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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6일 월요일

‘용역 폭력’의 재구성… SJM 부상 노조원이 겪은 ‘그날’


이글은 경향신문 2012-08-06일자 기사 '‘용역 폭력’의 재구성… SJM 부상 노조원이 겪은 ‘그날’'을 퍼왔습니다.

ㆍ“곤봉 들어 경찰인 줄 알았다”… 소화기 휘두르며 무차별 폭력

지난달 27일 오전 3시30분. 경기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 부품업체 SJM에 다니는 한정록씨(49)는 회사에 남아 있던 노조원들에게 ‘긴급 상황’이라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내일이면 휴가인데 큰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공장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로부터 1시간여 후 공장에 들이닥친 컨택터스 경비용역들의 폭력으로 30여명이 다치면서 노조원들은 모두 공장에서 쫓겨났다. 한씨가 23년간 일한 일터였다. 한씨뿐 아니라 노조원 대부분이 그 새벽의 ‘아비규환’을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지난 3일 안산 인근 병원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난 7명의 부상 노조원들은 당시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 오전 4시 ‘용역’의 등장오전 5시 어둠 찢은 “진격” 소리… 노조원에 곤봉세례

한정록씨는 오전 4시쯤 회사에 도착했다. 전날부터 SJM 노조에는 ‘사측이 직장폐쇄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노조는 임단협이 결렬되자 2주간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었다.

26일 밤부터 오후조 근무자 90%가 공장에 있었다. 한씨처럼 새벽에 연락을 받고 온 조합원까지 포함해 140~150명이었다.

지난달 27일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의 SJM 공장에서 노조원을 폭행했던 용역업체 경비원들이 5일 철조망을 쳐놓고 공장 정문을 지키고 있다. | 홍도은 기자

한씨가 회사 후문에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용역들이 서 있었다. 그는 “헬멧을 쓰고 1m가 넘는 곤봉을 들고 있는 모습이 경찰 같았다”면서 “이 새벽에 경찰들이 왜 와 있나 하며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용역인 줄 모르고 차분하게 그 곁을 지나쳤다. 곧이어 후문에서 노조원과 용역들 사이에 대치 상황이 발생했다. “진격” “들어가면 죽여버린다”는 고함이 들렸다. 한씨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이후 4시20분쯤 정문으로 갔다. 노조원 30명 정도가 있었다. 후문 쪽에서 “빨리빨리 움직여”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 뒤 용역 200여명이 정문으로 몰려왔다.

곤봉을 든 용역들은 본격적인 ‘공격’을 해왔다. 용역들은 노조원들에게 욕설을 하며 소화기를 뿌렸다. 정문 옆 경비실 앞에 서 있던 노조원들이 공장 내 작업장 쪽으로 후퇴했다. 한씨는 “노조원들은 비무장 상태라 정문에서 대치한 지 10~15분 사이에 ‘뚫렸다’ ”고 했다. 그는 “도망가는데 뒤에서 시커먼 무리가 쫓아오니까 정말 무서웠다”고 말했다. 

한씨는 작업장을 10m 앞두고 소화기로 뒤통수를 맞았다. 피가 흘러 윗옷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는 지혈을 하기 위해 노조원들이 있는 2층으로 갔다. 119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천둥소리처럼 ‘쾅쾅쾅쾅’ 무거운 쇳소리를 들었다. 

한씨는 오전 5시10분쯤 후문으로 빠져나와 단원병원으로 향했다. 한씨는 머리와 왼쪽 어깨 등이 찢어져 9바늘을 꿰매고 입원 중이다.

정문 앞 경비실 옥상에 올라가 있던 박동혁씨(34)는 용역들이 곤봉을 들고 까맣게 몰려오자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박씨는 “옥상 높이가 3m가 넘는데 누가 뛰고 싶었겠냐”며 “공포가 극심하다 보니 그런 곳에서 뛰어내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발뒤꿈치가 부러져 깁스를 했다. 진단은 8주가 나왔다.


■ 오전 5시 무차별 폭력의 시작오전 5시20분 쇳덩이 마구 던져 비무장 노조원 부상 속출

엄용헌씨(38)는 세수도 못한 채 오전 5시가 조금 전에 급하게 회사로 왔다. 엄씨는 “정문에서 용역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들어가는 걸 보고 바로 작업장으로 갔다”며 “오전 5시20~30분쯤 사무실 집기로 계단을 막아놓고 20~30분 대치했다”고 말했다.

