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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8일 금요일

[박한용 칼럼]전향, 그 민망한 블루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6-07일자 기사 '[박한용 칼럼]전향, 그 민망한 블루스'를 퍼왔습니다.
김문수와 하태경을 이해하는 법

최근 임수경 의원의 새터민 관련 발언과 하태경 의원에 대한 변절 논쟁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새터민에 대한 임수경의원의 발언이야 당연히 잘못한 것이고 본인도 사과를 했으니 구태여 나까지 거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김문수 경기도지사, 하태경 국회의원(새누리당) 같은 이른바 좌익운동권 또는 ‘주사파’에서 ‘전향’한 사람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전향에 대해서 말이다. 전향이 무언가를 알면 변절이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있겠기에 전향을 갖고 얘기해보겠다. 

한국에서 전향은 일제 강점기의 전향제도에서 기인했다. 그 모태는 치안유지법이었다. 

일제는 종래의 보안법 등이 일본의 사상가들이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발본색원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1925년 ‘치안유지법’을 제정했다. 전 7조로 구성된 치안유지법은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할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뜻을 알고 이에 가입한 자”(1조)를 시작으로 미수죄, 협의, 선동, 생명 신체, 재산에 해를 가하는 범죄선동, 이익 공여 등을 중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였다. 1928년 치안유지법은 최고 사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강화되었다. 이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사상범을 보호관찰하고 예방구금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려다 여의치 않자,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1941년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을 따로 제정했다.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은 비전향자에 대한 보호관찰을 명목으로 감시와 통제를 하고 전향을 강제했다. 전국의 감옥들은 전향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악랄한 고문을 자행했다. 이 때문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전향을 거부하다 감옥에서 죽어갔다. 그야말로 피의 강제전향이었다.

 ⓒ양지웅 기자 31절에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시민들이 일제시대에 쓰였던 감옥을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일제의 전향 논리는 특이했다.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서 보자면 범법자라도 형집행이 완료되면 더 이상 불이익을 줄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일제는 천황의 적자(아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 나쁜 짓을 했으니, 이를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아버지(천황)의 도리라는 논리로 전향을 정당화했다. 이 결과 고문 등으로 정신마저 개조하려 했으니 그 광기를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사실 전향제도는 1933년부터 시작되었다. 보호관찰제도는 이를 법령의 형태로 보장하고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일제의 사상개조작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1941년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이란 것을 제정해 이른바 재범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 사상범들을 예방구금소나 감옥에 가수용 조치를 했다.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를 지을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일제의 가장 악랄한 법이 바로 이 세 가지였고 항일운동가들 또한 이 법들에 대해 치를 떨었다. 해방이 되면서 당연히 폐지되어야 했다. 그런데.....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했다. 

1948년 말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나자 이승만정권은 1949년 2월 4일 국가보안법을 강행 제정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치안유지법의 부활’이라고 규정하고 반대운동을 했다.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도 “국가보안법 주요 내용이 대부분 새 형법에 담겼으므로 폐지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여당은 “지금은 전시”라는 명분으로 밀어붙여 유지되었다. 그리고 1963년 ‘반공을 국시로 내세운’ 박정희 정권 때 더욱 강화된 형태로 개정되었고 1980년에 한 번 더 개정되었다. 불고지죄 등 반인륜적 조항이 있는 국가보안법은 처벌 대상은 달라졌지만 치안유지법의 수치스런 계승자라 할 수 있다. 

1972년 7·4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통일에 대한 기대는 일시 높아졌으나 세상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었다. 박정권은 7·4남북공동선언을 독재의 징검돌로 악용했다. 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악명 높은 전향공작이 시작되었다. 1973년 6월 2일 법무부 예규로 ‘좌익수형수 전향공작전담반 운영지침’이 하달되어 각 교도소별로 강제전향공작이 진행되었다. 1975년에는 사회안전법을 제정해 만기출소한 비전향자들을 다시 심사해서 전향을 거부하면 청송보호감호소로 수감했다. 

