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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일 수요일

친일수구들의 색깔공세와 탄압에 맞서


이글은 플러스코리아 2013-04-30일자 기사 '친일수구들의 색깔공세와 탄압에 맞서'를 퍼왔습니다.
“한국의 실정(失政)을 꼬집으면서 왜 북은 건드리지 않느냐?“

[칼럼 플러스코리아]한석현 정치칼럼= 필자는 한국 사회에서 '뻑'하면 일부 정파들 주축으로 일으키곤 하는 색깔 공세와 뜬금없는 '종북주의 타령'이 국민 정신을 피폐화시키는 얼마나 고약한 해악인지를 풀이해 설명하고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인지를 가리켜 주려고 이 타이틀의 글을 쓴다.

▲ 자칭 보수로 위장한 친일수구세력들이 인터넷에 퍼트린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한 인물들. 사진출처= 인터넷 © 편집부


색깔 공세에 부딪힐 때면 정신착란증 환자들의 느닷없는 발작을 보는 듯한 느낌에 몸서리치는 전율이 느껴진다 함이 솔작한 고백이다. 저들의 비판에 대한 알레르기 성 반응은 민주주의가 민주다울 수 있는 요건이 비판의 자유라 믿는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낭패와 곤혹을 안겨주는데 이말에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축복이 있을지어다. 

‘종북주의’라는 말은 과거 정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수단으로 써먹던 빨갱이, 간첩, 자파척결론의 총칭이다. 그만큼 우려먹었으니 이제는 폐기시켜 입에 올려선 안 될 금기어로 삼아야할 때가 되었다. '종북주의자‘라는 낱말 속에는 민주주의를 맛들이는데 안성맞춤으로 써먹어야할 비판 기능을 회색화 하려는 의도만이 아니라 저주의 언어로 바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심어주려는 불순한 동기유발을 바닥에 깔고 있는 성 싶어 후끄름하기 까지 하다.

이러한 친일수구들이 종북으로 몰고 있는 현 정국에 대한 비판은 독자 층이 잘못 생각하는 점을 바로 잡아 한국인으로 하여금 올바르게 시민의식을 가다듬어 온전한 한국인으로 입지를 굳혀주려는데 합목적성을 두고 있다. 인필칭 저들은 말하기를 “한국의 실정(失政)을 꼬집으면서 왜 북은 건드리지 않느냐?“고 터무니없이 걸고넘어지고 있다. 괜한 생트집을 그들은 잡고 있는 것이다. 즉 현 정권을 비호하려는 의도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누구나 다 아는 바이려니와, 남과 북 사이에는 차단의 벽이 쌓여 있어 서로의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소상한 정보를 가지지 못한다. 한국에서 홍보용으로 흘리는 북의 단편적 뉴스에접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면 이를 보고 북을 비판하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지 않은가. 한국의 정정(政情)만을 소상히 알 뿐이므로 이에 대한 비판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 이들 세력들은 이정희 국회의원을 빨갱이, 좌익, 종북녀라며 악어에 패러디한 몰상식한 사진을 퍼트리고 있다. 사진=구글이미지 © 편집부


요즘 국회의 모양새를 보면 '이것이 우리 자화상인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절로 환멸의 비애가 절로 느껴진다 함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번 보궐 선거가 새누리당 완승이라는 기상천외한 전과을 올리고 막을 내렸다. 

야당인 통합민주당의 완패요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손꼽혀지겠으나 부정 선거에 쏠리는 국민의 관심과 동떨어져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데 구심적 역할을 하지 못한 야당의 무능에 대한 질책의 의미가 곁들여져 있다. 나는 1945.8 15 일 이승만을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 할 때부터 저번 1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던 2012.12.19 일까지 육십여년 간 눈에 호롱불을 켜고 정치계를 죽- 지켜 보았지만 지금의 통합민주당만큼 무능한 야당을 본적이 없었다,

누구나 다 아는 바이려니와 저번 18대 대통령 선거는 자유당 ‘삼일오‘를 능가하는 부정 선거의 결정 판이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아니어서 진작에 대법원에는 국민 소송인단 명의의 부정선거 무효소송과 재검표 소송이 제기돼 있는 상황이며 해외 교민 사회가 일제히 들고 일어나 세계 네트웍이 형성되고 8차 성명을 발표하여 박근혜의 하야를 촉구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국회가 제구실을 할 수 있으려면 국민의 역량을 결집시켜 국민의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데 앞장을 서고 그 구심적 역할을 다해야할 것은 정한 이치이며 자유당 시절 장관을 불러다 호통을 치고 김대중 같은 사자후(獅子吼)도 뒤따라 국민에게 감동의 물결을 선사해야 한다. 

