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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4일 일요일

비공개, 거짓말 그리고 꼼수


이글은 한겨레21 2013-04-08일자 제955호 기사 '비공개, 거짓말 그리고 꼼수'를 퍼왔습니다.
[줌인] 1968년 울릉도 앞바다에 45t 핵폐기물 해양투기한 정부… 주민 동의 없이 밀실서 추진돼 갈등만 낳은 핵폐기물 정책 30년

1968년 어느 날, 울릉도에서 서남쪽 11해리(약 20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해군 함정이 멈춰 섰다. 이윽고 배에서 쏟아져나온 드럼통 20개가 수심 2200m 아래로 가라앉았다. 핵발전소가 없던 시절, 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가 연구용 원자로 등을 운용하면서 생긴 핵폐기물이었다. 이 사실은 23년이 지나서야 1991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폐기물 관련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 알려졌다. 대중은 분노했다. 당시 핵폐기물 관리부처였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뒤늦게 “1968년부터 1972년까지 200ℓ 용량 철제 드럼통 115개(총 45t)를 버렸다”며 “1974년 IAEA가 수심 4천m 이상 깊은 바다에만 해양투기를 허용해 동해안을 대상으로 한 폐기물 처분을 포기했다”고 해명했다. 우리나라에 핵폐기물을 둘러싼 논란의 서막을 알리는 첫 사건이었다.

»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들어서고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운영동굴 건설 현장의 모습. 2010년 6월 완공하기로 했던 이곳은 현재 낮은 암질 등급에 따른 보강 작업 등으로 준공일이 두 차례 미뤄져 2014년 6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제공


YS 때 ‘지역개발 사업’ 미끼와 함께 추진

정부가 핵폐기물 처리 논의를 시작한 건, 국내 최초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1978년)가 가동되면서부터다. 고리 1·2호기만 있던 지난 1983년 과학기술처는 ‘방사성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세우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육지 처분을 하며 핵발전소 부지 바깥에 중앙집중식 영구처분장(이하 핵처분장)으로 세운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핵폐기물 관리는 국가 주도의 비영리 운영관리기구가 하고, 기술 개발이 필요한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관리대책은 나중에 별도로 세운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곧바로 핵처분장이 들어설 후보지를 골랐다. 1986년 경북의 울진군, 영덕군, 영일군(현 포항시)이 최종 후보지에 올랐다.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였다. 주민들도 몰랐던 후보지 선정은 격렬한 반대로 이어졌다. 언론을 통해 후보지 1순위로 알려진 영덕에서는 3천여 명이 모인 사실상 최초의 핵처분장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정부는 물러섰다. 20년 넘게 이어질 갈등의 씨앗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영덕 카드’를 버린 정부는 제2의 원자력연구소 부지를 포함한 핵처분장 시설 건설에 나섰다. 물론 이번에도 철저히 비공개였다. 정부는 1990년 발표한 안면도 종합개발계획에 ‘서해과학연구단지’ 계획을 추가했다. 충남 태안군(안면도)에 들어서는 연구시설에는 핵처분장도 있었다.
그러나 꼼수는 오래가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핵처분장이 들어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안면도에서는 거센 시위가 벌어졌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경찰서 건물은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다. 결국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이 직접 나서 해명을 했다. “핵폐기물 영구처분장 설치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주민들의 오해가 풀리지 않는 한 안면도에 어떠한 신규 시설도 설치하지 않겠다.”
안면도의 핵처분장 진통은 계속됐다. 정부는 1991년 말 세 번째 핵처분장 후보지로 강원도 고성군·양양군, 경북 울진군·영일군, 전남 장흥군, 충남 태안군 등 6곳을 뽑았다. 당시 안면도의 일부 주민은 직접 유치 신청을 했는데, 얼마 뒤 이들이 원자력연구소의 돈을 받고 유치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세 번째 핵처분장 후보지 계획은 큰 논란에 휩싸이면서 무산됐다.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핵처분장 계획은 ‘지역개발 사업’이라는 미끼와 함께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방촉법(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의 촉진 및 시설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해 핵처분장이 있는 지역에 해마다 최대 50억원, 운영기간 가운데 30년 동안 연간 최대 30억원까지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1994년 정부는 9곳의 후보지 가운데 6가구만 사는 인천시 옹진군 굴업도를 최종 후보지로 선정했다. 지역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여전히 주민 합의 없이 진행한 후보지 선정은 인천과 주변 섬 주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굴업도 후보지는 주민 반대가 아닌 핵처분장 부지로 부적절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사업이 좌초했다. 정부는 신뢰성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 결과, 핵처분장 사업 주체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공사(현 한국수력원자력)로, 담당 부처도 과학기술처에서 통상산업부로 옮겨졌다.

