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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0일 일요일

"교회가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입지 줄어들다 결국 없어질 것"


이글은 한겨레신문 종교전문 조현기자 블로그 휴심정 자매매체 2013-03-07일자 기사 '"교회가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입지 줄어들다 결국 없어질 것"'을 퍼왔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1988년 천정연 인권소위원회로 활동을 시작한 지 25년, 1993년에 독립적인 단체로 창립한 지 20주년을 맞았다. 3월 7일에 열리는 후원의 밤 행사를 앞두고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천주교인권위의 일원으로 참여해 왔고,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를 만났다. 

날짜 : 2013년 2월 27일
장소 : 법무법인 덕수 김형태 변호사 사무실
대담 : 한상봉 (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 25주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한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 왔는데, 유신정권 이후 1970년대부터 사회보다 앞서 나가는 기운이 교회로 모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힘을 제도화하는데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천주교 사회운동단체들이 열심히 싸우는 동안, 그 과정에서 천주교인권위는 법률적 지원을 하고, 사회운동을 인권운동의 차원으로 더 확장시키는 근거지 역할을 한 것입니다.


- 천주교인권위와 관련해 그동안 특별히 인상이 깊이 남은 사건은 어떤 게 있나요?

천주교인권위가 ‘조작간첩’ 사건들을 오랫동안 다뤄왔고 결실이 있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재일교포 간첩단 사건 등에도 관여해 왔는데, 이와 관련한 판결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한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해서도 천주교인권위가 큰 공을 세웠다고 봅니다. 그 결실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그 후로 군대 내 사망사고도 많이 줄었다고 봅니다.

개별 사건이지만 ‘이도행 씨 사건’도 기억에 남습니다. 1995년에 일어난 사건인데 이도행 씨는 부인과 한 살배기 딸을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996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했어요. 이 사건을 천주교인권위가 맡았는데, 8년 가까운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이때 김수환 추기경님도 도와주셨죠. 이 사건이 사형폐지운동으로 확산됐습니다. 워낙 사회적 파장이 컸고, 유죄와 무죄, 사형과 무죄를 오갔죠. 어떤 판사는 사형 판결을 내리고, 어떤 판사는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사형제도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이도행 씨도 너무 고생 많이 했고 개인적으로 불행하지만, 사형폐지운동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인혁당 사건은 10여 년 전 문정현 신부님을 통해 천주교인권위가 맡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서 인혁당이라면 ‘빨갱이’로 생각했죠. ‘교회’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에 천주교인권위가 맡은 것이지, 교회가 아니었으면 사실 무서워서 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는 갈 곳 없는 분들을 우리 천주교인권위가 보듬어주고, 하소연을 들어주고, 함께 울고, 일 년에 한 번 추모제 열고, 그분들의 소리를 대신 외쳐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임위원으로 활동한 대통령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묻혀 있던 인혁당 사건 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사건의 진상이 빛을 보게 됐죠. 그때부터 재심이 시작됐고, 형사 무죄, 민사 배상까지 받았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한국전쟁 전부터 권위주의정권 시절을 거치며 국가기구의 탄압으로 벌어진 의문사 사건을 해결한 첫 단추였죠. 천주교인권위가 과거사 정리의 첫 단추를 끼웠다고 봅니다.

파키스탄 사형수 2명 문제도 사형폐지운동과 연결됩니다. 파키스탄인 사형수 아미르 자밀과 미안 무하마드 아자즈가 김수환 추기경님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고, 추기경님의 부탁으로 천주교인권위가 문제 해결에 나섰죠. 결국 이들은 무기로 감형됐다가 1999년에 특사로 나와서 본국으로 추방됐습니다.

이후 이주노동자 문제가 천주교인권위로 많이 들어왔어요. 지금은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나 국가기구가 많지만, 그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7년 3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모여 ‘라파엘 클리닉’을 열어 필리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혜화동 가톨릭신학교와 동성고등학교 강당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용산참사도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들 같으면 큰소리 뻥뻥 칠 수 있지만, 만나보니 용산참사 관련자들은 진짜 밑바닥의 아무것도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들이었어요. 저희는 이들의 형량도 줄여주고, 억울한 일도 밝혀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천주교인권위 변호사들이 맡아서 변론에 나섰습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도 나왔지만 진실은 다 밝혀졌지요. 특공대, 경찰들이 과잉진압이라고 자백했고,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다고 대부분이 얘기했어요. 나중에 재심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 천주교인권위 20주년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우선 김승훈 신부님, 하경철 변호사님이 생각납니다. 황인철 변호사님은 벌써 20주기를 맞을 만큼 일찍 돌아가셨고, 원로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천주교인권위 위원장을 맡은 때가 1993년이었는데, 아직 30대였어요.

그런 상황에서 든든한 ‘빽’이 되어주신 분이 김승훈 신부님과 유현석 변호사님입니다. 정치권력이나 교회로부터 천주교인권위를 보호해준 분들이죠. 두 분은 모임만 있으면 거의 빠짐없이 나오셨어요. 그런데 두 분도 너무 빨리 돌아가셨어요. 이돈명 변호사님도 돌아가셨고, 우리가 추모할 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천주교인권위의 ‘빽’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천주교인권위가 추기경님의 법무 참모실 같은 역할을 했죠. 무슨 일이 있어서 부르시면 제가 혜화동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현재 명동 가톨릭회관 뒤편에 있는 천주교인권위 사무실을 얻을 때도 추기경님과 김승훈 신부님, 그 밖의 여러 사람들이 모아주신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했지요. 그전에는 가톨릭회관 3층의 작은 방에 있었는데 회관 측에서 자꾸 나가라는 상황이었어요.


- 천주교인권위가 겪은 어려움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또 아직도 남아 있는 어려움이 있다면?