일제 강점기 3대 악법이 고스란히 대한민국에서 반공이란 이름 아래 인권유린의 수단으로 부활한 것이다(사회안전법은 1989년 보안관찰법과 1998년 준법서약제를 거쳐 폐지되었다). 이런 피의 폭력성이 묻어있는 연유로 전향한 사실 자체를 두고 무조건 비난할 수 없기도 하다. 

ⓒ뉴시스 하태경 새누리당 국회의원
한편 김문수 지사나 하태경 의원 등은 과거 수사기관에 검거되어 조사받을 때 고문 등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사상 전향 자체는 자발적 선택이기에 악법과 관련된 전향과는 무관하다. 그 대신 스스로 선택한 이상 전향의 자기 책임은 따른다. 그런데 그 전향의 동기나 내용 그리고 이후 행적을 보자면 그들의 전향에 진정성이 담겨 있는지 의심이 더럭 든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향의 정당성을 대체로 두 가지로 설명하는 듯하다. 

먼저 1990년대 사회주의권의 몰락을 보고 더 이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자신들은 자본주의체제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번영과 발전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로 유례없는 독재 아래 주민들마저 굶기는 북한은 우리의 대안이 아니며 대한민국을 유일한 정통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찌됐건 전향의 명분으로 ‘보다 많은 민주주의와 보다 풍요로운 경제적 번영’이라는 기준을 내세웠으니 그 기준에서 평가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들의 전향 이후 행태가 도저히 그들의 전향 명분하고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 아니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해야 정확하다.

김문수 “일본의 식민지가 안됐다면 오늘의 한국이 있었을까”

김문수 지사는 2007년 삼성전자 대표와 양해각서 체결 때 “삼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직의 책무”라고 밝혔다. 대재벌의 이익을 뒷받침하는 것이 공직의 책무라는 발언 자체가 공직자의 책무를 벗어난 것이지만, 삼성의 가혹한 가족주의 아래 희생당하고 있는 삼성노동자들은 노동운동가였던 그의 안중에 없다. 그는 사회주의를 포기하면서 동시에 노동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정치·경제적 권익마저 외면했다. 그의 전향은 이 땅의 다수 민중의 삶과 대립되는 지점 즉 대기업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 경제민주주의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효순·미선 두 소녀가 미군 전차에 깔려 끔찍하게 죽은 일을 두고 2008년 경기도청 월례조회에서 ‘도로가 좁아서 발생한 문제’라고 말한 것은 또 어떤가. 반미문제 운운하기 전에 죽은 소녀들과 그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 발언을 듣고, 전향 후 그는 따스한 심장마저 버린 것은 아닐까 ‘연민’마저 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2009년 부천상공회의소 신년인사회 때 “일본의 식민지가 안됐다면 오늘의 한국이 있었을까”라는 망언마저 했다. 이쯤되면 대한민국 공직자가 아니라 일본 우익의 발언 아닌가. 그는 일본제국주의에 전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2010년 대한민국 건국의 재조명 강연회 때는, “MB(이명박)는, 박정희-세종-정조 다 합쳐도 반만년 역사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듣는 사람조차 얼굴이 화끈거릴 이 아부성 발언을 도대체 그의 전향의 진정성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이승만과 박정희의 동상을 세종로에 세워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쯤 되면 그의 전향은 독재자를 향한 순정 고백이라 할 만하다. 드디어 그는 2011년 6월 최고경연자 조찬회에서 “춘향전은 변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라는 발언마저 서슴지 않았다. 맙소사, 도덕성마저 전향하다니!

김문수 지사는 신화처럼 회자되었던 1985년 구로동맹파업을 현 진보통합당의 심상정씨와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와 함께 지도했다. 그리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결성해 서울 지역 노동운동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했다. 만일 그가 서노련의 지도자였을 때도 이런 상식 이하의 망언을 했을까. 최근에 그는 박정희 찬양을 일삼으면서 다른 한편 유신을 비판하고 박근혜 대표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의 전향 결과는 정신적 혼란과 언어분열로 치닫고 있다. 전향하면 더 나아져야하는데 왜 더 나빠지는지..... 