경주, 준공일 잇단 연기에 안전성 논란

10년 넘게 핵처분장 사업은 밀실 추진→주민 반대→백지화라는 쳇바퀴를 돌았다. 한전은 후보지를 공개적으로 공모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2001년까지 어느 도시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사업자가 후보지를 정하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해 부지를 선정하기로 했다. 논란이 뻔한 결정 방식을 밀어붙였다. 2003년 전남 영광군, 경북 울진군·영덕군, 전북 고창군 등 4곳이 후보지가 됐다. 정부에서는 10개 부처 장관이 나서 읍소를 했다. “특별지원금 3천억원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양성자 가속기 사업 신청시 특별가산금을 부여하겠다. 정부가 책임지고 지역 숙원사업을 지원하겠다.”
후보지 4곳에서 논란이 거센 가운데, 김종규 전북 부안군수가 핵처분장 유치신청서를 냈다. 이른바 ‘부안 사태’의 잘못된 단추가 끼워지는 순간이었다. 지역의 동의 없이 진행한 유치 신청은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집회로 이어졌다. 고건 국무총리가 나섰지만 중재에 실패했다. 반년 넘게 이어진 부안 사태는 2004년 열린 주민투표에서 투표자 91.83%의 유치 반대를 끝으로 가라앉았다.
“한반도 비핵화 등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고준위 방폐장을 논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고준위는 공론화 이후 중·저준위 폐기장 건설지역이 아닌 별도의 지역을 선정한다는 것이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다.”(2005년 2월21일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간부회의 발언) 핵처분장 논란이 20년 넘게 사회적 문제로 떠돌자 참여정부는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보다 상대적으로 방사능이 낮은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분장부터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의가 한참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2005년 전북 군산시, 경북 영덕군·포항시·경주시 등이 후보지 신청을 하고, 결국 경주가 투표자 89.5%의 찬성을 얻어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건설을 시작했다.
전국에 들불처럼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 핵처분장 논란은 후보지 선정 뒤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핵처분장이 들어서는 경주에서 시설의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완공을 목표로 시작한 공사는 “진입 동굴의 암질 등급이 예상보다 낮아 파 들어가는 속도가 느리고,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며 준공 목표시기가 2012년 12월로 미뤄졌다. 올해 1월엔 보강 작업 등을 이유로 준공일을 2014년 6월로 한 차례 더 미뤘다. 핵처분장이 들어설 만큼 안전한 지역이냐는 의문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 복잡한 논쟁 남아

30년을 헤맨 핵처분장 사업은 이제 그동안 미뤄둔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에 대한 논의와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처분할지 재처리할지, 이를 위해 핵발전소를 더 지을지 말지 등 복잡한 논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의 테이블을 펼치기에 앞서 정부는 지난 30년 동안 전국에 뿌려놓은 세 단어를 곱씹어야 할 듯하다. 비공개, 거짓말 그리고 꼼수 말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2012년 7월 5일 목요일

[사설]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아니라 재검토 필요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7-04일자 사설 '[사설]고리원전 1호기 재가동 아니라 재검토 필요하다'를 퍼왔습니다.

어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허용했다. ‘후쿠시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정전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가동이 중지된 지 4개월도 안돼 내린 결정이다. 안전위는 “전력계통, 원자로 압력용기, 장기가동 관련 주요 설비, 제도 개선 측면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하나 주민 불안과 불신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킨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리1호기의 안전성 문제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이미 끝난 설계수명을 연장한 ‘노후 원전’이며, 전체 사고·고장 건수의 20%를 차지하는 ‘사고 원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중고부품, 짝퉁부품, 납품비리 등으로 ‘비리 원전’이라는 오명까지 얻고 있다. 그제는 고리원전 반경 5㎞ 안에 20년 이상 살았던 일가족 3명이 “원전 때문에 암과 자폐에 걸렸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사고 위험과 주민 건강 피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서둘러 ‘안전성 확보’ 결정을 내린 까닭이 궁금하다.

