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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9일 화요일

靑 비서실장 허태열..‘강한 청와대’ 메시지


이글은 파이낸셜뉴스 2013-02-18일자 기사 '靑 비서실장 허태열..‘강한 청와대’ 메시지'를 퍼왔습니다.
[청와대 비서진 추가 발표]

청와대 비서진 인선
국정기획수석 유민봉,민정수석 곽상도,홍보수석 이남기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8일 새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에 허태열 전 새누리당 의원(68·부산)을 내정했다. 또 국정기획수석에 유민봉 성균관대 교수(55·대전)를, 민정수석에 곽상도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54·대구)을, 홍보수석에는 이남기 전 SBS미디어홀딩스 사장(64·전남)을 각각 내정했다. 

윤창중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은 이날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4차 인선을 발표했다.

청와대 9명의 수석 가운데 국정기획·민정·홍보를 제외한 경제·정무 등 남은 6명은 2~3일 뒤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5차 인선 때 발표한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의 조각이 사실상 마무리되게 된다. 다만 국회 및 언론 등의 검증 과정이 혹독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점, 박 당선인 취임식까지 남아 있는 기간이 1주일에 불과한 점 등을 고려할 경우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당분간은 이명박 정부의 장관들과 공존하는 기형적인 내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허 비서실장 내정자는 부산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행시 8회에 합격해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74~1985년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공직을 그만둔 후에는 경기 의정부·부천시장과 충북도지사, 부산 북·강서을에서 16~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친박(친 박근혜)계 핵심이자 박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로 꼽히기도 한다. 

유 국정기획수석 내정자는 인수위에서 정부조직개편을 주도해 국정기획수석 1순위로 꼽혀왔으며, 곽 민정수석 내정자는 박 당선인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법·정치 분야 발기인이며 인수위 정무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홍보수석 내정자는 동양방송 PD로 출발해 SBS 부사장을 지낸 방송인 출신이다.

한편 인수위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비전을 '희망의 새 시대'로 정하고 5대 국정목표와 140개 국정과제도 선정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인수위 국정기획조정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 인사말을 통해 "인수위는 그동안 각종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현장방문 등을 통해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챙겨왔다"며 "이들을 정리해 '희망의 새 시대'를 국정 비전으로 제시하고 5대 국정목표와 140개 국정과제를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전라도, 빨갱이, 섹스프리" 돌아온 허태열의 입


이글은 미디어스 2013-02018일자 기사 '"전라도, 빨갱이, 섹스프리" 돌아온 허태열의 입'을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거는 언론의 기대

새로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허태열 전 의원이 내정됐다.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가? 감회가 새롭다. 이러한 인물을 다시 한 번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박근혜 당선인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
허태열 전 의원의 ‘입’은 유명하다. 워낙 화끈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00년 총선 당시 ‘지역감정 조장 사건’이다. 이때 부산 북강서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허태열 전 의원은 민주당 집권 이후 살기 좋아진 분 손을 들어보라고 한 후 ‘혹시 전라도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말해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이러한 효과에 힘입어 의원에 당선됐다. 과거 김영삼 대통령으로 표현되는 민주화 세력의 본거지 중 하나였으나 3당합당으로 인해 보수정치로 합류한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 말은 한국 정치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지역감정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좋게 말하면 영리한 행동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악하다는 것이다.
2009년에도 ‘허태열의 입’은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부산에 총출동해 국정보고대회를 연 자리에서 ‘좌파 빨갱이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있다’라며 ‘빨갱이인 좌파가 이명박 대통령을 흔들고 있는데 거기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게 민주당’이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빨갱이라는 말은 정견이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는 말이고, 이 말 때문에 정치사회적인 여러 피해를 받은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더군다나 당시 민주당은 오늘날 상식적인 기준으로 보면 ‘좌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중도적 이념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그의 이러한 발언은 더욱더 비상식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허태열 전 의원 ⓒ뉴스1

