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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일 금요일

朴당선인, 과거엔 '혹독한 심판관'이었다


이글은 뷰스앤뉴스(Views&News) 2013-02-01일자 기사 '朴당선인, 과거엔 '혹독한 심판관'이었다'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당대표때 줄줄이 낙마시키고 검증대상 확대

박근혜 당선인이 김용준 낙마 파동 등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도덕성 비공개 검증을 주장하고 새누리당이 곧바로 이를 위한 후속조치에 착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박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때, 한나라당은 가혹한 도덕성 잣대로 숱한 참여정부 후보들을 낙마시킨 데 이어 검증 대상을 대폭 확대시킨 '혹독한 심판관'이었다는 사실이다.

2005년 1월, 노무현 대통령은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을 교육부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재산 은닉, 부동산 투기, 아들의 병역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이 부총리는 임명 3일만에 낙마해야 했다. 당시 박 당선인이 대표였던 한나라당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노무현 정부를 비난했다. 

이어 두 달 뒤, 이번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도마위에 올랐다. 박근혜 대표는 그해 3월 7일 상임운영위에서 이 부총리의 투기 의혹을 거론하며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며 "모든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필요하다. 국회 상임위별로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장관 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요구했다. 당시는 인사청문회 대상이 총리, 감사원장, 헌법재판관, 중앙선관위원, 대법관, '빅4'라 불리던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후보자들로 한정돼 있었다.

박 대표 요구에 노 대통령은 곧바로 "검증 대상과 절차를 법제화하고 국회 인사청문회 적용 대상을 국무위원으로까지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고자 한다"고 화답했고, 그해 7월 임시국회에서 장관 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법이 개정돼 현재의 전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제도가 확립됐다. 박 대표는 노 대통령의 결단에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당시 박 대표는 철저한 도덕성 검증을 강조했다. 지금처럼 "도덕성은 비공개로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 적이 없다. "과거의 관행"을 너무 문제 삼아선 안된다는 주장도 하지 않았다. 권력을 잡고 자신이 임명한 후보들이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사태가 잇따르자 입장을 바꾼 게 아니냐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목이다.

박 당선인은 잇단 낙마 파문에도 남탓을 하는 분위기다. 

반면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기준, 이헌재 부총리가 잇따라 낙마하자 인사 검증 실패를 물어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 박정규 민정수석에게 사표를 받았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에서도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하자 검증 책임을 지고 정동기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김동현 기자

2012년 6월 10일 일요일

'그래도 이해찬', 색깔론 뚫고 극적 역전 성공


이글은 프레시안 2012-06-09일자 기사 ''그래도 이해찬', 색깔론 뚫고 극적 역전 성공'을 퍼왔습니다.
[6.9 민주 전당대회] '강한 대표론' 힘 받아…비토 정서 극복 과제

결국 '그래도 이해찬'이었다. 9일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에서 이해찬 후보가 김한길 후보를 총계 0.5% 포인트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고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순회대의원 투표에서 2053표를 기록해 2263표인 김한길 후보에게 뒤졌던 이 대표는 수도권 투표, 정책대의원투표, 모바일 투표에서 이 격차를 뒤집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힘겨운 승리였다. 전당대회 현장에서는 오히려 이 대표의 승리를 '이변'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대표의 한 측근도 "사실 지난 1주일이 없었으면 우리가 졌을 것이다"고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결국 새누리당의 색깔 공세에 강성으로 대응하면서 '강한 대표론'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새누리 색깔공세가 역전의 모멘텀으로 작용

 ▲ 9일 새 민주당 대표로 선출된 이해찬. ⓒ뉴시스

이 대표가 '박지원-이해찬 역할분담론'을 들고 나오고 문재인 고문까지 이에 가세했을 때만 해도 "역시 기획통이다. 승부는 끝났다"는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담합론'이 순식간에 힘을 얻고 다소 독선적인 면모의 이 대표 캐릭터가 부각되면서 엄청난 역풍이 불었다.

김한길 후보는 연일 담합론을 비판했고 다른 유력 대선 주자들도 하나같이 다 불쾌감을 표시했다.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다"고 역성을 들었던 문제인 고문의 지지율까지 동반하락하는 결과가 나왔다.

