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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박근혜와 MB, 공조인가 야합인가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1-14일자 기사 '박근혜와 MB, 공조인가 야합인가'를 퍼왔습니다.

요즈음 진보적 신문들과 인터넷매체들은 ‘이명박근혜’와 ‘찰떡공조’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박근혜가 이명박을 러닝메이트로 삼았다”는 표현까지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대통령후보 박근혜는 이명박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자세로 일관해 왔다. 거듭된 악정과 실정으로 이미 오래 전에 레임덕이 되어버린 대통령이 집권당 소속인데도 전혀 연관이 없다는 듯이 여기는 언동을 보인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MBC 사장 김재철 해임 문제와 ‘내곡동 사저 특검 시한 연장’을 둘러싸고 박근혜는 오랜 ‘정치적 동반자’처럼 이명박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정치에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갑작스런 화해와 동행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진영의 무차별 공세를 받은 데다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로 뒤져 패배한 박근혜는 감정의 앙금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명박 본인을 비롯한 친인척과 측근들이 부정과 비리에 휘말렸을 때 구원의 손길을 뻗지 않고 ‘소 닭 보듯’ 한 것은 자연스런 일로 보였다. 그러던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선거를 40여 일 앞두고 이명박과 공생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명박의 임기말 위상은 최악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궁지로 몰아붙여 소속 정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김대중·노무현과 달리 그는 언론의 외면을 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NLL'을 소재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문재인을 공격하던 때 그는 현장을 찾아가서 “NLL을 목숨 걸고 지키자”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쥠으로써 잠깐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8면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보수언론의 지면에서도 ‘뉴스 가치’가 보잘 것 없는 대통령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런 이명박의 손을 박근혜가 잡은 것이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정치적 공조’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이것은 한마디로 ‘야합’이다. 공조는 생산적인 차원에서 ‘서로 돕는다’는 뜻인데 두 사람의 ‘찰떡공조’는 한국의 정치와 역사 발전에 이바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재철 해임안을 부결시킨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의 결정에 청와대와 박근혜 캠프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정황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갖은 비리와 추문으로 얼룩진 그는 공정방송을 열망하는 언론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퇴출’을 요구하는 인물이다. 지상파방송 3사 가운데 MBC의 신뢰도와 뉴스 시청률이 꼴찌로 추락하게 만든 장본인인 그가 사장 자리를 지키면서 ‘지휘’할 대선 관련 보도와 논평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 문방위 위원들은 지난 11월 8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의 김 사장 해임안 부결과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의 폭로로 드러난 하금렬 대통령실장, 김무성 새누리당 선대본 총괄본부장의 방문진 이사들에 대한 김 사장 유임 종용 의혹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후보가 ‘공영방송 MBC 장악의 완벽한 동반자임’임을 확인케 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5·16 쿠데타를 주동한 박정희가 방송부터 장악했던 것을 보기로 들면서 “박근혜 후보가 겉으로는 방송의 공공성 강화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서는, 내심 편파 불공정 방송에 기대 정권 연장을 꾀하려 한다면 50년 군부가 방송을 장악해 독재정권을 만든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명박이 자신이 연관된 ‘내곡동 사저 터 불법 매입’ 의혹에 관해, 특검을 향해 현행법에 어긋나는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길을 닦아준 사실은 ‘이명박근혜’의 결합이 생산적 공조가 아니라 야합임을 명확히 입증했다. 진보정의당 대선후보 심상정은 지난 13일 “특검 연장 거부로 교도소 담장 위 대통령의 농성은 약간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특검에는 시효가 있지만 국민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결국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김영삼이 ‘3당합당의 주역’인 노태우와 함께 전두환을 철창 안으로 보내 결국 장기형을 선고받게 한 사례를 연상시키는 말이다.

최근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이 이명박에 대한 기사와 논평을 미적지근하게 내보내는 것을 보면 2007년 노무현의 임기 말에 그 신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어보겠다. 

 “정권의 마지막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인사에 불이익을 받을까 벌벌 떠는 공무원들을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몇 달 뒤면 헛일이 될 (기사)송고실  폐쇄 작업에 몰아넣고 있는 이 정권의 모습이 정상이 아닌 병적 귀기(鬼氣)를 자아낸다.”(조선일보, 2007년 12월 18일자 사설) 

“국가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조롱거리가 된 적이 한국의 근대사에는 없다. (···) 노무현 권력은 막무가내다. 권력에 취해 나라를 총체적으로 결딴내고 물러갈 심산인 것 같다. (···) 대통령은 그동안 받아든 시험지마다 부실답안을 작성했다. 마지막 시험시간, 그는 시험을 포기하는 학생 같다. (···) 실권(失權)이 두려워, 4년 반 동안 누렸던 영화가 달아나는 것이 두려워,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있다.”(중앙일보, 2007년 9월 12일자 사설)

“1만 명이 참석하고 억 단위의 돈을 들여 대대적으로 환영행사를 치른다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조용한 퇴임을 바라는 국민을 상대로 어깃장이라도 놓겠다는 것인가. (···) 숭례문 소실로 온 국민이 상심한 때 이런 소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비위가 상할 지경이다.”(동아일보, 2008년 2월 14일자 사설)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던 노무현은 결국 권력과 언론의 무차별 공격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떠난지 3년만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사람으로 국민 앞에 되살아났다. 지난 5월 23일 리서치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가 노무현 35.4%로 박정희의 31.4%를 앞질렀던 것이다. 3위는 13.5%의 김대중이었고, 이명박은 8%에 불과했다. 지난 10월 29일 같은 기관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노무현 31.0%, 박정희 29.2%, 이명박 13.7%로 나타났다. 