하태경 “친일파이지만 반민족행위자는 아니다”

하태경 의원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이른바 ‘주사파’계열의 조직 간부로 활동하다 나중에 전향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번 4월 총선에서 해운대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가 출마하면서 통합진보당의 특정 후보를 ‘북한의 지하조직원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등 색깔론을 들고 나왔다. 아울러 자신같은 사람을 뽑아야 ‘친북 세력’을 발본색원할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며 표를 호소했다. 

차라리 그는 국회의원 대신 공안검사를 택해야 했다. 주특기를 살리란 뜻이다. 하여간 그는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할 당위성마저 과거 운동권 전력을 스펙으로 삼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 운동 전력’이 오늘의 출세의 밑바탕이 되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몇 년 전 최남선·이광수와 같은 특급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최남선과 이광수는 “친일파이지만 반민족행위자는 아니다”라고 강변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민족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현실주의적 노선을 견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친일이지만 친 민족적’이라는 해괴한 주장이다. 하태경 의원의 일제 식민지시기에 대한 역사 인식과 주장이 조선총독부나 오늘의 일본 극우의 주장과 단 하나도 어긋나지 않게 딱 들어맞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완용이나 이광수 같은 특급 친일파가 환생한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랴! 어쩌면 자신의 전향을 최남선과 이광수의 변절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김문수나 하태경 같은 이들은 전향을 하면 친일파의 논리마저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더구나 하태경 의원은 타인에게는 서슴없이 색깔론을 들이대면서 자신에게는 친일파로 낙인찍지 말라고 항변한다. 전향은 적반하장을 동반하는 것인가. 

전향을 권력과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이들

과거 학생운동 출신자들로서 나름 혁혁한 전공을 자랑하던 이들이 전향 후 그저 조용히 살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오히려 위로의 술 한 잔이라도 건네고 싶다. 그런데 일부 전향자 특히 운동권의 권력을 맛본 이들이 전향한 경우 이들은 전향 후에도 꼭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습성을 보이고 있다. 신지호도 그러했듯 북한이 독재라서 실망했다고 하면서 정작 그들은 남한 독재정권의 원뿌리인 수구정당의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한다. 더구나 그들은 민주시민으로서 최소한의 양식마저 벗어난 낡은 극우이데올로기 심지어 친일이데올로기로 무장해 우충우돌하고 있기에 더욱 고약스럽다. 

학생운동을 거쳐 운동권의 간부가 되려면 이론이나 논리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그런 사람들이 왜 전향만하면 시정잡배보다 못한 헛말을 쏟아내고 일반 시민들의 민주의식보다 처지는지 궁금하다. 왜 전향은 두뇌의 퇴행을 동반하는 지 아리송하다. 그들은 정말 바보라서 그럴까? 아니다. 전향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한번 변절한 이들은 또 변절한다’는 속설이 있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이들의 전향을 믿거나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구세력은 자신의 적들을 치기 위한 효과적인 도구나 상징으로 이들을 받아들이고 앞장세운다. 속으로 믿지 않는다. 한번 빨갱이는 영원한 빨갱이라는 한국사회의 저주어린 주문이 여전히 이들을 얽어매고 있다. 그러기에 ‘족보 있는 수구’들은 김문수나 안병직을 여전히 빨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중의소리 만주 군관학교 졸업식에서의 박정희

이 주박을 벗어나려면 오로지 자신의 충성도를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예전에 모시던 ‘주군의 수급’을 따는 것보다 확실한 것이 어디 있으랴. 이미 그들의 선배가 모범을 보였다. 과거 남로당원 박정희가 일본 관동군 헌병 오장 출신 김창룡에게 잡혔을 때 공개리에 남로당원을 열 명 지목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했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어제의 동지를 고발한 이상 그는 더 이상 남로당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김창룡이 노린 것은 그것이었다. 

