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안철수 출마선언에 여야 인사들 ‘옮겨타기’ 채비
이글은 경향신문 2012-09-20일자 기사 '안철수 출마선언에 여야 인사들 ‘옮겨타기’ 채비'를 퍼왔습니다.
ㆍ정치권 자리이동 가시화
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정치권의 이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무소속 안 후보 쪽으로 움직이는 여야 인사들이 속속 생겨난다. 정계개편 조짐이라고까지 말하긴 아직 이르다. 하지만 결과에 따라선 그에 준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이 ‘안철수발’ 변화가 몰고 올 파장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변화의 진원지는 민주통합당이다. 당 사무총장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이 20일 안 후보를 지지한다며 탈당계를 제출했다.
민주당은 추가 탈당 기류가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종일 어수선했다. 한 재선의원은 “고위 당직자를 지낸 사람이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 전 의원의 탈당을 계기로 당내에서는 김근태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와 호남 의원들을 주시하고 있다. 전날 모습을 드러낸 ‘안철수의 사람들’에 민평련 인사들이 눈에 띄었다. 호남 쪽 분위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안 후보 등장 이후 호남에서 ‘안철수 지지세’가 확산된 것과 연동된다.
새누리당 인사들 중에서도 안 후보 쪽으로 옮겨 갈 조짐이 있다. 18대 때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주목받았던 새누리당 소속 전 의원들의이름이 오르내린다. 복수의 당 관계자는 “수도권 출신의 ㄱ 전 의원은 안 후보에게 가기로 결심한 것 같고, 서울의 ㄴ 전 의원은 안 후보의 경제정책팀으로 가고 싶어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여야의 흐름이 정치권 지형재편의 전초전 성격이라 가정한다면 과거 양상과 뚜렷한 차별점이 있다.
지금껏 정치권 주류는 여권의 엘리트 관료집단과 야권의 민주화·운동권 세력이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전문가 집단과 디지털 세대가 합류했다.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시작된 셈이다.
역대 정계개편은 보스 정치인이 주도했고, 주류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인위적 새판 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안 후보의 정치 쇄신에 호응하는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합류하는 추세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 후보 등장이 정치권의 대대적 이합집산을 불러올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민주당만 해도 대선 후보가 정해졌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도 나쁘지 않다. 낡은 정치를 거부한 안 후보가 정당 인사들을 수용한다는 보장도 없다. 단, 안 후보와 문 후보가 함께 ‘정치 쇄신’ 깃발을 들고 조기 단일화를 이루면 야권 정계개편이 촉발될 가능성은 있다.
구혜영 기자 koohy@kyunghyang.com
2012년 9월 18일 화요일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7일자 기사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을 퍼왔습니다.
[이철희 칼럼] 야권 후보들,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라
과하다. 야권의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온통 정책이나 노선보다 후보단일화에 쏠려 있다. 호기심은 이해하나, 잘못된 프레임이다. 후보단일화란 용어는 절차에 대한 관심을 표명할 뿐 그 후보가 지향하는 바에 대해서는 아무런 함의도 지니지 않는다. 알고 쓰든 모르고 쓰든 이 프레임은 특정한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
후보는 정책, 정치적 약속을 담고 있는 하나의 브랜드다. 비유하자면, 후보 ○○○는 '이건희'라는 개인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브랜드다. 따라서 후보에 대한 일차적 관심은 그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그리고 있는지 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삶의 역정과 이러저러한 생각, 그리고 가치나 인생이란 단어가 앞에 붙는 무슨 무슨 관(觀)이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야권의 후보들은 이제 막 본선 무대에 발을 디디는 순간에 있다. 당내 경선이나 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과 생각을 밝힐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다수의 국민들에게 이해ㆍ수용되는 수준은 미미하다. 아직 하나의 브랜드로 포지셔닝(positioning)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그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사회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를 알리고 알게 되는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가 밀도 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야권의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오로지 후보단일화 여부에만 쏠린다면 이들 후보들의 '브랜드 정체성' 즉 정책과 지향은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묻힐 가능성이 늘어난다. 다시 말해 단일화 프레임은 노선과 정책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화의 당위성은 인정되더라도 그들이 구체적으로 단일화의 수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단일화 프레임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오도행위라고 하겠다.
과거 3김 정치란 말이 유통된 적이 있다. 그냥 쉽게 이해하면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세 김씨가 주도하는 정치를 말한다. 하지만 이 담론이 은연중에 유포하는 것은 3김 정치가 낡은 정치라는 느낌과 인식이다. 3김 정치란 말을 유통시킨 주체는 5공의 전두환 정권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끌어내기 위해 낡은 정치를 혁파해야 한다고 했고, 그 낡은 정치를 3김 정치로 담론화한 것이다.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3김 정치는지역에 기반한 보스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돼 3김의 정책이나 이념을 무시하거나 덮어버리는 프레임이었던 것이다. 뛰어난 담론전략이다.
후보단일화 담론이 자칫 이런 프레임으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 단일화 방법론 등에 대한 논의만 무성해지고, 정작 주목받아야 할 그들의 주장(argument)은 뒷전으로 밀쳐놓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후보가 선출되고, 유력한 제3 후보의 등장이 눈앞에 등장했는데도 언론의 관심은 온통 후보단일화에 대한 것뿐이다. 의도적인 프레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야권의 후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해법의 제시보다는 정치공학적 단일화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야권의 책임도 없지 않다.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단일화의 명분이 이회창 후보에게 승리하는 것 외에 별로 드러난 것이 없었다. 단일화는 후보들의 게임일 뿐 국민의 관점에서 왜 단일화하는지, 단일화해서 나라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후보 등록 직전에 이뤄진 단일화 때문에 판세가 뒤집혔다. 이런 경험 때문에 이번의 단일화에 대해서도 승부의 관점에서 읽히는 게 무리는 아니다.