결국 천주교인권위가 다루는 문제는 ‘정의’와 ‘평화’의 문제인데, 과거에는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평화인지 비교적 분명하게 이분법적으로 가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시대가 바뀌니 그게 만만치 않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많아지고 변화된 상황에서 저희가 꼭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인권단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천주교인권위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주변에서 재정적 지원도 많이 들어왔어요. 후원하는 신부님들도 전국적으로 많았고요. 지금은 인권단체가 워낙 많고 세분화되어 천주교인권위만이 가진 경쟁력이 떨어지고 후원금도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 분야가 세분화되다 보니 ‘통섭’ 기능이 오히려 필요할 수도 있어요. 다른 단체에 비해 천주교인권위가 유리한 점은 천주교회라는 밑바탕이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연대활동의 비중이 커져서 용산, 강정, 쌍용차 문제에서도 천주교인권위가 핵심 역할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위기이자 기회입니다.


- 천주교가 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흔히 천주교는 영성적인 것만을 주로 얘기하고, 영성은 세속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교회 밖에서도 천주교를 그렇게밖에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성과 세속을 그렇게 나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가까이 와 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세속과 영성을 갈라놓으면 교회는 영성을 다루고, 천주교인권위는 세속에서의 인권을 다룬다는 것인가요? 둘을 나누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만약 나누는 것이 교회의 흐름이라면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세상과 교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으면 교회의 입지가 줄어들다가 결국 없어질 것 같아요.


- 1971년에 열린 주교대의원회의(시노드)에서 (세계 안의 정의)라는 문헌을 통해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상을 변혁시키려는 행위에 동참하는 것은 복음의 온전한 구성요소”라고 말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군요. 
앞으로 천주교인권위와 교회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제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폐지소위원회에 들어간 지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천주교인권위 자체는 교회 비공인단체지만, 인권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기구가 교회 안에 없다 보니, 저희 역할이 교회 안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주교회의와 교구별로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서 실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천주교인권위가 나서게 되고, 결국 인권위 활동은 교회의 제도, 비제도를 가르는 경계를 흐리게 만들면서, 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정의평화운동과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 공식기구가 나서기 어려운 일을 천주교인권위가 맡아서 한다고 봐도 좋습니다.


- 제가 보기에, 천주교인권위는 교회 공식기구와 그 바깥의 중간지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중간지대를 확대하는 게 우리 교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주교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제도교회 안에 들어가 활동하는 게 필요합니다. 예전처럼 제도교회의 간섭을 받기 싫다면서 외면하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함께 연대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데 제도권, 비제도권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비교적 보수적인 것은 제도의 속성이므로, 감안하고 일하다보면 서로 배울 게 있을 것입니다.

유현석 변호사님과 이돈명 변호사님은 자제들이 신부님이고, 본인들도 본당에서 사목회장을 오래하시는 등 교회의 일원이기도 했어요. 그분들 이후 세대에는 천주교 활동가들과 제도교회가 분리됐다가, 지금은 관계가 복원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 교회 안에서도 갈라졌던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놓인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천주교인권위가 연 ‘난생처음 후원의 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20년 만에 첫 후원의 자리를 마련했다.

 ‘인권과 평화, 그 달콤한 연대’라는 제목으로 3월 7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명동 라루체에서 열린 20주년 기념 ‘후원의 밤'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첫 후원 행사이자 스무 돌을 맞는 성년식이기도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198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산하의 인권소위원회로 출발, 5년 만인 1993년에 독자적 단체로 창립되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번 후원의 밤 행사를 앞두고 “가난하고 힘이 없어 억압받고 차별받는 이들의 곁에서 권력과 자본에게 쫓겨나고 내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살아온 시간들이었다"면서 "변함없는 후원과 사랑을 거듭 부탁하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 되지 않도록 교회 안에서, 또 교회 밖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흔들림 없이 살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후원의 밤’에서는 인권변호사인 이돈명 변호사를 추모하기 위해 제정한 ‘이돈명 인권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올해 수상자는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로 선정됐으며, 2012년 ‘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 서울본부’에 이은 두 번째 시상이다. 

 이날 행사에는 문정현 신부와 변영주 감독이 함께해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한철 밴드, 가수 이수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노래패 ‘함께 꾸는 꿈’ 등이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또 ‘박데레사-김베드로 기금’으로 제작된 인권입문서 (모든 이들에게 모든 것)을 배포한다.

 천주교인권위원회 후원은 국민은행 004-01-0724-877 , 농협 301-0076-9349-51 예금주: 천주교인권위원회.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정현진 기자  |  regina@catholicnews.co.kr


*이 글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에 실린 것입니다. 

휴심정도그마의 감옥을 박차고 나와 깨달음과 행복을 위한 고무 찬양이 난발하는 곳, 그래서 더욱 알아지고 깊어지고 열리고 사랑하게 되고 행복해지는 곳, 단 1분도 쉬지 못하는 마음이 쉬는 곳, 잠시 뒤면 소란이 다시 몰려올지라도 1분만이라도 온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휴심정 休心井입니다.
이메일 : hanispecial@hani.co.kr       트위터 : hoosimjung

2012년 11월 3일 토요일

MBC 2580 부장, "인혁당 사건 두 개 팩트 존재"


이글은 미디어스 2012-11-02일자 기사 'MBC 2580 부장, "인혁당 사건 두 개 팩트 존재"'를 퍼왔습니다.
민주행동, 2일 심원택 시사제작2부장 규탄 성명내

▲ 심원택 시사제작2부 부장 ⓒMBC노조

심원택 MBC 시사제작2부장이 사내게시판에 '인혁당 사건에 두개의 팩트가 존재한다'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4.9통일평화재단,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등 61개의 단체가 참여한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이하 민주행동)은 “박근혜 후보의 ‘두개의 판결이 존재한다’는 발언을 연상 시킨다”며 심원택 부장을 규탄했다. 민주행동은 2일 성명을 내고 "심원택 부장은 고문 조작이란 사실과 고인들을 매도하고 능멸하는 거짓 주장을 동급으로 비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MBC가 지난 1일 특보에 전제한 심원택 시사제작 2부장 해명글. 심 부장은 "인혁당 사건에 두 가지 팩트가 존재한다"면서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친북활동을 한 것 또한 사실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밝혔다.

