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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일요일

군 출신 국정원장에 새누리마저 “군사정권 부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3-02일자 기사 '군 출신 국정원장에 새누리마저 “군사정권 부활”'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내정했다. (사진=뉴시스DB) 【서울=뉴시스】

민주 “육사가 안보라인 독점…다양한 논의 어려워” 반발
부정적 여론 의식한 듯 신문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기습발표’

박근혜 대통령이 새 정부의 첫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남재준(69) 전 육군참모총장을 선택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경호실장 내정자와 국방부장관 후보자에 이어 국정원장 후보자까지, 주요 안보라인이 모조리 육사 출신으로 채워질 수 있게 됐다.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2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남 후보자와 신제윤(55) 금융위원장 후보자, 김동연(56)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내정자 인선을 발표했다. 윤 대변인은 “국가안보 상황과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국정 공백 없이 이들 문제에 면밀히 대처해나가기 위해 국정원장과 금융위원회 위원장을 우선 내정한다. 국무조정실장의 경우 국무총리가 국정을 공백 없이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보좌케 하기 위하여 정부조직법 개정 전에 시급히 임명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인 남·신 후보자의 인사청문 요청서는 2~3일 안에 전달될 예정이다. 김 내정자는 현행법에 따라 국무총리실장으로 임명한 뒤, 정부조직법 개정 뒤 국무조정실장으로 재발령된다.남 후보자 지명에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주요 안보라인이 모두 육사를 나온 육군 출신으로 채워지면 안보와 관련한 정부 내 다양한 논의 구조가 보장되기 어렵고, 육사 권력독점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 대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유연함을 가진 인사가 국정원장을 맡는 게 필요하다”고 비판했다.여당에서도 비판와 우려가 쏟아졌다. 새누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군인 출신 국정원장이라니, 군사정권이 부활한 것 같다. 이전까지 발표한 인선도 그렇게 비판을 받았는데, 어떻게 또다시 이런 인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박정희 정권 등 군사정권에서 육사 출신 인사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었다.남 후보자가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라는 점도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남 후보자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전부터 박 대통령에게 안보 분야를 자문해왔으며,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선 국방안보 분야 특보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에게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를 ‘연결’해준 사람도 남 후보자로 알려져있다. 이런 측근을 정보기관 수장에 앉히면, 대통령은 정보기관을 정치사찰이나 정치공작에 이용하려는 유혹에 시달리거나, 최소한 그런 의심을 사기 쉽다. 박정희 정권 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김대중 납치 사건’, 전두환 정권 때 장세동 안기부장의 ‘용팔이 사건’ 등은 유명한 사례다.청와대 하필이면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토요일을 골라 국정원장 등의 인선을 기습적으로 발표한 것은 이런 점을 의식해 비판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윤 대변인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을 탓하며 “인사문제는 무엇보다 시급하고 화급하다는 판단에서 오늘 발표한다”고 말했지만,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경찰청장·등의 주요 권력기관 인선은 여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2012년 9월 24일 월요일

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9-23일자 기사 '육사 생도들, 재보선·총선 앞두고 주소지 대거 이전'을 퍼왔습니다.
[단독] 2011년 8·9월 281명, 2012년 1·2월 275명... "헌법·선거법 위반 가능성"

▲ 육사 생도들이 지난 2010년 9월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청광장까지 국군의 날 기념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육군사관학교(육사)가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올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생도들의 주소지를 대거 이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육군사관학교 전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1년 8·9월 281명에 이어 올 1·2월에도 275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현재는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 574번지)으로 이전했다.

육사 쪽은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 주소지 이전에 따른 혜택 등을 고려해 주소지를 이전했다"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서는 헌법과 선거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선거부정 의혹과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10·26 재보선과 19대 총선 앞두고 총 556명 주소지 이전

육사는 지난 1946년 5월 설립된 조선경비사관학교를 모체로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지난 1948년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를 현재의 '육군사관학교'로 개칭했다. 육사가 개교한 태릉은 원래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었으나 행정구역 개편 이후 서울시 노원구로 편입됐다. 

