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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5일 토요일

오프라인에 얼굴 못내미는 ‘일베’...잠복 가능성 높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3-05-24일자 기사 '오프라인에 얼굴 못내미는 ‘일베’...잠복 가능성 높다'를 퍼왔습니다.
[도넘은 청년극우③] 장기불황과 불투명한 미래가 ‘일베충’의 토양


5월 20일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 메인 화면.ⓒ민중의소리

극우 성향 온라인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향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자 일베의 확장세는 한풀 꺾인 분위기다. 그러나 ‘일베 현상’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기 보다는 악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어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장기화 된 경제불황, 불안감 고조···사회가 낳은 청년 극우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청년들의 등장은 단편적인 현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보통 장기적인 경제 불황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사회 속에서 나타난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보다 앞서 청년층에서 ‘극우 바람’이 불고 있는 일본도 그런 면에서는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전통적인 일본 우익에 대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불황이 20여 년간 지속되고, 이에 따라 청년실업 등 사회적 불안감이 깊어지면서 일본 사회에서는 젊은 세대의 우익화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른바 ‘넷(NET)우익’으로 불리는 이들은 한국의 일베처럼 익명으로 온라인커뮤니티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개별 이용자가 특정되지 않지만, 저학력 또는 저소득층의 청년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 소외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스레 사회와 멀어지고 가족·친구들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대신 인터넷이나 비디오게임에 몰입한다.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극우적 성향으로 표출하고 있다. ‘넷우익’을 비롯한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불안한 상황에 대해 재일교포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격적인 행태를 보이고, 반한국·반중국 감정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의 젊은 세대 일각에서도 경제 불황과 청년실업난, 경쟁 구도로 내몰리면서 ‘넷우익’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극우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일베에 대해 “젊은 층들이 갖고 있는 좌절감이나 불만 등을 가감 없이 배출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10~30대 남성인 일베 이용자들이 명품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한국 여성들을 ‘김치녀’라고 비하하고, 서로 ‘병신드립’(스스로 못난 것을 증명하는 놀이)을 즐기는 모습 등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불안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한 “군가산점 폐지, 여성부를 창설해 남성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는 식의 글은 여성 때문에 남성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는 왜곡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오프라인에 얼굴 못내밀어 확장성에 한계···잠복일 뿐 언제든 다시 고개들 가능성

최근 여론의 비판이 집중되고 줄소송이 예고되자 일부 일베 회원들은 사이트에서 탈퇴하거나 그동안 게재한 글을 지우는 등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그동안 익명의 뒤에서 ‘극우 막말’을 쏟아냈지만, 정작 본인이 일베 회원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꺼리고 있다. 이들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온라인 극우 집단이 오프라인의 조직으로 확대되면서 세력을 계속 확장하고 있는 일본과는 다른 양상이다. 

배문정 우석대 교수(심리언어학)는 “광주시장이 (5.18을 왜곡한 일베 회원들에 대해) 소송하고 이런 게 힘을 갖고 언론에 공개되면 될수록 합리적 보수도 굉장히 불편해 할 수밖에 없다”며 “극단적인 행태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멈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문화, 즉 하위문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계속해서 이슈를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청년층의 불안정한 사회·경제적인 조건이라는 ‘토양’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일베와 같은 극우주의자들은 언제든 다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이미 ‘최소한의 선’을 넘어버린 만큼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준영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한국과 일본 모두 공동체적인 룰 또는 감수성이 붕괴된 신자유주의적인 모습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보수화 되고 인종주의적인 편견이 강한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것까지는 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나 ‘자제하자’는 룰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모두 깨졌다”면서 “이미 한 번 뚜껑이 열려버린 상황에서 경제 불황이나 청년실업난이 해결되고 일베와 같은 사이트가 폐쇄된다고 하더라도 (극우적인 경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지현 기자 cjh@vop.co.kr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


이글은 대자보 2012-07-10일자 기사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를 퍼왔습니다.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 영국 현장 언론인과 저널리즘 학계 각각의 입장 소개, 양쪽 소통 강조 눈길

 
▲ 표지 ©명인문화사
매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저널리즘이 눈에 띄게 확장되고 있다. 지금의 다매체 다채널시대 신문, 방송 뿐 만 아니라 온라인 저널리즘의 역할이 중요시 된다. 기사작성, 기자 윤리의식, 취재원과 관계 등 언론인들이 가져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때가 됐다. 또한 언론인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가 됐다.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 책이 번역돼 나왔다. 영국의 언론 현장을 배경으로 토니 하컵(Tony Harcup) 영국세필드대학교 교수가 쓰고, 황태식 번역가가 옮긴 (명인문화사, 2012년 6월)는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해 원리와 실제를 함께 다루었다. 

