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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5일 금요일

일본의 환율조작, 편드는 강대국들


이글은 시사IN 2013-03-15일자 기사 '일본의 환율조작, 편드는 강대국들'을 퍼왔습니다.
일본의 양적완화로 환율이 내려가면서 한국과 개도국들이 타격을 입는다. 환율조작은 국제사회에서 범죄로 간주되는데도 G20 등 강대국과 국제 기구들은 묵인하고 있다. 그들 모두가 ‘범인’일지도 모른다.

어떤 노인이 수십 군데 자상(刺傷)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다. 용의자는 있다. 피해자에게 사적 원한이 만만치 않은 데다 알리바이도 없는 자다. 더욱이 눈물을 흘리며 “그놈을 죽여버리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그런데 모든 사건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용의자를 감싼다. 심지어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는 자도 있다. 탐정은 회색 뇌세포를 열심히 굴리며 고민에 빠진다. 스포일러 때문에 제목을 밝힐 수는 없으나 아주 유명한 추리소설의 줄거리다.

“일본이 그럴 의도는 아닐 거야”

위의 추리소설과 비슷한 사태가 최근 국제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다. 어떤 나라가 환율조작이라는 ‘범죄’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피해국이 속출한다. 이 나라 최고 지도자는 잔뜩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나라 통화가치를 내리고 말겠어요’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환율조작에 이를 갈던 초강대국의 최고위급 관료, 국제기구,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거대 언론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 “에이~ 설마! 그런 무서운 일이 벌어졌겠어요….”

ⓒAP Photo 2월26일 의회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는 선거 전부터 무제한 양적완화를 공언했다.

국제무대를 배경으로 한 이 추리소설의 용의자는 일본이다. 이 나라 아베 총리는 집권이 유력시되던 지난해 9월부터 ‘무제한 양적완화’를 공언해왔다. 간략히 표현하자면,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무제한으로 엔화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공급이 늘면 가격은 떨어지는 법이다. 이는 통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행이 엔화를 무제한 공급한다는 것은, 이 나라 내외의 경제주체들이 소비나 투자하기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쉬워진다는 소리다. 이에 따라 당연히 ‘엔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실질) 금리는 내려갈 것이고, 다른 나라 돈(달러 등)에 대비한 엔의 가치도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엔화 가치가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일본 제품의 수출 가격이 떨어지면서 이 나라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은 대폭 강화될 것이었다. 그리고 아베 정부가 출범한 이후 실제로 그렇게 됐다.

최근 세계적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추계에 따르면, 엔화는 지난해 9월(아베와 자민당의 집권이 확실시되기 시작한)부터 올해 2월 중순 사이, 달러화에 비해 16%, 유로화에 비해 19%나 떨어졌다. 이에 비해 닛케이평균지수는 지난해 12월 초에서 2월 말 사이 19%나 치솟았다. 엔화가 크게 떨어져 일본 대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가가 크게 오른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엔화 급락의 최대 피해자로 전망되는 한국 수출업계의 경우, 전자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상당수 대기업의 주가가 하향세로 반전되고 있다. 한국의 수출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엔화 급락에서 의심할 수 있는 환율조작은 국제사회에서 일종의 경제 범죄로 간주된다. 물론 변론은 가능하다. 그냥 국내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순수한 의도로 유동성을 풀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통화가치가 내려가는 바람에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하면 된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그렇게 주장한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오히려 최근 놀라운 일은, 이런 변명이 국제사회에 자연스럽게 먹히더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국제사회가 설득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지난 2월15~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는 한창 일본의 환율조작 의혹이 짙어지는 시기에 열린 행사라서, 뭔가 화끈한 경고나 대책이 기대되었다. 멕시코 같은 나라는 일본에 대해 ‘고의로 엔화 가치를 떨어뜨렸다’며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일본 재무장관(부총리)인 아소 다로는 “우리 통화정책의 목표는 환율조작이 아니라 만성적 디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일 뿐이다”라며 하나마나한 변명을 했다. 국내경제 살리기 정책인 양적완화가 우연히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었지만, ‘본의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용의자(예컨대 아소 다로)의 변론을 뒤집을 결정적 증거들이 많다. 엔화 가치 내리기야말로 양적완화의 직접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아베 총리는 수차례에 걸쳐 “엔화가 1달러당 90엔이 되어야 비로소 일본 수출업자들이 이윤을 낼 수 있다” 등 구체적인 절하 규모까지 말한 바 있다. 다른 관료들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범의(犯意)’가 매우 뚜렷하다. 그러나 G20은 일본에 면죄부를 발부했다. 일절 일본을 거론하지 않은 채 다음 같은 성명서를 발표한다. “우리들은 자국 통화 가치를 절하시켜 세계 외환시장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수출 경쟁에서 이길 목적으로 환율을 조작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양적완화는 환율조작이 아니라는 거다. 심지어 G20 재무장관 회의 직전에는 브레이너드 미국 재무부 차관이 자민당 정권의 통화정책을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려는 일본의 노력”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Reuter=Newsis 2월16일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찍은 단체사진. 일본의 환율조작에 대한 경고는 나오지 않았다.

