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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15일 월요일

세계의 ‘검은돈’들 “나 지금 떨고 있니?”


[백병규의 글로벌포커스] ICIJ, 사상 최대 다국적 취재팀 구성, ‘검은돈’과 전쟁 선포이글은 미디어오늘 2013-04-14일자 기사 '세계의 ‘검은돈’들 “나 지금 떨고 있니?”'를 퍼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어떻게 새나갔나?” “누가 자료를?” “앞으로 어떻게…”

최근 세계적인 조세피난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의 ‘검은돈’의 실상이 속속 폭로되면서 세계 각국의 ‘검은돈’들이 충격과 경악 속에 빠져들고 있다. 영국판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는 지난 4일 “수백만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억 달러를 버진아일랜드의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등에 숨겨놓았던 각국의 정치인들과 부호, 유명인사, 기업들이 구좌를 관리해주던 금융기관이나 자산관리인들에게 빗발치듯 항의 전화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최근의 상황을 전했다.

부자우환(富者憂患)이라고나 할까? 실상 부자들도 걱정이 많다. 돈을 더 늘리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혹 누가 뺏거나 훔쳐갈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돈의 맛과 소중함을 아는 부자들일수록 한 푼이라도 빠져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동서양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부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따로 있어 보인다. 자신의 재산 상황이 낱낱이 공개되는 것. 정당한 치부라도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은 질시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이 떳떳하지 못한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부자들이 조세피난처를 찾는 이유다. 세금을 내지 않아서도 좋지만 재산과 그 행적을 숨길 수 있어 특히 매력적이다.

'검은돈'들이 버진아일랜드를 찾는 이유는…
▲ <가디언> <르몽드> <쥐드도이체차이퉁> <워싱턴포스트>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3일부터 일제히 ICIJ가 파헤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유령기업의 실제 주인과 그 메커니즘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사진=ICIJ


세금이 없거나 혹은 거의 없는, 손쉽게 유령회사를 세울 수 있는 조세피난처는 잘 나가는 ‘지하경제’다. 재산과 소득을 감추고 탈세를 하려는 염치없는 부자와 기업들, 남몰래 ‘검은돈’을 굴려야 하는 개인과 조직, 회사들, 이들의 자산을 관리해주고 불려주는 브로커와 금융기관들의 은밀하고 촘촘한 그물망이다. 

그 원조는 스위스다. 그 뒤를 버뮤다와 리히텐슈타인이 따랐다. 이번에 그 베일을 벗게 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를 비롯해, 케이맨군도, 마샬군도, 쿡제도 등 작은 섬나라들이 많다. 전 세계에 무려 60여 곳에 이른다. 아일랜드나 키프로스도 그 덕을 톡톡히 보다가 유럽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이들 조세피난처에 흘러들어간 자금이 대략 21조~32조 달러가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연 3% 정도의 수익을 올리고 여기에 30%의 세금을 부과할 때 1900억~2880억 달러가 된다. 우리 돈으로 매년 200조~300조 원이 넘는 세금이 조세피난처에서 증발하고 있는 셈이다.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각국이 이들 역외탈세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어지간해선 꼬리를 잡기 힘들다. 독일에서는 주정부와 과세당국이 스위스 비밀계좌 정보를 돈을 주고 사들여 추적한 적도 있다. 유럽 각국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등을 대상으로 탈세의혹이 있을 경우 정보 제공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국가 단위로는 조세피난처로 향하는 거센 돈 흐름을 막기도, 그것을 파헤치기도 역부족이었다. 

