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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7일 토요일

대선주자들이여, '학벌특권 대학체제'부터 바꿔라!


이글은 프레시안 2012-11-16일자 기사 '대선주자들이여, '학벌특권 대학체제'부터 바꿔라!'를 퍼왔습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수능날마다 자살학생 늘어나는 '미친 교육', 이제 끊어내자

우리는 수능 때만 되면 몇 명의 학생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올해도 예외는 없었다. 수능 전날인 7일 대구 수성구에서 삼수를 한 남학생이 자살하였다. 또 다른 여학생은 수능시험을 치고 '미안하다'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기도 했다. 한해에 1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한 달 평균 13명 이상의 10대 청소년 학생들이 성적 비관 등으로 자살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 성적과 관련된 자살은 결손가정이나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모든 가정의 문제이다. 특히 중산층 자녀들, 부모들이 열심히 뒷바라지 하면서 성적을 독려하는 그러한 가정에서 빈발한다. 한 예로 대구에서 학생자살이 빈발하는 수성구는 아파트가 많고 상대적으로 잘사는 동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을 그냥 반복되는 일상적인 일로 간주하면서 무덤덤하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현재의 우리의 교육경쟁 시스템에 심대한 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이제라도 심각하게 우리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야권 후보들의 새로운 정책들

이러한 심각성에 비추어, 다행스럽게 야권후보들이 이번 대선에서 이전에 비해 전향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개혁적 전문가들이 각 캠프에 결합하면서 그동안 교육운동단체에서 주장하던 내용들(☞관련 내용 바로 가기)이 대선공약에 포함되게 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 (왼쪽부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문재인과 안철수는 모두 입시 지옥과 교육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고 기회균등 선발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재인의 경우, 고등교육 재정을 GDP 1%로 확대하는 것, 국가교육위원회 등을 공약하였다. '행복한 중2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공교육 12년 동안에 1년 정도는 공부를 쉬고 진로를 찾는 특이한 공약도 제시하였고, 지금처럼 획일적인 일제고사를 개선하겠다고 하는 공약도 내걸었다. 여기에 국립대 공동학위제도 제안했다. 이는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의 공약에서부터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서 긍정적인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외국어고, 국제고, 자립형 사립고의 학생우선 선발권을 없애는 방안, 지역별 거점대학과 특성화 혁신대학을 육성하고 지역고용할당제를 실시하는 방안, 정부책임형 사립대를 각 대학 희망에 따라 실시하는 방안 등을 내걸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존에 교육운동단체들이 주장했던 것들로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안철수 후보 진영에서 '정부책임형 사립대'의 정책을 수용한 것은 긍정적이다.

야권의 중심적인 후보는 아니지만, 심상정 후보는 훨씬 근본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서울대의 대학원 중심대학 전환, '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 수능, 대입자격시험 전환, 사교육 축소 4대 긴급조치 실시, 혁신학교 전국적 보편화, 특목고·일반고로 전환, 학력·학벌차별 금지, 실업고·전문대 직업교육 연계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였다.

과잉경쟁과 '경쟁의 왜곡'을 혁파하는 접근법이 필요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다. 그런데 나는 특정한 정책들을 도입하는 관점이 아니라, 정책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구조전환을 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더라도 기존의 정책패러다임과 기존의 구조 내에서 작동할 때,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교육정책의 변화는 '과잉경쟁'과 '왜곡된 경쟁'구조를 혁파하는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 정도 수준이던 1960·70년대 한국의 초기산업화 단계의 교육경쟁 모델이 고착되고 왜곡된 상태에서 그것이 1인당 국민소득이 2500달러인 시대에 아무 변화와 혁신 없이 관성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초기산업화 단계의 교육경쟁시스템이 현재의 높은 산업화단계에서는 이미 부정합상태에 있다. 이것은 단지 교육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다 문제가 된다. 이 점에서 나는 대선 후보들이 교육경쟁의 패러다임적 전환에 대해서 더욱 더 단호하고 급진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해결의 통로가 열린다고 생각한다.

자기 파괴적인 경쟁

먼저 자기 파괴적인 과잉경쟁에 대해서 서술해보자. 한국에서 모든 가정은 계층상승의 통로이자 자녀들의 안정적인 삶의 수단이라고 여겨지는 입시에 '올인'하고 있다. 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사활(死活)'을 걸고 경쟁하는 구조가 출현해 있다. 이 비정상적인 미친 과잉경쟁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교육경쟁으로부터 이탈(exit)하는 수밖에 없다. '경쟁 이탈전략'을 쓰지 않고 내부에서 경쟁할 때 온 가족이 '거대한 전쟁'을 해야 한다. 더구나 이 이 경쟁은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참여할 수 없는 '그들만의 경쟁'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는 현재의 교육경쟁이 비합리적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도덕한 경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의 경제력을 높아지면서 중산층 가족의 경우 가용(可用)할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나고 이 자원을 '올인'하듯이 투자하게 되면서, 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게 된다. 더구나 사회 복지 또는 사회적 안전망마저 취약한 한국현실에서 교육을 통해 학력이나 학벌이라는 '개인적 안전망'이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 하에서, 이 미친 경쟁은 더욱 가속화된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효과가 여기에 촉진제의 역할을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을 둘러싼 경쟁이 이제 '과잉 경쟁'이 되어서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면서, 한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가능케 하는 '인적 자원'의 형성과 배분을 왜곡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나는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서건 높은 보상을 받기 위해서건 사람들은 경쟁을 하고, 경쟁의 결과에 따라 상이한 보상을 받는다. 모든 사회는 이런류의 동기부여기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경쟁이 과잉경쟁으로 치달아서, 경쟁이 갖는 고유한 합리성을 파괴하는 수준으로까지 치달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과잉경쟁'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 경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예컨대, 중고등학교 교육경쟁을 보자.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이제 '신체적 파괴'까지 일삼으면서 경쟁하는 상태까지 가고 있다(신체가 버틸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잠'을 절약하면서 경쟁한다). 이러한 경쟁의 압박 때문에 자살하는 것이 바로 현재의 개혁의 필요성을 웅변해주고 있다. 논술이라는 좋은 제도도 치열한 경쟁의 맥락에 놓이게 되니 또 다른 암기경쟁이 되어버린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대체하는 현재의 왜곡현상은 과잉경쟁으로 인한 비합리성 그 자체를 웅변해준다. 현재와 같은 치열한 교육경쟁 아래서, 중고등학생들이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도 하고 풍부한 토론도 하고, 체육활동도 하고 다양한 사회참여활동도 하면서 스스로 상상력과 소양을 키울 기회는 없다. 이제 거의 자기파괴적인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자기파괴적인 과잉경쟁을 '정상화'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교육경쟁의 합리성 자체를 말살하면서 한국의 교육제도를 부단히 '비합리성의 극치'로까지 왜곡시키는 과잉경쟁 구조 자체에 대해 메스를 대기 위한 국민적 개혁으로서 교육개혁을 규정하고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입시제도가 복잡해서 문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생각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정책 속에는 바로 이러한 경향성이 존재한다. 박근혜 진영은 아예 현재의 입시제도가 너무 복잡하여,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혼란을 겪으므로,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는 것 자체가 교육개혁이라는 접근하고 있다(교육정책의 가장 핵심이 맞춤형 진로 상담이나 입시의 단순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문재인, 안철수 진영에서도 이러한 인식이 일정하게 있다.