올해로 개교 66주년을 맞는 육사에서 2011년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총 1만80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2012년 육사의 정원은 990명이다. 그 가운데 900명 이상이 화랑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특히 올해 생도모집에서는 6400여 명이 지원해 27년 만에 최고의 경쟁율(22.1 대 1)을 기록했다.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실이 육사로부터 제출받은 '육군사관학교 전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기인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지난 2008년 4명에 불과했던 주소지 이전 생도수는 2009년 총 497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같은 해 3월에만 477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화랑관으로 이전했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화랑관은 생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어 2010년에는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수가 3명에 그쳤다. 그런데 2011년 하반기와 2012년 상반기에 수백명의 생도들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주소지를 이전한 생도수는 2011년 286명, 2012년 277명 등 총 563명에 이른다. 이는 육사 정원(990명)의 약 57%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4·11 총선(19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2011년 8·9월에 281명, 2011년 1·2월 275명 등 총 556명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은 지역을 불문하고 이루어졌다. 특히 서울에 주소지를 둔 생도들조차도 화랑관으로 주소지를 이전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심지어 노원구 상계동(노원병 지역구)과 중계동(노원을 지역구)에 주소지를 둔 생도들도 노원갑 지역구인 육사로 주소지를 이전한 사례도 확인됐다.    

▲ 육사생도 주소시 이전 현황(2006년부터 2012년 4월까지). ⓒ 오마이뉴스 이은영

육사 "애교심 고취, 주소이전에 따른 혜택 등" 해명하지만...

육사는 "생도들의 주소 이전은 '07년 군의 강원도민화 운동' 수범사례에 대한 벤치마킹과 주소 이전을 통해 육사에 대한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 노원구 지역주민으로서 행정관서에 적극적인 지원 요구 가능, 주소이전에 따른 혜택 등을 고려하여 희망자에 한해 이루어졌다"고 해명했다. 

육사는 '주소 이전에 따른 혜택'으로 '국민임대주택 청약 가산점 부여' 등을 제시했다. 주택건설지역에 5년 이상 거주하면 3점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도들이 4년의 과정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는 대부분 각 부대로 배치되는 현실 등을 헤아리면 육사쪽의 해명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또한 육사는 "애교심과 소속감 고취"나 "지역주민으로서 적극적인 지원 요구 가능" 등을 주소지 이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왜 하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19대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의 주소지 이전이 이루어졌는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육사 출신 한 인사는 "작년 12월 초엔가 후배 생도와 통화했는데 '일부 도서지역만 제외하고 주소지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와 주소지를 옮겼다'고 했다"며 "육사에서는 '노원구 주민들이 육사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생도들이 주소지를 옮겨 노원구민이 되면 그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육사 이전 문제가 오래된 문제이긴 하지만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에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비정상적인 조치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노원구청도 "육사 이전과 관련한 민원이 제기된 적도 없고,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과 관련해 사전에 구청과 협의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특히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 과정에 강압성이 있었다면 이는 헌법과 선거법을 위배한 행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거주 이전의 자유'와 '군인에 의한 선거자유방해죄'를 각각 규정한 헌법 제14조와 선거법 제238조를 위배했다는 것이다. 

실제 강압성이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주소지 이전(전입 신고)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생도들의 상관인 기숙사 시설장이 생도들의 전입 신청서를 모아 해당 주민센터에 신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사 쪽은 "희망자에 한해 주소지를 이전했다"며 강압성 의혹을 일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사쪽의 해명들에 허점들이 드러나면서 민감한 시기에 주소지를 이전한 '진짜 이유'와 관련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아래 상자기사 참조).

선거부정 의혹까지 제기돼... 전해철 "국감에서 관련경위 밝히겠다"

또한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와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루어졌다는 '시기 문제'로 인해 선거부정 의혹까지 제기됐다. 현재 구속 중인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방송 32회에 출연해 "지난 10월 26일 재보선 이전에 (서울 노원구) 공릉동으로 주소를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한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육사 생도 다 800명밖에 안 되는데 이들 표를 합치더라도 (여당이) 가져가는 표가 150-200표밖에 안 된다. (여당이) 이 표가 절실할 정도로 굉장히 박빙을 예상하고 육사 생도의 주소를 옮기라고 지시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육사는 정 전 의원의 지역구(노원갑)에 위치해 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의 일원인 김용민씨가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해 이노근 새누리당 후보에게 4782표 차이로 패배한 바 있다.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은 "육사가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의도가 무엇인지 등 많은 의혹이 있다"며 "향후 국정검사를 통해 관련 경위는 물론이고 절차상 문제 등 위법한 부분을 분명히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육사 생도들의 대규모 주소지 이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교장인 박종선 중장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하는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 육사가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것은 18대 총선 이후인 2008년 10월이었다. ⓒ 구영식

육사에서 작성한 '생도 주소지 이전 관련 검토 결과' 문건에 따르면, 육사가 처음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을 추진한 시기는 지난 2008년 10월 7일이다. 목적은 "학교발전과 민·관과의 유대 강화"였다. 특히 이 문건의 표지에는 주소지 이전 검토가 "학교장님의 지시사항"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육사는 "생도 자율에 의거"해 같은 해 10월 10일부터 주소지을 이전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2009년 3월 477명, 4월 18명이 주소지를 이전했다. 

