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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8일 금요일

KBS 내부, ‘박정희 미화’ 우려 다큐 두고 전면전 양상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3-07일자 기사 'KBS 내부, ‘박정희 미화’ 우려 다큐 두고 전면전 양상'을 퍼왔습니다.
“‘격동의 세월’ 이승만·백선엽 다큐 수준 될 것”… 새노조 ‘공방위’ 개최·PD협회 총회 소집

KBS가 오는 4월 개편에서 신설할 역사다큐 (격동의 세월)(가제)을 놓고 내부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김현석)가 공정방송위원회 개최를 통해 본격 대응에 나섰고, KBS PD협회도 총회 소집을 예고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KBS측은 편성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격동의 세월)은 물론 봄 개편과 관련한 의견표명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KBS본부는 8일 공정방송위원회 긴급안건으로 사측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질 예정이다. KBS PD협회 또한 ‘역사다큐’와 관련, 11일 총회 소집을 통해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봄 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KBS본부의 한 관계자는 “공방위 회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사측에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의가 진전되지는 않고 있다”면서 “사측이 ‘격동의 세월’ 편성을 완전 철회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KBS 한 PD는 “‘역사스페셜’을 거쳤던 PD들이 집단으로 ‘격동의 세월’ 편성에 반대하는 입장을 8일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동해 ‘격동의 세월’ 편성을 막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갈등은 외형적으로만 보면 ‘단순 갈등’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KBS 시사·다큐의 향후 기조와 방향이 걸려 있다는 점에서 ‘폭발성’이 대단히 크다.


▲ KBS 로고.

다른 PD는 “길환영 사장은 자신이 콘텐츠본부장으로 있던 시기,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다큐’ ‘백선엽 다큐’를 제작해 독재자와 친일파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라면서 “이념 관련 아이템을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한국 현대사를 다룬 프로그램이라면 1960~70년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길 사장은 콘텐츠본부장으로 있던 지난 2011년 9월28일부터 30일까지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 ‘초대대통령 이승만’ 3부작을 방송했는데 당시 ‘이승만 편’은 미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 6월24일과 25일 방송된 특집 다큐 (전쟁과 군인) 또한 친일파 백선엽 씨를 전쟁영웅으로 묘사해 왜곡 논란이 제기되는 등 파문이 일었다. 길 사장은 항일음악가 ‘정율성 다큐’가 KBS에서 불방 됐을 때 최종 책임자이기도 했다.
길환영 사장의 이 같은 ‘이력’을 감안했을 때 (격동의 세월)이 ‘제2의 이승만·백선엽 다큐’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한편에선 이번 KBS 봄 개편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코드 맞추기’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동안 KBS PD들이 고민해왔던 ‘시사교양 프로그램 복원을 통한 정상화’는 물 건너 갈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정상화는커녕 ‘관제화 논란’만 더 커지기 때문이다. (격동의 세월) 편성방침에 KBS본부와 PD협회가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다.
또 다른 PD는 “이번 개편 때 중소기업 관련 프로그램인 (히든 챔피언)과 함께 학교 폭력추방 캠페인 프로그램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KBS가 준비하는 다큐·교양물이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PD는 “다른 캠페인 프로그램은 불만이 있더라도 PD들이 크게 반발할 정도는 아니지만 ‘격동의 세월’은 차원이 다르다”면서 “추진과정을 비밀리에 한 점, KBS다큐국이 아닌 외주제작국이 담당하게 한 것도 내부 반발을 의식한 경영진의 ‘치밀한 전략’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PD는 “(격동의 세월)이 ‘박정희 미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KBS 외부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된다.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은 6일 “길환영 사장이 추진하고 있는 다큐 프로그램이 방송된다면 KBS와 길 사장은 박근혜 정부의 사랑을 받겠지만 공영방송 KBS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까지 KBS는 이러한 논란이 생길 때마다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왔지만 길환영 사장의 행보를 보면 과연 정치와 무관한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KBS가 내부반발에도 불구하고 보수진영의 ‘편파적인 역사인식’을 전파를 통해 알리려는 의도가 무엇이겠냐”면서 “언론단체는 물론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격동의 세월’ 편성을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KBS홍보실 측은 “현재 편성안이 확정되기 전이고, 계속 논의 중인 상태라 개편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민동기 기자 | mediagom@mediatoday.co.kr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10-30일자 기사 '"백선엽, 반민족 행위 스스로 고백했다"'를 퍼왔습니다.
[기고] 31세 김광진이 아니라 92세 백선엽의 '과거'를 보자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을 두고 네티즌들이 설왕설래 하고 있다. 발단은 김 의원의 백선엽 비판 발언이다. 그가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방부의 백선엽 씨 미화 뮤지컬 제작을 비판하자 는 기자 칼럼을 통해 "지금 우리 국회에선 31세짜리 의원이 92세의 전쟁 영웅을 '민족반역자'라 부르며 모욕을 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적었다. 당시 "잘못된 과(過)를 가지고 있는 이 민족 반역자가 대한민국 국군 지도자로 설 수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한 김 의원은 졸지에 버릇 없는 국회의원이 됐다.  물론 이 기자 칼럼에는 허술한 지점도 발견된다. 칼럼은 "백 장군은 일부에서 자신이 '독립군 토벌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2009년 인터뷰에서 '독립군을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슨 토벌을 하느냐'고 했다"고 지적했는데, 백 장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가 직접 그의 손으로 독립군을 죽였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속한 간도특설대가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 백 씨는 회고록을 통해 "우리(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팔로군, 항일광복군 등)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백선엽 씨가 민족 반역자인지 아닌지 논쟁은 사라지고, 김 의원의 과거 트윗 발언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김 의원이 "새해 소원은 뭔가요? 명박 급사(急死)"라는 글을 리트윗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가 20대 때 한 '채찍 발언' 같은 것들이 기사화됐다. 그는 지금 '국가 원수 모독'을 즐기는 '변태 성욕자'처럼 돼 있다.  공인이라면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농담 글이라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대위원 역시 과거 트위터에 철거민을 비하하는 듯한 트윗을 한 것이 밝혀져 혹독한 신고식을 치룬 적이 있다. 박지원 원내대표도 김 의원에게 경고를 보내며 "송구하다"고 대신 사과했다. 다만 최초로 김 의원이 제기했던 "백선엽은 민족 반역자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KBS의 백선엽 미화 다큐가 파행을 겪고, 국방부의 백선엽 명예 원수 추대 시도가 무산된 것을 보면 그가 지적대로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 "92세의 전쟁 영웅"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은 '김광진 논란'의 최초 발원지인 '백선엽 논란'과 관련한 기고 글을 싣는다. 편집자주