비록 서구(영국) 사회의 맥락에서 쓰인 책이지만, 우리 같이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활동해야 하는 언론인들이 알아야할 내용을 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영국 현장 언론인과 저널리즘 학계 각각의 입장을 소개했고, 나아가 양쪽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 정보공개법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와 블로거 활용, 웹에서 비디오, 오디오의 사용, 비연속적 일괄방송, 쌍방향 지도 그리고 온라인 저널리즘의 여타 방법들에 대해 기술했다. 

21세기 저널리즘의 통합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저널리즘의 기초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다양한 세대, 다양한 배경, 다양한 미디어를 고려해 광범위한 영국 언론인들을 인터뷰해 이 책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재의 언론인들은 현장을 파악해 국민을 대변하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재구성해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는 ‘처널리즘’에 가깝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인이 되려했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형편없는 임금 사정을 알게 됐을 때, 실제로 열정을 잃어버린다. 기자들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확인하면서 기사를 베끼느라 책상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장시간 근무하는 편집실의 작업환경을 보면서 환상을 버리기도 한다. 저널리즘(journalismr)이 아니라 처널리즘(churnalism)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이다. 처널리즘(churnalism)이란 대량생산을 뜻하는 churn out와 journalism을 결합한 신조어로 보도자료를 재구성해 뉴스를 대량생산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본문 ‘저널리즘 개론’ 중에서- 

그리고 언론인들에 대한 제약과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언론인의 업무는 법적 제약, 규제제도, 미디어 소유구조, 조직의 일과, 시간 부족, 시장원리, 광고상황, 문화적 편견, 애국심, 직업정신 업무현장에서 성 인종 계급불균형과 같은 다양한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제약과 상충하는 충성심으로 인해 개인은 언론의 생산물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런 제약들은 거부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본문 ‘언론인에 대한 제약과 영향’ 중에서- 


저자는 “새롭고 특이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에 일어난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뉴스라고 하지만, 모든 뉴스가 새로운 것은 아니”라면서 “상당수 뉴스는 예측 가능하며, 때로는 결코 사건들과 관련되지 않는 것도 있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어 “언론인들은 무엇이 특정 수용자의 관심을 끄는 지를 염두에 두면서 직업적인 기준에 따라 기사항목을 확인하고 선정하고 생산한다”면서 “음으로 양으로 언론인들은 소위 뉴스 가치라는 일련의 기준에 비추어 잠재적 기삿거리를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널리즘의 당면과제로 윤리적 책임, 자신만의 호기심과 독립적 관찰력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민 교양화라는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과 삶에 대한 저널리즘의 영향 때문에 언론인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비판적 숙고를 통해 윤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인들을 억누르는 구조적 압력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언론인 개인이나 단체들은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인터넷 시대에 저널리즘은 설교보다는 대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취사선택이나 검증과 같은 언론인들의 기술들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언론계에 갓 발을 들어 놓은 사람들은 경험이 많은 언론인들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하지만, 자신 만의 호기심과 독립적인 관찰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본문 ‘저널리즘의 당면 과제’ 중에서- 

이 책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어떻게?(저널리즘 개론)▲언론인에 대한 제약과 영향 ▲뉴스란 무엇인가? ▲뉴스의 출처 ▲객관적 보도자로서 언론인 ▲탐사자로서의 언론인 ▲엔터테이너로서의 언론인 ▲인터뷰 ▲뉴스 작성 ▲특집기사 작성 ▲이미지를 활용한 보도 ▲언론인이 갖추어야할 스타일 ▲저널리즘의 당면 과제 등으로 구성됐다. 부록으로 영국언론노조 행동강령이 실렸다. 

토니 하컵 영국 세필드대학교 교수가 쓴 < Journalism : Principles and practice >을 옮긴 황태식 번역가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Theolgy석사와 오클라호마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현재 네바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김철관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


이글은 대자보 2012-07-10일자 기사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를 퍼왔습니다.
21세기 저널리즘, 원리와 실제 그리고 당면과제 영국 현장 언론인과 저널리즘 학계 각각의 입장 소개, 양쪽 소통 강조 눈길

 
▲ 표지 ©명인문화사
매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저널리즘이 눈에 띄게 확장되고 있다. 지금의 다매체 다채널시대 신문, 방송 뿐 만 아니라 온라인 저널리즘의 역할이 중요시 된다. 기사작성, 기자 윤리의식, 취재원과 관계 등 언론인들이 가져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좀 더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볼 때가 됐다. 또한 언론인이라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더불어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가 됐다. 

최근 이런 문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한 책이 번역돼 나왔다. 영국의 언론 현장을 배경으로 토니 하컵(Tony Harcup) 영국세필드대학교 교수가 쓰고, 황태식 번역가가 옮긴 (명인문화사, 2012년 6월)는 저널리즘의 본질적인 기초를 바탕으로 해 원리와 실제를 함께 다루었다. 

