센트 이상인 가구의 3분의 1은 고혈압, 당뇨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프레시안

물론, 이런 수치를 읽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이번 경우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의 절대수가 워낙 많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한 가지 질병만 놓고 따지면 중한 병이경제적 부담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즉, 암이나 중풍 쪽이 전세금을 헐거나 빚을 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만 수로 보면 고혈압이나 당뇨병 환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부담이 지나치게 큰 가구 수는 이들 질병 쪽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같은 자료를 보면,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30세 이상 국민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다.

여기서 건강의 의학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가 갈라진다. 의학적으로는 암이나 중풍이 훨씬 심각하고 중대한 병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질병 하나하나보다 전체 크기에 주목하는 것이 맞다.

따지고 보면, 4대 중증 질환이나 국민건강보험의 본인 부담이 그토록 문제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병이 더 고통스럽다거나 또는 치료가 더 어렵다는 것은 의학적 관점을 반영한다. 그에 비해 치료비가 얼마나 더 들고 가계가 더 기운다는 것은 사회적(또는 경제적) 눈으로 질병을 본 것이다.

만성 질환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중풍이나 암에 비해 주목과 관심이 덜하다. 우선, 말 뜻 그대로 오래 앓는 병이다. 강도는 약하고 기간은 오래 끄는 만큼 관심이 적은 것을 탓하기 어렵다.

한꺼번에 많은 돈이 드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도 한 가지 특성이다. 중풍이나 암과 비교해 보면 분명하다. 대신, 오랜 기간 꾸준히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아무래도 사회적, 정치적으로 주목을 덜 받게 된다.

나이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관심이 적은 또 다른 이유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노인이 많아지면서 만성 질환이 느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한두 가지 병 없는 노인이 어디 있으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만성 질환이 생길 확률은 커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만성 질환의 '유행'을 불러온다. 그것을 상식으로 생각하는 만큼 그저 평범한 일로 본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이번 자료는 새삼 만성 질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특히 사회적 관점에서 만성 질환이 빈곤화의 중요한 이유라는 것을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그 다음, 즉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제안한다. 만성 질환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종합적인 점검과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의 일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 폭이 넓고 협동적인 방식, 통합적이고 연계성이 높은 전략을 고민할 때가 되었다.

국민건강보험의 접근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한 가지 과제일 뿐이다. 물론, 앞에서 말한 자료에서 "의료비 급증을 초래할 고혈압, 당뇨병의 적정 관리를 국민건강보험의 명시적 목표로 반영"하자고 제안한 것은 논의해 볼 가치가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의 더 큰 혜택을 받는 질환(예를 들어 4대 중증 질환)과 그렇지 못한 질환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꼭 필요하다. 앓는 병의 종류가 다르다고 가계 파탄과 빈곤의 위험이 달라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은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치료와 치료비는 만성 질환의 경과 중 가장 마지막에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건강보험이 치료와 치료비만을 취급하는 제도에 그친다면, 만성 질환은 당연히 이 범위를 훌쩍 넘는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이 범위를 확대하더라도, 즉 치료비 지원을 넘어 조기 발견과 적정 관리를 목표로 추가하더라도 충분치 않다. 만성 질환은 그 이상이다. 치료는 말할 것도 없고, 조기 발견과 관리의 수준도 넘는다.

발병 자체를 줄이는 일, 즉 예방을 빼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관리를 이야기해도 병의 발생을 줄이지 못하면 허사다. 예방은 가장 근본적인 전략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만성 질환 예방에는 흡연, 음주, 비만, 운동, 음식 등 아주 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요인들이 다시 여러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급이나 사회적 지위가 그런 요소에 속한다.

간단하게(?) 담배를 예로 삼아 보자. 흡연이 고혈압, 당뇨병의 위험 요인이라는 것은 정설이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데는 다시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예를 들어 빈곤, 교육, 가족 등)이 기여한다. 이 때문에 흡연율 줄이기가 얼마나 복잡하고 또 사회적인지 상상해 보라.

좁은 곳에서 넓은 범위로 확장시켜 보면 다음과 같은 순서를 거친다.

치료비→치료→의료→보건→건강→사회

흡연에서 보듯, 만성 질환은 가장 왼쪽에서 출발해서 가장 오른쪽까지 미친다. 따라서 만성 질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틀이 훨씬 더 커지고 넓어져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물론, 치료와 의료를 넘는 접근이 필요하다. 예방을 비롯한 적극적 건강이라는 관점조차 좁다.

