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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원순씨의 서울은 소중하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10-29일자 제933호 기사 '원순씨의 서울은 소중하다'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 10월27일로 취임 1년, ‘법·제도·뚜렷한 결과물 없다’는 비판 속 ‘콘크리트 없이 삶 바꾸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전임 시장 손때 없는 2013년 예산안으로 온전한 평가 가능해

»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민 1천만 명에게 진보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을 넘어 ‘좋은 시장’이라는 것을 보여줄 박원순표 대표 정책은 무엇일까. 탁기형 기자

풍문으로 들었다. 서울시장이 잘하고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다. 시장 한 명이 바뀌니 삶이 바뀌더라는 그 말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월27일로 취임 1년을 맞는다. 전임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스스로 무릎 꿇고, 지지율 5%의 박원순이 50%의 안철수와 악수 한 번으로 자리를 바꿔 앉은 지 벌써 1년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지지하는 민주주의

박원순은 두꺼운 텍스트다. 사회 혁신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하다. 그냥 반짝 아이디어가 아니다. 외국 사례를 검토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시민의 말을 듣고 전문가의 시각을 보탠, 이미 익어 꼭지만 따면 되는 것들이 많다. 거기에 집행력도 강력하다. 생각하기 전에 추진부터 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다르다. 한국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를 만들고 키워낸 그다. ‘준비된 시장’이라는 그에게 본청 공무원만 1만6천 명에 달하는 서울시장 자리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빈말이 아닐 것이다.
‘새벽 5시 기상→문안→경연→조회→주강→민생업무→석강.’ 조선 왕의 바쁜 일상 밑에 주황색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다. ‘공부와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부족하자 세종은 새벽 2~3시에 일어났다’는 부분에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쳤다.

시장이 바뀌니 생활이 바뀌었다? 솔직히 실제적인 변화를 체감하기는 아직 힘들다. 1년은 전임 시장들이 저질러놓은 일을 뒤처리하기에도 벅찬 시간이다. 그런데도 서울시장 박원순에 대한 평가는 후하다. ‘내 삶을 바꾸는 첫 번째 시장’이라는 그의 선거 슬로건은 시민참여형 시정으로 변주돼 나타났다. 끊임없이 경청하고 토론하고 수정하는 박원순 스타일은 그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감동시켰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지지하는 민주주의가 작동한 탓이다.
박원순은 중요하다. 박원순은 1천만 명을 대상으로 진보적 가치를 제시하고 실행하고 판단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예측할 수 없는 대선 결과에 따라 박원순의 서울은 한동안 외로운 ‘진보의 기지’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현명한 어느 시장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는 시정은 불안하다. 서울에서의 성공은 대한민국에서의 성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렇다. 실패도 마찬가지다. 박원순의 서울, 박원순의 실험이 지속 가능한지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10월17일 오후 2시30분. 서울시청 신청사 6층 시장실은 여성 20여 명으로 복작거렸다. 박원순 시장이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 에 출연한 ‘경력 단절 여성’들이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1시간 동안 박 시장은 결혼·가사·육아 등을 이유로 직장 등의 사회 경력이 이어지지 못한 여성들의 경험을 듣고 정책적 대안을 함께 고민했다. 이날의 결과물은 여성들이 직접 제작하는 (여성 재취업 가이드북)에 담기게 될 것이다. 박 시장은 여성들의 답변을 유쾌하게 이끌어내는가 하면, 방송 중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들어온 반응을 잊지 않고 소개했다. 이날 방송도 “시민이 시장이다”를 함께 외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서류 더미와 책들로 가득한 시장실 한쪽 벽에는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라는 책의 신문 서평이 오려져 잘 짜인 액자에 모셔져 있다. ‘새벽 5시 기상→문안→경연→조회→주강→민생업무→석강.’ 조선 왕의 바쁜 일상 밑에 주황색 형광펜으로 줄을 그었다. ‘공부와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 부족하자 세종은 새벽 2~3시에 일어났다’는 부분에는 빨간 펜으로 밑줄을 쳤다. 그렇게 서울시장 업무를 보겠다는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일을 한다.