시장에서의 흡수·합병(M&A)이 꼭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듯 후보단일화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후보단일화가 이뤄졌지만 패배한 것이 좋은 예다. 2011년의 김해 보궐선거 역시 마찬가지 사례다. 후보단일화는 양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단일후보의 브랜드 아래 통합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단일화에 성공한다고 해서 무조건 '1+1=2'의 등식이 성립되는 게 아니다. 2가 아니라 1.5가 될 수도 있다.
야권 후보들의 일성이 후보단일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단일화를 표방하면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공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과도하게 해석하면 단일화를 출마 명분으로 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야권의 후보들은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어떻게 이룰지를 설명하고, 지지를 구해야 한다. 그래야 후보다운 후보가 될 것이고, 또 홀로서기를 통해 규합·결속된 지지층이라야 단일화에 나서더라도 후보를 따를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야권의 후보들은 당분간 홀로서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시스
사실 후보단일화는 방법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이다. 어떤 방법으로 단일화를 이룰 것이냐, 즉 여론조사로 할 것이냐 담판으로 할 것이냐 등의 방법론은 단일화 논의의 핵심이 아니다. 후보단일화를 하나의 이벤트로 접근하는 것도 옳지 않다. 아무리 멋있는 그림으로 포장해서 아름다움을 치장해도 그 명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겉모양보다는 내용에 신경 쓰는 것이 필요하고, 옳다.
후보단일화는 국민들이 하는 것이다. 야권의 후보가 같은 정당의 소속이 아니라면 독자 출마해 국민의 지지를 얻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런 다음 두 후보가 합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것인지 확인되어야 한다. 그 이후 누가 더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누구의 정책이 더 신뢰를 받는지가 가려질 것이다. 다시 말해 지지율로 나타나는 민심에 의해 후보단일화의 대강이 결정된다는 말이다. 단일화의 방법이나 이벤트는 이런 과정의 끝에 해당되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1995년 영국 노동당의 당대표 선거에서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이 단일화를 모색했다. 극소수 측근들에 의해 협의와 조정이 진행됐다. 단일화 즈음 블레어와 브라운이 담쟁이 넝쿨로 둘러싸인 고풍스런 하원 분수대 주변을 함께 거니는 장면이 공개되었다. 둘은 정담을 나누면서 우정과 신뢰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그림으로 인해 단일화는 미화되고, 그 효과는 극대화되었다.
그런데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블레어와 브라운이 노동당의 동일한 정파, 즉 현대화파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둘이 합쳐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말이다. 그들이 만약 서로 다른 정파에 속해 있었다면, 또는 서로 생각이 많이 달랐다면 단일화가 어색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일화는 그것이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생명이다. 지금 야권의 두 후보에게는 이런 점이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민주당의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야권의 후보다. 민주당의 정책과 안 원장의 생각은 많이 다르지 않다. 과거 정몽준과 노무현의 차이를 생각하면 다행스런 대목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층과 안 원장 지지층은 겹치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 '안철수 현상'은 기존 정치와 정당에 대한 반발이나 거부의 발현이다. 때문에 유권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둘이 합쳐지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양 후보의 지지층이 손을 잡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 명분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과정에 의해 확보될 수 있다.
후보단일화의 명분이 처음부터 '이러저러한 이유로 단일화해야겠다'고 밝히는 접근으로 만들어질지는 의문이다. 단일화의 명분은 그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것보다 각자의 정책과 노선 등 브랜드 정체성을 분명하게 한 다음, 크게 봐서 둘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 먼저 인식되도록 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다. 예컨대, 낡은 민주당의 후보로서 만족하는 민주당 후보와, 그것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안 원장이 합쳐지려면 민주당이 달라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둘이 새정치를 위해 손잡는다는 명분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후보단일화의 성패는 두 후보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민주당 후보는 당내의 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을 더 크고 새로운 민주당으로 탈바꿈시키는 혁신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면서 야권이 하나의 틀 속에서 연대하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통합의 리더십도 보여줘야 한다. 안 원장은 단기필마의 일인이 아니라 새로움과 다름을 지향하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결집시키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또 야권의 분열과 대립을 막고 혁신과 재구성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구사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잘 풀어내느냐 하는 리더십 경쟁에서, 단일화의 명분과 효과가 결정될 것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안철수, 문재인 후보 확정 다음날 출마선언 예고…왜?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17일자 기사 '안철수, 문재인 후보 확정 다음날 출마선언 예고…왜?'를 퍼왔습니다.
19일 기자회견에 선보일 '안철수의 사람들'에 관심
18대 대선정국의 최대 변수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드디어 출마 관련 거취를 표명한다.
안 원장의 대변인 격인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17일 "안 원장은 오는 19일 오후 3시 충정로에 소재한 구세군아트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다"며 "이 자리에서 안 원장은 그간 의견을 들어온 과정과 판단을 국민께 설명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최대 관심사는 안 원장이 내놓을 '판단'이 출마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유 전 관장은 과의 통화에서 이날 회견이 '출마선언'인지를 묻자 "안 원장이 다 말씀하실 것"이라고만 밝혔다.
관측은 출마 쪽으로 기운다. 안 원장과 가까운 금태섭 변호사도 앞서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 와서 없던 일처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었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 원로들도 "돌아설 수 있는 시점이 지났다"고 정치 참여를 간접 촉구한 바 있다. 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데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로 기자회견 날짜를 사전 예고할 이유도 없다.

▲SBS TV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의 안철수 원장의 모습. ⓒ뉴시스
'안철수의 사람들' 모습 드러내나?
이날 열릴 회견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안철수의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떤 규모로 참석할지도 관심거리다. 안 원장의 회견이 열릴 구세군아트홀은 500~600명 가량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취재기자들 외에 일부 지지자 등이 참석하는 형태의 행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안 원장 측은 각 언론사당 1명으로 취재 인원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안 원장 측 관계자는 "일반 지지자들이 오기에는 장소가 좁다"며 "기자들 외에 사람들이 좀 오시긴 올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전문가들이 참석하는지를 묻자 이 관계자는 "전문가들'도' 올 것"이라고 답했다. 기성 정치인들의 참석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했다.
