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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종편 장밋빛 전망 외치던 언론학자들 다 어디갔나


이글은 미디어오늘 2102-06-27일자 기사 '종편 장밋빛 전망 외치던 언론학자들 다 어디갔나'를 퍼왔습니다.
[경제뉴스톺아읽기] 한겨레 “방송 망친 이데올로그들 규명해야”… 동아는 ‘사이비 인터넷 언론’ 기획 돌입

한겨레가 조선, 동아, 중앙, MBN의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주목되는 ‘검증’을 제안했다. 종편이 방송 및 광고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눈길을 끄는 제언이다. 이봉수 한겨레 시민편집인(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방송을 망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는 집단이 있다. 바로 언론학자들”이라며 “이제 한국 언론 수난사에 그들 이름을 등재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 편집인은 29면 기사에서 “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기득권세력의 탐욕을 ‘이론’으로 포장해준 학자들의 곡학아세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되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종편이 망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으로 해당 종사자들, 마지못해 종편에 참여한 기업과 광고 게재 압력에 시달리는 대기업, 종편에 진출한 언론사를 꼽고 “진짜 억울한 피해자는 시청자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편집인은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는 집단으로 ‘언론학자’를 꼽았다. 그는 “꽤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고도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언론정책을 농단한 사례가 많았다”며 “그런데도 한국언론학회 등을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과오를 비판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민 교수는 미디어법이 통과됐을 때도 신문 기고문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자칭 진보’가 악을 쓴다고 비난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으니 정말 말이 필요없게 됐다”고 말했다.

▲ 27일자 한겨레 29면.

이 편집인은 “‘방송 파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발벗고 나서라’고 주문했다”며 “그러나 여당이 다수인 국회에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그에 앞서 종편을 포함한 방송정책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유린해왔는지 규명해 방송개혁의 여론을 조성하고 책임자들을 특정하는 일이 진보언론의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 칼럼 부제목으로 “‘종편의 저주’ 부른 언론학자들 철저히 규명해야”라고 꼽았다.
한겨레가 ‘종편 검증’을 주장했다면, 동아일보는 ‘사이비 인터넷 언론’ 비판에 나섰다. ‘사이비 인터넷 언론’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난 15일 조선일보가 이들 언론이 광고주들에 대한 협박을 하고 있다며 첫 보도를 한 이후 동아에서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동아는 20일, 21일, 22일, 25일 그리고 27일에도 관련 보도를 했다.
주목되는 점은 27일에는 동아가 ‘사이비 인터넷 언론’ 관련 시리즈물에 보도에 나선 점이다.  ‘인터넷 여론 왜곡하는 뉴미디어 스나이퍼’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시리즈는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사이비 인터넷 언론의 협박을 다뤘다. 동아는 두 번째 시리즈로 블로거의 문제를, 세 번째 시리즈로 SNS의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 27일자 동아일보 3면.

27일자 기사는 사이비 인터넷 언론 관련 전경련 통계 등이 보강되고 ‘뉴미디어 스나이퍼’라고 새로운 명칭을 썼을뿐 전체적인 내용은 지난 주 보도처럼 익명의 광고주들의 전언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 기사는 3명의 기자가 공동으로 취재했다. 지난 15일 이후 중앙일보는 1건의 보도만 하는 등 다른 언론에서 ‘사이비 인터넷 언론’ 관련한 보도가 적은 상황이다. 사이비 인터넷 언론에 대한 사태가 심각한데 동아만이 집중 보도를 하는 것일까.
지난 주 보도와 대조되는 점은 동아가 포털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용해진 것이다. 동아는 16일자 사설를 실은 바 있다. 그런데 27일부터는 보도의 초점이 포털이 아니라 ‘인터넷 언론’, ‘블로거’, ‘SNS’ 관련 사이비 인터넷 언론이다. 포털의 문제가 1주일 만에 해소된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게임 업계와 이용자들의 분노를 사게 했던 ‘셧다운제’를 도입했던 정부가 자율 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게임 시간 선택제’라는 이름의 온라인 게임 제한 제도가 다음달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강제적 셧다운제’를 도입한 바 있다. 8개월 만에 ‘강제적 셧다운제’에서 사실상 ‘선택적 셧다운제’로 무게가 옮겨가는 분위기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심시간 선택제’를 내달 1일부터 시행된다. 이 내용은 부모가 18세 미만 자녀의 온라인 게임 시간을 제한할 수 있게 했다. 도 자녀가 이용하는 게임의 특징, 등급, 이용시간, 결제정보 등을 게임회사로부터 매달 의무적으로 통지받을 수도 있다. 청소년이 게임 회원으로 새로 가입하려면 부모(혹은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중앙은 “새 제도는 부모가 통제권을 갖는다”며 “외형상 ‘국가 통제’에서 각 가정의 ‘자율 통제’로 진화한 양상”이라고 평가했다.