ICIJ, 사상 최대 다국적 취재팀 구성

마침내 다국적군이 편성됐다. 군인들이 아니다. 과세당국도 아니다. 기자들이다. 46개국에서 86명의 탐사보도 기자들로 편성됐다. 영국 (가디언)과 (BBC 파노나마), 프랑스 (르몽드), 독일 (쥐드도이체차이퉁)과 (NDR), 미국 (워싱턴포스트), 이탈리아 (엘파소), 일본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러시아, 캐나다, 스페인, 인도,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칠레, 파라과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37개 언론사가 보급품과 화력을 지원한다. 사령부는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작전명은 ‘비밀 판매중:미로와 같은 조세피난처 검은돈의 이면(Secrecy For Sale: Inside The Global Offshore Money Maze)’이다. 15개월의 탐사 끝에 지난 3일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이번 다국적 취재팀 구성은 ICIJ 사상 최대 규모다. 아니, 세계 언론사상 최대 다국적 취재팀이다. 대규모 다국적 취재와 협력보도는 위키리크스가 2010년 미 국무부 외교문서를 공개했을 때가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그 때와 비교해도 이번엔 몇 배나 규모가 크다. 

불씨는 한 통의 우편물에서 시작됐다. 호주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제러드 라일은 2011년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포장된 우편물은 하드디스크였다. 하드디스크를 열어 본 그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이른바 역외기업(혹은 유령기업)과 관련자, 관계서류, 여권 등 각종 사진 데이터가 들어 있었다. 전체 데이터 용량만 260기가바이트. 어림잡아 500쪽 분량 책 50만권 분량이다. 2013년 3월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장서 분량이 89만권이다. 

이 디스크 안에는 250만개의 파일과 200만개의 이메일이 들어 있다. 4개의 대규모 데이터베이스와 50만개의 텍스트, PDF, 스프레드시트, 이미지도 있다. 미군 브래들리 매닝 일병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문건은 25만 건이었다. 그보다 160배 이상 많다. 사상 최대의 정보 유출 사건이다. 이들 자료의 생성 시기는 30년 전까지다. 버진아일랜드 30년 역사가 이 디스크에 들어 있는 셈이다. 

누가 어떻게 이들 자료를 수집했을까, 그는 왜 이를 라일 기자에게 보냈을까? 버진아일랜드의 ‘검은돈’들이 가장 궁금해 할 대목이다. 하지만 이는 수수께끼다. 다만 라일 기자가 이 디스크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3년여의 추적 끝에 2007년 호주 최대의 사기 사건인 파이어파워 스캔들의 진상을 폭로했다. 홍콩에 기반을 둔 글로벌 퓨얼 테크놀로지라는 회사의 자회사로 포장된 파이어파워는 자동차 연비를 12% 이상 향상시키고 배출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는 마법의 연비향상제를 개발했다며 주로 호주에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세계 각지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셸 등 세계적인 정유업체 및 카레이싱 업체 등과 제휴하거나 투자를 받았다고 홍보했다. 호주 정부의 공인도 받았다. 당시 존 하워드 호주 총리도 한 몫 했다. 

호주 사상 최대 사기사건 취재 보도를 보고 배달된 260기가 하드디스크

파이어파워는 6천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업가를 자칭한 호주 출신 티모시 프랜시스 존슨이 기획한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마법의 연비향상제는 가짜였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라일 기자는 탐사보도를 통해 파이어파워 그룹이라는 게 2004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단 1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된 유령회사라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에게 버진아일랜드의 비밀이 담긴 260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가 배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곧 워싱턴의 ICIJ 본부를 찾았다. ICIJ는 이 하드디스크가 어떤 폭발력을 갖고 있는지 곧바로 알아챘다. 처음에는 10명으로 분석팀을 꾸렸다. 제러드 라일을 국장으로 기용하고 그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다. 곧 80여 멍의 다국적 취재팀이 편성됐다. 
▲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나 위탁구좌 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세계 각국의 정치인, 재계 인사, 유명인들. 사진=ICIJ


이들 다국적 취재팀에게 지난 15개월은 악전고투였다. 바로 눈앞에 엄청난 자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비밀의 열쇠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매닝이 폭로한 미 국무부 외교전신은 그 자체가 이미 체계화된 디비(DB)였다. 그러나 이번 자료들은 낱낱이 개별화된 자료였다. 자료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고, 이어지는지 확인해야 했다. 방대한 정보들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정보들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데는 호주 정보 분석 프로그램 전문업체인 누닉스(NUNIIX)가 큰 힘이 됐다. 누닉스는 세계 주요 정보기관과 데이터 분석업체들이 사용하는, ICIJ의 재원으론 감당하기 힘든 정보관리 및 분석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했다. 