유 전 관장은 그러나 "기자회견이란 면에서는 혼자"라며 "기자회견에 충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안 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함께 자리하는지에 대해선 "현재 다른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를 종합하면, 일부 가까운 인사들이 회견장에는 올 수도 있지만 기자들의 질문을 함께 받는다든지 기자회견 외에 출정식 등 별도 행사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안 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전문가들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최상용 고려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고원 서울과기대 교수,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이다. 경제계에서는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등 IT분야 기업인들과 교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근 안 원장은 '경청 행보' 중 강준만 전북대 교수와 김민전 경희대 교수, 조정래 소설가 등과 만남을 갖기도 했다. '청춘콘서트'를 함께 기획한 평화재단의 법륜 스님도 여전히 안 원장과 교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주변 전언도 있다.
회견 일자, 예고된 대로? 단일화 염두 포석?
한편에서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선출된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 계획을 발표한 것을 두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컨벤션 효과'를 누릴 시간적 간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은 회견 시작 2시간 전에 기자들에게 예고된 반면, 이번 안 원장의 회견은 이틀 전에 공지됐다.
문 후보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기 전후 몇몇 여론조사의 야권 단일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안 원장을 앞서가고 있었으며, 일부 조사에선 오차 범위를 넘은 우세를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민주당 후보 지지 여론이 충분히 결집하기 전에 존재감을 보이는 게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 유리할 것이란 계산이 깔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 전 관장은 그러나 "회견을 예고해 달라고 (언론에서 요청을) 해서 한 것인데, 그렇게까지 (해석)하면 너무 과한 것 같다"며 이는 과도한 해석이라고 밝혔다. 다른 안 원장 측 관계자도 "억측"이라며 "이미 날짜가 (민주당 후보가 선출된 직후의 주 중으로) 나와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곽재훈 기자
2012년 9월 17일 월요일
새누리당, 인혁당 사과는 가족 아닌 당사자에게만?
이글은 미디어오늘 20-09-17일자 기사 '새누리당, 인혁당 사과는 가족 아닌 당사자에게만?'을 퍼왔습니다.
[아침신문 솎아보기]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 확정… 안철수도 움직인다, 이르면 19일 출마선언
문재인 후보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16일 서울 경선을 끝으로 마무리된 13차례 지역 경선을 종합한 결과, 문 후보는 56.5%의 누적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문 후보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 그리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여는 새 시대의 맏형이 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대선 출마가 이주 안에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르면 19일~20일 출마선언을 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안 원장은 문 후보 선출에 대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고 대변인 격인 유민영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전했다.
김병호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공보단장이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과’ 문제와 관련해 “사과를 피해자 당사자들이 아닌 그들의 가족이나 후손까지로 확대하기 시작하면, 전 국민 중에 사과를 안 받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음은 17일자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문재인 "정권교체 문 열겠다")
국민일보 ('盧비서실장' 문재인 대선후보 되다)
동아일보 ("국민 아픔 치유하는 힐링 대통령 될것")
서울신문 (盧를 넘어 安 안을까)
세계일보 ("공평·정의 사회 이루겠다")
조선일보 (노무현의 동지, 대통령 후보 됐다)
중앙일보 (후보 문재인, 대선 첫 관문 넘다)
한겨레 (문재인 "사람이 먼저인 새시대 맏형 되겠다")
한국일보 ("사람이 먼저인 세상 만들겠다")
문재인, ‘구시대의 막내’ 아닌 ‘새시대의 맏형’
9개 신문이 1면에서 일제히 문재인 후보의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확정 소식을 다뤘다. 문 후보는 후보수락연설에서 “새로운 시대로 가는 다섯 개의 문이 우리 앞에 있다”며 “일자리 혁명,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새로운 정치, 평화와 공존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겨레 17일자 머리기사
문 후보는 이날 선출 뒤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원장과의 단일화 연대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이후에 새로운 정치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단일화를 이뤄서 정권교체하고 그다음에 새로운 세상 만드는 데까지 함께하겠다”며 ‘공동정부론’을 재차 강조했다.
문 후보는 경선 기간 이어진 당내 갈등과 관련해선 “새로운 인재들이 함께하는 열린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겠다. 당내 모든 계파와 시민사회까지 아우르는 ‘용광로 선대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19일 대선출마하나
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되자 안철수 원장의 대선행보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는 4면 기사 에서 “안 원장은 ‘민주당 후보가 선출된 후 며칠 내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고 예고한 만큼 이번 주에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19∼20일이 유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 국민일보 17일자 4면 기사
출마를 선언하더라도 안 원장의 행보는 당분간 베일에 싸일 가능성이 높다. 유 대변인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주 발표는) 그동안 국민의견을 들은 것에 대한 과정을 설명하고 출마 여부를 밝히는 게 우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 캠프나 무소속을 비롯한 출마 형태 등의 구체적인 행보는 추석 이후에 단계적으로 밝히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안 원장 측은 ‘담백한 스타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수 있는 서울시내의 실내 공간을 물색 중이다. 하지만 기자들을 포함해 수백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장소 섭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문이다.
안 원장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단계적인 대선 행보를 택한 것으로 예상된다. 정당 기반이 없는 ‘단기필마(單騎匹馬)’인 안 원장이 국민적 관심을 유지하고, 야권 단일화 작업의 주도권을 잡는 데는 이 방식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출마선언→깜짝 인재 영입 발표→무소속 출마 선언→단일화 합의’ 등을 시간차를 두고 터뜨리면서 대선 정국을 주도할 수 있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 (안철수, 19일 출마선언…"지지 인사들 공개")에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이르면 17일 대선 출마 선언 일시와 장소를 발표한다”며 “또 그의 출마 회견 때 일부지지 인사가 참석하고, 정책 입안에 나설 1차 참여 인사 명단도 공개될 것으로 전해졌다”고 했다.