심원택 부장은 지난달 31일 MBC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방송된 (시사매거진 2580)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사내게시판에 관련 해명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심 부장은 인혁당 사건에 대해 "고문에 의해 진술된 내용은 증거의 효력이 없어 무죄라 것과 인혁당 관련자들이 당시의 법을 무시하고 친북활동을 한 것 또한 사실이라는 주장 등 두 가지 팩트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방송된 (시사매거진 2580) ‘정치, 극장에 가다’ 꼭지에서 (유신의 추억)에 대한 내용 중 지난 달 23일 열린 국회도서관 시사회 영상, 그 자리에서 인혁당 사건 피해자인 고 우홍선 씨의 부인이 당시 신문광고를 낸 것을 공개하면서 했던 발언과 인터뷰가 제외된 채 방송된다. 처음에는 유족 인터뷰 부분만 제외 됐지만 방송 당일 심 부장은 나머지 부분까지 들어내 버렸다.
심 부장의 글에 대해 민주행동은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이 당시 법을 무시하고 친북활동을 한 것이 사실이란 이야기는 도대체 주장인가 팩트인가"라며 "친북활동을 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고 고문 조작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가해자들의 또 다른 거짓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일부 희생자들이 시국에 관심을 갖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한 게 법을 무시하고 친북활동을 한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지난달 28일 방송된 '시사매거진 2580' 화면 캡쳐

민주행동은 "(심부장의 주장은)오랜 세월 피눈물 속에 고통 받으며 살아온 유족들의 가슴에 또 다시 못박는 것"이라면서 "고문조작이란 사실과 고인들을 매도하는 거짓 주장이 동급으로 대비되는 팩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공중파 방송 시사프로그램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불상사"라고 주장했다.
민주행동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잣대로 뉴스를 농단해 방송을 망가뜨리고 있다"면서 "김재철 사장과 심원택 부장을 비롯해 MBC를 농단하고 있는 책임자들 사죄하고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승욱 기자  |  sigle0522@mediaus.co.kr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박근혜 대선 출마로 때 아닌 현대사 재조명?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26일자 기사 '박근혜 대선 출마로 때 아닌 현대사 재조명?'을 퍼왔습니다.
5·16쿠데타·유신독재·장준하·인혁당·정수장학회까지 “젊은층 이해도 높일 것”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씨가 지난 8월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언론계를 비롯해 한국사회가 때 아닌 현대사 재조명에 나서고 있다. 유신체제나 정수장학회 문제를 잘 몰랐던 시민들도 조금만 언론에 관심을 가지면 사실관계를 쉽게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한겨레·경향 등 진보언론을 비롯한 언론 대부분은 한국현대사를 재조명하며 박정희시대에 대한 재평가, 나아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박 후보로 인해 등장한 ‘과거사 인식’ 논란은 크게 △장준하 의문사 △정수장학회 장물 논란 △인혁당 사건 △유신 독재 △부마 항쟁 △박정희 친일 등이다. 주로 박 후보의 발언을 통해 역사인식을 확인하고 이를 분석하면 박 후보 측의 해명이 나오는 식이다.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한 박근혜씨의 모습. ⓒ뉴스타파 화면 캡처

박 후보의 역사인식 문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 역시 무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중동은 애써 논란을 무시하거나 박 후보 입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해 최필립 이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박 후보에게 장학회 사회 환원을 촉구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과거는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뉴스타파는 1989년 당시 ‘박경재의 시사토론’에 출연한 박근혜 인터뷰를 공개하며 “박근혜의 역사는 거꾸로 흐른다”고 보도했다. 한겨레21이 지난 15일 발행한 표지기사 제목은 ‘너희가 유신을 아느냐’였다.
시사IN은 265호에서 박근혜 후보와 비슷한 길을 걸은 페루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를 조명했다. 게이코는 퍼스트레이디로 정계에 입문한 뒤 아버지의 지지자를 중심으로 정치세력을 키웠다. 시사IN은 “게이코는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아버지를 독재자로 규정하며 과오를 인정했고 패했다”고 전했다.
영화계도 유신독재를 재조명하고 있다. 조만간 ‘유신의 추억’이란 영화가 개봉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을 다룬 영화 ‘남영동’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대선 시기를 맞아 등장한 이 같은 ‘현대사 복습’은 명암이 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젊은 세대에겐 과거에 대해 잘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긍정적 측면을 짚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30대 시민 대부분은 ‘유신’이란 단어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한 시민은 유신체제를 두고 “김유신 장군 시대”라고 답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연이은 보도로 유신과 독재정권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승수 교수는 “정상적 상황이라면 대선쟁점은 지난 5년 간의 정부를 평가하고 미래를 위한 정책제안이 돼야 하지만 여권 후보가 과거와 현재를 단절하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것이 헝클어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다면 더 이상 박정희 시대는 과거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은 필연적으로 지금 박정희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며 “이는 사회적인 손해”라고 우려했다.
지지율 1위를 기록 중인 박 후보의 역사인식은 언론에게 최대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은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앞으로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펼쳐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판단의 근거가 된다”며 “만약 과거사에 대한 박 후보 인식이 국민 다수와 다르다면 국민 입장에선 미래를 같이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박 후보와 국민간 역사인식이 벌어질수록 관련 기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역사학자는 “최근 언론보도가 과거를 극복하는 문제로 나아가지 않고 단순히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정략적 차원으로만 진행된다면 이는 분명한 한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朴의 과거사 3종세트 정수장학회로 피날레


이글은 위키프레스 2012-10-22일자 기사 '朴의 과거사 3종세트 정수장학회로 피날레 '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21일 야권의 집중표적이 된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 입장표명을 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김기태씨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람이라는 것. 이는 정수장학회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강탈의 근거를 약화시키는 전략이다. 물론 헛발질은 있었다. 법원에서도 인정한 강탈을 '강탈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사실관계 파악도 못한다는 피판을 듣게 된 것이다. 또한 김기태씨 유족과 야당 등에게는 거센 반발을 샀다. 

다음으로는 정수장학회가 잘 운영되었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후보는 기자회견의 상당 시간을 정수장학회 운영에 문제가 없다는 데 할애했다. 장학금을 준 학생들이 몇 명이고 교과부 등의 감사가 있었지만 문제가 없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온 돈인지, 주로 어떤 학생들에게 많이 지급됐고 그 자신에게는 연봉이 얼마나 지급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참고로 박근혜 후보는 이사장 재직시절 출근도 거의 하지 않고 매년 1-2억원씩 연봉을 받았다.