2010년에도 그의 입은 대활약을 했다.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책포럼에 강사로 나서 ‘의료까지 곁들여 그 안에서 뭐든지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관광지 조성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이다. 여기에 그는 ‘일본, 중국 인구가 15억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섹스프리, 카지노프리한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섹스프리, 카지노프리’가 워낙 자극적인 단어여서 ‘지금 막나가자는 거냐?’등의 극단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는데, 사실 이 발언의 핵심은 의료민영화를 통해 이를 서비스산업에 포함시키고 소위 ‘서비스산업선진화’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을 자극적으로 포장한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즉, 그의 발언은 그 말 자체로도 부적절했지만 정책적으로도 부적절했던 것이다.
이런 정도면 그저 ‘말을 영리하게 하는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태열 전 의원의 입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입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됐다고 해서 그 입이 가만히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입은 살아 움직이며 온갖 독설과 망언을 쏟아낼 것이고 그럴 때마다 새 정부의 국정 수행 능력은 저하될 것이다. 야당은 지속적으로 각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이고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온갖 구설수에 시달릴 것이다.
새 정부 청와대의 임무는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이 정책을 잘 집행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인데, 이러한 임무의 한가운데 허태열 전 의원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 수석 등의 인사권에도 개입할 수 있다. 신설되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위원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입까지 달렸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입장에서는 노다지(?)를 찾은 느낌이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계속되는 대활약을 기대한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文 지지=정치적 창녀" 주장 윤창중, '박근혜 입' 발탁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4일자 기사 '"文 지지=정치적 창녀" 주장 윤창중, '박근혜 입' 발탁'을 퍼왔습니다.
'2세 정치인' 유일호, 비서실장에…당선인 첫 인선 '구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장과 대변인이 24일 발표됐다. 당선인 비서실장에는 유일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가 결정됐고, 대변인에는 중앙선대위에서 활약했던 조윤선, 박선규 대변인이 발탁됐다.

유일호 비서실장은 '강남3구' 중 하나인 서울 송파을 지역에서 민주당 천정배 전 의원을 꺾고 당선된 재선 의원이다. 유 의원은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의 아들로 박 당선인처럼 '2세 정치인'이기도 하다. KDI 교수를 지냈고, 보수 경제학자 출신이다. 18대 국회에서는 친이계로 분류됐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당선인의 서울 지역 득표에도 힘을 썼다.

조윤선 전 의원은 무난한 대변인 직 수행으로 이번에 발탁됐다는 평이 많다. 박선규 대변인은 KBS 기자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다가 이번에 '친박'으로 건너왔다. 유 의원을 뺀 이들은 모두 현역 의원이 아니다. 따라서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인수위 인선은 다소 늦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2월 26일 인수위 첫 회의를 주재했었지만 박 당선인는 26일 이후에 인수위 인선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김종인 전 행복추진위원장 등은 당내 비토세력이 많아 힘들다는 전망도 있다. 야당 출신으로 재경부 자장관을 지냈던 강봉균 전 의원 등도 '깜짝 인선' 대상으로 거론된다.

"문재인 지지=정치적 창녀" 주장 윤창중, 박근혜의 '입'

수석 대변인을 맡은 윤창중 칼럼세상 대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사다. 젊은 보수논객으로 유명한 그는 (문화일보) 논설위원 재직 당시 칼럼으로 유명세를 탔었다. 당시 "보수 성향의 어르신들이 (문화일보)를 볼 때 뒷면부터 본다. 윤창중 칼럼을 읽고 난 후에야 1면을 본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5060층에 '팬'이 많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에서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다. 현직 대기업 관련 인사가 수석 대변인에 발탁된 것이다.

 
ⓒ프레시안

대선 기간에 활발한 활동을 했던 윤 대표는 (뉴데일리)에 "문재인의 나라? '정치적 창녀'가 활개치는 나라!" 등의 자극적인 제목의 칼럼을 연재해 왔다. 윤 대표는 대선일 직전에 쓴 이 칼럼을 통해 친노 세력을 "노(盧) 탈레반", "완장찬 노란 점퍼세력" 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이 칼럼을 통해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사사건건 국민을 분열과 대립의 구도 속으로 몰아 나라를 파산 직전까지 내몰아갔던 '완장찬 노란 점퍼세력'들이 일제히 권력을 장악해 노무현 정권보다 더 '노무현적 색깔'로 나라를 절단낼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문 후보를 집중 비난해 왔다.