비록 서구(영국) 사회의 맥락에서 쓰인 책이지만, 우리 같이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활동해야 하는 언론인들이 알아야할 내용을 논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영국 현장 언론인과 저널리즘 학계 각각의 입장을 소개했고, 나아가 양쪽의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 정보공개법을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와 블로거 활용, 웹에서 비디오, 오디오의 사용, 비연속적 일괄방송, 쌍방향 지도 그리고 온라인 저널리즘의 여타 방법들에 대해 기술했다. 

21세기 저널리즘의 통합적인 속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저널리즘의 기초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다양한 세대, 다양한 배경, 다양한 미디어를 고려해 광범위한 영국 언론인들을 인터뷰해 이 책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재의 언론인들은 현장을 파악해 국민을 대변하는 ‘저널리즘’이 아니라 보도자료를 재구성해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는 ‘처널리즘’에 가깝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론인이 되려했던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형편없는 임금 사정을 알게 됐을 때, 실제로 열정을 잃어버린다. 기자들이 전화나 인터넷으로 확인하면서 기사를 베끼느라 책상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장시간 근무하는 편집실의 작업환경을 보면서 환상을 버리기도 한다. 저널리즘(journalismr)이 아니라 처널리즘(churnalism)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이다. 처널리즘(churnalism)이란 대량생산을 뜻하는 churn out와 journalism을 결합한 신조어로 보도자료를 재구성해 뉴스를 대량생산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본문 ‘저널리즘 개론’ 중에서- 

그리고 언론인들에 대한 제약과 영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언론인의 업무는 법적 제약, 규제제도, 미디어 소유구조, 조직의 일과, 시간 부족, 시장원리, 광고상황, 문화적 편견, 애국심, 직업정신 업무현장에서 성 인종 계급불균형과 같은 다양한 구조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제약과 상충하는 충성심으로 인해 개인은 언론의 생산물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그런 제약들은 거부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본문 ‘언론인에 대한 제약과 영향’ 중에서- 


저자는 “새롭고 특이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에 일어난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뉴스라고 하지만, 모든 뉴스가 새로운 것은 아니”라면서 “상당수 뉴스는 예측 가능하며, 때로는 결코 사건들과 관련되지 않는 것도 있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이어 “언론인들은 무엇이 특정 수용자의 관심을 끄는 지를 염두에 두면서 직업적인 기준에 따라 기사항목을 확인하고 선정하고 생산한다”면서 “음으로 양으로 언론인들은 소위 뉴스 가치라는 일련의 기준에 비추어 잠재적 기삿거리를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저널리즘의 당면과제로 윤리적 책임, 자신만의 호기심과 독립적 관찰력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민 교양화라는 저널리즘의 사회적 역할과 삶에 대한 저널리즘의 영향 때문에 언론인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비판적 숙고를 통해 윤리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인들을 억누르는 구조적 압력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언론인 개인이나 단체들은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 인터넷 시대에 저널리즘은 설교보다는 대화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취사선택이나 검증과 같은 언론인들의 기술들은 여전히 중요해 보인다. 언론계에 갓 발을 들어 놓은 사람들은 경험이 많은 언론인들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배워야 하지만, 자신 만의 호기심과 독립적인 관찰력을 잃지 말아야 한다.”-본문 ‘저널리즘의 당면 과제’ 중에서- 

이 책은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언제 왜 어떻게?(저널리즘 개론)▲언론인에 대한 제약과 영향 ▲뉴스란 무엇인가? ▲뉴스의 출처 ▲객관적 보도자로서 언론인 ▲탐사자로서의 언론인 ▲엔터테이너로서의 언론인 ▲인터뷰 ▲뉴스 작성 ▲특집기사 작성 ▲이미지를 활용한 보도 ▲언론인이 갖추어야할 스타일 ▲저널리즘의 당면 과제 등으로 구성됐다. 부록으로 영국언론노조 행동강령이 실렸다. 

토니 하컵 영국 세필드대학교 교수가 쓴 < Journalism : Principles and practice >을 옮긴 황태식 번역가는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Theolgy석사와 오클라호마대학교 매스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현재 네바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김철관

2012년 4월 18일 수요일

엉뚱한 데 '총'쏘는 어이없는 조선 사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4-18일자 기사 '엉뚱한 데 '총'쏘는 어이없는 조선 사설'을 퍼왔습니다.
[비평]인종차별 트윗에 정당이 논평내야 한다고?

