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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육탄저지" KBS구노조, 길환영 출근저지 하루만에 '끝'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27일자 기사 '"육탄저지" KBS구노조, 길환영 출근저지 하루만에 '끝''을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낙하산과 어용노조의 역사는 반복된다

조합은 끝까지 임단협 타결과 공정방송 수호를 위해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싸울 것을 조합원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약속드린다. 13대는 (한다면) 합니다. (11월 23일 KBS노조 특보)  사장으로 KBS에 첫 발을 내딛을 꿈에 부풀어 있는 길환영 부사장에게 통보한다. 역사를 뒤로 돌려놓으려는 당신은 결코 KBS에 뒷짐지고 출근하지 못할 것이다. 각오하라! (11월 21일 KBS노조 특보)KBS노조는 길환영을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 (11월 13일 KBS노조 특보)
KBS노동조합(위원장 최재훈)이 '편파방송 종결자' 길환영 KBS 신임 사장을 비판했던 내용들이다. KBS노조가 강경한 투쟁 의지를 밝혔던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 KBS노동조합(위원장 최재훈)은 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전국조합원 총회’를 개최해 “KBS노조 똘똘 뭉쳐, 정치독립적 사장 선임하자”고 외쳤다. ⓒ곽상아

최재훈 KBS노조 위원장은 KBS 사장 후보자들에 대한 면접이 진행됐던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민주광장에서 전국 조합원 총회를 열어 "지금 11명의 후보들 가운데 단 한 사람이라도 선임됐을 때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다시 한 번 파업의 깃발을 올리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며 "당당히 싸우고 외면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최재훈 위원장은 13일 단식에 돌입하며 "지금 이 순간 KBS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기에 또 한 번 고통의 자리를 깔고 앉았다"고 비장한(?) 심경을 밝힌 뒤 26일까지 단식을 이어갔다.
윤형혁 KBS노조 공정방송 실장 역시 언론인터뷰를 통해 수 차례 '강력 투쟁'을 밝혔다. 윤형혁 실장은 지난 6일 "고대영, 길환영 등 말도 안 되는 인물이 사장으로 온다면 저희가 가만히 있겠느냐. 파업, 단식 모두 할 텐데 (새 노조와는) 시기적으로 불일치 할 뿐"이라고 말했다. 7일에는 "파업을 하더라도 신임 사장이 오는 시점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 23일(윗쪽), 19일(아래쪽) KBS노조 특보 1면 캡처

이렇듯 '강력 투쟁' 의지를 KBS 안팎에 피력했던 KBS노조는 26일 "길환영을 육탄저지하겠다"며 출근 저지에 나섰으나 이들의 출근저지는 단 하루 만에 종료됐다. 27일 KBS노조에 따르면, KBS 사측은 26일 오전에 노조 측에 문서를 통해 '제작과 보도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사공동 TF팀 구성'을 제의했고 노조는 긴급 비대위를 통해 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KBS노조는 "12월 7일까지 출근저지투쟁을 유보하는 대신 사측이 제안한 TF를 통해 국장 책임제 등 최소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고, 만약 12월 7일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경우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기로 만장일치 의결했다"고 밝혔다.
길환영 사장은 양대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 예고에 공식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인 지난 23일 취임식을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제작과 보도의 자율성과 공정성을 위해서 회사의 인사권과 경영권이 훼손되지 않고 양측이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함께 찾을 용의가 있다"며 TF팀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KBS노조는 "만약 12월 7일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을 경우 즉각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기로 만장일치 의결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파업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으며 사실상 KBS노조의 '길환영 반대 투쟁'은 이대로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윤형혁 KBS노조 공정방송실장은 27일 오후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동안 신임 사장이 오는 시점에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이제 파업에 돌입할 수 없게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파업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고, 파업을 포함한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며 "어차피 운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합원의 정서가 어떠한지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파업과 관련한 부분은 비대위원들이 부정적 입장을 표했다"고 답했다.
'이제 길환영 사장을 인정하는 수순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저희 싸움의 목표는 사장 퇴진이 아니었다"며 "'사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었지만, 이러저러한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그 이후부터는 사장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던 낙하산 사장을 슬그머니 받아들인 경우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
정확히 3년 전인, 2009년 11월 KBS노조(당시 위원장 강동구)는 MB특보 출신의 김인규씨가 차기 KBS 사장 후보로 선정되자 "특보 사장이 KBS에 발을 들여놓겠다면 백정의 칼을 들고 12대 집행부 전원의 목을 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영어의 몸이 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투쟁의 전장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이다"라며 해고와 구속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불과 1달도 안 된 같은 해 12월 중순 KBS 사측과 '김인규 사장 취임 1년을 맞아 사장의 공정방송 노력과 독립성 수호 등에 대해 중간평가를 실시하기로' 합의하면서 투쟁을 종료했다. '김인규 사장 중간평가'는 지난 3년간 실시되지 않았다.