그는 “용역들이 자동차 부품 중 하나인 ‘벨로즈’ 담아놓은 걸 엎어뜨린 뒤 우리를 향해 막 던졌다”고 했다. 자동차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과 소음을 줄여주는 핵심부품인 벨로즈는 반제품일 경우 끝이 칼날처럼 날카로워 더 위험하다. 

한 차례 공격을 퍼부은 후 용역들은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엄씨는 “밖에 경찰이 있는 걸 확인했고 날이 밝아오니 여기서 끝내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재개된 2차 공격은 더 심해졌다. 엄씨는 “용역들이 소화기를 분사해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다른 부품인 ‘스페셔’를 2층으로 10~20분 동안 던졌다”고 했다. 스페셔는 끝이 화살처럼 뾰족해 화살과 다름없다. 엄씨는 벨로즈와 스페셔가 튕겨나오는 것에 머리를 맞아 다쳤다.

조재호씨(40)는 이날 용역들이 휘두른 곤봉에 온몸을 맞았다. 조씨도 이날 새벽 문자메시지를 받고 회사로 향했다. 정문을 지키다 용역들에게 밀려 작업장으로 물러났다. 작업장은 통로 불만 켜져 있는 상태였다. 조씨는 “앞은 깜깜한데 귀 옆으로 ‘씽’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주워 보니 벨로즈였다”고 말했다. 

그가 2층에서 계단으로 겨우 내려갔을 때 15명이 달라붙어 곤봉으로 때리고 발길질을 했다. 조씨는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다 때렸나 싶어 일어서는 순간 곤봉으로 머리를 맞고 고꾸라졌다.

용역들은 현장 사무실에서 노조원들을 골라가며 때렸다. 엄용헌씨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람들은 안 때리고, 때리지 말라며 막는 사람만 골라 때렸다”면서 “출근 전 진압해야 한다.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용역들에게 나갈 테니 퇴로를 열어달라고 했다. 오전 6시50분쯤 퇴각하는데 곤봉에 또 맞았다”고 말했다.

김익성씨(38)는 “용역들은 짐승을 때려잡듯이 몰이식으로 노조원들을 몰아붙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용역이 휘두른 목봉에 머리를 맞아 7바늘을 꿰맸고 손목에 타박상도 입었다. 김씨는 “용역들의 장비가 다양하고 경찰들 것과 똑같다”며 “마치 사병들 같았다”고 말했다.

■ “경찰은 우리가 맞는 걸 보고도 고개를 돌렸다”오전 5시30분 피 흘리는 노조원 보고도 경찰은 구경만

노조원들은 용역들의 2차 공격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2층에서 유리창을 통해 경찰이 배치돼 있는 것을 봤다. 용역들이 던진 부품 때문에 유리창도 깨진 상태였다. 이호성씨(46)는 “경찰에게 ‘사람이 다쳤다’ ‘살려달라’ ‘119를 불러달라’고 소리쳤지만 경찰은 들은 척도 안 했다”며 “부상자가 피를 흘리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것을 보고도 경찰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동혁씨는 “오전 5시30분쯤 한 조합원이 112에 전화를 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영식씨(46)는 용역들에게 쫓겨 작업장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뒤 공장 울타리를 넘어 도망갔다. 그는 “함께 나간 동료들이 경찰들을 향해 ‘사람이 다쳤으니까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경찰들은 대답도 안 하고 앞의 방패를 땅에 짚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찰 아닌가요. 이번 사태로 경찰의 명예는 곤두박질쳤다”고 말했다.

■ “왜 이런 폭력이 벌어지는지 이해가 안된다”병원에서 “믿기지 않는다… 폭력 사주한 사람 숨어 있다”

조재호씨는 “병원에 온 뒤 머리는 아픈데 마음이 붕 떠 있는 느낌이다. 걱정이 많다”고 했다. 조씨는 6, 7살 딸 둘과 갓 100일이 지난 아들이 있다. 그는 “내가 16년차인데 회사 들어와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다. 회사도 열심히 해서 빵을 키운 뒤 나눠 갖자고 했다. 그런데 빵을 너무 키웠나 보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조씨는 “회사가 돈 벌 때는 우리에게 가족이라고 하고 이제 와서, 그것도 한밤중에…억울하다”고 말했다. 휴가 때 아이들과 약속한 ‘물놀이’는 물거품이 됐다고 했다.

