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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보안사와 싸운다는 자존심이 나를 지켰다”


이글은 시사IN 2012-11-21일자 기사 '“보안사와 싸운다는 자존심이 나를 지켰다”'를 퍼왔습니다.
추재엽 양천구청장 고문 혐의에 결정적 증거가 된 저자 김병진씨를 만났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보안사에 끌려갔다가 통역사로 일하라고 강요받은 그는 “무슨 짓을 하는지 반드시 기록하겠다”라는 각오를

김병진씨(57)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부채감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서울 양천구에 산다. 이번에 법정 구속된 추재엽씨가 3선 구청장이 되는 것을 지난 10여 년간 지역주민으로서 지켜보았다. 추씨의 고문 전력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나온 것이 2000년대 중반. 그러나 ‘설마’ 했다.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상대 후보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을 보며 역시나, 그저 그런 흑색선전이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난 10월11일, 서울남부지법은 추씨가 보안사 근무 시절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법정에서 이를 부인한 혐의 등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 김병진씨가 1987년에 쓴 책 (보안사)였다(한국어판은 1988년 출간). 재일동포 3세로 1980년대 중반 보안사에 근무했던 김씨가 일본으로 탈출한 직후 목숨을 걸고 써내려간 이 책에는 추씨를 비롯해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보안사 수사관 20여 명의 실명이 적시돼 있다.

ⓒ시사IN 조남진 김병진씨(위)는 일본에서도 북한 간첩 혹은 남한 공작원이라는 상반된 모함에 시달렸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 대한 김병진씨의 진술이 구체적인 데다 “(저술 당시) 피고인(추재엽)에 대해 (김씨가)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 신빙성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김씨의 치열한 기록 정신이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 25년 만의 단죄를 가능케 한 셈이다. 추재엽씨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 나종인씨(71)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른 김씨를 11월3일 만났다.  

보안사와 인연을 맺은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1983년 한국 유학 중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보안사에 처음 끌려갔다던데.
간첩 누명을 쓰고 온갖 고문을 당한 것만도 억울한데 석 달 만에 공소 보류로 풀려나자마자 보안사에서 통역사로 일하라는 강요를 당했다.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 항의하고 읍소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집사람과 죽어버릴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보안사 일을 받아들였다는 건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를 불법으로 구금하는 동안 “니 마누라는 윤락녀 만들고 니 자식은 고아원에 보내버리겠다”라고 협박했던 그들이다.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계시랄까. 어느 순간 하늘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어디 한번 똑똑히 지켜보자. 내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말겠다. 뭐 그런 생각, 각오? 그런 게 생기니까 비로소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더라.

메모나 일기를 남길 수도 없었을 것 아닌가. 언제 가택수색을 당할지 모르는데.
2년간 근무하는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들은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시기와 정황은 기억할 수 있었다.

책임자뿐 아니라 말단 수사관의 이름까지 책에 밝혔다. 비교적 직급이 낮은 편(6급)이던 추재엽씨도 그로 인해 기록이 남았다. 
고문·간첩 조작에 가담한 가해자는 모두 이름을 밝힌다는 원칙을 갖고 시작했다. 말단이라도 역사적 책임을 비켜갈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나. 피해자들은 가짜 간첩인데도 실명·사진이 다 언론에 실렸는데 말이다(김씨의 경우도 재판이 열리기 전 보안사가 김씨를 간첩이라고 언론에 공표해 피해를 본 일이 있다. 당시 텔레비전 뉴스에는 여권에 함께 붙어 있던 한 살짜리 그의 아들 사진까지 공개되었다).

2006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추재엽 구청장의 고문 사실을 처음 공론화했다. 추씨를 계속 추적했던 건가?
난 추재엽이라는 이름도 잊고 있었다. 십 몇 년 전 일 아닌가.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를 받으러 한국에 왔다가 기무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추재엽 아시죠?” 하는 거다. 그래서 “누구요?” 되물었더니 “그 금괴 밀수했던 추재엽요. 그 사람이 지금 구청장 됐습니다” 하더라. 그 얘길 들으니 옛 생각이 나면서 기가 막혔다. 