육사는 지난 2007년부터 1군사령부에서 추진해왔던 '군의 강원도민화운동'을 모델로 삼았다. 당시 1군사령부는 간부와 그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주소지를 이전하도록 독려했고, 일반 병사들에게도 주소지 이전을 권장했다. 주소지를 이전한 병사들에게는 지역관광상품권이 지급됐다.

육사는 앞서 언급한 문건에서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의 명분으로 '인구증가로 행정기관의 재정자립도 향상', '주민세 미부과 등 각종 세금 혜택'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연간 약 6000원에 불과한 주민세를 감면받는 것이 유인책이 되기는 어렵고, 특히 '인구증가로 재정자립도 향상'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원구청은 "지방교부세법 제6조에 의거 서울특별시는 지방교부세(보통교부세)를 부과받지 않는 단체에 속하기 때문에 (재정자립도 향상은) 육사 생도의 주소지 이전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문건에 '노원구 지역에서 투표권 행사 가능'이라고 적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투표권 행사를 통해 지자체에 육사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투표권 행사'는 구청장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육사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와 관련, 헌법 제14조와 선거법 제238조를 위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육사는 "주소지 이전 여부는 개인의 자유이고, 주소지 이전 권유에 불응하는 인원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하다는 법적 검토 결과(육군본부 법무감실 법제과)를 내세우며 그런 지적을 일축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생도들의 주소지 이전이 검토된 시기가 공교롭게도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이 끝난 이후였다는 점이다. 육사가 위치한 노원갑은 정봉주 민주통합당 후보가 현경병 새누리당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2700여 표)로 패배한 곳이다.

구영식(ysku)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칼럼] 군인의 최악의 범죄 쿠테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6-22일자 기사 ' [칼럼] 군인의 최악의 범죄 쿠테타'를 퍼왔습니다.

군은 국가가 국가의 목적에 따라 존치한 조직으로서 국토, 국민, 주권을 외침으로부터 방위수호하는 임무가 주된 사명의 공직자이다. 

이 군이 무장한 채 군의 규율을 망각 위반하고 야밤에 이탈 작당하여 정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수도 서울에 진격 대통령 관저(청와대)를 점령하고 국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헌법을 일시 정지시켜 계엄령을 선포하고 각 대학교 교정에 중무장한 군대를 진주시켜 수업을 파괴시켰으니 이는 군법상 반란죄에 해당하고 형법상 내란죄이니 극형에 처할 범죄이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 주범이고 정권찬탈 수괴이다. 전두환․노태우 12․12 쿠데타와 5․18 광주 민중 무력 학살자로 한국의 법질서가 확립되었섰다면 이미 형장의 주검으로 재가 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랑 5천만 국민의 자존심인 육군사관학교가 2004년 5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박정희를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가장 자랑스러운 육사인으로 선정하여 육사인 상을 주었다 하고, 평생 육사인의 정신을 지켜오며 후배들의 모범이 된 원로 동문에게 수여되는 상이라고 한다.

전두환 내외를 2006년 4월 28일 육사 을지강당 열린 기념음악회에서 육사생도들이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하고 지난 8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기념행사에선 전두환과 가족 그 측근들에게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사열 예우도 했다니 육군사관학교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되었기에 쿠데타에 대한 생도들의 의식이 그토록 왜곡 인식 되었을까? 심히 걱정되고 우리의 미래가 암담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강도 살인마, 민주주의 국가의 절대 절차주의 파괴자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따라서 육군사관학교를 가장 욕되게 한 범죄자이다.

박정희는 일본 침략 민족의 수난시대 관동군 육군 중위 다까기 마사오이다. 8․15 정국에서는 국방경비대에 들어가 남로당 비밀당원으로 국방경비대내 남로당 계열의 우두머리로서 발각되어 무기징역에 처해 생명이 위태로워 지자 동지를 밀고하여 전멸시키고 혼자 살아남아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으로 정규 국방군이 되어 소장에 진급하고 1961년 5월 16일 5․16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유신을 발동하여 영구 총통제를 구축 국민의 주권을 무력으로 강몰 청와대 안가 철고에 가두고 2,359명의 통일주체 국민회의로 무소불위(無所不爲) 1인 독재하다 10․26에 총으로 와서 총에갔다. 

