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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5일 목요일

‘사직동팀’도 울고갈 그들의 사찰 보고서


이글은 시사인 2012-04-05일자 기사 '‘사직동팀’도 울고갈 그들의 사찰 보고서'를 퍼왔습니다.
민간인 사찰. 그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KBS 새노조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1팀의 문건 2600여 건을 입수한 후 3월30일 새벽 4시 ‘리셋 KBS 뉴스 9’에서 이를 보도했다. 도 사찰 보고서 전문을 입수했다. 이 문건은 공직윤리지원관실 한 조사관의 컴퓨터와 USB에 담겨 있던 것이다. 이번에 입수한 문건({비상연락망(무전 포함)})에 따르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초창기 ‘총괄, 6개 팀, 1개 기동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런 조직 규모로 볼 때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빙산의 일각’으로 보인다.

‘총괄, 6개 팀, 1개 기동반’으로 구성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신설된 것은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직후였다(15쪽 상자 기사 참조). 당시만 해도 그저 공직자의 감찰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으로만 알려졌다. ‘김종익씨 사건’ 전만 해도 그랬다. 시간은 2008년 8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합성 시사IN 양한모

이날 국민은행 협력업체인 KB한마음의 김종익 사장은 MB 정부 정책을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다. 그런데 그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영장 없이 KB한마음을 ‘압수수색’했다.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회사 지분을 넘기라는 등 압박을 해왔다. 동작경찰서는 김씨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과 회사의 자금집행 내역을 조사했고, 검찰은 그의 이메일 기록을 모두 뒤졌다. 동향인 이광재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돈 문제를 뒤지고 난 후 겉으로 드러난 기소 내용은 ‘대통령 명예훼손’이었다. 무언가 앞뒤가 들어맞지 않는 수사였다. 더욱이 김종익씨는 ‘공직자’도 아니었다. 최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에서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을 두고 ‘공기업 임원으로 착각해서 발생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2010년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전 김 아무개 팀장이 ‘공기업인 줄 착각했다고 해야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고 1팀 직원들과 회의했다”라고 폭로했다.

이번에 이 입수한 문건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어떤 임무를 맡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2008년 10월7일 1팀의 김○○씨가 작성한 문건으로 제목이 ‘오늘 할 일’이다. ‘□제목 ○(주)KB한마음 김종익 내사 □업무내용-회사 자금 및 업무추진비 유용여부 등 확인 □업무방법론-경리부장 및 KB직원 상대 탐문 / □제목 남○○ 내사 관련 □업무내용-보석밀수 입증자료 확보 등 □업무방법론-밀수 유통경로 및 판매처 추적-구매자 추적 등.’ 여기에서 남○○라고 표기되어 있는 사람은 옛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으로 추정된다. 당시 남 의원은 권력 핵심부에 밉보여 사찰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16~17쪽 딸린 기사 참조).


2008년 7월부터 사찰 본격화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공직자가 아닌 민간인(김종익씨)을 사찰했다는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알려졌다. 2010년 6월 김종익씨는 헌법소원을 통해 당시 수사기록을 받았고 이를 ‘민간인 사찰’의 증거로 세상에 알렸다. 총리실에서 동작경찰서에 보낸 공문이 이때 나왔고, 수사기록에는 총리실에서 회사 직원을 어떻게 협박하고 조사했는지가 나와 있었다. 그 후 2010년 8월 이인규 지원관은 불법 사찰 혐의로, 2010년 9월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과 장진수 전 주무관은 증거 인멸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시 검찰의 수사 결과에는 의문이 따랐다. 검찰은 뒤늦게 압수수색에 나서 지원관실의 증거 인멸을 방치했다는 의혹을 샀고, 지원관실 장 전 주무관이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로부터 대포폰을 건네받아 사용했음에도 “단지 빌려주었을 뿐 범행 지시나 공모한 정황이 없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봐주기 수사’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힐 즈음 장 전 주무관이 잇달아 새로운 폭로를 하면서 이 사건은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장 전 주무관은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터지기 전인 2010년 7월까지 특수활동비 중 280만원을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그리고 입막음용 등으로 돈이 오갔다고 폭로했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 2600여 건은 2003년 4월부터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세워진 2008년 7월까지 작성된 문건 2200여 건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만들어진 이후 작성된 문건 400여 건으로 나뉜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만들어지기 전의 자료들은 대개 경찰관에 대한 신상 자료와 인사 자료들이다. 참여정부 때 작성된 내용도 다수 포함돼 있다. 

2008년 7월 이후 만들어진 자료들에는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문건들이 등장한다. 박찬숙 전 국회의원에 대한 동향 보고, 2008년 하명사건 처리부(처리 대장), 쌍용차 작전 조사결과 보고, 행정심판위원 세평, 전공노 부위원장 조치계획, KBS 최근 동향 보고, 전직 고위 경찰관 민주당 입당 관련 보고, (PD수첩) 관련 자료 등 ‘공직자’와는 거리가 먼 자료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정계, 언론계, 노동계, 관계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사찰이 이루어졌음을 추정케 하는 문건들이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한 2009년 하명 사건 처리부. 왼쪽 하명관서 난에 ‘BH(청와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재경 포항동지회’ 명단도 들어 있어

포항·영일과 관련한 자료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2008년 9월 이후부터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인규 지원관을 비롯해 상당수 인원이 영일·포항 지역의 연고나 학연으로 연결돼 있었다. 김종익씨 사찰을 맡았던 김 아무개 1팀장이 포항 출신이었고, 한국노총 배정근 공공연맹 위원장을 미행했던 한 아무개씨도 포항고 출신이었다. 직제상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보고를 받았던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포항 출신이었다. 

