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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2일 목요일

“보안사와 싸운다는 자존심이 나를 지켰다”


이글은 시사IN 2012-11-21일자 기사 '“보안사와 싸운다는 자존심이 나를 지켰다”'를 퍼왔습니다.
추재엽 양천구청장 고문 혐의에 결정적 증거가 된 저자 김병진씨를 만났다.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보안사에 끌려갔다가 통역사로 일하라고 강요받은 그는 “무슨 짓을 하는지 반드시 기록하겠다”라는 각오를

김병진씨(57)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부채감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대 기자는 서울 양천구에 산다. 이번에 법정 구속된 추재엽씨가 3선 구청장이 되는 것을 지난 10여 년간 지역주민으로서 지켜보았다. 추씨의 고문 전력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나온 것이 2000년대 중반. 그러나 ‘설마’ 했다. 선거 과정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상대 후보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을 보며 역시나, 그저 그런 흑색선전이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지난 10월11일, 서울남부지법은 추씨가 보안사 근무 시절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법정에서 이를 부인한 혐의 등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이 김병진씨가 1987년에 쓴 책 (보안사)였다(한국어판은 1988년 출간). 재일동포 3세로 1980년대 중반 보안사에 근무했던 김씨가 일본으로 탈출한 직후 목숨을 걸고 써내려간 이 책에는 추씨를 비롯해 당시 고문에 가담했던 보안사 수사관 20여 명의 실명이 적시돼 있다.

ⓒ시사IN 조남진 김병진씨(위)는 일본에서도 북한 간첩 혹은 남한 공작원이라는 상반된 모함에 시달렸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에 대한 김병진씨의 진술이 구체적인 데다 “(저술 당시) 피고인(추재엽)에 대해 (김씨가) 나쁜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 신빙성이 있다”라고 판시했다. 김씨의 치열한 기록 정신이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 25년 만의 단죄를 가능케 한 셈이다. 추재엽씨에게 고문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 나종인씨(71)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른 김씨를 11월3일 만났다.  

보안사와 인연을 맺은 과정이 드라마틱하다. 1983년 한국 유학 중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보안사에 처음 끌려갔다던데.
간첩 누명을 쓰고 온갖 고문을 당한 것만도 억울한데 석 달 만에 공소 보류로 풀려나자마자 보안사에서 통역사로 일하라는 강요를 당했다. 차라리 감옥에 보내달라, 항의하고 읍소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집사람과 죽어버릴까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를 두고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살아남기 위해 보안사 일을 받아들였다는 건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나를 불법으로 구금하는 동안 “니 마누라는 윤락녀 만들고 니 자식은 고아원에 보내버리겠다”라고 협박했던 그들이다. 그리고 이런 말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텐데…, 계시랄까. 어느 순간 하늘의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놈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어디 한번 똑똑히 지켜보자. 내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고 말겠다. 뭐 그런 생각, 각오? 그런 게 생기니까 비로소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더라.

메모나 일기를 남길 수도 없었을 것 아닌가. 언제 가택수색을 당할지 모르는데.
2년간 근무하는 동안 있었던 중요한 일들은 모두 머릿속에 담았다. 정확한 날짜까지는 아니어도 대략적인 시기와 정황은 기억할 수 있었다.

책임자뿐 아니라 말단 수사관의 이름까지 책에 밝혔다. 비교적 직급이 낮은 편(6급)이던 추재엽씨도 그로 인해 기록이 남았다. 
고문·간첩 조작에 가담한 가해자는 모두 이름을 밝힌다는 원칙을 갖고 시작했다. 말단이라도 역사적 책임을 비켜갈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나. 피해자들은 가짜 간첩인데도 실명·사진이 다 언론에 실렸는데 말이다(김씨의 경우도 재판이 열리기 전 보안사가 김씨를 간첩이라고 언론에 공표해 피해를 본 일이 있다. 당시 텔레비전 뉴스에는 여권에 함께 붙어 있던 한 살짜리 그의 아들 사진까지 공개되었다).

