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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5일 토요일

"친일재산 환수가 위헌이면 독립투사도 범죄자냐"


이글은 뉴스앤뷰스(Views&News) 2013-01-04일자 기사 '"친일재산 환수가 위헌이면 독립투사도 범죄자냐"'를 퍼왔습니다.
전우용, 일제 재판부와 동일한 이동흡 역사관 질타

친일 재산 환수는 위헌이라고 주장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이 헌법재판소장에 지명된 것과 관련, 전우용 역사학자가 4일 "친일재산 환수가 위헌이면, 친일파를 처단하려던 사람들은 그냥 ‘범죄자’가 되는 건가요?"라고 분개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이날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친일재산환수법’에 ‘위헌’ 의견을 냈던 사람이 새 헌법재판소장이 됐네요"라고 탄식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제강점기때 친일파들이 어떻게 부를 강탈했고 일제 재판부는 이를 어떻게 감싸왔는가를 소개하며 이동흡 후보자의 인식이 일제 재판부와 다르지 않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매국노의 대명사인 송병준은 민영환 집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일본에 건너갔다 러일전쟁 때 일본군 앞잡이로 귀국해서는 주인집 재산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강탈했습니다"라며 "빈털터리였던 자가 5년 만에 조선 굴지의 갑부가 됐죠"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민영환 유족은 송병준에게 강탈당한 재산을 되찾겠다고 일제 재판부에 고소했습니다"라며 "그러나 일제 재판부는 송병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 시절 매국노들이 강탈한 재산을 ‘합법적 재산’으로 만들어 준 건 일제 재판부였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제 재판부가 살인범, 강도범, 폭력범 등으로 판결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해방 후 ‘독립유공자’가 됐습니다. 반면 일제 재판부로부터 ‘합법적 재산’으로 인정받은 매국노들의 재산은 해방 후에도 아무런 변동이 없었습니다"라며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일제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무효라면, 매국노들의 재산에 대한 일제 재판부의 ‘합법’ 판결도 무효여야 마땅합니다. 그게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한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완용을 처단하려다 실패한 이재명 의사도 ‘적법절차’를 거쳐 사형당했습니다"라며 "일본인 재판장이 '피고와 같이 흉행(凶行)한 자가 몇인가?'라고 묻자 이재명 의사는 '너는 흉(凶)자만 알았지 의(義)자는 모르느냐. 나는 흉행이 아니라 의행을 한 것이다'라고 호통쳤답니다. '의'는 모르고 '흉'만 아는 사람, 아직 많습니다"라며 거듭 이동흡 후보자를 질타했다.

김혜영 기자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현대판 연옥의 발명자들


이글은 한겨레21 2012-09-17일자 제928호 기사 '현대판 연옥의 발명자들'을 퍼왔습니다.
[특집] 인간이길 포기한 범죄자 처벌한다며 물리적 거세, 불심검문 부활 등 인권침해 대책 쏟아내는 정권과 언론… 지난 10년 강력범죄 증가로 보기 힘들지만, 하층민 낙인찍기로 공포 ‘만드는’ 세력에 희생되는 인권

» 중세 교회는 가상의 연옥을 발명함으로써 현실을 연옥화했다. 잠재된 위험을 과장해 공포를 확산하고, 내부의 적을 만들어 예외 상태를 항구화하는 지금은 1천년 전의 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지난 9월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거리에서 경찰이 오토바이 운전자를 검문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문제는 국가의 폭력(공권력)이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을 넘어, 폭력의 독점 자체나 국가의 자기보존(권력의 유지와 강화)을 위해 행사될 때 발생한다. 이때 국가는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거나 있지도 않은 내부의 적을 날조해냄으로써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곤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올 심판(종말)에 대한 두려움은 중세 유럽인의 사고와 행동을 통어하는 강력한 규율 수단이었다. 그 공포는 예수 탄생 1천 년이 되는 첫 밀레니엄을 전후해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임박했다던 종말은 오지 않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12세기에 접어들며 현저히 약화되기 시작한다. 기독교(가톨릭)의 내세관에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인 ‘연옥’이 도입(발명)된 게 이즈음이다.
“고대적 보복론으로의 회귀”
연옥은 천국에는 갈 수 없으나 지옥에 보내기도 애매한 죄인들이 지옥에서와 유사한 형벌을 받으며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대기소요 정화 공간이었다. 중요한 건 연옥의 죄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스런 정화 기간이 교회와 산 자들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경감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천국에 가리란 확신이 부족한 산 자들은 먼저 간 부모·형제를 위해서는 물론, 자신의 불확실한 사후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교회의 권위와 가르침에 복종해야 했다. 연옥 신앙을 통해 교회는 신이 전적으로 관장해온 죽음 이후 세계에 대해서까지 지분을 행사하게 됐고, 그 지분은 약화되던 현세의 교회권력을 재활성화하는 수단이 된다. 연옥은 말하자면, 미래(사후 세계)에 속하는 고통의 잠재성을 현행의 공포로 이전시켜 지배 질서를 회복하는 효과적인 권력 장치였던 셈이다.
‘연옥의 정치학’의 핵심은 ‘가공된 공포’의 동원이었다. 유사한 메커니즘을 역사 속에서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폭력의 정당한 독점체”(막스 베버)인 근대국가는 인간의 벌거벗은 본성이 지배하는 ‘자연상태’(만인 대 만인의 전쟁)에 대한 공포를 존재의 근거로 삼았다. 문제는 국가의 폭력(공권력)이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을 넘어, 폭력의 독점 자체나 국가의 자기보존(권력의 유지와 강화)을 위해 행사될 때 발생한다. 이때 국가는 외부의 위협을 과장하거나 있지도 않은 내부의 적을 주조해냄으로써 폭력의 사용을 정당화하곤 한다. 지난 세기 숱하게 명멸했던 제3세계 독재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법과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비정상적 통치행위를 정당화했던 20세기 후반의 선진 제국들이 좋은 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치안 조처들은 또 어떤가.
수도권 지하철역과 서울 여의도 대로상에서 일어난 이른바 ‘묻지마’ 칼부림, 전남 나주에서 벌어진 여아 성폭행 사건의 여파가 심상찮다.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국가의 법질서가 무력화된 초유의 비상사태라도 벌어진 듯 언론은 범죄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피의자의 성장기와 최근 행적, 수사 과정에서 보였다는 행동 하나 말 한마디를 상세히 전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당국은 언론의 요청에 부응해 연일 강경한 치안 대책들을 쏟아내고,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도 뒤질세라 ‘인간이길 포기한’ 일탈자들에 대한 관용 없는 처벌과 강화된 형사 입법들을 서둘러 약속한다.
사건 발생 뒤 치안 당국이 내놓은 대책이란 한결같이 실효성은 의심되는데 인권침해 여지가 큰 것들이다. 전시행정 혐의가 짙은 특별 방범활동 강화나 수사 전담반 편성이야 국민 불안감 해소 차원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 대상 확대는 인권침해 가능성으로 인해 입법 과정부터 논란거리였던데다, 실효성이 확증된 바 없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다. 우려스런 대목은 불심검문과 보호감호, 사형제처럼 이미 폐지됐거나 사문화된 조처들이 민심의 동요를 틈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성범죄자에게 물리적 거세형을 도입하겠다는 황당한 입법안까지 나왔다. “근대적 법의식의 완전한 포기, 원시적 복수 감정에 기초한 고대적 보복론으로의 회귀”(진중권 동양대 교수)라는 비판이 나올 만도 했다.

