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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1일 금요일

표절·세습·성·돈에 함몰된 합동 교회들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5-30일자 기사 '표절·세습·성·돈에 함몰된 합동 교회들'을 퍼왔습니다.
개교회 문제 외면하는 노회와 총회…교단적 자정 필요하나 해결 요원

예장합동 교단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 있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고 교인들이 목사를 걱정하는 시대." 목회자들이 모여 갱신을 부르짖는 현장에서 한 목회자가 탄식하며 토해 낸 말이다. 예장합동 목회자들이 연이어 홈런을 친 탓이다. 논문 표절과 교회 세습, 성추행과 재정 횡령 등 문제가 터졌다 하면 십중팔구는 예장합동 교회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 박사 논문 표절

올해 2월 초,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이 사실로 드러났다. 표절 사실과 오 목사의 거짓 진술을 증명하는 사랑의교회 당회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오 목사는 1998년 남아공 포체프스트룸대학에서 쓴 박사 학위(Ph. D.) 논문이 대필이나 표절일 경우 담임목사직에서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 오정현 목사의 박사 논문 표절과 거짓 진술을 증명하는 사랑의교회 당회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세상에 알려졌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당회는 이 보고서를 인정하지 않고, 다시 조사하기 위해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한 달간의 대책위 조사 기간 동안 오 목사는 당회 결의를 따르겠다고 했으나 표절 사실은 부인했다. 그가 2005년 미국 바이올라대학 탈봇신학대학원에서 쓴 목회학 박사 학위(D. Min.) 논문은 자신의 신학 박사 논문을 표절한 것이었다. 대책위는 신학 박사 논문이 표절이라고 결론 내렸고, 오 목사는 신학 박사와 목회학 박사 학위를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당회는 오 목사가 6개월간 자숙하고, 그 기간 동안 임금 30%를 자진 반납하며, 담임목사직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는 솜방망이 징계를 했다.

논문 표절 사건은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노회나 총회는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동서울노회 봄 노회에서도 오 목사 논문 표절 건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 오 목사는 노회원들에게 "심려를 끼쳐서 미안하다"는 정도의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회 임원회는 사태를 파악한 뒤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총회장 역임한 길자연 목사, 세습 강행

예장합동 83회 총회장, 9·10·17대 한기총 대표회장. 길자연 목사의 화려한 이력이다. 그는 2007년 1월 기자회견에서 "왕성교회를 아들에게 이양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 당시 왕성교회가 지성전 형태로 개척한 과천왕성교회에는 아들 길요나 목사가 담임으로 시무하고 있었다.

은퇴를 앞둔 길자연 목사는 작년 10월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 세습 찬반 투표에 참석한 교인 1530명 중 1035명이 찬성, 441명이 반대했다. 찬성률 70.1%로 전체 투표수의 2/3 이상을 얻어 공동의회에서 세습은 통과됐다. 충현교회 고 김창인 원로목사가 세습을 공개 사과하고 감리회가 세습방지법을 만들면서 교계와 사회에서 세습 비판 여론이 높은 가운데서도 길 목사는 세습을 단행했다.

평양노회는 11월 왕성교회 세습을 통과시켰고, 왕성교회와 과천왕성교회의 합병도 허락했다. 회의장 바깥에서 기독 시민 단체들이 "노회가 세습 결정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노회는 묵살했다. 총회 또한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막강한 정치력을 지닌 길 목사에게 면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는 은퇴를 앞둔 작년 10월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성범죄 전병욱 목사 회개 없이 새교회 개척

▲ 여교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전병욱 목사는 삼일교회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홍대새교회를 개척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는 2009년 11월 중순 집무실에서 여성도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실은 2010년 9월 세상에 알려졌고, 교계와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성범죄는 한 건이 아니었다. 다수의 피해자가 존재했다. 전 목사는 2년간 목회하지 않기로 당회와 약속하고 그해 12월 교회를 떠났다. 회개와 치료를 거친 후 수도권에서는 목회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곁들었다. 성 중독 치료비 등을 포함한 13억 원을 전별금으로 받았다.

그러나 전 목사는 약속을 저버리고 17개월 만에 목회를 재개했다. 삼일교회와는 5Km 떨어진 곳에서 2012년 5월 홍대새교회를 개척한 것. 삼일교회와의 약속에 대해 전 목사는 구두 약속이었으며 서면으로 작성된 것이 없다고 변명했다. 그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설교를 계속했다. 그는 "예레미야는 잘못한 것도 하나 없는데 모욕당하고 조롱당했다. 내가 그 심정을 알겠다"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아예 성범죄를 부인했다.

삼일교회는 "성범죄자가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며 평양노회에 면직 청원을 했지만, 노회는 절차상의 이유를 들며 반려했다. 시찰회를 거치지 않았다, 노회 개회 열흘 전에 제출하지 않았다, 당회 결의 없이 제출했다 등의 이유로 치리 요구를 외면했다. 현재 전 목사는 평양노회 소속 무임목사 신분이다.

교회 재정 횡령해 구속된 정삼지 목사

정삼지 목사는 교회 돈 20여억 원을 횡령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2009년 12월, 제자교회 장로들은 3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정 목사를 고발했다. 검찰은 정 목사가 32억 원의 교회 돈을 빼돌린 것으로 보고 2010년 11월 정 목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그는 2011년 12월 2일 유죄를 인정받아 구속됐다.

▲ 제자교회 정삼지 목사는 교회 돈 20여억 원을 횡령해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얼마 전인 5월 24일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정 목사가 구속되기 전인 그해 8월 제자교회는 공동의회를 열고 교회 소속을 한서노회에서 서한서노회로 옮겨 가기로 결의했다. 이를 두고 정 목사 반대 교인들은 "사회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노회에서 면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라며 반발했다. 2012년 8월, 법원은 서한서노회로 소속을 정한 공동의회 결의를 무효로 판결했다. 9월 열린 97회 예장합동 총회는 노회 소속 확인을 보류하고 '제자교회소속확인을위한수습위원회'를 구성했다. 총회가 끝난 직후인 9월 24일, 한서노회는 정 목사를 면직했다.