백선엽, 1920년생이니 올해 92살이다.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대한민국 국군의 원로이다.

김광진, 1981년생이니 올해 31살이다. 민주당 청년비례대표로 의원이 됐는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백선엽 미화 뮤지컬에 거액을 지원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백선엽을 민족반역자라고 지칭했다가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의원이 되기 전에 트윗한 글까지 신상 털기를 당했다. 결국 '명박 급사'를 리트윗했다고 문재인 후보 선대위의 보직을 사퇴하고 공개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막말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새누리당이 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 윤리위에 제출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입에 담기도 민망한 패륜적 망언을 리트윗했을 때의 반응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백선엽, 살아 있을 때 참회라도 하라"

백선엽, 그가 일제강점기 만주국의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에서 군관으로 복무하면서 민족반역행위를 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하에서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반민족행위자에 포함되었으며 국회에 제출한 최종보고서에도 수록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백선엽은 해방 후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더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일본에서 출간된 저서에서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지만 그 때문에 독립이 늦어졌다고 볼 수도 없고, 자신이 일본과 싸웠다고 독립이 빨라질 것도 아니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 백선엽 ⓒ민족문제연구소

백씨가 영웅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먼저 일제강점기의 반민족행위, 그리고 해방 후 이를 사죄하지 않은 것에 대해 뒤늦게라도 참회해야 한다. 아직 생존해 있기 때문에 기회는 남아 있다.

