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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7일 월요일

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1-07일자 기사 '국제중재재판은 공정하다? 천만의 말씀'을 퍼왔습니다.
[연속 기고 - 론스타 ⑥] 일관성도, 투명성도 결여된 ICSID

2012년 11월 22일, 론스타가 결국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을 제기했다. 10년간 지속된 론스타 문제가 왜 생겼는지, 제2의 론스타 사태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짚어봐야 할 대목이 많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치 공학이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듯한 대선에서 론스타와 ISD는 주요 쟁점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론스타 문제는 그렇게 적당히 묻어버려도 좋을 만큼 만만한 사안이 아니다. 찬찬히 쟁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선은 끝났지만, 론스타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론스타 문제를 집중조명하는 김익태 변호사의 글들을 게재한다. 김 변호사는 미국 변호사로서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통상교섭본부 민간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 분야 전문가다. 2012년 8월 한미FTA와 ISD 문제를 다룬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책도 펴냈다. (편집자)

[연속 기고 - 론스타]
 ① "론스타 소송, 패소하면 전 국민이 5만 원인데…"
② ISD,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 투자금 내놓으라는 격
③ 전두환 정부는 미국 무기 회사에 얼마를 건넸을까?
④ '제2의 론스타'로 가는 지름길 민영화, 박근혜는…
⑤ 투자자국가소송, 이제 골목을 노린다 오래전,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형사법원에 취직하여 우리의 국선 전담 변호사와 비슷한 Public Defender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첫 번째 사건으로 폭력 사건을 배당받았다. 단순범죄 사건이려니 싶어 긴장을 풀고 검찰의 기소장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무려 다섯 가지 다른 형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었다. 살인기도, 가중폭력, 단순폭력, 폭력 모의, 심지어는 풍기문란까지 들어가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선배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신경 쓸 것 없단다.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입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일단 걸 수 있는 모든 혐의를 걸어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시장 좌판에서 물건 파는 만물상도 아닌데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츰 적응해 갔다. 론스타가 최근 대한민국 법원을 종횡무진하며 소송의 달인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를 생각했을 때 떠오른 기억이었다.

론스타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ISD)를 제기하자, 국민 여론은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로 향한 이 국제중재재판에만 집중하는 듯하다. 하지만, 드물게 알려진 바처럼, 론스타는 ISD뿐만 아니라 국내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유사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외환은행 주식매각 시 원천징수한 3915억 원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이 있다. 현재 ICSID에 제소한 내용 중 일부와 동일한 조세 관련 사안이다. ICSID에서 금지하는 중복제소의 의혹이 드는 부분이다. 동시에, 론스타는 동일한 사안으로 국내 법원에서 피소하기도 했다.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밝힌, 국회의원 김기준과 외환은행 소액주주들이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헌법소원과, 참여연대가 론스타를 상대로 법원에 제기한 부당 이익 환수 소송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론스타는 이미 재미를 보았다. 론스타는 2004년 스타타워 매각 시 세무서가 부과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와 16억 원의 법인세에 대해서도 지난 2007년 이래 끈질기게 소송을 제기한 결과, 대법원에서 2012년 1월 1000억 원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취소 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세 16억 원에 대해서는 기어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이밖에도 더 있다. 조금 다른 사안이기는 하지만, 부산 화물터미널 부지 개발 사업에서 생긴 손실에 대해 예금보험공사와 얼마 전까지 300억 원대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단한 집념이다.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국제중재재판을 신청했으면 그만이지, 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에 기대는 것일까? 답은 서두에서 밝힌 검찰의 기소 유형과 비슷하다. 할 수 있는 모든 법률적 대응을 다 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사법구제절차를 이용할 테면, 도대체 ICSID에서 벌이는 ISD 중재재판은 왜 필요한 것일까? 대한민국 법원이 론스타에 편파적인 판정을 하기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스타타워 매각 시 징수한 1000억 원의 양도소득세에 대해서 대법원은 이미 론스타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법원에 대한 일정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소송을 벌이는 것일 텐데, 그렇다면 ISD는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는 불필요한 제도인 셈이다.