제자교회는 두 노회로 갈라져 있다. 정 목사 지지 교인들은 법원에 노회 소속을 결정하기 위한 공동의회를 소집하게 해 달라고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정 목사 지지 측과 반대 측은 3월 3일 각각 공동의회를 열었다. 정 목사 지지 측은 서한서노회로 옮기기로, 반대 측은 한서노회에 잔류한다고 결정했다. 총회는 제자교회 소속을 두고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제자교회소속확인수습위는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했다.

교단적 자정 필요하나 현실은 암담

교단 소속 교회 문제들을 대하는 노회와 총회의 반응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교회 일이라고 선을 그으며 개입하기 꺼려하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동서울·평양노회에서는 사랑의교회·왕성교회 건에 대한 논의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전병욱 목사 치리 청원을 평양노회는 이런저런 이유로 반려하고 있다. 제자교회는 두 노회로 갈려서 복잡한 상황이다. 한 교단 목사는 "목사가 잘못을 범하면 치리해야 할 노회가 손을 놓고 있다. 상회비를 많이 내는 교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부담스럽고, 정치력이 강한 인사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짙다"고 진단했다.

이런 교단 현실을 떠올리며 목회자들은 한숨부터 내쉰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답이 보이지 않아서다. 한 목사는 "교단적 자정이 절실한데, 총회 현실을 보면 암담하다. 돈과 명예를 탐하는 정치꾼들이 총회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다른 목사는 "목사가 일탈을 거듭하고 있으면 따끔하게 혼내고 제지해야 할 어른이 있어야 하는데, 그럴만한 원로들이 없다"고 말했다.

암담한 교단 상황을 타개할 묘책은 없어 보인다. 한 목사는 "하나님이 간섭하셔서 교단을 고쳐 주시는 방법밖에 없다. 그때까지 우리는 건강한 교단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목사는 "교단이 몰락하든지 갱신하든지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가 개혁을 절실히 갈망하면 그래도 하나님이 변화시켜 주시지 않겠느냐"고 바랐다.


이명구 / (마르투스) 기자

2013년 2월 5일 화요일

세습한 왕성교회 주머니 속사정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2-02일자 기사 '세습한 왕성교회 주머니 속사정'을 퍼왔습니다.
지난해 교회 부채 217억 원, 대출 이자만 억 단위 지출

담임목사직 세습으로 많은 손가락질을 받은 왕성교회(길요나 목사)가 막대한 부채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공동의회에서 드러난 교회 재정은 심각한 수준이다. 1년 예산은 70억 원 정도인데 빚은 수백억 원에 달한다. 왕성교회는 빚을 갚기 위해 2013년부터 긴축재정을 실시한다.
왕성교회 부채는 지난해 217억 원을 기록했다. 작년 한 해 은행 대출 이자, 개인 명의로 빌린 돈 이자, 각종 수수료 등에 사용한 돈은 18억 46만 원이다. 2013년 예산에도 대출 이자, 수수료 항목은 20억 원으로 책정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데 씀씀이는 헤프다. 왕성교회는 작년에 접대비로 3억 7700만 원을 사용했다. 예산 2억 원보다 85% 더 썼다. 올해부터는 매달 200만 원을 세계복음주의연맹(WEA)을 지원하는 데 보낸다.
예·결산서를 본 일부 교인은 항의했다. 빚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몇몇 사람이 따져 물었다. 길자연 목사의 답은 "교회가 커지면 돈을 빌려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접대비 지출이 컸던 이유는 교회 연합 사업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왕성교회는 '과천 땅'으로 부채를 해결할 생각이다. 지난 1997년 사들인 과천시 갈현동 일대 땅 1만 2000여 평이 2011년 보금자리 주택지구로 선정되어, 2014년에는 교회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길자연 목사는 정확한 보상금은 알 수 없으며 최대한 많은 보상을 받아내겠다고 말하면서도 대략 400억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계산했다.
흥미로운 것은 길자연 목사가 보상금을 400억 원 정도로 예상하면서 "보상금으로 교회 부채 절반을 갚을 수 있겠다"고 말한 점이다. 길 목사는 토지 보상금이 나오는 2014년에 교회 빚을 반 정도 갚고, 2017년에는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교회 부채를 한 번에 털어버릴 수 있는 돈을 받고도 절반만 해결하겠다고 말한 까닭은 밝히지 않았다.

김은실 (raindrops89)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한기총 회장 출신 또 세습


이글은 뉴스앤조이(NEWSNJOY) 2013-01-18일자 기사 '한기총 회장 출신 또 세습'을 퍼왔습니다.