문-안, 담판이냐 경선이냐
문 후보와 안 원장은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룰까. 한겨레 5면 기사 (문재인쪽 '담판', 안철수쪽 '경선' 선호…단일화 접점 찾을까)에 따르면 대체로 담판은 민주당 쪽이, 경선은 안 원장 쪽이 선호하는 분위기다.

▲ 한겨레 17일자 5면 기사
문 후보와 안 원장 쪽을 두루 아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 원장은 문 후보에게 존경심이 있고, 문 후보도 안 원장에 대한 인간적 신뢰가 있다”며 “두 사람 모두 ‘내가 꼭 돼야 한다’는 식의 사생결단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안 원장 쪽에서는 양보(담판) 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러나 안 원장 쪽에서는 양보방식에 대한 우려가 있다. 안 원장 쪽이 양보한다면 큰 요구사항이 없겠지만, 문 후보가 양보한다면 ‘민주당 입당’이나 ‘정치적 지분 분할’ 등의 정치적 요구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또한 문 후보의 입장에서도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 후보직을 양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담판론’은 사실상 ‘안철수 양보론’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된다. 단일화 논의 시점은 11월 초~중순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한 달은 양쪽 모두 지지율을 높이기 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새누리당 “반쪽 후보” 폄하, 속은…
국민일보에 따르면 친박계 핵심 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직 단일화를 하지 않았으니 반쪽 후보 아니냐”며 “전국체전에 비유하자면 동네 선수에서 군 단위 후보로 뽑힌 것이고 안 원장과 도 대표 선발전을 치러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최종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마당에 우리가 그들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며 “우리는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상일 대변인은 “네거티브가 아닌 좋은 비전과 정책 제시로 국민행복 시대를 열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논평했다.

▲ 중앙일보 17일자 6면 기사
중앙일보는 6면 기사 (제1야당 후보 문 vs 지지율 높은 안…계산 복잡한 새누리)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 후보의 맞상대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중 누가 편할지를 놓고 계산이 복잡하다”고 전했다.
당 관계자는 16일 “문 후보가 당분간 ‘컨벤션 효과’를 누리며 안 원장과 단일화 국면에서 유리해졌다”면서도 “안 원장이 공식 출마 선언을 한 뒤 야권 지지층이 또 이동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종 후보가 누가 될지 예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어느 한쪽에 대비해 선거전략을 짜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박 후보의 상대로 문 후보가 유리할지, 안 원장이 유리할지를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박 후보 입장에선 50여 년 역사를 가진 제1야당 후보인 문재인 후보를 상대하기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신 격인 문 후보가 최종 상대가 될 경우 ‘노무현 정부로의 회귀’를 공격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인혁당 사과 “당사자들에게만” 논란
김병호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공보단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결국 시민사회에선 인혁당에 대해 (대변인이 아닌) 박 후보가 사과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후보는) 사과한다는 말은 여러번 했다. 문제는 (인혁당) 사과의 대상이다. 결국 피해를 본 사람에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이렇게 언급했다.

▲ 한국일보 17일자 8면 기사
한겨레는 6면 기사 (김병호 박후보 공보단장 "인혁당 사과는 당사자들에게만")에서 김 단장의 발언은 대법원에 의해 정권의 조작사건으로 판명된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사형당한 당사자들이 아닌, 그 유족이나 후손들에게까지 사과하는 건 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 사과 문제와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전향적이란 것도 다른 누군가가 요구하는 대로 하는 걸 전향적이라고 하는 건지”라며 “미래지향적으로 정말 나라의 미래를 위한 방향으로 가는 걸 말하는지는 좀 봐야(겠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단장의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 안에서도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김 단장 논리라면 일본 강점기 때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의 후손들에게, 일본도 전혀 사과할 일이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해선 가해자의 후손이 피해자의 후손과 그 유가족에게 사과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 영토분쟁으로 반일 시위 격화
언론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댜오) 열도 국유화에 항의하는 중국의 반일 시위가 갈수록 극렬화되고 있다. 11일 일본 정부의 센카쿠열도 국유화 선언으로 촉발된 반일 시위는 베이징(北京)과 광저우(廣州) 등 중국 내 80여 개 도시로 확대됐다.
16일 남부 광둥(廣東)성 광저우에서는 오후 1시쯤 일부 시위대가 일본 총영사관 안으로 난입해 1층 로비와 2층 식당 유리창을 깨부쉈다. 영사관 앞에 주차돼 있던 일본 차량 1대도 파손됐다.
베이징의 일본 대사관 주변에 1만여 명의 시위대가 모이는 등 중국 전역에서 8만여 명이 반일 시위에 참가했다. 산둥(山東)성의 칭다오(靑島)에서는 파나소닉 그룹의 전자부품 공장 등 10개 일본 기업 공장에 시위대가 난입해 불을 지르고 생산라인을 파괴했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중국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시위대의 표적이 되고 있는 대사관이나 영사관 주변에 접근하지 말 것 △혼자서 야간에 외출하지 말 것 △일본어 대화를 가능한 피할 것을 지시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국적을 묻는 중국인들한테 한국인이라고 대답해 위기를 모면한 일본인들도 있다”고 전했다.
황색언론의 ‘노출’ 사진 “공익인가”
영국 왕세손비의 상반신 노출 사진 보도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영국 왕실이 보도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파파라치들의 무분별한 취재 행태는 왕실에 1997년 다이애나비 사고사의 악몽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AP통신이 15일 보도했다.

▲ 경향신문 17일자 10면 기사
이탈리아 잡지 ‘키’는 17일 발행되는 최신호에서 케이트 왕세손비(30)의 노출 사진을 26쪽에 걸쳐 공개하겠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프랑스 잡지 ‘클로저’가 비키니 수영복 하의만 입은 채 상반신을 노출한 케이트의 사진을 지난 14일 특종 보도한 데 이어 키가 후속 보도를 예고한 것이다. 두 잡지는 모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소유한 매체다.
영국 왕실은 사생활 침해 혐의로 클로저를 고소했고, 키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런던 시민 앨리스 메이슨(24)은 AP통신에 “윌리엄 부부는 사적인 공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벌레 같은 기자가 몰래 사진을 찍었다”며 “이런 사진이 공익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했다.
