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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0일 월요일

박근혜 대세론 위협하는 ‘네가지’


이글은 시사IN 2012-12-10일자 기사 '박근혜 대세론 위협하는 ‘네가지’'를 퍼왔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우위를 유지하며 서서히 대세론을 형성해간다. 중도층 공략 대신 보수 대연합에 열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안철수 재등장·TV토론·MB 심판론·캠프 분열 등 위험 요소도 많다.

(조선일보)가 말했다. 대통령이 되려는 박근혜 후보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다고. 하나는 ‘모험을 걸어서라도 이기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하게 지는 길’이라고. 박근혜 캠프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모험을 걸어서 지는 길’보다는 ‘안전하게 이기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이 박 캠프의 판단으로 보인다. 

과연 안전하게 이기는 길을 갈 수 있을까?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약했던 한 관계자는 야권 후보 단일화 이후 박근혜 후보가 보여준 행보를 이렇게 비유했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 깃발과 국민대통합 깃발을 들고 전장에 나갔다. 그런데 가보니 적군은 성 안에서 문재인군과 안철수군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그걸 넋 놓고 구경하다가 깃발을 내려놓고 갑자기 성으로 철수해 성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전에 들어갔다.”   

ⓒ시사IN 조남진 11월27일 박근혜 후보가 대전역 광장에서 선거출정식을 열었다.

그가 짚은 것은 세 가지다.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국민대통합’이라는 화두를 내려놓았다는 것과 중도 성향 유권자 포용 전략을 바꿔서 ‘보수 대연합’ 방식으로 대선을 치른다는 것이다. 중도 성향 지지층이 많았던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는 국면에서도 박근혜 캠프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를 영입하는 등 ‘보수 대연합’에 열중했다.  

박 후보 진영이 적잖은 내홍을 겪고, 대선 전략도 수성 쪽으로 바꿨지만,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의 흐름은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캠페인이 상당히 성공적이다. 추석 이후 박근혜 후보의 선거 캠페인 중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NLL(북방한계선) 논쟁. ‘국방에 단호한 보수 대 오락가락하는 진보’ 프레임으로 여러 논점을 제시하며 논쟁을 길게 끌고 갔다. NLL 논쟁은 선거전을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서 보수 표를 결집시키는 효과와 함께 노무현 정부를 환기시켜서 이후 ‘박정희 대 노무현’으로 선거 구도를 짤 토대를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여성대통령론’이다. 박근혜 캠프에서 처음 여성 대통령을 내세웠을 때 이 이슈는 ‘투표 시간 연장’ 이슈와 ‘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에 묻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트윗양과 검색량 등 빅데이터를 보면 이에 대한 언급이 다른 이슈에 비해 훨씬 적었다. 그런데 황상민 연세대 교수의 발언으로 ‘생식기 논쟁’ 등이 벌어지며 널리 거론되기 시작했고 박 캠프의 꾸준한 캠페인에 힘입어 대중에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NLL 논쟁으로 보수 표를 끌어모으고 여성대통령론으로 여성 표를 결집해 박 후보 측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재·보선 때 빼앗겼다가 지난 총선 때 되찾은 충청과 강원권의 지지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대선 최대 승부처로 불린 야권 단일화 국면도 무사히 넘겼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대해 “안 후보의 새 정치 실험이 문재인과 민주당의 구태에 막힌 것”이라고 규정하며 안철수 지지층의 빈틈을 치고 들어갔다.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안 후보 지지층 가운데 50~ 55%가 문재인 후보로 이동하고 20~25%가 박근혜 후보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25% 정도는 유동층). 이전에 결집된 지지세와 안철수 후보 사퇴 후 유입된 지지세가 합쳐져 공식 선거전에 돌입한 시점에 문재인 후보에게 3% 내외의 우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박근혜 후보의 ‘여성대통령론’에 맞서 ‘서민후보론’을 내세웠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선거전 초반부터 대선 광고에 등장한 의자와 후보 안경테, 그리고 후보가 입고 다닌 패딩점퍼에 대한 고가 논란이 불거지면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인 이름으로 구입한 빌라의 다운계약서 문제와 부산 상가에 대한 다운계약서 의혹까지 불거졌다. 초반 흐름은 확실히 박근혜 후보가 주도했다.   

