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5.16 쿠데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5.16 쿠데타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김구·안중근이 테러리스트?…뉴라이트 교과서에 '반발

이글은 노컷뉴스 2013-05-31일자 기사 '김구·안중근이 테러리스트?…뉴라이트 교과서에 '반발'을 퍼왔습니다.
독립운동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5.16 쿠데타는 혁명, 5.18 민주화 운동은 항쟁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교학사)가 검정심의 본 심사를 통과했다. 그렇다면 뉴라이트 인사들이 집필한 교과서 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지난 11일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교과서는 일제 강점기 시대를 '그 시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또 독립운동가 '김구'에 대해서는 '항일테러활동을 했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언급하는가 하면 명성황후를 민왕후라고 격하해 부르고 있다. 

이밖에도 네티즌은 표를 올려 뉴라이트 교과서가 독립운동가와 역사적 사건들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표에 따르면 해당 교과서는 5.16 쿠데타를 5.16 혁명으로 표기하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5.18 광주항쟁으로 표기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김좌진, 안중근 등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종군 위안부를 '성매매업자', '자발적인 경제단체'로 보고 있다.

이들이 쓴 교과서가 일선 학교에서 사용하는 검정심의를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들은 8월30일 최종 합격 여부가 발표된다. 역사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뀐 '2007년 교육과정 개정 체제' 이후 최종 합격에 들지 못하고 탈락한 역사교과서는 없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이렇게 한쪽으로 치우쳐진 곳에서 만든 교과서가 통과되다니 이해가 안 간다. 아직 관념이 제대로 형성도 안 된 애들한테 최대한 중립적으로 가르쳐도 가르칠 시간이 없어 문제인 판에", "슬프다. 내가 알던 역사를 모두 잃어버리는 기분.", "가뜩이나 청소년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 문제가 심각한데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등의 댓글을 남기며 반발했다.


CBS노컷뉴스 유원정 인턴기자

2013년 3월 2일 토요일

[사설]‘5·16 쿠데타’ 사실도 외면하는 장관 후보자들


이글은 경향신문 2013-03-01일자 기사 '[사설]‘5·16 쿠데타’ 사실도 외면하는 장관 후보자들'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몇몇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5·16 쿠데타’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고 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 3인이 그들이다. 이 중 황 후보자는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군사정변이라는 데)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유·서 두 후보자는 끝까지 버텼다. 이것이 혹여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일각에서 내놓은 ‘역사의 전쟁’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는 징후는 아닌지 걱정스럽다.

세 후보자의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인식 결여를 놓고 경중을 따지기는 어렵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이는 서 후보자인 것 같다. 교육부 장관은 교과서 개편과 수정의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지난 1월에만 해도 교육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역사를 정권의 입맛대로 고치려는 시도는 간단없이 이어져왔다. 서 후보자가 정치적 중립을 답변 회피 사유로 들었으나 정치적 중립이야말로 교과서가 서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설사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다소 정치공세의 성격을 띠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은 똑같은 정치적 대응에 불과하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를 통해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역설하는 등 ‘박정희 그림자’가 곳곳에 어른거리는 상황이다. 마치 대통령의 심기를 헤아리느라 눈치를 보는 듯한 세 후보를 지켜봐야 하는 마음은 참담하다.

‘5·16 쿠데타’ 논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5·16의 장본인인 박정희 집권 시절부터 전두환·노태우 정부에 이르기까지 군사정권은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5·16을 ‘혁명’으로 미화했으나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이후로는 ‘군사정변’으로 명시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는 박근혜 대선 후보조차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고통 치유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을 정도다. 박 후보는 한때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며 반전을 시도했으나 역풍을 맞았을 뿐이다.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장관 후보자들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무거운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고 믿기 어렵다. 그렇잖아도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꾀할 것이고, 이를 위해 역사 뒤집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받고 있는 처지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역사는 길고 정권은 유한하다. 권력에 눈이 어두워 일시적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왜곡된 역사는 바로잡히기 마련이다. 무소불위의 정권이라도 역사를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소신조차 당당히 못 밝히는 후보자 3인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2013년 3월 1일 금요일

5·16에 입다문 후보자들… 서남수 “답변 못하니 양해 바란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28일자 기사 '5·16에 입다문 후보자들… 서남수 “답변 못하니 양해 바란다”'를 퍼왔습니다.