국제투자법 전문가인 제스왈드 살라쿠제(Jeswald Salacuse) 교수가 "선진국 간의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이라는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호주-미국 FTA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정한 수준의 법치가 이루어진 국가 간에는 국내 법원의 구제절차로 국제투자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거듭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이 아니며 법치주의가 서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ISD가 필요하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론스타의 마구잡이 국내 소송을 보면서 ISD의 필요성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뉴시스

론스타의 전 방위 소송이 가능한 이유

론스타의 이러한 전 방위적 소송 전략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국제중재재판의 사각지대(loophole) 때문이다. 중복제소에 대한 판단의 복잡성과 ICSID의 적극적인 재판관할권 확보 때문에 이길 때까지 가볼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는 것이다.

ICSID 협약 제26조를 보면 중복제소는 금지되어 있다. 이 점은 이어지는 협약 해설집(Report of Executive Director), 제32조에도 명시적으로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3915억 원 양도세 취소를 위해 론스타가 제기한 국내 행정소송의 당사자는 ISD 소송 당사자와 동일한 LSF-KEB 홀딩스 SCA이다. 차이는 ISD 소송의 당사자가 추가 5개 회사를 포함하여 총 6개의 회사로 이루어졌다는 점뿐이다. 근거가 되는 법률 또한 '은행법', '증권거래법', '조세법' 등으로서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똑같은 소송이 ICSID와 국내 법원에 제기되어 사법권의 충돌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이 사안은 중복제소로 판단함이 마땅하고 둘 중 하나는 취하되거나 각하되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ICSID에서 두 사건의 당사자가 다름을 들어서, 혹은 사안의 경미한 차이를 들어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ICSID에서 중복제소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연속 기고 제1회에서 다룬 대한민국 사법주권의 무력화가 현실이 되며,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이길 때까지 재판을 할 수 있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소송에 임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전략은 중복제소에 대한 문제제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만일 ICSID가 중복제소라는 판단을 내린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소송이 각하되어야 할까? ICSID에 제기한 론스타의 ISD 소송이 각하되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이미 국내 법원에서 동일한 사건에 대한 심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ICSID는 자신의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다소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실례로, 국제검증기관인 스위스 SGS가 파키스탄을 상대로 ICSID에 제소한 ISD 사건을 보면 드러난다. SGS는 파키스탄에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사전 검역과 관세 품목 지정에 관한 심사를 제공하는 내용으로 1994년에 파키스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계약의 말미에는 분쟁이 발생할 시 오직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만을 이용할 것을 명시하였다. 1996년 분쟁이 발생했고, 2000년 파키스탄 정부는 국내중재재판소에 SGS를 제소하였다. 이에 2001년 SGS는 ICSID에 파키스탄을 제소하였다. 양 당사자가 1996년 체결한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 조정은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소로 국한함을 들어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의 대법원에 SGS의 ICSID 제소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고 대법원은 파키스탄 정부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한데, 동시에 SGS는 파키스탄 중재재판을 중지할 것을 ICSID에 요청하였고, ICSID는 SGS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파키스탄 사법부와 ICSID가 진검승부를 벌인 것이다.

결과는 ICSID의 승리였다. 분명히, 계약서에는 분쟁 조정을 파키스탄 국내 중재재판으로 국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ICSID에서 진행되었고 결국 사건은 2004년 합의로 종결되었다. 파키스탄이 돈을 물어주었다는 얘기다. 이게 다가 아니다. SGS는 유사한 사안으로, 2002년 필리핀에 대해서도 ICSID에 제소하였고 2008년 합의를 이끌어냈다. 두 사건의 사안은 계약 분쟁이었고, 재판관할권은 국내 법원으로 한정했음에도 투자사건으로 해석되어 ICSID로 향했다는 지점에서 당혹스럽다. 개인적으로는, 1984년 콜트사가 대한민국을 ISD로 제소하여 ICSID에서 합의로 끝난 사건에도 이와 유사한 법리가 적용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중국 농산물 검역에 관한 서비스를 SGS에 의뢰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ICSID의 재판관할권에 대한 적극적인 유권해석은 론스타 사건이 결국 ICSID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3인으로 구성된 ICSID 중재재판부는 왜 이렇게 재판관할권에 대해서 적극적일까? 그때그때 다른 구성원들로 이루어지는 재판부가 자신들의 부와 명성에 집착한 사욕의 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제 투자 보호에 대한 중재재판부의 경향성일 성싶다. 어떤 점에서 보면, ICSID의 자기 존재감에 대한 적극적인 발현 의지로도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ISD만큼 생소한 이 국제투자중재재판소(ICSID)는 그렇다면 어떤 기구인가?