▲ 한기총 제13대 대표회장을 지낸 성남성결교회 이용규 목사가 아들 이호현 목사에게 교회를 세습하기로 결정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길자연 목사(왕성교회)에 이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출신 목회자가 또 교회를 세습한다. 한기총 제13대 대표회장을 지낸 이용규 목사가 주인공. 이 목사는 지난해 12월 22일 자신이 목회하던 성남성결교회 담임목사를 은퇴했다. 교회는 후임 목사로 이용규 목사 아들을 청빙했다.
세습은 신속했다. 성남성결교회는 12월 초에 담임목사청빙위원회를 구성해 12월 23일 이용규 목사 아들을 후임 목사로 결정했고, 당회는 일주일 뒤에 청빙위원회 추천을 받아들였다. 교회는 1월 20일 임시사무총회를 열고 후임 목사 청빙을 투표에 부친다. 재석 교인의 절반 이상이 찬성하면 세습은 끝난다.
속전속결로 후임 목사를 결정하다 보니 과정에 무리가 있다. 성남성결교회가 소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헌법은 "부목사가 자신이 목회했던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려면 해당 교회를 떠난 지 2년이 지나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용규 목사 아들 이호현 목사는 지난 2011년 2월 6일까지 성남성결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고, 그 이후에는 부목사를 사임하고 협동 목사로 일했다. 사임한 지 아직 2년이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용규 목사가 은퇴한 뒤 치리 목사로 파송되어 교회 행정을 맡은 임창희 목사는 "아직 청빙이 완료되지 않았고, 청빙 과정을 밟는 중이다. 청빙 절차가 끝나는 시점에는 이호현 목사가 교회 부목사를 사임한 지 2년이 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성남성결교회 교인들은 세습을 찬성하는 분위기다. 임창희 목사는 "교인들이 아들 목사가 오길 원해서 2년 전부터 (세습을) 준비했다. 당회에서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 1명을 빼고는 (이호현 목사가 오는 것을) 반대하는 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은실 (raindrops89)  

2013년 1월 14일 월요일

삼성에 유난히 아버지·아들 ‘가족 사원’ 많은 이유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1-13일자 기사 '삼성에 유난히 아버지·아들 ‘가족 사원’ 많은 이유'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대한민국은 왜 세습에 분노하지 않는가

(한겨레21)·두잇서베이 여론조사 ‘상승 기회 닫힌 폐쇄사회’ 응답 61.6%, 20~30대에서 더 높게 나와… 기업·교회·외교관·정치인으로 번지는 신분 대물림, 2013년 신(新)신분사회 보고서

재벌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재벌 2세는 아무나 되지 못한다. 2세는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와 지위에 따라 자녀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는 불공정하다. 국적·인종·성별로 차별하는 나라가 부당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더이상 세습에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자 부모, 힘센 부모를 둔 그들을 선망한다. (한겨레21)은 신(新)신분사회에 관대해지는 2013년 한국 사회를 분석한다.대기업에서 10년간 일했던 이지운(38)씨는 “대기업에는 신분이 있다”고 했다. 오너의 자식은 성골, 임원의 자식은 진골, 이도저도 아닌 사람은 육두품이다. 신분을 망각하고 날뛰다가는 단칼에 날아간다. 감히 권력 세습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주장을 펴면 목숨을 잃던 왕조시대와 다를 바 없다. “무역 관련 부서에서 경력사원을 뽑았는데 현직 임원의 아들이 들어왔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실력이 되지 못해 협력업체에서 경력을 쌓게 한 뒤 데려온거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부모 잘 만나면 저렇게 쉽게 사는구나’라며 다들 부러워만 했다.”

재벌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

초등학교 6학년·5학년 딸과 5살 아들을 둔 이계화(39)씨는 “계층을 뛰어넘으려면 부모의 재산이 필수”라고 했다. 의사로 10년간 일한 남편 덕에 세 자녀를 뒷바라지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부모가 대형병원을 세워준 ‘부의’(富醫)와 월세 수백만원에 허덕이는 ‘빈의’(貧醫)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른다. “달리기로 비유하자면 이렇다. 예전에는 누가 쉬지 않고 빨리 달리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가 사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은 슬슬 페달을 밟지만 격차가 자꾸만 벌어진다. 죽어라 뛰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자전거가 부러운 게 당연하다.”

세습에 관한 생각

(한겨레21)이 두잇서베이와 함께 2012년 12월28~31일 20살 이상 27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여론조사한 결과, 3명 중 2명(61.4%)이 ‘한국 사회에서 세습이 강화되고 있다’고 답했다. (한겨레)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2012년 12월22~23일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3명 중 2명(61.6%)이 한국 사회를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녀의 계층 상승 기회가 닫혀 있는 폐쇄적 사회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특히 20대와 30대에서는 그 비율이 75% 안팎으로 올라갔다. 자녀가 성공하는데 ‘부모의 경제적 지위’와 ‘개인의 노력’ 중 어느 것이 더 영향을 끼치는지 물어보니, 부모의 경제적 지위라는 답변(54.9%)이 개인의 노력(44%)보다 우세했다. 역시 40대 이하 젊은 층에서는 60% 이상이 부모의 경제력을 꼽았고, 25∼29살에서는 그 비율이 71.9%나 됐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20대가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없이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젊은 층이 부의 대물림에 더욱 민감하다.” 한 집안에서 축적된 부가 여과 없이 대물림되는 ‘부의 세습’이 한국 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다. 설문조사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에서 심화하고 있는 격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31%가 ‘부의 세습으로 인한 계층 이동의 어려움’이라고 답했다. 그다음으로는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같은 ‘노동시장의 불평등’(22.2%), ‘과도한 학벌사회’(16.5%), ‘부족한 사회안전망’(14.7%)이 뒤를 이었다. 주로 40대 이하(37.2%), 대학 재학 이상(38%), 월평균 가구소득 400만원 이상의 중·상위 소득(40.5%), 자영업(40%)·화이트칼라(38.4%) 응답자가 부의 세습을 양극화 심화의 제1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지운씨나 이계화씨처럼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대물림을 경험한 이들이다.돈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해보면 부의 세습이 얼마나 보편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2012년 7월 한국 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조사했다. 10억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들 14만2천 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절반가량(45.8%)이 부동산으로 재산을 모았다. 그다음으로는 개인사업이 28.4%, 상속이나 부모의 지원이 13.7%, 월급을 저축해서 재산을 모았다는 사람은 3.9%였다. 그렇다면 부동산 종잣돈은 어떻게 모았을까? 개인사업(32%)과 부동산 투자(29.1%)가 엇비슷했고 부모의 지원·상속(21.2%)이나 월급(11.4%)이 뒤를 이었다.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더 흥미롭다. 50살 이상은 48.7%가 근로소득으로 종잣돈을 모은 반면, 49살 이하는 부모의 지원과 상속이 29.9%에 이른다. 50대 이상은 자수성가로 종잣돈을 모았다면, 50대 미만은 부의 대물림으로 부자가 되는 경향이 강한 셈이다. 조준현 부산대 교수(경제학)는 “대물림하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는 부의 양극화 현상이 그만큼 고착화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끄러운 일’ 아닌 ‘부러운 일’