ㆍ국회 인사청문회… 유정복·황교안도 입장 안 밝혀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들이 5·16쿠데타에 대해 입장 표명을 거부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헌법기관인 국무위원이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를 유린한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것을 회피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국무위원으로서 자격 미달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느냐, 혁명으로 보느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과서개편·수정의 최종 권한을 갖고 있는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서 부적절하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랐지만, 서 후보자가 거듭 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오후 한때 청문회가 정회되기도 했다. 

땀나고… 목마르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답변 도중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있다(왼쪽 사진).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오른쪽 사진). | 정지윤·김영민 기자

민주통합당 이용섭 의원은 서 후보자에게 “정홍원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5·16이 군사정변이라는 것과 유신헌법이 헌법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것에 동의하느냐”고 질문했다. 

서 후보자는 답변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양해를 구하다가 같은 질의가 재차 이어지자 “(답변하지 않는 것을) 국민들에게도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확고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지만 제가 어떻게 정의를 내리느냐에 따라 원하든 원치 않든 편가르기가 된다”며 답변을 피했다.

앞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도 2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에 대한 입장을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국무위원 및 장관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직무 수행에 적절치 않다”며 답을 피했다. 유 후보자는 서면질의에도 답변을 거부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5·16에 대한 서면질의에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가, 28일 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로서의 입장을 말씀드린 것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황 후보자는 ‘역사교과서에 군사정변이라고 돼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교과서 편수자료에 나온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만 했다가 추궁이 이어지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 같은 태도에 대해 헌법기관이자 헌법수호 의무를 지닌 국무위원으로서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에 대한 인식 결여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한 박근혜 대통령을 의식한 것으로 비칠 수 있어 국무위원의 책임과 사적 인연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경찰 등 120만 공무원을 이끌면서 국민안전을 책임지는 부처와, 공평과 정의에 기반해 법질서를 유지하는 부처 수장의 자격과 거리가 멀다.

김진우·정환보 기자 jwkim@kyunghyang.com

교과서 실렸는데도… 5·16을 쿠데타라 못부르는 교육부장관 후보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28일자 기사 '교과서 실렸는데도…  5·16을 쿠데타라 못부르는 교육부장관 후보'를 퍼왔습니다.


서남수 후보 인사청문회서
‘군사정변으로 보나’ 질문에
“직답 못하는 이유 이해해달라”

서남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28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묻는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꺼려 ‘대통령 눈치보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교과서에 실린 사실조차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장관으로서 자질 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서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박혜자 민주통합당 의원이 “5·16을 군사정변으로 보나, 혁명으로 보나”라고 묻자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대해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며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박 의원이 재차 “1961년 5월16일 박정희가 이끄는 군인 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박정희 정부는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였다”는 역사 교과서 내용을 인용하면서 질문했지만, 서 후보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왜 생각이 없겠나. 정치적인 영향력이 교육에 과도해서 어려움이 많았다”며 다시 답을 피했다.박정희 대통령 집권기부터 전두환·노태우 정부까지는 국정 역사 교과서에서 5·16을 ‘혁명’으로 미화했으나,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 이후로는 ‘군사정변’으로 명시하고 있다. 박 의원은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 한다면 교과서에서 서술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답변을 회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치적이다”라고 서 후보자를 질타했다.이성호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교육부 장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헌법의 근본 정신인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이다. 5·16을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군사정변이라고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후보자라면 장관으로서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전날 서면답변에 이어 이날 인사청문회에서도 5·16에 대한 답변을 여러 차례 피했다. 이춘석 민주통합당 의원이 “미국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답변을 거부하면 결격 사유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군사정변이라는 교과서 규정에 동의했다”고 다그쳐도 황 후보자는 답변을 거부했다. 박영선 법제사법위원장이 재차 따져묻자 황 후보자는 “(교과서 내용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며 간접적으로 동의의 뜻을 밝혔다. 앞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도 27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5·16 쿠데타에 대해)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김지훈 윤형중 기자 watchdog@hani.co.kr