현재의 입시제도가 복잡해진 것은, 70년대부터 시행된 중고등학교 평준화 체제 하에서, 확대된 계급적-경제적 불평등에 근거하여 이 땅의 가진 자들이 이를 내부로부터 무력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명박 정부 하의 교과부의 여러 정책을 포함하여)을 해왔다(자율형 사립고를 만든다거나 국제학교를 만든다거나 외고를 확대한다거나 하는 등). 그런데 이런 것이 중간층을 포함해 다수 국민들의 불만을 촉발했고, 그래서 교육당국이 제한적으로 이를 공적으로 규제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시행하게 되었고(농촌특별 전형 등), 이런 공적 규제가 확대되면서 입시제도가 '복잡'해졌다. 그런 점에서 이를 '단순화'해서 본고사를 수능으로 한다고 하는 식으로 개악을 하면 더욱 사태가 악화될 것이다. 단적으로, 외고 졸업생이 본고사에서 수능의 높은 점수를 근거로 현재보다 훨씬 많이 들어가는 악화된 사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현재의 교육경쟁시스템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고 하는 시각을 더욱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과격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경쟁 패턴을 선진국 형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예컨대 우리가 굳이 '국영수'라고 하는 편협한 경쟁프레임으로 전국의 고등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식의 교육경쟁이 과연 세계화 시대에 맞겠는가라고 물어보면 된다. 오히려 그러한 획일성은 넘어서서 창의적이고 다양하고 비획일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초기산업화 단계에나 맞는 저급한 경쟁방식을 혁파해야 한다.

왜곡된 경쟁구조를 악화시키는 학벌체제

둘째, '왜곡된 경쟁' 구조를 혁파하는, 그리고 그러한 왜곡된 경쟁구조에 이해관계를 갖는 기득권세력과 대결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과잉경쟁을 극단적인 파괴적 형태로 진행되게 만드는 과정에 바로 학벌특권 질서, 대학서열질서가 있다. 사실 이 학벌질서는 이전에는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예컨대 지방의 수재들이 연고대를 갈 것인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를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망설이는 선택이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 현재는 그런가.

현재의 학벌질서에서 수천만 원을 사교육에 투자해서 이른바 스카이(SKY)대학에 가게 되면, 그것은 한 경쟁참여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이고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미친 과잉경쟁은 '미친 사회구조'에서 말미암는 '합리적 경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른바 스카이(SKY)대학 입학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합리적 보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전(全) 생애를 관통하는 사회적 특권이자 자격증이 되고 패자에게는 영원한 멍에가 되는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 지점에 학벌질서 철폐의 과제가 놓여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체제를 혁신하지 않는 한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없다.

사실 전국에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어 초중등교육 수준에서 혁신학교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우리의 왜곡된 교육경쟁시스템을 변화시키는데 궁극적으로 불완전한 것은 대학학벌체제가 그 상위에 구조적으로 놓여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학학벌체제의 해체와 대학 입시제도 자체의 근원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계급적 불평등에 맞게 교육제도를 전환하려는 노력에 맞서서

여기 개발독재 하의 초기산업화 단계, 외환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단계를 통하여 확장된 경제적·계급적 불평등의 구조를 혁신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초기 산업화 단계 이후 고착된 학력과 학벌에 따른 임금격차 및 사회경제적 보상의 차이가 고착화되고 이후에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욱 확대되는 방향으로 왜곡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다 '대학졸업장'을 가지려 하고, 누구나 '최고의 학벌'에 속하려 하는 왜곡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모든 학생들이 높은 학력과 학벌을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초기산업화 단계에서는 일정하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고도성장이 높은 교육열 및 그로 인한 유능하고 풍부한 노동력에 의해 가능하였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것이 이제 '왜곡된 대립물'로 전환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초기 산업화 이후 단계에 부응하는 식으로 혁신되지 않는다면, 학력과 학벌 특권에 안주하면서 거기서 발생하는 기득권에 안주하게 되고 이는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제약하는 현재의 경향이 보다 강화될 것이다(학력에 따른 임금 등 보상의 차이를 합리적으로 재조정하는 문제는 노동시장 개혁 등과 함께 별도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육영역에서는 현재의 학벌특권에 들기 위하여 기존의 평등화 프레임, 즉 평준화체제를 해체하려는 왜곡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즉 우리 사회의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은 현재 기존의 경쟁프레임을 인정하면서 '과잉경쟁'하는 단계를 넘어서서, 그 경쟁프레임을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 자체를 재편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은 한편에서는 특목고, 자사고 등을 통하여 고등학교의 평준화체제를 해체하면서 일반고를 일류교로 만들고 특목고, 자사고 등을 실질적인 일류고로 변신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학입시제도를 바로 그러한 신흥 일류고 학생들이 유리한 선발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2007년 중반 교육계를 달군 서울대와 교육부의 싸움도 사실 서울대가 연세대와 고려대에, 또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일류대학들은 다른 대학들에 비교하여 학업성적인 우수한 특목고 학생들을 빼앗기는 것을 막으려고 내신의 변별력을 축소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발전된 것이다. 더 나아가 아예 국제중학교 등을 통해서 일찍부터—경제적 차이를 십분 활용하여—특권적인 교육경쟁구조를 만들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박정희의 개발드라이브로 성장한 경제적·계급적 기득권세력이 이제 박정희가 만든 평준화체제를 자신들의 경제적 권력(그 권력에 기초한 사교육에 의해 우수한 성적을 창출할 수 있는 권력, 그래서 자신의 자녀들을 학벌 특권이 있는 일류대학에 보낼 수 있는 권력)에 부응하는 형태로 해체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싸움의 본질은 간단하다. 특목고의 100등이 일반고의 1-2등 보다 더 성적이 우수한 현실에서 평준화적 질서 또한 내신 비중이 강한 현 입시제도가 유지되면, 특목고 학생들이 실제의 성적수준은 높은데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대학 입시는 자율화되어야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높은 사람이 좋은 대학을 가면 된다. 이것은 바로 시장원리를 그대로 교육영역에 적용하려는 것으로서 '전사회의 시장화'를 위한 기존 기득권집단의 노력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엄청난 사교육비용을 통해서 성취되는 성적은 사실 경제력의 한 반영이다. 우리 사회의 계급적ㆍ사회적 기득권세력이 요구하는 대로 변경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예컨대 대학입시를 자율화하고 평준화 체제를 해체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계급적 불평등을 반영하는 형태로 고등학교는 서열화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계급적 불평등의 하위에 있는 하층계급의 자녀들이 일류대를 가는 비율은 현저히 내려갈 것이다(물론 머리 좋고 노력하는 하층민 자녀의 성공담은 화제가 계속 되겠지만).

현재의 갈등은 현존하는 계급적 불평등에 조응하는 형태로 교육제도를 바꾸고자 하는 힘 대(對) 교육이 갖는 계급불평등 평준화 기제로서의 성격을 유지・강화하고자 하는 힘의 싸움이다. 여기에 보수언론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자율' 증진이라는 이름으로, 계급적 불평등에 조응하는 형태로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변경해주기를 바라는 기득권세력의 요구를 '국민적' 요구로 만들고 있다.

평준화도 해체하고 대학 입시도 완전히 자율화해서 계급적ㆍ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교육제도를 변경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계급적 질서가 더욱 공고화되는 것이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계급적·사회적 기득권 세력들에게는 자기 자식들을 상층계급으로 만드는 다양한 통로가 존재하고 있다. 교육을 통한 계급적 재생산의 기제가 완성되어 가면서 본격적으로 계급화 된 사회로 이행해갈 수도 있다.

예컨대 계급적·사회적 기득권세력은 자신의 경제적 자원을 기초로 하여 자식들을 로스쿨에 보내서 법률엘리트로 만들 수도 있고, '조기유학'을 통해서 영어라는 '시장가치'를 획득할 수도 있으며, 거대한 투자를 통해서 기존의 학벌질서의 상층에 편입시킬 수 있다.

중고교 평준화체제를 사수(死守)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이 노무현정부의 시도였고 궁극적으로 그것은 실패하였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중고교 평준화체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대학학벌체제의 평등한 재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평준화체제를 지키면서 그것을 왜곡하는 일류고 특권을 약화시키려 하고 기회균등 선발을 확대하고자 하는 공약을 발표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왜곡된 경쟁구조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대학학벌체제를 기초로 해서 구성되어 있는 현재의 대학체제를 혁파-이미 확립된 계급적 불평등 질서에 부응하는 형태로 교육질서가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라-하고 오히려 대안적인 대학체제를 통하여 오히려 기존의 불평등질서를 완화하는 형태로 교육체제가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후보 진영의 공약 중 '공동 학위제'가 들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실 2007년 정동영 후보 시절부터 삽입된 이 공약에 대해서 충분히 심각하게 이 공약을 고민하고 추동할 의지가 현재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2012년 초반 이용섭 정책위원장에 의해 민주당의 공약으로 '통합국립대학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분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보수언론이 '서울대 폐지론'이라고 공세를 취하자 슬그머니 후퇴를 했고, 현재의 공약에서도 아주 주변적인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이 점에서 심상정은 문재인-안철수에 비해 현저히 앞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은 학벌철폐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대학체제 개편 과정에서—보수언론의 눈으로 보면 '서울대 폐지론'이라고도 보일 수 있는—서울대의 '대학원중심대학'으로의 개편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육개혁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학 통합네트워크' 구축도 주장하였고, 학력·학벌차별 금지도 주장하였다. 주변 후보라고 하지만, 교육운동단체에 요구들에 가장 가까운 교육공약을 심상정이 내걸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학학벌체제 혁신이 '서울대 폐지'다?