더 큰 문제는 ‘은폐 원전’이라는 또 다른 오명과 관련된 것이다. 지난 2월 정전사건 은폐와 같은 비밀주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수명 연장을 결정한 근거인 안전성 평가와 관련한 3가지 보고서마저 국회와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초적인 정보마저 숨긴 채 “안전하다”고 하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런 평가가 정전사건을 일으킨 비상디젤발전기 등의 문제를 잡아내지 못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의해 또다시 내려졌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이번 회의에 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방청을 거부한 것도 문제가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원자력추진위원회’ ‘원자력불안전위원회’라는 소리를 듣는 데는 이런 비밀주의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식경제부는 안전위의 승인에도 불구하고 주민 반발을 감안해 고리1호기를 즉시 재가동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재가동에 앞서 주민 신뢰를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투명하지 않고 안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고리1호기를 이대로 재가동해서는 안된다. 당장은 재가동이 아니라 재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원전이 결코 에너지를 값싸고 친환경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아닌 만큼 원전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 국가 에너지 수급 대책을 새로 짜야 할 것이다.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사설] 불안 해소 대신 불신 더한 고리 1호기 안전점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11일자 사설 '[사설] 불안 해소 대신 불신 더한 고리 1호기 안전점검'을 퍼왔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점검단이 어제 고리원전 1호기의 발전설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국제 수준의 안전성을 검증받는다며 원자력기구에 점검을 의뢰할 때부터 예견됐던 결과다. 가재가 게 편이듯 원자력기구가 원자력 산업계의 이익을 감싸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 평가를 근거로 원전을 재가동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원자력기구는 설계수명이 다한 각국의 원전에 대해 수십 차례 안전점검을 해왔지만 지금까지 폐기를 권고하거나 중차대한 결격사유를 지적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이 기구의 안전점검으로 수명을 연장한 뒤 원자로가 폭발하고 핵연료가 녹는 참사가 발생했다. 원자력기구의 성격이나 과거 사례를 보면 안전점검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 이번 점검단도 8명 중 4명이 원전 산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며 치밀한 조사를 하기에는 인적으로나 시간상으로 불가능했다. 한수원 내부적으로 고리 1호기를 어떻게든 재가동하기로 작정하고 형식적인 절차로 점검을 요청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원자력기구 점검단은 고리 1호기에 대해 노후설비 교체와 설비 개선 등이 꾸준히 수행되고 있으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폭넓은 안전성 강화 대책이 수립돼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2월 정전사고 때 비상발전기가 한 대는 정비중이었고 한 대는 고장이 나 아찔한 상황을 겪었는데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정전이 더 길어졌다면 원자로 노심이 녹을 수도 있는 중대 사고였기에 지역 주민을 위시한 온 국민이 몹시 불안해하건만, 불안 해소는커녕 불신을 얹어준 꼴이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국내에서 처음 가동한 뒤 지금까지 집계된 원전 사고의 20%를 일으켜 사고 1등의 오명을 얻고 있다. 한수원은 수명 연장 당시 고리 1호기의 노후 부품을 교체해 껍데기는 낡아도 엔진은 튼튼하다고 강변한다. 원전 부품은 수만 가지에 이르는데 모든 부품을 교체한 게 아니고 작은 고장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수명 연장 검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자로를 둘러싸고 있는 압력용기의 내구성이다. 압력용기는 장시간 방사능에 노출되면 중성자로 인해 깨지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그것이 파괴검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비파괴검사로 운전 허가를 받았다고 하니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리 1호기뿐만 아니라 올해 말로 30년 수명이 다하는 월성 1호기도 재가동이 아닌 폐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설]“고리 1호기 상태 양호” 과연 믿을 수 있나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11일자 사설 '[사설]“고리 1호기 상태 양호” 과연 믿을 수 있나'를 퍼왔습니다.