 
▲ ICSID 홈페이지. ⓒICSID

ICSID가 공정? 일관성 없고 오판 위험 높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전후 세계 경제구도에 대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44개 국가, 700여 명의 대표들이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즈라는 작은 휴양도시에 모였다. 그리고 IMF와 세계은행을 만들었다. 전쟁의 일등공신 미국과 여타의 승전국들이 자기식의 시스템으로 세계 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여 년 후인 1966년, 세계은행 산하에 ICSID가 설립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개점 이후 거의 휴업 상태였던 ICSID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인 1996년이다. 그 후 수많은 투자 사건을 재판하면서, ICSID는 단기간에 성장하였다.

하지만, 단기간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한 부작용 또한 존재한다. ICSID 판결 내용의 일관성의 문제나 재판의 공개성 여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2011년 발표된 OECD 보고서를 인용해 보면, 먼저 ISD를 통한 투자자 국가제소 중재 재판이 일국의 공공정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재재판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중재재판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시인하면서, 그런 점에서 OECD가 노력을 해왔다고 강조한다.

ICSID의 중재재판 절차법에 의하면, ICSID의 판결은 선례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 점은 WTO 중재재판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견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서 마음대로 결정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사안의 심각성을 잘 아는 재판부로서는 근거 없이 무리한 법적 해석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근거가 필요하다. 만약에 비슷한 사건을 다룬 이전의 판례가 있다면 재판부는 이를 인용할 것이다. 한데, ICSID에 사건이 몰린 시점은 최근 10여 년이라서 여전히 판례는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있는 재판부에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FTA가 일견 해결책이 되고 있다. 미국의 판례법을 그대로 FTA 조항에 인용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간접수용에 관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가 미국과 맺은 FTA 조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경우이다. 분쟁이 생기면 법 조항의 해석이 항상 문제가 되는데, 그럴 때 이 조항을 해석해 놓은 미국의 판례법을 참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물론, ICSID의 재판부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베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미국의 판례법에서 그러한 조항에 대한 해석을 참조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 변형해서 자신들의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러한 미국의 판례법에 기인한 조약 해석의 경향은 당분간 꾸준히 진행하고 발전할 것이다. 그 길이 ICSID가 그동안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간 ICSID에 쏟아진 가장 많은 비판은 판결의 일관성 문제였다. 매번 재판부가 다르게 구성되는 특성과 근거가 되는 각각의 조약이 상이한 점 때문에 재판부마다 법 해석에 있어서 조금씩은 다른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WTO 중재재판부처럼 항소재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비판을 ICSID가 모를 리가 없다. ICISD 사무총장 또한 "궁극적으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일관성 없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고심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판례법이 그대로 이식된 FTA의 경우는 이러한 고민에 대한 손쉬운 대답을 중재재판부에 제공할 것이다.

론스타 ISD 소송의 주된 주장은 공정한 대우, 비차별적인 조치, 수용에 대한 보상과 같은 전형적인 투자 분쟁 사건의 내용이며, 미국 주도의 FTA에서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되는 내용들이다. 과연 ICSID 재판부가 기존의 ICSID 판례와 미국의 판례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더 궁금한 게 있다. 이처럼 일관성과 투명성의 결여 그리고 단심으로 인한 오판의 위험을 안고 있는 ICSID 국제중재재판 법정에 대한민국이 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론스타가 이미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우리의 국내 사법구제 절차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ISD는 표준약관과 같은 것이고 ICSID의 재판은 공정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김익태 변호사 