흡연, 음주, 비만, 운동, 음식…. 이런 위험 요인을 줄이는 것, 이것이 만성 질환 대책의 근본에 있다. 좁은 뜻의 정책으로만 보더라도 크게 넓어져 사회화되어야 한다. 만성 질환 정책은 노동, 교육, 지역 사회, 문화, 산업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는 점에서, 굳이 말하면 사회 정책에 가깝다.

만성 질환의 '유행'이 조만간 사회적 재앙이 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그러고도 남는다. 더 늦기 전에 시각과 틀을 바꾸어야 한다. 의료 패러다임을 넘는, 사회화 전략이 시급하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년 8월 29일 수요일

현대차 노동자, 암 걸리든지 골병들든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8일자 기사 '현대차 노동자, 암 걸리든지 골병들든지?'를 퍼왔습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의 함정

"일요휴무, 장시간노동 근절하여 인간답게 살아보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 문구이다. 아하~, 올해 현대차 임단협에서 핵심 쟁점이 불법파견 비정규직 문제와 주간연속 2교대 문제였지? 현대차 자본이 최근 '3000명 신규채용' 안을 내놓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전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투쟁이 솟구치자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밤에는 잠 좀 자자" 즉 주간연속 2교대 문제는 덜 주목받아왔다. 지난해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도 국제암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주야 맞교대는 발암물질"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실제로 암 발병의 원인이자 수명 단축 요인이기도 한 심야노동을 철폐하자는 것은 주간연속 2교대 주장의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아울러 심야노동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게 되면,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일자리를 늘려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보수언론조차 장시간노동 체제를 근절하면 백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홍보해오지 않았던가.


 
ⓒ오민규

'발암물질' 심야노동, 완성차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위 현수막 문구는 좀 이상하다. 생산직 노동자라면 당연히 '심야노동 근절'을 앞세울 텐데 왜 '일요휴무'를 강조했을까? 현수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레미콘·펌프카 노동자'라고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레미콘·펌프카 노동자들이 왜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 저런 현수막을 붙여놓았을까?

그동안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숱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1일 8시간 근무'와 '일요휴무'를 정착시켜 왔다. 그런데 최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에서 공장증설 및 교체 공사를 하면서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일요휴무 제도를 깨뜨리려 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울산지역에서 레미콘·펌프카를 운전하는 노동자들이 며칠 동안 현대차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인 것이다.

사실 현대차의 근무형태가 주야 맞교대이기 때문에, 다양한 부품을 납품하는 수많은 부품사들의 근무형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여기에다 신차가 투입되어 생산라인을 수정하거나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공사가 벌어질 경우에는, 건설노동자들과 플랜트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도 현대차가 정한 일정에 따라 좌우된다.

이처럼 '슈퍼 갑(甲)' 하나의 근무형태는 수십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차에서 주간연속 2교대가 어떻게 정착되는가 하는 것은, 단순히 현대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현대차의 생산 시스템에 따라 노동시간이 좌우되는 수십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게 된다. 현대차에서 발암물질(주야 맞교대)이 없어지지 않으면, 훨씬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에게도 발암물질이 제거되지 않는다.

공장 신설과 신규 채용 때문에 고용불안 발생?

현대차 노사 간에 주간연속 2교대를 논의해온 지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매년 머리를 맞대고 협상장에 앉기는 했지만 "2년 뒤에 시행한다", "좀 더 논의하여 내년에 시행한다"라는 결과만 몇 년째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10년 논쟁의 종지부를 찍자며, 현장의 평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심야노동을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를 실행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노사 협상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번에 "아니올시다"라는 말이 나올 상황이다. 최근 현대차 노사 간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실무협상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나 같은 사람은 접근할 수 없지만, 노사가 공동으로 추천한 학자·교수 등 전문가로 구성된 '근무형태변경추진위 자문위원회'가 내놓은 의견서를 참고하여 분석을 해보도록 하자.