전두환, 노태우 10․26 정국에 12․12 하극상 쿠데타 5․18 광주민중학살 청와대 강점 유신체제 유신헌법 지속 1987년 4월 13일 4․13호헌 선언하여 6․10 민주항쟁에 굴복 6․29 직선제 선언 항복 유신체제가 16년만에 붕괴 주권이 환수되어 직선제시대가 되면서 사법처리되어 1997년 4월 대법원 전두환 사형 추징금 2,205억 확정, 노태우 징역 17년 추징금 2,628억600만원 확정, 1997년 12월 감형 형 집행정지 석방되었다. 통장에 29만1,000원밖에 없다던 전두환은 무슨 돈으로 육사발전기금 1,000만원이나 냈나? 노태우는 은닉한 비자금 654억 문제로 사돈 신명수와 싸우고 있다. 천하의 살인마 강도들이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여러분 ! 나는 나이 많은 전직 가난한 농촌 청소년 교사였다. 그대들 진심으로 사랑한다. 군인의 최악의 범죄 쿠데타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주권재민 민주주의 국가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제1장 1조의 1항, 2항이다. 평등․비밀․자율․평화의 투표로 정권의 향방이 정해지는 나라에서 국방의 의무자인 무장한 군인이 무기를 들고 국민을 쏴 죽이면서 정권을 강탈하다니 그대들의 선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인면수심(人面獸心) 포식 맹수 강도 살인마로 그대들의 모교 육군사관학교를 가장 욕되게 한 자들이다.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중에 그대들의 선배가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뒤짚으려 하나 역사가 양말목처럼 뒤짚어 지는게 아니다. 쿠데타는 군인의 최악의 범죄다. 

이관복 (광화문 할아버지)

육사가 경의를 표할 이름은


이글은 한겨레21 2012-06-25일자 제916호 기사 '육사가 경의를 표할 이름은'을 퍼왔습니다.
[특집1] 전두환은 환영하지만 쿠데타 저항한 선배는 외면하는 육사… 강영훈·이한림·장태완·정병주·안종훈을 기억하는가

» 쿠데타에 맞섰던 육사 출신 군인들이 있다. 육사는 그 선배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육사 교장을 지낸 강영훈 전 국무총리, 이한림 전 1군사령관,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왼쪽부터). 한겨레 자료

육군사관학교 교훈. 지(智), 인(仁). 용(勇). ‘지’는 사리를 판단하고 분별하는 능력으로 군인의 사명을 인식하고 무력 관리라는 부여된 기능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덕목. ‘용’은 굳센 행동으로 어떤 위험에서도 옳은 일을 실천함으로써 책임을 다하는 덕목.
군형법 5조 ‘반란죄’.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수괴: 사형.’

12·12 쿠데타 맞선 정병주 특전사령관

군인에게 명령불복종은 엄청난 범죄다. ‘명령에 죽고 산다’는 말은 군대에서 흔히 회자된다. 무력을 다루는 집단인 탓이다. 육사의 교훈과 군형법에서 군인의 사명을 강조한 이유도 거기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6월8일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 섰다. 다른 육사 졸업생도 있었지만 그가 유독 눈에 띄었다. 생도들이 최고의 경의인 ‘우로봐’ 경례를 했다. 다른 참석자들이 박수칠 때 전두환은 자신의 특별석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다. 육사는 전두환의 특별석에 대해 ‘고령자 예우’로 문제없다고 해명했다. 보도를 보면, 전두환은 2006년에도 생도 행사에 참석했다.
반란 수괴가 미래의 군 장교를 사열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격렬하다. 보수주의자들은 ‘별것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내심 쿠데타에 대한 호감도 감추지 않는다. 쿠데타란 무력으로 권력을 접수하는 행위다. 자연스레 군부가 민간 부문을 지배·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군 내부의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쿠데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국의 쿠데타는 하극상의 역사였다. 육사 후배가 육사 선배와 동기에게 총을 들이대고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행위가 반복됐다. 쿠데타에 맞서 군인의 사명을 다했던 육사 선배들은 쉬 잊혀진다. 육사는 전두환의 방문을 환영하지만, 쿠데타에 저항했던 선배는 좀체 기리지 않는다.
전두환은 1931년생이다. 육사 11기로 1955년 졸업했다. 노태우·정호용 등 쿠데타 주역들이 육사 11기였다.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쿠데타에 맞섰다. 그는 1927년생으로 육사 9기다. 전두환의 육사 선배이며, 전두환이 특전사에서 근무했을 때 상관이었다. 한국전쟁 때 참전해 부상을 입었다. 1979년 12월13일 새벽 1시, 그는 쿠데타에 가담한 육사 후배 13기 최세창 준장의 공격을 받았다. 정 전 사령관은 거실 문을 걸어잠근 채 권총을 쏘며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총에 맞아 숨졌다. 김 전 소령은 육사 25기다. 정 전 사령관은 M16소총에 왼팔을 맞았다. 수술 뒤 목숨을 건진 정 전 사령관은 쿠데타를 저지른 후배들의 공직 제안을 마다했다. 야당의 정치 입문 제안도 거절했다. 그는 천생 군인이었다. 대신 술과 벗했다. 1989년 3월 행방불명된 지 130여 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하루 세끼 밥 먹고 하늘을 쳐다보다가 땅이 있으니 걷고 그리고는 잠자고… 제가 걷기를 무척 좋아해요. 울화가 치밀 때는 술병을 들고 구파발 서오릉 주변을 온종일 혼자서 터벅터벅 걷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자곤 했어요. 그러다가 서울 북쪽의 검문소 앞을 지날 때는 ‘노태우씨가 저곳을 어떻게 통과했을까’ 하는 생각이 나고….”(1987년 언론 인터뷰)