추재엽씨를 위해 탄원서를 낸 옛 보안사 수사관들은 당신을 ‘동료 간첩을 밀고한 배신자’라고 비난하던데.
 198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 문제를 처음 추궁했는데, 그때도 보안사 논리는 같았다. 내가 동료를 배신한 공으로 보안사에 채용됐다고. 그런데 말이 되나. 난 그들이 강요하는 대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을 뿐이다. 일본 지인들을 고발하거나 한국으로 유인한 일은 전혀 없다.

<보안사> 한국어 번역판(위)은 1988년 나온 즉시 전량 압수됐다. 김병진씨는 조만간 이 책을 재출간할 계획이다.

동포 사회는 당신 말을 믿어주나?
 (잠시 복잡한 표정이었다가 목소리가 격앙되며) 일본으로 돌아간 뒤 솔직히 별별 유언비어가 다 있었다. 일부는 내가 직접 고문을 했다는 말까지 퍼뜨렸다. 북한과 가까운 한통련 같은 조직은 처음에는 그러더라. 보안사를 고발할 거면 왜 자기네와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내가 김일성·김정일이라면 질색을 하니까 나중에는 별별 공갈협박을 다하는 거다. 한쪽은 날 간첩이라 하고, 한쪽은 날 남한 공작원이라 하고. 정말 이중삼중으로 구박받았다. 그것 때문에 일본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술도 엄청 마셨다(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인식은 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북송이라는 이벤트로 재일동포의 노동력을 착취한 김일성 정권이나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한 전두환 정권이나 재일동포를 희생양 삼았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분단된 조국의 최대 희생양이라 할 동포들에게 여전히 일방적 충성을 강요하는 양측 체제의 폭력에 그는 넌더리를 낸다).

25년 전 쓴 책 한 권 때문에 지금도 법정에 불려다니는 신세다. 후회는 없나?
 (보안사)를 안 썼다면 나는 인격적으로 파괴됐을 거다. ‘내가 보안사라는 괴물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그런 자존심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것 같다. 그나마 세월이 흘렀어도 그 책이 있어 여러 사람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지 않나. 거의 다 무죄도 받았고.

그 뒤 보안사에 근무했던 이들을 만난 일이 있나?
 없다. 이번에 법정 증언하면서 1983년 나를 고문했던 수사관이 재판을 참관하는 걸 봤다. 

이야기는 나눴나?
 그냥 보기만 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묻고 싶다. 혹시 반성해본 적 있냐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적 있냐고. 고문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과거 청산이 가능하다. 국가 차원의 사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는 삶이 다 파괴됐는데, 가해자들은 장관에 국회의원 해먹고. 말단은 말단대로 연금 타면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고. 이게 말이 되나? 요즘 고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얘기도 나오던데, 아예 친일 인명사전처럼 고문 전력자 인명사전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그래야 고문에 가담하는 사람이 다시는 안 나타날 것 아닌가.

김은남 선임기자  |  ken@sisain.co.kr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추재엽 양천구청장 법정 구속, 그 이후


이글은 레디앙 2012-11-07일자 기사 '추재엽 양천구청장 법정 구속, 그 이후'를 퍼왔습니다.
[기고] 보안사 추재엽에게 당한 고문피해자들 연이어 나타나

추재엽 양천구청장이 구속 된지 한 달이 다 됐다. 추재엽 구청장은 구속된 뒤에도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하며 ‘곧 보석으로 풀려나 구청장 직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사에 근무한 것은 맞지만 고문에 참여할 지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고문에 가담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그가 무죄를 주장하는 요지이다.
그러나 지난 1일 또 다른 고문피해자 나종인씨가 나타나 ‘추재엽씨가 자신을 고문하는데 가담했다’며 법원에 추 구청장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그의 주장은 신뢰를 잃었다.
또 보석으로 구청장 직무에 복귀하려는 시도도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추 구청장은 말을 여러 차례 바꿨다. 별건의 1심 재판에서는 고문 현장에 있었지만 고문한 적이 없다고 했고, 2심 재판에서는 고문 현장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 고문피해자인 유지길씨에게 사람을 보내 무마를 시도했고 또 다른 고문피해자인 나종인씨가 탄원서를 제출하자 가족을 통해 나종인씨 부인에게 전화를 하고 예고도 없이 집 근처에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또 추 구청장의 가족은 주변 사람에게 ‘추 구청장이 대선 국면에서 희생양이 됐다’고 말하며 억울해 했다고 한다.
또 다른 고문피해자인 나종인씨는 1984년 10월초, 출근길에 보안사(국군보안사령부, 국군기무사령부)에 연행됐다. 그해 12월말에 훈방조치 됐으나 85년 4월 구속 기소돼 반공법 위반 혐의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97년, 12년만에 석방됐다.