광복절 즈음 치고 나간 보훈 정책

» 지난 10월17일 서울시장실에서 인터넷 방송 <원순씨의 서울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 ‘서울은 ~이다’ 코너에서 출연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서울을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 1월30일 박 시장은 1300곳에 이르는 뉴타운·정비사업 구역에 출구전략을 제시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정책 행보를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2년 시작된 뉴타운 정책은 소유주와 세입자, 주민과 개발업체 사이에 숱한 충돌과 혼란을 일으키다 10년 만에 나갈 구멍을 찾게 됐다. 콘크리트를 들이붓지 않아도 시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박 시장의 지향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출발이었다. 박 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은 지난 9월11일 발표한 마을공동체 5개년 기본계획에 가닿는다. 뉴타운 사업 등 개발로 쓸려나간 공동체 가치 복원이 핵심이다. 2017년까지 마을 975곳을 복원해 복지와 경제, 교육과 육아 등을 주민 주도로 해결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 등을 나눠쓰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공유도시도 같은 맥락이다. 뉴타운·인공 청계천 복원(이명박), 한강 르네상스·디자인 서울(오세훈) 등 눈에 보이는 외형적 하드웨어는 거대도시 서울에 차고 넘친다. 그러니 이제는 사람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 삶의 질을 높이는 소프트웨어를 새로 갈아끼워 넣겠다는 것이다. 다른 정책(표 참조)들을 보더라도 차이는 확연하다. 큰 예산이 들지 않으면서도 복지·의료·문화·여성 분야 등에서 정책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내용들에 방점이 찍혔다. 지난 광복절 즈음에는 보수가 선점하던 ‘보훈’ 정책까지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며 치고 나갔다.

» 박원순 서울시장의 2012년 주요 정책

시장과 협력하고 때로는 시장을 견제하는 자치구와 시의원들의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다.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민주통합당)은 “서울시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의 방향을 돌리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데 생태·공동체·복지라는 큰 틀을 정립해 보여주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패러다임 변화에 성공했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뉴타운 출구전략 역시 실효성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박원순이었기에 할 수 있는 방향 전환이었다”고 평했다. 다만 “하드웨어에 과잉 투자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남과 강북, 부자 자치구와 가난한 자치구 사이의 편차는 고려해야 한다”며 신규 투자에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4선인 고재득 서울 성동구청장(민주당)도 “모든 개발이 ‘삽질’은 아니다. 토건과 결별하겠다며 개발을 억제하다 보니 성동구처럼 피해를 보는 지역도 생긴다”면서도 “그동안 서울시정이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사업을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점도 있다”고 박 시장의 방향 전환을 거들었다.
대부분의 새누리당 소속 구청장들은 박 시장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반면 김용석 서울시의원(새누리당)은 정책적으로 긍정할 부분과 정치적으로 비판할 지점을 구분해 설명했다. “무소속 시장은 어떤 장점과 한계를 가지는지, 기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에 박 시장이 어떤 답안을 내놓을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당적(민주당)을 가졌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우려와 달리 비교적 성공적으로 시장직에 안착했다고 본다”고 평했다. 박양숙 서울시의원(민주당)은 “지난 1년은 전임 오세훈 시장이 편성한 상당수의 사업 계획과 예산 편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오롯이 ‘박원순 시정’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며 “하지만 시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큰 틀에서 시정의 기조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시의회가 이전부터 추진해온 사안으로 ‘박원순 작품’이 아니라며 ‘시정 6개월’을 박하게 평가했던 강희용 서울시의원(민주당)도 좋은 점수를 매겼다. “초반에는 여러 혼선이 있었지만 시정 목표와 중심에 시민이 굳건히 자리잡는 시간들이었다. 시민의 재발견이다.”