이번에 입수된 문건 중에는 ‘포항동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지방청 소속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자’가 가입할 수 있는 ‘재경 동지회’ 명단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금감원 4급 자리에 지원하는 ‘포항동지고 출신’ 은행원과, 영일 출신 한 경찰관의 이력서도 포함돼 있었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장동엽 간사는 이를 두고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 중심이 돼 권력을 사유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초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목적으로 조직을 만들어놓고, 민간인을 사찰하고 권력에 반기를 든 이를 탄압하는 공적 조직처럼 활용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사병(私兵)화’가 문제가 된 일이 있다. 경찰청 소속으로 청와대의 지휘를 받던 사직동팀이 대표적이다. 이 팀은 대통령의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수집하고 내사하는 경찰청 특수조사과였는데, 사무실이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어서 ‘사직동팀’으로 불렸다. 사직동팀은 국민의 정부 시절 ‘옷로비 사건’ 등 청와대가 거론된 사건에서 불법 감금 등의 잘못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2000년 10월에 폐지된 바 있다. 그러나 김종익씨 사건 변론을 맞았던 최강욱 변호사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사직동팀보다 더한 조직이다”라고 말했다. 사직동팀의 경우, 경찰 조직으로 정보 수집 기능이 있었다. 반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 직제상 공무원 비위 감찰은 할 수 있되 민간인에 대한 조사는 아예 할 수 없는데도 직권을 남용해 민간인 사찰을 행했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을 했던 김동춘 교수(성공회대·사회학)는 “총리실의 사찰 활동을 보면 과거 군사독재하의 수사정보기관이 자행했던 행태와 다르지 않다. 국정원이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했던 사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지원관실을 편법으로 설치해 운영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통상 비밀 사찰은 권력자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 등장한 인사들이 ‘영포 라인(대통령과 동향인 영일·포항 출신)’이라는 점도 유사하다는 것이다.

2600여 건 문서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KBS 새노조의 ‘리셋 KBS 뉴스 9’는 이번 사건을 1974년 미국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에 비견했다. 김동춘 교수는 민간인 사찰을 주제로 한 기고 글에서 이렇게 썼다. “1974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으로 사퇴까지 한 것은 닉슨 지휘하의 백악관이 주거침입, 도둑질, 사찰, 도청 등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 자신이 계속되는 거짓말과 은폐 공작에 가담하는 등 어떤 이유로든 그러한 범죄를 정당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민간인 사찰사건의 진실이 규명되어 총리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획했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누구의 지시하에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지가 제대로 드러나기라도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힘으로는 버틸 수 있더라도 도덕적으로는 하루도 지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 ‘판도라의 상자’가 개봉되었다.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까지 은폐 나서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3-30일자 기사 '청와대, 행정관 성매매까지 은폐 나서'를 퍼왔습니다.

청와대 비서관의 지휘를 받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무차별적인 불법사찰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찰 내용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지난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최영진 주미대사 신임장 수여식장에 들어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경찰에 ‘보안유지’ 압박사찰보고서 입수 분석 결과2009년 한겨레 보도 사실로경찰·청와대 거짓말 드러나
3년 전 가 단독 보도한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 ▷청와대 직원 성매매 혐의 입건( 2009년 3월28일 보도))초기, 청와대가 이를 알고 일선 경찰에 지시해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30일 가 입수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김기현 경정의 사찰 보고서를 보면,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2009년 3월31일 ‘서울 마포서 언론보도(청와대 행정관 성매매 축소·은폐의혹)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 이날은 가 청와대 행정관이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사실을 보도한 뒤, 경찰이 이 사건을 축소·은폐한다는 의혹을 제기한 날이다.
이 문건을 보면, 감찰담당관실은 “25일 밤 10시52분께 행정관을 적발해 마포서로 임의동행 후 조사 중 다음날 0시5분께 (행정관이) 명함을 제시하며 본인의 신분을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이라고 밝혔으며, 0시10분께 청와대 감사팀 3명이 여성청소년계로 와서 보안유지를 부탁하고 돌아갔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에 마포서장은 서울청장·차장·생안부장에게 문자보고하였으며, 생활안전과장, 여청계장 및 경장 정○○(여청계)만 해당 사실을 알고 보안유지를 하였다고 함”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경찰 수사를 초기 단계부터 찍어 누른 것이다.
그러나 당시 마포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언론보도를 보고 행정관인 줄 알았다. 전혀 몰랐다”고 거짓 설명을 했다. 이에 대해 감찰담당관실은 “브리핑 시 청와대 행정관 신분은 언론보도를 보고서 알았다고 설명했으나 서울청을 통해 확인한바 적발 직후 청와대 행정관 신분을 알았으며, 지휘계통(서울청장·차장·생안부장) 보고한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이런 사실을 숨긴 채 첫 보도 나흘 뒤인 4월1일 공식 사과문을 내고 “이번 사건은 한 점 의문도 남지 않도록 하겠다”며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을 수사기관에서 철저하게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무개·장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은 2009년 3월25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룸살롱에서 방송통신위원회 직원과 함께 케이블방송업체 관계자로부터 술접대를 받았고, 김 전 행정관은 성접대까지 받아 이후 법원으로부터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사건 당일 성매매 단속에 나선 마포경찰서가 이들을 적발했으나, 마포서 쪽은 거짓말을 하는 등 이 사건을 은폐·축소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