여기서 잠깐 서울대 폐지론이라고 하는 보수언론의 공격에 대해서 살펴보다. 물론 대학체제 개편은 현재의 입시지옥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고 기존의 학벌체제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의 개편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개혁안을 '서울대 폐지론'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여, 개혁안의 취지를 왜곡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서울대 체제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는 다양한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보수언론의 반발을 의식하여 '서울대를 뺀 통합국립대학안'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개혁은 입시지옥을 해소하는 목표가 있으므로, 서울대, 연고대 등의 학벌특권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개혁을 우회하는 것이고 효과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한다.

학벌체제를 혁신하기 위해 예컨대 서울대를 포함해서 국립대학을 '통합국립대학'으로 만든다고 해보자, 이러한 패러다임적 전환의 틀 내에서 서울대가 어떤 위치를 가질 것이며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 전체를 폐지하는 방안(17대 총선에서 서울대 폐지론이라는 이름으로 민노당이 공약한 사항), 서울대 학부를 폐지하고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재편하는 방안(2012년 대선에서 심상정이 공약한 사항), 서울대 학부를 기초학문 중심으로 재편하고 나머지 분야는 통합국립대학의 권역별 특성화의 계획에 따라 재배치하는 방안 등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중심대학으로의 재편이 가장 현실적이고 개혁의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대를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재편하는 것은, 서울대가 기존에 갖고 있었던 학문적 수월성의 장점을 살릴 수도 있고, 그러면서 학부를 중심으로 유지, 재생산되는 학벌특권을 치유하는 장점도 동시에 살릴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안은 이미 장회익교수 등 서울대 내부에서도 개혁의 일환으로 이러한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물론 '학부 없는 대학원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반론이 있겠지만, '국립'대학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공공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기'학부를 둔다는 각도 보다는 오히려 '학벌 특권'의 중심에 서지 않고 많은 전국의 통합국립대학의 학부를 기반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현재의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의 공약에서 통합국립대학이 아니라 '공동학위대학'을 이야기하는 후퇴한 것은 이미 보수세력의 반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공동학위제도를 예컨대 '통합국립대학(단일의 통합국립대학을 만들고 그 안에서 서울대가 서울캠퍼스가 되는 것)이 없이 시행될 수도 있다. 학위만 공동으로 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현재의 위계화 된 상태로 버려두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 또한 저항이 거세기 때문에 우회하는 의미에서 서울대를 학부 중심대학으로 간다고 상정할 수 있는데, 이럴 경우 어느 학문이 '기초학문'에 속하는 것을 둘러싸고 '날이 새는'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물론 서울대 구성원들이나 관련 집단들의 동의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고 숙의과정에 부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의 개혁은 학벌특권을 폐지하고 보다 인간적인 교육시스템을 바라는 국민적 힘으로 추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하나의 정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조개혁을 향한 정책패러다임 전환의 각도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입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은 손호철, 최갑수, 김귀옥, 김성희 교수의 순서로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금요일에 에 게재됩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편집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2012년 11월 7일 수요일

경제민주화 실종


이글은 대자보 2012-11-06일자 기사 '경제민주화 실종'을 퍼왔습니다.
[김영호 칼럼] 대선주자들은 민생복리가 경제민주화라는 사실 깨달아야

경제민주화가 18대 대통령 선거의 대세를 결판낼 듯 했다. 그 까닭에 세 후보가 다 같이 경제학자들로 진용을 꾸리고 경제민주화를 선점할 듯이 기세를 올렸다. 그러자 재계가 후보들에게 경제민주화 공약을 철회하라고 반격하고 나섰다. 그 탓인지 대선을 45여일 앞둔 시점에서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모습이다. 세 후보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인 먹고사는 문제는 뒷전에 두고 토론회도 마다한 채 악수공세나 펴며 한 표를 호소할 뿐이다. 

세 후보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재벌규제에 국한되어 있다. 재벌규제는 경제민주화의 부분적인 개념이지 전체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나마도 제한적이고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친기업을 표방한 이명박 정권이 국회에서 날치기로 출자총액제한제를 폐지하고 산업자본의 금융산업 지배비율을 완화했다. 바로 그 출자총액제한제 부활과 금산분리 강화에다 순환출자 규제가 논의되는 정도이다. 규제강도에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런 제한적인 재벌규제로는 그들이 말하는 재벌개혁을 결코 이룩할 수 없다. 

헌법 119조 2항은 경제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이 조항은 경제민주화에 관해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한 제약적 규정으로서 국가는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역대정권이 이 헌법정신을 망각하고 국민경제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각종 규제를 경쟁적으로 완화했다. 그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인해 지금 한국사회는 반목과 갈등으로 진통하고 있다. 

1987년 체제 이후 역대 정권의 공통점은 규제완화를 물신처럼 숭배했다는 점이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완화대상이 아니다.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역시 완화대상이 될 수 없다.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은 완화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런데 역대정권이 모든 규제를 경제발전을 제약하는 해악처럼 여기고 경쟁적으로 완화 내지 철폐했다. 

역대정권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며 노동규제를 대폭 완화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같은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은 절반 수준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들이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한 바람에 부동산 투기가 일어났다. 집값이 뛰자 돈을 빌려 집을 마련한 이른바 ‘하우스 푸어’들이 집값 하락으로 자칫 집을 날릴 판이다. 소득의 6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써야하는 하우스 푸어가 56만9,000가구나 된다. 이들의 부채가 무려 149조5,000억원이다.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가 316만명인데 그 빚이 279조원에 달한다. 

유통재벌이 골목상권을 침탈해 동네 가게들이 무더기로 망하고 있다. 자영업자 부채가 430조원으로 2011년 1월부터 금년 3월까지 16.9%나 증가하여 경고음이 날로 높아진다. 그 중에서 버는 돈의 40% 넘게 빚 갚는데 쓰는 과다채무가구가 14.8%에 달한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가 82만9669명인데 이것은 전체 사업자 519만6918명의 16%에 해당한다. 식당이나 가게가 6곳 중에 1곳 꼴로 문을 닫았다는 소리다. 창업 3년만에 절반은 장사를 그만 둔다고 한다.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가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돈을 발려준 다음 연체료를 받거나 담보물을 챙긴다. 그 약탈적 대출 탓에 182만명이 신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0년 이후 3년 내리 쌀농사가 대흉작이다. 올해 쌀 자급률이 80%를 넘을지 의문이다. 지난해 곡물자급률이 22.6%로 떨어진 상황에서 전방위 FTA(자유무역협정)가 농업포기를 압박하고 있다. 300만 농민이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에 고소득층은 불황을 모른다. 지난해 해외에서 연간 2만달러 이상 쓴 신용카드 사용자(법인 포함)가 6만3,727명으로 전년보다 16.9%나 증가했다. 그 사용액이 무려 31억 달러에 이른다. 1996~2010년 전체 근로자의 소득이 2,194만원에서 2,523만원으로 고작 15% 증가에 그쳤다. 그런데 상위 1%는 1억624만원에서 1억8,795만으로 77% 증가했고 상위 0.1%는 2억1,346만원에서 5억4,435만원으로 155%나 뛰었다. 근로소득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난제는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이다. 양극화 완화를 통한 사회통합이 국가적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대선주자들은 민생복리가 바로 경제민주화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공동대표  
언론광장 공동대표
시사평론가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대선 빅3 신뢰도, 문재인만 웃었다