고리원전 1호기의 안전 점검을 실시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어제 “지난 2월 발생한 정전 사고의 원인이던 비상디젤발전기를 포함한 설비 상태가 양호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IAEA의 발표는 고리 1호기의 재가동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들은 “IAEA의 안전 점검은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폐쇄할 것을 촉구했다. IAEA의 안전 점검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고리 1호기의 안전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증폭될 것이 뻔하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섣불리 재가동을 결정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7개국 8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IAEA 점검단은 한수원의 요청으로 지난 4일부터 고리원전 1호기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했다. 주민들이 IAEA의 점검을 불신하는 것은 IAEA가 핵발전의 안전보다 핵발전의 필요성을 우선하는 기구로 보기 때문이다. 과거 굴업도와 경주방폐장 부지 등 국내 핵시설에 대한 안전 점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든다. 이번 점검단의 전문성과 짧은 현장점검 기간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IAEA의 안전 점검은 고리 1호기 재가동을 위한 요식적이고 형식적인 점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리원전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07년 30년 설계수명을 다했으나, 수명을 10년 연장하면서 안전성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동안 고리 1호기에서 발생한 사고는 국내 전체 원전 사고의 20%를 차지한다. 지난 2월에는 외부전원 공급장치인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는 심각한 사고까지 발생했다. 최근 고리 1호기에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와 같은 방사성 물질이 방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사망자는 최대 90만명, 경제적 피해는 628조원에 이른다는 모의 실험 결과도 나왔다. 한수원은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고리 1호기에는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IAEA 안전 점검단은 고리원전 1호기의 운전 연수 경과에 따른 설비 관리가 IAEA가 제시한 국제기준에 만족하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의 폭넓은 안전조치는 우수 사례로 추천한다고도 했다. 한수원은 “IAEA가 점검 착수 전 두 달간 방대한 자료를 검토해 8일간의 현장점검 기간은 부족하지 않다” “IAEA는 모든 나라가 공인하는 원자력 안전 부문의 최고, 최후의 기관”이라고 해명했다. IAEA는 믿을 만한 전문기관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이 고리 1호기의 안전을 신뢰하지 못하는 한 재가동해선 안된다고 본다. 당장 폐쇄가 어렵다면 적어도 이들이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안전 점검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이 아니라 국민 안전이다.

2012년 6월 4일 월요일

고리1호기, IAEA 안전점검...지역사회 반발 거세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6-03일자 기사 '고리1호기, IAEA 안전점검...지역사회 반발 거세'를 퍼왔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4일부터 11일까지 부산시 기장군 소재 고리원자력본부 원전 1호기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점검을 받는다고 3일 밝히자, 지역주민들은 이번 안전점검이 노후 원전인 고리1호기를 계속 운전하기 위한 형식적 절차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각 군의회, 환경단체 등은 결의안과 성명 등을 통해 "IAEA 안전점검은 그동안 많은 사고가 끊이지 않은 고리1호기가 수명을 다했는 데도 계속 운전하려는 한수원의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더는 노후 원전사고를 걱정하며 주민들을 위험에 무방비로 놔둘 수 없다. 고리 1호기를 폐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수원 측은 이번 안전점검이 자치단체와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의 우려와 관심을 고려해 객관적으로 국제 수준의 안전성을 검증받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AEA는 점검단에 원자력시설안전국 과장 미로슬라브 리파르(Miroslav Lipar)를 단장으로 선임했고, 7개국 8명의 국재원자력 안전전문가들로 구성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이번 점검단은 고리1호기 사건의 발단이 된 비상 디젤발전기와 전력계통의 안전성을 집중점검하고, 원자로 압력용기의 건전성, 운전수명을 넘긴 설비 상태 관리, 한수원 안전성 강화조치의 적절성을 조사할 예정이다.