박근혜는 이런 이명박과 손을 잡고 대선을 치르려고 한다. 어떤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의 확고한 지지세력인 ‘집토끼들’의 표를 굳히면서 ‘호남 총리론’을 내세워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한다. 박근혜가 14 번의 전과와 많은 ‘위법·탈법’ 의혹에 휩싸여 있는 이명박과의 ‘찰떡야합’으로 12월 19일의 대선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조선·중앙·동아를 폐간하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6-11일자 기사 '"조선·중앙·동아를 폐간하라"'를 퍼왔습니다.
'언론소비자' 6·10 올레


1987년 초여름의 그날처럼 무더운 6월 10일, 전국 여러 곳에서는 6월항쟁 25주년을 기념하는 모임들이 열렸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흥겨운 기념잔치가 벌어지고 있던 오후 4시, 3백여명의 사람들이 광화문 네거리의 동아일보사 앞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인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이 주관하는 ‘제1회 언론소비자 올레’가 막을 올린 것이었다.
일행이 동아일보사 정문에 이르자 사회자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의 성유보 위원에게 동아일보사의 행적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친일로 얼룩진 동아일보의 과거와 1974년 10월 24일에 시작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서 ‘민중의 격려광고’를 배신하고 언론인 113명을 강제해직한 경위를 설명했다. 올레 참가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동아일보 폐간하라’를 외쳤다.
동아, 민중의 격려광고 배신…언론인 113명 강제해직
20대 젊은이들부터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그리고 직장인과 주부들이 다양하게 참가한 올레 대열은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 조선일보사 앞에 이르렀다. 신문사를 가리고 있는 코리아나호텔 정문에서 ‘수구보수세력의 대변지’ 조선일보의 역사와 현재 행태를 간략히 들은 올레꾼들은 ‘조선일보 폐간하라’를 열 번이 넘게 외쳤다.
‘자유언론실천-1974, 10, 24’라는 글씨가 찍힌 주황색 수건을 목에 두른 올레 참가자들은 중구 정동의 경향신문사 앞으로 가서, 곤경을 무릅쓰고 한겨레와 함께 진보언론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경향을 격려한 뒤 서소문의 중앙일보사로 옮겨갔다. 동아투위 문영희 위원이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주도로 창간된 중앙일보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했다. 1960년대 중반의 ‘삼성 밀수사건’을 옹호한 일부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이래 지금까지 ‘찌라시’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을 들은 올레꾼들은 주먹을 흔들며 ‘중앙일보 폐간하라’고 합창했다.

언소주는 왜 6월 항쟁 25주년 기념일에 38년 전 동아일보사의 젊은 기자들이 발표한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주제로 조·중·동 폐간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진행했을까? 언소주의 양재일 대표는 그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은 6월 항쟁 이래 25년 동안 민주화에 제동을 걸면서 1%의 특권층 편에 서서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6월 항쟁의 빛나는 성과를 땅에 묻고 독재자의 딸이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면서 언론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문들은 역사의 발전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폐간되어야 합니다.”
KBS, 육사 발전기금 낸 전두환 기사 외면
6월 항쟁 25주년 기념식이 끝난 바로 이튿날인 11일 아침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일부 신문에는 전두환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열을 받았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가 지난 8일 ‘육사 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아내와 어린 손녀를 데리고 참석해서 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을 본 이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는 2006년 4월 28일에도 ‘육사 발전기금 재단 창립 10주년 및 100억원 달성 축하’ 행사에 참여해서 사열을 받고 생도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과 ‘화음’을 맞추려는 것인가? 노태우가 ‘사돈인 전 신동방생명그룹 회장 신명수에게 비자금 420억 원을 맡겼다’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진정서를 낸 사실이 1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의 발표로 드러났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누구인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뒤 1980년 5월 광주 항쟁을 총칼로 ‘진압’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에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신군부’의 우두머리들 아닌가? 전두환은 2심과 상고심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으나 ‘5공 비리’와 관련된 추징금 2,205억 원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는 그 가운데 532억 원만 내고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면서 지갑을 꺼내 보여 사람들의 실소를 산 바 있다. 그런 전두환이 ‘육사 발전’을 위해 1000만 원을 선뜻 냈다고 한다. 노태우는 ‘내란 음모 및 군사반란’ 재판에서 확정된 추징금 2,629억 원 가운데 2,286억 원을 내고 343억 원이 ‘외상’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보다 큰 액수를 사돈에게 맡겨두었다는 것이다.
‘새노조’가 어렵사리 파업을 접고 회사로 복귀한 것이 며칠 전인데, KBS는 공영방송과는 정반대 길로 치닫고 있다. ‘전두환의 육사 사열’을 메인뉴스가 외면한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살인마가 사열을 받느냐’ ‘육사 생도들에게 쿠데타 교육을 시킨 것’이라는 등의 비난이 들끓고 있다.
나는 KBS의 행태를 보면서 언소주의 올레꾼들이 외치던 구호를 다시 떠올린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자진 폐간하라.”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지 않은 KBS 역시 그 함성을 강 건너 불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