이글은 시사IN 2012-10-22일자 기사 '대선 빅3 신뢰도, 문재인만 웃었다'를 퍼왔습니다.
(시사IN)이 창간 5주년을 맞아 주요 대선주자의 신뢰·불신도를 조사했다. 신뢰의 정치인임을 내세우는 박근혜 후보의 불신도가 35.8%로 가장 높았다. 안철수 후보의 신뢰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문재인은 파란불, 박근혜와 안철수는 노란불. (시사IN)이 창간 5주년 기념으로 실시한 신뢰도 조사를 한 줄로 요약하면 그렇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지라 이번 조사에서는 주요 대선주자의 신뢰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단순 지지율 조사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유권자의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이번 조사는 2007년 (시사IN)이 창간 기념으로 실시한 조사와 비교된다. 당시 조사에서도 가장 신뢰하는 대선주자와 가장 불신하는 대선주자에 대해서 물었다. 그때 조사와 비교하면 문재인·안철수 등 현재의 중도·진보 진영 후보는 당시의 손학규·정동영·문국현 후보에 비해 신뢰도가 높은 편이고, 현재의 박근혜 후보는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비해서 불신도가 높은 편이다.


정치인 불신도 중 단연 높은 수치

대체로 정치인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는 지지도와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미디어리서치의 이제욱 사회여론조사본부 수석부장도 “정치인 신뢰도 조사 결과는 지지도 조사와 일맥상통한다”라고 말했다. 2007년의 신뢰도 조사 결과와 2012년의 결과 모두 각종 매체가 쏟아내는 대선주자 지지도와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신도 조사 결과는 지지도와 전혀 다른 맥락으로 나타난다. 

2007년 조사에서 이명박 후보의 신뢰도는 34.9%였는데 박근혜 후보는 이번 조사에서 38.1%를 차지해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불신도에서는 차이가 크다. 당시 이명박 후보를 불신한다는 답변은 14.2%였는 데 비해 이번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5.8%가 박 후보를 불신한다고 답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중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2007년 대선 당시 BBK, 도곡동 땅 실소유 여부 등을 놓고 각종 의혹이 쏟아지면서 ‘신뢰’에 관한 한 가장 취약했던 이명박 후보보다 박 후보의 불신도가 곱절 이상 높다는 부분은 이례적이다.  

‘신뢰’는 박근혜 후보의 대표 상품이었다. 정치적 결단의 지점에서 박 후보는 신뢰를 자주 언급했다. 그러나 ‘신뢰의 박근혜’는 이제 과거형이 되었다. 2007년, 2009년, 2010년 조사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한 불신도는 각각 3.1%, 6.5%, 3.2%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조사에서 35.8%로 폭증했다. 연이은 측근 비리와 캠프 내 갈등으로 인해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가 ‘신뢰의 박근혜’ 이미지를 고수하기는 힘들 것이라 예상된다.  

ⓒ청와대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위 왼쪽)은 신뢰하는 대통령 1위에 올랐다.

2007년 조사 때 박 후보는 비록 이명박 후보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내준 처지였지만 신뢰도에서는 23.2%라는 높은 수치를 얻었다. 2009년에 38%까지 치솟았던 박 후보 신뢰도는 2010년 28.9%로 다소 하락했다가 이번에 38.1%로 다시 반등했다. 

2010년 잠시 신뢰도가 떨어졌을 때는 박 후보가 세종시 이전 문제로 이명박 정부와 대립하고 있었다. 당시 친박계는 “당장은 손해지만 장기적으로는 손해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는데, 이는 사실로 드러났다. 박 후보가 지난 총선에 이어 현재까지 ‘충청권 우위’를 이어가는 데에는 ‘세종시 투쟁’ 당시 충청 유권자들에게 심어준 ‘우리 편’이라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체로 선거가 가까워오면 유권자들이 호불호를 명확히 하기 때문에 유력 후보의 지지율은 일정 수치로 수렴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지지율과 연동되는 신뢰도 역시 수렴된다. 38.1%라는 이번 조사에서의 박 후보 신뢰도는 2009년 기록한 고점을 회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확장성이다. 야권의 두 후보가 신뢰도를 나눠가지는 데 비해 보수층의 지지가 집중될 수밖에 없는 박 후보의 신뢰도가 40%를 넘지 못한다는 건 우려할 만하다. 

박근혜 후보가 오랫동안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타이틀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은 ‘원칙을 지킨다’는 이미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원칙’이 변화하는 정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흔들리고 있다. 과거사 인식이 문제가 되어 사과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대통합 선대위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비리 전력자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원칙’이 흔들렸다.


부동층에서 문재인 앞서는 안철수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집권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 후보는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개명하고 당 색깔도 파랑에서 빨강으로 바꿨다. 이명박 정부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노력이 총선에서는 적잖은 효과를 나타냈다. 박 후보는 다시 한번 ‘선거의 여왕’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오른 다수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는 박 후보에게 오히려 ‘부채의 승계자’라는 부담을 지우고 있다.

높은 불신도는 스윙보터(부동층 유권자)가 박 후보를 선택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해 박 후보의 지지도 확장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하거나 응답하지 않은 층(부동층)에서 박 후보를 불신한다는 응답이 37.9%였다. 안 후보는 12.4%, 문 후보는 8.8%였다. 이런 부동층의 흐름은 안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했을 경우에도 박 후보에게 흡수되는 표가 많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9월19일 출마선언을 한 안철수 후보 역시 이번 신뢰도 조사 결과 노란불이 켜졌다. 안 후보의 신뢰도는 27.3%로, 26.2%를 얻은 문재인 후보와 오차범위 안에 있다. 안 후보에게 좋은 소식은, 부동층에서는 43.3% 대 24.9%로 문 후보를 앞선다는 것이다. 안 후보의 최대 강점인 부동층 소구력이 확인됐다. 하지만 나쁜 소식도 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37.5% 대 52.8%로 문 후보에게 신뢰도가 제법 뒤진다. 두 사람을 저울질하던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 안 후보보다 문 후보를 더 신뢰한다는 결과는 안 후보에게는 적신호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불신도다. 안 후보의 불신도는 25.4%로 문 후보 불신도(13.2%)의 거의 곱절에 달했다. 추석 전후로 벌어진 언론의 네거티브 공세에 적잖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 후보와 관련해 신뢰의 탑과 불신의 벽이 어디에 쌓여 있는지를 보면 안 후보의 위기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박 후보의 경우 50세 이상(50대 53.9%, 60세 이상 65.4%)과 여성(42.3%, 남성은 33.8%) 층에서 신뢰도가 두드러지게 높았다. 안 후보는 20대(45.9%)와  무당파(43.3%) 층에서 높았다. 문재인 후보는 30대(36.5%)와 40대(31.9%)에서 높았다. 

불신도를 보면 박근혜 후보는 20대(48.3%)와 30대(52.2%), 남성(43.7%, 여성은 27.9%), 화이트칼라(49.4%)에서 높게 나타났다. 안철수 후보는 50세 이상(50대 34.6%, 60세 이상 33.1%)에서 신뢰하지 않는 유권자가 많았다. 문재인 후보는 전반적으로 불신도가 낮은 가운데 30대(6.6%)와 40대(11.3%)에서 특히 낮았다. 

ⓒ연합뉴스 박정희 전 대통령(사진 오른쪽)의 신뢰도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흔히 안 후보와 문 후보를 비교할 때 안 후보는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산토끼를 잡는 후보’로, 반면 민주당 정통 지지층을 본진으로 삼는 문 후보는 ‘집토끼를 지키는 후보’로 비유된다. 

그래서 안 후보가 표의 확장성이 더 크기 때문에 본선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번 신뢰도 조사 결과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준다. 안철수 후보가 박근혜 후보의 대척점 위치에 있고 문재인 후보가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양상이 여러 수치에서 나타났다. 

이런 식이다. 나이가 들수록 박 후보를 지지하고 어릴수록 안 후보를 지지하는데 30대와 40대에서는 문 후보를 신뢰하는 사람이 가장 많고 문 후보를 가장 적게 불신한다. 