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사설] 공정하고 역동적인 토론회를 기대한다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11-27일자 사설 '[사설] 공정하고 역동적인 토론회를 기대한다'를 퍼왔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어제 18대 대선 후보 초청 텔레비전 토론회 개최 개요를 발표했다. 새달 4일 정치·외교·안보·통일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토론을 벌인다. 무소속 김소연 후보 등 나머지 후보들은 별도로 한 차례 합동토론회를 열 예정이다.현대 민주주의에서 ‘미디어 선거’의 꽃은 단연 텔레비전 토론이다.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 사람됨을 제대로 비교평가할 수 있는 텔레비전 토론회가 없이는 온전한 선거를 치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거 토론회는 기대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천편일률적인 진행, 무의미한 공방, 밋밋하고 재미없는 토론, 다양한 토론 형식 부재 등 고질적인 병폐가 쉽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한 차원 높은 토론회를 선보여야 할 시점이다.하지만 벌써부터 전망을 어둡게 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엊그제 밤에 실시된 박근혜 후보의 단독 텔레비전 토론회가 단적인 예다. 토론 상대자가 없이 후보 한 명을 상대로 실시한 토론회인데도 사회를 맡은 송지헌 아나운서는 편향적 진행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패널들의 공격적인 질문을 중간에 자꾸 끊는가 하면 박 후보가 말이 막히면 옆에서 거들어주는 등 누가 봐도 공정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이런 사회자가 진행하는 텔레비전 토론회라면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텔레비전 토론회의 3대 성공 요소로 흔히 공정성, 유용성, 흥미성을 꼽는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행,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시청자의 흥미와 관심을 잃지 않는 토론회를 뜻한다. 이제 우리 유권자들도 이런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텔레비전 토론회를 볼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형식 파괴’ 등 토론회의 환골탈태가 절실하다.대선 후보 토론회 형식과 관련해 한번 생각해볼 문제는 ‘양자토론’이다. 실질적인 양강 구도를 무시한 채 토론이 다자 내지 3자 구도로 진행되다 보니 초점이 분산되고 토론이 피상적으로 흘렀다는 지적은 역대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었다. 올해 대선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선관위 주관 토론회와는 별도로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큰 두 후보가 직접 맞붙어 승부를 펼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올해 대선 텔레비전 토론회를 두고 또다시 ‘공정성 잃은 토론회’ ‘알맹이 없는 토론회’ 따위의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있기를 바란다.

2012년 9월 6일 목요일

‘장준하 다큐’ 언제부터 SBS가 이렇게 공정했지?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9-05일자 기사 '‘장준하 다큐’ 언제부터 SBS가 이렇게 공정했지?'를 퍼왓습니다.
[박래부 칼럼]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 진실추구 열정 빛나

긴 파업이 끝난 뒤에도 공영 방송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하고 구차하다. 현 정부 들어 방송 저널리즘을 망가뜨린 경영자들에게서는 아직도 자기성찰이나 인간적 품격, 명예의식이라곤 찾기 힘들다. 도무지 언론인, 지성인답지 않다. 

반면 요즘 언론인이 모인 자리에서는 민영방송 SBS에 대한 칭찬이 잦다. “KBS MBC와 비교해 보면 SBS 프로그램이 훨씬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좌중은 대개 쓴웃음을 짓는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위치가 바뀌었는지? 모두 아는 현실이지만, 또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하니까 허탈하게 웃는 것이다. 

SBS에 대한 근래의 평가는 허투루 하는 소리나 빈말이 아니다. 그것은 1일 밤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그 죽음의 미스터리’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증명되었다. 이는 언론의 정도를 걷고자 하는, 보도의 기본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고 탐사보도의 모범이었다고도 평할 수 있다.

지난 1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

언제부터 SBS가 가장 공정했지?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한국 지성계를 대표하는 잡지 ‘사상계’를 발행한 언론인 겸 정치인이었다. 강인한 정신으로 민족의 미래를 고뇌했던 그는 단호하게 불의와 독재, 특히 유신독재와 대결한 치열한 민주·민족주의자였다. 불행하게도 1975년 8월 경기 포천에서 등산하던 중 추락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동안 그의 죽음에 대한 숱한 의혹이 제기돼 왔다. SBS가 그 의혹들에 접근해 객관적 진실규명에 나선 것이다.