자문위원회는 6월에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는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여름휴가 직전인 7월 23일에 타블로이드판 장장 12면에 걸쳐서 이 의견서를 여과 없이 그대로 전 조합원에게 배포했다. 그런데 9면의 하단 부분을 읽으면서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위 그림의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인데, 우선 "공장의 신설과 신규 채용은 공장 간 물량 경쟁 및 고용불안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일까? 이 문장은 노동시간 단축이 갖고 있는 계급적인 대의명분, 즉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을 줄이자는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일부 PT(파워트레인 : 엔진과 변속기) 생산 부문의 경우 [8/8+1]/상시야간조를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이 얘기는 현재의 주야 맞교대를 3교대 시스템으로 바꾸어, 1조와 2조는 완성차 생산라인과 동일하게 운영하는 대신 3조를 신설하여 상시야간조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상시야간조? 이건 아예 밤낮을 바꿔 일하는 노동자로 한 교대조를 가득 채우자는 말이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만 일을 하는 교대조이니 말이다. 바로 그 밑에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며 "야간노동 철폐"라고 적힌 문구가 무색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더 '빡쎄게' 일해라!

일이 왜 이런 수렁으로 빠져들게 되었을까?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각종 수치와 도표, 그리고 세계 자동차산업의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거창하고 유식한 언어로 치장되어 있을 뿐, 사실 하고 싶은 핵심적 얘기는 딱 한 가지뿐이다. "생산성(물량)과 임금을 맞바꾸자."

기존 주야 맞교대에서 심야노동을 없애기 위해 주간연속 2교대를 도입하게 되면, 노동자 한 명당 노동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이를테면 기존에는 정취근무 8시간에 잔업 2시간을 추가로 해왔으나, 주간연속 2교대가 도입되면 잔업이 사라지게 되어 1일 노동시간은 10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1일 8시간 노동제가 된다니!)

게다가 주말 휴일특근도 사라지게 되므로 노동자 한 명당 1주일 노동시간은 대략 60시간에서 40시간으로 무려 20시간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역시 마찬가지로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야만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 40시간 노동제가 된다니!)

이렇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현재 총 노동력의 절반가량을 추가로 고용해야만 기존 생산물량을 모두 맞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조합원 수가 4만3000명이니 무려 2만 명의 추가 고용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의견서는 추가 고용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되, 기존 생산물량도 보전하자는 취지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의견서에 나온 방식은 간단하다. [UPH 향상 + 추가 작업시간] 및 [노동시간 단축 + 가동시간 증가]이다.

UPH(unit per hour)란 시간당 생산대수로서, 완성차 조립라인의 가동 속도를 의미한다. 1시간에 40대의 완성차를 만들어내는 생산라인은 40UPH가 되는 것이다. UPH 수치가 향상된다는 것은 그만큼 라인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노동강도의 강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자문위원회가 제시한 방식이 UPH 향상이라니, 단축된 노동시간만큼 시쳇말로 더 '빡쎄게' 일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아울러 UPH 향상으로도 기존 생산물량을 뽑아내기에는 모자라니 추가 작업시간을 확보하자고 한다. 그런데 위 그림에 제시된 작업시간 확보 방안은 ▲조회시간 ▲안전교육 ▲혹서기 휴게 ▲명절 전일 야간조 등의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하자는 것이다.

이미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 상에 조회시간과 안전교육은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도록 되어 있다. 안전교육의 경우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상 반드시 일정 시간 이상 실시해야 하는 의무사항이기도 하다. 아울러 여름에 날이 너무 더워 작업의욕이 떨어질 때에 한해 10분의 휴게시간을 더 갖도록 단체협약에 규정되어 있다. 명절 전일에는 귀향 편의를 위해 야간에 공장 가동을 멈추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한다? 이건 말이 좋아 '추가 작업시간 확보'이지, 사실은 노동시간 연장에 다름 아니다. 결국 조회와 안전교육은 생산라인 가동을 하지 않는 근무 외 시간에 실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산에 꼭 필요한 회의와 지침 하달을 하는 조회를 자본이 포기할 리 없고, 법이 의무로 규율하고 있는 안전교육을 실시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조기출근을 하거나 퇴근 이후에 조회나 안전교육을 실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무슨 노동시간 단축이란 말인가?