평균 자산 규모를 비교해봐도 그렇다. 2012년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금융동향조사’를 보면, 20대의 경우 평균 순자산이 7042만원이다. 그러나 50대는 3억2663만원으로 4.6배가 넘는다. 과거에는 부모 세대가 힘들게 벌어 자녀 세대를 공부시키고 결혼시키느라 ‘가난한 아빠, 부자 아들’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 이제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들’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아들보다 부동산에 투자한 아빠가 소득이 훨씬 많은 탓이다. 반면 부동산값이 치솟아 아들은 월급을 모아 내 집 한 칸 마련하기도 어려워졌다. 그래서 결혼할 때 부모가 집을 사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부러운 일’이다. 의 설문조사를 보면, 부모가 결혼하는 자녀에게 집값을 지원하는 경우 ‘세습이 아니다’(46.9%)라는 의견이 ‘세습이다’(33.4%)라는 의견을 압도했다. 세법상 증여세를 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36~37쪽 기사 참조). 부모의 결혼 ‘선물’에 세습이라는 부정적 단어를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설문조사에서도 ‘부의 세습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32%였다.부의 세습을 용인하면 경영권 세습에 가까워진다. 재벌 총수들에겐 기업은 ‘내가 키운 것’이고 ‘내 소유’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내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무슨 문제냐’고 주장한다. ‘내 재산’에는 기업 경영권도 포함된다. 문제는 기업이 총수가 멋대로 처분할 수 있는 ‘개인 재산’이냐는 점이다.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재벌)의 소유 현황을 보면,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은 많아야 4∼5%에 그친다. 예컨대 재계 1위인 삼성은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0.95%에 불과하다. 법률적으로 기업의 주인이 주주라는 점에 비춰보면 지분율 0.95%의 이 회장 일가가 주인 행세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이처럼 총수가 적은 지분만으로도 재벌을 지배할 수 있는 건 계열사가 가진 지분 덕분이다. 재벌의 계열사 지분은 평균 50.65%에 달한다. 이건희 총수 일가는 실제 소유권 0.95%에 계열사 지분 58.75%를 더해 이른바 ‘황제경영’을 한다.

유전될 리 없는 경영 능력인데“경영권 세습은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식들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워런 버핏

보유 지분을 상속하면 경영권도 따라간다고 재벌은 주장한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은 동의어가 아니다. 보유 지분을 상속하는 것이야 세금만 제대로 낸다면 개인의 자유지만, 기업을 지배하고 경영할 수 있는 경영권은 사유물이 아니다. 특히 한국 재벌은 개발 과정에서 국민의 뒷받침과 희생, 국가 지원을 통해 성장했다.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설명이다. “1972년 8·3 조치(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명령 15호)로 망해야 할 기업의 채권을 국가가 탕감해줬다. 부실 기업을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시장을 일부 기업에 몰아주고 철도·전기 요금 등 온갖 혜택을 국민의 세금으로 안겨줬다. 그런데 재벌들이 과거를 잊고 황제처럼 군림하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대기업을 “국민기업”이라고 불렀다.게다가 경영 능력은 부와 달리 상속될 수도, 유전될 수도 없다. 경영권 세습은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미국 뉴욕 월가의 전설적인 주식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경영권 세습은 2020년 올림픽 대표팀을 2000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자식들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 사회는 자격 없는 2세들의 경영권 세습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미 1997년 경제위기 때 경험했다. 30대 재벌 중 16곳이 간판을 내린 ‘대마불사 붕괴’의 바탕에는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세들의 무리한 차입 경영과 사업 다각화가 있었다.그런데도 재벌 3세의 경영권 세습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2년 9월 발표한 ‘20대 기업집단(재벌)의 경영권 승계 보고서’를 보면, 재벌 3세가 입사 뒤 회사의 임원이 되는 데 평균 6.5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졸 신입사원의 경우 부장까지 평균 17.3년, 임원까지 21.2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승진 특혜다. 이들은 대학 졸업 직후 형식적 입사를 통해 적을 만들어놓고 수년간 해외 유학을 다녀오는 관행도 따른다. 실제 경영 수업 기간은 더욱 짧다는 얘기다.

그들만의 리그 된 외교관아버지와 아들, 딸이 삼성에 함께 다니는 경우는 유달리 많다. 어떤 임원의 딸은 삼성에 들어간 뒤 삼성의 엘리트 직원과 결혼해 아버지와 딸, 사위가 ‘삼성 가족’을 이루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세습은 재벌·교회·정치 권력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려다 배임죄로 2009년 8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법 법정에 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명진 기자