흔히 한국 선거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조직·동정·바람·심판’ 네 가지다. 이를 대입해보면, 박근혜 후보는 새누리당의 탄탄한 조직을 활용해, 박정희·육영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면도칼 테러에 대한 동정심을 이끌어내며, ‘선거의 여왕’답게 현장 바람을 일으켜, 노무현 정부 실정을 심판하는 선거로 이끌겠다는 방향성이 분명해 보인다. 안철수 사퇴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캠페인 방향을 오락가락하는 문재인 후보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흐름이다. 

일가친척 검증 공세, 견딜 수 있을까

서서히 대세론을 형성해가는 박근혜 후보에게 남은 위협 요소는 대략 넷 정도로 꼽힌다. 하나는 사퇴한 안철수 전 후보의 문재인 지지 활동이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 지지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경우 안철수 사퇴 이후 유보 의견이던 유권자들이 문 후보 쪽으로 급격하게 쏠릴 수 있다. 안 전 후보는 12월3일 대선 캠프 해단식을 시작으로 문 후보 지원 활동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캠프가 예의주시하는 대목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선기획단장을 맡아 야권에서는 유일하게 박근혜 후보를 이긴 경험이 있는 이태규 전 안철수 캠프 미래기획실장은 “문재인 후보에 대해 박근혜 캠프에서는 ‘집토끼로도 이긴다’고 판단한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중도 성향 유권자들은 투표를 안 하고 빠질 것이고 이념 공세와 노무현 정부 실정을 부각하면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가진 박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이 구도에 치명적인 것이 바로 안철수의 재등장이다. 

한국 선거의 필승 키워드인 ‘조직·동정·바람·심판’을 안철수 버전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빛의 속도로 재조직되는 2030 세대가, 안철수에 대한 동정심을 바탕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안풍’을 일으켜, 문재인 후보를 당선시키는 것으로 이명박 정권을 심판한다”라는 시나리오다.  

박 후보에 대한 두 번째 위협 요소는 텔레비전 토론이다. 박근혜 후보는 준비된 내용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면에서는 뛰어난 반면, 현장 질문에는 약한 면모를 보여왔다. 정치인들은 보통 그런 상황에서 넉살 좋게 눙치고 빠져나가는데 박 후보는 눈을 깜빡거리거나 말을 더듬는 등 당황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곤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토론할 때 이산화탄소와 오존가스를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로 잘못 말한 것은 두고두고 입길에 올랐다. 지난 11월26일 단독 텔레비전 토론에서도 이런 문제가 노출됐다.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토론에서도 실점한 것은 박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디컴-펄스K의 소셜 미디어 분석 데이터를 보면 박근혜 후보의 단독 텔레비전 토론 이후 이를 언급한 트윗양이 안철수 후보 사퇴 이후 트윗양에 버금갈 만큼 많았다. 그런데 언급 내용은 부정적인 쪽이 많았다. 중앙선관위가 주관하는 세 차례(12월4일, 10일, 16일)의 공식 토론 이후 SNS 등에서 어떤 반응이 일지가 궁금하다. 특히 안철수 전 후보의 활동 재개 이후 이뤄지는 만큼 유보적이었던 안철수 지지자들이 텔레비전 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사진기자단 2007년 열린 이명박·박근혜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 박 후보(오른쪽)는 이때도 말실수를 했다.

세 번째 위협 요인은 이명박 정부 심판론 혹은 교체론이다. ‘서민후보론’이 먹히지 않자 문재인 캠프에서는 ‘정권교체론’으로 선거 전략을 급선회했다. 박근혜 캠프에서는 이에 대해 무대응 전략을 펴지만 지난 총선 때와 비교하면 불리한 상황이다. 당시에는 당명과 당 로고를 바꾸며 과거와 단절해 효과를 보았지만 대선을 앞두고는 이명박 정부와 선긋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이후 박근혜 후보는 청와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내곡동 특검’ 연장 문제에 대해서도 소극적이었고 물의를 일으킨 MBC 김재철 사장의 퇴임문제도 방관하는 등 현 정부와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의 ‘이명박 정부 심판론’에 적극 대응했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NLL 논쟁에 가세하는 등 박근혜 캠프를 지원사격하기도 했다.

문재인 캠프가 ‘정권교체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누리당이 애초 설정했던 ‘박정희 대 노무현’ 프레임은 희미해지고 ‘이명박 대 노무현’ 프레임이 들어서고 있다. 이 구도는 박근혜 후보에게 그리 유리할 것 같지 않다. 이 지난 10월 실시한 신뢰도 조사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뢰도는 33.7%로, 32.9%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등한 수준이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4.5%, 불신도는 17.7%에 이르렀다. 