조수경 기자 | jsk@mediatoday.co.kr
2012년 7월 15일 일요일
악재 릴레이…초반부터 흔들리는 박근혜 대선가도
이글은 뉴스페이스 2012-07-15일자 기사 '악재 릴레이…초반부터 흔들리는 박근혜 대선가도'를 퍼왔습니다.
부결파문-표절논란-5.18 발언…野 ‘공세’ 계속
지난 10일 공식 출마선언을 마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본격적인 ‘대선레이스’가 초반부터 갖가지 악재들로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여권 유력 대선주자로서 아직 눈에 띄는 지지율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이같은 악재들이 반복될 경우, 박 의원으로서는 대권행보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두언 체포동의안 부결’ 후폭풍에 휘청대는 새누리-박근혜
가장 큰 악재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나왔다. 지난 11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게된 것이다. 이한구 원내대표가 사퇴를 선언할 만큼의 심각한 사안이었다.
특히, ‘불체포 특권 포기’는 박 의원이 비대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2월 나온 쇄신안인 터라 이번 일은 박 의원의 리더십에 적잖은 내상을 입혔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박 의원은 체포동의안 표결에 불참한 것으로 전해져 이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도 이어졌다.
박 의원은 13일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체포동의안은 당연히 통과됐어야 하는 것인데 반대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파문이 일어난 지 이틀만에 대국민 사과에 나선 셈이다.
이어 박 의원은 “정두언 의원은 평소 쇄신을 굉장히 강조해온 분”이라며 “법 논리를 따지거나 국회에서 부결됐다, 안됐다를 넘어 평소 신념답게 앞장서 당당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그분이 평소 강조해온 쇄신정책과 맞는다고 본다”고 전했다.
이날 박 의원의 사과는 이번 일이 대선정국에서 커다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14일자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원내 핵심 관계자는 “당 지지율이 3∼5%는 빠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총선 이후 최대 위기고 악재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선이 위험해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의원의 사과를 두고 야당에서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약속과 반대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동안 무엇을 하고 이제야 책임지겠다는 발언을 하는가”(김현 민주통합당 대변인), “책임론을 피해가려는 무책임한 태도”(이지안 통합진보당 부대변인) 등의 맹공이 이어졌다.
정두언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내 쇄신파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13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승리를 위해 동료의원들을 계속 잃어도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친박 일색’의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들로만 당이 구성되고 있다. 이건 누가 뭐래도 박근혜 당”이라며 “대선승리를 위해 새누리당 지도체제의 지나친 충성경쟁이 동료 의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는 사실도 이참에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돈-홍사덕의 ‘5.18’ 발언, 박근혜 캠프 ‘역사인식’ 도마위에
박 의원 캠프 인사들의 ‘역사인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정치발전위원을 맡고있는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6일 MBN과의 인터뷰에서 5.16 쿠데타에 대해 “당시로 볼 때는 군사혁명이 맞지만 그 후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단순히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언도 연이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의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홍 전 의원은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5.16에 관한 평가를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 것은 세종대왕에게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운게 역성혁명이냐 군사쿠데타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박 의원을 세종대왕에 비유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이를 두고 한 트위터리안(@hannaq****)은 “선조의 잘못을 처절하리만치 반성한 후, 문치와 애민정신으로 백성 위해 봉사하신 세종대왕을 감히 누구한테 빗댄단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트위터리안(@gangch****)은 “아예 신 용비어천가를 써요”라고 꼬집었다.
캠프 참여인사 중 한명인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과거 행적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는 6일 “박 교수는 2006년 현대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던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 공동대표였다”며 “이 단체가 펴낸 한국 근현대사 최종 편집본은 5·16 군사 쿠데타를 ‘5·16 혁명’으로 표현하고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았다”고 보도했다.
박 의원의 출마선언 전 야심차게 발표된 캠프 로고와 슬로건이 ‘표절논란’에 휩싸인 것도 하나의 악재로 평가된다. 로고는 캠프의 상징이고 슬로건은 후보의 집권 후 정책방향을 축약한 일종의 ‘카피’임을 감안하면 박 의원 측으로서는 단순 논란으로만 보기 어려운 대목이 아니었느냐는 평가다.
문제의 로고는 빨간 말풍선 속에 박 의원 이름의 초성인 ‘ㅂㄱㅎ’가 담겨있다. 그런데 하필 이 로고는 새누리당 대선 주자 중 한명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측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 전 실장 캠프의 로고는 파란 동그라미 속에 임 전 실장의 초성인 ‘ㅇㅌㅎ’가 새겨져 있다.
이와 관련, 임 전 실장 캠프 측 관계자는 9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ㅇㅌㅎ’로고는 이미 홈페이지와 편지봉투, 서류, 수첩 등에 5월부터 사용해 왔던 것으로 여러 지지자들이 참신하다는 반응을 보내왔는데, 박 의원 캠프에서 비슷한 로고를 발표해 당혹스럽고 표절 의혹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의원 측의 슬로건인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대한 이의도 제기됐다.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 측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내가꿈꾸는나라’는 작년 시민정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과 시민운동가들이 공들여 만든 단체”라며 “이런 시민정치조직의 이름을 박근혜 캠프에서 몰랐다면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내가 꿈꾸는 나라’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명칭을 다른 곳에서 쓰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게 당연한 일이다. 만약 알고 썼다면 더 심각하다”며 “한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통령후보 선거 캠프의 슬로건이 남이 하는 좋은 말을 따다가 만들었다면 그건 한국 사회의 정치 문화가 얼마나 한심한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김문수 경기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박 의원에 대해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돼”라고 혹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야 대선주자들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박 의원이 대선레이스의 초반 악재들을 어느정도까지 수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강우종 기자
박근혜의 모든 것은 ‘사라진 18년’에 있다
이글은 한겨레21 2012-07-16일자 제919호 기사 '박근혜의 모든 것은 ‘사라진 18년’에 있다'를 퍼왔습니다.