끝으로 최필립 이사장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았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물러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측근이 20년 가까이 공익재단을 지배해왔던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권은 즉시 이같은 발언을 문제 삼아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문방위원들은 이날 성명서에서 "지난 인혁당 사건과 마찬가지로 법원 판결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자신과 아버지를 감싸고 비호하기에 급급했다"며 "독재자 아버지가 저지른 일은 무조건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져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도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의 판단에 반하는 내용"이라며 "김지태씨가 주식을 강박에 의해 넘겼다는 점을 사법부는 적시했는데도 이를 부인하는 것은 대선후보로서 중대한 인식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국민들도 혼란에 빠졌다. 인혁당 사건 사과 당시에는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유족에게도 사과하더니 '추후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겠다'고 한 것이 이런 것이냐는 반응이다. 또 이런 내용을 발표할 거라면 도대체 왜 기자회견을 열었느냐는 반응도 이어졌다. 

유신과 인혁당 그리고 정수장학회까지,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3종세트는 이렇게 정리됐다. 유신은 '어쩔 수 없었던 일', 인혁당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미안', 정수장학회는 훌륭한 아버지 시대의 '유산'으로 말이다. 박근혜 후보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에 여야의 정치인들은 장단 맞추기 꽤나 힘들게 됐다.

위키데스크 (editor@wikipress.co.kr) 기자 

2012년 9월 22일 토요일

박근혜 “아버지 억울하게 당했는데” 시민 “섬뜩”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22일자 기사 '박근혜 “아버지 억울하게 당했는데” 시민 “섬뜩”'을 퍼왔습니다.
23년 전 동영상 시민 반응 “아직도 생각 안변한 게 더 무서워” 박근혜 답변안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정희 시대를 논했던 23년 전 인터뷰 발언 전문이 공개된 데 대해 많은 시민들은 “놀라고 섬뜩했다” “아직도 생각이 그대로라는 것이 더 무서웠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박 후보가 24일 5ㆍ16쿠데타와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조만간 죽 정리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23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어떤 발언을 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23년 전 MBC와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머리끝까지 차있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뉴스타파는 22일 새벽 인터넷에 올린 방송에서 일주일 전 방송을 통해 인터뷰 전문을 공개한 데 대한 시민들의 반응을 전했다.
젊은 층은 대부분 무섭고 소름끼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학생 김민성(19)씨는 “학교에서 배운 근현대사에는 분명히 5·16이 쿠데타라고 써있는데 5·16은 구국의 혁명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랬다”며 “그 인터뷰를 보고 나니까 도대체 이 사람하고 내가 21세기에 같이 살고 있는 게 맞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회사원 김승록(28)씨는 “좀 놀라웠죠. 섬뜩하기도 했고”라며 “아버지 서거 이후에 10년 이라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아직도 박정희 정권 때의 세뇌교육이라고 해야 하나”라고 놀라워했다.

22일 새벽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타파>

대학생 황윤식(23)씨도 “89년도 인터뷰인데 지금 2012년인데도 그 사람이 하는 박정희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도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게 더 무섭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노·장년층 가운데 제작진이 만난 한 장년층 인사는 강도높게 박정희 시대를 비판했다.
“유신은 하면 안되는 거에요. 절대로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안하고 그 때 물러나야 영웅으로 남는 거에요. 그런데 강행을 해가지고 어마나 국민이 바라지 않는 빗나간 정치를 했어요. 지금 박근혜가 그것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역사를 다시 후퇴시키는 반 시대적인 정치 견해에요.”
이에 반해 대부분의 장·노년층은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특히 제작진이 만난 나머지 할아버지들은 박근혜의 역사인식을 옹호했다. 한 장년층 인사는 “민주당 때 심지어 여자들까지 데모하고 나라가 망할 지경인데 그 때 가만히 놔두었으면 어떻게 됐겠어요”라며 “북한에서 쳐들어와서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22일 새벽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타파>

이 같은 인식은 박 후보의 1989년 발언과 유사하다. 박 후보는 1989년 5월 19일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 ‘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하다’ 편에 출연해 “매일 데모가 의사당 안에서 있고, 또 국회의원들이 의사당 안에서 이불깔고서 극한투쟁을 벌이고 학생들도 연일 데모하고 심지어는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데모하고 그러니까 지금하고 그때하고는 우리나라 형편이 말할 수 없이 달랐다”며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볼 때. 그 때 북한에게 지고 있을 때였거든요. 군사력에서나 경제력에 있어서나 그러면 그 때 공산당이 가만히 있겠어요. 가만 있으면 공산당이 아니죠”라고 말했다.
또한 박 후보의 1989년 인터뷰 전문이 공개된 이후인 지난 17일엔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쓴 글도 뉴스타파에서 소개됐다. 김 위원은 “박정희는 천상에서 인혁당 8인에게 사죄했을 것”, “그들은 막걸리를 마시며 조국을 얘기하고 있을 것”, “박정희 개발독재 탐용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선택, 애국 독재” 등으로 박정희 시대를 평가했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는 박정희 유신을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왜곡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1989년 인터뷰에서 박 후보는 ‘유신으로 자기의 집권 연장에 이용한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박경재 당시 방송진행자의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그게 바로 역사의 왜곡이에요 우리가 일본한테 왜 남의 나라 역사를 왜곡하느냐고 데모도 하고 그랬는데, 일본도 역사왜곡하면 안되지만 우리도 우리 스스로의 역사를 왜곡하면 안돼요. 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정말 욕을 먹고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한 결정을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안보를 이용했다, 그렇게 말을 갖다 붙여서 자라나는 세대도 전부 그렇게 알아듣도록 한다는 것. 이건 얼마나 큰 왜곡이에요.”
이어 박 후보는 아버지에 대해 진한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머리끝까지 차있고 어떻게 평점을 내리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그동안 억울하게 당하셨는데 그걸 어떻게 벗겨 드려야 하나 저한테 그런 걸 물으신다는 것이…”