한 때는 바로 눈앞에 ‘비밀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 했다. 4개의 거대 디비(DB)를 복원할 수 있었다. 돈세탁을 규제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돼 있는 회사의 실소유주를 명기토록 하는 항목이 있었다. 그러나 클릭 한 번으로 유령회사의 실소유주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디비를 복원하는 순간 사라졌다. 많은 자료들이 이 항목은 공란으로 남아 있었다. 의도적으로 실소유주를 감춘 것이다. 결국 NUNIX와 자체 개발한 데이터관리 및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수많은 정보의 조각들을 맞춰가야 했다. 이를 토대로 84명의 기자들이 버진아일랜드 ‘검은돈’의 실제 주인들을 추적하고 인터뷰했다. 

드러난 ‘검은돈’의 주인들…현직 대통령 일가에서 미 CIA, 독재자의 딸까지

그 결과 지난 3일부터 영국의 (가디언), 프랑스의 (르몽드), 독일의 (쥐드도이체자이퉁),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언론들이 버진아일랜드에 돈과 자산을 빼돌린 세계 각국의 부호와 기업, 이들을 도와준 금융기관과 중개업자, 또 그들의 ‘검은 거래’의 실상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주요 정치적인 인물로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대선 캠프 재무담당이었던 장 자크 오기에르, 일함 알이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가, 몽골의 국회 부의장 바야르적트 상가자브, 러시아 부총리의 아내 올가 슈바로프,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수상 부인,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맏딸 마리아 이멜다 마르코스, 마하티르 전 말레이시아 수상 아들 미르잔과 현직 각료 라자 농 치크 자이날 아비도, 파키스탄의 무니스 엘라이 의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의 장 자크 오기에르는 케이먼군도에 2개의 회사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일가는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회사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관급공사를 따낸 회사와 ‘수상쩍은 거래’를 한 것이 포착됐다. 나머지 인사들의 경우도 ‘검은돈’일 개연성이 높다. 상가자브 몽골 국회부의장은 사임 의사를 밝혔고, 필리핀 당국은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다. 

유명인들의 이름도 줄줄이 공개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TV선교 목사인 크리스 오야크히로메의 딸, 인도네시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11대 부호 가문 가운데 9개 가문, 권총 자살한 독일의 부호이자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전 남편 군터 작스, 최근 사망한 러시아의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시키와 영국인 동료 스콧 영, 스페인의 부호로 세계적인 예술품 수집가인 카르멘 티센 보르네미사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버진아일랜드나 케이만 군도와 같은 조세회피처의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돈’과 ‘자산’을 관리해왔다.  

부호들의 재산 관리를 위해 직접 유령회사 만든 세계적인 금융·컨설팅 업체들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깊숙이 개입돼 있는 것도 드러났다. 주로 중국과 인도네시아,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의 부호들을 상대로 ‘원스톱’ 조세피난서비스를 제공해온 ‘포트컬리스 트러스트넷(Portcullis TrustNet)’의 주요 고객 가운데는 UBS, 도이체방크, 크레디트 스위스의 자회사인 클라리덴 등 세계적인 은행과  영국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 미국의 딜로이트, 네덜란드의 KPMG 등 세계 3대 국제회계감사및 컨설팅 업체들이 포함돼 있다. 이들 금융기관과 회계감사․컨설팅 회사들은 VIP 고객인 아시아의 부호들과 기업들을 위해 기꺼이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지역에 회사를 설립할 것을 권유하고, 이를 위해 포트큘리스 트러스트넷을 중간다리로 활용했다. 네덜란드의 ING와 암로 같은 은행은 고객들을 위해 버진아일랜드와 쿡아일랜드, 말레이시아의 라부안 등 조세회피처에 직접 수십 개의 회사를 설립해 운영해 온 사실도 밝혀졌다.
▲ ICIJ 프로젝트 ‘비밀 판매중:미로와 같은 조세피난처 검은돈의 이면’은 호주 탐사보도 전문기자 제러드 라일 기자에게 260기가바이트의 하드디스크가 우편으로 배달되면서 시작됐다.