조직 업무까지 시민단체가 하는 거 아냐

박원순표 정책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평가도 우호적이다. 단순히 정책 방향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는 빈도가 잦아졌고 폭도 깊어졌다.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횟수는 많아졌다. 지금도 거버넌스(협치)를 말하기에는 어색하지만 시민단체와 공무원들 사이에 발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서종균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하면서 민관이 협력하는 접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삐딱하게만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손종필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예산위원장).
뻣뻣한 결들은 공무원 조직에서 주로 나타난다. 영혼이 가벼운 공무원 조직은 수장을 따라간다지만, 시민운동을 하던 박 시장의 업무 스타일은 그런 공무원들에게조차 여전히 낯설다. 민선 1기 조순 시장(1995~97) 시절부터 서울시에서 근무해온 한 공무원은 “시민단체는 현행법을 넘어서는 부분까지 고민할 수 있지만 공무원들은 법 테두리 안에서 일을 해야 한다. 시장은 여전히 시민단체가 옳고 공무원이 틀렸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다른 본청 공무원은 “시민단체에 과도하게 무게가 실려 있다”고 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뚜렷한 논리를 갖고 있지 않은데도 오히려 시장의 생각을 오염시키는 경우가 있다”며 “괜히 테크노크라트가 나오겠나. 40~50대 공무원들이 젊은 시민운동가에 비해 전문성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젊은 운동가들에게 자존심이 뭉개졌을 때 어떻게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지금까지 수직적 관료체계에 익숙했던 공무원들에게 시민과의 소통을 최우선으로 하는 박원순 스타일은 엄청난 변화였던 셈이다. 사후 민원 등을 예방하려고 정책 수립 과정에서부터 시민과 시민단체 의견을 사전 검토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괜히 테크노크라트가 나오겠나. 40~50대 공무원들이 젊은 시민운동가에 비해 전문성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젊은 운동가들에게 자존심이 뭉개졌을 때 어떻게 신명나게 일할 수 있겠느냐.”-본청 공무원
서울시 조직에서 수행하던 업무를 시민단체가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따라 나온다. 서울연구원(옛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일하는 한 비정규직 위촉연구원(석사급)은 “박 시장이 추진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100여 명에 달하는 위촉연구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고 있다”며 “연차별 일괄 정규직화가 아니라 공채 형식의 정규직화가 추진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는 결국 기존 인력들을 구조조정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 연구원은 “구조조정은 결국 우리가 싱크탱크 역할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시민단체가 대신할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본청과 산하 투자·출연기관 비정규직 2916명 가운데 1054명(36.1%)을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일괄 전환하는 한편, 나머지 비정규직들에 대한 고용 개선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서울시 주진우 노동보좌관은 “반드시 기준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위촉연구원들의 경우에는 정규직화 예외 기준이 적용된다. 현재 용역 연구를 통해 검토가 진행 중이지만 다른 비정규직들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시민이 시장’이라는 박 시장의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박원순이 부재하는, 박원순 이후의 서울은 어떻게 될까.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이기보다 관계를 구축하자는 박 시장의 정책들이 다른 시장으로 바뀌어도 지속될 수 있을까. 박 시장은 지난 10월16일 과의 인터뷰에서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고 했다. “내가 특별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이미 우리 시대가 그렇게 변화하고 있고,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여전히 나한테 오는 민원·요구·압력은 전부 하드웨어다. 이미 있는 건물도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데 건물을 지어달라고 한다. 정책 비전은 내가 제시하지만, 내가 이래라저래라 말하기보다 전문가·시민사회·주민 참여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다. 협력적 파트너십과 거버넌스에 의해 만들어진 정책은 다음 시장이 쉽게 바꾸기 힘들 거라고 본다.” 자신이 바꾼 게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시대적 흐름이 이미 자리잡았다는 얘기다.