22일 새벽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타파>

22일 새벽 인터넷에 올라온 <뉴스타파>

이와 관련해 뉴스타파 제작진은 방송 이후 박근혜 대표에 질의서를 발송해 ‘현재의 의견이 변함없는 것인지’, ‘변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간략한 요청을 했지만, 박 후보로부터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앞서 뉴스타파 제작진이 지난 15일 새벽 공개했던 박 후보의 23년 전 인터뷰 전문에서 박 후보는 지난 1989년 5월 19일 방송된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박근혜씨, 아버지를 말하다’ 편에 출연해 “5·16은 구국의 혁명”, “나라가 없어지는 판에 민주주의 중단시켰다는 말이 나오느냐”, “5000년간 가난한 우리 나라의 가난을 몰아낸 것은 (박정희) 지도력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것” 등 황당한 주장을 폈다.
박 후보는 또한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5·16을 비판하고 매도하는 사람들과 가족, 이 땅,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겠느냐며 5·16이 먼저나서 파멸직전에 국가가 구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5·16이 무혈혁명이었다는 점을 들어 박 후보는 아버지가 인명을 가볍게 볼 분이 아니라고도 했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박근혜 후보에게…“사과를 바라지 않겠습니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1일자 기사 '박근혜 후보에게…“사과를 바라지 않겠습니다”'를 퍼왔습니다.

37년 뒤에도 멈출 수 없는 분노. 2012년 9월12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유가족들이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건 관련 발언에 항의하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토요판]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⑭ 인혁당 사건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전봉준이 형장에 끌려갈 때나,
형틀에 묶인 윤봉길이
일본군의 사형집행 직전에나
떠올릴 만한 말입니다

아버지 죄 갚지 않아도 됩니다
사과를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인혁당 유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상처에 소금을 뿌리진 말아요

지난 며칠 세상이 시끄러웠습니다. 시끄러운 세상만큼이나 제 속도 시끄러웠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겨레)에 제가 연재하고 있는 ‘유신과 오늘’에서 박 후보께서 새삼 거론하여 논란의 대상이 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쓸 차례였습니다. 인혁당에 대해서는 전에 (한겨레)에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를 연재할 때 1차사건 2회(2010년 4월19일, 26일치), 2차사건 1회(2009년 8월11일치)를 쓴 바 있기에 또 쓰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후보님의 최근 발언 덕분에 박 후보께 드리는 공개장이라는 형식을 빌려 써볼까 합니다.

다케시타 노보루의 그 말을 기억하십니까?

후보님께서는 5·16과 유신에 대한 시비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하셨지요. 그 한마디 말씀에 참 여러 가지 결이 다른 감정과 생각이 솟아올랐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그 대사는 후보님 같은 생을 살아와 현재의 위치에 서 있는 분이 할 얘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비슷비슷한 말이 많이 있지요. 역사가 알아주리라, 역사가 우리를 기억하리라, 역사에 어떻게 남는가 보자, 후대의 사가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제 직업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인지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요, 이런 말을 하고 사라진 분들, 혹은 이런 말조차 남기지도 못하고 사라진 분들이 서 있던 위치는 후보님이 지금 서 계시는 위치와 사뭇 다릅니다.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말은, 그래도 역사를 한 40년 공부해 온 제가 느끼기엔 이렇습니다. 그것은 형형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전봉준이 형장에 끌려가며 할 만한 말입니다. 몸은 비록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의 형틀에 묶여 있지만 마음만은 조선의 하늘을 날았을 윤봉길 의사가 일본 헌병들의 ‘사격 준비’ 소리를 들으며 떠올렸을 말입니다.(아, 그러고 보니 이번 대통령 선거 날 꼭 80년 전이 윤봉길 의사가 처형당한 날이군요. 그날 전 윤봉길 의사께 투표할 겁니다.) 32년 전 5월27일 새벽 광주에서 거리의 소년, 배달의 기수들이 이제 죽어 자빠지면 돌봐줄 가족도 없다며 목욕하고 속옷 새로 사 입은 뒤 도청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다가오는 계엄군을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했을 생각입니다. 캄캄한 새벽, 아직도 자고 있는 같은 방 재소자들을 행여 깨울까봐 발꿈치 들고 조심조심 감방을 나와 사형당한 인혁당 사형수, 유언마저 조작당한 그 인혁당 사형수가 남겼을 만한 말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역사의 판단이 아니라 우선 자기 시대의 민중, 당대의 민중들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겁니다. 사람들이 물어본 건 5·16과 유신에 대한 후보님의 견해이지 후세 역사의 판단은 아닙니다.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는 말을 듣고 몸서리쳐지게 분노했던 기억도 새삼스럽게 납니다. 1989년 1월 일본 ‘천황’ 히로히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려 63년 동안 천황의 지위에 있었던 그도 결국 세상을 떴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모진 짓을 했기로서니 26㎏의 찌그러진 몸으로 세상을 떠난 89살 노인에게 왜 조금이라도 연민의 정이 없었겠습니까만, 그런 연민의 정을 가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당시 일본 총리 다케시타 노보루가 국회에서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과 관련해서 그 전쟁의 성격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거든요. 동의하십니까? 이런 걸 우리는 망언이라고 부릅니다.잘 믿지 않으실 것 같지만 저는 후보님이 ‘박정희 딸’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해 왔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딸’이라는 이유로 후보님의 능력이나 잠재적인 가능성을 얕잡아 보는 견해에 대해서도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후보님의 아버지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날선 비판을 해온 제가 후보님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박정희 딸’이라서 안 된다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해온 것은 수십만 민중이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이 땅에서 연좌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5·16까지는 몰라도 유신에 대해서는, 적어도 유신의 후반부에 대해서는 후보님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후보님이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였다는 점에서 그런 주장이 무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심정적으로 유신 자체로 후보님을 공격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어머님의 피격 사망이란 비극을 겪으며 황망하게 그 자리에 서게 되신 거니까요. 그리고 딸에게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가 범한 국가폭력과 헌정질서 파괴의 범죄 행위를 비판하라고 다그치는 것도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딸이 공인이 아닌 사인의 위치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따님은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