유령기업을 활용한 신분세탁과 돈세탁 방식도 드러났다. 러시아 스파이와 미국 CIA, 후세인 정권이 각기 동일한 유령기업을 활용한 사례도 있었다. 2006년 11월 캐나다에서 러시아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폴 윌리엄 햄펠이 신분과 경력 위장을 위해 활용했던 유령회사를 미 CIA도 활용했다. 햄펠이 체포되기 한 달 전 이었다. 미 CIA는 이 회사를 내세워 리투아니아 빌리어스 소재의 승마학교를 위장 매입했다. 알카에다 요원들을 수감하고 고문한 비밀수용소를 짓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사담 후세인이 이를 활용했다. 후세인 정권은 유엔의 석유식량프로그램을 기만하는 무역 거래조작에 이 유령기업을 활용했다.

한국의 ‘검은돈’ 실체 드러날까?

지금까지 보도를 통해 드러난 버진아일랜드 비밀의 실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ICIJ가 확보한 자료에는 170개국 14만 명의 이름이 나온다. 버진아일랜드에는 중국 등 특히 아시아쪽 투자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주로 유럽과 러시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쪽 인사들이다. 중국과 홍콩, 일본, 한국 등은 아직 본격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도 이 자료에 관심을 갖고 ICIJ에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ICIJ는 그러나 저널리즘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위해 이들 자료를 정부 기관에는 제공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ICIJ는 일단 올해 연말까지를 1차 시한으로 잡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내년, 혹은 내후년까지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계획이다.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의 실상과 검은돈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것이다. 다국적 취재팀을 더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도 ICIJ 측과 접촉을 갖고 있다.

조세정의네트워크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자금은 한국이 7천790억 달러로 중국, 러시아에 이어 3위인 것으로 집계됐다. 12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맨군도 등 OECD가 지정한 7개 조세피난처에 한국의 34개 대기업이 현지 법인 160여 개가 설립, 운영하고 있다. 물론 개인은 이 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ICIJ의 이번 탐사 보도에 안전부절못하고 있는 한국 기업과 부호들이 꽤 많을 수 있다. 한국의 어떤 언론사, 어느 기자가 ICIJ와 함께 이를 파헤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백병규 언론인 | bkb21@hanmail.net  

2012년 9월 1일 토요일

사상 첫 현직 대통령 대상 특검 이뤄질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2-08-31일자 기사 '사상 첫 현직 대통령 대상 특검 이뤄질까?'를 퍼왔습니다.
민주당, 내곡동 특검법 단독 발의…진통 예고

민주통합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안을 31일 야당 단독 발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밝히고, 여야 수석원내부대표 간 합의를 지켜 특검법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새누리당에 촉구했다.

앞서 새누리당 김기현 수석부대표와 민주당 박기춘 수석부대표는 내곡동 특검법안에 대해 합의했으나, 법사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특별검사 추천권을 민주당에 주기로 한 내용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우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완전히 약속 위반"이라며 "원래 국정조사를 하려 한 것이지만 새누리당에서 '(국정조사 대신) 특검으로 하면 받겠다'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인데 (그마저)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대변인은 나아가 "판사 출신인 김 부대표가 합의한 것에 대해 권 의원이 '위헌'이라고 하는 것은 역할분담이 아닌가 한다"고 의심섞인 눈초리를 보냈다. 전날 민주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관영 부대표도 "권 의원의 발언이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면 여야 합의 정신에 위반된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우 대변인은 법안이 민주당 단독 발의 형태로 제출됐지만 아직 여야 수석부대표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오늘 아침에도 김기현-박기춘 부대표가 통화를 했고 김 부대표는 '(권 의원을) 설득해 보겠다. 기다려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법안 처리 전망은?