‘지하철 9호선 계약서’ 정보공개로 ‘말뚝 박기’

현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조례나 시책, 캠페인에 의지해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제도로서 자리잡지 않으면 금방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의 구상과 아이디어는 좋은데 기존 정책 패러다임과 다르다 보니 이를 받쳐주는 현실의 법과 제도가 없다. 대안 임대주택 건설도 실적이 미미한데 이 역시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공중전화처럼 예산이 투입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조 교수는 “인구 1천만의 국제도시 서울에는 마을뿐만 아니라 국제비즈니스·금융산업 기능 등도 있어야 한다. 산업구조·노동여건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필요하다. 도시계획을 시민 참여나 몇 가지 상징적 키워드만으로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미 서울에는 돌이킬 수 없는 ‘박원순식 말뚝박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시 정보소통광장(http://gov20.seoul.go.kr)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통틀어 가장 적극적이고 앞선 형태의 정보공개가 이뤄지고 있다. 정보공개는 만연한 지방 부패를 막는 강력한 항생제가 될 수 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전진한 소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여전히 서울시 내부의 저항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절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민감한 계약서, 예를 들어 지하철 9호선 계약서 같은 것들이 공개되고 있다. 명단조차 공개하지 않던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도 공개하기로 했다. 이렇게 정보공개 대상에 오른 것들을 시장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비공개로 돌아설 수는 없다.” 말뚝을 박았다는 얘기다.
“구상과 아이디어는 좋은데 기존 정책 패러다임과 다르다 보니 이를 받쳐주는 현실의 법과 제도가 없다.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조례나 시책, 캠페인에 의지해서 진행되는 사업이다. 제도로서 자리잡지 않으면 금방 끝날 수 있다.”-조명래 단국대 교수

» 지난 4월30일 정규직으로 전환된 서울시 비정규직 직원들이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박 시장에 대한 평가는 이제부터가 진짜라고 한다. 박원순표 2013년 서울시 예산안이 그 잣대다. 2012년 예산은 전임 오세훈 시장의 손때가 많이 묻었다. 손종필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예산위원장은 “박 시장 1년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2013년 예산이 시의회에 제출되는 11월1일에 시작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서울시정을 움직이고 재선 이후의 밑그림을 그릴지가 예산을 통해 드러난다. 지난 1년 동안의 고민의 결과가 묻어날 것이다.” 제대로 해보겠다는 정보공개 관련 예산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들린다. 강희용 시의원은 “부동산·주택·교육 등 서울시의 문제가 대한민국 문제다. 박원순표 예산이 적용되는 내년에는 일반 시민들도 박 시장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박 시장이 너무 작은 문제, ‘스몰 폴리시’에 집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이 ‘선택과 집중’을 못한다는 지적은 공무원 조직과 시민단체에서도 두루 나온다. 자잘한 것까지 다 챙기며 ‘만기친람’하다 보니 박 시장이 뭘 했는지 깊이 각인된 게 없다는 것이다. “조순 시장은 여의도광장을 공원으로 만들었다. 고건 시장은 원지동 추모공원의 단초를 열었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과 버스전용차로를 시민에게 선사했다. 박원순 시장은 마을공동체를 내세운다. 이제 ‘박원순 서울’의 대표상품이 될 수 있을지 보여줄 차례다. 시민들은 친근한 시장도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는 확실한 리더이기를 바란다. 좋은 사람이 좋은 시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김용석 시의원)

마을공동체는 대표상품이 될 수 있을까

‘서울이 바뀌면 대한민국이 바뀝니다.’ 박 시장이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운동에서 사용했던 또 다른 슬로건이다. “서울시가 변하면 다른 지자체가 바뀐다. 중앙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계속 일종의 모델이 되고, 확산 효과가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협력해서 사회를 이 단계에서 저 단계로 옮겨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대담집 [시민은 현명하다] 중 박원순 시장) ‘박원순의 서울’은 그래서 중요하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시민단체와 공무원 거버넌스
희망제작소는 관변기관?

