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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3일 수요일

“MB,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도 안 받았다”


이글은 경향신문 2013-02-12일자 기사 '“MB,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도 안 받았다”'를 퍼왔습니다.

ㆍ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회고록 “촛불이후 조직 축소 등 탄압”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4·사진)가 과거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을 되돌아본 회고록 (좌우지간 인권이다)를 12일 출간했다. 인권위원장을 그만둔 지 3년7개월 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명박 정부는 ‘인권 알레르기 정권’ ‘민주주의 알레르기 정권’ ”이라며 “ ‘인권=민주주의=반정부=좌파’라는 말이 단순한 수사를 넘어 실체를 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인권정책을 펴달라”고 당부했다.

안 교수는 2006년 10월 제4대 인권위원장에 취임해 2009년 7월 임기를 3개월가량 남기고 위원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당시 이임사에서도 “인권위를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만들어 독립성을 훼손하려 했고 조직을 축소해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안 교수는 인권위원장 재임 당시 틈틈이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책을 출간했다.


안 교수는 이날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회고록은 원래 몇 십년 지나서 쓰는 것인데 그때는 인권위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며 “3년 남짓의 인권위원장 재임 기간을 ‘좌파’ 정부와 ‘우파’ 정부에 나눠 근무한 특별한 체험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권은 인권위를 ‘좌파 정부의 전위대’로 오해해 탄압을 저질렀다”며 “인권위는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설립된 기구로, 박근혜 정부는 인권위가 어떤 기관인지를 제대로 알고 이 기록을 참고해 그러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책의 서문을 ‘박근혜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이라 이름 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이 인권위를 탄압한 대표적인 사례로 2008년 ‘촛불정국’ 이후 조직 축소를 꼽았다. 안 교수는 “인권위 조직 축소는 촛불집회에서 경찰의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는 의견서에 대한 보복조치였다”며 “작은 정부라는 구호와 명분의 표적 제물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직후 감사원은 인권위에 대해 예정에 없던 직무감사를 실시했다. 당시는 촛불집회에서 경찰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이 쇄도하던 때였다. 이어 정부는 2009년 4월 인권위 조직 축소를 단행해 정원의 21%를 줄였다. 안 교수는 “2009년 3월30일부터 7월8일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100일이었다. 하루도 편히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안 교수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 홀대도 폭로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인권위법에 정해진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여러 차례 공식, 비공식 요청을 보냈지만 회신이 없었다. 초기에는 미뤘고 나중에는 아예 묵살했다”고 말했다.