▲ 27일자 한겨레 14면.

서울시가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제한을 계속 유지할 방침을 밝혔다. 한겨레 14면 기사에 따르면, 법원이 최근 서울 송파구·강동구의 대형마트 및 SSM 영업 제한 조례가 절차상 위법하다고 판결했지만, 이런 조례를 만든 서울시 24개 자치구 가운데 송파-강동구를 뺀 나머지 22개 자치구에선 영업제한 조례가 유효하다고 서울시가 밝혔다.
서울시는 법원이 지적한 조례 개정 절차의 문제점을 보완해 조례를 재개정하겠다고 밝혔다. 권혁소 서울시 경제진흥실장은 26일 기자회견을 통해 “법원의 판결이 조례 개정 과정의 절차 문제를 지적한 것일 뿐이고 중소 상인 보호를 위한 조례 자체는 정당하다고 판시한 만큼, 조례를 조속히 보완해 중소상인의 생업 안정을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부 언론은 법원 판결을 보도하면서, SSM의 영업제한 조치가 위법한 것처럼 부각하는 보도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시는 법원 판결이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어서, 향후에도 SSM 등에 대한 규제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인한 셈이다.

▲ 27일자 디지털타임스 9면.

카카오가 수익 모델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디지털타임스 9면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는 사이버 화폐 ‘초코’를 내놓는다. 이 서비스는 결제방식에 제한이 없는 안드로이드폰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다. 초코는 싸이월드의 도토리와 같은 사이버 화폐로 1개당 100원에 판매된다. 일종의 모바일 도토리다.
디지털타임스는 “자체 결재 시스템 구축은 카카오톡이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나섰음을 의미한다”며 “과거 싸이월드의 ‘도토리’처럼 카카오톡의 매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 27일자 한국경제 1면.

한국경제는 1면 기사에 따르면, 한국경제신문이 30대 그룹 주요계열사 33곳의 전략과 기획담당 임원 27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하반기 경기 전망을 묻는 질문에 주요 기업의 83.9%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만큼은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LG전자가 최성호 전 NHN  부사장을 전격 영입해 가전업계와 포털업계 등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데일리 에 따르면, 최성호 LG전자 전무는 인터뷰에서 "지금의 전자업계는 예전의 전자업계가 아니다. 애플을 보라. 매력적인 디바이스를 만들고 그 디바이스와 콘텐츠가 순환하는 사업구조다. LG전자 같은 IT 제조업체도 이제 애플 같은 모델로 이미 들어섰고, 앞으로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 같은 IT 전문가도 LG전자에 필요한 인물"이라고 밝혔다.


최훈길 기자 | chamnamu@mediatoday.co.kr  

우리 방송을 망친 이데올로그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6-26일자 기사 '우리 방송을 망친 이데올로그들'을 퍼왔습니다.

  

[시민편집인의 눈] ‘정책 실패’를 또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하자고?
‘종편의 저주’ 부른 언론학자들 철저히 규명해야