부의 세습을 넘어 경영권 세습이 널리 퍼지자 이번에는 대기업 임원들이 신분을 세습한다. ‘현대판 음서제도’인 임원 자녀 우대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삼성의 경우 입사 면접 때 ‘20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에게 5∼10점의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딸이 삼성에 함께 다니는 경우가 유달리 많다.‘삼성의 2인자’로 불렸던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전 그룹전략기획실장·부회장)은 두 아들이 모두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삼성전자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내며 이건희 회장의 ‘집사’로 불렸던 최도석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 아들은 삼성전자에, 딸은 금융 계열사에 입사했다.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장을 맡았던 김순택 전 부회장의 아들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어떤 임원의 딸은 삼성에 들어간 뒤 삼성의 엘리트 직원과 결혼해 아버지와 딸, 사위가 ‘삼성 가족’을 이루기도한다. 이들은 부자 부모를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한국 최고의 직장까지 보장받은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뒤질세라 직원 자녀를 우대해 채용하기로 2011년 노조와 합의했다. 2012년 7월 기술직 신입사원 채용 때 처음 적용했는데 합격률이 일반 지원자보다 3배나 높았다.정치인이나 정부 고위 관료의 인사 청탁은 더 노골적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을 총괄했던 조준웅 변호사의 아들 조아무개(39)씨가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내려지자 2010년 삼성전자 과장으로 특채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같은 해에는 유명환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계약직 특별채용과 관련해서도 특혜 의혹이 일었다. 외교부에는 ‘외교관 가족’이 많다. 1997년에 도입한 ‘외무고시 2부’ 때문이다. 당시 외무고시 2부는 “우수한 재외동포를 외교관으로 유치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생겼다. 기존 외무고시가 1·2차 시험을 통틀어 11과목이었던 데 비해, 2부는 영어를 포함해 6과목뿐이었다. 상대적으로 시험 준비가 수월했다. 첫해 5명이 선발됐는데, 그중 3명이 외교관 자녀였다. 해마다 전체 합격자의 절반 이상이 그랬다. ‘외국에서 초등학교 이상의 정규과정을 6년 이상 이수한 사람’이라는 응시 자격 제한 탓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이다. 논란 끝에 2부 제도는 폐지됐다. 하지만 로열패밀리는 그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2012년 10월 교회 세습을 천명한 서울 동작구 신림동 왕성교회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방인성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류우종 기자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왼쪽부터) 한겨레자료

신분 세습은 교회에 이어 정치권력으로 번졌다. 한국·중국·일본에서 잇따라 새 지도자로 선출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시진핑 총서기, 아베 신조 차기 총리는 대통령·총리를 지내거나 혁명 원로로 유명한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를 두고 있다. 북에서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3대 세습으로 정권을 잡고 있다. ‘왕조 세습’에 가깝다. 일본의 경우 세습 정치가 상당히 오래됐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중국학)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군가의 아들딸이라는 건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연예인 2세와 비슷하다.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네트워크를 쉽게 형성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실제 정치 활동에도 유리하다.”정병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좀더 비판적이다. “정치적 카리스마의 세습은, 경영 세습을 하는 재벌과, 교회를 세습하려는 목사와, 또 혈연·지연·학연을 통해 크고 작은 특권을 유지하고 세습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아 오늘의 정치 현실을 만들고 있다. 권력 세습은 독재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체제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특권 세습과 맞물려 있다.”([프레시안] 2012년 12월14일) 한국 사회에서 ‘세습’은 왜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재생산되는가? 이남주 교수는 일제 강점과 한국전쟁으로 붕괴된 지배계급이 재형성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적·문화적·정치적 권력을 차례로 장악한 파워엘리트가 네트워크를 확대하며 전면에 나서고 있다.” 권혁태 성공회대 교수(일본학)의 진단도 일맥상통한다. “근대사회에서는 사회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세대 간 직업 이동이 광범위하고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선 아버지와 자식의 직업 사이에 세대간 직업 이동의 가능성이 점차 적어진다. 그래서 권력·재산·소득의 위계는 현재이면서 미래이기도 하다. ‘9회말 역전’이나 ‘개천에서 용날 가능성’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바늘구멍이다.”

부모 월소득 100만원 많아지면 토익 16점 높아져

중학교 2학년생 고민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서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가구 소득 수준과 자녀 성적 순위는 일치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의 월소득이 100만원 많으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점수 백분위가 2.9단계 올라간다. 같은 조건일 때 국어는 2.2단계, 수학은 1.9단계 높아졌다. 토익 점수도 비슷하다. 수능 영어 점수가 같더라도 부모 소득이 100만원 많으면, 자녀의 토익 점수가 16점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어 사교육에 대한 투자, 해외연수 등이 소득이 높을수록 많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로 KDI는 분석했다. 공교육을 받으며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용’의 승천을 사교육이 가로막는 것이다.영어 격차는 자녀의 취업 기회 및 연봉과도 궤를 같이했다. 토익점수가 높으면 정규직 일자리를 얻거나 대기업에 입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토익 점수가 100점 높은 노동자는 연봉을 170만원 더 받는다. 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도 63.8%가 ‘교육이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심화한다’고 답했다. ‘격차를 줄인다’는 응답은 절반(31.6%)에 그쳤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그동안 교육은 중간층의 계층 이동의 중요한 통로였지만 지금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가난한 아이들도 암울한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고 있다. 2012년 7월 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와 함께 중학교 2학년생 19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보니, 가난한 집 공부 잘하는 아이(77.4%)가 잘사는 집 공부 못하는 아이(81.2%)보다 꿈이 적었다. 살아온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도도 잘사는 집 공부 못하는 아이(74.1%, 70.1%)가 가난한 집 공부 잘하는 아이(56.1%, 63.7%)보다 더 높았다.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지적처럼 교육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불평등을 유지·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홍성민 동아대 교수(정치학)가 말했다.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을 나오면 능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삼성그룹의 이재용씨가 미국 하버드대를, SK그룹의 최태원씨가 시카고대를 나온 것은 경영권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장경섭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단순히 지적 훈련의 정도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정치·사회·문화적 위계상의 위치를 가르친다.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는 사회계급적 위치의 확보와 상승을 위한 사회적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 형태로 터져나올 것”