또 다른 고문피해자가 추재엽 엄벌 탄원서를 제출하는 장면(사진=민동원)

그는 84년 10월초에 보안사에 연행돼서 12월말 훈방될 때까지 70여일간 온갖 고문을 당했는데, 혹한 속에 운동장 기둥에 묶여서 수사관 전원이 집단 구타하는 고문을 받다가 심장이 파열되기도 했다. 그때 의식을 잃어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신장 투척 치료를 받아 목숨을 구했다. 이때 고문가해자 가운데 한명이 추재엽 구청장이다.
나종인씨의 부인도 보안사에서 잠 안재우기 고문을 받았는데 고문가해자 가운데 한명이 추재엽이었다. 그후 나종인씨의 부인은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활동을 하면서 그 단체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부인이 민가협 활동을 하면서 각 정당 대표 면담을 추진했는데, 신민주공화당에 찾아가 김종필 총재 면담을 요청했다. 추재엽 구청장도 당시에 신민주공화당에서 당직을 맡아 활동을 했었다. 그때 우연히 추재엽 구청장과 만나게 된다. 추재엽 구청장이 주선하여 민가협과 김종필 총재의 면담이 성사됐고, 그 후로 추재엽 구청장은 나종인씨 부인에게 가끔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고, 2002년 큰 아들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나종인 선생은 고문을 당하면서 검은 피를 쏟았다고 한다. 추재엽 구청장에게 안부 전화가 왔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 검은 피가 솓구치는 것 같았지만,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추재엽 구청장이 법정 구속 되고나서 “가혹하다”느니, “무죄”라느니 라는 하는 말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법부가 바른 판단을 내리고 추재엽 구청장이 고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도록 하기 위해 추재엽 구청장에게 고문당했던 과거를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그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나서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체념하고 살아 왔는데, 이렇게 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나종인씨가 서울고등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날에 같은 곳에서는 고등법원이 추재엽 구청장의 전 비서실장 ㅎ씨에 대해 알선 수재 혐의로 지방법원이 선고한 형량을 그대로 유지해 징역 2년6월, 추징금 3,300만원을 선고했다. ㅎ씨는 6급 공무원을 5급으로 승진 시켜 주겠다면서 3,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2월 구속됐었다. 구청장과 구청장 전 비서실장이 구속된 양천구는 파행 운영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추재엽 구청장은 항소심 재판을 위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증언을 해줄 보안사 동료 수사관들을 접촉하고 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동료 수사관 가운데 고병천씨가 1심 재판에 나와 증언을 하기도 했으나 고병천씨도 위증 혐의로 고소를 당한 상태다. 고병천씨 등 보안사 수사관들은 재일동포 윤정헌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고문을 했다. 윤정헌씨는 재심을 청구해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이 재판에 고병천씨가 증인으로 나와 고문한 사실이 없다고 위증 했다는 것이다.
고문피해자 윤정헌씨는 지난달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병천씨를 고소했다. 윤정헌씨는 고소장 제출에 앞서 “추재엽 양천구청장이 법정 구속됐다는 말에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모르겠다”며 “고병천 같은 사람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추재엽 구청장이 법정 구속된 후 과거 청산을 위한 고문피해자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80년대에 고문을 당한 후 보안사에서 통역관으로 강제 근무했던 김병진씨가 보안사에 근무 하면서 목격했던 내용을 담은 책 (보안사)증보판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보안사)는 “한국공작정치의 단층”이라는 제목으로 1987년 8월, 일본 아사히저널 넌픽션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 1988년 8월, 한국에서 출간했으나 대부분 국군보안사령부가 압수해 갔었다.

민동원 / 진보신당 당원 

2012년 10월 12일 금요일

고문 자행한 과거…3선 구청장의 추락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11일자 기사 '고문 자행한 과거…3선 구청장의 추락'을 퍼왔습니다.