책에는 인권위가 2010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의 차기 의장국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안 교수의 아쉬움도 담겨 있다. 그는 “인권위는 2009년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 부의장국으로 2010년 3월 의장국을 수임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합의가 이뤄져 있었지만 끝내 무산됐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이후 이명박 정권하에서 언론·출판·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 등 한국의 인권상황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방한하는 등 국제 인권사회에서 치욕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에 대해서도 “예상 밖의 후임자”라고 말문을 연 뒤 “그 힘든 인권위 수장 자리를 국내외 인권 옹호자들의 사퇴 요청에도 3년간 버티고 유례없는 재임에까지 성공했다. 남다른 끈기와 저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인권위 구성원의 화합을 앞장서 해친 잘못까지 범했다”며 공개적으로 현 위원장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 책에 촛불집회 결정문,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 인권위 조직 축소에 반대하며 대통령을 상대로 최초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서 등 인권위의 수난사를 상징하는 자료들도 함께 첨부했다. 그러면서 “인권위에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라며 인권위의 헌법기관화와 인권기본법 제정, 인권위원 자격 심사제도 도입, 인권위원 인사청문 대상 확대 등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고 ‘진보’도 ‘보수’도 아닌 인류 보편의 가치”라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유신시대의 정치관이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을 극복하고 진정한 선진국이 그러하듯 경제와 인권이 상극이 아니라 상생의 가치임을 입증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안경환 칼럼] 박정희 기념관과 정수장학회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2-27일자 기사 '[안경환 칼럼] 박정희 기념관과 정수장학회'를 퍼왔습니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드디어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이 개관했다. 늦었지만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아무리 큰 과오가 있어도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념관의 건립에 김대중 대통령이 디딤돌을 놓은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포용하여 역사적 화해를 이룬 셈이다. 김대중에게 박정희는 치열한 라이벌이자 자신의 생명마저 위협했던 정적이었다. 두 분의 관계가 어찌됐든 누가 뭐래도 한국 현대사의 양대 거목이다.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다. 기적처럼 동시성취한 근대화와 민주화의 상징이 바로 이들 두 지도자이다. 공이 클수록 비례하여 과도 따르기 마련이다. 큰 공은 기리고 작은 과는 덮어 주는 것이 성공한 나라 국민이 취할 자세다. 그러나 정작 불의로운 사건으로 직접 피해를 본 당자에게는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그러기에 늦게나마 감추어졌던 진실을 밝히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와 정수장학회 문제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해묵은 역사적 부채다. 해방 직후에 부산을 무대로 성공한 실업가, 김지태씨는 언론에 진출한다. 와 을 인수한다. 이어서 부일장학회를 만들어 부산·경남지역의 꿈나무를 양성한다. 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부인의 보석밀수 사건을 빌미로 김씨를 구속한다. 치욕적인 가혹행위 끝에 김씨는 막대한 장학회의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는 각서를 쓰고 석방된다. 군사정부의 중심세력이 곧바로 재산을 헌납받은 ‘국가’ 행세를 한다. ‘부일장학회’는 ‘5·16장학회’가 되고 1982년, 다시 ‘정수장학회’로 개명한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연이은 개명의 배경에 어떤 역사적 배경이 있었는지 굳이 부연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야말로 ‘공지의 사실’이다.
정수장학회는 현재 문화방송 지분의 30%, 부산일보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유족의 호소를 경청했다. 김씨가 자유의사에 반하여 사유재산을 강탈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주에는 서울중앙지법도 김씨의 재산 헌납이 폭압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 위법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강탈한 재산을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판결했다. 일반인의 눈에 비친 법은 기껏해야 반쪽짜리 정의일 뿐이다. 그러나 최소한 자발적인 기부가 아니라 강탈당했다는 진실만은 공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제 국민은 박근혜씨의 반응에 주목한다. 남의 재산을 국가의 이름으로 강탈했던 아버지다. 아버지처럼 국가를 이끌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선 딸이다. 그런데 자신은 이 문제는 오불관언이라고 한다. 그저 법의 문제로 다루라며 차갑게 내뱉는다. 2005년에 이미 부모의 이름자를 딴 장학회에서 손을 뗐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연좌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누구도 그를 ‘독재자의 딸’로 폄하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찬란한 근대화의 업적을 이룬 위인의 후광을 무조건 상속시켜서도 안 된다. 오로지 박씨 스스로 만들고 이룬 업적을 통해서만 평가해야 한다. 국민은 박씨에게 아버지의 죄과를 상속받으라고 주문하지 않는다. 다만 위대한 아버지의 영광을 만끽하려면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도 성의 있는 관심을 보여줄 것을 기대할 뿐이다.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 문제,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씨가 반드시 털고 가야 할 일이다. 아버지의 범죄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불과 7년 전까지도 ‘장물’을 관리하던 장물아비가 아니었던가? 많은 국민이 박근혜씨의 성공을 빈다. 그러기에 반쪽짜리 정의에 불과한 법에 기대는 옹졸함에 실망한다. 국민은 그에게서 편협한 법률가가 아니라, 넓고 큰 정치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영욕의 과거사를 함께 품고 나라의 장래를 이끌, 큰 지도자의 자질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래야만 그에게 표를 내주지 않을까?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