부와 신분, 권력의 세습이 확대될수록 양극화 현상은 심화된다. 잘사는 이는 더 잘살게 되고 못사는 이는 더 못살게 되면, 중산층이 무너진다. 조준현 교수는 한국 사회를 이렇게 전망했다. “빈곤층이라 하더라도 중산층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열려 있으면 자신이 속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계층 이동에 힘쓴다. 하지만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당연히 구성원 간에 불신과 갈등이 쌓이고 없는 자에 대한 경멸과 있는 자에 대한 분노가 빌미만 있으면 폭력적인 형태로 터져나오기 마련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참고 문헌: (중산층이라는 착각)(조준현·위즈덤하우스), (가족·생애·정치경제)(장경섭·창비),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강준만·인물과사상사)

2012년 9월 30일 일요일

왕성교회 당회, 세습 결의


이글은 뉴스엔조이(NEWSNJOY) 2012-09-28일자 기사 '왕성교회 당회, 세습 결의'를 퍼왔습니다.
99명 중 85명 찬성…10월 7일 공동의회서 길요나 목사 청빙 최종 결정


▲ 왕성교회 당회가 세습을 결의했다. 당회는 길자연 목사 아들 길요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청빙하는 안건을 9월 27일 열린 회의에서 투표에 부쳤고, 장로 99명 중 85명이 찬성해 세습이 통과됐다. 공동의회까지 통과하면 세습이 확정된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가 세습을 교단 법으로 금지한 가운데, 서울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인 왕성교회(길자연 목사) 당회가 세습을 확정해 주목을 받고 있다. 왕성교회 당회는 9월 27일 저녁 회의를 열어 길자연 목사 아들 길요나 목사를 후임 목사로 청빙하는 안건을 투표에 부쳤다. 출석 당회원 99명 중 85명이 찬성하고 12명이 반대해 세습 안건은 당회를 통과했다.
왕성교회는 오는 10월 7일 공동의회를 열어 세습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를 할 예정이다. 공동의회에서 출석 교인 2/3 이상이 찬성하면 세습은 확정된다.
당회에서도 소수지만 반대 목소리가 있었다. 장로 한두 명은 강하게 반대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습을 반대한 한 장로는 "세습은 교회를 배타적으로 만드는 관행이다. 세습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왕성교회는 지난해 말부터 세습 준비를 시작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세습을 절차를 밟았다. 왕성교회가 올해 3월 아들 길요나 목사가 시무하는 과천왕성교회와 합병을 결의했고, 과천왕성교회도 9월 합병을 결정했다. 청빙위원회는 일찌감치 후임으로 길요나 목사를 결정하고 후임 공개 모집을 하지 않았다.
왕성교회 세습 행보는 감리회에서 세습 금지법이 통과된 직후에 나온 결정이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6월 대형 교회 세습의 원조로 꼽히는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가 세습을 공개 사과했고, 지난 9월 27일 감리회는 아예 세습을 막는 법안을 만들었다. 김동호 목사(높은뜻연합선교회), 손봉호 교수 등 교계 인사는 직접 세습을 반대하고 나섰고, 언론도 일제히 '세습 금지'를 환영했다.
손봉호 석좌교수(고신대)는 왕성교회의 세습 추진 소식에 "사회가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겠느냐"며 "복음 전파를 막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손 교수는 "사회에서 세습이 잘못이라고 하는데도 굳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행위는 자신들만 옳다는 오만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가 자문위원을 맡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세습 반대 운동의 신호탄을 쏜 김동호 목사, 교회개혁실천연대와 함께 세습 반대 운동을 활발히 펼칠 계획이다.
왕성교회가 세습을 강행한다면 감리회의 세습 방지 법안이 통과된 이후 첫 대형 교회 세습 사례가 된다. 한국교회 세습 관행이 끊어지느냐를 지켜보고 있는 언론의 주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또 한 번의 대형 교회 세습을 기록할지 세습을 반대하고 새로운 길을 갈지는 왕성교회 교인들 손에 달렸다.

김은실 (raindrops89)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장로교단 일부 되레 세습 서둘러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27일자 기사 '장로교단 일부 되레 세습 서둘러'를 퍼왔습니다.

ㆍ‘교회 세습 금지’ 통과 이후… 감리교, 선거법 개정 부결 후유증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의 ‘교회세습금지법안’ 통과는 모처럼 한국 교회가 신뢰 회복을 위한 개혁 의지를 안팎에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감리교를 포함한 한국 개신교의 속내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25일 열린 감리교단 임시입법회의의 또 다른 주요 안건 중 하나였던 선거법 개정안은 결국 부결됐다. 장로교단의 유명 목사 등 일부 교회와 목사들은 오히려 ‘세습’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세습금지 역풍 부나

감리교의 교회세습 금지 법안 통과 이후 서울 신림동 왕성교회(길자연 목사)는 오히려 그동안 추진해온 ‘교회세습’을 마무리 짓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인 왕성교회는 2003년 지교회 형태로 과천왕성교회를 세우고 길 목사의 아들에게 목회를 맡겼다. 왕성교회와 과천왕성교회는 지난 9일 공동의회를 열고 합병을 결의했다. 길 목사는 올해 12월 은퇴를 앞두고 있다. 교회 한 관계자는 “감리교 결정이 이루어지면서 오히려 아들을 후임으로 추대하는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교회 가운데 이미 세습을 할 만한 교회는 다 했다며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많다. 1990년대 말 서울 충현교회(김창인 목사)를 시작으로 광림교회(김선도 목사), 금란교회(김홍도 목사)가 아들에게 세습됐다. 인천숭의교회, 부평감리교회 등에서는 3대 세습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서울 대한교회는 사위를 담임목사로 앉혔다. 특히 법안 통과 전에 서둘러 교회 세습 절차를 마무리 지은 교회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교 선거법 개정안 부결 후유증