박 후보가 견뎌야 할 네 번째 위협 요인은 검증 공세 등 네거티브 캠페인과 캠프의 분열이다. 5년 전 이명박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본인에게 집중되었던 데 비해, 박 후보는 일가친척에 대한 내용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동생 박지만씨가 회장으로 있는 EG 소유 건물에 룸살롱이 있다는 사실 등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박근혜 후보의 5촌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은 박 후보의 두 동생 근령·지만씨 사이의 송사와 맞물려 이런저런 의혹을 낳는다(30~ 33쪽 기사 참조). 5년 전 이명박 후보와 경선할 때 불거졌다 잠복한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전히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34~35쪽 기사 참조)

선거전 초반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지형이 형성되면서 잠복해 있지만, 언제든지 불거질 캠프 내 갈등 요인도 적지 않다. 대선 캠프를 친박 정치인 위주로 꾸리면서 비박근혜 의원들 사이에 홀대당했다는 서운함이 팽배하다. 캠프에 영입되리라는 보도가 나온 뒤 실제 영입되지 않은 친이 성향 의원들은 다들 “후보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수도권의 비박 의원들이 뒷짐을 진 사이 친박 의원들은 과도한 충성 경쟁을 벌인다. 한 선대위 관계자는 “소셜 미디어에서 문재인 지지자가 더 많아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다면 오프라인에서는 박근혜 착시현상이 있다. 후보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오기도 하지만 의원이나 지구당위원장이 경쟁적으로 청중을 동원해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세를 말하기에는 박근혜 후보가 감당해야 할 위기 요인이 만만치 않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2012년 4월 25일 수요일

한국경제 시한폭탄 째깍째깍, 모든 게 MB 탓?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25일자 기사 '한국경제 시한폭탄 째깍째깍, 모든 게 MB 탓?'을 퍼왔습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MB 심판론, 검찰천하 그리고 민생문제

경제도 문외한, 정치에는 더 문외한이다. 하지만 4.11 총선 뒤 정국이 어떻게 흘러가는가 하는 것은 가 가장 관심 있는 '먹고 사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와 경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 들어와서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 문제가 각종 선거의 핵심 이슈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던가?

4.11 총선은 '먹고 사는 문제'와 무관?

있었다! 이번 4.11 총선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이번 선거만큼 '경제' 문제가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 특히 야권연대 진영에서 두드러졌는데, 모든 쟁점은 결국 "집권세력(=MB) 심판"으로 수렴되었다. 때마침 터져나온 민간인 사찰 파문은 이런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 하다못해 이명박 정권 심판을 위해 '7-4-7' 공약이 물거품이 되었음을 지적하는 모습도 거의 보기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선은 2007년 대선과 비교된다.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에 아무리흠집을 내려 해도, 그가 내건 "경제, 반드시 살리겠습니다"라는 쟁점을 넘어설 수 없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아무리 정치적 쟁점을 제시해봐도 경제 문제로 수렴됐다. 반대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은 복지·민생·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야권은 모든 쟁점을 집권세력 심판으로 귀결시켰다.

상대적으로 야권에 비해 새누리당은 민생 문제를 강조한 편에 속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철폐"를 비롯해 노동자 밀집지역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민주노총의 이른바 '1-10-100' 계획(한 번에 열 개 법안을 100일 안에 쟁취한다는 계획)과 비견되는 것으로서, 새누리당은 '가족 행복 5대 약속'을 100일 내 맞춤형 입법화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우선입법과제 핵심에는 비정규법(기간제법, 파견법) 개정과 사내하도급법 제정 등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을 차지한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새누리당의 민생 공약은 오히려 야권연대의 '민간인 사찰 MB 심판'이라는 정치 쟁점에 묻혀 크게 이슈화되지 못했다. 노동자 민중이 먹고 살만한 사회가 된 것도 아닌데, 4.11 총선은 그런 문제를 제대로 토론하지 못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 지난 3월 28일 출범한 민주통합당 산하 'MB·새누리 심판 국민위원회' ⓒ뉴시스

명박천하 가고 검찰천하 도래?