게다가 [노동시간 단축 + 가동시간 증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숫제 양립 불가능한 얘기를 갖다 붙인 궤변에 불과하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본래 쉬거나 교육에 쓰이던 시간에 생산라인을 가동하자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에 해당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밥도 안 먹고 식사시간에 일을 하면 1시간 일찍 퇴근시켜 주겠다는 것을 두고 '1시간 노동시간 단축'이라 미화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3교대를 도입할 PT 부문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이는데, 3교대를 도입하게 되면 노동자 한 사람당 노동시간은 단축되지만 공장은 24시간 풀가동을 하게 되므로 가동시간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낮과 밤을 바꿔 살아야 하는, 현재의 주야 맞교대보다 더 비인간적인 상시야간조를 신설하자는 것에 어떻게 '노동시간 단축'이란 말을 갖다 붙일 수 있을까? 심야노동을 없애자고 시작한 논의가 아니었던가!

결국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UPH 향상과 추가 작업시간을 확보해 생산라인을 가동하는 것은 결국 임금으로 보전되므로 생산성(물량)과 임금을 교환하자는 논리로 귀결된다. 기존 10시간 일할 때 받아가던 임금을 8시간 일하더라도 그대로 줄 테니, 대신 10시간 동안 만들어낸 생산물량을 8시간 안에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 현대차 노사기획팀이 발간하는 <함께 가는 길> 8월 27일자. 인원 충원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함께 가는 길>

고용 없는 성장, 일자리 창출 없는 노동시간 단축

현재 노사 협상에서 현대차 자본은 주간연속 2교대 도입과정에서 신규 인원 충원은 불가하다고 못을 박은 상태이다. 노동조합은 추가 인원 충원이 전제된다면, UPH 향상과 추가작업시간 확보 등에서 일정하게 양보할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고용노동부조차 자동차산업 장시간노동의 폐해를 지적하고, 심야노동을 없애고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신규 일자리를 대규모로 창출하자고 하는 마당이다. 노동시간은 단축되더라도 노동강도가 높아지면 신규 일자리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절호의 기회에 대기업노조가 실업 해소를 위해 나서지 못한다면 결국 사회적 고립을 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물량 보전 방식은, 현대차 전 공장에서 총 30UPH를 높이자는 것이다. UPH와 큰 상관이 없는 전주공장을 뺀다면, 울산과 아산에 총 11개의 생산라인이 있으니 평균적으로 3UPH를 높이자는 얘기가 된다.

현재 11개 라인의 평균 생산대수는 40UPH 수준이다. 여기서 시간당 3대 정도를 더 만들도록(40→43) 라인속도를 높인다는 말인데, 한번 상상을 해보라. 내가 어떤 물건을 시간당 40개 만드는데, 그걸 시간당 43개 만들려면 손놀림이 꽤 빨라져야 한다.

1시간만 그렇게 일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루 꼬박 8시간씩, 주말을 제외하고 1년 내내 그렇게 만들어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심야노동이라는 발암물질 없애려다 몸에 골병이 들고 말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죽도록 일해주는 대신, 일자리는 전혀 늘어나지 않아 사회적 고립만 자초한다면?

게다가 현대차의 근무 시스템이 이렇게 확정되고 나면, 그 여파는 고스란히 부품사로 이전된다. 부품사들 역시 10시간 노동을 8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노동강도를 대폭 높이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를 끝내 포기할 것인가? 심야노동이란 발암물질 대신 골병이 차라리 낫지 않느냐고?

▲ 현대자동차 담화문. ⓒ현대자동차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2011년 12월 16일 금요일

"후쿠시마 핵재앙, 4~5년 후에는…"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15일자 기사 '"후쿠시마 핵재앙, 4~5년 후에는…"'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쿠마토리 6인' 원자력 전문가 이마나카 데츠지