선거법 개정은 이번 감리교 임시입법의회에서 또 다른 쟁점이었다. 이미 감독회장을 지낸 김선도·김홍도 목사 형제에 이어 2008년 선거에서 동생인 김국도 목사까지 감독회장에 당선됐지만, 후보 자격을 놓고 지난 4년간 법정 다툼이 이어지면서 교단 행정이 사실상 마비됐기 때문이다. 지난 6월에야 법원 명령에 따라 서울 연회 감독을 지낸 김기택 감독이 임시 감독회장을 맡아 교단법(장정) 개정안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김 목사 지지 측과 반대 측의 갈등이 봉합된 것은 아니다. 올해 선거에서도 김국도 목사 측근으로 알려진 김충식 목사가 감독회장 후보로, 김국도 목사가 서울남연회 감독 후보로 출마한 상태다. 이에 반발한 반대 측에서 집단 소송단을 꾸려 감독회장 선거 중지와 김국도 목사 후보 등록 취소 소송을 제기,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감독회장 및 감독 선거 중지 명령을 받아냈다. 일부 지역(서울남연회와 동부연회) 감독 선거는 후보 등록이 취소됐다. 감리교에서 감독회장은 교단의 대표, 감독은 지역별 조직인 ‘연회’의 수장 격이다.

따라서 이번 입법회의에 대한 감리교단 내부의 관심은 세습금지법보다 ‘김국도 목사의 피선거권’에 모아졌다. 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는 ‘10년 이내 교단 재판법(근신 이상)이나 법원 재판(벌금형 이상)에 의해 처벌을 받은 사람은 피선거권이 없다’는 개정안을 상정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2001년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은 김 목사는 후보 자격을 잃게 된다. 김 목사 지지자들은 현장에서 회원 235명이 발의한 재개정안을 상정하며 맞섰다. 자격 조건에서 벌금형이 삭제된 안이었다. 양측의 격렬한 항의와 장시간 토론을 거쳐 표결에 부쳤으나 두 안건 모두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부결됐다. 젊은층에 선거권을 줘 금권선거를 막고, 피선거권 제한규정을 이전보다 명확하고 엄격하게 한 선거법 개정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써 10월 초로 예정된 총회에서 실시하려던 감독회장과 감독 선거는 미궁에 빠지게 됐다.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은 26일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화해와 조정의 방법으로 선거 중지 사유들을 제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감리회 "사회가 비난하는 세습하지 말자"


이글은 뉴스엔조이(NEWSNJOY) 2012-08-28일자 기사 '감리회 "사회가 비난하는 세습하지 말자"'를 퍼왔습니다.
장정개정위, 세습 방지법 확정…최종 결정 입법의회 미정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김기택 임시감독회장) 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권오서 위원장)가 일명 '교회 세습 방지 법안'을 확정했다. 장개위는 8월 27일 전체 회의를 열고 입법의회에 제출할 장정 개정안을 결정한 뒤 총회 본부에 보고했다. 세습 방지법은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관련 기사 : 감리회, '세습 방지법' 만든다)

▲ 권오서 위원장은 "사회 선교를 위해 세습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며, "개정안이 잘못된 관행을 고치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진 출처 당당뉴스)

세습 방지법은 교단이 목회자 파송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번에 신설되는 조항은 △부모와 자녀·자녀의 배우자는 동일 교회에 파송할 수 없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 자녀를 목사로 파송할 수 없다 등 두 가지다. 교단 파송을 받아야 하는 목사가 편법을 쓰지 않는 한 법을 정면으로 거슬러 교회를 물려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권오서 장개위위원장은 "사회 선교를 위해 세습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세습 자체가 모두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이 문제 탓에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신뢰가 추락한다면 교회가 양보하자는 것이다. 권 위원장은 "선교 대상인 사회 시각을 우리가 겸손히 받아들이자"고 말했다.
세습 방지법에는 예외 조항이 없다. 장개위 회의에서 교회 사정이 어려워 불가피하게 세습하는 교회도 있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왔지만, 예외를 두면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모두 원칙을 지키자고 결정했다. 권 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자는 선언적 의미가 있다"며 "교계 질서가 바로잡힐 때까지 법을 지키자"고 했다.
세습 방지법은 총회 본부 공고를 거쳐 입법의회에 상정된다. 법의 최종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입법의회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다.

김은실 (raindrops89) 

2012년 6월 15일 금요일

[사설]원로목사의 ‘세습 회개’, 교회혁신 계기돼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6--14일자 사설 '[사설]원로목사의 ‘세습 회개’, 교회혁신 계기돼야'를 퍼왔습니다.

재벌가의 세습이 여론의 비판을 받는 까닭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자식들이 단지 아버지의 핏줄을 타고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의 담임목사 직을 물려받는 ‘교회 세습’은 어떤 의미에서 재벌의 세습보다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신도들의 것이 돼야 할 교회 재산을 목회자 일가가 사유화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른바 언약(言約)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인 서울 충현교회의 김창인 원로목사가 아들에게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준 ‘교회 세습’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공개 회개한 것은 세습을 포함한 온갖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교회를 향한 고심어린 충정이라고 할 만하다. 올해 95세의 김 원로목사는 엊그제 경기도 이천시의 한 교회에서 열린 모임에서 “성직자의 기본 자질을 갖추지 못한 아들 김성관 목사를 무리하게 담임목사로 세운 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회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는 또 “충현교회가 회복되는 것이 나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밝힌 뒤 아들 김 목사를 향해 “4월20일로 은퇴연령 70세가 지났으므로 임기연장 등을 꿈꾸지 말고 즉각 물러나라”고 촉구했다는 것이다. 