진행자가 ‘취재하면서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토로했듯이 지금의 정치적 조건은 취재보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장 선생의 죽음은 박정희의 독재적 유신체제가 극점에 이르렀을 때 국가권력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박정희의 장녀 박근혜씨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난달 1일 이장하는 과정에서 37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장 선생의 유골은 추락사로 보기엔 너무나 깨끗했다. 두개골 오른쪽의 원형 함몰과 오른쪽 엉덩이뼈 골절 외에 다른 곳은 모두 온전했다. 방송은 ‘추락했다면 두 부분보다 훨씬 약한 갈비뼈나 목뼈, 어깨뼈는 왜 멀쩡할까’ 하는 의문부터 풀어나간다. 

지난 1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

이 프로는 유골과 당시 사체 검안의의 소견서, 지름 6cm의 정원형으로 함몰된 두개골 형태, 추락 지점의 지형 등을 토대로 국내외 법의학자, 전문의 등의 소견을 꼼꼼하게 종합하고 분석했다. 당시 유일하다던 목격자의 수상한 행적과 기자들의 사건취재 포기 과정, 수사관의 증언 번복, 정보기관의 광범위한 개입 정황, 사체 검안의의 수상한 주사 자국에 대한 증언 등이 다뤄진다. 

또한 여러 형태의 추락실험과 전문 산악인들의 등산 코스에 대한 견해 등 어느 것 하나 흠 잡기 어렵도록 완벽에 가까운 취재이고 보도였다. 답변을 의뢰 받은 88명의 관계자나 전문가 중 29명이 응답해 왔다고 한다. 보도를 종합해 보면 장준하 선생은 정원형의 둔기에 머리를 맞은 뒤 추락사로 보이도록 죽음이 조작됐다는 결론에 이른다.

지난 1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

진행자는 보도를 마치며 “여기까지 오는 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해 헌신한 장준하 선생의 죽음에 대한 예의일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진실 추구의 열정이 빛나는 감동적인 보도였다. 이 프로를 보고 누가 장준하 선생이 당시 정권에 의해 피살됐음을 더 이상 부정할 것인가.  


현재의 언론 환경에서 SBS의 용기나 공정성, 객관성은 상찬의 대상이 되고도 남는다.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 얼마나 추하고 기만적이고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인가. 반면 언론의 진실추구는 얼마나 아름답고 명예롭고 역사에 기여하는 일인가. 


폭력과 야만, 역사의 왜곡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장 선생의 죽음은 정치적 심모원려를 할 것도 없이 언론이 당연히 보도해야 할 대사건이다. 현대사의 큰 의혹을 풀 계기이다. 한 사람 혹은 그 주변의 독재를 위해 얼마나 많은 폭력과 야만이 행해지고, 역사는 왜곡되는가. 장 선생이 타계한 후로도 그 유족은 정권으로부터 집요하게 핍박을 받아 궁핍을 벗어나지 못했다. 


함석헌은 ‘장준하가 김대중과 힘을 합치면 어찌된다는 것을 정권이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김대중 역시 적극적으로 반 유신운동을 펴다가 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한국 정보기관원 5명에게 납치되어 동해에 수장(水葬)될 뻔하다가 129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적이 있다. 

지난 1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장준하' 편

최근 박근혜 대선후보의 측근인 홍사덕 전 의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신을 한 게 아니라, 수출 100억 달러를 넘기기 위해 한 것”이라고 유신을 미화했다고 한다. 정확히 그 반대다. 수출을 표방한 유신은 정치인과 인혁당재건위 같은 젊은이들의 생명마저 앗아가며 영구집권하려 한 무서운 독재체제였다. 지금 유신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무섭다.

박래부·새언론포럼 회장 | parkrb78@hanmail.net  (새언론포럼 회장)

2012년 8월 30일 목요일

“파업 기자들 만든 ‘시사기획 창’, 공정했겠나”


이글은 미디어스 2012-08-29일자 기사 '“파업 기자들 만든 ‘시사기획 창’, 공정했겠나”'를 퍼왓습니다.
심의위 여당위원들, 법정제재 주장…제작자, 노조 보다 사측 분량 많아