개도국 환율 인하만 용인 못해?

세계 최고의 경제 전문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심지어 일본과 미국의 양적완화를 찬양하기까지 한다. 이 잡지는 ‘가짜 환율전쟁’(phoney currency war, 2월16일자) 제하의 기사에서, “미국과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을 욕하기보다는 칭찬하자”라며 특히 “유로존은 그 나라들을 본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코노미스트)의 논리 역시, 일본은 단지 국내 지출과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사용한 것뿐인데, 그 부산물(by-product)로 엔화가 절하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이나 미국 같은 대국이 ‘공격적 통화정책’(양적완화와 이에 따른 통화가치 절하)으로 국내 경기를 살리면 이 나라들의 수입 역시 늘어나 세계경제 전체에 이롭다고 주장한다. 다만 브라질 같은 나라엔 많이 다른 처방을 내민다. “이런 옵션(양적완화와 통화가치 내리기)은 이머징마켓(신흥시장)에는 유용하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의 논조는, G20을 지배하는 미국·일본·EU의 논리를 축약한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 일본의 엔화 가치 절하로 ‘환율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지만, 그것은 환영(幻影) 즉 ‘가짜 환율전쟁’일 뿐이다. 그리고 숭어가 뛰면 망둥이도 날뛴다고, 브라질이나 한국 같은 나라들까지 이 판에 끼어들 생각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참고로 이 기사 서두에 나온 추리소설의 진범은, 탐정을 제외한 관계자 전원이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2013년 3월 3일 일요일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


이글은 시사IN 2013-02-26일자 기사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를 퍼왔습니다.
국제사회가 제재만으로 북한 핵을 제거할 방도는 없다. 그런 방법은 북의 핵 능력만 증대시켰을 뿐이다. 앞으로는 핵 능력 확산을 방지하는 협상밖에 길이 없다. 모든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북한의 군사적 역량과 위협이 이전과 달리 실전에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한 수준이라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2012년 12월 1만㎞로 추정되는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 실험에서 그들의 주장대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의 비핵화는 웬만한 협상 가지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만큼 북한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얘기다. 물론 북한이 이번 핵실험 성공으로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핵보유국인 것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제재와 압박만으로 북한 핵을 근원적으로 제거할 방도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대북 제재나 압박은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실효성은커녕 북한의 핵 능력만 증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사적 대안론은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의 연해주, 남한의 지정학적 구조 때문에 절대로 불가능하다. 또한 최근 한국에서 일고 있는 핵무장론의 경우 핵 도미노를 막아야 하는 미국 처지에서는 결코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은 더 이상의 핵 능력 증대와 핵무기 기술을 확산하는 걸 방지하는 협상으로 가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다행히 북한의 핵실험은 안보 불안을 조성하거나 공격적인 성격을 띠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적대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생존과 체제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번 핵실험에서 북한은 자신이 미국 본토에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무기체계를 완성했다는 인식을 미국 측이 갖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실험을 통해 미국이 더는 북한과의 안전보장 협상과 교섭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강력한 카드를 보유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북한의 대미 핵전략은 협상을 통한 확산에서 확산을 통한 협상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AP Photo 북한 동창리 발사장에서 발사된 ‘은하 3호’ 로켓.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 역시 사태의 위중함을 모르지 않는다. 북한이 이제 미국 본토에 직접적 위협 국가가 되었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까지 취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은 수정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대화파로 구성되어 있고 더는 북한 핵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절박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볼 때 앞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별개로 북·미 대화는 재정립될 것이다. 