“실무적으로 보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형식적으로 의견 수렴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좀더 깊숙이 서로 원하는 것을 파악해 의견을 조율했다.”
박원순 시장 취임 뒤 변화를 묻자 서울시 예산담당관 김정한 과장은 이렇게 답했다. 실제 서울시는 올해 초 ‘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을 만들려고 좋은예산센터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을 두루 접촉했다. 공동 워크숍을 세 차례 열어 시와 시민사회단체 합의안을 만들기도 했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손종필 서울풀뿌리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 예산위원장은 시의 이런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생각보다 예산과가 오픈돼 있었고 시민사회단체를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느낌이었다. (합의안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 조례안보다 나은 안이라 시와 합의를 했다. 그 뒤 시의회에서 더 나은 안이 나왔고, 결국 시의원 발의로 조례가 제정됐다.”
박 시장이 시민사회와의 소통에 대해 따로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시장이 시민단체 출신이고, 소통을 강조하게 되면 공무원 처지에선 의식을 하게 된다. 형식적인 안을 시행하는 걸 시장이 원하지 않을 거 아닌가.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으면 이런 조례는 공무원 편한 대로 간다. 물론 이런 절차를 밟으면 일은 더 많아진다.” 김 과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옛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2월 경제학자나 관료 출신이 아닌 이창현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부)가 원장에 취임했다. 서울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새 원장은 시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만들자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며 “예전엔 연구과제가 다 대외비거나 대부분 공무원들이 제안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이 연구과제를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주요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 등은 박 시장이 이끌어온 민간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에서 지난 5년간 연구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구 공무원들이 희망제작소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거나 교육을 받으러 오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희망제작소는 올해 ‘NPO 경영학교’ 사업으로 서울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일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권기태 희망제작소 기획홍보실장은 “박 시장이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시와 함께 일을 하기가) 조심스러워 보조금 논란 이후 서울시 사업을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리했다”며 “그러나 박 시장의 정책을 예전부터 연구해왔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정보공유 등을 외면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권 실장은 “현재 서울시와는 공무원들의 자문에 응하는 정도, 서울연구원과는 시민을 중심에 둔 사회 혁신 및 도시정책 연구, 아이디어 공유 등 거버넌스 활성화 차원에서 교류 협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2012년 9월 26일 수요일

[사설] 복지 후퇴 예산안, 정부·여당의 실망스런 합작품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25일자 사설 '[사설] 복지 후퇴 예산안, 정부·여당의 실망스런 합작품'을 퍼왔습니다.