윤 대표는 "만약 문재인이 당선되면 문재인의 대선 공약대로 김정은이 보낸 축하 사절단이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장'에 앉아있는 모습이 전 세계에 방영되는 걸 시작으로 비로소 '종북시대'의 거대한 서막을 전 세계에 고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대표는 이명박 정부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해 김덕룡 전 의원,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을 두고 "이거야말로 권력만 주면 신발 벗겨진 것도 모르고 냅다 뛰어가는 수많은 '정치적 창녀(娼女)'의 한 사람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나머지 '정치적 창녀'들-박근혜의 일급 정치참모였던 윤여준, 박근혜가 당대표할 때 원내대표했던 김덕룡, 상도동 YS의 차남으로 YS 덕에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자리까지 지냈던 김현철…이들 수많은 '정치적 창녀'들이 나요, 나요 정치적 지분을 요구할 게 뻔하다. 이런 '정치적 창녀'들이 장관자리 꿰차는 문재인 정권, 얼마 가기나 하겠는가? 서로 권력이라는 고기 덩어리 놓고 둘러앉아 싸우느라!"라고 비난했다.

'국민대통합'을 외치는 박 당선인은 이같은 '독설가'를 수석대변인에 내정했다.

박근혜 첫 민생행보는 '저소득층' 봉사 단체

박근혜 대통령 이날 첫 외부 활동으로 봉사 단체를 찾았다. 해고 노동자 자살과 관련해 노동 현장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 등이 있었지만 박 당선인이 '민생'을 첫 행보의 메시지로 내 놓은 것이다. 박 당선인은 서울 관악구 난향동 '난곡 사랑의 집'을 방문해 도시락 배달 봉사에 나섰다.

박 당선인은 "지금 (사랑의 집에서) 하시는 일들이 국가에서 다 좀 해야 하는 기본적인 복지망인데 우리 사회가 부족한게 많다. 진짜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도움을 못 받고 있다"며 "그래서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도움을 드려야 하는 분들,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도움을 드릴 수 있나 하는 방법들을 잘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이 "흔히 아는 난곡달동네가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다"고 말하자 박 당선인은 "(달동네가) 개발이 돼도 실질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이 돼야 하는데 막상 이곳에 살던 분들은 도움이 안되고 막상 밀려나서 도움이 안된다"며 "개발이 되더라도 그런 생각을 깊게 하면서 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세열 기자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1-30일자 기사 '"영애 박근혜, 기부금 낸 기업 민원해결 요청"'을 퍼왔습니다.
[인터뷰] 의문사위 전 조사관이 살려낸 '김정렴 중대증언'

 
▲ 고상만 전 의문사위 조사관이 최근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을 펴냈다. ⓒ 구영식·돌베개

고상만 전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관이 최근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을 펴냈다. 의문진상규명위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를 조사했던 그가 장준하 의문사의 진실을 추적한 책이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책을 다 읽고 나니 장준하 선생의 억울한 죽음의 실체가 그냥 눈앞에 분명하게 다가왔다"고 호평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관련한 '중대 증언'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9년 3개월(1969~78년) 동안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한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퍼스트레이디 시절 박근혜가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을 주면서 그 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구국선교단에 기부금 낸 기업 민원 해결해 달라고 요청"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 연합뉴스

고상만 전 조사관은 지난 2004년 2월 20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김정렴 전 비서실장을 만났다. 2차에 걸친 출석요구에 반응을 하지 않자 직접 전화를 걸어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고상만 :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서 언급하거나 이야기하신 것을 들으신 적이 있었나요?"김정렴 : "박 대통령은 남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코멘트하는 법이 없습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정신없이 살던 그때, 장준하라는 사람을 우리가 알 필요가 없었고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고상만 : "그럼 박 대통령은 장준하의 사망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김정렴 : "모르지요."