강경훈 기자 qwereer@vop.co.kr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사설] 고리원전 점검 국제원자력기구에 맡길 수 없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4-13일자 사설 '[사설] 고리원전 점검 국제원자력기구에 맡길 수 없다'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고리원전 1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특별점검을 맡겨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독단으로 재가동을 시작하지 않겠으며 점검 결과에 따라서는 원전 폐쇄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도 국제원자력기구 점검을 요구한 바 있어 절차를 신중히 밟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재가동을 위한 명분을 찾으려는 요식행위로 보인다. 그런 편법을 쓰지 말고 고리 1호기는 폐쇄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핵무기 사찰 관련 감시를 주로 하는 곳으로 원전 안전에 대해서는 기대할 게 별로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폐쇄 권고를 한 번도 하지 않을 정도로 해당 국가의 의중을 따랐으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원전 옹호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말이 특별점검이지 6월3일부터 10일까지 8명이 방문해 진행한다고 하니 지극히 형식적인 점검이 될 수밖에 없다. 신뢰성도 부족하고 실효성도 없는 점검 결과를 재가동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기장읍 주민들이 국제원자력기구 얘기를 꺼낸 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믿지 못해 답답한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것이다. 주민들은 불안해서 못 살겠다며 고리 1호기의 즉각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1978년 이래 35년 동안이나 가동된 고리 1호기는 원자로의 핵심인 원자로 용기의 ‘중성자 조사 취화’가 상당히 진행돼 금속이 쉽게 깨질 수 있는 상태라고 한다. 원자로는 핵분열하는 핵연료봉을 보호하기 위해 두께 20㎝의 강철로 만들어져 있지만 수십년간 고온·고압 상태에서 중성자를 비롯한 방사선에 노출돼 점차 약화돼 간다. 지난 2007년 고리 1호기 안전성 심사 결과 보고서는 원자로 용기에 그런 문제가 있지만 다른 검사 결과에선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됐다며 수명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
고리 1호기에선 지난 2월 외부 전원공급장치인 비상디젤발전기가 가동되지 않는 중대사고가 일어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 쪽은 사고 사실조차 조직적으로 은폐했고, 지식경제부는 김종신 한수원 사장을 원전의 안정화가 우선이라는 이유로 문책도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선 안 된다. 관련자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주민 참여 아래 투명하고 객관적인 안전진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
고리 1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전체 발전량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원전 53기의 가동을 중단한 일본도 수요관리로 해결하고 있다. 인구 밀집지역에서 굳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불안하게 운영할 이유가 없다.

2012년 4월 4일 수요일

광명성 발사 둘러싼 미국 태도가 수상해


이글은 시사인 2012-04-04일자 기사 '광명성 발사 둘러싼 미국 태도가 수상해'를 퍼왔습니다.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한다고 하자 북·미 합의를 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해 12월 발사 계획을 미국에 통보했다. 미국은 핵 사찰에 급급해 막지 않았다.

북한이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기인 4·15 전후에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하자 모든 시선이 북한의 의도에 쏠렸다. 미국과 맺은 ‘2·29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 뭐하는 짓이냐는 투다. ‘북한은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계속 드러남에 따라, 이상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라는 의문이 커져간다.

처음에는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는 북한의 발표가 2·29 합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2·29 합의에는 미사일 발사를 유예한다는 표현은 있지만,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즉 그동안의 북·미 합의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모든 미사일’이라는 말 대신 이번에는 ‘장거리 미사일’이라고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Reuter=Newsis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인민군 육·해·공 합동 타격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북한이 발사하고자 하는 게 미사일이냐, 인공위성이냐 하는 것은 북·미 양측의 해묵은 쟁점이기 때문에, 미국이 실수로 ‘모든’이라는 말을 빼먹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올해 4·15를 전후해 광명성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흘 전인 지난해 12월14일(현지 시각 12월15일) 미국에 통보했다는 워싱턴발 뉴스가 나왔다. 미국은 이미 지난 연말에 북한의 인공위성 계획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문투성이인 북·미 3차 고위급 회담

여기서부터 또 다른 의문이 시작된다. 지난해 12월14일이면 10월24~25일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2차 고위급 회담으로부터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시점이다. 당시 2차 고위급 회담에서 접점 마련에 실패한 양측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전 3차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을 열어 식량 지원과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기로 합의했다. 비록 광명성 발사 계획이 별도 채널로 통보됐다고 하지만, 이런 중대한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북·미 회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미국 측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예로 볼 때 단순히 우려 수준에서 그칠 문제가 아닐 터이다.