내년 3월이면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을 뿐더러 방사능오염의 정도와 건강에 미친 영향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식품에서 방사능 물질이 발견되는 등의 단편적인 소식만 전해질 뿐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현재 어떤 상황일까. 은 14일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가 주최한 '미래 세대를 위한 한일 원전정책의 길' 강연자로 한국을 방문한 이마나카 데츠지 씨와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일본의 상황을 들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의 조교로 방사능 오염 사고를 연구해온전문가다. 그는 원폭이 있었던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최악의 원전 사고가 일어난 체르노빌, 핵무기 실험 장소로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있었던 세미 팔라틴스크 지역 등에서 방사능 영향 조사 등을 벌여왔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는 일본의 피해 지역 역시 예정에 없던 연구대상으로 추가됐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지난 3월 후쿠시마 사고 직후 인근의 이이다테무라 지역의 방사능 오염도를 조사하고 실태를 알려 일본 정부가 '피난 지역'으로 지정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교토대학 원자로 실험소에는 이마나카 데츠지 씨 외에도 고이데 히로아키 등 원자력 이용의 위험성을 연구해온 연구자가 6명이 있다. 원자로 실험소가 있는 지역 명칭인 쿠마토리(熊取)를 따 '쿠마토리 6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일본의 원전 정책을 비판하는데 앞장서 왔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이번 사고 역시 "인재"라고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사고 직후 정보를 공개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거듭 비판했다.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당장 방사선 노출로 인한 급성 방사성 장애가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향후 4~5년 후에는 만발성 장애를 걱정해야 할 것"이라며 "이미 위험을 완전히 피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시민들이 방사능에 대한 상식을 갖추고 스스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지역의 오염에 대해서는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이 유출됐던 체르노빌과 달리 반감기가 짧은 세슘이 주로 유출됐기 때문에 향후 10년 후에는 안정적인 수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자력 전공자 가운데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이마나카 데츠지 씨를 비롯한 '쿠마토리 6인'은 특이한 존재다. 그는 "원자력 학회는 과학을 목적으로 한 학회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일본의 원자력촌(村, 원자력 마피아를 지칭)을 움직이는 것은 '언제든 핵무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핵 옵션"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기는 기회'라며 원자력 산업 확대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에 대해 뭐라 할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여전히 원자력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이는 역시 흉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다음은 이마나카 데츠지 씨와의 인터뷰 전문. (편집자)


▲ 이마나카 데츠지 씨 ⓒ프레시안(최형락)

"후쿠시마도 사고도 '인재'다"

프레시안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인 3월 말 이이다테무라에서 직접 방사능 오염 자체 조사를 실시했다고 들었다. 현장을 가보니 당시 상황이 어땠나?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반경 20km 이내의 7~8만 명 정도가 피난을 갔는데. 오염 상황이 어떤지에 관한 정보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조사했던 이이다테무라는 후쿠시마에서 30~40km 떨어진 곳으로 오염이 심한 곳이었다. 실제로 깜짝 놀랄 정도로 높은 수치가 나왔다. 내가 일하는 원자로 실험소에서도 시간당 20마이크로시버트 이상 나오는 곳은 '고선량 지역'이라고 해서 특별한 표시가 있고 우리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이다테무라에서는 높은 곳은 한 시간당 30마이크로시버트까지 나왔다. 이런 곳을 어린이나 노인들까지 평상시와 똑같이 활동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프레시안 : 사고 직후에 일본 정부가 오염도를 조사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마나카 데츠지 : 당시 우리 조사팀은 이이다테무라의 전체적인 오염도를 바로 발표했다. 이곳은 일본의 허술한 방제 대책 지침에 비추어도 바로 피난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정부 쪽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서 4월 22일에 계획적 피난 지역으로 지정됐다. 그 이후 6000명의 마을 사람들이 피난했다. 정부의 오염에 대한 대응이 이토록 늦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분명 대책 본부는 오염이 이렇게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정보 공개도 하지 않았고, 피난을 가라거나 외출을 삼가라, 식품을 조심하라는 등의 주의도 하지 않았다. 그 책임 관계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프레시안 : 보통 원자력 추진파에서는 '체르노빌은 인재에 의한 것이고 후쿠시마는 천재다'라고 한다. 체르노빌 사고등 원자력 발전소 사고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 사고도 분명 인재다. 물론 지진과 쓰나미가 계기가 됐지만, 원전 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더 갖고 있었다면 그런 사태는 쉽게 예측을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 지방 사람들은 50년이나 100년 한번씩 쓰나미가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후쿠시마에 원전을 설계하는 사람이 쓰나미에 대한 대책을 아무것도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마땅히 세웠어야 할 대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피해의 정도로 비교하면 어떤가? 후쿠시마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를 넘어서는 피해를 미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프레시안(최형락)
이마나카 데츠지 :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고 간의 중요한 차이는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의 오염 간의 차이다. 후쿠시마 사고의 경우 방출된 주된 방사선 물질이 세슘이고 스트론튬이나 플로토늄은 적다. 세슘134와 세슘137은 각각 반감기가 2년과 30년이기 때문에 앞으로 한 10년이 지나면 안정적인 수치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체르노빌의 경우는 반감기가 2만 4000년인 플로토늄이 확산됐기 때문에 차이가 크다.