통합민주당이나 제도 언론은 국민 역량의 결집에 구심적 역할이 돼주긴커녕 제도권 언론의 작테모양 마치 짜맞추기라도 하듯이 꿀먹은 벙어리가 돼 도리어 결집중인 국민 역량을 허트리는 역할이 고작이었다. 국민이 애써 일궈놓은 ‘진보’ 시대를 ‘보수 시대로 바꿈질한 데 따른 억하심정이 하늘을 찌른 것은 당연지사였다. 
▲ 북한으로 간 박근혜 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은 어떻게 불러야 할 것인가? © 편집부


여기에는 바른 말을 했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잡아 가두어 국회의원을 주눅들게 하고 바른 말을 한 정봉주의원만 억울하게 만든 이명박의 원죄가 컸다.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여권을 질타하지 못한 야당의원들의 무능도 꼬집힘을 당해야 한다.

진보 신당 국회의원이 태극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부르지 안했다는 트집으로 국회에서 “사상 검증‘을 해야 한다”며 두 팔을 걷어붙인 새누리당 의원이 생겨났다. 사상의 자유가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인 것과 사상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를 시도하는 나라마다 급격한 국격을 떨어뜨릴 뿐일 것이라는 점등을 아울러 감안한다면 사상 검증 논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황당한 지가 분명해지고 있다.(마음 안으로 들어가 생각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으며 그 시도자들을 우슴꺼리로 만들 뿐이다) 

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들어간 사람이라면 제도권이 자기 편의적 발상에서 저좋자고 주인의 생각을 정죄하거나 순치시키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발상인지 헤아릴 만도 하다.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있을 수 없는 배리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진보 신당 인사들에게 민주적으로 가다듬어진 성숙한 대응은 아니더라도 한국이 전통적으로 레드 콤플렉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나라이며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라는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는 온 세계를 통틀어 한국밖에 없다.- 점을 감안하여 국체 문제에 관한 한 더 신중한 모드가 요청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적응’이 ‘생존술‘이며 미학적 개념에 어울리는 삶의 방정식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이를 덧붙인다,

그렇더라도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민주주의가 다양성의 세계이며 나와 다른 이질적 요소와의 만남이 인간 사회의 속성이며 구성요소인 점을 도외시하여 시대착오적인 반공이데올로기 론에 천착(穿鑿)하여 유권자가 뽑은 ‘국민의 대표’에게 ‘자격 검증 ...운운’ 하는 자의(恣意)의 잣대를 들여대려는 것은 무모하고 회화적이 아닌가?” 라는 물음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끝으로 부연하고 싶은 한마디는 대한민국을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 한단어의 의미를 분명히 하는 토배기 민주주의 국가로 업그레이드시키는 유일의 길은 국회에서의 역학작용이 이제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새로 국회에 입성한 안철수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이른 말인지 모르나 그가 대권 싸움에 나섰을 때 한“새정치”라는 추상 명사가 이에 내놓는 정견과 궤를 함께한다면 얼마나 바람직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점을 분명히 하고 넘어간다. 