이 대표는 울산, 제주, 경남, 호남, 충북, 경기, 강원 등 부산과 대전충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김한길 최고위원에게 연전연패했다. 오히려 김 최고위원이 역대세론을 형성했을 정도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색깔공세가 강해지고 북한인권법 제정에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 이 대표를 향해 황우여 대표가 '자격심사' 운운하면서 분위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통합진보당 사태 등으로 민주당이 주춤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대표가 총리를 지낸 민주당의 상징적 인물의 자격을 '심사'한다고 하자 이 대표에 부정적인 당내 인사들도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면서 격분했다.

이 모멘텀에서 이 대표는 "신매카시즘 공세에 맞서겠다"고 깃발을 들었다. 이 대표가 강공모드를 선취하자 박지원 원내대표, 김한길 최고위원 등도 새누리당을 맹공하며 따라왔다.

이 대표는 라디오방송 인터뷰 중 임수경 의원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등 '버럭 해찬'으로 돌아왔다. 강성 면모를 바꿔보려던 시도를 버리고 원래 '이해찬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이어 당대표 겅선 전날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종북의원을 가리기 위해 천주교도들에게 십자가 밝게 했듯이 하면 된다"고 어이없는 발언을 쏟아낸 것도 이 대표에게는 막판 호재로 작용했다.

전통적 친노진영,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인 '미권스', 구 혁신과 통합 출신들이 이번 경선에서 주요한 지지기반으로 작동했다.

'이해찬 비토 정서' 극복이 필수적

이날 전당대회 승리로 민주당의 '이해찬 체제'가 출범했지만 과제는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광범위한 '이해찬 비토 정서' 극복이 필수적이다. 전당대회 장에서 친노계로 분류되는 서울의 한 의원은 "나는 이해찬 쪽이고 우리 대의원들도 내 의중을 파악했지만 지역 권리당원들 여론조사를 보니 2대 1정도로 김한길이 앞서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참여정부 청와대 출신의 한 인사도 "기본적으로 정치인이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것은 문제 아니냐"며 이 대표를 에둘러 비판했다.

'조중동에 맞선다', '수구세력을 꺽겠다'는 식의 강성 일변도 기조에 대한 우려도 있다. 김한길 최고위원의 경우 "저들의 녹슨 칼에 우리는 민생의 빵으로 맞서야 한다"고 이 대표와 차별화 한 바 있다. 경제민주화, 민생진보에 대한 고민이 이 대표 측의 고민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날 전당대회에서 정책대의원들은 생활 물가안정, 경제민주실현을 제일 중요한 과제로 꼽기도 했다.

문재인 제외한 다른 후보군들의 불안감은?

대선후보군과 관계설정도 중요한 숙제다. 이 대표가 문재인 고문 측의 친연성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박 연대'의 숨은 한 고리는 문재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호남 박지원-충청 이해찬-부산경남 문재인이 세 축을 형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경선 기간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애썼지만 후속 조치가 진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해찬 대표는, 지금 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면서 강경 일변도로 나서고 친노진영 내지 혁신과 통합 출신 인사들로 당직을 인선할 경우 반발이 극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는 이야기다.

이해찬은 누구인가?

서울시 부시장, 6선 의원, 교육부총리, 국무총리 등의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해찬 대표는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4년 간 '원로 원탁회의'의 멤버였지만 1952년 생으로 올해 나이도 만 예순에 불과하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시절부터 호가 난 운동권의 '기획통' 이었다 .1987년 '평민련'으로 평화민주당에 입당해 현실 정치권에 투신했다. 서울 관악에서 내리 5선을 했다. 2007년에는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정동영 후보에게 졌다. 이후 18대 총선에 불출마했고 이번 총선에선 세종시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컴백했다.

여러 선거에 참여하고 내각에 참여하면서 발휘한 기획력과 업무장악력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하지만 독선적, 독단적 면모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과 명확히 각을 세우는 모습이 지지자들에게 어필했지만 곧잘 '막말'파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내에서도 '뾰족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아 이번 전당대회를 제외하곤 당내 각종 경선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적이 드물었다. 최근 라디오방송 생방송 인터뷰 중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태곤 기자