KBS (시사기획 창) ‘2012 노동자의 삶’ 제작자들이 방통심의위에 출석해 MBC의 편향보도 주장에 대해 “정보량을 비교하면 사측 입장이 더 많았다”, “심의규정을 100% 준수했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MBC 사측 인터뷰가 빠진 이유에 대해서도 “MBC 약속 불행이행 때문”이라며 “MBC가 반론권을 포기하고 나중에 문제제기한 것은 언론활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날 여당 추천 위원들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객관성·공정성 위반을 지적하며 재허가시 감점대상인 법정제재를 의견을 밝혀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권혁부 방송심의소위원장은 MBC노조와 같은 이유로 파업을 했던 KBS 기자들이 제작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애초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 7월 10일 방영된 KBS '시사기획 창' 캡처

KBS (시사기획 창) 제작자, “심의규정 100% 준수했다”

29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위원장 권혁부)에 출석한 KBS 제작자들은 “MBC 사측이 취재·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이 케이블에 나온 프로그램을 보고 사측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었고 내레이션을 통해 충분히 전달했다”고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실제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불법·정치파업이며 상습 파업의 고리를 끊겠다’, ‘노조가 사장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사측의 주장이 포함됐다. 노조 측의 정영하 위원장 인터뷰 시간보다 사측의 입장을 전달한 내레이션 분량이 더 많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KBS (시사기획 창) 제작자들은 “통상적으로 인터뷰를 거부하는 경우, 자료까지 찾아서 그들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면서 “특히, 김재철 사장 개인에 대한 비리 의혹은 일부러 프로그램에서 배제했으며 노조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언론사가 대상이었기 때문에 공정성이나 객관성 부분을 제작·기획 단계부터 신경 썼다”며 “심의규정을 100% 준수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MBC 측으로부터 제재 요청이 들어왔다고 들었을 때 당황했다”면서 “파업을 다루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MBC 입장이었다면 제재요청까지는 안 갔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당 추천 심의위원, “김재철 사장이 낙하산이라는 게 입증됐냐…균형성 잃어”

그러나 이날 여당 추천 심의위원들은 KBS (시사기획 창)에 대해 시종일관 “균형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권혁부 위원장은 “KBS (시사기획 창) ‘2012 노동자의 삶’ 편과 관련해 쌍용자동차, 홍대파견근로자, 화물연대, 재능교육 학습지 등 노조입장만 대변하는 일방적인 프로그램이더라”며 기획의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권혁부 위원장은 “MBC 파업은 공정방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주된 이유인데 KBS도 같은 이유로 파업을 했다. 그런데 KBS 사례는 왜 뺐느냐”며 “또한 해당 편을 제작한 기자들도 KBS 파업에 참여했었다. 그들에게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었겠느냐”고 물었다.
권혁부 위원장은 “노조위원장 인터뷰 내용 중 ‘낙하산이 와서 방송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는 문구가 있는데, 김재철 사장이 낙하산이라는 입증이 있느냐”고 지적했다. 김재철 사장이 수갑을 찬 피켓을 들고 있는 노조원들의 피켓시위 화면이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이를 여과 없이 전달한 방송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KBS (시사기획 창) 제작자들은 “팀장과 부장, 국장까지 데스킹을 거쳤고 자체 심의실에서도 사전에 스크린을 했다”며 “파업에 참여했던 3명의 기자들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김재철 사장의 수갑 그림 피켓 삽입과 관련해서도 “노조원들 모두 그 피켓을 들고 있었다”면서 “해당 그림에 포커스를 맞추거나 클로즈업된 영상을 쓰는 등 부각시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다른 여당추천 엄광석 위원은 보도교양특별위원 9명 중 5명이 ‘문제있음’ 의견을 밝힌 것을 근거로 “균형성에서 미흡했다”고 주장했다. MBC 측이 인터뷰를 거절한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하지 않았다면 취재를 더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희 위원도 “전체 프로그램 자체가 형식적 균형을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KBS (시사기획 창) ‘2012 노동자의 삶’에 대해 정부여당 추천 권혁부 위원장과 엄광석 위원은 ‘주의’라는 법정제재를 요청, 박성희 위원은 행정제재인 ‘권고’를 주장했다.
반면, 야당추천 장낙인 위원은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측 입장을 취재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다른 자료들을 통해 사측 입장을 반영했다”며 ‘문제없음’ 의견을 밝혔다. 해당 안건은 방송심의소위에서 제재수위에 대한 위원들 간 입장이 갈리면서 전체회의에 회부됐다.

권순택 기자  |  nanan@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