휴대전화 보급, 신고율 상승 영향

과연 당국과 언론이 우려하듯 한국의 치안 상태는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뒤흔들 만큼 극도로 취약해진 게 사실일까. 경찰이 집계한 지난 10년 동안의 범죄 통계를 보자. 5대 범죄(살인·강도·성폭행·절도·폭력) 발생 건수는 2001년 53만2243건에서 지난해 61만2357건으로 15%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온다. 물론 모든 범죄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강도는 5692건에서 4126건으로 28%가량 줄었고, 폭력도 33만8045건에서 30만4882건으로 10% 남짓 감소했다. 반면 성폭행은 6751건에서 1만9573건(2.9배)으로, 절도는 18만704건에서 28만2525건(1.5배)으로 늘어 증가세가 가파르다. 살인은 1051건에서 1251건으로 19% 남짓 늘었지만 2009년(1374건)에 비해선 9% 정도 줄어든 수치다.

휴대전화 등 개인 통신기기의 보급이 확대되며 신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성범죄(성폭행) 통계의 경우 신고율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이런 추세를 고려하면 살인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강력범죄의 발생 건수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한층 설득력 있다.

유의할 사실은 이런 공식 통계 역시 범죄의 실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공식 범죄 통계는 경찰과 검찰에 신고된 범죄와 자체적으로 인지한 범죄를 합산한 것이다. 발생한 범죄라도 신고되지 않거나 사법 당국에 인지되지 않으면 통계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다. 신고율이 핵심 변수인 셈인데, 휴대전화 등 개인 통신기기의 보급이 늘면서 신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해온 것으로 보고된다. 특히 성범죄 통계의 경우 신고율 변수가 절대적이다. 수치심과 2·3차 피해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극도로 낮았던 신고율이 여성의 지위 상승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신고율의 상승 추세를 고려하면 살인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강력범죄의 발생 건수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한층 설득력 있다.
이런 현실과 달리 치안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 상당수는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강력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최근 행태를 봐도 그렇다. 범죄의 양상이 일반적 형태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예외 없이 범죄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부각한다. 특정 사건이 사회적 이목을 끌면 평소엔 단신 처리에 그칠 지역의 사소한 사건조차 유사 사례로 묶어 의미를 과장하는 게 예사다.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방범죄 확산에 대한 우려를 부풀려 사회적 공포심을 키우는 건 관례가 됐다. 지하철역 살인사건 직후인 지난 8월24일, (조선일보) 기획의 문패 제목은 ‘“내가 당할 수도” 국민은 불안하다’였다.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 불안감을 가져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전형적인 의제설정형 기획이다.

예비검속 성격마저 가진 ‘주폭과의 전쟁’

