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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월요일

새누리당 비주류 기지개 켜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3-03-08일자 기사 '새누리당 비주류 기지개 켜나?'를 퍼왔습니다.
[분석] 인사와 정부조직법 난항이 물꼬를 트고

새누리당 내부의 기류가 심상찮다. 이명박 정부 시절 친박 대 친이로 갈려 전쟁을 치렀던 후유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가깝게는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논란으로 이러한 상황을 짚어볼 수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쉽게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과 관련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새누리당 내부의 계파 질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론을 둘러싼 신경전

소위 쇄신파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7일 트위터를 통해 “국회선진화법을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않고 개정을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기준 최고위원 등이 국회선진화법의 개정을 말하는 데에 대한 반발로 읽혀졌다.
과거 친이계로 분류되던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국회선진화법은 두고두고 국회를 식물로 만드는 법”이라며 “황우여 원내대표가 진두지휘 한 것이니 만큼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들의 국회선진화법 개정 여론에 동의하면서도 애초에 그 책임이 친박계에 있음을 강조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 새누리당 내 비주류의 주요 인사로 꼽히고 있는 남경필, 심재철, 정몽준, 이재오 의원. ⓒ뉴스1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 도입됐다. 2010년 12월 4대강 관련 법안과 새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직후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새누리당은 2012년 4월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 도입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당시에도 친이계 등 당 내 비주류들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했고 국민에게 약속드린 것이다. 선진화법은 꼭 처리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국회선진화법은 본회의에 상정됐고 표결을 통해 통과됐다. 친박계 의원들은 대개 찬성표를 던졌고 친이계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했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싼 새누리당 의원들의 발언 곳곳에 ‘암수’가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했는지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재원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국회선진화법을 고치려면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의 대의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새 정부 인사문제에 있어서도 비판 거듭해

이런 신경전은 박근혜 정부 들어 간헐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 문제에 대해서도 계파 별 입장차에 따른 발언들이 나왔다.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로 꼽혀왔던 이재오 의원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당시 후보자에 대해 “특정경비라고 해도 공금을 사금고화해서는 안 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또 이재오 의원은 이후 박근혜 당시 당선인과 인수위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국민의 신뢰를 잃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며 “기회가 와도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바른 일”이라고 발언해 박근혜 정부 인사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을 거듭했다.
장관 후보자 인사에 대해서는 국회 부의장을 지낸 정의화 의원도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있지만 스스로 용퇴해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전관예우 등의 문제가 제기된 장관 후보자들에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정의화 의원은 PK지역의 대표적인 친이계 인사로 분류됐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이제 비주류가 된 친이계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심재철 의원도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자고 나면 문제 사안이 줄줄 나온다”며 문제가 된 장관 후보자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한 바 있다.

정부조직법개정안 처리 둘러싸고도 파열음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논란에서도 양대 파벌의 신경전은 계속됐다. 당 내 주류인 친박계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한 반면 비주류 인사들은 당의 리더십 부재와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된 처신에 문제제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 새누리당 내부의 집안싸움에 대해 보도한 6일자 조선일보 기사.

7선 국회의원으로 비주류의 한 축을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몽준 의원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난항을 겪자 “당 지도부가 야당만 설득할 게 아니라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마찬가지로 비주류로 분류되는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당으로서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 답답하고 무기력하다”라며 “당이 자율권도 있어야 하는데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의 의지를 보인 것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대통령이 격앙된 모습으로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며 야당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아쉽다”며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이렇게 하면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도 “앞으로 벌어질 모든 쟁점을 매사에 이런 식으로 풀어 갈 수는 없다”며 “이제는 통치가 가능한 시대는 갔고 정치만 가능한 시대”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에 가까운 것이다.

5월 원내대표 선거가 터닝포인트

이와 관련해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에서 주류와 비주류가 ‘진검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도 나온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2일자 보도를 통해 “친박진영에서 ‘대통령을 위해 레일을 깔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다수의 친박 중진들이 원내대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주류 친박계에서는 4선의 이주영 의원, 서병수 사무총장, 3선의 최경환 의원 등이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다. 비주류 측에서는 5선인 남경필 의원의 재도전이 예상된다. 앞서 언급된 비주류들의 신경전이 후보자 난립 등과 얽혀 원내대표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선거 전망을 보도한 2일자 조선일보 기사.