박근혜 ‘응징’ 발언 우려스러워

물론 북한과의 협상은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현재로서는 비핵화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쪽에서는 제재를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에서는 협상을 시도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다시 말해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의 안전보장, 평화협정, 지원, 수교 등을 모두 테이블 위에 올려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비핵화에만 매달리면서 남북 관계만 악화시킨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미 3차 핵실험까지 한 북한에 대해 용납할 수 없으며 응징하겠다고만 하는 박근혜 당선자의 대북 태도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핵보유국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대북 강경책은 자칫하면 이명박 정부 때처럼 대미 의존만 심화시키고 군비만 확대하다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는 남북 간의 자율 공간을 만들어 북한 핵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도적 구실을 하는 대북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이 앞장서서 대북 정책을 강경 기조로 바꾸면 안 된다. 

이창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국제관계학부 석좌교수)

2012년 12월 9일 일요일

국방부, 국제사회 인권 권고 전면 거부


이글은 한겨레신문 디펜스21 2012-11-30일자 기사 '국방부, 국제사회 인권 권고 전면 거부'를 퍼왔습니다.

UN권고에도 꿈쩍않는 국방부의 퇴행적 인권정책
성소수자 차별법 유지, 대체복무제 도입은 무관심 

지난 10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유엔 인권이사회 제2차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UPR, Universal Periodic Review)가 열렸다. 이곳에서 국방부는 유엔으로부터 두 가지 권고 사항을 받았으나 수용을 거부했다. 유엔이 권고한 내용은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도 있는 차별법을 철폐할 것, 대체복무제를 마련할 것 등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안보 상황, 사회구성원 공감대 형성, 건전한 병영문화 등의 이유를 대며 권고를 거부해 국내 인권단체의 비난을 샀다. 문제는 권고를 이행할 의지도 없으면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태도였다. 

▲ 지난 10월 25일 2차 UPR 14세션에서 미국의 성소수자 차별법 폐지 권고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를 밝히는 국방부 관계자

인권의 사각지대. 지난해 기본적인 의료권조차 보장되지 않던 환경의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병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회에 있었다면 목숨을 건졌을 이들 훈련병 중 한 명은 질병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지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꾀병으로 몰려 모멸감까지 느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른 한 명은 무능한 군의관의 오진으로, 또 다른 한 명은 살릴 기회가 수차례 있었음에도 진료를 거부당하는 등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했다. 아픈 몸을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도 없는 군의 의료체계는 심각한 인권 유린으로 지적받아 왔지만 개선된 점은 없다. 

저만치 앞서가는 사회에 비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군의 후진적 인권 실태는 뒤떨어진 의료체계뿐만이 아니다. 이번 유엔 인권이사회 제2차 국가별 인권상황정기검토(UPR)에서 지적받은 한국군의 인권 권고 사항은 두 가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도입과 성적지향을 근거로 형사처벌하는 차별적 형법을 철폐하라는 권고다. 대체복무제의 경우 한 해 600여 명 수준으로 발생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제도로 국방부는 현 정부 들어 단 한 번도 이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 성적지향을 근거로 당사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군형법 92조의 5도 마찬가지다. 동성 간의 성행위를 '계간‘이라는 차별적 단어로 규정한 것도 모자라 형벌로 다스리는 군형법 개정에 대한 군의 입장은 언제나 ‘절대 불가’였다. 

이번 UPR에서도 국방부는 기존의 입장대로 불안한 안보상황과 사회적 합의를 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거부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이것이 핑계일 뿐 진짜 이유는 아예 받아들일 의지조차 없는 국방부의 인권 의식이라고 비판했다.

대체복무제 사회적 합의, 이끌어낼 의지는? 

유엔의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에 대한 국방부 답변이다. 