고상만 :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의 사망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까?"김정렴 : "모르지요. 박 대통령도 신문 읽으시고, 텔레비전 보시니까."

장준하 사망 문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여부, 박 대통령의 반응과 지시사항 등 고 전 조사관이 얻고자 했던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사가 다 끝난 뒤 사담을 나누는 과정에서 '중대한 증언'이 나왔다. 청와대에서 9년 3개월 동안 모셨던 박정희 대통령을 언급하길 극도로 꺼렸던 그가 박근혜 후보와 관련한 내용을 꺼낸 것이다. 고 전 조사관은 자신의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에서 그날 그의 증언을 이렇게 기록했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한 후 그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로 활약하던 박근혜 후보가 자신에게 뭔가를 적은 메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메모를 살펴보니 기업체 이름이 세 개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정렴이 '이것이 뭐냐'고 묻자 (박근혜 후보가)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업들이 바라는 민원을 원하는 대로 해결해 달라'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는 것이다."([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254~255쪽)

김 전 실장의 증언은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후보가 구국선교단의 자금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두 사람의 관계가 밀접했다는 것이다. 구국선교단은 최태민 목사가 만든 단체로 나중에 '대한구국봉사단'(1976년) '새마음봉사단'(1978년)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박 후보는 최 목사가 지난 1975년 5월 임진강에서 연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뒤 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1970년대 말 최 목사를 조사한 뒤 작성한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자료에는 "박근혜의 후원으로 구국봉사단을 설립, 매사 박근혜 명의를 팔아 이권 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고 적시돼 있다. 선우련 전 공보비서관도 1977년 9월 20일 자 비망록에다 "9월 12일 밤 대통령은 근혜양과 김재규 중정부장 및 백광현 정보부7국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구국봉사단 최태민의 부정부패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친국을 했다"고 적었다. 

"9년 3개월 비서실장의 증언, 박 후보가 부인할 수 있을까"

▲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정치회고록 <아, 박정희>. ⓒ 중앙M&B

지난 28일 지하철 3호선 화정역 근처에서 기자와 만난 고상만 전 조사관은 "김정렴 전 실장의 증언은 최태민 목사가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자금책'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그 돈을 낸 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해결사'였음을 확인해주는 최초의 사례"라며 "9년 3개월이나 박정희 대통령을 보좌한 비서실장의 증언을 박 후보가 부인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고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이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세 기업의 명단을 들려줬는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건설회사 2곳과 섬유회사 1곳이었다는 얘기만 기억난다"고 말했다. 

당시 김 전 실장은 고 전 조사관에게 "박근혜에게 들은 얘기를 각하에게 직접 보고했는데 각하가 대로했다"며 "이러한 사실을 안 박근혜가 나를 많이 미워했다"고 말했다.  

고 전 조사관은 김 전 실장으로부터 나온 '뜻밖의 증언'을 반신반의했다. 그는 "김 전 실장이 장준하 의문사와 관련한 얘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엉뚱한 얘기를 한다 싶었다"며 "하지만 김 전 실장에게 받은 그의 회고록을 나중에 읽고서 그의 얘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고 전 조사관이 김 전 실장을 조사하기 전 그에게 받은 책은 (아, 박정희)(1997년·중앙M&B)였다. (아, 박정희)는 김 전 실장의 '정치회고록'으로 그의 '경제회고록'인 (한국경제정책 30년사)(중앙M&B)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정치자금과 친인척 관리'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의 6장에는 그가 고 전 조사관에게 들려준 얘기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육 여사 서거 후 큰 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모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 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문제를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딸로서 아버지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선양운동을 시작한 큰 따님이 구국선교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즉각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만약 대통령이 보기에도 큰 따님에게 자금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비서실장이 자금을 추가로 마련하여 드릴 터이니 대통령이 큰 따님에게 직접 지원하되 그 대신 큰 따님에게는 금전문제에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원천봉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나의 건의에 전적으로 찬성했다."([아, 박정희] 244쪽)

김 전 실장은 이 책에서 "나는 박 대통령의 양해를 얻어 모든 수석비서관들에게 구국선교단에 이용당하지 말도록 당부했다"며 "그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추가자금조달 지시가 없었으며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은 구국선교단의 동정을 살펴 큰 따님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많은 애를 썼다"고 전했다. 