지금 후보님은 이 나라의 명운을 최소 5년간 짊어질 중요한 자리를 놓고 승패를 겨룰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헌정질서와 헌법에 담겨 있는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는 자리에 도전하는 공인이라면 아버지와 딸이라는 사사로운 관계를 넘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평가를 요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5·16과 유신에 대한 후보님의 견해를 묻는 이유는 딸에게 아버지의 지난날의 행위에 대한 견해를 묻는 사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동일인에 의해 두 차례나 헌정질서가 유린당한 불행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은 나라 지키라고 준 총을 거꾸로 든 군사반란으로, 또 한 번은 “국헌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한 대통령의 신분으로 자행한 친위쿠데타로 인해 대한민국 헌법은 철저히 유린당했습니다. 후보님은 여러 차례 5·16과 유신은 불가피했다고 말해 왔습니다. 5·16이 불가피했다고요? 5·16은 육군 소장 박정희가 집권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뿐입니다. 유신이 불가피했다고요? 유신은 이미 3선을 한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집권을 하기 위해 불가피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후보님 선친의 행적을 옹호해 온 조갑제 기자조차 유신은 느닷없이 선포되었다고 썼습니다. 국헌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5·16은 군 형법상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행위이고 그 “수괴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사형제에 반대하지만, 군 형법은 군사반란의 수괴에 대해서는 무기징역도 없는 사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유신이 범한 죄는 형법상의 내란죄입니다. 당시 형법은 친절하게도 제91조에서 ‘국헌문란의 정의’를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형법은 그 수괴에 대해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후보님께 묻는 것은 1961년 5월16일과 1972년 10월17일 후보님의 선친께서 취한 행동이 위의 규정에 해당하는가 여부입니다. 혼자서 멋대로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짓 저지르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이런 국헌문란 행위를 구국의 결단이라 합리화하는 사람은 다시 이런 범죄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런 사람은 21세기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누구보다도 후보님은 헌법질서와 헌법적 가치를 강조하며 노 대통령을 비난했습니다. 1961년 5월16일과 1972년 10월17일 선친께서 취한 행동을 그 잣대로 재도 불가피한 구국의 결단입니까? 우리는 이중잣대의 문제를 여쭙고 있는 겁니다.따님으로서 후보님은 아마 박정희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잘 아는 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후보님이 박정희 대통령의 모든 것을 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를 포함하여 이 세상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부모가 자식을 속속들이 다 알겠으며 어느 자식이 또 부모의 삶을 온전히 안다고 하겠습니까. 따님은 모르는, 어떤 경우에는 따님만 모르는 아버지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제가 그런 이야기들을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날, 1975년 4월9일 아침.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가족들은 면회를 기대하며 서대문구치소에 갔으나 이미 8명의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가족들이 넋을 잃은 채 오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논란이 되었던 인혁당 사건. 2004년 11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구성되었을 때 저는 그 위원회의 말석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때 7대 우선조사 사건을 선정했는데 하필이면 제가 인혁당 사건에 정수장학회 사건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제가 남들보다 조금 잘 아는 편입니다. 매우 불편하시겠지만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후보님께서도 꼭 아셔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후보님께서는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된 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져왔다며 사과의 뜻을 표하셨습니다. ‘본의 아니게’란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본의 아니게’라뇨? 무지의 소치입니까, 아니면 작심하고 역사를 왜곡하시려는 겁니까? 1975년 2월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에서 승리한 박 대통령은 인혁당 사건과 반공법 위반자를 제외한 구속자를 석방했습니다. 선친께서는 이 조치로 반유신운동이 잠잠해지길 기대했으나 석방자들이 개선장군 대접을 받으며 고문조작을 폭로하자 분노와 초조감에 싸여 보복을 준비했죠. 2월21일 문공부 연두순시에서 선친께서는 석방 인사들이 개선장군 대접을 받는데 중앙정보부, 법무부, 문공부는 뭐하냐며 크게 화를 내셨죠. 인혁당은 간첩이 만든 지하당이고 이들의 내란음모 행위는 긴급조치가 아니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입니다.(그 간첩이라는 게 실은 남파간첩이 아니라 북파간첩이더군요.) 문공부 회의실에서 어찌나 큰 소리로 질책했는지 마이크를 켜지 않았는데도 문밖에서 기자들이 그 소리를 다 들었다고 검열 심하던 그때 신문에도 났습니다. 산업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희생되었다고요? 후보님, 이는 확실한 본의, 아니 확실한 살의였습니다.요즘, 1989년 후보님께서 10년 만에 처음 하신 텔레비전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형욱을 청와대 지하실로 잡아와 선친께서 직접 처형했다는 루머를 부인하면서 후보님은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죠. 인혁당 사건에도 적용되는 말일까요? 후보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셨다면 그것은 인혁당 피해자들이 확정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25살의 박근혜 양이 “그럴 리 없다.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다. 잘못된 소식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반응할 때뿐이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재심 판결까지 난 마당에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후보님이 아는 아버님과 역사적 사실로서의 아버님이 다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0·26 사건의 발단이 된 것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할 경우 발포 문제였습니다. 10·26 사건은 후보님과 가족들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비극이었습니다. 대규모 유혈사태야 반드시 막아야 했던 것이지요. 역사의 판단이 필요하다면 바로 이 대목일 것입니다. 그것이 유혈사태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길은 있었는지….