현재 목사직 세습은 적잖은 교회에서 하나의 불문율처럼 굳어지고 있다. 교회재산 1조원을 헤아린다는 충현교회에서 1990년대 후반 세습이 이뤄진 뒤 광림교회, 소망교회 등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러한 ‘세습 광풍’은 마침내 전국 각지의 일부 중소교회로까지 확대됨으로써 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아닌 ‘부자(父子)공동체’로 전락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교회 세습이 세습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갖가지 사회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에 우려한다. 세습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으로 교인들끼리 칼부림을 하는가 하면, 세습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어떤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교회 ‘당권파’들에 의해 묵살되고 교회 밖으로 축출당하게 되는 것이다. 과도한 정치개입, 타 종교에 대한 적대적 배척과 천시 등의 행태도 세습을 통해 형성된 자기중심적 오만함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낮은 데로 임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는 한국교회들이 김 원로목사의 이번 공개 회개를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스스로를 전면 혁신하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한다.

2012년 2월 27일 월요일

민주당, 아무래도 글렀다


이글은 프레시안 2912-02-27일자 기사 '민주당, 아무래도 글렀다'를 퍼왔습니다.
[데스크 칼럼] 오만한 당에 표를 줘야 할 이유가 대체 뭔가?

'박재승 쿠데타'라고 했다. '저승사자'라고 그를 불렀다. 신계륜 사무총장, 김민석 최고위원, DJ의 아들인 김홍업 의원, 박지원 DJ 비서실장, 이용희 국회부의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씨, 이상수 전 의원 등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추풍낙엽이 됐다. 4년 전, 민주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뇌물수수, 알선수재, 공금횡령, 파렴치범, 개인비리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를 총선 공천에서 배제했다. '대의멸친(大義滅親, 큰 뜻을 위해 가족까지 희생할 수 있다)'. 당시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이끈 민주당의 공천개혁에 국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은 '오만'을 공천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임종석 사무총장, 저축은행 불법자금 수수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화영 전 의원이 공천을 받았다. 탈당과 복당을 반복한 이용희 의원의 아들 이재한 씨도 '지역구 세습' 논란을 뒤로 하고 단수 공천했다. 심지어 뉴라이트 출신의 구인호 전 도의원까지 경선 후보로 확정했다. 정체성 논란의 대표적 인물인 김진표 의원도 공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확연히 기울었다고 한다. 공천의 잣대라던 도덕성과 정체성은 대체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모를 일이다.

첫 번째 항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른 결정이란다. 법 논리로는 일리 있는 말이지만 유권자와의 소통이 우선인 정치행위에 대한 변명으론 적합하지 않다. 박재승 위원장은 4년 전 공천 논란 때 이런 말을 했다. "보통 사람은 구멍가게에서 우유 하나만 훔쳐도 옥살이를 하는데 정치인은 큰 돈을 받아도 사면 받으면 다시 국회의원이 된다. 그런 생각에 민심이 떠나는 것이다. 하나하나 다 살펴주다 보면 개혁은 못한다." 그를 공심위원장 자리에 앉힌 손학규 대표가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모습이 법과 정의구현의 모습"이라며 탈락자 구제를 요청했음에도 박 위원장은 꿈쩍하지 않았다.

두 번째 항변, 본선 경쟁력이 높다는 게 '묻지마 공천'의 이유다. 전형적인 현실 안주 논리다. "4년 전엔 공천에는 성공했지만 결과는 실패했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을 최근 들었다. 그의 말대로 민주당은 2008년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인 100석의 목표치에 밑도는 81석을 얻는데 그쳤다.

그러나 그해 초만 해도 60석 내외에 그칠 거란 비관적 전망이 당 안팎을 지배했던 걸 감안하면 정반대의 결과론적 해석도 가능하다. 530만표 차이의 대선 패배 충격에 허덕거리던 민주당에 피가 돌고 활력이 생겨나기 시작한 건 엄연한 '박재승 효과' 덕이었다. 심지어 임종석 전 의원마저 당시엔 "대선 패배 이후 당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에 박재승 위원장을 모셔오고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천 특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하게 원칙과 기준대로 공천을 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고 평가했었다.

오만한 민주당은 야권연대 협상도 농락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주장에 따르면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고작 4곳, 비수도권에선 단 1곳만 양보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이정희, 심상정 대표, 노회찬, 천호선 대변인 등 통합진보당의 간판급 인사 출마지에만 민주당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비수도권의 양보지역인 충남 예산홍성은 민주당이 자유선진당에 밀리는 곳이다. 터무니없는 민주당의 고자세로 인해 야권연대 협상은 24일 잠정 파기되기에 이르렀다. 야권연대를 집권으로 가는 초석이라고 떠들던 민주당이 정작 협상장에선 상대에게 떡고물 나눠주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4년 전에도 야당이었고 지금도 야당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으로 권력을 내줬고 탄핵 역풍으로 졸지에 국회의원이 된 '탄돌이'들의 부실한 내공 탓에 소수당이 됐다. 야당이 된 이후에도 4대강 사업, 종편 특혜 등 이명박 정부의 막무가내 국정운영을 막아낸 사례가 없는 무능함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단 한명의 탈락자 없이 현역의원을 재공천하고 때 뭍은 '옛동지'들을 불러들이는 데만 급급한 민주당의 행태는 한미FTA 등 과거에 행한 잘못에 반성을 모르는 한명숙 대표 체제의 유전자로 굳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라면 남은 공천심사에서 교비 횡령 혐의로 2심 유죄를 선고받은 강성종 의원, 청목회 사건으로 1심 유죄를 받은 최규식 의원을 공천 배제한들, 이들이 친노이거나 486그룹이 아니라서 잘렸다는 것 외에 무슨 논리적 일관성이 있을까 싶다.

한 대표는 최근 "과반을 하고 싶다"고 총선 목표치를 공식화했다. 달성 가능한 목표냐는문제 이전에 오만한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당이 무소불위의 입법 권력을 손에 쥐는 게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노무현의 실패를, 이명박의 실패를 겪고 나니 진보건 보수건 분에 넘친 힘을 가진 집단은 반드시 사고를 치더라는 교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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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