“대한민국의 특수한 안보현실에서 필요한 병력의 확보를 위한 제도와 정책의 수립은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주권적 행위라 할 것입니다. 입영 및 집총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자 편입은 남북한관계를 포함한 국내외 안보상황의 긍정적 변화와 대체복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안보상황은 변화가 없으며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대체복무제 도입이 제한됨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헌법재판소도 징병제 하의 병역자원 확보, 병역의무의 공평한 부담, 국가안보라는 중요한 공익을 고려하여 합헌 결정을 했습니다. 또한 국회에서 대체복무제도 도입 관련 병역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헌재의 결정, 대법원의 판결,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상황, 사회통합 등의 문제로 인해 폐지됐음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실시간으로 UPR 중계를 보던 국내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국방부의 답변을 듣는 순간 황당함과 함께 부끄러움까지 느꼈다고 한다. 프랑스, 미국, 독일 등 8개국이 지적한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던 국방부가 국민적 합의를 내세운 부분이 가장 황당한 부분이라고 한다. 군인권센터 조규석 간사는 국방부 답변에 대해 “대체복무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로 안보상황이나 국민적 합의를 들었는데 현 정부들어 국민적 합의를 위해 국방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대체복무제는 참여정부 당시 도입 직전까지 갔다가 현 정부들어 무산됐다. 국회에서는 임종인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강한 의지로 병역법 개정을 밀어붙였고 이를 거부하던 국방부도 2007년 9월 18일 대체복무 허용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임 전 의원의 병역법 개정은 무산됐고 대체복무 허용 계획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08년 12월경 전면 백지화됐다. 현재 당시 국방부가 내놓은 사회복무제 형태의 대체복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외려 과거로 후퇴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대체복무제 도입에 관한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임종인 전 의원의 말이다.

“이미 2007년 9월 국방부 스스로 대체복무제 도입 방안을 수립하고 대외적으로 발표까지 해놓고는 이제 와서 저런 답변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무려 8개 국가에서 권고를 내렸다는 것 자체도 창피한 일이지만 저런 식으로 한입으로 두말하다가는 국민들의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 답변에서 자신들이 계획을 수립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뺀 이유는 뭘까. 한 마디로 ‘참여정부 때는 시키니까 억지로 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아무 말 없으니 안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백가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는 “대체복무제는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권고하는 분야”라며 “2008년 열린 1차 UPR 때 슬로베니아가 대체복무제에 대해 질문하자 국방부는 제도를 연구 중이라고 답변했는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연구결과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백 간사는 “하다못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 위한 캠페인이라도 벌였다면 저런 답변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미군은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 Don't Ask Don't Tell)' 정책 폐지를 통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했지만 한국군은 여전히 동성애를 불건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대체복무는 국가안보를 위협할까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인해 위협받을 안보 상황에 대한 우려도 입증되지 않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2004년 8월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병역법 88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병역법 88조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은 국가 존립과 모든 자유의 전제조건인 ‘국가안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익"이며 "이러한 중대 법익이 문제되는 경우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입법적 실험(대체복무제)을 요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30일에도 같은 결정이 있었다. 헌재는 2004년에 이어 또 다시 “양심의 자유가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국가안보라는 대단히 중요한 공익을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입법적 실험을 요구할 수는 없다”며 대체복무제 도입을 막았다. 과연 대체복무제 도입은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까.        