(뮤직박스)의 그 여자, (여인천하)의 그 대사

후보님께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논쟁 그만두고 민생을 이야기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7월10일 민주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정수장학회 특강의 결론에서 저는 정수장학회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나 민주당의 대선 승리에서 결정타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얘기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 같은 사람이 열심히 할 테니 적당히 도와만 주시고, 당은 전력을 다해 민생 문제부터 해결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를 정말로 바라는 사람이 인혁당 유가족일 수 있다는 생각은 혹시 안 해보셨는지요? 트라우마란 말이 있지요. 부모님을, 그것도 따로따로 총탄에 잃은 후보님께서도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계실 것이기에 역지사지의 심정을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그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그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정말로 벗어나기를 기원하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얼마 전 광주에 트라우마센터를 짓는 일에 조금 관계한 적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센터를 지어야 한다고 악을 썼지만, 30여년 전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오랜 세월 굳어버린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더 악화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지요. 트라우마센터 지으면 뭐하나 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직도 아물지 않고 진물이 흐르는 그 상처에 후보님처럼 소금을 뿌려댄다면 말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치유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상처에 소금 뿌리지는 말아주십시오.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피해자에게 악플만 달아도 범죄가 되는 세상입니다. 아버지가 지은 죄를 대신 갚으라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역사에 대한 범죄만은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 그것이 인혁당 연쇄살인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조차 요구하지 못한 채 살아온 유가족들에 대한 예의입니다.혹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박스)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나치전범으로 몰린 아버지를 위해 우리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는 굳은 믿음으로 사력을 다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 변호사 딸. 그러나 마지막 순간 뮤직박스에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증거 사진에 딸은 자기 손으로 무죄 판결을 받아낸 아버지를 고발하는 편지를 씁니다. 저는 후보님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그런 딸이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과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몇 년 전 (여인천하)의 중전마마 대사를 빌려 딱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그 입 다물라!”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인혁당 사건이 뭔지 알기힘든 KBS MBC 뉴스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14일자 기사 '인혁당 사건이 뭔지 알기힘든 KBS MBC 뉴스'를 퍼왔습니다.
[기자칼럼] 유족 목소리도 외면…“박근혜 민주주의 신념 묻지 않는 공중파 방송”

‘인혁당 사건의 판결은 두 개 이며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발언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KBS MBC 등 공중파 방송에서는 이 발언이 왜 문제인지, 인혁당 사건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방송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11일.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기자들이 묻자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다 감안해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이런 발언을 고문과 조작으로 사형을 언도해 24시간 만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이들의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일일 뿐 아니라 대선 후보로서 민주주의를 파괴한 정치체제를 미화하는 태도라는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KBS와 MBC의 뉴스를 보면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인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KBS는 11일 (뉴스9)에서 “유신 독재정권에 맞선 사람들에게 사형을 집행했으나 사건 이후 33년 만에 무죄가 선고된 인혁당 사건이 대선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인혁당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두가지라고 말했던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오늘도 이 사건은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 11일 밤 방송된 KBS <뉴스9>

KBS는 이후 유신미화행위를 중단하라는 야당 반응과 민생 문제가 시급한데 과거 이야기만 하고 있다, 다들 배가 불렀다는 여권(이한구 원내대표)의 반응을 나열했다.
MBC도 이날 뉴스데스크에서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부시절 두 차례에 걸쳐 인민혁명당 조직을 적발한 사건으로 지난 74년 2차 때엔 8명이 사형 당했으며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이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만 언급했을 뿐 왜 33년이 지난 뒤에야 무죄 판결이 났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2007년 법원이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8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로 선고한 핵심적인 이유는 “당시 진술은 고문, 구타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었다.
유신독재 정권이 조작으로 유죄를 만들어 사형집행을 한 전형적인 국가범죄라는 뜻이다. 박근혜 후보는 고문·구타·협박으로 허위자백을 받아 사형집행한 판결과 이것이 잘못된 판결이라는 재심 판결 두가지가 존재한다는 섬뜩한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한 인식으로 비춰질 수 있는 대선 후보의 발언에 대해 KBS와 MBC는 검증은 커녕 당시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사건의 본질에 대해 전혀 짚으려 하지 않은 채 정치권의 공방으로 핵심을 비껴갔다.

지난 11일 밤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지난 11일 저녁 방송된 SBS <8>

다만, SBS는 이날 (8뉴스) ‘박근혜 역사인식 논란’에서 “유신시대 공안 조작 사건으로 결론 나서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린 거라고 말한 게 정치권의 논란을 불러왔다”며 당시 사건을 영상과 함께 간략히 재구성해 KBS MBC와 차이를 보였다.
SBS는 “지난 1974년 당시 중앙정보부는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인 민청학련의 배후 조종 세력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며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됐고, 재판이 끝난 지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형이 집행됐다”고 전했다. SBS는 “지난 2007년 법원은 재심을 통해 사형당한 8명에게 무죄를 선고해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됐다”고 설명했다.
이튿날인 12일 방송3사는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이 박근혜 후보 발언을 사과했으나 정작 박 후보는 그런 얘기한 적이 없다는 여권 내부의 혼선을 보도했다. 특히 이날 오후엔 사형당한 8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새누리당 앞에서 희생자와 유가족을 욕보였다며 박근혜 후보의 사죄를 요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의 새누리당 항의방문 소식 역시 SBS만이 영상과 약 30초 동안의 리포트로 방송했을 뿐 MBC는 영상만 4~5초 잠깐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 유족들의 비판과 절규에 대해 KBS는 단 한 컷의 영상도 없었다. KBS 뉴스에선 내내 박 후보를 중심으로한 동선만이 방송됐다.
13일엔 박 후보가 “유족들에게 죄송하다는 얘기를 전부터 많이했다, 지금도 연장선상에서 같은 얘기”, “유족이 원하면 찾아뵙겠다”라고 한 말이 방송3사 주요 뉴스가 됐다.

지난 12일 저녁 방송된 SBS <8>

그러나 방송 3사는 박 후보가 유족들에게 위로와 사과를 한다면서도 ‘판결은 두 개이다’,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말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은 점이나, 유족을 만나겠다는 말에 대해 유족들이 박 후보의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입장을 먼저 밝히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뉴스에 담지 않았다.
이를 두고 최경영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실위원(KBS 기자)은 14일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은 대선 후보의 민주주의 가치에 관한 인식과 신념에 대한 의심을 낳은 사건인데도 민주주의 사회의 언론이 당사자에게 따져묻지 않는다”며 “대변인 멘트가 맞네 틀리네 혼선이 있다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박 후보의 인혁당 발언이 문제가 됐으면,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 33년 만에 왜 무죄 판결이 나왔는지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설명해줘야 한다”며 “어떻게 조작됐는지에 대해 방송 뉴스에선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여야 공방만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3일자 기사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를 퍼왔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979년 10월26일 이후 써내려간 일기의 제목은 다. 