안 후보는 박 후보의 본진 격인 PK(부산·울산·경남) 지역과 TK(대구·경북) 지역에서 불신도가 35.7%와 33.7%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문 후보는 11.3%와 19.8%로 안 후보보다 낮다. 신뢰·불신 지수만 보면, 안 후보보다도 문 후보의 확장성이 오히려 돋보이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문재인의 불신도가 낮은 이유

그런데 안 후보의 불신도 중에는 새누리당 지지층의 ‘지분’이 가장 크다(새누리당 지지층에서 48%). 새누리당 지지층이 문 후보보다는 안 후보를 ‘주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해석과, 안 후보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보수 성향 유권자에 대한 호소력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해석이 모두 가능한 결과다. 

문재인 후보는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 수치보다는 추세가 괜찮은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후보는 고전적인 지지층은 그대로인 반면 불신하는 유권자가 급성장한 형국이고, 안철수 후보는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신하는 유권자가 급성장한 형국인 데 비해 문재인 후보는 신뢰도(26.2%)가 높았는데 불신도(13.2%)는 낮게 나왔다. 

문 후보가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은 추석 전후 검증 공세가 안 후보에게 집중되면서 반사이익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이은 검증 공세와 대통령이 정당 소속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면서 안 후보가 문 후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불안한 후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신뢰도 조사에서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와 불신도도 조사를 했는데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 후보는 여기서도 ‘박정희의 딸’ 박근혜 후보에 버금가는 후광효과를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2007년 6.6%에 불과했지만 서거 후 급상승해 2009년 28.3%를,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는 33.7%를 기록했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07년 52.7%였던 것이 2009년에는 41.8%로 떨어졌고 다시 이번 조사에서는 32.9%로 떨어져서 노 전 대통령보다도 낮게 나왔다. 미디어리서치의 이제욱 부장은 “인혁당 사건, 장준하 의문사 등이 환기되는 등 과거사 정국을 거치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상반기에 조사했다면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뢰도도 2009년 12.3%에서 18.1%로 증가했다. 노무현·김대중 두 대통령의 신뢰도를 합한 수치가 51.8%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야권 후보에게 중요한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불신하는 대통령은 전두환(29.8%), 이명박(17.7%), 김영삼(8.9%) 순이었다. 이는 이들의 계승자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큰 짐이 되리라 보인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증세 얘기하면 필패" vs "폭발적 증세운동 가능"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1일자 기사 '"증세 얘기하면 필패" vs "폭발적 증세운동 가능"'을 퍼왔습니다.
[2012 정책토크] 복지국가와 세금 : 부자증세부터 보편증세까지

프레시안과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공동 주최한 '2012 정책토크 : 시민사회,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다'의 2부 행사 '부자증세부터 보편증세까지'가 지난18일 오후 7시 열렸다.

어느 샌가 수면 아래로 사라진 복지 논쟁. 대선 주자들 모두 '민생고(苦) 해결'을 외치지만, 이렇다 할 복지 공약은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날 대담에 나선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복지민심은 아직 식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담이 진행되는 내내, 두 사람은 넘치는 입담을 무기로 논쟁을 벌여 나갔다. 차기 정권이 우선해야 할 복지 정책은 무엇인지, 증세 논쟁을 도마 위에 올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리고 부자증세와 보편증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를 두고 두 사람이 나눈 대담 내용을 싣는다. 이날 대담 사회는 박용대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부소장이 맡았다. (편집자)

▲ 왼쪽이 윤홍식 인하대 교수, 오른쪽이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프레시안(최하얀)

윤 "보편적 소득보장 먼저…공공부조로는 빈곤 해결 못 해"오 "취약계층 우선 복지혜택 받아야…그 다음에 무상의료 전면화"

박용대 : 한 정권이 가진 시간은 5년뿐이다. 따라서 차기 정권에서 복지를 확대함에 있어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 같다. 우선되어야 할 복지 정책이란 무엇일까.

오건호 :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가 우선되어야 한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 확대가 중요하다.

지난 2~3년간의 복지 논쟁은 '보편적 사회서비스 확충'을 중심에 놓고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복지 예산이 사회서비스 확대에만 투하되는 한계가 생겼다. 반면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 예산은 오히려 동결됐다. 복지, 복지 외치는 동안 가장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는 되레 축소된 셈이다.

물론 족보로 따지면 취약계층을 우선하는 복지는 선별복지다. 하지만 선별은 악(惡), 보편은 선(善)이란 구조로 복지 논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를 확립하고 나서 전 계층을 상대로 한 보편복지를 만들어야 한다. 나는 무엇보다 '무상의료'가 시급하다고 본다. 개인이 보험료를 제외한 의료비로 연 100만 원 이상을 부담하지 않는 '건강보험 하나로' 방식으로 무상의료를 전면화해야 한다.

박용대 :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오건호 : 국민 한 명이 평균 약 1만1000원 정도의 보험료를 더 내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올리자는 거다. 건보가 대략 24조 원을 더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단 1원도 더 내지 않는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다. 다만 24조 원을 만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개인이 최대 100만 원의 의료비만 부담하도록 하고 그 이상은 건보가 부담하게 하면 필요한 재원은 14조 원이 된다. 이걸 정부와 기업에 나눠서 부담하게 하자는 거다. 물론 반발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먼저 나서서 "1만1000원 더 낸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거라고 본다.

윤홍식 : '공공부조'가 언제나 빈곤과 불평등의 해결책인 것은 아니었다. 전체 사회지출 예산의 18%를 공공부조에 쏟아 붓는 미국의 빈곤율은 예산의 1%만 공공부조에 쏟아 붓는 스웨덴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보편적 소등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오로지 공공부조에만 의지해 왔을 뿐이다. 이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부조 정책에 한계가 보인다.

보편적 소득보장을 얘기해야 한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학생수당, 실업수당 등을 더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박용대 : 스웨덴 복지도 보편적 소득보장 우선방식인가?

윤홍식 : 그렇다. 스웨덴은 보편적 소득보장을 먼저 하고, 그래도 부족한 사람들에게만 공공부조가 투여된다. 스웨덴에서 공공부조는 잔여적 개념이다.

오건호 : 하지만 한국과 스웨덴은 복지의 토대 자체가 다르다. 보편적 소득보장을 우선하고 사각지대마다 공공부조를 집어넣기에는 상황이 너무 척박하다. 현재 조건에서 스웨덴만큼 두껍게 보편 복지를 일단 깔 수가 없다. 그래서 상징적으로 보편적 의료복지를 도입하되, 가장 고통 받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공공부조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윤홍식 : 취약계층 지원과 보편적 소득보장이 서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소등보장을 하면 취약계층도 혜택을 받는다. 보편적 사회서비스의 원칙은 누구나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한 방식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모범적 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은 세금도 서비스 이용부담도 모두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부담한다.

윤 "돈 얘기하면 보수프레임에 걸린다…사회적 합의 만들고 나서 재정 논의"오 "도망 다니지 말고 재원 논쟁해야…아무리 적어도 50조 이상 필요"

박용대 : 이제 재정 얘기로 넘어가 보자. 지금 나온 복지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새누리당은 약 10조~20조 사이가 필요해보이고, 시민ㆍ사회 진영의 요구대로면 25조~30조 가량 필요할 거 같다. 어느 쪽으로 가든 '증세'는 어쩔 수 없이 꼭 필요해 보인다.

오건호 :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이 정확히 얼마인지 계산부터 해야 한다. 아직까지 이게 계산이 안 됐다. 그래서 작년에 복지 재원 논쟁이 불붙은 이후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복지 공약들을 바탕으로 계산하면 약 55조~60조 원이 필요하다. 통합진보당 공약도 마찬가지 예산이 든다. 필요한 정책을 일단 툭툭 던져만 놨다.

이 정도 예산이 필요하단 사실을 전제로 놓고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가 다시 발목을 잡을 거다. 계속 도망 다니면서 돈 얘기를 안 할 수는 없다. 필요 예산을 확정해놓고, 그 다음부터 지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며 청사진 그렸어야 한다. 지금은 첫 단추도 못 끼웠다.