국회가 명실상부한 “민의의 전당”으로나 “국민의 대표” 기관으로 발돋움하는 유일한 길은 비례대표제를 강화하여 국회의원을 직업별 인구비례에 맞게 비례 대표로 의회 정족수를 채우고 그들로 국회를 운영하며 정당구조를 농민당, 노동자 당, 중소 상인당 등으로 정당을 구조화시켜그 가운데 경우꾼을 대표로 선출하되 법률가와 대학 교수 등은 조직 편성 관리기능을 수행하기 뤼한 보조 역할을 하게 하며 돈푼깨나 있는 건달패거리들의 이합집산지가 돼있는 현행 국회나 정당구조는 혁파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그대로 존치한 채로는 아무리 “새정치”를 외쳐 보았자 입만 아프지 말짱 도루무기라는 것은 깊이 새겨야할 점이다. 돈 있는 부자만이 입후보하고 선거운동을 할 수 있고 하게 하는 선거 풍토 또한 새로이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1932년 12월 임신년 출생, 육군보병학교 수료 (소위 임관),병참병과근무 창고장, 출납관, 구매관, 중대장 등 역임, 국가유공자자 광복장 서훈(敍勳), 예편 후 잡지사 근무, 국가 행정직공무원, 외국어 강사, 국회의원 고문, 국민회의 안보특위 부위원장,재야시민운동가, 뇌경색 입원, 장애2등급,기독교 귀의,플러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저서로는 자전적 수기 ‘하늘마음 어디 있는가‘,와 신앙 에세이 ’하늘나라 영광나라‘등이 있음

한석현 칼럼니스트

2013년 2월 24일 일요일

[사설] 박 당선인의 노동관, ‘배제와 탄압’이 원칙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22일자 사설 '[사설] 박 당선인의 노동관, ‘배제와 탄압’이 원칙인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어제 한국노총을 방문했다. 당선인 신분으로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노동계를 찾은 것이다. 그동안 노동문제에 너무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박 당선인이 늦게나마 노동계 의견을 청취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엊그제 한국경영자총협회 방문을 통해 드러난 박 당선인의 노동관에 대해선 큰 실망과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노동관이 ‘친기업, 반노동’이라는 낡고 그릇된 색깔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박 당선인의 노동관은 노사자율을 존중하되 불법투쟁을 근절해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노사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노사자율과 법질서 존중은 외견상 누구도 흠잡기 어려운 노동정책의 일반 원칙이다. 그러나 이 땅의 노동 현실에 대입하는 순간 그 실질적 의미는 엄청나게 달라진다.우선 노사자율은 사용자가 절대강자인 지금의 노사관계를 방치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불법사찰과 탄압을 일삼은 이마트의 횡포가 우리 노사관계의 생생한 현주소다. 현대자동차 앞에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 판결조차 너무나 무기력하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도 노사간 힘의 불균형이 개선되기 힘든 판에 노사자율을 강조하는 것은 기업 편들기나 마찬가지다. 이는 명백한 정부의 책임 회피다. 울산 현대차에서,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서울 재능교육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은 그 뿌리가 노조탄압과 불법파견, 부당해고 등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있다. 반면에 ‘법과 질서’는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을 지금처럼 억압하겠다는 경고로 들린다. 노동계를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는 처벌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박 당선인이 ‘한국형 노사협력 모델’을 만들겠다며 그 파트너로 경총과 한국노총을 콕 집어 얘기한 것도 문제다. 박 당선인 발언에 민주노총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한국노총과 함께 노동계의 양대 산맥인 민주노총과 대화하지 않고 정부가 노동 현안을 풀어가기란 불가능하다. 노동 현장에서 대화와 타협이 더욱 어려워져 정치·사회·경제적 부담만 커질 뿐이다.25일 열리는 18대 대통령 취임식 슬로건은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습니다’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노동관에 ‘배제와 탄압’이 자리잡고 있다면 노동자들은 희망도, 새 시대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다른 누구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게 큰 부담과 불행이 될 것임을 박 당선인은 깨달아야 한다.

2013년 2월 13일 수요일

“MB,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도 안 받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12일자 기사 '“MB,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도 안 받았다”'를 퍼왔습니다.

ㆍ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촛불이후 조직 축소 등 탄압”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4·사진)가 과거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을 되돌아본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를 12일 출간했다. 인권위원장을 그만둔 지 3년7개월 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명박 정부는 ‘인권 알레르기 정권’ ‘민주주의 알레르기 정권’ ”이라며 “ ‘인권=민주주의=반정부=좌파’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를 넘어 실체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인권정책을 펴달라”고 당부했다.

안 교수는 2006년 10월 제4대 인권위원장에 취임해 2009년 7월 임기를 3개월가량 남기고 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이임사에서도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만들어 독립성을 훼손하려 했고 조직을 축소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안 교수는 인권위원장 재임 당시 틈틈이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다.