정부가 어제 내놓은 내년 예산안은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복지국가의 기반을 다지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했으나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영유아 무상보육 폐기에서 보듯 시대적 요구인 복지 지출은 후퇴했다. 그런 반면 세입 예산은 짜맞추기식으로 균형재정을 만들었지만 여기저기 허점이 적지 않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대폭 손봐야 한다.내년 예산안은 342조5000억원으로 올해보다 5.3%(17조1000억원) 늘었는데, 복지예산 증가율은 그보다 낮은 4.8%(4조5000억원)에 머물렀다. 복지비 증가분의 20% 이상은 공무원·군인 연금이며 나머지도 거의 기존 사업의 자연증가분이다. 총지출 가운데 복지지출 또한 올해 28.5%에서 내년엔 28.3%로 낮아졌다. 경기 침체에 양극화 심화로 복지 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도 정부 지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약속한 반값 등록금도 국가장학금 규모를 5000억원 확대해 소득 7분위 이하에 한해 국가장학금 수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50% 경감하는 수준에 그쳤다.개방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림수산 예산도 18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2% 늘어나고, 일자리 예산도 2조6722억원으로 1641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4대강 유지보수비는 2013억원으로 올해보다 늘어 우려했던 대로 4대강 사업 이후에도 ‘돈 먹는 하마’가 되고 있다.정부는 내년 성장률을 4.0%로 보고 세입 예산안을 짰다고 한다. 성장률은 세수입 가정의 기본 토대다. 국내외 여러 기관들이 세계 경기 침체로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3%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는데 나 홀로 전망을 근거로 세수를 잡은 것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사실상의 균형재정(-0.3%)은 경기 전망이 빗나가 세수가 줄어들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세외수입을 올해 28조원보다 크게 늘어난 37조원으로 잡은 것도 문제다. 씀씀이는 늘어나는데 감세로 세수가 줄자 세외수입 의존도를 높인 것이다. 정부는 기업은행 5조1000억원, 산업은행 2조6000억원, 인천공항공사 4000억원 등 공기업 주식을 매각해 부족한 주머니를 채우겠다는데, 모두 지난 3년간 매각이 실현되지 않아 세출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특히 인천공항공사는 여야 모두 매각에 반대했는데도 또다시 매각 항목에 포함했다.정부가 동원한 이차보전 방식의 세출도 재정수지를 유지하는 데 급급해 공기업이나 민간에 부채를 떠넘기는 꼴이다. 이차보전 방식이란 정부가 공기업이나 민간에 직접 융자를 하는 대신 금융기관의 대출을 받도록 하고, 시중금리와 정책금리의 차액을 메워주는 것이다. 정부는 6조7000억원의 재정융자사업을 이차보전으로 돌려 이자손실 보전분 1200억원만 지출하는 식으로 총지출 증가율을 2%포인트 높이겠다고 한다. 실제로는 공기업 지원 부담을 금융기관에 떠넘기는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신용도 낮은 개인 등 정부 지원이 필요한 곳에 자금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지출 확대를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하나 정작 복지는 후퇴하고 재정건전성은 삐끗할 위험에 처했다. 실망스런 예산안은 정부와, 말로는 복지 확대를 외치면서 감세로 곳간을 허문 새누리당의 합작품이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법인세 '0원' 맥쿼리에 또 당하지 않으려면…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12일자 기사 '법인세 '0원' 맥쿼리에 또 당하지 않으려면…'을 퍼왔습니다.
[토론회] '시민이 설계하는 2013년도 예산안 대토론회'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나라살림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가 11일 오후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서울시 종로구 통인동)에서 '시민이 설계하는 2013년도 예산안 대토론회'를 열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공동으로 '2012-2016년 국가재정운용계획 공개토론회'(12-14일)를 여는 것에 앞서, 시민사회가 바라는 향후 5년의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 방향과 재원 분배에 관한 쟁점과 정책적 대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발제자로서 2013예산안과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전반적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김현국 정책연구소 '미래와균형' 소장,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연합 국장,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오혜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강국진 (서울신문) 기자가 분야별 토론자로 나섰다.

'부자 감세'로 재정 악화시키더니 재정 건전성 강조?

정창수 소장은 "한국의 재정 규모가 1970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작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 예산의 비중이 매우 낮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복지 구조"라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OECD 국가 등을 비교해보면 잘살아서 복지를 한 것이 아니라 복지를 했기 때문에 지속적인 성장을 했다"며 한국도 "복지의 시기상조론을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정 소장은 최근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재정 건전성 및 균형재정 확보 주장을 비판했다.

"한국은 지난 3년간 적극적인 재정 확대로 위기를 버텨왔다. (…) 더 큰 규모의 경제 위기가 예상되는 시점에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본격적인 재정 긴축을 실시한다면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러한 판단의 바탕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놓여 있다.