이어 2월23~24일 베이징에서 3차 고위급 회담이 열려 북·미 간에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24만t의 영양식품을 제공하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및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을 유예하며, 이를 검증하고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 3차 고위급 회담에 이르면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이 회담의 여러 가지 점이 그동안의 북·미 회담과 달랐다. 이 외교 소식통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먼저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사이의 정식 회담(2월23~24일)에 앞서 2월15일에서 18일 사이에 막전 실무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대부분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부터 특이하다. 합의 내용이나 그 이후의 진행 경과 등도 의문투성이다. 공식 발표문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24만t 규모의 영양식을 지원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5만t 많은 29만t의 밀이나 밀가루를 지원하기로 이면 합의가 이뤄졌다. 3차 회담에 앞서 북한은 30만t을 요구했고 미국은 24만t을 주장했는데 언론 발표와 달리 실제로 북한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준 셈이다. 그래놓고도 정작 그동안 북·미 합의에서 단골로 사용해온 ‘모든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빠졌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회담에서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반대하기로 했으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다음, 또 하나 주목할 게 바로 6자회담 시기다. 6월 중순으로 잡았다고 하는데, 물론 미국 대선 스케줄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광명성 3호 발사 파동을 미리 예상하고 이렇게 멀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서 발행하는 영문판인 역시 3월20일자에서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즉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할 경우 “미국이 초기에는 식량 지원 의사를 철회하는 등 긴장 국면이 되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이번 사안으로 발생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 간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AP Photo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2010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 다음의 과정도 통상적인 북·미 합의와 매우 달랐다. 2월24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마쳤는데 통상 그 자리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해야 함에도 이번에는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닷새나 지난 2월29일 회담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합의 내용을 둘러싸고 그만큼 진통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회담이었던 셈이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미리 통보한 상태에서 열렸음에도 이를 저지하지도 못했고, 미국은 대외적인 체면만 겨우 유지했을 뿐, 내용상으로는 북한에 큰 폭으로 양보했다. 미국이 갑자기 마음씨 좋은 ‘엉클 샘’이라도 됐단 말인가?

미국을 초조하게 만드는 북한 UEP

미국은 왜 이렇게 엉터리 합의를 했을까. 바로 그 핵심에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문제가 있다. “지금 미국의 관심은 오로지 UEP다. 북한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초조감이야말로 현재 북·미 간에 벌어지고 있는 미스터리를 이해하게 하는 단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미국의 최대 관심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하루바삐 IAEA 사찰단을 보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다행히 북한도 보여주겠다고 하니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식량 지원은 그 ‘참관 비용’인 셈이다. 광명성 발사 계획? ‘잔소리’는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쓰기 어렵다. 자칫 이걸 물고 늘어졌다가 판이 깨지면 오히려 낭패다. 북한에 우라늄 농축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기 때문이다.


ⓒ지오아이-RFA 제공 광명성 3호 발사 장소로 예상되는 평안북도 동창리 로켓 발사대.

핵을 전면에 내세운 북한 외교의 시동?

북한의 우라늄 농축 수준이 어떠하기에 미국이 이렇게 급해졌을까.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그동안 북한 우라늄 농축에 대해 주시해왔지만 실체에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이 2010년 11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핵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결정적 카드를 꺼내 보였다. 당시 해커가 영변에서 목격한 북한 우라늄 농축 수준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과거에 추정했던 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P2 타입의 원심분리기 2000대가 가동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 해커 박사는 보여주기용으로 2000대가 있으면 또 다른 곳에 2000대 이상이 있으리라 추정했다. 이 정도면 최소한 1년에 핵무기 4개 분량에 해당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북한이 과거 8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 평가라면, 2006년과 2009년 핵실험을 하면서 2개를 사용해 6개가 남은 상태다. 여기에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핵물질을 생산하면 2012년까지 북한의 추정 핵무기 수는 20개 정도 된다. 이 정도면 2격 능력(상대의 반격에서 살아남아 다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어, 공세적 핵무장 국가가 된다는 이론적 추론이 가능하다( 제170호 ‘북한 핵무기의 불편한 진실’ 참조).

당시만 해도 한쪽에서는 정말 그럴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앞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설마 하던 미국이 비공식 채널로 중국에 조회한 결과, 중국도 북한이 이미 상당 수준의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는 점을 확인했다”라는 것이다.