안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회고록은 원래 몇 십년 지나서 쓰는 것인데 그때는 인권위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3년 남짓의 인권위원장 재임 기간을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에 나눠 근무한 특별한 체험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를 ‘좌파 정부의 전위대’로 오해해 탄압을 저질렀다”며 “인권위는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립된 기구로, 박근혜 정부는 인권위가 어떤 기관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 기록을 참고해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의 서문을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인권위를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2008년 ‘촛불정국’ 이후 조직 축소를 꼽았다. 안 교수는 “인권위 조직 축소는 촛불집회에서 경찰의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의견서에 대한 보복조치였다”며 “작은 정부라는 구호와 명분의 표적 제물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직후 감사원은 인권위에 대해 예정에 없던 직무감사를 실시했다. 당시는 촛불집회에서 경찰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이 쇄도하던 때였다. 이어 정부는 2009년 4월 인권위 조직 축소를 단행해 정원의 21%를 줄였다. 안 교수는 “2009년 3월30일부터 7월8일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100일이었다. 하루도 편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 홀대도 폭로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공식, 비공식 요청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초기에는 미뤘고 나중에는 아예 묵살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인권위가 2010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차기 의장국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 교수의 아쉬움도 담겨 있다. 그는 “인권위는 2009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 부의장국으로 2010년 3월 의장국을 수임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져 있었지만 끝내 무산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언론·출판·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 한국의 인권상황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방한하는 등 국제 인권사회에서 치욕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에 대해서도 “예상 밖의 후임자”라고 말문을 연 뒤 “그 힘든 인권위 수장 자리를 국내외 인권 옹호자들의 사퇴 요청에도 3년간 버티고 유례없는 재임에까지 성공했다. 남다른 끈기와 저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인권위 구성원의 화합을 앞장서 해친 잘못까지 범했다”며 공개적으로 현 위원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책에 촛불집회 결정문,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 인권위 조직 축소에 반대하며 대통령을 상대로 최초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서 등 인권위의 수난사를 상징하는 자료들도 함께 첨부했다. 그러면서 “인권위에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권위의 헌법기관화와 인권기본법 제정, 인권위원 자격 심사제도 도입, 인권위원 인사청문 대상 확대 등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유신시대의 정치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그러하듯 경제와 인권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입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샐러리맨 된 기자들, 글로 먹고 살려면 ‘양심’을 지켜라”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01일자 기사 '“샐러리맨 된 기자들, 글로 먹고 살려면 ‘양심’을 지켜라”'를 퍼왔습니다.
[동아투위 기획] ① 백발의 기자들, “박정희가 빼앗았던 편집권, 다시 되찾아야”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지 올해로 38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금지했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에도 기자로서의 양심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영원한 기자’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구성원들을 통해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다시 던지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몸은 비록 회사를 떠났어도 자유언론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그날의 일은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다짐이자 평생 가슴 속에서 지켜온 사명감이다. 그들에게 1970년대는 독재에 저항하는 모든 세력을 억눌렀던 폭력의 시대이자 언론인의 역할을 거세당했던 야만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KBS·MBC 방송장악과 재단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외치는 부산일보와 국민일보의 끝나지 않은 싸움, 그리고 조중동의 왜곡보도로 한국 언론은 여전히 위기에 봉착해 있다.

동아투위에서 활동했던 김태진 다섯수레 출판사 대표, 성유보 희망래일 이사장, 이명순 동아투위 위원장, 이부영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4일 오후 전국언론노동조합 사무실에 모여 박정희 시대의 악랄했던 언론장악과 현재까지도 이어진 독재의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해 두 시간 동안 직설을 쏟아냈다. (이후 이들의 명칭은 모두 ‘기자’로 통일한다.) 

그 시절 기사를 써봤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지고, 쓰레기통에 처박히기 일쑤였다. 성유보 전 기자는 “기자 개인의 울분이 아니었다.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줘야 하는데 박정희 파시즘은 자신들이 선전하고 싶은 것 외에는 알리지 못하게 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권력자의 눈이 아닌 국민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시도 자체는 모조리 차단당했단 말이다.