원자로 자체가 폭발한 체르노빌과 멜트다운 이후 주로 휘발성 방사성 물질이 나온 후쿠시마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트론튬과 플로토늄은 비등점이 높아 날아가지 않고 많이 원자로 내에 남았다. 그래서 체르노빌에 비해 후쿠시마는 비교적 처리하기 쉬운 오염이라고 본다.

"앞으로 만발성 방사성 장애를 걱정해야 한다"

프레시안 : 많은 수의 주민들이 이이다테무라처럼 심각한 방사능 오염이 된 곳에서 일상 생활을 했고, 일부는 지금도 하고 있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주민들의 건강에 방사능 관련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이마나카 데츠지 : 사고 직후에 에다노 관방장관이 계속 말했듯이 지금의 방사능 오염은 즉각 몸에 영향이 나타나는 수준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후에 나타날 백혈병이나 암에 대한 대책을 빨리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피폭에 대한 건강 영향을 생각할 때는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일단 한꺼번에 많은 양을 피폭당했을 때 나타나는 급성 방사성 장애가 있다. 이것은 한꺼번에 500미리시버트 정도를 맞아야 나타나는 증상이다. 나도 주민들이 그렇게까지 심한 피폭을 당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중에 증상이 나타나는 만발성 방사선 장애는 우려할만하다.

체르노빌의 경우 요오드131에 피폭되서 사건 4년 후부터 갑상선암이 많이 발생했다. 요오드131 같은 경우 반감기가 8일이라, 일찍 줄어드는 만큼 빨리 대응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암에 걸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안 했고, 우려스럽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최근 후쿠시마 제1원전 현장소장이 식도암에 걸린 것으로 드러나고, 후쿠시마 채소를 시식한 방송 캐스터가 급성 백혈병에 걸리는 등의 사건들은 어떻게 봐야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전문가로서 의견은 말씀드리자면 후쿠시마 사고와 발병 간에 관계는 없다고 본다. 체르노빌의 경우 방사선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아이들이 암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 4년 후다. 사고 영향을 보려면 5년, 10년 단위로 시간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관계가 없다고 본다. 다만 요시다 제1원전 현장소장 같은 경우는 9개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을 했고, 그 스트레스가 암을 키웠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급성 백혈병이 걸린 캐스터는 원인을 잘 모르겠다.

"이제, 완전히 오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프레시안 : 최근 일본 최대 식품회사인 메이지에서 만든 분유에서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 아무래도 식품 오염에 대한 우려가 높을 텐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이것은 너무 민감하고 심각한 문제라 쉽게 답하기 어렵다. 일본 전국의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들이 걱정이 많고, 전국으로 강연을 다닐 때마다 관련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그 때마다 '이미 오염되버렸기 때문에 완전히 오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한다. 도쿄에서 후쿠시마에 걸친 동북 지방, 태평양 쪽에는 무시할 수 없는 오염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제 하는 수 없으니 베크럴, 시버트 라는 말에 익숙해지세요. 그리고 만발성 암이나 나중에 나타날 위험에 대비하도록 합시다'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기준치다. 일본 정부는 1kg에 500베크렐을 잠정 기준치로 정하고 그 이상의 식품에 유통을 금지시키고 '1kg당 500베크렐 이하는 안전하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한다. 일본 시민들이 다들 '이건 아닌거 같다'고 느끼고 있다.. 501베크렐이면 위험하고 499베크렐은 안전한가. 그럴 수는 없다. 방사능은 노출양에 따라 위험도가 높아지는 비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501베크렐이면 501베크렐의 위험성이 있고, 10베크렐이면 그만큼의 위험이 있다. 즉 안전하다, 위험하다는 기준으로 선을 긋는 것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의 오염을 참을 것인가, 인내를 강요당하고 있는가라는 문제다. 나와 같은 전문가들은 그간 연구해왔던 것에서 이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의 판단은 각각 개인이 해야한다.

