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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3일 월요일

노무현이 포퓰리스트라더니 박근혜는 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3일자 기사 '노무현이 포퓰리스트라더니 박근혜는 왜?'를 퍼왔습니다.
[박동천 칼럼] 포퓰리즘의 나쁜 추억

한국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서양 정치인 중에 최소 두 사람은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다. 고대 아테네의 페리클레스와 20세기 초 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다.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61년부터 429년 죽을 때까지 아테네 민주파의 영수로서 아테네를 이끈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그는 열 명으로 이뤄진 장군단의 일원이었고, 이 직책은 임기 1년의 선출직으로 무한정 재선될 수 있었다. 페리클레스는 장군단 내에서 소수파였으므로, 제 뜻을 관철하기 위해 민회를 활용했다. 장군단 회의에 부쳤다가 부결된 안건을 민회에 올리고, 뛰어난 언변을 통해 민중에게 지지를 호소했던 것이다.

우드로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총장과 주지사를 거친 다음 1913년부터 1921년까지 미국 대통령으로 지냈다. 그는 민주당원이었던 동시에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당파와 상관없이 진행된 이른바 '진보 운동'의 지도자였다. 독점 규제와국제연맹 설립을 비롯한 그의 이상주의적 대내외 정책은 워싱턴의 기득권이라는 벽에 번번이 부딪쳤다.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그는 인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을 택했다. 라디오라는 신기술을 이용한대중 연설을 통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억누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페리클레스와 윌슨은 선동가나 포퓰리스트라기보다는 민주적인 개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페리클레스와 윌슨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은 그들을 선동가로 매도했다. 반대파에게 페리클레스는 데마고그(demagogue), 윌슨은 포퓰리스트(populist)라 불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구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정치인 가운데는 찾아보기 어렵고, 논객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으로 소수에 그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뜻을 함축하는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많다. 일부 문제만 불거져도 지방 선거 무용론, 국회 무용론을 입에 담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회적 쟁점에 관한 논란이 자신의 이해력을 초과하여 진행하면 금세 짜증을 내며 왕조 시대나 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내심 민주주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담긴 역사적이고 규범적인 의미에 정면으로 대들지는 못한다. 대신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폭행하는 집단적인 광기를 보인다.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인민)'에서 나온 단어로, 그리스어 '데모스(demos=인민)'에서 나온 단어인 민주주의와 어의 상으로는 다를 바가 별로 없다. 둘 다 소수 기득권층보다다수 서민층의 형편과 의사를 중시한다. 또 다수의 집단 지성보다는 감정적 선동과 정략적 조작을 통해 빚어진 말초적 군중 심리에 의존할 경우 중우 정치로 빠질 공산이 있다.

김종필과 연대를 통해 집권했던 김대중에 비해, 2002년 노무현의 당선 과정은 훨씬 민주적이었다. 일부 기득권과 연대하지 않고도 민주 세력이 독자적인 과반수를 형성한 것이다. 탄핵소추에 대한 반발에 힘입어, 2004년 4월 혁명 이후 최초로 민주 세력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자 기득권 세력의 공포는 더욱 깊어졌다.

그들 기득권 세력은 대중에게 비교적 생소한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끌어들여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고,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어설픈 지식인들이 포퓰리즘에 대한 공격에 동조했고, 상당수 민주 세력마저 어리석게도 이를 방치해 노무현식 포퓰리즘은 위험하다는 현대판 신화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신화는 그 자체가 선동에 의해 날조된 것이다.

물론 포퓰리즘 전략은 페리클레스와 윌슨처럼 기득권과 대항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이 인민을 속이기 위해 사용할 때도 많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3세 그리고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은 정권 유지를 위해 대중을 조작하고 선동한 전문가였다. 일본의 군국주의 정권, 북한의 김일성, 한국의 박정희와 전두환도 그랬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도 대표적인 선동가에 해당한다.