2006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추재엽 구청장의 고문 사실을 처음 공론화했다. 추씨를 계속 추적했던 건가?
난 추재엽이라는 이름도 잊고 있었다. 십 몇 년 전 일 아닌가. 그런데 2000년대 중반 진화위(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를 받으러 한국에 왔다가 기무사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추재엽 아시죠?” 하는 거다. 그래서 “누구요?” 되물었더니 “그 금괴 밀수했던 추재엽요. 그 사람이 지금 구청장 됐습니다” 하더라. 그 얘길 들으니 옛 생각이 나면서 기가 막혔다. 

추재엽씨를 위해 탄원서를 낸 옛 보안사 수사관들은 당신을 ‘동료 간첩을 밀고한 배신자’라고 비난하던데.
 1988년 국정감사에서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 문제를 처음 추궁했는데, 그때도 보안사 논리는 같았다. 내가 동료를 배신한 공으로 보안사에 채용됐다고. 그런데 말이 되나. 난 그들이 강요하는 대로 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을 뿐이다. 일본 지인들을 고발하거나 한국으로 유인한 일은 전혀 없다.

<보안사> 한국어 번역판(위)은 1988년 나온 즉시 전량 압수됐다. 김병진씨는 조만간 이 책을 재출간할 계획이다.

동포 사회는 당신 말을 믿어주나?
 (잠시 복잡한 표정이었다가 목소리가 격앙되며) 일본으로 돌아간 뒤 솔직히 별별 유언비어가 다 있었다. 일부는 내가 직접 고문을 했다는 말까지 퍼뜨렸다. 북한과 가까운 한통련 같은 조직은 처음에는 그러더라. 보안사를 고발할 거면 왜 자기네와 상의하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내가 김일성·김정일이라면 질색을 하니까 나중에는 별별 공갈협박을 다하는 거다. 한쪽은 날 간첩이라 하고, 한쪽은 날 남한 공작원이라 하고. 정말 이중삼중으로 구박받았다. 그것 때문에 일본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술도 엄청 마셨다(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인식은 에서도 끊임없이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북송이라는 이벤트로 재일동포의 노동력을 착취한 김일성 정권이나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한 전두환 정권이나 재일동포를 희생양 삼았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분단된 조국의 최대 희생양이라 할 동포들에게 여전히 일방적 충성을 강요하는 양측 체제의 폭력에 그는 넌더리를 낸다).

25년 전 쓴 책 한 권 때문에 지금도 법정에 불려다니는 신세다. 후회는 없나?
 (보안사)를 안 썼다면 나는 인격적으로 파괴됐을 거다. ‘내가 보안사라는 괴물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그런 자존심이 없었다면 못 견뎠을 것 같다. 그나마 세월이 흘렀어도 그 책이 있어 여러 사람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지 않나. 거의 다 무죄도 받았고.

그 뒤 보안사에 근무했던 이들을 만난 일이 있나?
 없다. 이번에 법정 증언하면서 1983년 나를 고문했던 수사관이 재판을 참관하는 걸 봤다. 

이야기는 나눴나?
 그냥 보기만 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묻고 싶다. 혹시 반성해본 적 있냐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본 적 있냐고. 고문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과거 청산이 가능하다. 국가 차원의 사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는 삶이 다 파괴됐는데, 가해자들은 장관에 국회의원 해먹고. 말단은 말단대로 연금 타면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고. 이게 말이 되나? 요즘 고문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얘기도 나오던데, 아예 친일 인명사전처럼 고문 전력자 인명사전 같은 걸 만들면 좋겠다. 그래야 고문에 가담하는 사람이 다시는 안 나타날 것 아닌가.