▲ 강동구 당시 KBS노조 위원장(왼쪽에서 5번째, 김인규 당시 KBS 사장 옆)은 2010년 1월 4일 오전 KBS 시무식에 참석했다. 노조 간부가 KBS 시무식에 참석한 것은 KBS 역사상 처음이다. ⓒKBS

이 뿐만이 아니다. 2010년 1월 4일 열린 KBS 시무식에는 KBS 역사상 최초로 강동구 KBS 당시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이 참석해 '낙하산'이라던 김인규 사장과 신년의 출발을 알리는 떡을 썰었다. KBS노조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낙하산 사장으로 인해 황폐화된 공영방송 KBS, 그러나 내부에서 견제역할을 담당해야 할 노조의 이 같은 행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KBS의 지배구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KBS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KBS노조의 책임도 크다. 낙하산 사장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용노조의 역사도 반복된다.

곽상아 기자  |  nell@mediaus.co.kr

2012년 8월 11일 토요일

[사설]KEC 친기업 노조 7억 지원 의혹 철저히 밝혀야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10일자 사설 '[사설]KEC 친기업 노조 7억 지원 의혹 철저히 밝혀야'를 퍼왔습니다.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 KEC는 노조탄압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지막지한 수법을 구사하는 기업이다. 파업복귀 노조원들에게 체벌이 포함된 ‘정신순화교육’을 실시하는 등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삼청교육대를 연상케 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보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임원과 관리직의 임금 인상을 위해 노조원들이 주축인 현장 노동자들을 대거 정리해고하려 하기도 했다.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으로 정리해고는 철회됐지만 기업이 저지를 수 있는 도덕적 해이의 최대치를 보여준 사례로 남아 있다. 최근 커다란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역폭력도 적극 활용했다. KEC에 고용된 용역깡패들이 여성노동자들이 머물고 있던 기숙사에까지 난입해 강제로 끌어내는가 하면 1년 넘게 사업장에 상주하면서 노조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던 것이다. 

이처럼 ‘노조탄압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KEC가 이번에는 친기업 어용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7억원을 지원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고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회사 측은 지난해 7월 민주노조격인 금속노조 KEC지회 간부들을 강제퇴직시키고 친기업성향의 노조집행부 구성을 위해 보상금 5억원과 활동경비 2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복수노조 시행 첫날 KEC 신규 노조가 출범한 당시에도 회사 측의 ‘평소 행실’로 미뤄볼 때 뒷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데 사실일 개연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기업이 정상적인 노조를 말살하고 자신의 ‘충견 노조’를 만들기 위해 거액의 돈을 뿌렸다면 단순한 불법행위를 넘어 결코 넘어서는 안될 도덕적 윤리적 마지노선까지 침범한 것이다. 