▲ 김정렴 전 비서실장의 정치회고록인 <아, 박정희>에는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보여주는 일화가 소개돼 있다. ⓒ 중앙M&B

"박근혜 후보, 김정렴 증언의 사실 여부에 답변해야"

고 전 조사관은 "김 전 실장이 박 후보에게 민감한 얘기를 이렇게 책에다 기록해놓은 것은 박 후보가 정치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고, 자신이 비서실장으로서 이렇게 친인척 관리를 철저하게 했다는 치적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아, 박정희)가 출간된 것은 박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기 직전인 지난 1997년 6월이었다.     

고 전 조사관은 "박 후보는 그동안 최태민 목사·구국선교단과 관련한 의혹을 부인하거나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라고 말해왔다"며 "하지만 김 전 실장의 증언은 박 후보의 해명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내가 김 전 실장의 증언을 공개하는 이유는 전 국민에게 진실을 속이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후보가 전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래서 김 전 실장의 증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박 후보는 답변해야 한다."

고 전 조사관은 자신의 책에도 "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이 내게 들려준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그동안 알려진 박근혜 후보의 주장이 실은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라고 적었다.

구영식(ysku)

2012년 10월 6일 토요일

새누리 입당 한광옥 호남 대표성 있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0-05일자 기사 '새누리 입당 한광옥 호남 대표성 있나?'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 나와 40여분간 머문 뒤 질의를 하지 않은 채 감사장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한광옥 새누리당 입당 선언 
안대희 “비리인사 영입” 반발
DJ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박근혜, 직접 만나 권유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는 5일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영입했다. 박 후보는 김 전 고문을 조만간 합류할 박상증 목사와 함께 당 국민대통합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하기로 했다.그러나 안대희 당 정치쇄신특위원장이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 사건에 연루돼 3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한광옥 전 고문 영입에 대해 “무분별한 비리인사 영입”이라고 반발하는 등 당내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한광옥 정통민주당 대표

박근혜 후보는 이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참석 뒤 기자들을 만나 “이 시대가 가장 요구하는 것은 통합과 화합을 이뤄내는 것이고, 한 전 실장이 이런 취지에 동의했다”며 “시대적 요구를 이루기 위해 기여하고 헌신해 보겠다는 큰 결단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지난 3일 한 전 고문을 직접 만나 새누리당 입당을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한 전 고문은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역과 계층간 갈등, 세대간 갈등 해소를 근간으로 대탕평책을 실현시켜 국민 대통합의 바탕 위에서 남북통일을 이루는 과업에 한 몸 헌신하기 위해 이 길을 선택했다”며 새누리당 입당을 선언했다.새누리당 안에선 한 전 고문 영입에 대해 “원칙 없는 영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나 “죄도 죄 나름이다. 무분별한 비리인사 영입은 정치쇄신특위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며 “(한 전 고문 영입으로)선거에 이기기 위한 쇄신 이미지는 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수의 쇄신특위 위원들도 “비리를 척결한다고 쇄신특위를 만들었는데, 로비 자금을 받아 유죄가 선고된 사람을 받아들이는 건 옳지 않다”며 “쇄신위 차원의 문제제기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친박계 전략통인 한 핵심 당직자는 “박 후보는 호남표를 의식해 한 전 고문을 영입했겠지만, 그가 호남 대표성이 있는 인물인지 잘 모르겠다”며 “득표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문재인 연보]운동권 학생·인권 변호사 … 참여정부 실세 거쳐 제1 야당 주자로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16일자 기사 '[문재인 연보]운동권 학생·인권 변호사 … 참여정부 실세 거쳐 제1 야당 주자로'를 퍼왔습니다.

ㆍ민주당 대선 후보 문재인은 누구

“운명이다.”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된 문재인 후보는 지난해 정치권에 입문하는 이유를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는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운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친구로 대변된다. 부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인권·노동 변호사로서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젊은 날을 보냈다. 민주화 운동에도 뛰어들어, 1987년 6월항쟁의 현장에서 두 사람은 함께 싸웠다. 