김은남 선임기자  |  ken@sisain.co.kr

2012년 9월 1일 토요일

검찰과 언론의 '망나니 블랙코미디'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31일자 기사 '검찰과 언론의 '망나니 블랙코미디''를 퍼왔습니다.
(박정원의 따스한 눈길) 양경숙 사건의 본질

양경숙 전 '라디오21' 대표 사건과 관련해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기사를 살펴보면, (중앙일보)는 8월29일자 10면에 양씨가 페이스북에 언급한 성씨들을 들어 누구누구를 지칭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지금 이 기사는 인터넷에서는 삭제돼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정정보도를 한다면서 거론되었던 이들의 실명을 들어 그들의 해명을 30일에 실었다. 내용을 보면 거론된 인사들을 취재한 것으로 보인다.
그중에 오늘 들은 얘기를 전하면 다음과 같다. 모 인사에게 대뜸 기자가 전화를 해와 혹시 돈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해당 인사는 양씨를 모르지는 않지만, 사석에서 따로 식사도 못해본 정도에 불과한데 무슨 돈을 받았겠느냐는 정도의 답변을 했다는데, 중앙일보의 정정보도 내용을 보면 양씨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다."라는 식으로 전하고 있다.
특정 언론사가 소설이라 할 정도의 기사를 쓰고 이를 다른 언론사들이 일단 다 인용해 쓴 이후의 작은 정정기사 하나 내는 것이 큰 의미도 없겠지만, 해당 인사들의 해명과 항의를 들어 정정기사라고 쓴다는 게 고작 또다시 실명을 언급했다는 사실에 이르면 헛웃음을 참기 어렵다.
나아가 필자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언론의 행태들로 말미암아 현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신병이 구속된 양씨와 여러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는 결과도 나올 수 있겠다는 점에 생각이 이르면, 검찰과 언론이 짝짜꿍이 될 때 대한민국에서 이들에게 밉보여 온전할 사람은 별로 없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양경숙씨를 잘 아는 사이다. 노사모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오래전부터 필자의 실명이 '라디오21'의 기획본부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을 정도다. 별로 없겠지만, 내가 '라디오21'에 도움을 준 것이 작으나마 있다면, 그보다 더 신세를 많이 진 사람에 속할지도 모른다.
이런 처지의 필자에게 어떤 기자나 검사가 양씨와의 관계를 물으며 추궁을 해왔을 때 위에 언급한 사람만큼 있는 대로 답변을 했는데, 내보낸 기사의 논조가 "나는 전혀 양 씨와 무관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이 뉴스를 접하게 될 양씨의 심정은 어떨까? 내가 양씨라면 없는 사실도 만들어 나를 죽여버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게 사람의 인지상정이니까.
지금 이 사건에서 함께 구속된 세 사람이 양씨와 관련된 법인의 통장에 수십억을 송금했다는 것 이외에,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하나도 없다. 아니 이것도 검찰의 발표가 아니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름하여 빨대의 범죄행위가 백주에 횡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함께 구속된 인사들이 공천 헌금인지 뇌물인지를 주장했다면 그들 또한 제공행위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기본 상식에 속하니, 지금 대검 중수부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이야말로 임명권력이 선출권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잡은 꼴이다. 네 사람의 입을 빌려 대선을 앞둔 중차대한 시기에 대한민국 정치를 들었다 놨다 해도 누구 하나 견제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이 꼬락서니를 보면서도 일개인도 아닌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까지 없애겠다는 어떤 대선 후보의 말에 찬동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국회의원일지라도 언제든지 일단 가두어 입을 막을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하면,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권력은 하다못해 경범죄라도 걸어 이를 쓰게 될 것이 뻔한 이치이다. 어쩌면 제일 먼저 자기 입에 족쇄가 채워질지도 모를 사안을 함부로 찬동하고 나서는 국회의원들이 있다는 것, 바로 이 정도가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자존심이 없으면 그를 뽑은 국민은 뭐가 되는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양경숙씨 사건에서 지금까지 검찰이 단 하나라도 물증을 들어 수사결과를 공식 발표한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온갖 기사가 판을 치고 있다. 이에 놀라 평소에 그와 알던 모르던 대한민국 모든 이는 양경숙이라는 인사와 일면식이 마치 없는 것처럼 하면 그뿐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어떻든 이것이 진실을 밝히는 측면에서의 문제로 국한된다면 아무런 상관은 없다.
그러나 지금 검찰과 우리 언론들이 개인의 신상과 실명은 물론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온 동네에 광고해대는 꼴을 두눈 뜨고 멀쩡히 보면서도, 이것이 그저 진실을 밝히기만 하겠다는 공권력의 선의로만 인식한다는 것은 솔직히 순진함을 넘어 무지가 도를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중수부는 헛방이든 뭐든 일단 칼을 빼들었으니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할 판….