2012년 1월 26일 목요일

5년 뒤엔 '친박 비대위' 대신 '친삼성 비대위' 뜰 수도


이글은 민중의소리 2012-01-25일자 기사 '5년 뒤엔 '친박 비대위' 대신 '친삼성 비대위' 뜰 수도'를 퍼왔습니다.
미국식 금권정치 직행하는 한나라 '당쇄신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돈봉투 파문으로 궁지에 몰리면서 미국식 원내정당화를 당 쇄신 해법으로 내놨다. 정치쇄신분과 위원장인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은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전국위 체제로 당을 바꾸면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직을 없애고 의회는 원내대표 중심으로 하는 방안을 이번주 비대위에서 공론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이같은 쇄신안이 "미국식 정당체제로 가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비대위의 당 쇄신안이 이상돈 비대위원의 말처럼 '획기적인' 내용이라 볼 수는 없다. 지난해 11월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부자정당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저비용 미국식 정당시스템' 도입을 언급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식 정당모델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의 집권당이던 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에서도 검토된 바 있다. 당시 민자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3천3백억의 비자금을 '정당운영비'로 사용했다는 검찰 수사결과가 나오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한국의 집권세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출시했던 단골 메뉴가 '미국식 정당모델'인 셈이다. 때문에 미국식 모델의 도입이 '돈봉투' 같은 구태정치 청산을 위한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이상돈 비대위원의 경우 2006년 9월 열린우리당의 오픈 프라이머리(정당이 선거 후보를 정하는 예비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당원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개방하는 것) 추진을 비난하며, 오픈 프라이머리가 "헌법에 보장하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선거법 개정과 '한사람이 여러 정당의 프라이머리에 참여할 수 없도록 검증하는 장치'가 없는 과도한 오픈 프라이머리는 "사기극"이고 "헌법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픈 프라이머리 없는 미국식 정당모델은 가능하지 않은데다(미국식 정당모델이 아니라도 오픈 프라이머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미 한나라당은 다가오는 총선 공천에서 지역구의 80%를 개방형 경선으로 치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식 정당체제? '1%'의 잔치로 전락한 미국 선거


ⓒ자료사진 미국에만 독특한 이 정당모델은 또한 미국에만 독특한 '금권정치'와 밀접히 연관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재탕삼탕' 방송이라는 점을 논외로 하면, 미국식 정당모델 자체는 '돈봉투'에 대한 해법이 될 수는 있다. 미국엔 한국이나 유럽국가들과 같은 개념의 당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당대회에 당원들을 동원하기 위한 '돈봉투'도 당연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미국에만 독특한 이 정당모델은 또한 미국에만 독특한 '금권정치'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상돈 비대위원이 '획기적인' 모델이라 일컫는 미국식 정당의 내용은 무엇일까? 

미국은 상·하원 의원들로 이뤄지는 의회정당과 정치자금 모금을 위한 선거정당, 즉 '전국위원회'가 분리돼있다. 전국위원회는 말 그대로 선거 정당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당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선거시기에만 일시적으로 모여드는 지지자들, 즉 임시 당원이 있을 뿐이다. 또한 전국위원회의 목적은 상대진영보다 많은 기부금을 모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므로, 일상적으로 자신의 비용과 노력을 들여 정치에 참여하는 당원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꾸준히 당비를 내는 실체적인 당원이 존재하지 않는 미국식 원내정당화는 기부금에 의존한 선거를 전제하는 것으로, 유럽식의 선거공영제와는 반대방향에 놓여있다. 남경필, 임해규 등 소위 '쇄신파'의원들이, 선거공영제의 주요 기둥인 국고보조금 폐지 주장을 시작한 것은 현재 한나라당이 구상중인 '정당 개혁'의 미래를 잘 보여준다. 미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미국식 정당체제 도입의 결과도 예상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 상·하원의원 선거는 철저하게 '1%'의 잔치이며 금권정치 그 자체다. 미 책임정치센터(CRP)에 따르면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동안 월가의 금융가에서 상·하원의원 등에게 후원된 돈은 50억 달러(약 5조 7000억원)였다. 2008년 한 해에만 월가의 전체 후원금은 2억2500만달러(약 2560억원)에 달했고 그 74%는 상·하원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런 방식으로 미국에서는 칼라일, 골드만삭스, JP모건, 화이자 같은 거대 기업들과 정치인들이 합법적으로 유착한다. 선거제도조차 '자유방임'인 미국에선 후보자들의 재력 만큼 TV광고를 비롯한 유료매체(Paid Media) 이용이 가능하므로, 모금 규모로 당락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한국에서도 정치인과 재벌기업의 유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삼성이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1000여개를 만들고 정치권에 비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한국의 재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치권을 포획하고 요구사항을 관철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유착'이 은밀하고 불법적인 것이었다면, 미국식 정당제도의 도입은 이를 제도로서 공식화하고 처벌조차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나라당 비대위의 구상에서, '친이계·친박계' 대신 '친삼성계·친현대계'라는 계파가 등장할 미래를 보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문형구 기자munhyungu@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