북한 핵 능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국내의 원로 대북사업자 ㄱ씨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재일동포 사업가로부터 급히 일본을 다녀가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북한 권력 내부에 정통한 인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평양을 다녀왔다. 이 재일동포로부터 북한이 이미 ‘소형 핵탄두를 완성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수준’의 핵 능력을 갖췄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 얘기를 국회의 한 모임에서 했는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듣고 지난해 6월13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진위를 물었다. 김 장관의 대답인즉, “북한은 이미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핵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이었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 핵무기의 소형화 성공 가능성을 공식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ㄱ씨는 “그 뒤로 군 관계자들이 심심찮게 연락해오는데, 그중 한 인사로부터 일본 정부 역시 그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과거에는 한국이 미국 발목을 잡으면 미국 정부가 주저앉곤 했지만, 지금 미국은 한국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1차적 관심은 두 눈으로 북한의 핵 능력을 확인하는 것, 다음은 어떻게 해서든 대외적 확산을 막고, 그 수준에서 동결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핵시설을 공개하겠다고 나선 걸까. 지난번 3차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이 양보한 것은 북한이 IAEA 사찰단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UEP 시설을 보여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앞서의 외교 소식통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이미 자신들의 핵 시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영변이든 어디든 미국과 IAEA에 자신들의 시설을 보여줘 겁을 먹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근 몇몇 보도를 통해서도, 북한이 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외정책 및 대미 교섭을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 3월18일자 은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빌려 “북한 지도층 사이에 최근 ‘핵’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강경한 외교 사상이 확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평양을 방문해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접했다는 이 소식통은 “북한 권력층 내부에 ‘김정은 대장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혁명 유산인 핵을 더욱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핵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라고 전했다. 는 또 이 소식통의 말을 빌려 “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씨 왕조와 오랜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북한 김정은 체제 내부에 확산되고 있는 강경한 외교 사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 워싱턴에서는 얼마 전 시러큐스 대학이 주최한 세미나 참석차 방미한 이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의 대담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주제 발표 등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핵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주는 것처럼 우리도 핵우산에 포함시켜주면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1992년 북·미 고위급 회담의 역사적 첫 테이프를 끊은 김용순 비서와 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보 회담에서 김 비서가 ‘동북아에서 북한과 미국이 동맹을 맺어 세력 균형을 이룩하자’라는 파격적 제안을 해 미국을 놀라게 했던 광경을 연상시킨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새로운 협상전략’ 또는 ‘통 큰 담판’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즉, 북한과 미국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구축하고 나서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선(先)관계 개선, 후(後)핵문제 해결’ 원칙인 셈이다. 김용순 비서가 1992년에 북·미 동맹 얘기를 꺼냈을 때 북한에는 구상만 있었지, 미국을 압박할 힘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힘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지금 북·미 관계를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미국인가 북한인가. 이미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의 외교 소식통이 한 지적이다.

2011년 12월 12일 월요일

[사설]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섣불리 동참 말라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1-12-11일자 사설 '[사설] 미국의 이란 추가제재에 섣불리 동참 말라'를 퍼왔습니다'
정부가 이란에 대한 미국의 추가적인 경제보복 조처에 서둘러 동참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의회가 강력한 이란 제재 법안을 이번주 안에 통과시킬 것으로 예상되자, 우리 정부도 이에 맞춰 추가제재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국내 수입 원유의 10% 가까이를 공급하는 이란에 대한 제재는 우리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주권 국가로서 최소한 자존심과 국민 안위를 고려한다면 섣불리 추가제재에 나서선 안 된다.
미 의회가 마련한 이란 제재 법안은 이란의 대외교역을 봉쇄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할 경우 다른 나라 금융기관도 미국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고 있는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이 제재 대상이다. 두 은행은 현재 이란과의 교역에서 유일한 결제창구다. 따라서 미국의 이란 경제보복은 국내 기업한테 이란에 진출할 기회를 차단하고 교역관계를 끊게 하는 피해를 가져온다.
우리 정부는 애초 미국 의회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듯하다가 이달 초 로버트 아인혼 국무부 조정관이 방문한 뒤 태도가 달라졌다. 그는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제재와 관련해 “우방국의 빠르고 강력한 통일된 행동을 바란다”며 우리나라의 동참을 노골적으로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란 제재안은 국제사회의 동의를 구하기 어렵다. 이란 제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도 벗어나는 미국만의 치외법권적 조처다. 명분도 약하다. 미국은 최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한 보고서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지가 더 뚜렷해졌다고 주장하지만, 보고서에는 직접적인 증거 없이 정황에 따른 의혹만 들어 있을 뿐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9월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을 폐쇄하는 등의 제재안을 미국 요구에 따라 서둘러 강행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국내 기업이 큰 피해를 봤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추가제재안을 받아들이려는 것은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발상이다. 이란의 대응조처에 따라 자칫 국내 원유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란다면 맹목적인 대미 추종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세계평화와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한 실용외교를 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