한정록씨는 “노조는 전면파업이 아닌 부분파업을 벌이며 융통성을 보였다”면서 “사측이 그렇게 심하게 공격한 것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한씨는 “우리 회사에서 나한테 이렇게 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한동안은 꿈꾸는 것 같았다. 남의 회사의 일이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노조원들은 “지금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도 거론되는 게 용역이랑 경찰에 대한 얘기”라며 “하지만 폭력을 행사하게끔 사주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와서 불만”이라고 했다. 또 “대체인력이 공급됐다고 하는데 노조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라고 했다. “노조에서는 처음부터 비폭력으로 하자고 했다.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기로 했다. 깃발만 들어도 불법이라고 하는 세상에 어떻게 무기를 드나…”라고 말했다.

김향미·김경학·이혜리 기자 sokhm@kyunghyang.com

2012년 7월 30일 월요일

용역이 던진 쇳덩이에 맞아 치아 함몰…경찰은 구경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30일자 기사 '용역이 던진 쇳덩이에 맞아 치아 함몰…경찰은 구경만'을 퍼왔습니다.

SJM 안산공장 ‘용역폭력’ 어땠나 
진압봉·방패 무장한 200여명
쇠붙이부품·소화기 던지며 진입
입술 찢어지고 치아 함몰…
조합원 11명 골절 등 34명 부상
경찰 “경비업체 허가취소 검토”

지난 27일 새벽,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 에스제이엠(SJM) 안산공장에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이 진입해 무차별 폭력을 휘두를 때(▷ 만도·SJM, 기습 노조탄압…직장폐쇄·용역 수백명 투입 28일치 7면), 이를 지켜본 경찰이 수수방관한 것으로 드러났다.에스제이엠 노조 조합원 및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노동자 150여명이 농성중이던 공장에 진입한 경비업체 컨택터스 직원 200여명은 공장에 있던 날카로운 쇠붙이 부품과 소화기 등을 조합원들에게 던지고 무차별로 진압봉을 휘둘렀다. 이로 인해 적어도 11명이 골절 등 중상을 입는 등 34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현행 경비업법상 경비업체 직원은 경비업무의 범위를 벗어나 위력을 과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돼 있다.이날 새벽 4시30분께 컨택터스 직원들은 “진격, 진격”, “뚫어, 뚫어”라고 고함을 지르며 정문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헬멧과 방패, 길이 1m 정도의 진압봉 등을 갖춘 상태였다. 경비원들이 사용하는 장구에 대해 현행법은 ‘경적·경봉 및 분사기 등을 휴대할 수 있다’고 정했을 뿐, 규격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법령의 허술함을 악용해 민간기업 직원들이 시위 진압에 나서는 경찰 특공대 수준의 무장을 갖춘 것이다.또 노조원들은 “컨택터스 직원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지난 2006년 경찰청장 명의의 ‘경비업체 감독명령’을 위반한 것으로, 경비업 허가 취소 사안에 해당한다. 컨택터스는 사건 하루 전인 26일 경찰에 ‘경찰의 감독 명령을 준수하겠다’는 각서까지 제출한 상태였다.컨택터스 직원들은 헬멧·방패·진압봉 외에도 공장에 있던 각종 물품으로 노조원들을 폭행했다. 소화기를 뿌려 노조원들의 시야를 가렸고, 칼날처럼 날카로운 부품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 조동주(45)씨는 경비직원이 던진 쇳덩이에 인중을 맞아 입술이 찢어지고 치아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어 봉합수술을 받았다. 또 노조원 한정록(49)씨는 경비원이 던진 소화기에 머리를 맞아 크게 다쳤다. “들어가면 저 새끼 죽인다”, “칼로 배때기를 뚫어버려” 등 폭언도 퍼부었다고 노조원들은 증언했다. 이들에게 쫓긴 노조원 가운데는 여성들도 있었다.경찰은 이날 새벽 5시30분께 경찰 기동대 3개 중대를 공장 정문 앞에 배치했지만, 공장 내부에서 벌어진 경비직원들의 불법 폭행을 말리지도, 이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도 않았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은 노조원 정영식(46)씨는 “그대로 있으면 맞아 죽을 것 같아 뛰어내렸는데, 쓰러진 상태에서 경찰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보고만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경찰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빚어진 용역업체 폭력사고에 대한 여론이 들끓자 △용역경비업체의 폭력 행사 사전 차단 △폭력사건 당사자 무조건 체포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확보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서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사태가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 이날 새벽 6시20분께에도 “여성 조합원들을 공장 밖으로 내보내던 경비원들이 이들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 투입 이후에도 용역직원들의 불법 폭력 행사를 수수방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안산 단원경찰서는 29일 경비회사 현장 책임자 5~6명을 불러 폭력을 휘두른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였지만, 컨택터스 직원들은 에스제이엠 안산공장을 점거한 채 ‘경비 업무’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다. 사안의 심각성이 커지자, 경찰은 해당 경비업체에 대해 “허가 취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정국 기자, 안산/김기성 김지훈 기자