물론 언론의 선정적 보도를 특유의 상업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건 지나치게 평면적이다. 미디어 평론가들은 자극적 범죄 보도를 주도하는 매체들이 대체로 보수 성향의 거대언론이란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실제 조두순·김길태·오원춘 사건 같은 충격적 범죄가 발생했을 때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고 범행 수법과 주변 인물, 과거 행적 등을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은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이었다. 한 예로 조두순 사건(2008년 12월) 당시의 기사 건수를 보면 (조선일보)(74건)가 (한겨레)(49건)에 비해 1.5배 남짓 많다. 사건에 접근하는 두 신문의 방식도 일정한 차이를 보인다. 김길태 사건(2010년 2월) 당시 (조선일보)는 ‘감시·처벌 강화’(25%), ‘범인의 일탈성’(20.0%), ‘경찰 부실 대처’(15%) 등의 순으로 기사의 초점을 맞춘 반면, (한겨레)는 ‘수사 과정’(20.0%), ‘경찰 부실 대처’(18%), ‘감시와 처벌 강화’(14.2%) 등의 순이었다. 눈여겨볼 점은 (한겨레)에 비중 있게 등장한 ‘인권옹호’(12.2%)와 ‘사회제도’(8.2%) 프레임이 에선 아예 없거나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양정혜 ‘뉴스 미디어가 재현하는 범죄 현실’)
보수언론의 뉴스 프레임에 의해 만들어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흉악한 하층민 일탈자로부터 나와 가족, 사회의 안전을 지키려면 강화된 경찰력으로 신속히 범죄자를 검거해 엄중 처벌하고, 이를 통해 법과 질서를 회복함으로써 사회의 정상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를 연장하면, 질서 회복을 위해선 예방적 검속(檢束)이나 출소 뒤 보호감호 같은 초헌법적 조처들도 얼마든지 도입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 (조선일보) 후원 아래 경찰이 대대적으로 펼쳐온 ‘주폭과의 전쟁’이 그 징후다. 9월5일 이 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제목에서부터 섬뜩함이 풍긴다. ‘주폭 300명 잡았더니 살인 31% 줄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경찰이 주폭 단속을 시작한 올해 5월부터 3개월간 강력범죄 발생 건수를 셈해보니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살인은 31.2%(77→53건), 강도는 36.6%(246→156건), 성범죄는 5.9%(1633→1537건) 줄었다는 것이다. 통계의 유의미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보도는 국가와 유력 언론이 거리의 주취자를 예비 범죄자로 공식 인증하는 내용이란 점에서 문제가 간단치 않다. 나아가 이 기사는 주폭 단속이 사실상 예비 범죄자에 대한 예방 구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마저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영구적 실업으로 실추된 국가 권위

눈여겨볼 지점은 또 있다. 단속된 주폭들의 사회적 처지다. 지난 8월17일 주폭 단속 100일을 맞아 서울경찰청이 펴낸 보도자료에는 검거된 주폭 300명의 연령대가 주로 40~50대(75%)이고 노숙인도 40여 명 포함돼 있다는 언급만 있을 뿐 전체 피검자의 직업 분포는 나오지 않는다. 단속 초기 구속된 주폭 피의자 100명 가운데 82명이 무직자였다는 사실([한겨레] 6월19일치)로 유추컨대, 절대다수가 집이 없거나 사는 곳이 일정치 않은 40~50대 실업자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저지른 범죄라는 것도 식당·주점 등에서 행해진 업무방해(구걸·무전취식) 같은, 평소였으면 훈방이나 합의로 마무리됐을 경범죄가 주종이다.

» 치안 불안이 가중되는 이유를 전문가들 상당수는 언론의 자극적 보도에서 찾는다. 주폭 300명을 잡았더니 살인 범죄가 31% 줄었다는 <조선일보>의 자신에 찬 언명은 거리의 주취자들을 '예비 살인자'로 재현하는 효과를 산출했다.

주폭 단속에서 보이는 하층민 일탈자에 대한 처벌과 낙인찍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 기원은 1980년대 영국 대처리즘이다. “사회는 없다. 존재하는 건 개인뿐”이라는 대처의 말은 빈곤과 일탈의 책임을 사회가 아닌 개인에게 묻겠다는 정치적 선언이었다. 그 선언에 담긴 통치 이데올로기는 보수당 집권기 다음과 같은 조처와 상황들로 현실화됐다. 하층민 범죄에 대한 검경의 의도적 이름 붙이기→선별적 정보 유출→보수신문들의 경쟁적 보도→충격과 공포 확산→법질서 회복을 위한 공권력 투입 여론 형성.
스튜어트 홀 등 비판적 연구자들이 볼 때, 오늘날 하층민들이 공권력의 표적이 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직면한 ‘정당성 위기’와 결부돼 있다. 고용(노동)이 성장의 함수가 되지 못하는 사회(‘고용 없는 성장’ 사회)에서 실업은 일시적 단계가 아닌 영구 상태가 된다. 사회는 그들의 기여 없이도 충분히 존속할 수 있다. 사회의 부를 키우지는 못하면서 비용(공공지출)만 증가시키는 그들은 ‘존재 자체가 민폐’인 쓰레기로 취급된다.
그런데 국가엔 이 쓰레기(구조적 하층민)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변화시킬 능력도 의지도 없다. 여기서 국가는 통치의 정당성 문제에 직면한다. 내부에서 쓸모없고 위험한 존재들이 끊임없이 산출된다면 국가의 통치는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제 지배를 정당화할 근거를 다른 데서 찾게 되는데, 다름 아닌 내부의 위험요소를 격리하고 세척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민폐적 존재인 하층민들은 범죄시되고 격리된다. 이 일련의 절차 속에서 “궁핍의 언어로 쓰였던 이야기는 타락의 언어로 다시 쓰인다.”(지그문트 바우만)
가난이 타락과 범죄로 재정의되는 순간, 빈곤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부채감은 사라진다. 대신 시민들의 정상적 삶을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국가의 중요 과제로 떠오른다. 결과는 신자유주의 체제 30년 동안 영국과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목격한 바대로다. 더 많은 수용시설, 범죄에 대한 무관용, 형량의 강화, 일상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전자 감시장치. 전후(戰後)의 복지국가(사회국가)를 대체한 치안국가의 현실이다.