1938년 9월 독립군 '소탕'을 목표로 결성된 간도특설대는 전 부대원 740명 중에서 조선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악명높은 대게릴라전 특수부대였다. 알려진 것만 해도 동북항일연군이나 팔로군과 108차례 전투를 벌여 172명을 살해하였으며, 수많은 민간인들을 상상하기 힘든 잔혹한 방법으로 살상 강간 약탈 고문했다.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백씨는 1943년 4월 만주국 소위로 임관했으며, 곧 간도특설대에 배속된다. 일제가 패망할 때 만주국군 중위였는데 이는 판사 검사 군수와 동일한 고등관 7등의 고위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백씨가 팔로군, 즉 공산주의자와 싸웠다고 강변을 한다. 그러나 간도특설대가 조선인으로 하여금 조선인을 제압한다는 의도 아래 조직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백 씨도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를 인정하고 있다. 팔로군을 공격한 것도 당시 상황에서는 항일부대 나아가 연합군을 공격한 것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더욱이 민간인 동포들을 학살한 행위는 전쟁범죄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 백선엽 회고록 중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대한민국 정치사 오염시킨 정치 군인"

이렇게 사실관계가 명백함에도 군부의 원로나 보수층이 크게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민지의 청년으로서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사관학교나 만주국 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정규 군사교육을 받고 일본군이나 만주군 장교로 임관한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었다. 일제강점기 전 기간을 통틀어 130명만이 이런 혜택을 누렸다. 일본 육사출신이 63명이고, 만주 군관학교 출신이 67명이다. 이들 중에서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한 사람은 5명뿐이다.

이들은 소위로 임관하면 고등관 8등 대우를 받았고, 2~3년 후 중위로 진급하면 고등관 7등에 올랐다. 고등관은 기차를 타도 2등칸 이상을 탔으며, 고등관의 부인은 '옥상'이라 불렸다. 이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오염시킨 정치군인의 원조들이다.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나 행정과에 합격하면 시보생활을 몇 년 거친 다음에 고등관 7등의 군수나 판사에 임명됐다. 고등시험에 합격한 조선인이 400명쯤 됐으니 군수가 되는 것보다 장교가 되는 게 훨씬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민족의 불행은 계속됐다. 일본 육사나 만주군관학교 출신 중에서 50명 이상이 '반공'의 기치를 든 덕분에 국군의 장군으로 변신했다. 심지어 신경군관학교 2기이며 만주국 중위 출신인 박정희 소장은 만주국 군맥을 동원해서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박정희 정권은 경상도의 외피를 쓴 만주 군인들의 정권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9년 2월까지 육군 참모총장은 일본군 장교 또는 만주국군 장교 출신들이 독차지했다. 이 자리는 일본군 대령 출신 이응준이 초대 참모총장을 맡은 이래 일본군 중령 출신 신태영, 일본군 소령 출신 채병덕, 만주국군 헌병 대위 출신 정일권, 일본군 소령 출신 이종찬, 만주국군 중위로 간도특설대 군관 출신 백선엽, 이응준의 사위이자 일본군 대위 출신 이형근, 다시 백선엽이 이어받았다. 이상 7명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그 다음부터 1972년 10월유신으로 제3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육참총장 자리는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현지 임관해서 일본군 장교로 복무한 자들이 독차지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사정이 이러하니 이들과 직간접으로 연을 맺고 있는 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백 씨의 역성을 들만도 하다. 게다가 색깔론이 선거에 유리하다는 판단까지 들고 보니 김 의원 화형식 같은 이성을 잃은 퍼포먼스까지 연출하고 있다.

이건 추론이지만 친일수구세력이 백씨에 대해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을 수 있겠다. 백 씨가 육본 정보국장 근무시절 남로당 프락치 사건으로 죽게 된 박정희를 구명하고, 정보국에 문관으로 근무하게 했으며, 정보비에서 월급을 챙겨준 적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이래저래 챙겨야 할 까닭이 많아 보인다.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2012년 10월 26일 금요일

서민교 “백선엽, 日語자서전에서 조선인 토벌 고백”


이글은 노컷뉴스 2012-10-26일자 기사 '서민교 “백선엽, 日語자서전에서 조선인 토벌 고백”'을 퍼왔습니다.
백선엽, 일본어판 자서전에서는 1945년 이전 활동 증언백선엽, 전쟁영웅일지라도 친일행위는 분명한 사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2년 10월 25일 (목)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서민교 前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정관용> 이번에는 친일반민족진상규명 활동당시에 바로 백장군의 기록을 담당하셨던 서민교 전 전문위원이십니다. 안녕하세요? 

▷서민교>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그 아까 방금 재향군인회에서는 친일인명사전 자체를 부정하시는데,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지게 된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이었습니까? 