추재엽 양천구청장. 사진/뉴시스

추재엽 양천구청장, 당선무효형
80년대 보안사 수사관 근무
법원, “고문 목격” 증인진술 인정

3선의 현직 구청장인 추재엽(57) 서울 양천구청장이 1980년대 국군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수사관으로 근무하면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고문을 자행하고도 선거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는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김기영)는 11일 추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징역 3월, 위증·무고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2002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처음 양천구청장으로 선출됐던 추씨는 지난해 10월 구청장 재선거에서 당선돼 자신의 세번째 양천구청장직을 수행해 왔다.추씨의 고문 전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 때부터 논란이 됐다. 당시 양천구청장 선거에 출마한 이제학 후보가 경쟁 후보인 추씨에 대해 “보안사 근무 시절(1985년), 재일동포 유지길(70)씨 등을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고문에 가담했다”고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히자, 추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허위사실 유포)로 이 후보를 고소했다. 이때 추씨는 법정에 출석해 “재일교포 유씨를 고문한 적도, 고문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선거에서 당선된 이제학 구청장은 결국 대법원에서 벌금 250만원형을 확정받아 구청장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10월 양천구청장 재선거에 추씨가 다시 출마했다. 그러자 재일동포 김병진(57)씨가 “추씨가 유씨를 고문한 것을 직접 봤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대해 추씨는 “동료 간첩을 밀고한 공으로 처벌을 면했던 자의 허위사실 유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선거구민들에게 발송했다.자신이 보안사의 고문 피해자이기도 했던 재일동포 김씨는 추씨의 과거 법정 증언과 문자메시지 발송 내용이 허위라며 고발했고, 검찰도 추씨를 공직선거법 위반, 위증, 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복잡하게 얽혔던 고문 논란의 실체에 대해 이날 재판부는 “유지길씨와 김병진씨가 당시 (고문)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피고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 (추씨가 유씨를 고문했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고문 등은 중대한 불법행위임에도 피고인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아니하고 범행을 부인하는 점을 종합하면 엄중한 처벌을 함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 원칙을 더는 유지하기 어렵고, 범죄 사실의 내용에 비춰 항소심에서 도망할 우려가 있다”며 추씨를 법정구속했다.선고 뒤 추씨는 “너무 가혹하다”고 항변했지만, 김기영 재판장은 “고문을 했는지는 피고인이 잘 알 것”이라며 “법원은 제출된 증거와 법 원칙에 따라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답했다.보안사에서 전역한 뒤 1991년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추씨는 자유민주연합 대변인실 행정실장, 국회 사무처 정책연구위원 등을 거쳐 2001년 한나라당 부대변인이 됐고, 이어 3선의 구청장으로 변신했다.추 구청장의 과거 고문 행위를 세상에 알리고, 그를 검찰에 고발한 재일동포 김씨는 이날 와 한 통화에서 “고문당한 분과 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드리게 되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연세대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1983년 당국의 조작에 의해 재일한국인 간첩으로 몰려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았다. 보안사는 일본어에 능통한 김씨를 협박해, 그를 기소하지 않는 대신 2년 동안 군무원으로 근무하게 했다.1985년 추씨를 비롯한 보안사 수사관들이 재일동포 유씨를 고문할 때 김씨는 통역을 맡아 고문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김씨는 “수사관들이 유씨의 옷을 모두 벗기고 각목에 매달아 놓고 고문했는데, 당시 추씨가 젖은 수건을 유씨 얼굴에 직접 올려놓고 주전자로 고춧가루 물을 부었다”고 말했다.현재 일본 사카이시에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추씨가 뻔뻔스럽게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 유지길씨는 현재 일본 오카야마시에 살고 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노태우 시절 '보안사 민간인 사찰'보다 심각…'나치' 수준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3-30일자 기사 '노태우 시절 '보안사 민간인 사찰'보다 심각…'나치' 수준'을 퍼왔습니다.
꼬리 밟힌 MB정권 '친위대'의 요인감시, 여론조작 실태

KBS 새노조가 폭로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문건은 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1990년의 윤석양 사건을 연상케한다. 1990년 7월 보안사로 끌려가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윤석양 씨(당시 이병, 24세)는, 그 해 9월 24일 보안사 자료들을 가지고 서빙고분실을 탈출함으로써 노태우 정권의 민간인 사찰을 세상에 공개했다. 