결국 그들이 바라는 것은 치안국가

이 체제가 지속되는 한 전자발찌·불심검문·보호감호·예비검속 따위의 비정상적 치안 조처들은 꾸준히 양산될 수밖에 없다. 이 예외적 상태를 정상적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은 안전에 대한 확산된 두려움이다. 예외 상태는 이제 일상화·항구화된다. 이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이 하층민의 생존권만이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세 교회는 가상의 연옥을 발명함으로써 현실을 연옥화했다. 민초들이 감내해야 했던 이중(봉건영주와 교회권력)의 수탈이야말로 연옥의 형벌이 아니고 무엇이었겠는가. 잠재된 위험을 과장함으로써 공포를 확산시키고, 내부의 적을 만들어 예외 상태를 항구화하는 지금은 1천 년 전의 현실로부터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그러니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이 현대판 연옥의 발명자들이야말로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사회의 진정한 파괴자들 아닌가.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대기업 싹쓸이에 ‘5원’도 서로 갖겠다고…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대기업 싹쓸이에 ‘5원’도 서로 갖겠다고…'를 퍼왔습니다.
[경제] 현대·포스코 철 스크랩 100% 회수하고 자체 수급하는 시스템 만들자 ‘고물 대란’… 남의 밥그릇 넘보지 않던 ‘상도의’ 깨져버려

» 경기도 평택에서 고물상을 하는 정진영씨가 고물이 섞인 쓰레기 더미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철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 모으기에 나섰지만 그나마도 넉 달 동안 팔지 못해 계속 쌓여가고 있다. 서보미 기자

경기도 평택의 한 장례식장. 누군가 삶의 끝인 이곳에서 ‘고물상’ 정진영(52)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간밤에 장례식장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1t 트럭에 서둘러 담는다. 매일 쓰레기 봉지를 치워주는 대신 그 속에 섞인 폐지며 알루미늄캔 따위 고물을 얻는다. 아침부터 폭염의 기세가 사납지만, 청소 아줌마의 쉴 새 없는 잔소리와 조문객들의 따가운 시선에 더 열이 난다. 땀이 뚝뚝 떨어져도 푹 눌러쓴 모자는 한 번도 고쳐 쓰지 않았다. 1시간 만에 일을 마친 그가 돌아보며 말했다. “인생이 참 서글프다”고.

20일도 안 걸렸을 걸 두 달 만에

그는 기층 고물상(소상)이다. 고물 생태계에서도 밑바닥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아온 물건들을 받아주고, 작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으로 직접 고물을 떼러 다닌다. 그도 쓰레기에서 돈이 안 된다는 걸 안다. 넉 달 동안 팔아본 적도 없다. 묵직한 고철을 맘껏 주으러 다니고 싶다. 그러나 3~4개월 전부턴 고철 씨가 말랐다. 지난 두 달간 고철 5t을 모아 30만원을 남겼다. 예전 같았으면 20일도 안 걸렸을 물량이다. 곧바로 수입이 줄었다. 직원도 없이 아내 김상미(52)씨와 둘이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지만, 지난봄부터는 한 달에 300만원을 못 맞출 때도 있다. 지난해 450만원 벌이에서 반으로 떨어졌다. 가게 임대료와 유지비를 빼면 150만원 남는다. 지난 6월엔 하루벌이를 위해 건설 현장에 나갔다 무릎에 금속이 박혀 수술도 했다. 그래도 그는 2년 전 남 울리는 채권추심업계를 떠나 정직하게 돈 버는 고물업계에 들어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경제의 밑바닥 고물업계가 또다시 위태롭다. 타들어가는 한여름에도 고물업계는 찬바람이 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고물 대란’ 이후 3년 만이다. 아직은 버틸 만하지만, 속도가 빠르다. 고철·폐지·알루미늄·구리 할 것 없이 시장에 물건이 안 돌고, 가격은 내리고 있다.
그때처럼 경기둔화가 고물업계 한파의 직접적 원인이다. 경기가 위축되자 살아 있는 경기 지표인 고물 유통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그중에서 건설·산업 자재를 만드는 고철(철 스크랩)은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물 중간 판매업자인 중상이 정씨 같은 소상에게 쳐주는 고철값(경량A)은 8월 초 kg당 390원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100원대보다는 높지만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지난해 2월 480원보다는 100원 가까이 떨어졌다. 그땐 상품이면 500원 중반도 받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고물상들에게 더 중요한 건 물량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유통단계별로 고철 마진이 kg당 10~20원이다. 소상이 공장에서, 중상이 소상에게서, 대상(소비자에게 납품)이 중상에게서, 고철의 목적지인 제강·제철업체가 대상에게서 물건을 받을 때 마진이 모두 그 정도다. 오고 가는 고물이 많으면 가격이 낮아도 크게 손해는 보지 않는다.
이번에도 급격히 줄어드는 고철 유통 물량이 속을 썩이고 있다. 올해 들어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고철이 줄어들자 제강업체들이 고철 수입을 늘려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철근 등 제품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였고, 제강업체들은 국내 고철 구매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56만t이던 고철 수입량은 지난 6월 말 84만t까지 늘어난 반면, 국내 고철 구매량은 지난해 10월 166만t에서 141만t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물상들은 물량을 확보하려고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권아무개씨는 “예전에는 물건을 받아오면 10~20원의 마진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엔 5원만 돼도 받는다. 부가세 같은 세금을 빼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 그래도 돈이 안 된다고 거래처에 너무 짜게 값을 쳐주면 나중에는 물건을 아예 못 받는다. 이 정도라도 받아가려는 고물상들이 널렸다”고 말했다.