박정희 정권은 악착같이 언론장악에 나섰다. 사주, 경영진, 부장급 간부들에게만 회유의 손길이 닿은 것이 아니었다. 경찰서를 출입하는 일선 기자들까지 관리 대상이 됐다. 

1975년 3월 17일 새벽 동아일보 사주측이 동원한 술 취한 폭도들에게 강제 축출되기 직전 편집국에서 마지막 ‘자유언론 만세’를 외치는 기자들과 사원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부영 전 기자가 사회부 기자로 있을 당시의 일을 들려줬다. 한 번은 석탄업자들이 연탄 가격을 올리려고 일부러 품귀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그는 “‘왜 민심을 선동하나, 북괴를 이롭게 하나’며 (정보기관에) 붙잡혀가 두들겨 맞았다”며 “언론에 대해 굉장히 속 보이는 짓을 한 건데 정치부나 경제부는 그렇게까지 않고 맨 밑바닥 민심을 전하는 경찰 출입 기자, 지방 주재 기자들을 두들겨 패면서 서서히 언론계 안에 테러 분위기를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장악 야욕은 유신이 선포되기 한참 전인 1964년 여실히 드러났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여론이 악화되자 그해 2월 ‘언론윤리위원회법’을 통과시켰다. 

김태진 전 동아일보 기자 (다섯수레출판사 대표)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태진 전 기자는 “윤리위원회에서 제재를 가했을 때 언론사가 응하지 않으면 해당 발행인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법”이라며 “박정희가 편집인의 권한을 발행인으로 옮겨 놓은 것일 뿐만 아니라 권력이 편집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만든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기영을 부총리로 임명하고 조선일보의 경우 코리아나 호텔 건축에 현금 차관을 제공하면서 장악하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기아산업에 공매 처분하기도 했다. 김 전 기자는 “당시 기아 산업은 관리기업체였는데 자기 기업체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데 신문사를 운영할 수 있었겠나. 인수 자금이 중앙정보부(중정) 자금이란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동아일보에 대한 탄압은 길고도 집요했다고 이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8년 신동아 12월호에 실린 차관에 관한 기사를 문제 삼았다. 일본에서 제공받은 차관 중 10%를 정치자금으로 빼돌렸다는 내용이었다. 이부영 전 기자는 “한일협정이 제공한 박정희 파쇼 체제의 물적 기반을 동아일보가 마지막으로 건드린 것”이라며 “이 돈은 정권연장을 위한 삼선개헌의 추진자금이었으며 이 돈으로 지식인들을 매수하고 언론계에 돈을 뿌렸다”고 말했다. 그 결과 천관우 주필, 홍승면 주간, 손세일 부장이 해고됐다. 김상만 당시 사장은 “동아일보가 1920년 창간 할 때 주주를 모집해서 된 신문사인데 왜 지금은 당신 김씨 집안이 주식을 다 가지고 있느냐. 주식을 내 놓아라”는 중정의 협박에 신문사를 빼앗길까봐 협상에 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보도투쟁뿐만 아니라 민주화투쟁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고된 천관우 주필이 71년 논설을 쓰지 않는 조건으로 이사로 복직된 뒤 이병진 변호사, 김재준 목사, 장준하 선생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민수협)를 결성하면서다. 이부영 전 기자는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기자로서 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민수협에서 하는 서명을 받아오기도 했다. 기자 노릇 못하게 막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자가 아닌 것이나 다름없다’는 심정이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71년 박권상 편집국장이 영국 특파원으로 쫓겨나가면서 편집권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개개인이 아무리 특종을 해도, 글을 잘 써도, 방송을 잘 해도 아무 소용없게 돼 버린 것이다. 결국 기자, PD, 아나운서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됐다. 그리고 1974년 10월 24일 역사적인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선포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술자리에서 ‘왜 내 기사를 뺐느냐’고 주정이나 할 수 있지, 간부들한테 할 수 없었으니 노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며 “이는 기자 개인의 울분이 아니라 독재에 대한 거부와 시민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한 언론의 역할을 정립하기 위해 우리가 희생하더라도 맞서야 한다는 정신이었다”고 말했다.