마치 자기가 집권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사기를 친 이명박, 뉴타운 개발로 서울 집값이 치솟을 것처럼 허풍을 떤 오세훈,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 포장해 준 보수 언론들이 모두 선동과 조작에 앞장선 인물들이다. 그리고 박근혜는 "맞춤형 복지", "경제 민주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따위에 더해 "국민 대통합"이라는 내용 없는 구호들로 선거판을 어떻게든 선동과 조작으로 타락시키기 위해 애쓴다.

▲ 오른쪽부터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박 후보에게 '경제민주화' 공약을 제안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뉴시스

이 곁에서 보수 관료들과 재벌들은 여전히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한다. 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포퓰리즘은 박근혜를 겨냥하지 않는다. 오히려 박근혜만은 포퓰리즘이라는 낙인에서 교묘하게 면제를 받는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노무현과 주변 인물들을 지목하는 낙인으로 정착돼버렸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는 박근혜조차 표절할 정도로 이미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기득권 세력은 이 시대정신을 가로막거나 최소한 지연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다. 이들은 포퓰리즘을 들먹이면서 민주 개혁 진영의 신뢰도에 상처를 입힌다. 통합진보당은 '진보'라는 단어 하나도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고, 민주통합당은 '친노' 대 '비노' 프레임에 갇혀 포퓰리즘과 같은 프레임에는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이 틈에 진짜 선동가 박근혜가 독버섯처럼 기생한다.

노무현 정부를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했던 지식인들이 지금 벌어지는 포퓰리즘적 행태에는 왜 침묵할까? 이제는 그 말을 써도 누가 별로 알아주지 않기 때문일까? 이명박과 박근혜의 정치 행보가 선동적이지 않다고 보는 것일까? 대중을 조작해 민주주의를 중우 정치로 타락시키는 보수 언론의 몹쓸 버릇이 지금은 고쳐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지식인이라고 해봤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차피 극소수고, 대다수는 돈과 권력과 지위에 영혼을 팔아 연명하는 벌레와 다르지 않기 때문일까?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이유도 다를 것이다. 좌우지간, 나에게 포퓰리즘의 추억은 하나의 나쁜 추억이다. 이 나라에 지성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떨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2012년 6월 2일 토요일

이용섭 "세상에 빚 내서 고소득자 지원하는 나라 어딨나"


이글은 뷰스엔뉴스(Views&News) 2012-06-01일자 기사 '이용섭 "세상에 빚 내서 고소득자 지원하는 나라 어딨나"'를 퍼왔습니다.
"MB정권때 부채 583조나 증가", "MB야말로 포퓰리스트"

이용섭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은 1일 "이렇게 국가채무가 크게 늘어난 주원인은 이명박 정부가 90조원이 넘는 부자감세를 단행해서 재정수입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이용섭 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중앙정부 부채 774조원에다가 공기업 부채까지 합할 경우 실질적 국가채무가 1천255조원에 달한다는 본지 보도를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 정부 들어서서 지난 4년 내내 재정이 적자였고 적자규모가 85조원에 이르는데 부자감세가 없었다면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채무도 늘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 정부 들어서서 국가 채무는 122조원이 증가했고 공공기관 부채는 214조원이 증가했고, 가계부채는 248조가 증가해서 전체적으로 583조나 증가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명박 정부를 부채공화국이라 부르는 것"이라며 부채급증의 주범인 MB정권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복지비 수준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조세부담률을 참여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 21%에서 19.2%로 무리하게 낮췄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며 "세상에 정부가 빚 내서 고소득자, 대기업, 고액재산가를 지원하는 것보다 더 포퓰리즘이 어디 있고, 무책임한 정책이 어디 있겠나"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경제 여건이 비슷한 나라 중에서 이렇게 20%이하로 조세부담률이 있는 나라가 없다"며 "앞으로 사회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고용 없는 성장문제 등 이런 사회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수요가 크게 증가하는데도 무책임하게 조세부담률을 2%포인트나 낮추는 것은 그야말로 직무유기이고 직권남용"이라고 거듭 질타했다.