개별 업체→중상·대상→제강업체 구조 깨져

고물 대란 후유증도 크다. 대형 제강업체들이 철 스크랩 수급 불안을 겪은 뒤 달라졌다. 최종 소비자에 머물렀던 제강업체들은 자체 수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내 최대 고철 소비자인 현대제철이 대표적이다. 현대제철은 2~3년 전부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는 물론 협력업체에서 나온 철 스크랩을 직접 공급받고 있다. 예전엔 개별 업체들이 각자 알아서 고철을 중상·대상에 팔면, 고철은 여러 제강업체로 흘러들었다. 변화의 계기는 2010년 일관제철소 준공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때 ‘자원순환형 제철소’를 선언했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에서 나온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인 뒤 철근으로 만들어 그룹 내 건설자재 등으로 재활용하는 구조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관련해 나온 고철은 유통시장에서 거의 머물지 않고 곧바로 회수되는 것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고급 철 스크랩의 사용량이 늘어 (고철) 납품업체들이 자동차 부품업체의 철 스크랩 구매를 늘려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도 변화가 있었다. 포스코그룹에서 나오는 철 스크랩은 100% 회수하는 원칙을 정했다. 철 스크랩이 나오는 협력업체 숫자는 많지 않지만, 포스코는 이들 협력업체에도 철 스크랩 납품을 독려하고 있다. 다만 건설 분야는 건설 현장마다 고철 판매 시스템이 있어온 터라 예외로 했다. 포스코는 철 스크랩 수집·가공 과정을 전문적으로 통제하려고 이 업무를 계열사인 포스코P&S(옛 포스틸)에 맡겼다. 포스코P&S 관계자는 “연간 철 스크랩 200만t을 쓴다. 이 중 25~30% 수입하고 있지만 최대한 국산율을 높여가기로 했다.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사에선 철 스크랩이 많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나오는 물량은 전부 회수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 대형 제강업체들이 2008년 ‘고철 대란’을 겪은 뒤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고 계열사·협력사에서 나온 고철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 제강업체 직원들이 고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모습. 윤운식 기자

대형 제강업체들의 경영 혁신은 고물 생태계엔 독이 됐다. 계열사나 협력업체로부터 고철을 받아오던 중상·대상들은 거래처를 잃었다. 고철은 대형 제강업체에 납품할 특권을 가진 30여 개 대상과 이들에게 물건을 대는 소수 중상들의 손만 거치게 됐다. 안 그래도 막강했던 대형 제강업체들의 고철 가격 결정력은 더 커졌다. 지난 3월부터 제강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구매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고서라도 물량을 맞춰주고 있다.
너도나도 살기 팍팍해지니 수십 년간 쌓아온 유통망은 쉽게 깨졌다. 가진 것 없어도 남의 밥그릇은 넘보지 않는다는 고물업계였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대상이 중상 일에, 중상이 소상 일에 손을 대기도 한다. 30여 년 전 고물업에 발을 들여 대상이 된 박혁규(가명)씨는 최근엔 작은 고물상에서도 종종 물건을 받는다. 내 일, 네 일 가릴 여유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을 때도 종종 손을 스쳐가던 대기업 계열사와 협력사의 물건을 이젠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강업체가 요구하는 납품 중량을 맞추려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모아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8년 위기 때도 금방 회복돼서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힘들다. 우리는 양으로 먹고사는데 물건이 너무 없다. 게다가 지금 납품하는 제강업체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가격을 너무 후려친다. 마진이 5~8원이다. 매출이 1년 전보다 60% 넘게 줄었다.”

늘어나는 폐가전 제재로 범죄자 되겠네

정부 정책도 고물상이 설 자리를 좁게 만든다. 정부는 그간 방치해온 고물상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2~3년간 진행하고 있다. 초점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고물상에 대한 통제와 규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며 2007년 9800개이던 고물상이 2010년 1만2천 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두리에 있어 조사가 안 된 곳이 많아 실제 고물상 수는 2~3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정부에 각종 민원을 유발하는 골칫덩어리다. 도시 미관 저해, 악취 유발, 환경오염 발생, 집값 하락 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고물상 규제는 다양한 수위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돼 폐지와 고물에 ‘폐기물’이라는 지위가 새로 생겼다. 이에 내년부턴 폐기물을 다루는 재활용업체가 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터를 확보해야 하고, 매달 폐기물 처리 실적도 보고해야 한다. 영세한 고물상들은 이런 의무에서 제외되지만, 공공 입찰 참여가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따른다.
폐기물이 아닌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고물상에 대한 제재는 나날이 엄격해지고 있다. 고물상에서 냉장고나 TV 같은 폐가전을 팔다 적발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전에도 이런 규정은 있었지만,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광산’(폐가전 제품에 축적된 금속자원을 추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1~2년 전부터 단속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고물상들 불만이다. 충북 음성의 화성산업 나기정 사장은 이렇게 해석한다. “폐가전이 쓸모없다고 봤을 때는 소비자가 구청에 가서 돈을 내고 딱지를 사야 수거해갔다. 그럴 때 몰래 버린 가전을 우리가 수집해 처리할 때는 아무도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폐가전에서 희토류 같은 게 돈이 된다는 걸 아니까 환경오염을 핑계로 지자체나 기업이 돈을 주면서까지 수거해간다. 그리고 이젠 우리를 범죄자로 만든다.”
일부 지자체들은 고물상 입지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경기도 화성시가 지난 5월 가장 먼저 관련 조례 시행에 들어갔다. 화성시에 새로 고물상을 내려면 공동주택, 학교, 병원, 연수시설 등에서 500m 떨어져야 한다. 또 경계 담장을 3m 이상으로 설치하고, 담장 밖에는 2m 이상의 녹지도 조성해야 한다.