▷서민교> 친일인명사전은 결국 민간기구에서 만든 거니까요. 그거 자체를 법적기준이라기 보다는 전문연구자들이 다 모여서 청문회 등도 통하고 그런 의견들을 다 수렴을 해서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를 했던 것이고요. 

▶정관용> 네.

▷서민교> 그런 쪽은 나중에 정부기관으로 2005년에 발족됐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특별법과도 서로 연계가 되어 있는 부분이죠. 

▶정관용>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5년에 발족했죠. 그런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인명사전이 나왔다 그렇게 보시는거군요?

▷서민교> 그 이전부터 활동을 해왔고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서민교> 정부기관쪽에서 했던거랑 민간기구에서 했던 것이 되겠죠.

▶정관용> 서민교 선생께서는 그 당시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전문위원을 지내신 거예요. 

▷서민교> 예.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리고 거기서 남긴 기록이 있습니까? 백 장군에 대한 기록? 

▷서민교> 예. 그러니까 결정을 했죠. 

▶정관용> 네.

▷서민교> 조사 대상자로도 선정을 했었고, 최종적으로 행위 확인을 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결정을 했죠. 정부기관에서 

▶정관용>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정부기관이 규정을 했다?

▷서민교> 예.

▶정관용> 어떤 자료를 봤더니 친일행적이 잘 드러나던가요?

▷서민교> 역사적 자료니까 일생에 관한 자료를 다 수집을 했습니다만은 특히 저희들은, 중심이 됐던 것은 본인이 쓴 자서전, 회고록 이 자료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 참고가 됐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진술과도 거의 동격의 의미를 가지게 되거든요.

▶정관용> 그런데 회고록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여러 권 나왔다면서요?

▷서민교> 예. 한국에서는 한 두세권 정도 나와 있고요. 일본에서는 오히려 더 많이 나와있습니다.

▶정관용> 네. 그런데 그 내용이 좀 달라요?

▷서민교> 주로 과거 이야기는 허약하게 취급되어 있고요. 주로 한군전쟁 당시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 있죠. 근데 한국에서 나와 있는 회고록은 일본어로 거의 번역이 됐고요, 근데 일본어로만 된 책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정관용> 예. 

▷서민교> 근데 일본에서 나와있는 책에 한국에서 나와있는 회고록하고는 전혀 다른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게 있습니다. 

▶정관용> 어떤 게 다릅니까?

▷서민교> 45년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 나와 있는 부분이 있거든요.

▶정관용> 뭐라고 본인 스스로 기록을 했던가요?

▷서민교> 그러니까 백선엽씨 자체가 간도 특설대 활동에 대해서 직접 회고록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일본에서 나온 내용입니다만 우리들이, 그러니까 간도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가, 게릴라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항일연군이라든지 독립군을 게릴라라고 표현을 하고 있어요. 

▶정관용> 예.

▷서민교> 이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 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하여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 오랑캐를 통해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이이제이의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라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정관용> 본인 스스로?

▷서민교> 예. 그리고 약간 변명조로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고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 한마디 조금 후회스럽게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관용> 어쩔 수 없다. 

▷서민교>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정관용> 그런데 그 후에 주로 2000년대 인터뷰를 보면 독립군을 토벌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백장군의 답변을 보면 독립군 구경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슨 토벌이냐 말했거든요?

▷서민교> 연세도 있으시니까요. 뭐 과거사에 대해서 기억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지 않습니까? 기억이 남아있는 부분과 남아있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지금 제가 말씀드린 내용자체도 본인 스스로가 이것을 문장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의견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정관용> 네. 조금 아까 재향군인회 서진현 국장께서도 주로 중공팔로군을 상대로 싸웠고 일부 한국인들을 괴롭히던 김일성 게릴라 부대와도 싸웠다 이런 표현을 쓰셨는데.

▷서민교>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정관용> 다른가요?

▷서민교> 예. 다르고요. 특히 김일성부대 말씀하셨는데 김일성부대가 노령으로 넘어간 것은 그 이전이고요. 38, 9년이니까요 백선엽장군, 백선엽씨가 간도특설대에 있던 시기와는 겹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팔로군만 가지고 말씀을 하셨는데 당시 시대가 일제시대고 일본이 37년부터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하던 시기입니다.

▶정관용> 그렇죠.