하지만 권 의원 등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원내지도부 간의 합의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어 법사위 상정 등 이후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민주당은 내달 3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법사위 안건 상정에서부터 여당 간사의 반대를 무릅써야 할 처지다.

민주당이 제출한 특검법 내용은 △수사대상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과 관련된 배임 및 부동산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정하고, △추천은 민주당이 10년 이상 법조 경력을 쌓은변호사 중 2명의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서면 제출하면 대통령이 3일 이내 1명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하며, △수사기간은 임명 후 10일의 준비기간을 거쳐 30일 내 기소여부를 정하되 대통령 승인이 있을 경우 1회에 한해 15일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권 의원 등이 문제삼는 부분은 이 가운데 민주당이 특검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다. 권 의원은 전날 라디오 토론에서 "야당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면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겠느냐? 정파적 이익에 따라서 움직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명백한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야 원내대표 합의는 정치적 합의이고, 법률적 효력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헌법에 합치되는지 다른 법률과 저촉되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된다"면서 "그걸 하지 말라면 법사위는 문 닫고 본회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권 의원과 토론을 벌인 민주당 법사위 간사 이춘석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에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특검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며 "권 의원 주장처럼 수사중립의 원칙을 따지자면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해선 안 된다. 특검 대상이 되는 사람이 특검을 임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곽재훈 기자

2012년 8월 31일 금요일

[사설] 새누리당, ‘내곡동 특검’ 하지 말자는 것인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30일자 기사 '[사설] 새누리당, ‘내곡동 특검’ 하지 말자는 것인가'를 퍼왔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터 구입 의혹은 우리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현직 대통령이 부정비리 의혹의 피의자 신분이 된 것 자체가 검찰 수사로는 진상규명을 기대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 여야가 어렵사리 도입한 특별검사 법안마저 새누리당의 약속 파기로 물건너갈 상황에 처했다.새누리당의 법사위 간사인 권성동 의원이 앞장서 제기하는 주장의 요체는 ‘민주당이 특검 후보의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야당에 특검 후보 추천권을 줘서는 특검의 정치적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마치 고발인이 검사를 마음대로 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법리적·현실적 측면에서 허점투성이다.첫째, 특검의 수사 대상이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수사의 중립성 원칙을 굳이 따진다면 ‘피의자’인 이 대통령이 특검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부터가 난센스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국민적 신뢰를 받기 어렵다. 그나마 야당이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게 되면 수사의 독립성이나 공정성에 대한 기대를 하게 하는 보완 효과가 있다. 특검의 자격도 정치권에 몸담은 적이 없는 사람으로 국한했고, 특검 후보를 복수로 추천해 대통령이 한 명을 선택하게 했다.둘째, 특검 제도의 삼권분립 위배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위헌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특검을 무산시키기 위한 트집잡기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사실 특별검사가 임명돼도 실제로 수사로 진행하는 사람들은 기존 검찰에서 파견되는 검사와 수사관들이다. 현 정권 들어 검찰의 태도를 볼 때 이들이 제대로 수사를 할지도 의문인 상황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셋째, 여야의 정치적 합의를 하루아침에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겉으로는 특검법안의 표류 원인을 권 의원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내심 권 의원을 은근히 응원하는 모습이다. 엄청난 폭발성을 안고 있는 내곡동 사건의 특검 수사 결과가 자칫 박근혜 후보의 대선 가도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음을 우려하는 태도가 역력하다. 지금의 새누리당 분위기에서 지도부가 마음만 먹으면 권 의원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권 의원 등 뒤에 숨어 특검을 피할 궁리를 하지 말고 여야 합의를 지키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