윤홍식 : 하지만 역사적으로 복지 재원 확보를 위해 싸운 사례는 없다. 어느 나라이든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우선 '정책'들을 추진하고, 그 정책을 추진한 집단이 정권을 잡으면 재원을 마련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대선 정국에서 복지가 갑자기 수면 아래로 사라진 것은 돈 얘기를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복지 공약들을 정당이 받고 안 받고는 복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대중들의 조직적 요구가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지난 4.11 총선 때는 그게 없었다. 이런 조직적 흐름 만들기 위해서는 돈 얘기가 아니라 복지에 관한 비전을 내세울 때다.

오건호 : 나는 사람들이 진짜로 궁금해 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얼마큼 필요한지, 내 주머니에서 얼마큼 나가야 하는 건지 등을 알고 싶어 한다고 본다. 복지 국가 비전도 중요하고, 대중 조직도 물론 중요하다. 예컨대 '우리가 2017년에는 이런 모습으로 산다'란 걸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돈 얘기를 함께 해야 한다. 이렇게 전체를 패키지로 해서, 재정 로드맵도 제출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성실한 답변'이 필요하단 거다.

윤홍식 : 복지 정책의 실현 가능성은 돈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합의에 달린 것이라고 본다. 예컨대 민생치안을 위해 경찰력을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이 나왔을 때 재원 논쟁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합의하면 돈은 딸려 온다.

게다가 선거다. 선거에서 '증세'를 아젠다로 승리한 정당이 역사적으로 있는지도 의문이다. 증세 얘기하면 선거에서 진다. 보수한테 이길 수가 없다.

오건호 : 대부분 사회복지학자들을 보면 준거모델일 항상 유럽이다. 그런데 복지 확대한 2차 대전 직후의 유럽과 현재 한국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당시 유럽은 노사조합적 시스템이 갖춰졌었고, 경제도 잘 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 때의 유럽만큼의 진보정당, 노조가 없다. 정당과 노조 기반으로는 복지를 절대 못할 거다. 나는 한국의 복지국가 경로는 지구상의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될 거라고 본다.

증세 논쟁하면 진다고 하셨는데, 보편 증세 과감히 터뜨려서 폭발력 만들 수 있다고 본다. 2008년 촛불과 2010년 무상급식 상황을 돌아보면, 한국에서 독특하게 생기고 있는 연성 권력자원이 있다. 기존의 제도화된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권력 자원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본다.

윤홍식 : 특수성은 보편성 하에 존재한다. 물론 권력 자원이 언제나 노동자ㆍ농민이란 것은 아니다.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주체는 어쨌든 필요하다. 서구의 경험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그 주체가 노동자나 좌파라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여기서 재원 논쟁을 시작하면 보수진영이 던져놓은 덫에 걸려들까 우려된다.

▲ ⓒ프레시안(최하얀)

윤 "조세저항 고려해 단계별 부자증세 방안 필요"오 "보편증세 위한 증세정치 만들어야"

박용대 : 부자 증세 얘기로 넘어가보자.

윤홍식 : 보편적 복지는 보편증세를 통해야 가능하다. 다만 '단계'가 필요하다고는 본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금'이다. 따라서 복지 국가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아킬레스건인 세금 제도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굉장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부자 증세를 통해서 조세 형평성을 키우고, 지출구조 효율화를 해서 마련된 돈으로 가장 필요한 복지를 먼저 하고, 국민들이 그 복지를 체감할 때 사회적 합의 이끌면서 보편 증세 만들어 가야 한다. 이게 차기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박용대 : 재원이 확실히 부족하다는 말씀인데, 바로 보편 증세를 하면 반감이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고 보는 건가?

윤홍식 : 어차피 큰돈을 다 모아도 제대로 못 쓴다고 보는 게 적당하다. 복지는 인프라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거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당장 30조~40조 원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도 시간이 든다. 이 기간 동안 충분히 사회적 합의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지금 100조 원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공공복지 인프라가 이렇게 부족한 현실에서, 그 많은 돈은 결국 민간 없자들 배만 불리게 될 것이다.

오건호 : 지금 부자 증세도 잘못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복지 정책들을 쫙 리스트에 계산기를 툭툭 두들겨서 증세 페이퍼 두 세장 제출하고 끝냈다.

보편 증세를 위해서는 재원 확충을 위한 정치, 즉 '증세 정치'가 필요하다. 재원은 필요한데 세금과 공공에 대한 불신이 많으므로 조세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간 복지 민심이 축적되어 왔다. 예컨대 2010년까지는 세금 얘기만 나오면 다들 화부터 냈다. 그런데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터닝 포인트로 복지 요구가 선별에서 보편으로 돌아섰다. 이 하나로 뭉치기 어려운 양가적 감정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나는 이 복지 민심을 가지고 폭발적인 보편 증세 운동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윤홍식 : 조세 저항이 과연 사라질까? 스웨덴 사람들도 "우리 낼 만큼 내고 있다. 부자들 너네 더 내라. 불공평하다"란 얘기 한다. 복지에 만족하니 "나 세금 낼래!"라고 할 사람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웨덴 등에서 조세 저항이 있음에도 복지가 지탱이 되는 것은, 세금을 내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나의 세금이 복지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내'하는 것이다.

오건호 : 스웨덴 사람들에게도 조세 저항이 있다는 사실, 그게 중요하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왜곡된 여론이 세금에 관한 여론이다. 세금을 왜 내는지도 모르고, 세금에 대한 교육도 없었고,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도 사람들은 모른다. 사람들이 세금에 대해서 접하는 것은 "어떤 공무원이 탈세했다" 이런 자극적인 기사뿐이다. 사람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세금 내고 있는 지를 수면 위로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세금 폭탄이라고 자꾸 말하는데, 그 폭탄 수류탄 뽑고 던져보자는 거다.

박용대 : 이제 슬슬 정리해야할 거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건호 : 민주당을 비롯하여 정치권, 너무 안이하다. 복지 공약과 그를 위해 필요한 재정들을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 유권자들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 있는 답을 정치권이 내놓아야 한다.

윤홍기 : 복지는 정치다. 정치는 프레임 싸움이다. 프레임 싸움에서 이겨야 복지국가가 가능하다. 이런 부분을 대선 국면에서 잊지 말아야 한다.

 /최하얀 기자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노무현도, 이명박도 이해 못한 부동산의 비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26일자 기사 '노무현도, 이명박도 이해 못한 부동산의 비밀'을 퍼왔습니다.
[대선쟁점 일문일답] 부동산정책

1. 부동산정책을 보면 대선주자 능력의 70%는 알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요?⇨ 행정학 교과서들에 따르면 좋은 인재가 갖추어야 할 2가지 능력은 '문제해결능력'과 '위기관리능력'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이 경착륙과 연착륙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대선주자들 중 누가 더 좋은 인재인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2. 부동산정책이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이 정책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첫째, 국민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국민들은 전 재산의 많은 부분을 부동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냉정해지지 못합니다. 둘째, 국가경제와 가계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셋째, 국민들과 전문가들 사이에 오해와 오류가 많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3. 정부 관료들이나 부동산 전문가들이 선진국의 성공과 실패 사례로부터 교훈을 거의 얻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인가요?⇨ 사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지난 30년간 이웃나라 일본이 엄청난 거품을 키우고 또 그것을 붕괴시켜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관료들이나 부동산 전문가들 중 이 과정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4. 1980년대 일본에서 엄청나게 부동산 거품이 상승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그 시발점에는 금융규제완화가 있었습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 과정에서 엄청나게 부를 축적한 국제 금융자본은, 1980년대에 유가가 떨어지자 눈을 선진국으로 돌려 각국에 금융규제완화를 요구하게 됩니다. 금융규제완화를 해서 금융산업을 선진화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이들의 이런 논리는 때마침 당시 전 세계를 이데올로기로 장악한 레이거노믹스·대처리즘에 힘입어 전염병처럼 각국으로 퍼져 나갑니다.

5. 그 결과는 어떠했나요?⇨ 미국, 일본,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 전염병에 희생되었습니다. 이들 선진국들은 1980년대에 거의 예외 없이 금융규제완화를 했고, 또 1990년을 전후하여 거의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과 북유럽의 피해가 컸습니다.