친구의 부름으로 간 청와대에서 5년을 보냈다. 정치에 반쯤 발을 담근 것이다. 문 후보는 청와대에서 원리·원칙주의자로 불렸다. 꽉 다문 입에 말을 극도로 아끼는 ‘비정치적’ 태도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침착하고 강단 있는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 앞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한 치도 흔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런 그의 모습에 주목했다. 

그가 지난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변신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가장 큰 우려는 권력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상당히 희석됐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뻣뻣한 부산 남자’는 이제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까지 추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쏟아진 정치권의 구애에 손사래를 치던 그가 야당의 대선 후보로 정권 탈환을 향해 뛰고 있는 것이다. 문 후보는 “이명박 정권의 암울한 시대가 나를 불렀다”고 했다. 이명박 정권을 반면교사로 삼고, 참여정부의 과오를 넘겠다는 각오로 정권교체의 선봉장에 나섰다.

대학생 시절 (1972~1980) 대학생 시절 부인 김정숙씨가 문 후보의 머리를 빗겨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 피 끓는 저항으로 보낸 학창시절

문 후보는 1952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피란을 온 부모님은 가난한 삶을 안겨줬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책 읽기를 더 좋아했다. 그렇게 품어온 문학청년의 삶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경희대 법대에 입학한 1972년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학생운동판도 암흑기였다. 3학년이던 1974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나섰다. 교내에서 유신 반대 시위를 기획했다 경찰에 붙들렸다. 구류를 살고 풀려났지만 이듬해에는 일이 더 커졌다. 유신 반대 시위가 가장 거셌던 1975년, 문 후보는 시위를 주도했다. 결국 그는 서대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석방 뒤 강제징집된 그는 특전사에 배치돼 베레모를 쓴 공수부대 요원으로 복무했다. 군 생활을 하고 나왔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신군부가 주도한 12·12 사태가 터졌고, 이듬해 ‘서울의 봄’이 오면서 민주화 열망은 더욱 뜨거워졌다. 문 후보는 또다시 학생운동에 나섰다. 그해 5월 서울 지역 대학생 20만명이 모인 반독재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가했다. 대학 9년차 복학생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다 중단하다시피 하고, 후배들과 함께 서울역으로 거리투쟁을 나갔다. 

이번에도 주동자로 찍힌 그에게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가 씌워졌다. 그리고 뜻밖에 그는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통보를 들었다. 문 후보는 “얼떨떨했다”고 한다. 

특전사서 군 생활 (1976) 1976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특전사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 운명적 친구, 노무현과의 만남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한 그는 판사를 지원했으나 임용되지 못했다. 학생운동을 한 전력이 문제가 됐다. 미련 없이 변호사의 길을 택한 문 후보는 ‘김앤장’ 등 유명한 대형 로펌의 제안을 뿌리치고 19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났다. 문 후보는 “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회고했다.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한 두 사람은 ‘돈 안되는’ 사건을 마다하지 않았다. 창원·경남 지역에 공단이 많아 노동 관련 사건을 주로 맡았다.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저항이 거세지면서 시국 사건 변호도 그들 몫으로 떨어졌다. 그는 “우리 사무실이 부산·경남 지역의 노동·인권 사건 총괄센터가 돼버렸다”고 했다. 

문 후보는 각종 민주화 운동 사건의 변론도 맡으며 진보·개혁 성향 법조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부산·경남지부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중엔 민주화 운동에 작심하고 나섰다. 서울보다 부산에서 더 뜨거웠다던 6월항쟁에 두 사람은 스스로 나서 ‘야전사령관’이 됐다. 부산 국민운동본부를 조직해 매일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는 점점 규모가 커져갔다. 두 사람은 불의에 항거하는 데 누구보다 죽이 잘 맞는 동지가 되어갔다. 

하지만 노 변호사가 정치권에 뛰어들자 두 사람은 잠시 이별했다. 노 변호사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자 문 후보는 지역에서 노동·인권 사건 변호사로 남았다. 