▷서민교> 그러면 항일부대라고 하는 것은 항일연군이라고 하는것은 그 주의가 공산주의던, 공산주의가 아닌 장개석 군도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 주의주장만 가지고 편가름을 하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 그건 백장군의 일본어판 회고록에서 본인도 그런 표현을 썼죠. 조금아까 말씀하신.

▷서민교> 그렇죠. 그렇죠.

▶정관용> 이래서 분명히 친일반민족행위 했던 건 맞다? 이 말씀인거죠?

▷서민교> 그렇죠. 전전에, 45년 이전의 행위를 가지고 평가를 할때는 당시 특별법규정에 의거해도 그렇고 저희들이 행위가 없으면 규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6.25 전쟁 그 이후에 한국군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은 인정을 하십니까? 

▷서민교> 그런 평가들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쪽으로 분석을 해보진 않았습니다만 그런 일반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동감을 하고 있는 바입니다. 

▶정관용> 동의할 수 있다?

▷서민교> 예.

▶정관용> 전쟁영웅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서민교> 그건 그렇게 평가를 할 수 있는 기준이 제시가 되고 납득이 되면 괜찮죠. 

▶정관용> 그러나 동시에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던것도 분명하다?

▷서민교> 대한민국건국이후에 특히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민족비극속에서 어떤 한국군내에서 역할을 하고 공을 세웠다는 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45년 이전의 행위도 있었다는 것은, 과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히 지적을 해야 되겠죠.

▶정관용> 알겠습니다. 네 여기까지 듣죠. 고맙습니다. 

▷서민교>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서민교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말씀 들었습니다. 전쟁영웅임을 서로 인정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있었던 흠 그것을 어디까지 볼것이냐 거기서 비롯된 시각차가 나오는 군요.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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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김광진 의원, ‘백선엽 민족반역자’ 발언 논란에 “국가에 따져라”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10-23일자 기사 '"백선엽 장군,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자"'를 퍼왔습니다.
"백선엽 장군, 법률상 친일반민족행위자"


ⓒ양지웅 기자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18일 저녁 서울대학교에서 2012 대학생 대안포럼에서 주최한 '청년국회의원 TALK 콘서트'에 참석해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인 김광진 의원이 지난 19일 국정감사에서 6.25 전쟁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지냈던 백선엽(92) 장군을 두고 ‘민족반역자’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에 대한 사과를 공식 요구했고, 일부 보수성향의 언론은 한 목소리로 김 의원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 의원은 22일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백 장군은 법률이 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며 “국가에서 규정한 것으로 논쟁할 필요성이 전혀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으면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해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구 사무국장을 지낸 바 있다.

김광진 "친일반민족행위자"...새누리 "6.25 전쟁영웅을 감히"

이 논란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 의원이 당시 국정감사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질의하던 도중 백 장군을 거론하며 “잘못된 ‘과’를 가지고 있는 이 민족반역자를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잘못을 청산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 사람을 칭송해야 된다는 현실이 참 부끄럽다”고 발언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김 의원은 국방부가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백 장관을 모델로 한 군 창작 뮤지컬 ‘더 프로미스(The promise)’를 지원하는데 수억 원의 예산을 들이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던 중이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국감 자리에서 “이렇게 군에서 가장 원로이시고 6․25 전쟁을 통해서 군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민족반역자’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며 김 의원의 발언을 지적했다.

김 의원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은 일부 보수성향 언론이 받아쓰면서 뒤늦게 번지기 시작했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22일 현안 브리핑에서 “백 장군은 6·25 당시 낙동강 방어선, 칠곡 다부동 전투, 38선 돌파와 평양 입성, 서울 탈환 등 큰 공을 세운 바 있으며 미군들도 그를 전쟁영웅으로 대접하고 있을 정도”라며 “92세의 전쟁영웅에게 민족 반역자라는 멍에를 뒤집어 씌운다면 앞으로 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냐”고 몰아붙이며 사과를 요구했다.