KEC가 저지른 갖가지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 현재 회사의 대표이사 등 6명이 고용노동부를 거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검찰은 전면적인 수사를 통해 어용노조 거액 지원 의혹의 진상을 규명한 뒤 돈을 뿌린 이들과 받아챙긴 이들을 모두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돈거래 의혹과는 별개로 관할 관공서가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에 개입했는지도 이번 기회에 수사해야 한다. 회사 측은 오래전부터 노동청, 경찰, 시청 등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묵인·방조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기에 KEC가 온갖 불법행위를 자행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이 어용노조 거액 지원 의혹과 관공서의 직무유기 행위를 철저히 수사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보려 한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공병 줍는 무급자


이글은 한겨레21-07-09일자 제918호 기사 ' 공병 줍는 무급자'를 퍼왔습니다.
[이창근의 해고 일기] 공병 줍는 일로 생계 잇다 젊은이에게 밀리는 쌍용차 무급휴직자 무급자와 대화도 없이 ‘지원안’ 내고 생색내는 회사, 어용노조

»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당하거나 무급휴직 조처된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카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461명 무급휴직자의 ‘알바’ 생활이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정용일 기자

아침에 일어난 정씨는 어깨가 결렸다. 무릎과 허리는 욱신욱신했다. 그저께 유리에 벤 손가락엔 아직 반창고가 덜렁덜렁 붙어 있다. 한 달째 고물상 일을 하는데도 일이 손에 익지 않는다. ‘그래도 출근할 수 있는 게 어디냐’며 끙 소리 한 번 내고 오늘도 일어선다. 고물상 일은 생각보다 출근을 서두르지 않아 좋다. 새벽 인력시장은 얼마나 일찍 나갔던가. 한겨울 쨍한 새벽 공기 속에서 오돌오돌 떨며 조금만 더 늦게 출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때보다 지금은 얼마나 호강에 겨운가. 긴 줄로 늘어선 인부 사이에서 젊은 축에 껴 간택받아 올라탄 봉고차에서의 단잠은 꿀맛이었다.

뺑뺑이 일감, 고립된 나날

고물상 일은 아침 8시에서 오후 5시까지 했다. 공병을 분리하는 게 주로 하는 일이다. 먼저 부대에 담긴 소주병, 음료수병, 맥주병 등 다양한 병들을 한곳에 쏟아붓는다. 그다음 산을 이룬 공병을 종류별로 하나둘 박스에 담는다. 공병에 담배꽁초가 들어 있거나 휴지가 박혀 있는 녀석을 보면 예전 회식 자리가 떠오른다. 재떨이가 있음에도 빈 병에 재를 떨었던 기억과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담배꽁초와 휴지가 박힌 병은 따로 취급했다. 공병 세계지만 여기에도 급이 있었다.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공병이 내 신세와 꼭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쯤 또 한 무리의 공병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하루 종일 공병들 속에 파묻혀 분리 작업을 하고 나면 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킨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해가 중천에 걸려 있어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엔 좀 머쓱한 시간이기도 하다. 소주 생각이 나서라기보다 어둑해지는 밤을 기다려줄 친구가 소주밖에 없어 술집에서 몇 개의 공병을 만든다.
출퇴근길에 지나치게 되는 회사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몇 차례 회사가 보이지 않는 곳을 택해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알량한 자존심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무력해지고, 언젠가부터는 출퇴근길 경로가 원래의 길로 바뀌어 있었다. 공병을 분리하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 6개월 정도가 되자 고물상 일도 더는 못하게 됐다. 젊은 청년들이 그 자리를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젊다는 이유로 내가 나이 든 형들을 본의 아니게 밀어냈던 것처럼. 다시 쌍용자동차 무급휴직자 동료들처럼 노가다, 대리운전, 항만 일 등 닥치는 대로 해야만 하는 뺑뺑이 일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날씨는 더웠다. 김씨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티셔츠를 흥건하게 적셨다. 쥐어짜면 금방이라도 물이 주르르 흐를 정도로 목에 두른 수건은 완전히 젖어 있어 무겁다. 덤프트럭 운전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다니는 일인 줄 알지만 실은 더위와의 싸움이다. 차에서 오르내리기를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하고, 적재물에 언제나 신경이 곤두선다. 고속도로 길 옆에 길게 늘어선 대형 트럭 안에서 잠을 청하던 기사들을 이젠 좀 이해할 것 같다. 쏟아지는 햇살만큼의 고통이 졸음이기 때문이다. 화물차를 ‘달리는 흉기’로 취급하는 일각의 시선은 당사자가 느끼는 공포에 비하면 한가할 정도다. 차량 안쪽 거울에 달린 ‘아빠, 오늘도 무사히’라고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은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진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의 아르피엠(RPM)은 높아만 간다.