[표지이야기]1979년 10·26 이후 1997년 정치 입문까지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던 때에서 찾아낸 키워드 4…소중한 아버지와 배신자에 대한 분노,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는 성녀
부모는 선택할 수 없고, 자식은 다른 독립체다. 아버지가 독재자이므로 딸도 당연히 독재적 정치인이리라고 생각하는 건 부당하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큰딸 이미 마르코스는 주지사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이다. 아버지가 자행한 계엄령과 인권침해를 옹호한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딸 루시아 피노체트도 아버지를 옹호하는 극우파지만 대선 출마는 생각지 않는 시의원이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딸 에다 무솔리니는 시종 정치에 무심했고 심지어 1945년 파시즘 패망 뒤 자신을 감시하던 공산주의자 빨치산과 사랑에 빠졌다. 모두 독재자의 딸이지만, 제각각 결이 다르다.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 출마 선언일을 확정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정치인 박근혜’로 변신한 지 15년이 됐다.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늘 안개에 싸여 있다. 그는 과묵하다. 리더십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덕목이다. (한겨레21)이 조심스럽게 박 전 위원장의 리더십 분석을 시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묵함을 뚫고 실체에 접근하려고, 그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고리를 찾고자 했다. 1979년 10·26 이후 1997년 정치 입문까지 직접 쓴 자서전과 에세이 6권을 참고했다. 자연인 박근혜와 예비 정치인 박근혜가 뒤섞여 있던 시절이다.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잃어버린 18년’이다. 그때의 글과 말에서 정치를 직접 언급한 대목을 발굴했다. 그것을 1997년 이후 정치인 박근혜의 말과 행동에 비춰봤다. ‘박정희의 딸이므로 당연히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경계했다. 그렇게 4개의 키워드를 찾았다. 그 열쇠들이 정치인 박근혜를 덮은 신비주의의 뚜껑을 열어주길 기대하며_편집자.
“늘 서늘하다. 그럼 안 된다. 뜨거울 땐 뜨겁고 찰 땐 차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은 누구하고나 등거리다.”-윤여준
■ 배신감 혹은 경계심
박근혜 전 위원장의 두꺼운 마음 껍질 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배신감이다. 10·26 뒤 공화당 정치인들이 유신을 비판하는 모습을 본 게 배신감의 뿌리다. “배신하는 사람의 벌은 다른 것보다 자기 마음 안에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성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점, 그래서 한 번 배신을 함으로써 배신을 하지 않으려는 저항감이 점점 약해진다는 점, 그럼으로써 두 번째, 세 번째 배신이 수월해진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1981년 9월30일치 일기)

»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식을 열고 선언문을 낭독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서울=뉴시스】
“한 번 배신하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수월해져”
박근혜 전 위원장은 1952년 2월2일생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 9일장을 치르고 그해 11월 초 청와대를 떠났다. 5·16 쿠데타 전 살던 서울 신당동 집으로 돌아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 잠시 ‘서울의 봄’이 왔다. 그러다 1980년 전두환의 집권으로 정치공기는 다시 얼어붙었다. 짧았던 서울의 봄 당시 박정희와 그의 시대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논쟁이 벌어졌다. 옛 공화당 인사들도 비판에 동참했다. 대표적인 예가 김종필 전 국무총리다. 그럴 만했다. 혁명공약 초안을 만들고 쿠데타의 동선을 직접 짠 영민한 청년 장교를 박정희 전 대통령은 몹시 경계했다. 1969년 김종필 전 총리가 3선 개헌에 반대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김종필 전 총리는 더 이상 혈육이 아니라 정치적 경쟁자였다. 김 전 총리가 3선 개헌 찬성으로 돌아선 뒤에도 1970년대 내내 중앙정보부가 김 전 총리의 자택을 감시하고 도청했다. 다만 어떤 공화당 인사들은 전두환 밑에서 살아남으려고 유신을 욕했다. 29살 딸에게 이 모든 논쟁은 모욕으로 다가왔다.
“유신 시절에 책임이 막중한 자리에 앉았던 정치인들 중에는 유신을 죄악시하는 요즘의 풍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때 반대를 했다. 내가 그때 무슨 힘이 있어 반대를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발뺌을 하는 경우가 쉽게 목격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자신이 진실로 나쁜 체제라고 생각했다면 왜 그때 그 자리를 물러나지는 않았었는가를 묻고 싶어요. …그렇게 판단력이 시대에 따라 변질되고 흐린 사람은 앞으로 다시는 공직을 맡으면 안 될 것입니다.”( 1989년 1월호)
배신감은 오래 지속된다. “(김종필 전 총리, 박준규 전 민정당 당의장,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왜 옹호를 않고 있느냐? 그러니까 유신만 해도 아버지 살아 계실 땐 유신을 해야 우리가 산다! 이렇게 외치고 다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유신에 대해서 옹호를 안 한다, 그 얘기는 거꾸로 말을 하면 그러면 그 당시에도 유신을 외치고 다녔던 것이, 자기 소신이 정말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높은 자리를 할 수 있으니까….”(1989년 5월19일 MBC 인터뷰)
2007년 박 전 위원장은 이미 10년차 정치인이었다. 배신감은 그해 쓴 자서전에서도 다시 표현된다. “당시(10·26 이후) 아버지의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조차 싸늘하게 변해가는 현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온갖 비화가 봇물 터지듯 신문과 잡지를 장식했다. 비화를 증언한다면서 L씨, K씨, P씨 등의 익명을 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람들은 뚜렷한 신념 없이도 권력을 좇아 이쪽과 저쪽을 쉽게 오갔다.” 놀랍게도 10년차 정치인은 그 책에서 29살 때 썼던 일기 구절을 그대로 다시 쓴다.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 번 배신하고 나면 그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제바달다’의 모반 부분을 읽었는데 역시 불타 같은 분도 이런 고통을 당했구나 싶어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고, 인간 세상은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이런 시련을 주는구나 싶기도 했다.”-1991년 8월21일치 일기
곁을 지키는 2인자가 없는 이유
배신감은 특유의 용인술로 이어졌다. 그는 곁을 잘 주지 않는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중단 없이 곁을 지키는 2인자가 없다. 2004년 총선 때 박근혜 전 위원장과 함께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배신감과 용인술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외형적인 노력은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그 문제를 안고 있다. 청와대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 아닌가.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겨낸 정신력은 무서운 것이다. 지금 위치까지 본인 노력으로 왔다. 그 과정을 생각하면 (심리적) 갑옷을 겹겹이 껴입었을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거다. 그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제 대중정치인이 되었으니 갑옷을 확 벗어던져야 하는데 아직도 그걸 못하고 있다.”