김광진, 새누리당 주장에 "일제시대 친일반민족행위는 분명한 과(過)"

김 의원은 이러한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 “기본적으로 민족반역자냐 아니냐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 근거는 없고, 국가에서 이 사람을 친일파로 인정했냐 안 했냐를 검토하면 된다”면서 “백 장군은 우리나라 과거사위원회가 정한 특별법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이 21일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대통령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위원회의 자료에는 “백 장군의 행위를 제2조 제10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는 백 장군이 “1942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1945년 일제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여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少尉)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뉴시스/국가보훈처 제공 지난 6월 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가보훈처 강당에서 백선엽 장군이 '내가 겪은 6.25와 대한민국'이란 주제로 국가보훈처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김 의원은 백 장군이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부대 출신이지만 독립군이 아니라 중공 팔로군을 격퇴했다’며 친일 행위를 부인한 것에 대해서는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호도하는 것”이라며 “중공 군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 안에 조선인이 포함돼있었다는 것은 백 장군의 수기에도 분명히 나와있다. 스스로도 인정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등 일각에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백 장군을 두고 ‘6.25 전쟁영웅’이라고 칭하는 것과 관련 “일제시대의 과는 과대로 인정하며, 전쟁 과정에서 서울을 수복했다는 점 등에서 공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면서도 “조선이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일제에 부역했던 사람이 우리나라의 국군 지도자가 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간도특설부대는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팔로군 등 항일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1938년 조선인을 중심으로 조직해 1939년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며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존속한 800~900여명 규모의 특수부대다. 간도특설부대는 악명이 높아 일반 사병일지라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기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지현 기자 cjh@vop.co.kr

2012년 9월 8일 토요일

MB정부, '독립군 토벌대' 백선엽 찬양에 혈세 6억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7일자 기사 'MB정부, '독립군 토벌대' 백선엽 찬양에 혈세 6억'을 퍼왔습니다.
국방부 '백선엽 뮤지컬' 제작'…KBS '백선엽 다큐' 논란 2탄

이명박 정부가 '독립군 토벌대'에서 활약했던 백선엽을 모델로 다룬 뮤지컬을 제작하는데 6억 원을 쏟아부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지난해 7월 KBS의 '백선엽 다큐' 제작과 관련해 '친일 미화' 논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혈세를 들여 '백선엽 미화'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민주통합당 김광진 의원이 7일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군 창작 뮤지컬 예산서'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1사단장을 지냈던 백선엽을 모델로 하는 '약속(영어명 The Promise)' 제작에 올해 2억 원을 배정했다. 2013년에는 4억 원을 쏟아 붓게 된다. 미국 공연도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 공연은 국내 공연 평가 결과와 예산 확보 가능시 추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뮤지컬의 시나리오 컨셉과 관련해 국방부는 "6.25 전쟁 당시 낙동강 지구 전투를 배경으로 하며 재방한 종군기자(히긴스)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국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던진 한 장교와 미군의 약속을 주제로 하여 동맹의 의미를 감동 있고 스펙터클하게 묘사"하며 "국군 학도의용군, 소년병, 주민 등이 자신을 희생하여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해내는 과정에서의 개인적 갈등을 복성으로 구성"하고 "전사에 기초하되(학도병, 소년병, 1사단장, 8군사령관, 용전 등)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참전장병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작"한다. '난타'로 유명하고, 이명박 정부 문화관광체육부장관으로 하마평에 올랐었던 송승환 감독이 예술감독을 맡는다. "군 복무중인 특정 연예인이 주연을 맡도록 돼 있다"는 말도 들린다.

뮤지컬은 1사단 소속 병사들의 사연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1사단은 백선엽이 사단장으로 있었던 곳이다. 김광진 의원 측은 "마치 1사단장의 비중이 적은 것처럼 나오지만 결국 초점은 다부동전투의 승리와 백선엽 사단장과 병사들의 승리로 귀결되는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 측은 "국방부에 문의한 결과 '특정 인물이 중심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다면 백선엽을 모델로 한다'는 수많은 오보 기사에 반박하라'고 주문하자 '그럴 이유가 없다'고 답하더라"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백선엽 미화' 움직임은 유독 적극성을 띠었다. 지난 2010년 <중앙일보>는 백선엽 회고록을 장기 연재했고 공영방송인 KBS는 백선엽을 미화한 '전쟁과 군인'이라는 특집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당시 시민단체의 반대로 방영이 연기되기도 했지만, KBS는 방영을 밀어붙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 가운데 국방부가 정부 예산을 들여 백선엽 미화 뮤지컬을 제작하는 상황이다.