선거가 끝난 후 많은 이들이 '미래 권력 박근혜'의 세상이 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4.11 총선의 최대 승자가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대권을 거머쥔 것은 아니다. '이명박근혜'라는 단어가 회자되기는 했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이명박 정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명박 정권은 급속하게 '과거 권력'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일정한 과도기가 펼쳐지게 되는데, 엉뚱하게도 검찰이 이 시기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선 시기에 민간인 사찰 재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조사심의관실 주도로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청와대·새누리당의 방어 공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노무현 정권 시기가 아니라 이명박 정권 시기의 것만 수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어라? 이거 이명박 정권의 검찰이 한 말 맞아? 뭔가 수상쩍다. 노무현 정권 시기의 사건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뒤지던 검찰 아니던가?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들을 확보하지 않고서, 과연 현 정권에 대해 이 정도의 자신감 있는 멘트를 쏟아낼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있다. '참고인' 신분으로 부를 때는 출두도 않고 입도 열지 않던 공직윤리지원관실 진경락 전 과장이, 오히려 '피의자' 신분이 되자 자진출두 후 입을 열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게다가 그가 입을 연 대목은 청와대 민정수석실로부터 '증거인멸'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 현재 법무부장관인 권재진 씨임을 감안하면, 검찰이 이 사실을 공개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권재진 장관의 거취 문제와 상관없이, 향후 검찰 수사에 현 정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좁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권력'을 놓고 여야 대권 주자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사이, 당분간 '과거 권력'의 명줄은 검찰이 쥐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결론은? 검찰은 핵심적인 증거와 증인들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비롯한 과거 권력에 대한 검찰 수사는 계속될 것이고, 대선 때까지 핵심적인 정치 쟁점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먹고 사는 문제'는?

과거 권력에 대한 수사, 여야 대권 주자들의 각축전으로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리는 사이, 전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는 점점 한국을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다. 4.11 총선이 치러지던 바로 그 시기에 유럽과 미국 증권시장은 다시한번 폭락을 거듭했고, 그리스 채무위기 문제는 이제 스페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여파는 정치권도 강타했다. 웬만한 유럽 국가들에서 스페인의 경우처럼 선거를 통해 과거 권력이 심판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세계 자본의 입김에 따라 그리스와 이탈리아처럼 선거도 통하지 않고 정권이 교체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제 독일과 함께 유럽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프랑스에서도 정권 교체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의 4.11 총선은 세계 경제위기의 바람과 거의 무관하게 치러진 듯하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권이 교체된 핵심 이유는, 과거 권력이 경제를 망쳐먹었다는 대중의 불만 때문이었다. 사회당이 권력을 쥐고 있건, 보수세력이 권력을 쥐고 있건, 유럽 대중의 선택은 과거 권력의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총선에서는 경제정책이 거의 쟁점조차 되지 않았고, 과거 권력에 대한 심판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 경제는 유럽에 비해 위기를 덜 타고 있었다는 뜻일까? 사실이다.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어김없이 재정긴축과 복지 삭감이 논의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복지 논쟁'이 벌어지는 기현상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위기를 '덜' 타고 있었을 뿐, 세계 경제의 격랑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래의 경제 지표들을 보면, 한국에서 왜 경제 문제가 핵심 쟁점이 안 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위 자료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치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프인데, 기업 소득은 해마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는 반면, 가계 소득은 한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기업 소득 증가율이 가계 소득 증가율의 2~3배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위 자료의 노동소득 분배율(단위 : %)은 한국은행이 발표한 수치이고, 10대그룹 사내유보율(단위 : %)은 매년 연말 기준으로 한국거래소와 상장사협의회가 발표한 수치를 바탕으로 그려본 그래프이다.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의 몫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기업이 벌어들여 금고에 쌓아놓은 돈은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켜온 시스템,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앞의 자료들을 토대로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위기를 덜 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업들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만 그럴 뿐이다. 실제로 사내유보율과 기업소득 증가율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반대로 노동자를 비롯한 평범한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 경제는 다른 나라 못지않은 위기를 겪고 있다. 경제위기를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킴으로써, 외관상 기업의 이윤율을 비롯한 각종 수치는 한국 경제가 위기가 아닌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킬 뿐이다."