한국의 쿠데타는 하극상의 역사였다. 육사 후배가 육사 선배와 동기에게 총을 들이대고 그들을 감옥에 보내는 행위가 반복됐다. 쿠데타에 맞서 군인의 사명을 다했던 육사 선배들은 쉬 잊혀진다.

자신의 방식대로 후배에게 당한 JP

전두환에 의해 연행된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 및 계엄사령관은 1929년생으로 육사 5기였다. 기수로 차이가 많이 나지만 전두환과 나이는 2살 차이다. 육사 1기부터 10기까지는 교육 기간이 짧다. 육사 11기는 최초의 4년제 기수였다. 한국 사회의 엘리트라는 그릇된 자부심이 군인 본연의 충성심과 사명감을 지워버렸다. 정 전 총장은 신군부 쪽 군사법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을 방조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군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정 전 총장은 1997년 서울지법에서 벌어진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정 전 총장은 2002년 6월 숨졌다. 안종훈 당시 육군군수참모부장은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을 반란이라고 비판했다. 안 전 참모부장도 육사 9기로 전두환의 육사 선배였다. 그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발언을 한 뒤 경남 진해 육군대학 총장으로 좌천됐다. 육사 11기 동기인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도 쿠데타에 맞섰다가 강제 예편당했다.
전두환의 하극상은 선배는 물론 스승에게도 향했다. 전두환은 1961년 5·16 쿠데타 당시 육사생도였다. 쿠데타 지지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당시 육사교장이었다. 강 전 총리는 1922년생으로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1958년 미국 육군참모대학을 수료했다. 그는 군의 정치 개입에 반대했다. 육사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위를 반대했으나 결국 막지 못했다. 강영훈 전 총리는 쿠데타 뒤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마포형무소에 수감됐다. 1962년 2월 미국 뉴멕시코로 쫓겨났다.
육사 11기의 하극상은 전례를 따른 것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1926년생으로 육사 8기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35살이었다. 5·16 쿠데타의 주역인 육사 5기와 육사 8기(김종필)도 육사·육군 선배들을 숙청하고 수감했다. 1980년엔 자신이 육사 후배에게 당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80년 5월17일 밤 육사 11기 후배들인 신군부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연행됐다. 그는 7월3일 밤에 겨우 풀려났다. 216억원의 재산도 빼앗겼다. 김 전 총리는 훗날 신군부를 ‘살모사’(殺母蛇)라고 불렀다.