성유보 전 동아일보 기자 (희망래일 이사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결과는 혹독했다. 이듬해 3월 17일 160여명의 기자들과 사원들이 쫓겨나자 이들은 다음날 바로 동아투위를 결성했다. 4월엔 동아투위 대변인이었던 이부영 전 기자가 불법연행됐다. 두 달 뒤엔 성유보 전 기자가 끌려갔다. 하지만 이 5개월은 눈치 보지 않고 기사 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서른 살, 동아투위의 막내였던 이명순 전 기자는 “그래도 나는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말했다. 

신문과 방송에 게재됐던 광고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광고주들이 광고 동판을 다 회수해갔다. 그러자 시민들의 격려 광고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동아야, 배신하면 이민 갈 거야’ 등의 문구가 담긴 광고가 빈 지면을 메어나갔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론장이자 성찰의 장이 됐다. 이부영 전 기자는 “이 사건이 전 세계 언론에 던진 충격이 굉장했다. ‘박정희 독재가 이런 것이구나, 언론의 목을 졸라 죽이는 정권이구나’란 인식이 퍼져나갔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유신은 언론 자유의 측면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했다. 성 전 기자는 “유신은 일제 파시즘의 잔재라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동원과 배제의 원리로 작동하는데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에서 광야로 쫓아냈다. 좌익이라고 하면 가족과 자식까지도 배제되는 사회였다”고 말했다. 김 전 기자도 “유신헌법은 왕권사회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법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명순 전 기자 역시 “유신은 군사정권으로부터 민주 회복을 바라는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자신들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시도였지 경제 개발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일제의 잔재’라는 잣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부영 전 기자는 “박정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만주 침략으로 만들려고 했던 신천지를 한국에서 재현하고자 했다”며 “박근혜는 그런 아버지의 60~70년대 사고방식을 복제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국민적 불행”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의 물적 토대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 강제징병·징용자들, 원폭 피해자들이 보상받아야 할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돈”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아투위 위원들이 30년이 지난 2005년 3월 1일 동아일보 옛 사옥(현 일민미술관) 정문 앞에 다시 모여 “동아일보는 사죄하라! 원상복귀시켜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이들은 박정희 시대의 ‘망령’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물론 언론도 지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편집권 독립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태진 전 기자는 “최근 MBC가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는데 이 사안은 근본적으로는 편집권 독립의 문제”라며 “편집권이 편집인에게 있음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부영 전 기자도 “독립 언론을 위해 편집권과 인사권을 경영인으로부터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편집국장, 주필, 기자가 편집권을 행사했는데 ‘언론윤리위원회법’ 이후 발행인에게로 권한이 넘어갔다. 이 법은 민주화 이유 1988년에 폐기됐지만 경영인이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는 일은 현재까지도 비일비재하다. 신동아 사건 이후 최석채 당시 편집인협회 회장이 했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최근 사장과 노조 간의 갈등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이 법으로 인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예측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전까지 한국 언론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투쟁하는 경우 언제나 편집인과 경영주가 한 덩어리로 뭉쳐서 싸워 왔다.(…)신문사란 일종의 성(城)이다. 이 성안에는 경영주와 편집인 기자가 있어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이 성안에 불신이 싹트고 반란이 일어나 성주를 향해 주민들이 선전포고를 하는 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치열 기자 truth710@