소설 삼국지에서 빈번히 나오는 것도 이런 이야기이다. 말이야 유비나 조조 또는 손권의 정성과 덕망에 감읍해 귀순했다고 하지만, 이 ‘귀순용사’들은 예외없이 ‘뜨거운 차 한 잔이 식기 전까지’ 먼저 모시던 주군 또는 상관의 목을 따오지 않던가. 그렇게 충성은 피로써 확인되면서 비로소 체제 내에 안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한 때 모시던 주군의 수급을 딴 들 맘이야 편하겠는가. 스스로 비인간화의 길을 걸으며 그 상처를 잊고 싶은 법이다. 괴로울수록 더욱 자신의 전향을 정당화하는 데로 나아가고 스스로 뇌의 회로(사고구조)를 바꾼다. 과거에 굳어진 뇌의 회로를 정반대로 바꾸려니 뇌인들 멀쩡하겠는가. 버그가 발생한다. 전향은 ‘비인간화’라는 비정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김문수 지사나 하태경 의원은 체제의 안착을 넘어 체제 속의 출세를 지향한다. 이들은 전향을 하더라도 여전히 권력은 그대로 지키고자 하는 욕망을 전향과 결합시켰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 경력을 되살려 남한 운동권을 발본색원하겠다거나 북한동포를 해방시키겠다거나 대한민국 만세를 누구보다 높이 외친다. 그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성취한 최소한의 민주주의 가치마저 부정한 집단에 대해 충성을 다한다. 자신들의 지적 수준이나 상식과도 맞지 않는 이상한 발언마저 해댄다. 자신들도 혼란스러울 정도로. 

변절이 아니라 변질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직 권력을 향한 욕망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과거 운동 속에서 취득한 권력의지가 여전히 이들 속에 내재하고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는 권력 또는 운동에 대한 사적 소유, 정확하게 말해 한국 사회의 민주투사들이 피 흘려 쟁취한 역사의 성취를 자신의 출세와 맞바꾸는 야바위 행위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김어준이 말한 바 “금융사기단 정권”과 체질적으로 딱 맞아떨어진다. 야바위는 사기의 한 형태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전향을 변절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지켜야 할 그 어떤 대쪽 같은 절개가 애초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성마저 상실하면서 저질의 인간으로 타락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변절이 아니라 변질인 것이다. 한 마디로 ‘못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글은 필자가 속한 민족문제연구소나 민중의소리 입장과 무관한 것임을 밝힙니다.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2012년 3월 9일 금요일

새누리당의 정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예'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3-09일자 기사 '새누리당의 정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후예''를 퍼왔습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하고자 국회의 의결로 설립되었던 ‘반민특위’를 1949년 8월 이승만 대통령이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로써 ‘친일반민족’은 금기의 단어가 되었다. 광복된 조국에서 친일반민족자들은 반공투사로, 군사독재 아부자로 변신해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득세하는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스는 나치 치하 4년 동안 반민족 행위자 6,781명에게 사형을 선고(사형집행 782명, 종신강제노역 2,802명)했다.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의 민족반역자를 우리는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반민족 행위를 사과한 사람도 몇 사람에 불과하다.
국가가 척결하지 못한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겨두고자 ‘민족문제연구소‘가 18년 동안 준비했던 친일인명사전을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원에 힘입어 발간한지 2년이 지났다.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을 이제 역사가 응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이는 끝이 아니고 시작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역사 앞에 서 있는가? 독재정권에 의해서 친일파들이 도리어 옳았다고 증명하려고 하는 역사,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역사 앞에 우리는 다시 서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역사 분야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해 보자. 과거사 관련 모든 위원회를 없애는 것이었다. 멀게는 동학혁명부터, 일제 때 강제동원 피해문제,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을 탄압하고 학살했던 역사. 부당한 권력이 국민들을 희생시켰던 역사들을 바로 세우고자 만들었던 것이 과거사 관련 위원회였다.
억울한 국민들의 한을 풀어주고 국민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에서 출발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바쁘게 결국은 다 문을 닫아버렸다. 국민들은 가슴에 멍든 상처를 그대로 간직한 채, 현 정권은 모든 것을 은폐하기에 바빴다. 