물론 일반인들이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1년간 1미리시버트가 가장 적절한 기준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연간 1미리시버트는 원자로 규제법 그리고 방사선 장해 방지법 등에서 일반 사람들의 연간 한계치로 설정된 수치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맞고 있는 자연 방사선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1년간 1미리시버트 정도다. 따라서 우리가 얼마나 참을지를 생각하는 출발점으로서 1미리시버트의 수치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방사능에 안전한 역치는 없으며 위험은 방사능 노출과 비례 관계를 가진다'는 주장은 국제적으로는 공인된 이론이라고 하나 한국에서는 일부 의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은 어떤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저선량 피폭은 건강에 위험이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늘어나서 놀랐다. 너무 신기하다. 그러나 암이나 급성 백혈병 등이나 역학 데이터 등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선형 모델이 가장 합리적이고 반박의 여지 없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자연 방사선에 의해서도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사실상 대책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더라도, 방사능의 건강 영향을 생각할 대는 피폭선량을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이미 도쿄도 오염 지역이 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도쿄 지역의 오염은 어느정도인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단 3월 15일에 도쿄에서도 높은 방사능 수치가 관측 됐는데 그때도 정부는 '마스크를 착용하라', '외출을 삼가하라'는 대책은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은 지적해야 한다고 본다. 이후 3월 20일과 22일 내린 비로 오염 먼지가 떨어져서 땅이 오염됐다. 이렇게 도쿄에도 오염이 있지만 피난 가야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구석구석에 '핫스팟'이 있기 때문에 시청등이 나서서 오염제거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가령 도쿄와 같은 도시에는 비가 내리면 아스팔트의 물이 배수구로 쓸려가면서 배수구에서 오염이 집중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오염이 심한 지역이 국소적으로 생기게 되는 셈이다. 도쿄 주민들로서는 오염이 심할지도 모르는 곳에서 사는 것이 불안할 텐데, 그래서 집 주변의 어디가 오염이 됐는지를 제대로 측정, 조사하는게 중요하다고 권하고 있다. 도쿄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어른이라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프레시안 : 도쿄전력이 원전 내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 처리한 후 바다로 방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혀서, 어민단체나 한국이나 중국 등 인접 국가에서 우려하고 있다. 추가 오염의 우려는 없을까?

이마나카 데츠지 : 결국 방사능 농도가 문제일텐데 상당부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제염 이후의 방사능 농도를 알 수 없으니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는 제염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들 뿐 농도를 낮춘 물을 방출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법에서 정해진 배출 기준치 이하라면 내보낼 수 있다. 기준치 이하로 낮춘다면 3월에 방출된 오염수의 방사능 양에 비해서는 100만분의 1이라든가 1000만분의 1수준이 될 것이다. 다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고 문제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촌(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핵 옵션'"

프레시안 : 이마나카 데츠지 씨의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한국의 경우 원자력을 전공한 학자 중에서는 원자력에 비판적인 분들이 하나도 없다. 원자력 학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일본의 경우는 어떤지?

이마나카 데츠지 : 일본도 마찬가지다. 나도 원자력학회의 한 멤버지만 이상한 사람일 뿐이다. 나는 20년 동안 학회 모임에 참석을 안했다. 원자력학회는 원래 원자력을 추진하는 학회로, 그런 의미에서 과학을 목적으로 한 학회가 아니다. 원자력 추진은 기술개발에만 치중된다. 요즘 들어 잘 알려진 대로 원자력학회도 원자력촌(村), 원자력 마피아의 일각이다. 원자력 학회가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신화를 만들어낸 주범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마나카 데츠지 씨는 어떻게 원자력에 비판적인 원자력 전문가가 되셨는가.

이마나카 데츠지 :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원자력은 원자력학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꿈의 미래에너지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닐 즈음에 각지에 원자력발전소가 건설되자 반대 운동도 곳곳에서 일어났다. 주민들의 이야기는 이랬다. '전력회사는 원전이 들어오면 절대 사고도 안 나고, 일자리도 생기고 돈이 들어오는 등 지역에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하는데, 이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 좋은 곳을 왜 시골에 짓는가.' 그래서 알아보니 사고가 났을 경우 엄청난 피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됐다. 30년 전에 정부와 전력회사가 돈과 권력의 힘으로 억지로 시골에 떠맡기려 한다는 것을 간파했고 나는 '만약 사고가 일어나면 어떤 피해가 나는가'를 제대로 연구해보기로 했다. 이게 시작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원자력 추진파는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원인이 뭘까?