▲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정치적 의도야 어찌됐든 요 며칠간 조선일보가 다문화사회를 ‘홍보’하는 기사를 쓰는 것은 공익에 부합할 수 있다. 그리고 이자스민씨를 인종주의로 비판하는 여론을 사실상 보수언론이 날조했다 보는 시각이 있으나, 정확하게는 그것이 트위터란 특정 매체의 ‘대세’였단 부분이 과장 및 날조였을 뿐이다. 그런 여론이 존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고 평소 스스로를 ‘진보’라 말하던 야권지지자들 중에 그런 이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어제 오늘 존재했던 것도 아니며, 그런 분위기는 트위터란 특정한 매체를 넘어 웹 전반과 오프라인에 하나의 정치적(?) 견해로 실존한다. 이자스민씨 관련 논란에서 그런 사회 분위기를 성찰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특히 반새누리당 성향의 시민들은 야권지지자들이 말하는 ‘진보’의 성격이 무엇인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는 그런 수준을 넘어선다. 이 사설은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지만 핵심적인 부분만 짚자면 이자스민씨에 대한 웹의 비난에 대해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이 당 차원의 논평을 통해 진정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변태적인 논법이다.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암적 정서는 이주노동자 혐오 정서만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인터넷엔 아직도 호남인과는 같이 살 수 없으며 전두환이 광주에서 학살을 했단 이유로 찬양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분위기도 웹 전반과 오프라인에 하나의 정치적(?) 견해로 실존한다. 만약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그런 웹의 조류에 대한 특집기사를 몇 번 쓰고 새누리당에 사과나 해명을 요구한다면 조선일보는 수용할 수 있는가?
조선일보의 해당 사설은 모든 정치적 주장에 이성적 코멘트를 덧붙이고자 하는 기자의 합리주의 정신의 한계를 침해한다. 그리하여 기자는 비평의 한계를 문학의 정신으로 돌파하여 해당 사설의 전문을 패러디하기로 한다.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은 부디 그들에게 돌아온 ‘생떼’를 보며 인생을 반성할 일이다.
농설 : 國家 팔던 보수, 호남인 향한 돌팔매 그냥 보고 있나
2천년대 중반 이후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특정 지역민을 비하하는 험담이 인터넷에 흘러다녔다. “홍어들은 뒷통수를 잘 친다” “홍어X과 결혼하면 살해당한다”는 상식 이하의 저질 비난과 호남인들이 ‘청일전쟁과 6.25 전쟁에 책임이 있다’ '광주폭동은 북괴의 사주로 발생했다'는 식의 날조된 중상모략이 나돌았다. 독버섯 같은 누리꾼들이 익명(匿名)의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뱉어내는 더러운 말들은 그들의 입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공기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호남 지역민이나 호남 출신 부모를 둔 젊은이들 모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세금을 내며 국방의무를 지닌 시민들이다. 현재 호남 지역 인구는 520만 정도이며 지체된 산업화로 일찍 고향을 떠난 다수가 각 지역에 편재되어 있다. 수도권의 호남 출신 인구도 800만에 이른다. 그들이 낳은 사랑하는 아들 수 만명이 지금 이 순간 군에 복무하며 휴전선을 지키고 있다. '디시'와 '일베'의 귀퉁이에 숨어 이런 모범 시민들 등에 저주의 칼을 꽂는 비겁한 누리꾼들 가운데 병역의 의무를 다한 인간은 얼마나 될까.
우리는 대한민국이 신분의 차별이 없는 민주국가라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못난 인간들은 엄연히 같은 국적을 가진 특정지역 주민들을 향해 돌팔매를 서슴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보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내국인을 보호하고 국가 통합에 앞장선다. 그게 보수의 윤리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보수는 이런 보수의 세계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호남인들에게 더러운 돌팔매가 날아오는데도 보수적 인사가 나서 몸으로 돌팔매를 막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조갑제 정도만 광주민주화 운동을 북괴의 사주로 모는 인터넷 여론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을 하는 개인 글을 올렸을 뿐 지금까지 당 차원에선 논평조차 내지 않고 있다. 정론지를 자부하는 조선일보는 자사 인터넷 댓글란에 반호남 인종주의자들이 난동을 부려도 삭제조차 하지 않는다. 상당수 여당 지지자들이 못난 인간들의 못난 짓에 가세하고 있는 판이다.
새누리당 강령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 하고, 자유선진당 강령은 ‘자유와 개방 그리고 자발적 공동체의 가치에 동의하는 국민들의 뜻을 모아’ 창당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사시엔 ‘정의옹호’와 ‘불편부당’이 들어 있다. 두 당과 조선일보는 호남인들은 주로 민주통합당을 지지하기 때문에 국민도 아니고 정의옹호의 대상에서도 예외(例外)라고 여기는 걸까.

한윤형 기자  |  ahriman@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