‘사르코비지옹’(Sarkovision), ‘MB씨’(MBC), ‘김비서’(KBS)… 사르코지와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프랑스와 한국의 공영방송 체제가 망가지면서 두 나라 민중이 만들어낸 촌철살인의 신조어들이다.그래도 프랑스 ‘사르코지방송’은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다. 선거방송에서도 공평성과 형평성 원칙이 건재해 소수자들 목소리가 전달된다. 올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원칙이 없었다면 볼 수 없는 장면이 방송됐다. 반자본주의당 필리프 푸투 후보는 민영방송 (TF1)에 출연해 양극화 문제를 얘기하면서 그 방송사 사장을 걸고넘어졌다.“부자라면 여러분도 잘 아는 분이 있죠. 이 방송사 사장님이신 마르탱 부이그 말이에요. 재산이 25억유로나 된다는 건 용납이 안 됩니다. 그들의 소유권을 박탈해야 합니다.”((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우리나라 같으면 ‘방송사고’ 상황이지만 프랑스 유권자들은 그런 소수의 견해도 듣고 투표한다.프랑스 국민은 사르코지를 권좌에서 축출함으로써 여러 가지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사 파업의 원인제공자이면서도 “대통령이 언급하면 간섭이 될 수 있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박근혜 의원도 책임지고 해결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친여 사장을 통한 공영방송 장악과 종편방송의 지원이 대선국면에서 긴요하기 때문인가?방송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 종합편성채널 탄생도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책임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박 의원은 요즘 이명박 정권과 ‘구별 짓기’를 하는데 그거야말로 희박한 책임의식의 발로다. 대통령책임제이면서도 단임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여당의 실세인 유력한 대선 후보에게 정치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가 모순이다.탐욕의 대상이었던 방송정책은 정권이 끝나기도 전에 파국을 맞고 있다. 종편 추진 세력이 얼마나 미혹에 빠져 있었는지, 서울대 윤석민 교수 사례로 분석해보자. 종편 ‘개국(開局)공신’ 중 한 분이었던 그의 개국 당시 신문 기고문을 보면, 이리저리 종편채널을 돌려보며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생존의 악다구니’를 쓰는 이들에게 일갈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고, 재앙이며 중단시킬 일이라는 것인가. 종래의 지상파에 종편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 다양성이 재앙이란 말인가? 이 팽팽한 채널 간 경쟁이 재앙이란 얘기인가?”‘경쟁지상주의’는 외환위기의 한 요인이었던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때도 나왔던 ‘미신’이다. 산업조직학을 전공한 당시 유승민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현 새누리당 의원)이 주역 중 한 사람이었다.미디어산업을 공부한 윤석민 교수는 반년도 안 돼 “(종편을) 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사회적 비용이 들더라도 망할 사업자는 망해나가면서 ‘방송사업에 무작정 뛰어들어서 될 게 아니다’라는 좋은 경험으로 가져가면 된다”고 말했다. 학자가 말을 금방 바꾸는 신뢰성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늘 ‘사회적 비용’으로 처리하려는 태도는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외환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기득권세력의 탐욕을 ‘이론’으로 포장해준 학자들의 곡학아세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누구에게 전가되나? 방송사가 망했을 때 첫째 피해자는 종사자들이다. 신입사원은 물론이고 옮겨간 방송인들은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다. 이직자들 중에는 유능한 방송인도 많았고, 공중파였다면 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드라마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도 있었으나, 플랫폼의 한계로 묻히고 말았다.두 번째 피해자는 마지못해 종편에 참여한 기업과 광고 게재 압력에 시달리는 대기업이다. 한 대기업 경영자는 “모기업인 신문을 앞세운 광고 등쌀에 견딜 수가 없다”며 “종편 없애주는 정치인과 언론을 지지하겠다”는 말까지 했다.세 번째 피해자는 종편에 진출한 언론사 자신들이다. 주로 일본과 미국에서 들여온 방송장비는 남 좋은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도급업체인 독립프로덕션들도 벌써부터 프로그램이 취소되거나 제작비를 못 받아 도산하는 업체가 나오고 있다.네 번째로, 진짜 억울한 피해자는 시청자와 국민이다. 자기 뜻과 무관하게 공영방송 체제가 흔들리면서 질 높은 방송을 볼 수 없게 됐고, 여론시장 독과점이 심각해지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권력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보도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은 공중파와 종편 할 것 없이 대폭 줄어들고, 값싸게 제작하는 시사토크나 외국 프로그램이 판을 친다.그러나 방송을 망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도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는 집단이 있다. 바로 언론학자들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언론학자들 중에는 유럽에 견주어 언론의 공공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미국을 표준으로 삼는 이들이 많다. 꽤 많은 연구비를 지원받고도 한국 언론의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언론정책을 농단한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도 한국언론학회 등을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과오를 비판하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이제 한국 언론 수난사에 그들 이름을 등재할 때가 됐다.윤석민 교수는 미디어법이 통과됐을 때도 신문 기고문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자칭 진보’가 악을 쓴다고 비난했다. “서비스의 품질과 다양성을 제고하며, (…) 사회적 소통을 진작시켜 선진화된 민주시민사회 실현을 앞당기려 함이었다. 미디어 진출을 꿈꾸는 젊은이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고자 함이었다. 더는 말이 필요없게 결과로 보여주어야 한다.”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으니 정말 말이 필요없게 됐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한겨레)는 그동안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등 종편을 일관되게 비판해왔으나 개국 이후 기사량이 현저히 줄고 비판도 종편 자체의 근원적 문제보다 졸속 제작이나 실수를 부각시키는 데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한겨레)는 23일치 사설에서 ‘방송 파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발벗고 나서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여당이 다수인 국회에 큰 기대를 걸 수 있을까? 그에 앞서 종편을 포함한 방송정책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유린해왔는지 규명해 방송개혁의 여론을 조성하고 책임자들을 특정하는 일이 진보언론의 급선무다.

이봉수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