▲ KBS가 지난해 방영한 '백선엽 다큐'의 장면 캡쳐

'독립군 토벌대' 장교 백선엽은 누구?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 연구실장은 "백선엽은 1930년대 후반 간도협조회, 신선대 등과 함께 만주에서 가장 악랄하게 조선인 항일세력을 탄압한 조직 중 하나인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설명했다.

간도특설대는 일제가 간도 지역의 조선인 항일유격부대를 제거하기 위해 '조선인으로 조선인을 다스린다'는 정책에 의해 설립한 만주국 특수부대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따르면 이들이 '토벌'한 독립군 및 민간인은 172명에 달한다. 백선엽은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이기도 하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백선엽은 민간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친일인명사전, 정부 세금으로 만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조사 보고서에서 '친일파'로 공인된 '친일파 2관왕'이다. 그런 그를 국가가 기념하겠다는 것은 모순 중의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방 사무국장은 "백선엽은 국적이 세번 바뀌었다.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는 한국으로만 돼 있지만 일본판에는 일본, 만주국, 대한민국 세 곳이고, 미국판에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방 사무국장에 따르면 백선엽은 1920년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됐지만, 백선엽은 지원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간도특설대에 들어간다.

간도특설대와 관련해 방 사무국장은 "간도특설대는 한 마디로 조선인을 통해 조선인을 잡는다는 취지로 만든 것이며, 만주에 출몰한 항일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만든 곳인데 여기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린다. 이들은 '3광정책', 살광(殺光), 소광(燒光), 창광(猖光) 을 기본으로 했는데,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불태우고 모조리 빼앗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방 사무국장은 "당시 간도특설대의 활약을 기록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항일빨치산을 그냥 죽이지 않는다. 불태워 죽이고, 배를 갈라 빈깡통에 집어 넣는다. 포로로 잡힌 여성을 강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방 사무국장은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활동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국내에서 발간된 회고록, 일본에서 발간된 회고록 모두에 집어 넣었다. '항일 부대원 중에 조선인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쩔수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백선엽의 회고록에 나온 변명"이라고 말했다.

방 사무국장은 "군인은 사망할 시 대전국립묘지로 가게 돼있는데 백선엽만이 사망하지도 않았는데 서울현충원에 안장시키겠다고 약속을 받아냈다. 명예원수를 주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살아 있는 백선엽의 동상이 파주에 들어섰다. 백선엽의 뮤지컬이 만들어지고 있다. 수많은 혈세가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적시된 백선엽 관련 기술은 다음과 같다.

백선엽(1920~생존)은 평양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군인의 길을 택하여 1940년 만주국군 봉천군관학교 제9기로 입학하여 이듬해 12월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 동부 파오칭에 있던 보병 제28단에서 견습사관을 거쳐 민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후 약 1년간 자무스에서 신병훈련대 소대장으로 근무한 다음 1943년 2월에 만주 간도성 명월구에 있던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탄압하던 간도특설대로 전임되어 해방될 때까지 항일무장세력에 대한 탄압활동과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였다.

1. 백선엽은 1942년 만주국군 소위로 입관한 이래 1945년 일제의 패전에 이르기까지 만주국군 장교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그중에서도 1943년 2월부터 만주지역 항일무장 독립세력을 무력으로 탄압하던 간도특설대에서 이들에 대한 탄압활동을 전개하였고, 또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간도특설대원으로서 일본군의 '대륙타통작전'의 일환으로 열하성으로 들어가 기동지역에서 중국군 팔로군을 '토벌'하는 작전에 종사하였다. 또 1945년 봄부터 일제의 패전 당시까지 연길지역 국경수비 임무에 종사하는 등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다. 백선엽의 이러한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0호 "일본제국주의 군대의 소위 이상의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허여, 백선엽의 행위를 <특별법> 제2조 제10호에서 규정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다.

"국가 예산으로 반역사적 공연 진행하는데 분노"

김광진 의원,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정의실천연대과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후손 김상덕 씨,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후손 차영조 씨, 조경환 의병장 후손 조세현 씨, 독립운동가 유희준 선생 후손 유종하 씨 등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정부가 국가의 예산으로 반역사적 공연을 진행하는 데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방부는 당장 뮤지컬 기획을 중단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름 없이 쓰러져간 항일 독립군들의 업적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군의 명예와 자부심을 높이라"고 요구했다.