회사에 뒤통수 맞은 무급자들

좁은 길에서 차량이 기우뚱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아찔한 나머지 식은땀 위에 식은땀을 쌓는다. 운전한 지 1년 가까이 다돼가지만 신경은 더 예민해지고 살은 더 빠졌다. 김씨는 원래 주방장 일을 했다. 서울의 유명 호텔 한식 조리부에 있었는데, 좀더 안정적일 것 같아 이 회사에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 생활은 생각했던 평범한 일상에서 많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가뭄으로 강바닥이 말라 갈라지는 뉴스를 보며 통장 잔고가 바닥나는 것이 떠오른다. 더 열심히, 더 악착같이 살았는데 평수 작은 곳으로 이사는 계속되고 있다. 쌍용차라는 회사가 지금이라도 불러준다면 들어갈까도 고민이지만 하던 일도 있고, 예전 동료들과의 관계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래서 요즘 운전대를 잡으면 딴생각을 자주 한다. 마주 달려오는 트럭의 경적과 헤드라이트 불빛에 깜짝 놀라 운전대를 다시 잡는 경우가 부쩍 많아진다.
지난 6월13일 회사는 3년 전의 약속을 지킨다는 언론 플레이를 시작했다. 쌍용차 노사가 무급휴직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합의했다는 보도였다. 기업노조(어용노조)와 회사가 마련한 이 방안을 접한 무급휴직자(1년 뒤 복직 약속을 받은 461명)의 첫 반응은 뒤통수를 맞은 얼떨떨함이었다. 쌍용차 회사가 말하는 무급휴직자 지원 방안은 자녀 학자금 지원과 명절 선물 지급, 회사 주식 150주 지급, 협력업체 취업 적극 알선이 핵심 내용이다. 무급휴직자는 엄연히 조합원 신분이다. 따라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뒤늦게 한 것뿐인데 마치 새로운 것인 양 호들갑을 떤다.
당장 쌍용차 무급자 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무급휴직자는 사 측과 공장 복직을 위한 단 한 번의 협의나 대화도 없었다. 합의 주체, 당사자가 빠진 실체 없는 합의는 인정할 수 없고 당장 폐기할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22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자살하거나 죽어갔다. 회사가 합의서 내용을 지키지 않아 벌어진 일치곤 비극적이다. 회사는 무급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녀 학자금 지원이 가장 절실한 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 대상자는 10여 명에 불과하다. 또한 협력업체에 우선적으로 취업하는 무급휴직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노동자를 길들이고 편 가를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갈등 해소가 아닌 다시 갈등의 땅굴을 파겠다는 것이다.

회사에 베인 마음은 어떻게 하나

쌍용차 사태가 3년을 넘었다. 지긋지긋한 기간이었고, 치 떨리는 시간이었다. 두려움과 분노의 시간이었다. 회계 조작에 의한 강제적 정리해고로 스물두 개의 세계가 사라진, 이 끔찍한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학계, 문화, 종교, 예술, 노동, 학생, 시민 등 다양한 이들이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거리와 현장 정치에 놀란 기성 정치권도 뒤늦게 쌍용차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국정 조사와 국회 청문회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하던 공병 줍고 분리하는 일을 쌍용차 무급자와 해고자들이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자리마저 일자리 가뭄에 시달리는 젊은 청년들이 메우고 있다. 공병을 줍다 벤 손가락은 치료할 수 있지만, 3년간 쌍용차 회사로부터 베인 마음은 어떻게 하나. 낯선 운전대를 잡으며 놓지 않았던 공장 복귀의 간절함은 또 어떤가. 쌍용차 파업이 벌써 3년째다. 이제 해결해야 한다. 공병에 어른거리는 노동자들과 운전대를 잡고 땀 흘리는 노동자들을 보며 쌍용차의 찢긴 3년 전 약속이 생각나는 지독히 더운 여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트위터 @nomadchang