"정부는 지난 4년간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를 추진해, 공공 부문 부채를 두 배인 900조 원으로 늘려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재정 운영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균형재정을 들고 나왔으며, 2013년에는 균형재정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간 증가한 부채에 대한 이자 지출 27조 7000억 원 등 악화된 재정 구조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 또한 그동안 개혁하겠다고 한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의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정치적 구호에 그칠 수 있고, 실제로 추진한다면 의무 지출을 제외한 복지 축소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정 소장은 정부 편성안이 "공기업 등의 대규모 매각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는 미래에 활용될 자산을 줄인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 소장은 예산 지출 구조 조정이 필요하며, 그 첫 번째로 불필요한 토건 예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예산(지자체 포함)에 반영되는 건설투자비 중 10퍼센트를절감하면 약 4조 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산 외로 운영되는 재정과 관련, 정 소장은 "조기 납부 감면과 특별 감면 등의 혜택이대기업에 집중돼 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전반적인 개선 방향으로 재정 관련 통계 개편, 정보 공개 확대, 시민 통제 강화 등을 제시했다. 시민 통제와 관련해 정 소장은 "납세자 소송을 이번 대선 공약에 꼭 반영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시민이 설계하는 2013년도 예산안 대토론회. @참여연대

"맥쿼리 등에게 특혜 주는 조세 감면 관련법 개정해야"

홍헌호 연구위원은 지난해 발표된 '2011-2015 국가재정운용계획-장기재정전망'이 허구적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 작업반은 2010년부터 2050년까지 조세부담률이 19.7퍼센트로 고정돼 있는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또한 의료 지출 증가 시나리오를 추가로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식 의료 민영화를 전제로 한 것으로 매우 우려되는 시나리오다."

홍 연구위원은 조세 감면 관련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를 사례로 제시했다. 맥쿼리인프라는 요금 과다 인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서울메트로9호선의 대주주로서 "2011년 1056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고도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낸 것으로 확인됐다."

▲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홈페이지.
맥쿼리인프라가 이렇게 법인세를 전혀 내지 않을 수 있던 근거는 법인세법 제51조2다.

홍 연구위원은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법인세법 제51조2를 만든 이유는 금융 기관의 부실 자산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만, 그 후 이 조항은 민자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투기자본에 특혜를 주는 방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법 제51조2를 폐지하고 맥쿼리인프라 등에게 정당하게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 홍 연구위원의 판단이다.

홍 연구위원도 과다한 토건 예산, 그중에서도 "복지의 탈을 쓴 토건"을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복지 정책에 대한 체감도가 낮은 주요 원인은 복지 지출액 자체가 적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복지 지출액 중 상당 부분이 토건 사업과 관련됐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홍 연구위원은 "최근 복지 지출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복지관, 문화관, 체육관 등이 우후죽순처럼 건립되고 있는데 그것이 지나치게 호화로워서 예산 낭비가 심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더 많은 수혜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복지 혜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 연구위원은 청년 일자리 창출 방안의 하나로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가 많은 기업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보다 사회보험료율을 높여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진보 진영, 지난 1년간 재정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아갔다"

토론자 중 김성달 경실련 국장은 민자 사업의 문제점을 짚었다. 김 국장은 "도입 취지와 달리, 현행 민자 사업은 창의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고 규정했다.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사용료는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겉으로 내세운 것과 달리 "민자 사업이라 부르기 궁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사례로 김 국장은 "수익형 민자 사업의 경우 약 30퍼센트는 재정 지원, 약 40퍼센트는 정부의 저리 재무보증으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고 제시했다.