윤석양 씨가 폭로한 자료는, 동향파악 대상자 색인표 1,303매와 컴퓨터 디스켓 30장(447명 분량), 개인 신상자료철 4매(노무현, 이강철, 문동환, 박현채), 서울대 출신 운동권 387명의 신상카드 등이었다. 이를 통해 노태우 정권이 김대중 평민당 총재를 비롯 정계ㆍ종교계ㆍ학계ㆍ노동계 등 각계각층을 사찰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태우 정권 퇴진 요구가 거세게 일었다. 

언론사 기자 및 작가, 일반 시민들까지 전방위적 사찰

노태우 정권이 보안사를 이용했다면, 이명박 정권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사찰팀을 만들어 전방위적인 미행과 감시를 해왔다. 그런데 MB정권에서 자행된 민간인 사찰은, 사실상 군부정권 시절이었던 90년 당시와 비교해봐도 사안의 심각성이 더하다. 

먼저 정보수집의 양과 깊이가 전례없는 수준이다. 에 발표된 2619건의 문서는 다만 '기관원' 1명이 갖고 있던 것으로, 이미 조직적으로 자행된 증거인멸에서 실수로 누락된 자료일 뿐이다. 기관원들은 대상자의 약점을 잡기 위해 내연 관계와 같은 사생활을 파고들었고, 대화를 감청한 흔적까지 엿보인다. 



ⓒ리셋 KBS뉴스 사찰팀은 언론사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것과 함께, KBS, MBC, YTN 등의 간부와 임원들을 교체해 노골적인 여론조작을 시도했다.

현 정권하에서 자행된 사찰은 그 범위에 있어서도 윤석양 사건을 압도한다. 노태우 정권 당시의 사찰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정치권 인사나 재야단체 활동가들에게 집중된 반면, 현 정권의 사찰은 촛불 시위에 참여한 일반 시민과 언론사 기자 및 작가들, 기업인들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또한 한나라당 내부에서 반기를 들거나, 이상득 의원을 비판하는 정치인까지 감시대상에 올려놨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구성이 총리실과 고위경찰, 검찰, 행안부, 국방부, 노동부, 국세청, 금감원, 국토부, 지경부 출신 등 전체 42명(정원 44명)에 달하는 점과, 공개된 자료의 성격에 비춰볼 때 사찰 범위는 말 그대로 '전국가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사찰은 '사찰'로만 끝나지 않았다. 언론사들의 경우 동향을 감시하는 것과 함께, KBS, MBC, YTN 등의 간부와 임원들을 교체해 노골적인 여론조작을 시도했다.

예를 들어 KBS와 관련한 문건은 "KBS의 색깔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한 후 수신료 현실화 등 개혁과제 추진 예정"이라고 돼 있고 YTN 배석규 대표이사에 대해서는 "친노조· 좌편향 경영· 간부진은 해임 또는 보직변경 등 인사 조치"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이 돋보인다"고 돼 있다. 

충격적인 수준의 감시와 여론조작…나치 정권에 버금

당시 직무대행이었던 배석규 씨는 사찰 문건에서 '정식 사장'으로 임명할 것을 건의함에 따라, 한 달 후 정식 사장으로 임명됐다. 탐사와 고발보도를 하는 방송 프로그램들 작가들도 사찰 대상에 올랐다. 

이렇게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할 인물들로 방송국의 간부와 임원진을 교체한 것인데, 관련 문건엔 'BH하명'이라고 선명하게 기록돼 있다. 곧 청와대의 하명에 의해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인물들을 심었다는 것이다. 

경찰을 비롯해 정부기관 및 공기업들도 예외가 아니엇다. 용산참사에 대해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주장한 강희락 경찰청장은 "국정철학의 구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정부 정책에 비판하는 이들은 "효율적 국정운영을 저해"하는 인사로 낙인찍혔다. 노무현 정부 당시 임명된 공기업 간부와 임원들은, 사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물러났다.

과거 윤석양 사건이 '보안사'라는 공안기관에서 이뤄진 국가기관의 기강 문제였다면, 이번 사건은 청와대의 하명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권의 존립근거를 흔들고 있다. 

'감시'와 '여론조작'은 사실 나치 시대의 키워드다. 그런데 MB정권 또한 나치의 비밀경찰 같은 '친위조직'을 만들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KBS, MBC, YTN 등의 공영언론사들을 괴벨스의 '국민계몽선전부'인양 여론조작에 사용해온 것이다. 선거를 통한 심판이 아니라 MB정권을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에 귀 기울여볼 이유다.

문형구 기자munhyungu@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