‘바닥 친 사람도 새 삶을 얻고 나가’는 재활용업

급기야 고물상들이 연대에 나섰다. 지난 5월엔 소상이 주축이 된 자원재활용연대가 출범했다. 화성시의 입지 제한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는 등 흩어져 있던 고물상들의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란다. 김종선 자원재활용연대 정책분과위원은 이렇게 따져물었다. “삶의 기반이 흔들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게 고물 일이다. 고물상에선 못 쓰게 된 고철만 재활용되는 게 아니다. 바닥을 친 사람들도 재활용돼서 새 삶을 얻고 나간다.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못 만들어주면서 고물상마저 내몬다면 이들보고 그냥 죽으란 소리냐.” 경제 밑바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그 바닥을 밟을 권리는 없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대기업 싹쓸이에 ‘5원’도 서로 갖겠다고…


이글은 한겨레21 2012-08-13일자 제923호 기사 '대기업 싹쓸이에 ‘5원’도 서로 갖겠다고…'를 퍼왔습니다.
[경제] 현대·포스코 철 스크랩 100% 회수하고 자체 수급하는 시스템 만들자 ‘고물 대란’… 남의 밥그릇 넘보지 않던 ‘상도의’ 깨져버려

» 경기도 평택에서 고물상을 하는 정진영씨가 고물이 섞인 쓰레기 더미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고철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 모으기에 나섰지만 그나마도 넉 달 동안 팔지 못해 계속 쌓여가고 있다. 서보미 기자

경기도 평택의 한 장례식장. 누군가 삶의 끝인 이곳에서 ‘고물상’ 정진영(52)씨의 하루는 시작된다. 간밤에 장례식장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1t 트럭에 서둘러 담는다. 매일 쓰레기 봉지를 치워주는 대신 그 속에 섞인 폐지며 알루미늄캔 따위 고물을 얻는다. 아침부터 폭염의 기세가 사납지만, 청소 아줌마의 쉴 새 없는 잔소리와 조문객들의 따가운 시선에 더 열이 난다. 땀이 뚝뚝 떨어져도 푹 눌러쓴 모자는 한 번도 고쳐 쓰지 않았다. 1시간 만에 일을 마친 그가 돌아보며 말했다. “인생이 참 서글프다”고.

20일도 안 걸렸을 걸 두 달 만에

그는 기층 고물상(소상)이다. 고물 생태계에서도 밑바닥이다. 동네 어르신들이 모아온 물건들을 받아주고, 작은 공장이나 건설 현장으로 직접 고물을 떼러 다닌다. 그도 쓰레기에서 돈이 안 된다는 걸 안다. 넉 달 동안 팔아본 적도 없다. 묵직한 고철을 맘껏 주으러 다니고 싶다. 그러나 3~4개월 전부턴 고철 씨가 말랐다. 지난 두 달간 고철 5t을 모아 30만원을 남겼다. 예전 같았으면 20일도 안 걸렸을 물량이다. 곧바로 수입이 줄었다. 직원도 없이 아내 김상미(52)씨와 둘이 그렇게 하루 종일 일하지만, 지난봄부터는 한 달에 300만원을 못 맞출 때도 있다. 지난해 450만원 벌이에서 반으로 떨어졌다. 가게 임대료와 유지비를 빼면 150만원 남는다. 지난 6월엔 하루벌이를 위해 건설 현장에 나갔다 무릎에 금속이 박혀 수술도 했다. 그래도 그는 2년 전 남 울리는 채권추심업계를 떠나 정직하게 돈 버는 고물업계에 들어선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경제의 밑바닥 고물업계가 또다시 위태롭다. 타들어가는 한여름에도 고물업계는 찬바람이 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고물 대란’ 이후 3년 만이다. 아직은 버틸 만하지만, 속도가 빠르다. 고철·폐지·알루미늄·구리 할 것 없이 시장에 물건이 안 돌고, 가격은 내리고 있다.
그때처럼 경기둔화가 고물업계 한파의 직접적 원인이다. 경기가 위축되자 살아 있는 경기 지표인 고물 유통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그중에서 건설·산업 자재를 만드는 고철(철 스크랩)은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고물 중간 판매업자인 중상이 정씨 같은 소상에게 쳐주는 고철값(경량A)은 8월 초 kg당 390원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말 100원대보다는 높지만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된 지난해 2월 480원보다는 100원 가까이 떨어졌다. 그땐 상품이면 500원 중반도 받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고물상들에게 더 중요한 건 물량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유통단계별로 고철 마진이 kg당 10~20원이다. 소상이 공장에서, 중상이 소상에게서, 대상(소비자에게 납품)이 중상에게서, 고철의 목적지인 제강·제철업체가 대상에게서 물건을 받을 때 마진이 모두 그 정도다. 오고 가는 고물이 많으면 가격이 낮아도 크게 손해는 보지 않는다.
이번에도 급격히 줄어드는 고철 유통 물량이 속을 썩이고 있다. 올해 들어 건설 현장이나 공장에서 나오는 고철이 줄어들자 제강업체들이 고철 수입을 늘려 물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철근 등 제품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였고, 제강업체들은 국내 고철 구매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56만t이던 고철 수입량은 지난 6월 말 84만t까지 늘어난 반면, 국내 고철 구매량은 지난해 10월 166만t에서 141만t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물상들은 물량을 확보하려고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권아무개씨는 “예전에는 물건을 받아오면 10~20원의 마진을 남겼다. 그런데 요즘엔 5원만 돼도 받는다. 부가세 같은 세금을 빼고 나면 오히려 적자다. 그래도 돈이 안 된다고 거래처에 너무 짜게 값을 쳐주면 나중에는 물건을 아예 못 받는다. 이 정도라도 받아가려는 고물상들이 널렸다”고 말했다.