심리적 갑옷이 ‘대통령 박근혜’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물었다. “이런 게 용인술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다. (대통령이 되면) 지금 보여지는 모습이 강화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진전할 것이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이 최근 보여주는 모습은 그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른다. 리더십의 비민주적 측면을 자꾸 보게 된다. 다분히 권위주의적 모습을 보이지 않나. 폐쇄적이고 수직적이다. 누구와도 터놓고 소통을 안 한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다는 이야기다. 늘 서늘하다. 그럼 안 된다. 뜨거울 땐 뜨겁고 찰 땐 차야 한다. 특히 지도자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다가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은 누구하고나 등거리다. 박 전 위원장의 특징이다.” 단, 박 전 위원장이 심리적 갑옷을 벗는 순간 무서운 정치인이 되리라고 윤 전 장관은 덧붙였다.

» 박근혜 전 위원장이 직접 쓴 저서들. 2007년 발간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제외한 책들은 모두 절판됐다.
“태어나서 삶을 누린다는 것에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하고 느낀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1992년 5월21일치 일기
■ 메시아 혹은 성녀
측근의 ‘자기 정치’를 용인하지 않는 박근혜 전 위원장이기에 주요 국면에서의 선택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박 전 위원장은 고독한 단독자다. 그는 정치적 자산과 부채를 주변과 나누는 법이 없었다. 그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2004년 이후로 박 전 위원장은 언제나 보수의 메시아였다. 과거 그가 쓴 글에 ‘소명’ ‘운명’ ‘열반’ ‘해탈’ 등의 개념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와대 시절부터 그는 종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천주교 교단이 운영하는 성심여고와 서강대를 나왔다. ‘율리아나’라는 세례명도 있다. ‘사이비 종교인’ 논란이 아직까지 제기되지만, 청와대 퍼스트레이디 시절부터 최태민 목사와 각별한 친분을 나눴다. 최태민은 5차례 결혼했고,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하며 승려·교장·목사로 행세했다. 최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씨는 비교적 최근인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박 전 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비공식 캠프 조직을 이끌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율리아나, 그리고 선덕화
어머니인 육영수씨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박 전 위원장도 천주교·개신교와 함께 불가의 교리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2005년 대구 팔공산 동화사에서 신라의 선덕여왕과 같은 ‘선덕화’(善德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박 전 위원장은 청와대를 떠난 뒤 각종 종교서적을 탐독했다. 그는 1982년 5월31일치 일기에 “열반이란 자기 안의 모든 감정의 불꽃이 꺼진 상태라고 한다”고 적었다.
박 전 위원장에게 ‘성녀’의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시도의 뿌리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일기에서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나 석가모니와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그리스도는 종교 박해 때문에 오히려 사방으로 그 종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현실의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자꾸 활동의 폭을 넓혀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1989년 11월5일) 1991년 8월21일치 일기에는 “어제 저녁에는 ‘제바달다’의 모반 부분을 읽었는데 역시 불타 같은 분도 이런 고통을 당했구나 싶어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했고, 인간 세상은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이런 시련을 주는구나 싶기도 했다”는 내용이 있다. 제바달다는 석가의 사촌동생인 동시에 제자였지만 세를 규합해 석가에 대항했다. 석가를 살해하려 했다는 기록도 있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은 4월20일 “박근혜의 추종자들은 그녀를 부모를 모두 잃고 결혼과 출산도 포기한 채 나라에 모든 것을 바친 성녀처럼 본다”고 보도했다. ‘성녀’는 스스로에게 성스러움을 부여했다. 그 활동은 ‘하늘이 내린 소명’에 따른 것으로 인식된다. 1995년 발간된 수필집 (내 마음의 여정)에는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삶은 하늘의 뜻으로 살고 하늘의 사업에 참여하여 그 일을 하면서 사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일들 중에 오로지 하늘의 사업만이 의미와 가치를 지니며 영원할 수 있다”는 등의 대목이 등장한다. 1990년 9월2일치 일기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권력은 칼이다. 권력이 클수록 그 칼은 더욱 예리하다. 깊은 철학을 지니고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의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인간’들의 논란에 꿈쩍하지 않다
하늘의 가호를 받으며, 하늘의 사업을 행하는 자에게 자유로운 소통과 수평적 토론은 끼어들 틈이 없다. 인간들이 제기하는 ‘경선룰’ 논란에도 그는 꿈쩍하지 않는다. 성녀의 메시지는 ‘발신번호 표시 불가’ 전화를 타고 내려온다. 측근들조차 박 전 위원장에게 범접하기 어려운 벽을 느끼는 이유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도 공존한다. 박 전 위원장의 이런 인식이 ‘선공후사’라는 덕목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 윤여준 전 장관은 “박근혜표 선공후사는 분명한 장점”이라며 “다만 그 ‘공’이 민주적 공공성이 아니라 국가주의적 공공성으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통 혹은 인내
박근혜 전 위원장은 ‘인내’의 화신이기도 하다. 2007년 2월 박 전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박 전 위원장과 수행단, 기자들은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에 필요한 검색을 받았다. 그런데 박 전 위원장이 검색대를 지날 때 경보가 울렸다. 소지품을 제거하고 다시 검색해도 마찬가지였다. 박 전 위원장은 수차례 검색을 반복했고, 끝내 별도의 공간에서 수색까지 받았다고 한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수행단에선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한국의 유력 정치인을 저렇게 푸대접해도 되느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은 불평 한마디 없이 모든 검색 절차를 마쳤다. 결국 머리핀 하나 때문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도 ‘그게 룰인데 지켜야지요’라고 하더라.”