물론 비주류 측이 원내대표 고지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 우세한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현재 새누리당 의원 다수가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 시절 공천받은 인사인데다가 비주류 측을 아우르는 명확한 조직적 구심점이 없다는 점은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현재 비주류 측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재오 의원이 이끄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과 남경필 의원이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정도인데 두 조직 모두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두 모임에 대해 “개헌추진모임의 경우 여·야 의원이 모두 포함돼있는데 여당 인사들의 당 내 기반은 줄어들어 적극적으로 행보하는 데 한계가 있고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은 소장파 내지는 쇄신파 모임으로 비춰지지만 친박계에 우호적인 인사들도 포함돼 있다”며 향후 비주류 측 조직적 구심으로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비주류 측이 이대로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계속 이어지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 당내 기반을 넓혀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사설]진보당 당권파,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찰 텐가


이글은 경향신문 2012-05-14일자 사설 '[사설]진보당 당권파,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찰 텐가'를 퍼왔습니다.
통합진보당의 비주류가 중앙위원회 전자투표를 통해 경쟁부문 비례대표 당선자 및 후보들의 총사퇴와 강기갑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혁신비상대책위원회 구성안을 의결했다. 당권파는 예고한 대로 ‘원천 무효’를 선언하고 나서 비주류와 당권파 사이에 다시금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진보당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당권파로선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사퇴한 이정희 공동대표 외에 심상정·유시민·조준호 3인 공동대표의 퇴진은 지도부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다. 갈등과 분란의 중심에 있는 그들에게 사태 해결을 맡길 수 없다는 현실적 필요성도 있다. 당권파의 생각은 다르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인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퇴진 역시 새 판을 짜는 데 있어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강기갑 비대위원장 체제는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 비롯된 당내 갈등과 지난 주말의 폭력 사태를 수습하고, 강도 높은 당 쇄신책을 강구함으로써 진보당이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떠안게 됐다. 진보당의 최대 세력 기반인 민주노총까지 당권파의 전횡에 반발해 지지 철회를 검토한다고 하니 강 위원장의 행보에 힘이 될 터이다. 과거 당권파의 지지를 업고 대표가 되었다가 이제는 비주류의 지원을 업고 당의 난제를 풀어야 하는 강 위원장의 모습이 진보당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문제는 단 한치의 여백조차 남기지 않은 채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는 당권파의 대응이다. 당권파가 중앙위 결정 수용을 거부하고 원내 다수라는 점을 악용해 별도의 원내지도부를 구성한다면 비주류 중심의 비대위와 당권파의 원내대표 체제라는 기이한 동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는 한지붕 두가족을 넘어 사실상 분당에 가까운 두집 살림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당권파의 몫이다. 그러잖아도 당권파는 폭력 사태를 일으킴으로써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비도덕적 수단도 서슴지 않는 집단이라는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당권파들이 여러 이유를 들이대고 있으나 그들의 온갖 몸부림은 결국 자파 몫인 비례대표 2석을 지켜 진보정당의 원내 다수를 점하자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더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강 위원장은 “진보정치의 시련이 미래의 가능성마저 거두어들이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며 “국민과 당원이 갖고 있는 마지막 기대의 끈이 끊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진보당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 제시라고 생각한다. 비주류보다 당권파들이 더 귀담아들어야 할 얘기가 아닌가 싶다. 당권파가 지금이라도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진보당도, 당권파도 공멸의 길로 내달을 뿐이다. 당권파는 중앙위 결정을 수용함으로써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당권파는 당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마저 걷어찰 셈인가.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김근태의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1-12-30일자 기사 '김근태의 마지막 말 "2012년을 점령하라"'를 퍼왔습니다.
'세계의 양심수' 김근태, 하늘로 가다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달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광주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로의 개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지금은 죽는다"고도 했다. 두 마디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드라마틱한 말이었다. '6.3 세대'로 386 운동권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그는 현실정치에서 만년 비주류였다. '비주류의 정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47년 2월 14일 경기도 부천에서 출생한 김근태는 중학교 3학년 때 5.16쿠데타를 목격했다. 강제로 교직을 그만두게 된 그의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고 곧 심장판막증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님은 동대문 시장에서 여자 스타킹과 양말을 받아다 팔아 김근태를 키웠다.