개별 업체→중상·대상→제강업체 구조 깨져

고물 대란 후유증도 크다. 대형 제강업체들이 철 스크랩 수급 불안을 겪은 뒤 달라졌다. 최종 소비자에 머물렀던 제강업체들은 자체 수급 시스템을 만들었다. 국내 최대 고철 소비자인 현대제철이 대표적이다. 현대제철은 2~3년 전부터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는 물론 협력업체에서 나온 철 스크랩을 직접 공급받고 있다. 예전엔 개별 업체들이 각자 알아서 고철을 중상·대상에 팔면, 고철은 여러 제강업체로 흘러들었다. 변화의 계기는 2010년 일관제철소 준공이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이때 ‘자원순환형 제철소’를 선언했다. 예컨대 현대·기아차에서 나온 고철을 전기로에서 녹인 뒤 철근으로 만들어 그룹 내 건설자재 등으로 재활용하는 구조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관련해 나온 고철은 유통시장에서 거의 머물지 않고 곧바로 회수되는 것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고급 철 스크랩의 사용량이 늘어 (고철) 납품업체들이 자동차 부품업체의 철 스크랩 구매를 늘려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에도 변화가 있었다. 포스코그룹에서 나오는 철 스크랩은 100% 회수하는 원칙을 정했다. 철 스크랩이 나오는 협력업체 숫자는 많지 않지만, 포스코는 이들 협력업체에도 철 스크랩 납품을 독려하고 있다. 다만 건설 분야는 건설 현장마다 고철 판매 시스템이 있어온 터라 예외로 했다. 포스코는 철 스크랩 수집·가공 과정을 전문적으로 통제하려고 이 업무를 계열사인 포스코P&S(옛 포스틸)에 맡겼다. 포스코P&S 관계자는 “연간 철 스크랩 200만t을 쓴다. 이 중 25~30% 수입하고 있지만 최대한 국산율을 높여가기로 했다. 포스코 계열사와 협력사에선 철 스크랩이 많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나오는 물량은 전부 회수하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 대형 제강업체들이 2008년 ‘고철 대란’을 겪은 뒤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고 계열사·협력사에서 나온 고철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 제강업체 직원들이 고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모습. 윤운식 기자

대형 제강업체들의 경영 혁신은 고물 생태계엔 독이 됐다. 계열사나 협력업체로부터 고철을 받아오던 중상·대상들은 거래처를 잃었다. 고철은 대형 제강업체에 납품할 특권을 가진 30여 개 대상과 이들에게 물건을 대는 소수 중상들의 손만 거치게 됐다. 안 그래도 막강했던 대형 제강업체들의 고철 가격 결정력은 더 커졌다. 지난 3월부터 제강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구매 가격을 낮추고 있지만, 납품업체는 손해를 보고서라도 물량을 맞춰주고 있다.
너도나도 살기 팍팍해지니 수십 년간 쌓아온 유통망은 쉽게 깨졌다. 가진 것 없어도 남의 밥그릇은 넘보지 않는다는 고물업계였지만, 이젠 옛날 얘기다. 대상이 중상 일에, 중상이 소상 일에 손을 대기도 한다. 30여 년 전 고물업에 발을 들여 대상이 된 박혁규(가명)씨는 최근엔 작은 고물상에서도 종종 물건을 받는다. 내 일, 네 일 가릴 여유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을 때도 종종 손을 스쳐가던 대기업 계열사와 협력사의 물건을 이젠 시장에서 찾아볼 수 없다. 제강업체가 요구하는 납품 중량을 맞추려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모아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2008년 위기 때도 금방 회복돼서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힘들다. 우리는 양으로 먹고사는데 물건이 너무 없다. 게다가 지금 납품하는 제강업체들이 경기가 어렵다고 가격을 너무 후려친다. 마진이 5~8원이다. 매출이 1년 전보다 60% 넘게 줄었다.”

늘어나는 폐가전 제재로 범죄자 되겠네

정부 정책도 고물상이 설 자리를 좁게 만든다. 정부는 그간 방치해온 고물상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2~3년간 진행하고 있다. 초점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고물상에 대한 통제와 규제다. 경제위기가 반복되며 2007년 9800개이던 고물상이 2010년 1만2천 개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변두리에 있어 조사가 안 된 곳이 많아 실제 고물상 수는 2~3배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정부에 각종 민원을 유발하는 골칫덩어리다. 도시 미관 저해, 악취 유발, 환경오염 발생, 집값 하락 등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고물상 규제는 다양한 수위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폐기물관리법이 개정돼 폐지와 고물에 ‘폐기물’이라는 지위가 새로 생겼다. 이에 내년부턴 폐기물을 다루는 재활용업체가 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터를 확보해야 하고, 매달 폐기물 처리 실적도 보고해야 한다. 영세한 고물상들은 이런 의무에서 제외되지만, 공공 입찰 참여가 제한되는 등 불이익이 따른다.
폐기물이 아닌 가전제품을 취급하는 고물상에 대한 제재는 나날이 엄격해지고 있다. 고물상에서 냉장고나 TV 같은 폐가전을 팔다 적발되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전에도 이런 규정은 있었지만,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도시광산’(폐가전 제품에 축적된 금속자원을 추출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나선 1~2년 전부터 단속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고물상들 불만이다. 충북 음성의 화성산업 나기정 사장은 이렇게 해석한다. “폐가전이 쓸모없다고 봤을 때는 소비자가 구청에 가서 돈을 내고 딱지를 사야 수거해갔다. 그럴 때 몰래 버린 가전을 우리가 수집해 처리할 때는 아무도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폐가전에서 희토류 같은 게 돈이 된다는 걸 아니까 환경오염을 핑계로 지자체나 기업이 돈을 주면서까지 수거해간다. 그리고 이젠 우리를 범죄자로 만든다.”
일부 지자체들은 고물상 입지에 까다로운 조건을 달았다. 경기도 화성시가 지난 5월 가장 먼저 관련 조례 시행에 들어갔다. 화성시에 새로 고물상을 내려면 공동주택, 학교, 병원, 연수시설 등에서 500m 떨어져야 한다. 또 경계 담장을 3m 이상으로 설치하고, 담장 밖에는 2m 이상의 녹지도 조성해야 한다.