특히 그 책 3장의 제목은 ‘굴절된 역사의 진실을 찾아’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흉탄에 보내고 그 한을 삭이며 또박또박 눌러 쓴 기록들이다. 당시 박 후보에겐 ‘역사=아버지’의 상황인 것이다.

박 후보가 역사와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16 쿠데타의 성격을 놓고 ‘정변이냐, 혁명이냐’로 논란을 치른 뒤 이번엔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한 “2개의 판결”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대통령의 딸’을 넘어서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충고가 이어지지만, 극복론 자체는 현재로선 무망해 보인다. 박 후보 과거사 인식의 한계는 무엇이고, 지금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오른쪽)가 1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 워크숍에서 참석자와 일일이 포옹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1) 역사는 집권자 관점에 따라 변한다는 인식

박 후보는 기본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 서술에 부정적 입장이다. 대부분 ‘왜곡’이란 의식이 엿보인다.

박 후보는 2007년 1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사법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고, 일각에서 유신 시절 판사 명단 공개를 추진하자 “(이것은) 나에 대한 정치공세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990년 5월15일 일기에선 “지도자를 국장으로 장사지내고서 매도해온 10년의 세월…. 이래 가지고는 절대로 나라가 바로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역사가 기록이지만, 집권자의 관점과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란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앞서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인혁당 등 유신 시절 공안 사건을 재조사하자 “공권력으로부터 과거사를 규명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지나면 또 과거사가 돼 국민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8월 박 전 대통령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수록 예정자 명단에 오르자 “그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저지른 왜곡에 대해 평가받을 날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자신의 잣대로 편리하게 평가하려는 유혹들이 많지 않겠느냐”(1월 한·일 수교협상 문서 공개 당시 발언)는 것이다.

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이어진 정권에서 과거사 수정 움직임을 야당 대표이던 자신을 향한 정치공세로 치부한 것이다. 결국 집권자의 또 다른 역사 왜곡일 뿐이란 인식이다. 향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과거 정부에서 다 조사하고도 나온 것이 없지 않으냐”고 반박하는 것은 이런 인식이 배경이다.

(2) 유신 집권자의 기억만으로 입력된 사건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실체적 진실에 기초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유신시절 역사가 집권자 의지대로 좌우되는 기억도 작동하고 있을 뿐더러, 그 결과 그때 실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도 ‘유신 집권자’ 관점과 기억 안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이번 인혁당재건위를 둘러싼 논란이다. 박 후보는 ‘2개의 판결’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다음날인 11일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사법부의 재심 무죄 결정을 존중하더라도 ‘다른 증언’도 있는 만큼 인혁당 사건의 성격을 더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후보가 다른 증언으로 제시한 근거들은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아닌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1차 인혁당 사건 역시 1964년 중앙정보부가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혁신계 인사 41명을 체포한 것이다. 이들은 사법부에서 유죄가 인정됐지만, 대부분 징역 1~3년 정도 형에 그쳤다. 박범진 전 의원 등 당시 인혁당에 참여한 인사들이 나중에 전향해 그 실체를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도 2차, 즉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해선 1차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 결과 박 후보가 사실관계를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박 후보의 발언에선 법도 집권자 의지에 따른 장식품쯤으로 여기는 시선이 엿보인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 후 열린 간담회에서 박 후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인혁당에 대해 2개의 판결이 있다는 발언이 나오게 된 뿌리다. 

결국 역사의 두 요소인 사실과 관점 모두 ‘과거’(10·26 이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친박근혜(친박)계 참모들 중에선 “불행한 역사이고 유족들과 얘기하고 끝내면 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안되는지, 할 말이 없다”는 실망감도 감지된다.


(3) 사과·화해 행보하면서도 공감하는 모습 없어

박 후보의 역사인식이 사실과 관점 모두에서 ‘집권자’의 틀에 머물면서 피해 유족들과의 만남이나 화해 등 행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 유가족을 만나러 갈 때도 흔쾌하기보단 떠밀리듯 간 점도 그런 예다. 한 참모는 “박 후보는 (과거사 문제는) 본인이 정리하고 준비가 돼야 말도 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초청토론회에선 “정수장학회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에서 모든 것을 동원해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로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해결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색깔론’까지 등장하곤 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선 “인혁당 사건 희생자 가족 등이 만남을 요청하면 응할 의향이 있나”라는 원희룡 의원 질문에 “제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한 분들인데 또 한 부류의 세력이 있고 이들은 친북의 탈을 쓰고 나라의 전복을 기도한 사람, 이는 분명 잘못된 것 아닌가. 이것이 혼동되면 진심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에는 “간첩이 민주 인사로 둔갑하고 간첩이 군 장성을 조사하는 잘못된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야당이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 같은 인식은 인권·민주주의 등의 가치에 대한 둔감함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으로도 나타났다. 1989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한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라는 것도 능력이 있을 때는 좋은 제도지만 그런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제도만큼 취약한 것이 없다’라고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4)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이 궁극적 목적

박 후보는 10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때 들었던 한 재미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박 후보는 “한 재미작가가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반도가 박 대통령을 만들어간 방법과 또 박 대통령이 한반도를 만들어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나온다고 이렇게 썼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1989년 MBC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답했다. 유신에 대한 인식이 23년 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1989년은 박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은둔하던 박 후보가 ‘세상 밖으로’ 나온 때다. 당시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로 “지난 1년간은 억울하게 자꾸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누명, 왜곡시킬 대로 시켜진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힘쓰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알리고 홍보해 왔다”(11월9일 일기)고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들었다.

그 점에서 이후 정치로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2005년 6월 경북대 특강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어느 시대나 잘한 점, 잘못한 점이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그때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은 내가 잘해서 메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아버지의 못다 한 정치 완성과 명예회복이 여전히 그의 어깨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직 도전에 나선 지금도 그것이 1순위냐는 점이다. 실상 아버지의 명예회복이 목표라면 역사란 집권자의 관점에서 쓰인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집권 후 또 다른 역사 바로쓰기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여전히 ‘유신 극복론’을 제기 중이다. 하지만 좀체 쉽지 않다. 인혁당재건위 발언 논란에 대해 홍일표 대변인이 당 차원에서 사과한 것조차 박 후보는 상의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부인했다.

김광호·이지선 기자 lubof@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