대체복무제를 반대하는 측은 젊은이들이 병역 대신 대체복무를 무더기로 선택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러한 우려에 대한 해답을 이미 내놓은 상태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대체복무기간을 현역복무기간의 1.5배를 넘지 못하도록 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참여정부 당시 나온 안에서는 4년에 가까운 복무기간을 정했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2년도 되지 않는 현역 복무를 제치고 4년에 가까운 대체복무를 위해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줄 정도로 많은 인원이 지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병역거부자들은 연간 대체복무 인원의 한도를 정하는 쿼터제도 환영한다. 이러한 안전장치들을 통해 국가 안보에 위협을 주는 요소들이 제거됐기 때문에 국방부의 답변이 변명에 불과하다는 인권단체의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병역 거부를 이유로 수감된 사람은 총 6,405명이다. 연간 600여명 정도가 집총 대신 감옥을 선택하는 것이다. 10월 28일 발표된 참여연대 논평에 따르면 현재 현역으로 복무하지 않고 공익근무 등 대체복무를 수행하는 청년들은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치만 비교해 봐도 연간 징집자 수를 30만 명 정도로 잡았을 때 병역거부자는 0.2%에 불과하지만 대체복무를 수행 중인 인원은 33%에 이른다. 이 때문에 연간 600여 명을 위한 대체복무를 신설한다고 해서 군사력 운영에 크게 영향을 끼칠 여지도 없다. 공익근무 요원과 병역거부자의 차이는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수행 여부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종인 전 의원도 “수백 명의 대체복무자로 국가안보가 무너진다는 건 근거가 없다”며 “외려 사회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곳에 건강한 청년들이 배치돼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고 주장했다. 군사대국 중국을 마주한 대만은 2000년 현역복무에 비해 1.5배 긴 대체복무제를 도입했지만 안보 상황의 변화는 발생하지 않았다. 외려 복무 부적응 우려가 있는 청년들이 대체복무를 지원해 각종 사고 발생을 방지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한편 군형법 92조 5의 폐지 권고에 대한 답변도 대체복무제와 마찬가지로 변명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답변을 통해 국방부는 스스로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군내 성소수자 인권보호를 촉구했다.

동성애는 불건전하다?
성소수자 차별법 폐지 권고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이다.

“군형법 제 92조의 5는 계간 및 추행 행위를 처벌하고 있습니다. 이는 동성애를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확립이라는 공익을 위한 규정으로 현 시점에서 군 형법상 추행죄의 폐지 내지 개정은 곤란합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2002년 6월과 2011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동규정은 군의 기강과 전투력 유지를 위한 것이며 군인 상호간의 행위와 병영 내에서의 행위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것임을 고려해 합헌 결정을 하였습니다. 한편 국방부는 부대관리 훈령을 개정하여 동성애자 병사의 차별금지 신상비밀 보장, 아웃팅 제한, 동성애 사유에 의한 강제전역금지, 동성애 식별 활동 금지 규정을 두고 동성애 병사의 인권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에 대한 답변에 이은 성소수자 차별 금지 권고 답변 또한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먼저 국방부는 답변에서 스스로 모순을 범하고 있다. 답변 앞부분 에서는 동성애를 불건전한 것으로 규정하더니 뒤에서는 동성애자 병사의 인권보호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조규석 군인권센터 간사는 국방부 답변에 대해 “일단 동성애를 건전하지 않은 것으로 전제한 답변인데 이를 국제인권회의에서 자랑스레 발표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고 논평했다. 조 간사는 또 “국방부의 인권의식이 인권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을 방증하는 답변”이라고 덧붙였다. 동성애를 건전•불건전으로 판단하는 태도는 동성애자 퍼레이드에서 모병활동을 벌이는 동맹 미군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 

국방부가 주장한 ‘동성애 병사의 인권보호’도 자신 있는 답변과 달리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방부가 2006년 4월 1일 발표한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지침’에서는 ‘동성애자 병영 내 유입, 확산 차단 대책 미비’, ‘인성검사를 통해 동성애 성향 잠재자로 밝혀질 경우 집중관리’, ‘이성애자로 전환 희망 시 적극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국방부가 동성애자 인권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특히 변하지 않는 개인의 성정체성이 ‘전환’될 수 있다고 보는 인식과 성정체성에 불과한 동성애가 ‘유입’되고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는 성소수자에 대한 몰이해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뒤처진 국방부의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동성애자인권연대는 2008년 군 지휘관을 대상으로 만든 지침서를 군에 배포하려 했으나 국방부는 수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방부령 제 556호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명시된 ‘질병 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의 질병•심신장애 평가기준에는 인격장애 및 행태장애의 하나로 성주체성장애와 성적선호장애를 명시하고 있는데 전자는 트랜스젠더를, 후자는 동성애자를 뜻한다. 또한 군인사법 시행규칙 56조의 현역부적합자 기준에도 ‘변태적 성벽자’를 두고 있는데, 지금까지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이 성정체성이 드러나 이 기준에 따라 전역심사대상이 되곤 했다. 이러한 규정들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제쳐둔 채 동성애 병사를 보호하고 있다고 답변한 국방부는 국내 인권단체의 극심한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의 인격장애 및 행태장애 판단기준에서는 성소수자를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성애자와 동등한 기준 적용 필요