그 대신 이 수구세력들은 건국60년 기념사업을 했다. 건국 60년! 이 어휘 속에는 친일세력의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다.
  “임시정부는 독립 국가를 대표한 게 아니고, 실제로 국가를 운영한 적도 없다. 그러니 우리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건국의 공로는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몫으로 돌리는 게 마땅하다.”
이게 무슨 뜻인가? 1948년 이전, 일제 식민지하에서 독립투쟁을 했던 모든 우리 선조들의 투쟁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뿌리는 독립운동 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헌법 전문에 위배된다.  대한민국은 3.1정신을 바탕으로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다고 우리 헌법 전문은 명시하고 있다. 
역사가 뒤틀리지 않았다면 대부분 민족반역죄로 다스려졌을 친일파들, 그리고 권력에 눈이 멀어서 친일파와 손잡았던 이승만과 그 옹호세력들이 우리 역사의 뿌리요 정통이란 것이다.
건국 60년, 이거 어쩌다 나온 아이디어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에 이미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건국절 얘기를 꺼냈고, 뉴라이트에 속하는 학자들이 그 주장을 계속 해왔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2003년부터 건국절 법안을 발의했다. 건국60년 기념사업은 이런 배경 속에서 추진된 것이고, 결국 이 정권은 광복절 행사에 건국60년이라는 글자를 박아 넣게 되었다. 
이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으니 광화문에다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세력이 나서고, 시민들의 피로 역사에서 추방했던 이승만 동상이 다시 섰다. 뿐만 아니라, 항일 독립군 토벌에 참가한 일급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동상도 섰다. 그리고 급기야 공영방송까지 수구세력의 나팔수가 돼서 백선엽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라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방송을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있다.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가르칠 역사교과서를 완전히 친일파의 입맛에 맞도록 뜯어고치려고 하는 작업이다.
뉴라이트 대표 학자들이 포진한 교과서 포럼. 이 사람들이 이명박 정권 들어서자마자 책을 냈다. ‘ 일제가 우리를 근대화시켰다.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은 돈 벌러 간 거다. 김구 선생은 테러리스트다.’ 이걸 두고 조선일보는 균형 잡힌 역사교육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여기에 한발 더 나가서 교과서를 탈환해야 된다고 선동했다. 
교과부 국방부 통일부가 나서고, 한나라당은 거들고, 상공회의소까지 설쳐서 현행 역사교과서 2백 군데를 뜯어 고쳤다. 그리나 이걸로도 끝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우리 학생들은 새로운 교과서에 의한 역사교육을 받게 된다. 그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은 ‘8.15 이후 친일파 청산에 대한 모든 노력을 빼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빼라,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도 빼라, 광주 5.18 민주화항쟁에 대한 기술도 빼라’고 되어 있다. 이런 책으로 배운 학생들이 앞으로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가야 되는가?
이제 박정희 동상까지 섰고 기념관도 문을 연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퇴임 전까지 이 모든 역사왜곡의 완결판인 대한민국역사관을 개관하겠다고 한다.
왜곡된 역사를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배우고, 집에서는 방송에서 익히고, 거리에 나서면 각종 동상과 전시회 기념관을 통해서 배우는 이런 비참한 현실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친일에 뿌리를 둔 수구세력이 역사적 정통성을 완전히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가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후예임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새누리로 당명을 바꾸고 사람 몇 명 바뀐다고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실 정치다. 새누리당에 절대로 국가를 맡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