2012년 7월 29일 일요일

"소화기 뿌리고 쇳덩어리 던지고...죽음의 공포 느꼈다"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7-28일자 기사 '"소화기 뿌리고 쇳덩어리 던지고...죽음의 공포 느꼈다"'를 퍼왔습니다.
[인터뷰] 안산 SJM 용역 침탈 부상자 한정록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가 부상 당시 입었던 피묻은 옷을 꺼내보이고 있다.

“[긴급] 용역깡패 투입 확실 지회로 긴급히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SJM 지회”

금속노조 SJM 지회 지도위원인 한정록(49)씨가 긴급한 문자를 받은 것은 27일 새벽 4시경 이었다. 공장에 도착한 것은 4시 반. 마치 경찰처럼 헬멧을 쓰고 곤봉과 방패를 든 300명 가량의 용역들은 인원을 나눠 정문과 후문으로 동시에 침탈을 시도하고 있었고 야간 농성조와 지도부 등을 합쳐 80여명에 불과한 비무장 조합원들이 이들의 공장 진입을 막느라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용역들은 공장 침탈이 익숙한 듯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조합원들에겐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그동안 공장을 다니면서 이런 식의 노사 분규를 겪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군대도 아닌 이상 훈련받은 바도 없었다. 

한씨는 당시 상황을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진격! 진격!”

노무사와 용역 책임자의 명령과 함께 용역들은 상대적으로 경계가 허술했던 정문을 통해 무자비한 침탈을 시작했다. 정문 옆 경비실 창문을 깨고 공장 안으로 진입한 용역들은 소화기를 뿌리며 조합원들을 압박했고 희뿌연 연막 사이로 곤봉 세례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에서 맨몸인 조합원들은 맞고 깨지고 터지며 하염없이 밀려났다.

용역들의 소화기에 대항해 조합원들은 락카를 가져다 용역들에게 뿌려대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소화기를 뿌리고 연막에서 허우적대는 조합원들을 곤봉으로 두들겨 패기를 반복하며 조직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용역들에게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뿐이었다.

“칼로 배때지를 쑤셔버린다”, “잡히기만 해봐 내가 죽여줄게” 등 깡패들이나 할 욕설을 하며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들을 피해 조합원들은 살기 위해 공장 안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씨가 부상을 당한 것은 이때. 용역들의 모습에 공황 상태에 빠진 한 조합원을 공장 안으로 들여보내는 순간 ‘퍽’하는 소리와 함께 목줄기를 타고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용역이 한 씨의 뒤통수를 철제 소화기로 내려친 것. 조합원들은 한씨를 공장 2층으로 데려가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용역을 피해 공장 2층 사무실로 피신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다. 사실상 침탈은 마무리됐음에도 용역들은 사무실을 포위한 채 조합원들에게 소화기를 뿌리고 30cm 크기의 쇳덩어리인 제품을 집어던지며 폭력의 향연을 마음껏 즐겼다. 퇴로가 막힌 채 폭력이 계속되자 조합원들 중 몇몇은 사무실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려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상처가 워낙 깊은 탓에 지혈이 되지 않았던 한씨는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꿈 같은 상황이 구급차로 가는 내내 스쳐지나갔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가 당시 새벽 온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민홍기 노무관리이사 부임과 함께 시작된 갈등

한씨는 SJM은 매년 임단협이 별탈없이 합의에 이르는 등 노사관계가 원만했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9월경 주간2교대 근무 합의 당시 조합은 생산량 감소를 우려해 이전보다 생산 물량을 늘려달라는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며 협상을 마무리 짓기도 했다. 조합원들의 불만은 다소 있었지만 노조는 ‘노동자 건강권’이라는 대승적인 목표를 성취했다는데 의의를 뒀다. 