국방부가 유엔에서 군내 성소수자 차별금지에 관한 권고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작년 9월 20일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ADT, Don't Ask Don't Tell)' 정책을 폐기해 성소수자의 군 입대를 전면 허용한 미국이 내놓았다. 국내 인권단체들은 두 차례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오랜 시간 국방부와 다퉈왔다. 미국이 군형법 92조의 5에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법 자체에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군형법 92조의 5에는 “계간(鷄姦)이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인권단체들은 남성 간의 성행위를 닭에 비유한 ‘계간’이라는 단어와 이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데 문제를 제기한다. 동성 간의 성행위를 닭들이 하는 짓으로 비하한 것도 모자라 이를 비정상적인 행위로 규정해 형벌로 다스리는 건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라는 것이다. 또한 군형법에 이성애자의 성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조항은 없으면서 동성애자만 처벌하는 조항을 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예로 2010년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의 남녀 장교 한 쌍이 과도한 신체접촉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이들은 몇 달간의 감봉과 정직처분을 받았지만 형법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만약 이들이 동성관계였다면 형법에 따라 징역형을 받았을 것이다. 한 동성애자 예비역은 “군형법 92조 같은 차별법 때문에 동성애를 무조건 성행위와 연관짓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는 권고에 대한 답변에서 계간 표현에 관련된 논쟁은 제외한 채 추행죄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그러나 인권단체에서 추행죄를 형법으로 다루는 데 이견을 내는 사람은 없다. 동성간 성행위도 강제로 이뤄진다면 당연히 형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합의에 의한 행위까지 형법으로 다스리는 게 과하다고 지적할 뿐 병영 내 동성 간 성행위를 전면 인정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이성애자와 동등한 기준을 적용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건전과 불건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국방부가 빠른 시일 안에 개선안을 내 놓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제자리걸음 멈추고 전진해야

이번 UPR에는 국내 53개 시민단체가 관여해 정부의 답변을 모니터했다. 백가윤 참여연대 간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아동 입양에 관한 규정인 아동권리협약 제21조에 대한 유보를 철회하고 인신매매의정서를 순차적으로 비준하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권고 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으로 입후보한 한국 정부가 과연 그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국방부 답변처럼 불리한 논점은 빼고 유리한 사실만을 발표해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태도는 UPR의 본래 취지에도 반한다. 특히 국방부는 이번 2차 UPR을 통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는 인권의식의 현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국방부는 전세계를 상대로 성소수자 차별법을 유지할 의지를 내비쳤고 근거가 부족한 이유로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4년 뒤 열릴 3차 UPR에서도 제자리걸음을 반복할까. 멈춰버린 인권정책에 국격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가진 거라곤 ‘안보의 민주화’에 대한 열정밖에 없던 청년실업자 출신.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경상도의 모 대도시에서 20년을 보냈다. (디펜스21+)에서 젊음과 차(茶)를 담당하고 있다.
이메일 : ppankku@gmai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semper

2012년 7월 6일 금요일

정부 “고래잡이 하겠다” 국제사회에 통보


이글은 경향신문 2012-07-06일자 기사 '정부 “고래잡이 하겠다” 국제사회에 통보'를 퍼왔습니다.

ㆍ농식품부 “내년부터 가능”… 환경연합 “보호정책 역행”

정부가 26년간 금지했던 고래잡이(포경·捕鯨)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는 고래를 보호해야 할 정부의 정책 방향이 거꾸로 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5일 파나마 파나마시티에서 열린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한국은 이른 시일 내에 고래잡이 계획을 과학 소위원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과학조사를 목적으로 고래잡이를 재개하며, 한국 수역 내에서만 잡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래잡이의 구체적 일정, 지역, 포획 예정량 등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과학조사를 명분으로 고래를 잡고있는 일본의 사례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과학조사를 위해 고래잡이를 할 수 있는 권한은 IWC 회원국 찬반투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에 있다”면서 “올해 말 과학위에 (포경) 계획서를 제출하면 내년쯤 포경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1986년부터 멸종 위기에 놓인 고래 12종에 대한 상업적 고래잡이 활동을 일시 중단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고 있다. 한국은 12종뿐만 아니라 모든 고래잡이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다른 물고기를 잡으려고 친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 이른바 혼획된 고래에 대해서는 고의성이 있었는지를 가려 판매·유통을 허용하고 있다. 