2012년 7월 2일 월요일

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7-02일자 기사 '파업이 있었던 곳에는 반드시 복수노조 나타난다?'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사업장단위에서도 자유롭게 제2, 제3의 복수노조를 만들 수 있다. 둘째, 그러나 산업평화와 교섭비용 절감을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과반수 노조에게만 교섭권, 쟁의권을 부여한다. 셋째, 그렇지만 사용자가 원할 시 소수 노조와도 자율교섭 할 수 있다.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면서 단결의 자유는 넓어졌지만 교섭권과 쟁의권은 제한됐다. '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의 의의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탄압의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이 신무기에 의해 민주노조가 파괴되고 친기업노조로 대체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이자 헌법상의 기본권리인 노동기본권이 박탈되고 노사관계는 자본 일방으로 재편됐다.

'창구단일화' 아래서 친 기업노조는 다수든 소수든 유리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를 매개로 한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는 친 기업노조 설립으로 시작된다. 회사 측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친 기업노조가 다수를 장악하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권, 쟁의권을 독점할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압박하여 탈퇴시키고 친기업 노조에 가입시키면 게임은 거의 끝난다. 소수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교섭대표 노조에게 공정의 의무를 다하라고 따지는 것 정도이다.

또 하나의 기가 막힌 문제는 민주노조의 교섭대표권이 남아 있거나, 친 기업노조가 다수를 점하지 못한 소수일 경우에도 회사는 자율교섭을 한다는 명목으로 소수노조인 친 기업노조와 교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측은 소수노조 상태인 친 기업노조와 먼저 합의하고 민주노조와의 교섭은 형식적으로 임하고 버틴다.

동시에 친 기업노조는 회사의 지원 하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다수 조합원 확보에 나선다. 조합원들은 갈등 속에서 살기 위해 동료를 등지고 자책감에 괴로워한다. 노동현장은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갈등, 분노, 배신감등이 뒤 얽혀 인간성의 파괴를경험하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다수노조가 교섭권, 쟁의권을 독점하게 하고, 사측이 교섭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임의로 선택하여 자율교섭을 할 수 있게 한 이 모순된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제도이다.

한일파카 유압·유성기업·KEC·한진중공업에서 맹활약한 '창구단일화'

한일파카 유압은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비정규직의 사용을 위해 장안외국인투자단지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2009년 5월 32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후 정리해고 반대투쟁이 전개되었고 2011년 7월 1심에서 승소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2011년 2월 단협을 일방해지하고 그해 7월 1일 복수노조를 설립하였다. 이후 민주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잔업, 특근에서 배제되고 부당한 업무지시, 배치전환에 항의하면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유성기업에서는 공격적 직장폐쇄 기간이 장기화되어 조합원 복귀율이 50%가 되던 2011년 7월 14일 복수노조가 설립되었다. 회사 측이 노골적으로 나서서 친 기업노조 가입운동을 펼쳤으며, 관리직 사원 50명을 가입시켜 다수를 확보해 나갔다. 또한 2011년 12월말까지 '친 기업노조 가입이 50%를 넘지 못하면 현대자동차에서 물량을 안 준다고 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 장기파업으로 인한 징계 및 손배소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해 등을 돌려야 했다.