5·16 반대해 쫓겨난 이한림 1군사령관

민망하게도, 5·16 쿠데타 주역들 자신이 살모사였다. 이한림 전 1군사령관은 1961년 5·16 쿠데타를 진압하려 했다. 그는 1921년생으로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나와 해방 뒤 육사의 전신인 육군영어학교 1기생으로 졸업했다. 한국전쟁 때 군을 이끌었다. 쿠데타를 진압하려 했지만 장면 당시 민주당 정권과 미국의 태도가 모호했다. 30여 시간의 고민 끝에 그는 내전을 우려해 쿠데타 진압을 포기했다. 그는 1940년 2월 만주군관학교에서 박정희와 처음 만났다. 조선인 학생은 많지 않았다. 금방 술친구가 됐다. 둘 다 공부를 잘해 함께 일본 육사에 진학했다. 그러나 이한림 전 사령관은 의회민주주의자였다. 진압을 포기한 뒤인 1961년 5월18일, 20여 년 지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연행된 뒤 마포교도소에 갇혔다. 이한림 전 사령관은 1961년 8월15일 풀려나 미국 소도시 샌타바버라로 쫓겨나 유학생 노릇을 했다. 1961년 11월 쿠데타 뒤 처음으로 이 전 사령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야, 이 새끼야 나를 이 꼴로 만들어놓고 속이 시원하지?”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몇 년 뒤 박 전 대통령의 대사직 제안을 받아들여 주로 외국을 떠돌았다. 말년에 건설부 장관도 했다. 그는 지난 4월29일 숨졌다. 신문은 부음 단신으로 조용히 그의 죽음을 전했다. 어디에도 그의 죽음은 기록되지 않았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참고 문헌 (남산의 부장들 2)(김충식·동아일보사), (12·12 사건 정승화는 말한다)(까치), (세기의 격랑: 이한림 회상록)(팔복원) 

2012년 6월 15일 금요일

'전두환 각하'... '평화의 댐'에서 생긴일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14일자 기사 ''전두환 각하'... '평화의 댐'에서 생긴일'을 퍼왔습니다.
2009년 현장방문에 부대장·기관장·단체장·경찰서장 등 총출동...충성 발언

http://www.youtube.com/watch?v=ESyVPU2YQOM&feature=player_embedded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6z6HJlWrFCs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95ZhgIjzO2o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JWtVeurqBeA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a10uimGvCKY

"차렷! 경례! 충성! 바로! (악수하며) 2군단장입니다.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충성"하는 것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만이 아니었다. 별 3개를 단 현역 육군 중장을 비롯해 영관급의 부대장들이 '내란죄'를 저지른 그 앞에서 줄줄이 관등성명을 외쳤다. 지난 2009년 10월 19일, 전 전 대통령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 이기백·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등 5공화국 주요 인사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을 방문했다.

오정석 당시 2군단장(전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2012년 1월 예편), 2군단 기무부대장, 2군단 작전참모장, 7사단 기무부대장 등은 열을 맞춰 전 전 대통령을 맞이했다. 군인들뿐만이 아니다. 정갑철 화천군수, 김종관 당시 화천경찰서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 지역 단체장과 기관장들이 나란히 섰다. 이들은 여전히 전 전 대통령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날은 월요일로 평일이었으며 지역 군부대의 최고 지휘관들과 단체장들은 공적인 행사가 아닌데도 총출동했다.

당시 통신사를 비롯해 몇 개 언론이 전 전 대통령의 방문 사실을 보도했지만 단편적 보도에 그쳤고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인터넷매체 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린 당시 영상을 보면 전 전 대통령이 얼마나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자유수호 대남방송'이라는 보수 성향의 이 매체는 5개의 동영상으로 나눠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전두환 향해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 보고  

전두환 전 대통령 일행은 관광버스 3대에 나눠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 앞을 경찰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면서 호위했다. 버스에서 내린 전 전 대통령은 김건호 수공 사장과 가장 먼저 인사를 나누고 도열해 있는 군인들 앞에 섰다. "전선에 이상 없습니다"라고 보고하는 2군단장에게 전 전 대통령은 "이상 없지?"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간담회 자리에서 전 전 대통령은 댐 건설 당시 있었던 논란에 "어떤 정치인들은 나보고 장기집권, 영구집권 하려고 한다고...그런 자식들이 지금도 살아있어"라고 말했다. 평화의 댐은 건설 과정에서 전두환 정권이 북한의 수공 위협을 과장하고 국민에게 불안감을 조성하여 댐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는 감사원 조사 과정에서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후 브리핑 자리에 참석한 전 전 대통령은 "군인들은 고생한다는 걸 모두 인정하지만 여기 평화의 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고생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자기네들밖에 없어"라며 "그래서 내가 알고 찾아 온 거야. 여러분을 위로해 드리려고..."라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을 한 수자원공사 인사는 "(평화의 댐은) 대통령 각하께서 재직 시에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직접 진두지휘하시어 건설하신 후 오늘날 북한의 수공에 대비한 북한강 수계 및 수도권 지역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라며 "오늘 대통령 각하와 일행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드리오며 직접 보고를 드리게 돼서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브리핑을 마치면서도 "현 상황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정확하게 예측하시고 심혈을 기울여서 댐을 건설해주신 대통령 각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밖으로 나와 '평화의 종'을 동행한 인사들과 함께 타종하고 화천 군수의 안내로 인근 시설을 시찰했다. 그는 관람객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정의롭지 못해도 시류에 편승해 살라고 가르치는 것"