“고통은 진리를 향해 들어가는 문”
주요 선거 때마다 박 전 위원장은 전국을 누비며 불패의 신화를 써왔다. 이동 중에 쪽잠을 자거나,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일도 다반사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본인 혼자만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주변에 참모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결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늘 꼿꼿했다”고 했다. 계속되는 악수로 손에 통증이 오면 붕대를 감았다. 그래도 안 되면 왼손을 내밀었다. 붕대를 감은 손은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2007년 경선 패배를 수용한 뒤 4년을 ‘여당 속의 야당’으로 견뎠다. 10·26 사태 뒤 정치권에 진입하기까지 18년 동안 박 전 위원장의 내면을 휘감았던 ‘고통’은 그의 남다른 ‘인내심’을 설명할 수 있는 실마리다.
박 전 위원장이 최측근에게만 털어놓은,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다. 10·26 직후 박 전 위원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온몸에 갑자기 반점이 돋아났다. 의사들에게 보였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박 전 위원장을 오랫동안 보좌한 한 측근은 “육신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이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났던 것”이라며 “박근혜 전 위원장이 무슨 고생을 하고 살았느냐는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난다”고 했다.
박 전 위원장은 1981년 6월10일치 일기에서 “고통은 살아 있는 인간의 속성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반점은 사라졌지만 마음의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자매지간은 불화했고, 남동생은 한때 마약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자신의 전부였던 아버지의 존재가 부정당했다. 그는 “고통은 진리를 향해 들어가는 문”이라고 썼다.
1992년 5월21일치 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그런 생은 다시 살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은 태어났기 때문에, 사명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산 것이다. 태어나서 삶을 누린다는 것에 이런 즐거움도 있구나 하고 느낀 기억이 별로 없다. 내가 왜 태어났을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5·16이 먼저냐 공산당이 먼저 쳐들어오느냐는 시점에 다행히 5·16이 먼저 와서 파멸 직전의 국가가 구출됐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5·16 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1989년 5월19일 MBC 대담
■아! 아버지
자신의 ‘고통’은 박근혜 전 위원장을 밀어올리는 원동력이었지만, ‘박정희 시대’가 낳은 수많은 다른 고통에는 눈을 감았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본인의 삶을 통째로 부정하는 일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떠난 박 전 위원장이 정치에 입문한 1997년까지 18년 동안의 활동은 오롯이 아버지의 복권에 맞춰졌다. 그는 1988년 10월17일 일기에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은 국가를 자기와 동일시했으며 국가의 주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인인 것처럼”이라고 썼다.
“본의 아니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자 활동의 제약이 사라졌다. 여러 권의 책을 냈고 신문과 방송, 주간지와 여성지 등을 활발히 접촉했다. 1989년 5월19일 방송된 MBC (박경재의 시사토론)에서는 무려 2시간 동안 대담을 하며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물음은 집요했다.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기자 시절 질문지 작성에 참여했다.
대담에서 박 전 위원장은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며 “5·16이 먼저냐 공산당이 먼저 쳐들어오느냐는 시점에 다행히 5·16이 먼저 와서 파멸 직전의 국가가 구출됐다”고 했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5·16 혁명도 4·19의 뜻을 계승하고 있다고 봅니다. 5·16이 있었기 때문에 4·19 때 희생된 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4·19 이후 그 혼란의 와중에서 만약 우리나라가 공산당의 밥이 됐다면 그 희생이 무슨 가치가 있어요?”
박 전 위원장은 이에 앞선 1988년 (여성동아) 12월호 인터뷰에선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옥고를 치르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고생을 한 분들”을 언급했다. “한 야당 의원이 회식 자리에서 아버지를 심하게 욕한 사실이 알려져, 기관에 불려가 취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병 처리를 하기 위해 이 일을 아버지께 보고하자 ‘그 사람들 보통 욕하는 것이 직업인데 왜 문초까지 하느냐. 모두 풀어주라’고 지시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 예를 보더라도 아버지 본뜻에 반해서 일어난 일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이런 일들로 인해 고생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인터뷰를 위한 질문지를 만들었던 ‘기자 박영선’은 1994년과 2001년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로 박근혜 전 위원장과 다시 마주 앉는다. 1994년 인터뷰는 당시 일반에 공개되지 않던 비원에서 이뤄졌다. 박 전 위원장 쪽이 장소를 섭외했다. 창덕궁의 후원인 비원은 조선시대 왕족이 노닐던 곳이다. 2001년 5월 인터뷰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당시 박 전 위원장은 어머니인 육영수씨가 생전에 입던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양친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한 논리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2007년에도 박근혜 전 위원장은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다. “본의 아니게”로 시작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로 끝나는 원론적 언급도 20년 넘게 반복된다. 다소 격앙된 표현도 등장한다. “지도자를 국장으로 장사 지내고서 매도해온 10년의 세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화염병을 던지며 반항하고, 선배 알기를 개떡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온통 도덕·질서·가치관 등을 뒤죽박죽으로 뒤집어놓은 오늘의 이 현실은 그동안의 역사의 왜곡으로 인한 기성세대의 자업자득이었다.”(1990년 5월15일)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박 전 위원장의 대선 후보 경선캠프에 유신을 찬양해온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 건 우연이 아니다.
*참고 문헌: (박근혜 인터뷰집)(재단법인 육영재단·1990),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남송문화사·1993), (내 마음의 여정-박근혜 심경 고백 에세이)(한솔미디어·1995),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 삼아-박근혜 일기모음집)(부일·1998),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부일·1998), (나의 어머니 육영수)(사람과사람·2000),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위즈덤하우스·2007), (박영선의 인터뷰 사람 향기)(나무와숲·2002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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