2011년 희망버스의 소중한 성과물인 한진중공업에는 정리해고자들이 복직하기 전에 이미 친 기업노조가 설립되어 다수를 확보해 2012년 7월 18일 이후부터는 '교섭 창구단일화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일거리가 없는 조합원들에게 친 기업노조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는 대출형식의 1000만 원 지원과 순환휴직에서 벗어나 먼저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는 바람은 열사의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 애틋한 동지들 사이를 갈라놓고 말았다. 노조 간의 선의의 경쟁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 고도로 준비된 노무컨설팅을 바탕으로 기획적인 노동탄압이 존재할 따름이다. 친 기업노조는 노무관리 대행, 사측의 아바타 역할을 수행 한다. 사측은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라는 효율적인 탄압의 무기를 얻었을 뿐이다.

▲ 희망버스를 계기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정리해고 철회에 합의했지만, 일거리가 없었던 조합원들은 순환휴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바람에 제2노조에 속속들이 가입했다. 사진은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그렇다면 소수 신규노조에는 단결의 자유를 주나?

복수노조가 허용되었다고 해서 노조의 무풍지대나 기존 어용노조의 아성에 노조 결성의 바람이 불지 도 않았다. 교섭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노조를 만들 엄두도 못 내기 때문이다. 소수노조라도 교섭권이 보장된다면 장기적 전망을 갖고 활동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과반수 노조에게만 교섭권이 보장되어 있는 이 제도 하에서는 노조의 확산을 통한 노동자 권리의 확대를 예측할 수 없다.

금속노조에서 기존 친 기업노조 하에서 새롭게 지회를 결성한 곳은 부산 TY밸브가 유일하다. 조합원 160명의 TY밸브 노조위원장은 임금을 결정하고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사측의 인사노무관리 역할을 하고, 조합비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전횡을 일삼아 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조합원 중 30명이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시행된 2011년 10월 4일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지회를 결성하여 교섭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측과 한 몸인 친 기업노조를 상대로 과반수 조합원을 확보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긴 하지만 그 산을 오르기가 무척 힘겨워 보인다. 그렇다고 사측이 스스로 선택하여 지회와도 교섭을 할리는 만무하다. 현재 TY밸브 지회는 공정대표 의무 위반으로 친 기업노조를 제소하며 힘겹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며, 조직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렇듯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기존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훌륭한 무기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노조의 진입을 가로 막는 강력한 장벽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민주사회의 기본원리인 노동기본권을 제한하고 박탈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노동법 전면 재개정 투쟁' 앞에 서다

장기간의 투쟁 끝에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교섭대표 노조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친 기업노조는 자주성을 가지고 있는 '노조' 가 아니라 회사 측의 노무관리를 대행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11년 7월 1일 만들어진 복수노조 1호 사업장인 KEC노조는 교섭창구 단일화 과정을 거쳐 2012년 2월 17일 회사 측의 오랜 염원이었던 상여금 300% 삭감, 고정 OT폐지, 교대수당 폐지, 2조 2교대제, 무급순환 휴직에 흔쾌히 합의해 주었다. 유성기업노조는 관리직 50명을 가입시켜 교섭대표권을 행사했고, 단체협약상의 노조활동시간과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 여성들의 생리휴가 제한 등에 합의해 주고 있다. 센트랄, 두산 모트롤도 회사 측의 경영방침이지만 민주노조가 걸림돌이 되어 못했던 구조조정 제한규정 삭제, 노동유연성 확대, 노조활동 지원축소, 노동조건 하향조정 등에 합의했다. 이렇듯 '복수노조 창구단일화'는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고 자본일방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한국에 대한 국제적인 관전평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데 비해 노동자의 권리는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아직 국제노동기구(ILO)와 협약도 비준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국제적 권고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지난 3월 15일 313차 회의에서 한국이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을 부여하고, 과반수 노조가 없을시 모든 노조에게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가 도입된 지난 1년을 통해 밝혀진 결론이 있다. 노동기본권을 지키고,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노동법을 시급히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고, 사용자가 교섭파트너를 선택하게 한 이 악법은 모든 노조에 교섭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의 부당한 차별행위, 친 기업노조 설립지원, 노조에 개입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해야 하며, 모든 노조에게 쟁의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투쟁해 나가야 한다. 그 출발이 8월말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 민주노총은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총파업을 예고하는 경고파업을 벌였다. 민주노총 대표단은 이날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촉구하는 서한을 국회에 전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이상우 금속노조 정책국장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홍익대 비정규직 ‘어용노조 벽’에 다시 거리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2일자 기사 '홍익대 비정규직 ‘어용노조 벽’에 다시 거리로'를 퍼왔습니다.