이와 관련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14일 와 한 전화통화에서 "경찰차가 에스코트 하고 군 장성이 경례하는 걸 보니 기겁할 노릇"이라며 "그런 군 지휘관들이 공무가 아님에도 부대를 비워 놓고 그렇게 나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지휘체계를 비워놓고 나온 거라면 근무태만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독립운동을 했던 자손들은 비참하게 살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고 사는 것처럼 손녀가 초호화 결혼식을 치르는 전두환 일가처럼 군사반란을 일으킨 후손들도 잘 살고 있다"며 "이런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더라도 그냥 시류에 편승해 살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불의가 판치고 있는데도 우리가 용인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평화의 댐은 '거짓과 불신의 기념비'"라며 "낡은 이념의 상징으로 독재 세력에 의해 활용되는 현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화의 댐 건설 명분 자체가 황당한 거짓이었고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 자체가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었다"며 "그것을 찬양하고 독재를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참담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화천군과 한국수자원공사 측에 따르면 당시 방문은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요구로 진행됐다. 두 기관은 "어떤 신분의 인사가 와도 댐을 관람하고 브리핑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화천군 관계자는 14일 와 한 전화통화에서 "그 당시 북의 금강산 댐 방류가 이슈가 되니까 전 전 대통령 쪽에서 자발적으로 방문했다"며 "군수는 신분과 관계없이 지역을 방문해준 인사를 손님 차원으로 맞으러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도 "평화의 댐을 비롯해 어떤 시설물도 신분에 관계 없이 단체 관람을 오면 안내를 하고 브리핑이 필요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김건호 사장이 참석한 것에 대해 "당시 북의 금강산댐 방류로 논란이 되고 있어 근처에 일정이 있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오정석 장군은 1월에 예편했기 때문에 민간인 신분"이라며 "오 전 장군과 직접 접촉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용 (endofwinter)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한겨레> “국가반란 수괴 전두환씨” 호칭에 “올바른 표현!”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6-12일자 기사 '(한겨레) “국가반란 수괴 전두환씨” 호칭에 “올바른 표현!”'을 퍼왔습니다.
네티즌 “사설이 에어컨 바람 같아…맘에 드는 서릿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생도 사열 논란’과 관련 (한겨레신문)이 12일 “‘국가반란 수괴’인 전두환씨”로 시작된 사설을 내보내 트위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한겨레)는 (민주주의 위협하는 전두환씨의 ‘육사 사열’)이란 제목의 사설(☞ 글 보러가기 )에서 ‘‘국가반란 수괴’인 전두환씨가 최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육사발전기금 200억원 달성 행사에 반란 종범들과 함께 참석해 생도들의 사열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며 “박종선 육사교장에게 그가 말하는 국가와 군은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와 군인지 묻고 싶다”고 따져물었다. 

신문은 육군과 육사는 “전씨를 위한 의자를 따로 마련한 것에 대해서도 고령자를 위한 예우 차원이라고 둘러대고 있다”며 “군이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알고도 국민을 속이려는 작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신문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12·12 군사쿠데타와 광주 민간학살의 원흉으로, 1997년 대법원에서 반란수괴죄 등 무려 13가지 죄목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이 확정된 자이다. 비록 김영삼 정권 말에 사면복권이 됐지만, 잔형 면제와 공민권 회복만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벌금형만 해도 2205억원을 선고받았으나 일부만 내고, 전재산이 29만1000원밖에 없다며 1672억원을 미납한 채 버티고 있다”며 “또 간간이 골프장과 호화 음식점에 측근들과 떼를 지어 몰려다니거나 초호화판 자손 결혼식을 했다는 등의 소식을 뿌리면서 서민들의 부아를 돋우는 대표적인 ‘국민화합 저해 사범’이다”고 민주주의 파괴 이력을 짚었다.

신문은 “더 큰 문제는 이런 어이없는 일의 발생이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과도한 이념논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라며 “새누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지난 1일 “기본적으로 국가관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발언하면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종북논쟁으로 바꿨다”고 지적했다. 

“이후 새누리당이 조직적으로 이념공세를 펴면서 ‘종북은 악, 종북이 아닌 것은 선’이라는 광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전씨를 자신의 ‘정치생활의 멘토’라고 하는 사람이 친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국회의장 후보가 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고 강창희 국회의장 선출을 비판했다. 