변호사 시절 (1987) 1987년 문재인 후보가 부산의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러다 2002년 대선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부산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을 맡았다. 그곳에서 그는 노 후보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노 후보는 항상 ‘친구 문재인’에게 최종 의견을 물었다. 

대표적인 것이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였다. 고민하던 노 후보에게 당시 문 변호사는 “반드시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고언했다. 방식도 노 후보에게 불리한 여론조사를 수용하라고 제안했다. 당시 ‘친노무현’(친노) 진영은 이 문제를 놓고 찬반이 갈려 있었다. 이때 문 변호사의 조언에 노 후보도 고민을 접고 여론조사 수용으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그는 노 후보에게 항상 원칙을 강조했다. 그는 자서전 (운명)에서 “역시 어려울 때에는 원칙에 입각해서 가는 것이 가장 정답이었다. 뒤돌아보면 늘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그의 조언은 노 후보를 승리의 길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 권력의 중심에 서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첫해 문 후보는 청와대에 들어갔다. 민정수석비서관 자리였다. 인권 변호사로 권력을 비판하기만 하던 사람이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선 것이다.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두 가지 조건을 노 전 대통령에게 말했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 “내게 정치하라고 하지 마라”였다. 결국 둘 다 지켜지지 않았다.

과거 ‘군림과 권위주의’의 상징이던 민정수석실을 개혁했지만 그의 앞에는 난제가 쌓여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 송금을 조사하기 위해 도입된 특별검사는 당시 노무현 정권엔 받을 수도,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난제였다. 결국 그는 전 정권에 칼을 대는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자는 노 전 대통령의 의견에 따랐다. 최근엔 이 일에 대해 후회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문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척을 졌다. 이후 양측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대북 송금 특검은 이번 경선에서도 두고두고 문 후보에게 큰 짐이 됐다.

노무현의 동반자로 (2007) 2007년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문재인 후보(왼쪽)가 노무현 대통령과 전남 무안의 한 행사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초대 민정수석 1년은 격무의 연속이었다. 이 동안 건강은 상할 대로 상해 가뜩이나 좋지 않던 이를 10개나 빼야 했다. 임플란트를 해 넣었지만 지금도 발음이 부정확하다. 

그는 청와대를 떠나 히말라야 여행 중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식을 들었고, 급거 귀국했다. 노 전 대통령의 대리인으로서 헌법재판소에 드나들며 그를 위해 다시 뛰었다. 

2004년 5월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 복귀했다. 당시는 천성산 터널 문제와 전북 부안 핵폐기장 건설 문제가 현안이 돼 있을 때였다. 현장을 직접 찾아가며 소통에 애를 썼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도 그가 안고 있는 짐이다. 2007년 3월 청와대 비서실장이 된 문 후보는 이후 노 전 대통령 퇴임 때까지 함께했다.

청와대 생활을 하면서 그는 사생활을 포기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민원이나 청탁, 구설을 극도로 우려해 일 외에는 사람을 만나지 않기로 유명했다. 이호철 민정비서관을 통해 어렵게 찾아온 동창생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작은 잡음이라도 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의 원리·원칙적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당시 저녁 술자리에서 그는 ‘소주 폭탄주’만, 그것도 몇 잔만 마셨다. 주위 사람들이 “왜 양주 폭탄주는 안 마시느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내가 어찌 양주를 마시느냐, 소주면 된다”고 했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다. 그는 지금도 그와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말한다.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장례 절차가 진행되던 중에 바깥 사람들에게 눈물을 한 번도 비치지 않았다. 그 절제력과 의연함이 놀랍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자책으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을 문 후보와, 당시 청와대 내 부산 인맥에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노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아프게 고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산 그였지만, 여기저기서 터지는 측근 비리 사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박연차 게이트’와 노 전 대통령 형 노건평씨 사건 등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있던 그가 제대로 친·인척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으로 돌아왔다. 그 역시 자서전 등에서 “사실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각별히 신경 썼던 일인데 아차 싶었다”고 고백했다.