2012년 9월 13일 목요일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3일자 기사 '‘역사의 늪’에 빠진 박근혜… 헤어나오려는 의지도 없다'를 퍼왔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1979년 10월26일 이후 써내려간 일기의 제목은 다. 

특히 그 책 3장의 제목은 ‘굴절된 역사의 진실을 찾아’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흉탄에 보내고 그 한을 삭이며 또박또박 눌러 쓴 기록들이다. 당시 박 후보에겐 ‘역사=아버지’의 상황인 것이다.

박 후보가 역사와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16 쿠데타의 성격을 놓고 ‘정변이냐, 혁명이냐’로 논란을 치른 뒤 이번엔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한 “2개의 판결”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대통령의 딸’을 넘어서야 한다는 안팎의 요구·충고가 이어지지만, 극복론 자체는 현재로선 무망해 보인다. 박 후보 과거사 인식의 한계는 무엇이고, 지금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오른쪽)가 12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 워크숍에서 참석자와 일일이 포옹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1) 역사는 집권자 관점에 따라 변한다는 인식

박 후보는 기본적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 서술에 부정적 입장이다. 대부분 ‘왜곡’이란 의식이 엿보인다.

박 후보는 2007년 1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사법부가 무죄 판결을 내리고, 일각에서 유신 시절 판사 명단 공개를 추진하자 “(이것은) 나에 대한 정치공세다.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990년 5월15일 일기에선 “지도자를 국장으로 장사지내고서 매도해온 10년의 세월…. 이래 가지고는 절대로 나라가 바로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역사가 기록이지만, 집권자의 관점과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란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앞서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인혁당 등 유신 시절 공안 사건을 재조사하자 “공권력으로부터 과거사를 규명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지나면 또 과거사가 돼 국민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해 8월 박 전 대통령이 민족문제연구소의 수록 예정자 명단에 오르자 “그 사람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이 저지른 왜곡에 대해 평가받을 날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다루려고 하면 자신의 잣대로 편리하게 평가하려는 유혹들이 많지 않겠느냐”(1월 한·일 수교협상 문서 공개 당시 발언)는 것이다.

민주당·열린우리당으로 이어진 정권에서 과거사 수정 움직임을 야당 대표이던 자신을 향한 정치공세로 치부한 것이다. 결국 집권자의 또 다른 역사 왜곡일 뿐이란 인식이다. 향후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과거 정부에서 다 조사하고도 나온 것이 없지 않으냐”고 반박하는 것은 이런 인식이 배경이다.

(2) 유신 집권자의 기억만으로 입력된 사건들

문제는 이런 관점이 실체적 진실에 기초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유신시절 역사가 집권자 의지대로 좌우되는 기억도 작동하고 있을 뿐더러, 그 결과 그때 실체적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도 ‘유신 집권자’ 관점과 기억 안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단적인 사례가 이번 인혁당재건위를 둘러싼 논란이다. 박 후보는 ‘2개의 판결’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다음날인 11일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사법부의 재심 무죄 결정을 존중하더라도 ‘다른 증언’도 있는 만큼 인혁당 사건의 성격을 더 살펴봐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박 후보가 다른 증언으로 제시한 근거들은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아닌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1차 인혁당 사건 역시 1964년 중앙정보부가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혁신계 인사 41명을 체포한 것이다. 이들은 사법부에서 유죄가 인정됐지만, 대부분 징역 1~3년 정도 형에 그쳤다. 박범진 전 의원 등 당시 인혁당에 참여한 인사들이 나중에 전향해 그 실체를 인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도 2차, 즉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해선 1차와 다르다는 입장이다. 그 결과 박 후보가 사실관계를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박 후보의 발언에선 법도 집권자 의지에 따른 장식품쯤으로 여기는 시선이 엿보인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 후 열린 간담회에서 박 후보는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다. 지난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에 따라 한 것인데, 그러면 법 중 하나가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인혁당에 대해 2개의 판결이 있다는 발언이 나오게 된 뿌리다. 