신문은 “이런 점에서 전씨의 육사 사열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번 사건을 성토했다.

‘반란수괴 전두환씨’ 호칭에 대해 ‘1인 미디어’ 미디어몽구(@monguc)는 “한겨레가 사설을 통해 전두환에 대한 호칭을 라고 했다. 사설이 에어컨 바람 같아”라고 칭찬했다. 

춘천 MBC 박대용 기자(@biguse)는 “이런 트윗은 기사 링크가 필요”라고 리트윗을 했고 트위플들은 “호칭이 맘에 들어요”(sspir****), “한겨레가 오랜만에 한겨레다운 모습을 보여주는구나”(song79******) 등의 반응을 보이며 리트윗을 이어갔다. 

트위플 ‘NOH_S*****’은 “오늘(12일) 한겨레 사설은, 오월광주의 기억과 망각을 다룬 제 작업 의 작업노트로 초대하고 싶을 정도군요."국가반란수괴 전두환 씨"로 시작하는 한겨레 사설, 일독을 권합니다”라고 추천했다. 

‘Histor******’은 “한겨레 사설 민주주의 위협하는 전두환씨의 육사 사열. 언론에서 말하는 전 전 대통령은 잘못된 표현. 전두환씨가 올바른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외 “맘에 드는 서릿발”(qkr****), “한겨레 오타네 "전두환씨 발" 인데”(mirag****), “사실 정말 이상했음. 전두환은 전두환씨로 불려야 하는 것이 맞잖아요”(ZZa****), “그나마..씨..자는 붙여서..사람 대우는 해줬네요”(Sat******)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진락 기자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전두환, 6년 전에도 '육사 사열' 받았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10일자 기사 '전두환, 6년 전에도 '육사 사열' 받았다'를 퍼왔습니다.
[단독] 2006년 발전기금 100억 기념식... 생도 대표들과 간담회까지

▲ 지난 2006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육사 방문을 보도한 <육사신보>. ⓒ 육사신보 화면 갈무리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2006년에도 육군사관학교(교장 박종선 중장) 생도들의 사열을 받고 생도 대표들과 간담회까지 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육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인 (육사신보) 2006년 6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그해 4월 28일 '육사발전기금'의 초청을 받았다. '육사발전기금'은 재단법인이지만 육사교장이 상임이사를 맡고 육사 부·처장들이 당연직 이사로 임명돼 있어 육사와 별개의 조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당시 이 법인의 이사장은 전 전 대통령의 쿠데타에 적극 가담한 육사 11기 동기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이었다.

이날 행사는 법인 창립 10주년과 발전기금 100억 원 달성을 축하하는 자리로 화랑의식 참관, 학교시설 견학, 만찬, 육사 음악회 관람 등의 행사가 진행됐다. 이 가운데 '화랑의식'은 생도들이 열병과 분열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사열은 임석상관 자격으로 부대의 훈련 정도, 사기 등을 열병과 분열을 통해 살핀다는 군사 용어로 일종의 군사 퍼레이드를 말한다.

최근 논란이 되는 지난 8일 행사도 발전기금 200억을 달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전 전 대통령은 생도들이 열병 도중 '우로 봐!'라는 구호에 맞춰 경례할 때 지휘관처럼 거수경례로 답했다. 전 전 대통령은 1000만 원~5000만 원 출연자 자격으로 이 자리에 초청됐다. 11기 동기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군부독재의 핵심세력이었던 하나회 멤버들도 그와 함께 발전기금 출연자 명단에 올라 있다. 

18년 전 1000만 원 기부로 여태까지 예우?

이와 관련해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육사 출신들의 제보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06년에도 육사에서 사열을 받았다"며 "화랑의식은 매주 금요일 생도들이 일주일을 돌아보는 의미로 운동장에서 분열과 열병 의식을 하는 것인데, 전 전 대통령이 그 자리에 나타나 사열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는 사열만 받은 게 아니라 이후 연대장 생도와 학생회장에 해당하는 생도 대표들을 불러 간담회까지 열었다"며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을 학살한 독재자가 육사 생도들에게 무슨 자격으로 설 수 있냐"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994년 1월부터 1995년 1월까지 1000만 원의 기금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쿠데타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을 물어 '내란수괴죄',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대법원에서 사형까지 확정 받은 그가 18년 전에 기부했다는 이유로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는 1637억의 추징금을 내야 하지만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편, 육사와 육사발전기금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은 모두 '서버 점검 중'으로 현재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다.

 최지용 (endofwi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