그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1965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71년 박정희 정권 부정선거 파동 반대 활동, 교련 데모에 적극 참여했고, 서울대 내란 음모 사건으로 수배를 당하게 된다. 당시 친구였던 조영래, 장기표, 심재권은 감옥에 들어갔다. 이후 74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또 다시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도망하기를 7년,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


▲ 학창 시절의 김근태 ⓒ김근태 미니홈피
▲ 민청련 시절 김근태(오른 쪽은 장영달 전 의원)) ⓒ김근태 미니홈피

김근태는 새로 들어선 전두환 군부 독재에 맞서 83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했고초대, 2대 의장을 지냈다. 후배들인 386세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 세력의 기획자이자 동지로 살았다. 그러나 민청련 활동으로 인해 그는 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이 전무'로 통하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전기와 물이 그의 몸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후 그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남은 생을 살아야 했다.

이 사건에 관한 진술은 이미자의 '노래 테입' 중간에 녹음된 채로 미국 인권단체에 건네졌다. 이후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의 양심수'라는 수식이 김근태 이름 앞에 붙었다. 87년 로버트 케네디 국제 인권상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를 가두고 고문했던 국가보안법은 21세기 하고도 11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살아있다.

그는 자신의 책 에서 '인간도살장' 안에 있던 느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문을 할 때는 온 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습니다. 그 다음에 고문대에 뉘면서 몸을 다섯 군데를 묶었습니다...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 고문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발에는 전원을 연결시켰습니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 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코 앞에 다가왔습니다. 이 때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고 사느니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노래를 뇌까리면서 과연 이것을 지켜내기 위한 인간적인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했으며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한 절망에 몸서리쳤습니다."


▲ '세계의 양심수' 김근태는 인권상 수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김근태 미니홈피

87년 6월 항쟁을 감옥에서 맞은 그는 88년이 돼서야 석방됐다. 세상은 변했지만 '천지개벽'은 없었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결성을 주도하고 정책기획실장, 집행위원장을 지냈지만 시대는 그를 또 다시 구속했다.

노태우 정권이 끝난 뒤 3당 합당을 지켜본 그는 현실정치로 눈을 돌린다. 95년 민주당에 입당한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와 함께 새정치국민회를 꾸렸고, 부총재 직을 맡았다. 이 때 15대 총선을 치렀고, 서울 도봉갑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냈다. 98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 탄생에 힘을 보탠 그는, 곧바로 새천년민주당 쇄신 운동에 돌입했다. 역시 '비주류'였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선 경선에서 맞붙었다. 이인제 후보와 경쟁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면서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른바 '노풍'이 불기 시작한 광주 경선 직전이었다. 두 번째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 노무현 탄핵 열풍을 딛고 '주류'로 올라선 열린우리당의 창당에 참여했지만 여전히 그는 '비주류'의 길을 걸으며 열린우리당을 지배했던 '중도실용노선'과 '투쟁'을 이어갔다.


▲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내던 시절 김근태 ⓒ김근태 미니홈피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낼 때는 부동산원가 공개에 반대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토론해보자"고 맞섰다. 그런 그를 노 전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러나 장관을 지내면서도 그는 영리병원을 반대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여전한 '비주류'였다.

2011년 12월 29일 그가 떠나기 전, 지난 10월 18일 마지막으로 그의 블로그에 'posted by 김근태'로 남아 있는 글 역시, 그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월가 시위의 요인은) 무엇보다 1%를 향한 99%의 분노 때문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정의롭지 못함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1%인지 5%인지는 중요치 않다. 이처럼 전 세계가 공감한다는 것은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제패했었다는 증거다. 선진국과 후진국, 강대국과 약소국, 민주국가와 비민주국가의 구분 없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세계적 대세였던 것이다. 그리고 2008년의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손인 월가의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희생도, 반성도, 징벌도 없는 불공평함에 분노한 것이다.
...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의 제목이다.

"2012년을 점령하라"



/박세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