경비업체에 새노조 만들어져단독으로 시급 4900원 합의공공노조 가입 노동자들 배제“창구 단일화 규정 악용해”공동교섭 타학교는 5100원 합의
지난 21일 밤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T동 501호 강의실. 홍익대 총학생회 간부 등 학생 40여명과 이 학교 경비노동자들이 마주 앉았다.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로 구성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서경지부) 홍익대분회는 지난 9일부터 학교 정문 앞에서 천막농성을 해온 터였다. 지난해 1월 집단해고에 반발하며 49일 동안 투쟁을 벌인 데 이어 1년3개월 만에 또다시 거리로 나온 것이다.
홍익대분회는 자신들이 투쟁하는 이유가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애를 먹고 있다. 21일 간담회도 학생들에게 왜 투쟁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홍익대 경비노동자인 박진국(59)씨는 “유령 같았던 우리를 노동자로 만들어 준 노조를 지키고 싶어, 학생들에게 미안하지만 다시 투쟁에 나섰다”고 말했다. 홍익대 노동자들이 천막농성에 들어간 것은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복수노조 탓이 크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이 마음껏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해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확대하고자 도입된 것인데, 교섭창구 단일화 규정으로 노동현장에선 오히려 노동권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익대는 경비업무의 경우 ㄱ사, 청소업무는 ㄴ사와 도급계약을 맺었다. 하청노동자란 신분 탓에 고용이 불안하고 임금이 낮은 대학의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힘을 키우기 위해 하나로 뭉쳤다. 이들은 고려대 등 6개 대학의 12개 하청업체와 지난해부터 집단으로 교섭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홍익대 경비업체인 ㄱ사에 복수노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경지부는 새로 생긴 ‘홍경회노조’가 회사 쪽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복수노조일 경우 교섭창구를 하나로 만들도록 돼 있는데, 조합원이 많은 노조가 교섭대표가 된다. ㄱ사는 홍경회노조(조합원 39명)와 교섭을 해 지난 3월 ‘시급 4900원, 휴게시간 6시간 보장’에 합의했다. 홍익대분회 조합원인 경비노동자 27명은 교섭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반면 12개 업체를 상대로 집단교섭을 했던 서경지부는 시급 5100원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홍익대분회 관계자는 “휴게시간이 5시간에서 6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임금이 줄어들고, 집단교섭에 참여했던 업체들보다 임금인상 폭이 적다”며 “복수노조 때문에 홍익대 경비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노동조건보다 더 큰 문제는 노조의 약화다. 서경지부 관계자는 “교섭권이 없는 노조는 ‘식물노조’나 마찬가지”라며 “힘의 우위에 있는 사용자들은 사쪽에 협조적인 노조를 만들고,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들은 불이익을 당할까봐 그 노조에 가입해 다수 노조가 되면 민주노조는 손쉽게 없앨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경지부 김태완 조직부장은 “복수노조라 하더라도 노사가 합의를 하면 각각의 노조와 교섭을 할 수 있는 만큼, ㄱ사는 지부와의 교섭에 나서고,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홍익대도 중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ㄱ사 관계자는 “홍경회노조는 사쪽과 가까운 노조가 아니며, 효율적인 교섭을 위해 앞으로도 조합원 수가 많은 노조와 대표교섭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