여기에 또 다른 착시현상 요소가 존재한다. 일체의 경제·사회적 쟁점을 'MB 심판'이라는 문제로 모조리 환원시켜 버리는 마이다스의 손, 야권연대의 존재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MB 탓, 김영삼 정권의 시도를 넘겨받아 김대중 정권이 도입했던 정리해고·근로자파견제도 MB 탓, 노무현 정권이 밀어붙인 비정규직법도 MB 탓…. 모두가 집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일까?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와 평범한 가정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에도, 이명박 정권 시기에도 끊임없이 경제위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 상황은 째깍째깍 시한폭탄처럼 한국으로 옮겨오고 있다. 시한폭탄의 뇌관이 될 지뢰밭이 곳곳에 숨어 있다.

△ 유가 폭등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명박 정권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름값 대책 발표였다. 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다 내놓았다. 핵심적으로는 정유 4사(SK,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가 97%를 독점하고 있던 정유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로 삼성계열사인 삼성토탈을 투입한 것이다.

삼성토탈은 앞으로 석유공사를 통해 알뜰 주유소에 저가로 기름을 공급하게 되는데, 그래봐야 기름값은 몇십 원 떨어지는 효과를 낼 뿐이다. 특히 1850원대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경유값의 등락폭에 따라, 화물트럭 기사들을 비롯한 운수업 노동자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 조선업 위기

지난해 연말부터 시작해 중소 조선소의 부도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수주 물량이 떨어지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수주 물량이 떨어지면서 '저가 수주 경쟁'이 불 붙었는데, 배를 많이 건조해도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나마 현금보유액이 많은 대형 조선소는 버티고 있는 반면, 자금 사정이 허약한 중소 조선소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선주사들이 몰려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로 인해, 유럽 선주사들은 발주한 선박 주문조차 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LPG선이나 LNG선을 취소하고 벌크선으로 바꾸거나, 심지어 이미 건조한 선박에 대한 인도를 포기하는 일도 벌어진다. 조선업의 새로운 시장으로 각광받았던 드릴쉽이나 해양 플랜트 물량조차 취소되는 일이 벌어져서, 최근 대형 조선소에서도 일감이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조선업 위기는 곧바로 한국의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 위기로 이어진다. 이미 정규직의 규모를 훌쩍 넘어버린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규모를 자유롭게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자본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소 조선소 곳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청업체의 폐업·도산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른 체불임금도 엄청나게 쌓여가고 있다.

△ KTX 민영화,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이 문제 역시 마이다스의 손, 야권연대는 모조리 MB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쟁점이 거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 비해 한국 정부의 재정 상태는 건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기업이 안고 있는 부채를 포함하면 한국 역시 만만치 않은 재정위기 앞에 직면해 있다.민영화를 통한 특혜는 당연히 거대한 KTX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재벌들에게 돌아가겠지만,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공적 사업들을 하나둘씩 팔아치우며 공기업과 정부 부채를 메우려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처럼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 민중에게 지불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우리는 KTX 민영화와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유럽 노동자들이 겪었던 '재정긴축 정책'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공공부문 인원 감축이나 임금 삭감, 연금·복지 축소 등의 공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 가계 부채 1000조 시대

정부가 위기를 노동자와 평범한 가정에게 전가해온 탓에, 정부의 재정위기 이전에 가계 부채 위기가 먼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2008년에 미국에서 발생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바로 가계 부채 위기의 결과물이니 말이다.

주택담보대출을 장려하다가 부동산 거품이 폭삭 가라앉자, 늘어나는 이자 부담을 이기지 못해 많은 노동자와 가정들이 파산하게 된다. 결국 이들에게 빌려준 돈은 부실대출이 되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주요 업무로 하던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진 것이 바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한 한국의 상황을 돌아보자. 과연 2008년 미국의 상황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

△ 부동산 경기 부양 대책

기름값 대책에 이어 이명박 정권은 곧바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런 대책 수립에 착수했다는 것은, 정권 스스로 경제위기의 징조를 상당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동산 거래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자,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부동산 거품이 폭삭 가라앉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이명박 정부가 준비하는 대책은 '거품의 크기를 더욱 키우는 방식'이다. DTI 규제를 완화 또는 폐지하는 것, 강남 지역을 투기지구에서 해제하는 것 등이 논의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을 더 키워서 거래량을 늘리겠다는 것인데, 당장 몇 개월 동안을 버틸 수 있는 대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동산 거품이 터질 경우에는 예상보다 훨씬 큰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자, 시한폭탄들이 째깍째깍 작동을 시작했다. 이 모든 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먹고 사는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런 문제들까지 모조리 MB 탓으로 돌리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앞으로의 핵심 쟁점은 대권을 둘러싼 권력 쟁투가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