최병성 기자

2012년 4월 16일 월요일

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 우파 결집과 진보 전진으로 나타난 정치 양극화 민주당에 대한 여전한 불신, 박근혜는 이를 잘 이용했을 뿐


이글은 레프트21 2012-04-14일자 기사 '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 우파 결집과 진보 전진으로 나타난 정치 양극화민주당에 대한 여전한 불신, 박근혜는 이를 잘 이용했을 뿐'을 퍼왔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노동계급의 선진 대중과 진보 염원 청년들의 낮은 투표율에서 드러났듯이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이 이들의 급진화와 열망을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보여 줬다. 덕분에 이득을 본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승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이 수용하지 못한 급진화는 통합진보당의 전진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사회 양극화는 좌우 정치 양극화를 낳고 있다.
민주당의 한계가 뚜렷이 드러났다. 정치 양극화 속에서 기회주의적 중도세력의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말 일부 NGO 리더들과 양대 노총 전 위원장들까지 끌어들이는 ‘좌클릭’을 하며 새 출발을 할 때만 해도 민주당의 앞날은 밝아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 


ⓒ사진 이윤선

포퓰리스트(계급 동맹적) 자본주의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았고, 과거 정부 10여 년 동안 민주당 세력이 저지른 배신도 너무 최근의 일이어서 대중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예컨대 김진표 공천 등 공천 과정에서 진보 염원 노동자ㆍ청년의 실망만 자아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한미FTA 발효,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우파의 정면돌파에 부딪히자 말바꾸기와 갈팡질팡만 거듭했다. 그래서 많은 반우파 노동자ㆍ청년은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 투표율이 비교적 낮은 수준에 머문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현 정부의 주요 우파적 정책들에 사실상 반대하지 않는 민주당의 알맹이 없는 ‘정권 심판’론에 많은 노동자ㆍ청년들이 굳이 투표소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민주당에 투표했을 때 과연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그들에게 주지 못한 것이다.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통해 민주당의 부족함을 메우려 한 것도 대세를 바꿀 수 없었다.
2010년 지방선거 때도 사람들은 민주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천안함 북풍 국면에서 수구 냉전 회귀 위험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에 투표소로 몰렸다. 지난해 말 서울시장 선거 때는 NGO 리더 박원순이라는 대안이 있었던 것이 주효했다. 반면 이번에는 그런 요소들이 없었다. 천안함 때와 달리 이번 북한 위성 발사 문제는 진보 지지층의 냉전 위기의식을 크게 일으키진 않았다. 제국주의 압박의 직접적 결과이기보다는 북한 관료의 국내 지배용이라는 점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KBS 파업 노동자들이 폭로한 불법 사찰 사건도 민주당은 활용할 수 없었다. ‘노무현 때도 사찰했다’는 청와대와 박근혜의 물타기에 설득력 있는 변명을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파의 ‘김용민 막말’ 마녀사냥에도 기회주의적이고 수세적인 태도만 보였다.
그래서 많은 진보 염원 노동자ㆍ청년은 굳이 투표소에 갈 동기와 의욕을 갖지 못했다.
민주당의 꾀죄죄함에서 득을 본 박근혜
디도스와 돈봉투 사건이 잇달아 터진 지난해 연말 우파의 위기는 심각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뻔뻔스런 뒤집기 시도에 나섰다.