6. 금융규제완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부동산 거품을 키우게 되나요?⇨ 금융규제완화가 이루어지면 국제적인 금융자본이 들어오고, 금융감독이 느슨해지며, 금융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이들 간에 과열경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과열경쟁은 필연적으로 저금리현상을 가져오게 되는데, 이 저금리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요 요인이 됩니다.

7. 1980년대 일본에서 저금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나요?⇨ 일단 국제적인 금융자본이 들어오면 저금리 기조가 형성됩니다. 국제적인 금융자본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축소시키면 국내 금융자본들은 그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고,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가 지속적으로 줄어들면 저금리 기조가 형성되는 겁니다. 그리고 금리가 떨어지면 부동자금들은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을 향해 달려가게 되어 있고,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에 자금이 넘치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게 됩니다.

8. 금융기관들이 국민들의 부동산투기를 부추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본의 거품상승 과정을 보면 저금리가 일차적으로 주가를 상승시켰고, 주가상승은대기업들로 하여금 금융기관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얼마든지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대출시장 중 상당부분을 잃은 금융기관들은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서민들의 부동산투기를 부추기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9. 노무현 정부는 DTI(Debt To Income, 총부채상환비율) 규제제도를 도입해서 대출이과도하게 느는 것을 막기도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DTI 규제는 대출상환액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제도로 매우 좋은 제도입니다. 유럽중앙은행도 이 제도를 높이 평가하고, 각국이 이것을 벤치마킹하도록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10. 노무현 정부는 이런 좋은 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왜 부동산 가격을 제때 잡지 못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대한민국 전체에 만연한 '사대주의적 성향' 때문일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 금융규제 강화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선진국들보다 과하면 안 된다고 경제관료들이 몇 마디 하자 바로 꼬리를 내렸습니다.

11.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들도 금융규제 강화론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요?⇨ 보유세만 강화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보유세 만능론이 만연했습니다.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큰 불행이었습니다. 자산시장의 생리를 잘 아는 경제통 측근이 한두 명이라도 있었다면, 8.31대책이 시행된 지 3~4개월이 지나도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바로 추가대책을 내놓았을 겁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2. 8.31대책은 왜 효과가 적었나요?⇨ 자산시장은 미래를 먹고사는 시장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여당이 재보궐선거에서 연전연패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고, 8.31대책도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시기에 8.31대책에 모든 것을 걸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적절한 대처법이 아니었습니다.

13. 그럼 당시에 청와대는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 노무현 정부가 8.31대책을 발표할 때 강남 아파트 가격을 20% 내리겠다고 했다면(8.31대책을 발표할 때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강남 아파트 가격을 2003년 9월 수준으로 되돌려놓겠다고 공언했다), 강도 높은 부동산정책을 융단폭격식으로 투하해서라도 그 목표를 달성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4. 노무현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지나치게 늦게 부활시킨 것도 정말 아쉬운 대목입니다.⇨ 분양가 상한제는 1990년대 우리나라 주택가격 안정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 제도 덕분에 1991년과 1997년 사이 가계소득지수가 100에서 197로 상승할 때 서울시 아파트가격지수는 100에서 103으로 상승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가 아파트 공급을 확대하되 분양가 상한제라는 안전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이 좋은 제도를 지나치게 늦게 부활시켰습니다.

15. 분양가 상한제는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하나요?⇨ 주택가격을 결정하는 요인 중 가장 큰 것은 매수 열기입니다. 매수 열기가 살아나면 가격이 오르고, 그것이 위축되면 가격이 내립니다. 1990년대 분양가 상한제는 무주택자로 하여금 기존주택을 매수하지 않고 기다리면 저렴한 양질의 주택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주었습니다. 이 기대는 기존주택에 대한 매수열기를 위축시켰고, 결과적으로 1990년대 부동산시장은 크게 안정되었습니다.

ⓒ프레시안

16. 2006년의 가격폭등에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책임도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뉴타운의 문제는 그것이 '대단지 개발'이라는 것입니다. 소규모 개발의 경우에는 도시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업비가 적게 듭니다. 반면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개발의 경우에는 도시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사업비가 엄청나게 많이 듭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그 차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보수언론들이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하니까 공급을 확대했는데 그것이 부동산 투기라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7. 급상승하던 부동산 가격은 2007년 1월부터 수그러듭니다. 그 주요 요인은 어디에 있었나요.⇨ 노무현 정부는 2006년 말에 가서야 강력한 3대 부동산정책을 내놓게 됩니다.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도 급상승하던 부동산 가격을 진정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금융규제 강화였습니다.

18. 당시 분양가 상한제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나요?⇨ 1990년대 초중반 분양가 상한제는 건설사들의 이해(利害)보다 무주택자들의 이해를 주로 반영했습니다. 그 결과 건설사 부도율이 5년 만에 1%에서 4%로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06년 이후 분양가 상한제는 무주택자들의 이해보다 건설사들의 이해를 더 많이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제도 부활 자체가 건설사 부도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무주택 서민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개념에 비추어보면 1990년대와 2006년 이후의 분양가 상한제는 시니피앙(signifiant/기표/개념의 외연)은 같았지만 시니피에(signifie/기의/개념의 내포)는 전혀 달랐던 겁니다.

19. 2006-2007년경에 토지임대부 주택과 환매조건부 주택이 대안이라는 주장도 많았습니다. 당시 청와대에서는 이런 대안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했었고요.⇨ 당시 청와대가 제대로 본 것입니다. 먼저 환매조건부 주택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그것은 싱가포르라는 특수한 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신들이 10~20년 전의 가격으로 토지를 공용수용해서 공급한 저가의 양질의 주택이 투기대상이 되면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환매조건부로 공급했습니다. 즉 생애 한 번만 시장에서 주택을 거래하여 차익을 남기되, 나머지 경우는 모두 다 정부기관인 주택청에 되팔도록 의무화한 것입니다.

20. 환매조건부 주택은 왜 우리나라에서 불가능한가요?⇨ 싱가포르처럼 국토의 80% 이상이 국유화되어 있고, 대부분의 주택이 주택청으로 환매되게 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환매조건부 주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민간주택시장의 비중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애초에 환매조건부 주택은 불가능합니다. 바보가 아니라면 차익이 보장되는 민간주택을 매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1. 토지임대부 주택은 LH공사가 시범적으로 공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LH공사의 토지임대부 주택 시범사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용적률 1000% 운운하며 자신의 고민을 노출하고 다녔는데, 그의 고민 속에 이 대안의 허점이 들어 있습니다. 서울에서 시가 4억 원에 공급되는 아파트가 있다고 할 때, 매수자가 건축분 2억 원을 매수하고 토지분 2억 원을 임차한다면 이것은 결코 반값아파트가 아닙니다. 또 토지분 2억 원을 임차하게 되면 그 임대료가 엄청납니다. 연이율 5%만 가정해도 연간 임대료가 1000만 원에 달합니다.

22. 그런 주택을 매수해서 임대료 엄청나게 내면서 사느니, 차라리 그냥 전세주택에서 살겠습니다.⇨ 그게 정답입니다. LH공사의 토지임대부 주택 시범사업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홍 전 대표가 용적률 1000% 운운하며 자신의 고민을 노출하고 다닐 때부터 이미 이 사업의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저희들은 판교신도시 연구를 하며 그게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았지만 말입니다.