김 국장은 민자 사업이 "건설사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몰아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공사비 부풀리기, 최소운영수입보장, 토지수용권 부여" 등 특혜와 편법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다. 김 국장은 이러한 특혜들을 폐지하는 한편 문제를 발생시킨공무원과 관련 전문가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이 여전히 효율성이 낮고 질적인 문제도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고용의 질을 개선하는 데, 즉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이 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과 청년 고용 의무 할당제 등을 강력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건호 연구실장은 "한국 재정의 핵심 문제는 직접세 수입이 적고 사회복지 분야 지출 비중이 낮다는 점"이라고 진단했다. 오 연구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거꾸로 가는 재정 전략"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균형재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출 통제가 아니라 계층별 형평성에 맞게 직접세 수입을 늘려가는 게 옳은 길"인데도, 그와 반대로 "'부자 감세'로 초래된 재정 수지 적자를 재정 지출 억제를 통해 해소하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 연구실장은 "이명박 정부가 작년 국회에 제출한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은 애초 정부가 설정한 균형재정 달성연도를 2014년에서 2013년으로 앞당긴 것"이라며 "이는 작년 8.15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균형재정 목표연도를 2013년으로 선포한 데 따른 조치"라고 분석했다. 이어 "2013년 균형재정 청사진이 담긴 예산안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일 2012년 말에 제출돼, 대선에서 보편 복지 세력의 복지재정 확충론에 맞서는 핵심 카드로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 연구실장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진보 진영의 대응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년간 복지 논의는 계속됐지만 (이를 실현할) 재정 관련 논의는 한 발짝도 못 나아갔고 그래서 저쪽(보편 복지 반대 세력)으로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오 연구실장은 "증세 등을 통한 진보 진영의 세입 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과 이를 공유하며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관한 단계별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실장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증세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증세의 3대 원칙으로 "복지 증세, 보편 증세, 부자 증세"를 제시했다.

 /김덕련 기자

2012년 3월 29일 목요일

[사설] 서울시립대생의 전진, 참여하면 바뀐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28일자 사설 '[사설] 서울시립대생의 전진, 참여하면 바뀐다'를 퍼왔습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서울시립대 등록금이었다. 서울시가 11월 초 시의회에 낸 2012년 예산안엔 반값등록금을 위한 예산 182억원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우리 사회를 들끓게 했던 반값등록금 요구를 박원순 후보가 공약으로 수용했고 이를 실천한 결과로 나타났다.
물론 쟁점이 비등할 때 선거가 치러졌다고 해서 이런 결과가 무조건 나오는 건 아니다. 학생들이 그만큼 치열하게 선거에 참여하고,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후보를 집중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도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바 있지만, 이들은 지난해 등록금의 12~13% 정도에 해당하는 국가장학금을 마지못해 늘렸을 뿐이다.
대학생의 선거 참여 열기는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신청자가 한 학교당 2000명 이상일 때 대학 안에 설치하는 대학 부재자투표소가 2008년 18대 총선 땐 3곳이었지만, 2010년 지방선거 땐 17곳으로 늘었다. 대학생 부재자투표율 역시 69.1%로 4년 전(42.2%)보다 무려 26.9%포인트나 높아졌다. 학생들의 이런 폭발적인 참여로 반값등록금과 취업 문제 등 이들의 고민이 정치권의 본격적인 쟁점이 되었고,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의미있는 승리를 일궈냈다. 국가장학금의 증액도 이런 도전의 결과였다.
승리의 기억은 다시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신감을 갖게 하고, 한발 더 앞장서 현실의 모순과 맞서게 한다. 지난해 반값등록금을 쟁취한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이번 4월 총선을 앞두고 투표권자 6500여명 가운데 무려 2593명이 부재자투표를 신청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2210명보다 18%나 늘어난 수치다. 참여하면 바뀐다는 진실을 체득한 것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냉소적이거나 방관하는 학생이 많은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베스트셀러 의 저자 우석훈 교수가 ‘변화하지 않는 20대’에 절망해 이 책의 절판을 선언했을까. 그는 20대가 왜 ‘짱돌’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쳐야 하는지 설득했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변화의 기대치는 누구나 다를 수 있다. 짱돌을 들진 않아도 변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열에 여섯만 취업하고, 절반은 비정규직인 현실에 안주할 순 없다.
이번 총선은 이런 청년 학생의 운명에 균열을 낼 장이다. 그들 대신 싸워줄 집단은 없다. 스스로 바꿔야 한다. 참여하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