/박세열 기자

2012년 3월 9일 금요일

새누리당의 정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예'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9일자 기사 '새누리당의 정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예''를 퍼왔습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고자 국회의 의결로 설립되었던 ‘반민특위’를 1949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로써 ‘친일반민족’은 금기의 단어가 되었다.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반민족자들은 반공투사로, 군사독재 아부자로 변신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는 나치 치하 4년 동안 반민족 행위자 6,781명에게 사형을 선고(사형집행 782명, 종신강제노역 2,802명)했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의 민족반역자를 우리는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반민족 행위를 사과한 사람도 몇 사람에 불과하다.
국가가 척결하지 못한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겨두고자 ‘민족문제연구소‘가 18년 동안 준비했던 친일인명사전을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발간한지 2년이 지났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이제 역사가 응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 앞에 서 있는가? 독재정권에 의해서 친일파들이 도리어 옳았다고 증명하려고 하는 역사,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역사 앞에 우리는 다시 서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역사 분야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보자. 과거사 관련 모든 위원회를 없애는 것이었다. 멀게는 동학혁명부터, 일제 때 강제동원 피해문제,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역사. 부당한 권력이 국민들을 희생시켰던 역사들을 바로 세우고자 만들었던 것이 과거사 관련 위원회였다.
억울한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고 국민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에서 출발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바쁘게 결국은 다 문을 닫아버렸다. 국민들은 가슴에 멍든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 정권은 모든 것을 은폐하기에 바빴다. 


그 대신 이 수구세력들은 건국60년 기념사업을 했다. 건국 60년! 이 어휘 속에는 친일세력의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다.
  “임시정부는 독립 국가를 대표한 게 아니고, 실제로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 그러니 우리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건국의 공로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게 마땅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1948년 이전,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투쟁을 했던 모든 우리 선조들의 투쟁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뿌리는 독립운동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 전문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은 3.1정신을 바탕으로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우리 헌법 전문은 명시하고 있다. 
역사가 뒤틀리지 않았다면 대부분 민족반역죄로 다스려졌을 친일파들, 그리고 권력에 눈이 멀어서 친일파와 손잡았던 이승만과 그 옹호세력들이 우리 역사의 뿌리요 정통이란 것이다.
건국 60년, 이거 어쩌다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건국절 얘기를 꺼냈고, 뉴라이트에 속하는 학자들이 그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2003년부터 건국절 법안을 발의했다. 건국60년 기념사업은 이런 배경 속에서 추진된 것이고, 결국 이 정권은 광복절 행사에 건국60년이라는 글자를 박아 넣게 되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광화문에다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세력이 나서고, 시민들의 피로 역사에서 추방했던 이승만 동상이 다시 섰다. 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군 토벌에 참가한 일급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동상도 섰다. 그리고 급기야 공영방송까지 수구세력의 나팔수가 돼서 백선엽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라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방송을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칠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친일파의 입맛에 맞도록 뜯어고치려고 하는 작업이다.
뉴라이트 대표 학자들이 포진한 교과서 포럼. 이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책을 냈다. ‘ 일제가 우리를 근대화시켰다.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은 돈 벌러 간 거다. 김구 선생은 테러리스트다.’ 이걸 두고 조선일보는 균형 잡힌 역사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가서 교과서를 탈환해야 된다고 선동했다. 
교과부 국방부 통일부가 나서고, 한나라당은 거들고, 상공회의소까지 설쳐서 현행 역사교과서 2백 군데를 뜯어 고쳤다. 그리나 이걸로도 끝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우리 학생들은 새로운 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을 받게 된다. 그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은 ‘8.15 이후 친일파 청산에 대한 모든 노력을 빼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빼라,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빼라, 광주 5.18 민주화항쟁에 대한 기술도 빼라’고 되어 있다. 이런 책으로 배운 학생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가야 되는가?
이제 박정희 동상까지 섰고 기념관도 문을 연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퇴임 전까지 이 모든 역사왜곡의 완결판인 대한민국역사관을 개관하겠다고 한다.
왜곡된 역사를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배우고, 집에서는 방송에서 익히고, 거리에 나서면 각종 동상과 전시회 기념관을 통해서 배우는 이런 비참한 현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친일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이 역사적 정통성을 완전히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가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후예임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새누리로 당명을 바꾸고 사람 몇 명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실 정치다. 새누리당에 절대로 국가를 맡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