IWC 회의에 참석 중인 강준석 농식품부 원양협력관은 “한국의 고래고기 소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포경을 금지한 지난 26년간 전통적으로 고래고기를 식용으로 써온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불법포경과 혼획이 기승을 부리는 나라다. 고래고기를 사고파는 시장이 실질적으로 형성돼 있다”면서 “과학조사 포경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고래를 잡게 해달라는 요구와 같다”고 비난했다.

안호기 기자 haho0@kyunghyang.com

2012년 3월 19일 월요일

“고리원전 인근 300만명, 사고 나면 속수무책”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3-19일자 기사 ' “고리원전 인근 300만명, 사고 나면 속수무책”'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주민 뒷전·정치인엔 굽실… “정신 못 차린 원전”

고리원전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1년간 완벽하게 안전성을 확보했다는 정부 발표 자체가 ‘거짓’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고리원전 사고 땐 인근주민 317만 명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고리원전 사고 은폐 경위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검찰 등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 반발에도 로켓발사를 강행키로 했다. 북한은 지구관측위성(광명성 3호)을 쏘아 올리기 위한 로켓이라며 발사시기와 추진체 낙하지점 등을 사전에 미국과 주변국들에게 알렸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의 로켓실험이 대량살상무기로 쓰일 수 있다며 발사중단을 요구했다.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막고 자료를 폐기해 역대 최고 액수인 4억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됐다. 삼성은 조사를 나온 공정위 조사관들을 정문에서 막아 시간을 지연시키는 사이 사무실 직원들이 서류를 폐기하는 부도덕적인 일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3월19일 전국단위종합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들이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고리원전 사고는 6년차 대리의 실수?
지난달 9일 발생한 고리 원전 1호기 블랙아웃 사고가 협력업체 직원의 실수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선일보 12면 기사에 따르면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은 협력업체인 한빛파워에서 나온 작업자가 1번 계전기를 시험한 뒤 이를 정상상태로 되돌리지 않고 2번 계전기를 시험하면서 일어났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조선일보 3월19일자 12면

고리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 관계자는 “감독자 지시에 따라 작업자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데 순간적으로 실수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이 밝힌 것처럼 이번 사고를 6년차 대리의 실수라고 하고 넘어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일보도 지적했듯이 사고 이후엔 비상 디젤 발전기가 작동됐어야 하지만 발전기는 고장으로 가동되지 않았고 징계를 우려한 간부들의 조직적인 은폐가 뒤따랐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완벽한 대책을 세워 안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한 달 동안이나 사고 사실 자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원전 통제 능력에도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언제든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식경제부・한수원, 안전대책 발표날 바로 사고… “실제 완료된 것 없었다”
지식경제부와 한수원이 지난 9일 일본 원전사고 1주기를 맞아 고리 원전은 ‘원자로 정지 발생시 재가동 절차 강화’ ‘지진 및 해일 대비 안전성 보강’ ‘비상전력 및 냉각수단 확보’ 등을 대부분 완료했거나 추진 중이라고 했지만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민일보 기사에서 고리원전에 근무하는 A씨는 “당시 보고자료는 정부방침에 따라 2015년까지 단계별로 추진할 사항을 나열한 것으로 실제 완료된 것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고는 현장에서의 안전대책을 무시한 채 서류상 안전하다는 보고가 통하는 ‘탁상행정’ 관행이 빚은 인재라는 것이다.
국민일보는 “고리 원전 임직원들이 블랙아웃 사고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은 정부와 한수원이 발표한 안전대책의 대국민 기만성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 한국일보 3월19일자 2면