이것이야말로 망나니춤과 다르지 않은데, 필자의 짐작이 맞는다면 아마도 이 망나니는 ‘친노’라 불리는 무형의 정치세력으로 칼을 돌리고 싶을 것임은 물론, 이를 넘어서는 곳까지 치명적 타격을 가하고 싶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흥분해 있을 것이다! 나중에 판결이 뭐로 나오든, 진실이 무엇이든, 목표는 12월19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치는 아직도 국회와 정당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니, 실로 모두의 비극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정치,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의 무능이 부른 블랙코미디 한편을 오롯이 감상해보자! 때론 관객으로, 때론 주연·조연으로.

박정원 편집위원  |  pjw@pressbyple.com

2012년 8월 9일 목요일

'미군 수갑' 사건 입건도 안한 경찰, 미군 조사 기다렸다?


이글은 2012-08-08일자 기사 ''미군 수갑' 사건 입건도 안한 경찰, 미군 조사 기다렸다?'를 퍼왔습니다.

ⓒSBS방송캡쳐 평택에서 미군 수갑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수사는 진도를 나가지 않고 있다. 현재 미 헌병들에 대한 입건조차 못하고 있는 데 검찰과 경찰이 지나치게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평택에서 미군 수갑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수사는 진도를 나가지 않고 있다. 현재 미 헌병들에 대한 입건조차 못하고 있는 데 검찰과 경찰이 지나치게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불법체포죄 적용 검토한다던 경찰, 한달 넘도록 무소식


이번 사건은 지난달 5일 경기 평택시 미 공군부대(K-55) 소속 헌병들이 한국 민간인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부대 방향으로 끌고 가면서 발생했다. 특히 당시 시민들이 촬영했던 동영상이 언론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사건 발생 직후 경찰은 사건 현장을 기록한 주변 CCTV와 시민들 제보 동영상을 통해 미 헌병들이 시민에게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일부 과도한 제압이 있었던 사실을 증거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초동대처 미흡 논란까지 일자 수차례에 걸쳐 엄중하게 수사하고 결과에 다라 사법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이 지나도록 수사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검찰 역시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군 민간인 수갑 사건'과 관련한 언급조차 꺼리고 있다.


'미군 민간인 수갑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 


사건 초기 '불법체포죄 적용'을 검토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는 듯 보였던 수사가 지지부진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지난달 20일 있었던 검찰 인사가 원인으로 꼽힌다. 미군 수갑 사건을 관할하는 수원지검 평택지청장과 담당 부장이 바뀌면서 수사가 지연됐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 인사 때문에 가는 사람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오는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를 하면서 수사지휘가 안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인사가 난지 20여일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수사에 진척이 없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해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관계가 비교적 분명하고 동영상, 목격자 등 증거도 존재하는 사건에서 한 달이 넘도록 입건조차 못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 수사기관의 무능을 드러낼 뿐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 등을 우려해 불법체포죄 적용과 혐의 입증에 지나치게 신중을 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재 미군은 사건발생 직후인 지난달 9일부터 이달 8일까지 한 달 간 일정으로 미군 헌병 사건에 대해 자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미군의 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혐의를 적용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미군이 조사 중인 상황에서 급하게 수사했다가 나중에 뒤집어지면 국제망신"이라며 "실제 기소를 먼저 하더라도 법원에서 증거를 대지 못하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도 "미군에서 어떤 입장을 내놓는 것을 봐가지고 수사를 진행해야지 우리 생각만을 가지고 수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경의 미군 눈치보기, 자국민 보호는 언제?