‘바닥 친 사람도 새 삶을 얻고 나가’는 재활용업

급기야 고물상들이 연대에 나섰다. 지난 5월엔 소상이 주축이 된 자원재활용연대가 출범했다. 화성시의 입지 제한에 대해 헌법소원을 준비하는 등 흩어져 있던 고물상들의 목소리를 모아낼 계획이란다. 김종선 자원재활용연대 정책분과위원은 이렇게 따져물었다. “삶의 기반이 흔들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게 고물 일이다. 고물상에선 못 쓰게 된 고철만 재활용되는 게 아니다. 바닥을 친 사람들도 재활용돼서 새 삶을 얻고 나간다.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못 만들어주면서 고물상마저 내몬다면 이들보고 그냥 죽으란 소리냐.” 경제 밑바닥이 무너져내리고 있다. 누구에게도 그 바닥을 밟을 권리는 없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2012년 7월 12일 목요일

새누리, 조현오 영입에 네티즌 “쇄신 역행 점입가경”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7-12일자 기사 '새누리, 조현오 영입에 네티즌 “쇄신 역행 점입가경”'을 퍼왔습니다.
“범죄자 천국되겠네”…(동아) “문재인 견제용” 보도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국책자문위원으로 영입해 논란이 되고 있다. 

조 전 청장은 1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누리당 안응모 국책자문위원장이 자문위원을 맡아달라고 해 어제(10일)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국책자문위원이 되는 동시에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된다.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해 조 전 청장과의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내보냈던 (동아일보)는 12일 (盧차명계좌 발언 조현오 與 국책자문위원 영입… 문재인 대선 견제용?)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아)는 “당 일각에서는 조 전 청장이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며 “문 고문과 조 전 청장은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는 “검찰이 조 전 청장을 기소하면 법정에서 차명계좌의 존재를 다시 따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만일 차명계좌의 존재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차명계좌의 존재를 부인해 온 문 고문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네티즌들은 “범법자가 처벌도 안 받고, 원하던 대로 발 내밀게 되었네요”(daum***), “닭근혜 주변에 인물 모이는 거 봐라, 대한민국 앞날이 깜깜해진다”(일취**), “정해진 수순이다. 참으로 간교한 조현오. 김용민 교수 통해서 공짜로 마케팅 광고에 고마워 해야..”(사모없으면******), “역시 새누리당은 옷만 갈아 입었지 몸통은 한나라당 그대로다”(기독교박***), “끼리끼리 논다 어휴 역시 이명박과 박근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구나”(영재***), “기가 막힐 일이다. 세상이 다 아는 범죄 혐의자를 국책자문위원으로 뽑다니.. 당선되고 나면 청와대는 범죄자 천국이 되겠군”(팔부**), “입당했으니 차명 계좌 발언 수사 보호막이 생겼군, 정두언도 보호해 주는 단체 인데, 오죽 하겠나”(ftagjk******) 등의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에도 “조현오 전 청장이 새누리 당 정책자문위원? 허위사실공표로 한건한 댓가인가? 암튼 새누리 하시는 일마다 새롭다 새로워”(JANG****), “자니윤, 조혐오... 역시 새들의 한계”(harr****), “새~누리당이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주는 구나. 한겨울 촛불집회에 최루액 섞은 물대포를 쏜 자가 국책자문위원이라 이거지?”(khsjjil*******), “불통이미지를 극복하겠다 하면서 불통인 자를 국책자문위원으로 영입하시겠다? 새누리다운 짓. 큰 집 가야할 놈도 새누리 말 한마디면 자유의 몸이 되나 보네”(back_to_*******), “새당이 쇄신에 역행하고 있다 조현오를 정치판에 끌어들이는 과오를 했다, 인성이 문제인자를 끌어들여 당의 이미지 훼손만 있을 뿐 이득은 전혀 없는 미스 캐스팅”(sukbum******), “뭘 자문 받으려는 건지가 더 궁금합니다. 꼴통들”(mksmi****), “영입해라. 박근혜(칠푼이) 표 떨어지는 것 좀 보게”(so-***) 등의 의견들이 이어졌다.

부산지역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경남지사 보궐선거 출마 등을 노리고 있는 조 전 청장은 지난 4월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과 관련 경찰의 부실대응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서울경찰청장 시절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과 중앙선관위 디도스 테러와 관련해 검찰과 특검의 조사를 받았다. 

지난 6월 5일 차명계좌 발언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고 나오다 조 전 청장이 탑승한 차량이 한 방송국 여기자의 왼발을 깔고 넘어가 피해자가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조 전 청장은 당시 차에 치인 여기자를 그대로 두고 다른 차로 옮겨탄 후 사고 현장을 떠나 비난을 받았었다.

또 최근 펴낸 자서전에서 경찰의 쌍용자동차 농성 진압에 대해 “큰 불상사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된, 성공적인 진입이었다”고 자평해 논란이 일었다. 2009년 8월 쌍용자동차 노조 강제진압 사태 때 조 전 청장은 경기경찰청장으로 작전을 진두 지휘했다. 

각종 선거 출마 의사에 대해 조 전 청장은 “기회가 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밝혔다”며 “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기웃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박근혜 의원측은 캠프차원의 영입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12일 에 따르면 캠프의 한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을 했다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물의를 빚은 사람을 영입하는 게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왜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