하지만 이미 3년전 민홍기 노무관리이사가 부임하면서 사측의 탄압은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 조합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신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공장 부품 생산을 외주화 하는 등 사측의 도발이 계속됐다. 현 지도부 또한 출범과 동시에 부지회장이 징계를 당하는 등 탄압이 이어졌다. 

한씨는 “조합원들 중 20년가량 근무한 장기 근속자들이 많다보니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한가족 같은 회사를 많이 도와주자는 입장이 많았다”며 “회사에서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노조를 향후 경영의 걸림돌로 생각해 와해시키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는 용역이 휘두른 소화기에 뒤통수를 맞아 6cm 가량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마스크도 없이 석면 작업하며 키운 회사인데

1990년에 입사한 한 씨는 올해로 23년째 건설 기계, LNG 선박 등을 다루는 3공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당시 급여를 때먹곤 하는 공장들이 많았지만 SJM은 꼬박꼬박 급여가 나오는 괜찮은 회사 중 하나였다. 결혼을 하고 어린 자식이 있는 상황에서 SJM은 참으로 고마운 곳이었다. 

고된 노동의 나날이 이어졌다.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오후 5시까지 이어지는 살인적인 철야 근무를 일주일에 두세번 꼴 해야했고,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었다. 심지어 석면 작업을 할 때도 마스크 한 번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러던 중 SJM에 민주노조가 세워졌다. 어용노조가 있던 시절 노조 사무실은 문을 세 개나 열고서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관리자들의 사랑방에 불과했다. 막상 용기를 내 들어가도 주눅이 들어 변변한 하소연도 못하곤 했다. 하지만 노조가 조합원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하자 노동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씨는 회상했다. 

이전까지 억울함이 있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던 노동자들이 노조로 모이기 시작했다. 억울하게 퇴사당하는 사람이 사라지고 노조의 요구에 따라 안전장비 착용이 의무화되고 교육도 실시됐다. 공장의 각종 소음에서 청력을 보호해주는 귀마개 또한 노조의 요구로 이뤄낸 성과다. 

한씨는 노조 지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다. 마지막 지회장 임기를 끝낸 것도 어느덧 7년 전. 처음 조조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노조하려면 이혼부터 해라. 왜 굳이 나서냐”며 뜯어 말리던 아내는 어느덧 조합원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는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23년간 한씨에게 회사는 생계의 터전이자 전부였다. 비록 넘치는 생활은 아니지만 땀흘려 일한 덕에 아내와 가정을 꾸려 대학생인 자녀 둘을 키워낼 수 있었다. SJM 김용호 회장은 사원들이 모이는 행사 때마다 모두가 한가족임을 말했다, 한씨는 그 말이 고마웠고 철썩같이 믿었다.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상부상조하는 선례가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이 27일 새벽이 오기 전까지의 일이다.

ⓒ이승빈 기자 27일 저녁 안산 SJM 용역 침탈 당시 머리 부상을 당해 동안산병원에 입원중인 한정록(49)씨를 찾았다. 한 씨는 배신감을 넘어 망연자실함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이라면서 왜 식구를 때려?

동안산병원으로 후송돼 머리를 9바늘이나 꽤맨 한씨는 말도 못할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말하던 회사가 용역을 동원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변한 상황. 비무장에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 회사에 평생을 바친 그들에게 27일 새벽의 일은 평생에 다시없을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온 한씨의 딸은 자초지종을 듣고 “가족이라면서 왜 식구를 때려?”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한씨가 재차 “한가족처럼 일해 왔지만 우리를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거 같다”고 말했지만 딸은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딸에게 한씨는 평생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 이런 아버지를 회사가 용역을 동원해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한씨의 딸은 차마 울지도 못했다고 한다. 

27일 새벽의 일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한씨도 마찬가지다. 용역이 침탈하고 철제 부품이 날아다니는 아수라장을 23년 만에 처음 경험한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회사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상황이 꿈인지 생시인지 헛갈린다는 한씨는 피를 흘리며 공장안의 아수라장을 지켜보는 내내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우릴 가족이라고 했던 회사가 정말 이렇게 했을까?”

이승빈 기자 cadenza1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