그러나 이 같은 검.경의 태도는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군측은 '공무 중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미군 헌병에게 기지 밖 한국인들의 영업장소에서 주차관리나 차량관리를 할 권한을 준 적이 없다는 점에서 공무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변 관계자는 "기지 밖에서 사적으로 주차단속을 하고 수갑을 채운 사건에 '불법체포죄를 적용하지 못할 근거가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수사기관은 한달째 사건을 방치하고 있는데, 수사기관이 그 권한을 유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8일로 미군의 자체조사 기간이 끝났지만 여전히 입건 시점과 기소 여부는 불투명하다. 사건을 관할하는 수원지검 평택지청 관계자는 "사건을 수사중인 평택경찰서에서 기록을 넘기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현재로선 수사 지휘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평택경찰서측과는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정혜규 기자 jhk@vop.co.kr

2012년 8월 7일 화요일

"새누리당, 현기환-조기문 같은 기지국 사용 은폐"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2-08-07일자 기사 '"새누리당, 현기환-조기문 같은 기지국 사용 은폐"'를 퍼왔습니다.
3일 최고위에 보고, "친박핵심-당 고위인사, 사건 덮으려 안간힘"

새누리당 지도부가 현기환 전 의원과 3억원 중간 전달자인 조기문 씨가 사건당일인 3월 15일 같은 기지국 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나흘 전에 확인하고도 쉬쉬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확산될 전망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오늘 아침 두 사람(현기환-조기문)이 같은 기지국 내에서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사실 지난 3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은 정황을 지도부가 이미 확인했었다"며 "그럼에도 대다수 지도부 인사들은 이를 그냥 넘겼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최고위에 출석한 현기환 전 의원은 '같은 기지국 내에 있었다 해도 반경 수 킬로미터까지는 같은 기지국으로 분류돼 이런 의혹만으로 내가 조기문씨와 만났다고 확증하지 말라'고 소명했다"며 "당시 지도부에서는 현 전 의원이 먼저 기지국 문제를 꺼내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일단 현 전 의원의 결백이 워낙 단호해서 믿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 전 의원 주장과 달리 같은 기지국내에 있을 경우, 수킬로미터가 아니라 반경 200m 내에 함께 있었다는 의미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또다른 당 관계자도 현 전 의원과 조 씨가 같은 기지국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최고위가 인지했다고 확인했다.

결국 현영희 의원 수행비서였던 제보자 정동근 씨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을 더하는 정황이었지만 당 지도부는 3일 오전 최고위에선 이같은 정황을 모두 무시했다. 그러고선 반나절도 안돼 다시 열린 오후 최고위에서 서둘러 현영희-현기환 두 사람에 대한 자진 탈당 권고를 하는 쪽으로 입장을 180도 바꿨다. 

입장이 바뀐 배경과 관련, 비박4인방의 경선 보이콧 및 황우여 사퇴 요구 성명 발표와 더불어, 일부 지도부 인사들이 공천헌금 사태의 심각성을 강하게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고위는 그러나 현 전 의원과 조 씨의 같은 기지국 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밝히지 않고 쉬쉬해 왔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처음부터 친박 핵심지도부와 당 고위지도부 일부 인사들이 이 사건을 덮으려 안간힘을 썼다"며 "그들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청와대 기획설과 같은 보고를 하는 통에 초기 대응이 엉망진창이 됐다. 이번 사건을 음모론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친박 핵심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김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