한국일보는 ‘기자의 눈’ 에서 지역 주민들이 고리 원전을 찾았을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최고책임자 이영일 본부장이 김정훈 의원(새누리당) 등 국회의원 등이 오자 직접 브리핑에 나서 2시간이나 동행했다며 쓴 소리를 했다.
“고리원전 사고 땐 317만 명 무방비”
고리 원전 사고 땐 인근 317만 명이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겨레는 15면 기사에서 일본 원전 사고 이후에도 개선된 부분이 거의 없다며 원전 주변 자치단체들은 주민용 안전장비 확보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안전불감증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원전 반대 단체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일본 정부가 반지름 20km 안에 사는 주민들에게 피난령을 내리고, 21~30km 안 주민들에게는 실내에만 머물도록 한 사실을 들어 비상계획구역을 30km까지 확대할 것을 요구했지만 교육과학기술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현 비상계획구역은 8~10km로 한정돼 있다.


▲ 한겨레 3월19일자 15면

부산시와 전남도, 경북도는 원전 사고시 대피할 수 있는 구호소를 20~213곳을 추가 지정했지만 대부분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은 곳이어서 지진을 동반한 사고가 났을 때 구호소가 되레 더 위험한 실정이다.
지자체들은 국가와 원전사업자로부터 해마다 80억~200억 원씩의 원전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주민용 안전장치 구입에 사용하기를 꺼려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2010년 원전지원금 90억~160억원 가운데 주민용 안전장비 구입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았던 경주시와 울진군은 지난해에도 각각 86억원과 170억원의 지원금을 받았지만 같은 용도로는 한 푼도 지출하지 않았다.
영광군 관계자는 “원전지원금은 원전주변지역 도로확장 등 주민 숙원사업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 위성발사 로켓 추진체 변산 앞바다에 떨어질 듯
북한이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아 쏘아올리겠다고 발표한 광명성 3호의 발사 궤적과 추진체 낙하지점 등을 관련 국제기구에 통보하고 발사강행 뜻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 통보한 바에 따르면 1차 추진체는 변산반도 서쪽 140km 해상에, 2차 추진체는 필리핀 동쪽 190km 해상에 떨어질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국제사회 비판이 고조되자 외국의 권위 있는 우주과학기술 부문 전문가들과 기자들을 초청해 서해 위성발사장과 위성관제종합지휘소 등을 참관시키고 광명성 3호 발사 실황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 조선일보 3월19일자 1면

미국 “발사 땐 식량지원 보류”…중국도 강한 불만 전달
북미 대화를 진행해 오던 미국은 북한의 로켓 발표 소식을 통보 받은 뒤 유감 표명을 밝혔다.
미 뉼런드 대변인은 “북한에 영양지원을 하는 인도주의적 지원을 다른 정책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입장이지만 북한의 발표로 2·29 합의가 여전히 유효한지 우려를 갖게 됐다”며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경우 식량지원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도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장즈쥔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6일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만나 편치 않은 속내를 전달했다. 중국은 이전 2번의 위성발사 때 발표 당일 주중 북한대사를 부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번에는 중국과 사전협의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본은 북한이 발사하는 인공위성이 일본을 향할 경우 미사일 방어시스템(MD)으로 요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이 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언론들도 북한의 위성로켓이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로켓발사 강행 방침을 비판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물론 경향신문조차 사설 에서 “사실상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며 “미국과의 ‘2.29 합의’를 계기로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북한 문제가 양자간, 다자간 외교무대에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한반도 주변국가들의 기대 역시 저버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에 두 목소리? 불안한 김정은 체제
언론들은 또, 이번 북한의 로켓 발사는 불안정한 김정은 체제에서 찾고 있다.
미국과 합의를 끌어낸 지 불과 20여일 만에 미국이 반발할 수 있는 로켓발사를 발표한 것은 온건파가 잡고 있는 외교부와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군부의 세력 다툼 때문이라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위성발사 사실을 주변국에 통보하고 현장에 외국 전문가들과 기자들을 초정하겠다고 알린 것 역시 이런 내부 사정을 알리고 미국에 사전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세계일보).
6자회담 미측 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지휘체계가 단일화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식량지원 협상에 나선 이들과 미사일 발사를 추진하는 이들이 다르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