이마나카 데츠지 : 애초에 일본의 원자력 개발은 '핵의 평화 이용'이라는 미명 하에 추진됐다. 이 논리에는 '원자력은 좋은 것이다'라는 선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나는 '상업 이용'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원자력 개발 과정에서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그 이권과 연결된 정치인, 예산을 쥐고 있는 관리, 연구 예산이 필요한 학자, 지원금을 끌어오려는 지자체장, 광고비를 원하는 언론 등이 얽히고 설킨 일종의 공동체, 원자력촌(村)이 형성됐다. 만약 관료든, 교수든, 언론이든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면 왕따당하거나 조직에서 쫓겨나거나 광고비를 받지 못한다.

이렇게 자기들끼로 돌고도는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만약의 경우 일본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핵 옵션'이다. 1968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일본은 핵무기를 가지지 않고, 만들지 않고,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3원칙을 발표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실제 결정은 '지금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지만, 만약의 경우 언제든 가질 수 있도록 기술을 보유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고속증식로, 재처리, 농축우라늄 제조 등 이 세가지 기술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기술이다. '언제든 가능하도록 기술을 갖고 있는다'는 기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원자력촌을 유지하는 하나의 큰 이유다.

프레시안 : 페쇄적인 원자력 학계에서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이마나카 데츠지 :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만약 내가 도쿄대학에 있으면서 그런 연구를 했으면 왕따를 당하거나 쫓겨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토대학은 칭찬해주지도 않았지만. 야단 맞을 일도 없었다. '그 문제는 그것대로 중요하니까 해보라'는 식이었다. 직장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함께 연구한 동료들이 여섯 명이 있었다. (이들을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가 있는 쿠마토리(熊取)의 지명을 따 '쿠마토리 6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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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우리는 '원전은 위험하다'는 경종을 울려왔지만, 실제로 이런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줄은 생각 못했다. 머리로는 '반드시 사고가 일어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그래도 몰랐다. 그래서 사고 후 몇달 간은 마치 꿈속에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이제는 좀 정신을 차렸지만. 2,3개월 동안 영화속에서 사는 느낌이었다. 나는 일반 시민들에게 강의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 체르노빌도 사고 이전과 이후 시대가 달라졌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이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전을 짓고 추진해 온 그 빚을 갚게 된 것 아닌가요"

프레시안 : '다른 시대를 살고있다'고 하셨지만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위기는 기회다'라며 원자력 발전을 오히려 확대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마나카 데츠지 : 내가 한국에 대해 뭐라 운운할 입장은 아니지만, 일본도 역시 원자력을 수출하려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너무나 흉하다. 우리는 일본 원전의 안전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원전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러한 검토는 전혀 없이 당장 경제만 생각해서 '원전 수출' 등을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위험을 진다는 것이고, 그런 위험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한 다음에 시민들이 추진할지 말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 아직 어느나라도 폐기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폐기물도 처리하지 못하는 에너지원을 쓰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일본은 4개의 원자로가 파괴도어 앞으로 40~50년 간은 폐기물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현재 일본은 54기의 원자로 가운데 40여 개가 원전이 정지된 상태다. 우리는 이 기회에 다 정지시키는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진짜 우리가 원전을 필요로 하는지, 아닌지가 확실해진다. 결정단위는 물론 지역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보고 나서, 모든 시민들이 '원자력 괜찮다'고 하면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 원자력의 안전성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이제까지 원자력 사고는 원자력발전소가 많은 순서대로 일어났다. 다음은 한국이다'라는 주장을 많이 한다. 정부나 원자력 학계는 인정하지 않지만.

이마나카 데츠지 :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지진이 일어나던 3월 11일에 나는 간사이 공항에 우크라이나에서 온 손님을 모시러 갔다. 체르노빌 25주년을 맞아 키에프의 친구를초대해서 세미나를 열려고 했다. 그 친구가 온 다음날 사고가 일어났고, 15일 히로시마로 가는 기차안에서 NHK와 그 친구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지난 40년 간 많은 원전을 짓고 추진해 온 일본이 이제 그 빚을 갚을 때가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살아남있으니까 일본 사람들도 살아남겠지요'라고 말하더라. 눈물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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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독일의 사례와 같은 탈핵은 가능할까?

이마나카 데츠지 :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전문가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그 쪽으로 가는 흐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너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런 에너지를 낭비하는 생활을 바꿔가는 것을 통해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채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