먼저, 조기등판한 박근혜가 ‘쇄신’ 사기극과 간판 바꾸기를 하며 이명박 색깔 빼기를 했다. 이제 우파의 얼굴과 실질적 주인은 박근혜가 됐다. 이어서 정권은 한미FTA 발효,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반우파 정서를 뒤집지 못할 바에야 우파 지지층이나마 확실하게 결집시키려 한 것이다.
언론 파업에 대해서도 무지막지한 탄압을 지속했다. 이런 문제들에 힘을 집중해서 정면돌파하려고 다른 전선에서는 양보를 했다. 학생들의 분노 폭발 위험을 의식해 등록금 찔끔 인하와 청소 노동자 임금 인상 부분 수용을 한 일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우파는 민주당이 한미FTA 등을 시작한 장본인이고 진정으로 반대하지도 않는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나아가 총선이 다가올수록 북풍 몰이, 마녀사냥, 색깔론 등 온갖 구태의연한 수구적 방법으로 우파 결집에 매달렸다.
막판에는 나꼼수 김용민이 예전에 성인방송에서 한 말을 맥락에서 떼어내 공격 소재로 삼았다. 5년 동안 전방위적 개악과 수구적 작태를 자행한 우파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를 난데없이 8년 전 김용민의 실수 심판으로 바꿔치기하려 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흙탕물을 튀기고 악취를 풍기며 젊은층이 ‘더러워서 투표 안 한다’는 심정을 갖도록 애썼다.
우파의 새 얼굴로 등장한 박근혜는 손에 붕대를 감고 전국 ‘대장정’ 유세를 하며 안간힘을 썼다. 박근혜는 부패하고 탐욕스런 1퍼센트만의 대변자라는 ‘이명박근혜’의 본질을 숨긴 채, 우파 지지층의 향수와 동정심, 지역주의 등을 자극하며 표를 결집시켰다. 청년층의 정치적 급진화 속에서도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은 상황이 지역주의가 먹힐 틈을 제공한 것이다.
우파 거물들의 퇴출
그러나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얻은 성적과 영향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우파는 이번에 진보 지지 노동자ㆍ청년들이 충분히 투표장에 나가지 않으면서 패배를 모면한 것일 뿐이지 힘을 키운 게 아니다. 실제로 18대 총선과 비교하면, 우파의 득표는 오히려 줄었다.
당시 주요 우파 정당이던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은 1백85석을 얻었고, 정당비례에서 9백85만여 표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의석은 합쳐서 1백57석이고, 정당비례 득표는 두 당을 합쳐 9백81만여 표에 그쳤다. 투표율이 늘었는데도 정당 득표는 오히려 약간 줄어든 것이다.
우파의 이 성적은 한두 가지 이슈에서 ‘좌클릭’을 하고 빨간 잠바를 입고 다니면서 겨우 지켜낸 것이다. 도 이번 선거에서 “우파 이슈의 실종 사태”를 한탄했다. 홍준표, 홍사덕, 전여옥 등 우파 거물들의 패배와 퇴출도 반가운 일이다.
이 모든 일들은 2008년 촛불항쟁 이후 계속돼 온 급진화의 결과로 진보진영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특히 한국 정치의 중심이고 키를 쥐고 있는 수도권에서 새누리당은 거의 2004년 탄핵 때 수준으로 참패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위협해 온 ‘확장성의 한계’가 여전한 것이다. 박근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매달렸던 부산에서도 문재인과 야당 세력이 어느 정도 부상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 당시 88석에서 이번에 1백27석으로 늘었고, 정당 득표는 당시 4백30만여 표에서 이번에 7백77만여 표로 늘었다. 진보정당의 성장은 더 두드러진다. 18대에 진보정당들은 의석 5개와 정당 득표 1백47만여 표를 얻었는데, 이번에는 의석이 두 배가 넘는 열셋이 됐고, 정당비례 득표율도 2백54만여 표로 4년 전보다 1백만 표가 넘게 늘었다.
현재 불균등한데다 아직 충분히 좌경화되지 못한 청년층 급진화는 박원순, 나꼼수 등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왼쪽 스펙트럼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마지못해 차선, 심지어 차악 선택이라는 심정으로 민주당에 투표했을 것이다. 반면 일부 사람들은 급진화 정서를 진보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출했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제3당으로 부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