23.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보금자리 주택이 공급되었습니다. 보금자리 주택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보금자리 주택은 2006년과 2007년 사이 대한주택공사가 내놓은 이른바 '주공식 반값 아파트'를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후 수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주택공사는 반값아파트를 내놓을 테니 그 비용(택지 조성에 필요한 도로 등 기간시설비)의 대부분을 혈세로 충당하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이때 노무현 정부는 주공의 제안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주택공사의 희망대로 주택공사와 건설사 등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보금자리 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24. 보금자리 주택을 '반값 아파트'라 하는데, 분양가 상한제 하의 아파트와는 어떻게 다릅니까?⇨ 1990년대 중반까지 시행된 '분양가 상한제'와 보금자리 주택의 차이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전자는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지 않았는데 후자는 매년 수조 원의 혈세를 투입하며 시행된다는 점. 둘째, 전자는 도심의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았는데 후자는 그것을 훼손하며 시행된다는 점. 셋째, 전자는 국민임대 주택공급을 감소시키지 않았는데 후자는 그것의 희생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25. 경실련의 김헌동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이 주택에 대해서 아주 높게 평가했는데,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김 본부장은 원래부터 '분양가 상한제'에 애착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런 태도는 매우 바람직한 것입니다. 공공부문의 부채를 늘리지 않고, 또 국민혈세를 별도로 투입하지 않고도 서민들에게 저렴하고 질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대안이 바로 분양가 상한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노무현 정부 때 토건족들에 의해 형해화된 분양가 상한제를 대신할 보금자리 주택이 나타나자 진영논리를 떠나 크게 환영한 것 같습니다.

26. 그러나 대다수 부동산 전문가들과 대선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보금자리 주택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금자리 주택은 분양가 상한제와 마찬가지로 가격급등기에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가격급락의 우려가 있는 시기에는 경착륙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현 시기에 보금자리 주택을 100%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 아파트. ⓒ뉴시스

27. 최근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 가격은 5% 하락했습니다. 이 중강북(한강 이북 14개구)이 4.4% 하락했고, 강남(한강 이남 11개구)은 5.3% 하락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은행 가격변동률 통계가 현실을 20% 정도 적게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울 아파트 가격은 6.25% 하락했고, 강북은 5.5% 하락했으며, 강남은 6.6% 하락했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28.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1990년대 일본처럼 경착륙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으로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잘하면 1990년대 일본식 경착륙은 피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6.25% 하락률이라 하여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닙니다. 바람직한 연착륙은 연평균 주택가격 상승률을 -1%~+1%로 잡아두고 PIR(Price to Income Ratio,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연평균 주택가격 하락률이 2~3%를 넘어서면 시장이 살얼음처럼 허약해지기 때문에 일순간 외부충격에 의해 경착륙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29. 일부 학자들은 경착륙도 불사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거품을 조기에 붕괴시키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그것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한 주장입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스웨덴이 어떤 일을 했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스웨덴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정부보증을 통해 금융기관들의 위기 확산을 조기에 차단했습니다. 1990년대 초 4~5년간의 경착륙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30. 부동산시장 연착륙 방안을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차적으로 연착륙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2000년에는 우리나라에 부동산 거품이 없었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000년의 PIR을 일차적인 목표로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통계청과 국민은행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 보면, 향후 5년간 서울아파트 가격을 현 수준에 동결시킬 경우, PIR이 10.1배에서 8.0배로 낮아져 거품상승 이전인 2000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가계소득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입니다(서울아파트 PIR 변화 : 2000년 8배, 2006년 13배, 2012년 10배). 이런 수치들에 비추어보면 향후 정부가 부동산정책을 잘하면 연착륙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31. 연착륙정책이 투기를 유발하고 가격급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심각하게 우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은 이미 2010년을 기점으로 대세하락기, 혹은 가격안정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1~2년 안에 투기가 재발되거나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또 투기재발, 가격급등이 우려되는 경우 정부가 DTI, LTV 규제강화로 얼마든지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투기가 재발하거나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32. 정부가 연착륙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연착륙정책에는 최대한 신중해야 합니다. 금융규제완화(DTI, LTV 규제완화)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둘째, 청년층 가계부채를 증가시키는 연착륙정책도 좋지 못합니다. 최근 생애최초 주택매수자에 대한 저리대출을 연착륙대책으로 내놓은 사람들도 있으나 적절한 대안이 아닙니다. 셋째, 후세대 부담을 가중시키는 연착륙정책에도 최대한 신중해야 합니다. 일본과 같이 국가채무와 공공기관 채무가 급증할 경우 경제전반에 걸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연착륙을 유도할 정책수단이 많지 않으므로, 가계부채와 정부 부채를 늘리지 않는 다른 수단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33.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은 어느 정도 되나요?⇨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부채 통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에서 집계되는 가계대출 통계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은행 자금순환 통계에서 집계되는 가계부채 통계입니다. 이 중에서 전자는 제도권 금융기관에 들어 있는 가계부채라 할 수 있는데, 지난 2/4분기 총액은 922조 원이었습니다. 후자는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다 포괄한다 할 수 있는데, 지난 1/4분기 가계부채 총액은 1107조 원이었습니다.

34.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OECD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78%로 OECD 회원국 24개국 중에서 10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같은 시기 우리나라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40%로 OECD 회원국 20개국 중에서 8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에는 그 순위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35. 가계부채가 불어나는 주요 요인은 어디에 있나요?⇨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가계부채가 불어나는 주요인은 좀 다릅니다. 노무현 정부 때는 부동산 가격상승이 가계부채를 늘려놓은 반면, 이명박 정부 때는 경기침체, 특히 서민경제 위축이 가계부채를 늘려 놓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노무현 정부 때는 중후반 4년간 가계부채가 193조 원 늘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는 지난 4년간 247조 원이나 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 때 서민경제 위축으로 생계형 대출이 많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6. 가계부채와 부동산시장이 경착륙으로 나아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악의 시나리오는 1990년대 일본처럼 경착륙하는 겁니다. 그 과정을 보면 몇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1단계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금융기관들이 만기연장을 기피하고 하우스푸어들의 원금상환을 독촉하는 단계입니다. 제2단계는 원금상환 독촉을 받은 하우스푸어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급매물을 내놓아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급락하는 단계입니다. 제3단계는 부동산 가격이 추가로 급락하면 금융기관들이 더 강하게 만기연장을 기피하고 원금상환도 더 강하게 독촉하는 단계입니다. 그 이후에는 이 과정이 악순환하게 됩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실채권더미에 눌린 금융기관들이 극도로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해 우량한 기업들까지 자금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흑자도산에 빠지는 상황이 도래합니다. 이런 상황을 일본식 복합불황이라 합니다.

37. 그러나 주택가격이 하락하더라도 1990년대 일본처럼 심각한 경착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습니다.⇨ 1990년대 일본의 경착륙 과정을 보면 세 가지 요인이 위기를 증폭시켰습니다. 첫째는 100%에 달하는 과도한 LTV(주택가격 대비 대출액 비율), 둘째는 10여 년 지연된 금융기관 구조조정, 셋째는 정부의 경솔한 거품해소정책(급격한 금리인상)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첫째, LTV가 50% 내외에 불과하다는 점, 둘째, 단기간에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한 경험이 있다는 점, 셋째 정부가 무리하게 경착륙을 유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1990년대 일본처럼 심각한 경착륙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38. 최근 일부 대권주자들은 정부가 빚을 내서 하우스푸어 주택을 사들여 이것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투기가 재발할지 모른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하우스푸어 주택을 사들여야 할 만큼 시장 상황이 안 좋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를 일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둘 다 틀렸습니다. 단기간에 투기가 재발할 것이라는 주장도 틀렸고, 또 하우스푸어 주택을 사들여야 할 만큼 시장 상황이 안 좋다는 주장도 틀렸습니다.

39. 오세훈 시장이 주도한 장기전세주택(일명 시프트)을 높이 평가하는 일부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고령층이 아닌 중간층에게 시프트를 공급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정책이 아닙니다. 중간층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받으면 이 주택이 절실히 필요한 저소득층, 장애인, 고령층이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세훈 시장도 시프트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을 줄이고, SH공사의 부채를 5배나 늘려놓는 등 심각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중간층 무주택자들에게는 금융규제강화,분양가상한제 등을 통해 주택가격을 낮춘 후,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은 자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40. 또 일부 학자들은 국민연금을 동원해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혹은 매입)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LH공사가 빚더미에 앉아 있는데, 그 문제를 풀기는커녕 또 다른 빚을 동원해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혹은 매입)하자는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차기정부가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자 한다면 LH공사의 부채의 내용부터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과다하게 보유한 토지를 팔게 하고, 그것을 매각한 대금으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혹은 매입)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이 이 문제는 옆으로 미루고 국민연금으로부터 또 다른 빚을 끌어와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입니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