결국 역사의 두 요소인 사실과 관점 모두 ‘과거’(10·26 이전)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친박근혜(친박)계 참모들 중에선 “불행한 역사이고 유족들과 얘기하고 끝내면 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안되는지, 할 말이 없다”는 실망감도 감지된다.


(3) 사과·화해 행보하면서도 공감하는 모습 없어

박 후보의 역사인식이 사실과 관점 모두에서 ‘집권자’의 틀에 머물면서 피해 유족들과의 만남이나 화해 등 행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공감하는 모습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장준하 선생 유가족을 만나러 갈 때도 흔쾌하기보단 떠밀리듯 간 점도 그런 예다. 한 참모는 “박 후보는 (과거사 문제는) 본인이 정리하고 준비가 돼야 말도 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거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 초청토론회에선 “정수장학회에 관한 (한) 노무현 정부에서 모든 것을 동원해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로 힘을 기울였던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해결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색깔론’까지 등장하곤 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선 “인혁당 사건 희생자 가족 등이 만남을 요청하면 응할 의향이 있나”라는 원희룡 의원 질문에 “제가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는 것은 민주화를 위해 순수하게 헌신한 분들인데 또 한 부류의 세력이 있고 이들은 친북의 탈을 쓰고 나라의 전복을 기도한 사람, 이는 분명 잘못된 것 아닌가. 이것이 혼동되면 진심으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의문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에는 “간첩이 민주 인사로 둔갑하고 간첩이 군 장성을 조사하는 잘못된 일이 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야당이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느냐”고 밝혔다.

이 같은 인식은 인권·민주주의 등의 가치에 대한 둔감함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으로도 나타났다. 1989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한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라는 것도 능력이 있을 때는 좋은 제도지만 그런 능력이 없을 때에는 이 민주제도만큼 취약한 것이 없다’라고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4)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이 궁극적 목적

박 후보는 10일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때 들었던 한 재미작가의 말을 인용했다. 박 후보는 “한 재미작가가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한반도가 박 대통령을 만들어간 방법과 또 박 대통령이 한반도를 만들어간 방법,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해야만 바른 평가가 나온다고 이렇게 썼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1989년 MBC 인터뷰에서도 똑같이 답했다. 유신에 대한 인식이 23년 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1989년은 박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은둔하던 박 후보가 ‘세상 밖으로’ 나온 때다. 당시 세상 밖으로 나온 이유로 “지난 1년간은 억울하게 자꾸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누명, 왜곡시킬 대로 시켜진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데 힘쓰면서 언론 매체를 통해 알리고 홍보해 왔다”(11월9일 일기)고 아버지의 명예회복과 역사 바로세우기를 들었다.

그 점에서 이후 정치로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2005년 6월 경북대 특강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어느 시대나 잘한 점, 잘못한 점이 있지만 정치인으로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그때 부족하고 잘못된 부분은 내가 잘해서 메워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아버지의 못다 한 정치 완성과 명예회복이 여전히 그의 어깨에 가로놓여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직 도전에 나선 지금도 그것이 1순위냐는 점이다. 실상 아버지의 명예회복이 목표라면 역사란 집권자의 관점에서 쓰인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집권 후 또 다른 역사 바로쓰기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모들은 여전히 ‘유신 극복론’을 제기 중이다. 하지만 좀체 쉽지 않다. 인혁당재건위 발언 논란에 대해 홍일표 대변인이 당 차원에서 사과한 것조차 박 후보는 상의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부인했다.

김광호·이지선 기자 lubof@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