현재 언론들이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게 된 배경이 박정희 시대의 언론 회유 정책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태진 전 기자는 “당시 신문 용지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면수가 제한돼 있었지만 박정희가 면수를 늘려주기 시작했다”며 “면수가 늘어나니 광고수입이 늘었고 이후 신문사가 영업 수익을 올리기 위한 사업장으로 탈바꿈됐다”고 했다. 이어 “동아일보도 그 이후에 사원만 해도 얼마나 늘었냐”며 “기자들도 점차 사주의 생각을 닮아가서 옳은 소리를 하는 기자들은 쫓겨나고 그 외에는 샐러리맨으로 타락한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유신 시대가 이러했기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과거사 기자회견은 진정성 없는 말잔치에 불과했다. 김 전 기자는 “사과가 아닌 해명에 불과하다”며 “5·16군사쿠데타와 유신이 헌법 질서를 훼손했다고 하면서도 그 당시 보릿고개를 넘던 때였고 북한의 침략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5·16군사쿠데타는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였으니 사과라는 의미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언론들이 ‘사과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30대 젊은 나이에 원치 않게 펜대를 놓아야 했던 이들의 마음은 여전히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래서 후배 기자들을 바라보는 눈도 날카로웠다. 이부영 전 기자는 “요즘 기사를 보면 주장과 팩트가 전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보수지에서 일하든 진보지에서 일하든 전해야 할 팩트는 전부 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명순 전 기자는 “요즘은 기자가 지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말과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는 양심이 있어야 한다”며 “말과 글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데 왜곡하거나 거짓말을 전하는 언론이라면 차라리 펜대를 놓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이명순 전 동아일보 기자 (동아투위 위원장)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태진 전 기자는 “일제 때의 3·1운동이 전국 방방곡곡 퍼져나갈 수 있었던 힘은 50여 개의 지하신문이었다”며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6하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가 관건이다. 예를 들어 재벌의 입장에서 언론이 바라본다면 일반 시민들의 시각은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재 언론인들의 시각에 많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분단 시대의 이분법적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남용하는 데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한국 언론들은 사물과 사람에 대해 보수·진보의 시각이 아니라 우익·좌익의 시각으로 보는데 이는 심각한 차이”라고 말했다. ‘기존의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보수와 ‘고쳐야 한다’는 진보가 맞붙으면 이슈가 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빨갱이’라고 한다면 담론 형성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 언론이 ‘똘레랑스’ 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아자유수호 투쟁을 이어갔던 이들의 현재 평균 나이는 70세 중반,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언론 개혁에 대한 마음만은 그대로다. 이부영 전 기자는 “박정희 시대 이래로 진행돼온 자본의 지나친 비대화가 언론 자유나 사상의 자유를 위축시켰다”며 “언론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확장하고 쟁취하는 데 아직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성유보 전 기자는 “내가 꿈꾸던 사회, 언론이 무엇이었으며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왔는가에 대해 정리하고 싶다. 그래서 이후 언론인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한국정부 입국거부는 강정마을 인권유린의 해외노출 의식한 탄압”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9일자 기사 '“한국정부 입국거부는  강정마을 인권유린의 해외노출 의식한 탄압”'를 퍼왔습니다.

다카하시 도시오(59·맨 오른쪽) 사무국장. 사진제공 다카하시 도시오
추방당한 일본 NGO 활동가의 편지

제주도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자연보전 총회에 참석하려 입국했다 인천공항에서 강제추방당한 일본 후텐마 미군기지 소음 소송단의 다카하시 도시오(59·맨 오른쪽) 사무국장이 9일 에 편지를 보내왔다. 다카하시 국장은 이 편지에서 “이번 입국 거부는 인권유린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폭거”라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다카하시 국장 등 일행 3명은 지난 5일 오전 일본 오키나와 나하 공항을 출발해 이날 오후 2시4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장하나 민주통합당 의원의 초청을 받은 다카하시 국장은 총회에서 ‘동아시아 미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심포지엄’의 발표자로 나설 예정이었다.하지만 입국심사대에 여권을 제시하자 담당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카하시 국장 일행을 입국관리사무소로 보냈다. 이곳에서 이들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양손 검지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했다. 오후 3시25분께 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그에게 “당신은 입국금지에 해당된다. 이유는 모른다.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으니 오늘 중으로 출국하라”고 통보했다. 다카하시 국장은 “법무부 직원에게 입국금지 사유를 서면으로 제시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담당 직원은 ‘한국은 이런 시스템’이라고만 답하고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카하시 국장 일행은 곧바로 후쿠오카행 비행기로 추방당했다.그는 “지금까지 열차례 이상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이 한창이던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한 것 때문에 입국금지를 당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강정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유린이 국제적으로 노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벌이고 있는 탄압”이라고 말했다.한국 정부는 다카하시 국장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단체 ‘세이브 더 듀공’ 대표인 우미세도 유타카도 이날 함께 추방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익에 위배되거나 안전에 위험이 되는 외국인 리스트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입국금지 기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