‘왕수석’으로 불렸지만 5년간의 국정 운영 경험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영광만큼 상처도 많았던 셈이다.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로 야권통합 추진 (2011) 지난해 12월7일 문재인 후보(가운데)가 야권 통합을 위한 한시 정당인 시민통합당 창당대회에 참석하고 있다.

■ ‘정치인 문재인’의 이름으로

문 후보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당으로부터 부산 출마 제안을 받았지만 뿌리쳤다. 그는 ‘왜 정치를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난 정치를 모르고, 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청와대 실장 역할도 정치 아니냐’고 물으면, 그는 “대통령 업무에는 정치적 분야와 행정적 분야가 있다. 나는 그중 행정적 분야를 도운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노무현재단 이사장만 맡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6월 ‘정치인 문재인’ 명함을 뽑아 들었다. 당시 자서전을 출간하고 전국 주요 지역을 돌며 북콘서트를 했다. 그는 연일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이후 야권 대통합 운동을 추진하는 시민사회 모임인 ‘혁신과 통합’에 들어가 상임대표가 됐다.

지난해 12월 민주당과 야권 대통합을 이룬 그는 곧바로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됐다.

그는 부산·경남 지역의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본인 지역구에만 치중해 민주당이 부산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3석에 머물고 말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다만, 그의 총선 승리는 이후 민주당 대선주자 중 가장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기록하며 급부상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올해 6월 새 지도부 선출 경선에서는 ‘이해찬 대표-박지원 원내대표’의 담합 논란 때 그들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가 역풍을 맞았다. ‘이-문재인-박 담합’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친노가 다른 계파에 공격을 당할 때마다 그 틈에 그의 이름이 끼워졌다. 

그는 6월17일 서울 독립문 앞에서 대선 출마선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교체, 시대교체를 주창했다. 문 후보는 “나는 오래전부터 대통령을 꿈꿔왔던 사람이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측근들은 그의 대선 출마를 “단순한 ‘권력욕’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던지겠다는 역사적 소명 의식에서 나온 ‘권력의지’ ”라고 말했다.

친구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다. 자서전 말미에 남긴 “당신(노 전 대통령)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말이 그것이다. 민주당과 지지자들은 일단 다른 후보보다는 문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이제 준결승전을 통과한 것이다.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2012년 7월 3일 화요일


이글은 미디어스 2012-07-02일자 기사 '5공 출신 국회의장, 5공 인사 2세 '비서실장' 내정'을 퍼왔습니다.
여·야 협상 난항 속에 가까스로 열린 제19대 국회 개원식

5공 출신의 '국회의장'이 5공 출신의원의 2세를 비서실장으로 내정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2일 오후 3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장 비서실장에는 전 의원인 정진석 전 의원이 내정되었다”며 “절차 끝나는 대로 임명되어 각 언론사 별로 인터뷰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진석 전의원은 3공에서 5공까지 5선을 지낸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로 19대 총선에서 낙선한 바 있다.  
한편, 제19대 국회 개원식이 2일 오후 2시 국회 본관 3층 본회의장에서 열렸다. 개원식은 강창희 국회의장을 포함한 제19대 국회의원, 이명박 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 이강국 헌법재판소장, 김황식 국무총리,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 2일 본회의에서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새누리당 강창희 의원이 사회를 보고 있다.ⓒ연합뉴스

강창희 국회의장은 개원사에서 “19대 국회를 개원하는 데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장으로서 참으로 면목이 없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창희 국회의장은 제19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서민의 삶을 챙기고 나라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것 △국회가 준법의 전당이 되고 국회의원은 시민의 모범이 될 것 △국회가 국민 통합과 민족 통일의 중심적 역할을 할 것 등을 꼽았다.

▲ 이명박 대통령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 서민경제의 토대를 지키고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그동안 정부가 체결한 FTA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 한국에 대한 EU와 일본의 투자가 늘어나고 있고, 미국의 투자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해외로 나갔던 기업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정부는 FTA 확대를 계기로, 농업․축산업․수산업을 위시한 취약 분야에 단순한 지원을 넘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윤다정 수습기자  |  lindalmemor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