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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박근혜의 '여성대통령', 페이스북 글로 휘청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1-27일자 기사 '박근혜의 '여성대통령', 페이스북 글로 휘청'을 퍼왔습니다.
육영재단 이사장 재임 당시, 재단 유치원 '결혼 후 퇴사' 각서 요구 의혹 불거져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공식 선거운동 첫 날인 27일 오후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구아리 상설시장 앞에서 유세를 마친 뒤 시장을 둘러보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핵심 슬로건 '준비된 여성대통령'이 한 여성의 페이스북 글로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측은 27일 1982년 대학 졸업 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유치원 교사로 일했다는 한 여성의 페이스북 글을 공개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재임 중이었다. 

문재인 캠프의 유정아 대변인에 따르면, 이 여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1982년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유치원 교사였다, 입사 서약서 중에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며 "당시 육영재단의 이사장 그녀 자신은 여성이면서도 임신·출산을 맞는 여성을 기능 면에서만 바라보고 비싼 노동자로 계산한 것 같다"고 밝혔다. 

박 후보가 대선슬로건으로 '여성대통령'을 강조했지만 사실 '일하는 여성'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뼈 아픈 지적이다. 

유 대변인은 "여성 고용주가 여성 고용자를 고용하면서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서약서를 받은 것이고 이 서약서로 입사했던 많은 여성교사들이 결혼과 함께 퇴사하거나 혹은 결혼을 했음에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유치원을 다녔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당 글이 새누리당의 여성대통령론이 제기됐을 당시 페이스북에 작성됐으며 캠프 측과 해당 여성이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같은 시기 문재인 후보는 당시 노동인권변호사로서 결혼 후 해직을 당한 여성들의 소송을 맡았다고도 강조했다. 유 대변인은 당시 관련 판결문을 공개하며 "문재인 변호사는 동시에 여성시민단체들과 함께 여성의 권리, 지위향상, 여성에 대한 사회인식을 바꿔나가고 성평등의 문제에 개입해서 불공평한 성차별을 직접 바꿔나가는 데 애쓴 분"이라고 강조했다. 

또 "(박 후보 측에서) 1980년대 상황이 지금과 조금 달리, 여성인권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고 '결혼하면 퇴사한다'고 하는 것이 사회통념이었다고 반박하는데 박 후보에게 직접 여쭤보고 싶다"며 "당시 사회통념상 (결혼 후 퇴사가) 아무리 허용된 사회라 할지라도 준비된 여성대통령으로서 준비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박선규 새누리당 대변인이 이날 오전 MBC라디오 에 출연, '결혼 후 퇴사 서약서' 논란에 대해 "아마도 그 시절에 대한민국 전체적인 사회가 그랬다, 이게 지금 몇 십년 전의 얘깁니까"라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땐 다 그랬다"던 새누리 말 바꾸기... "확인할 자료 없지만 박근혜 관계없어"

논란이 가열되자, 새누리당은 긴급 진화에 나섰다. 박선규 대변인은 이날 오후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어떤 경우건 '결혼하면 퇴사한다'는 각서를 받았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며 "당시 시대상이 지금과 달랐다는 핑계도 용납되지 않는 문제"라고 말을 바꿨다. 

또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육영재단에 문의해봤지만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앞으로도 사실관계를 더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 후보와는 관계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대변인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사장의 뜻과 관계없이 현장에서 당시의 관행에 따라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다"며 "예나 지금이나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박 후보의 생각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박 후보는 잘 아시는 대로 2004년 염창동 당사 시절 일하는 젊은 여성들을 위해 당사 안에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연 사람이다, 당시 정부의 어떤 기관에도 그런 보육시설이 없던 시절이었다"면서 "정당이 먼저 일하는 엄마를 배려함으로써 정부에서 보다 더 적극적으로 워킹맘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압박이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박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30년 전의 자료만 보지 말고 8년 전의 자료, 그리고 워킹맘들을 위해 제시한 최근의 자료와 정책들을 살펴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박 대변인은 "염창동 당사 당시 마련했던 당사 내 어린이집은 현재도 유지되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박 후보가 2004년 염창동 당사에 마련했던 '신나는 어린이집'은 지난 2008년 여의도 당사 이전과 함께 문을 닫았다. 당시 박 후보는 마지막 수료식에 참석, "인연이 허락하면 우리 선생님들하고 같이 일할 날이 또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경태(sneercool)

2012년 10월 20일 토요일

‘장물재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려면…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10-19일자 기사 '‘장물재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려면…'을 퍼왔습니다.
[기고] 정수장학회·한국문화재단·영남학원·육영재단 4대 장물 내려놓아야

아버지가 도적질한 장물을 팔아서 그 딸을 대통령 만들기 위한 선거공작 자금으로 쓰겠다고 한다. 어디 아프리카나 남미쯤의 저개발국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언필칭 G20 의장국을 지낸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결승의 날이 다가오는데 나도 한몫해야 될 것 아니오”라고 했다지? “정치적 임팩트가 굉장히 큰 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던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지는 못할지언정, 한 점 양심은 지니고 살아야하거늘! 원래 장물아비들은 컴컴한 골방을 좋아한다. 누가 엿들을 새라 조심조심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린다. 장물은 빼앗을 때나 처분할 때나 떳떳치 못하기 때문일 터. 박정희 대통령의 장물 중 하나인 정수장학회 지분을 처분하려는 과정 역시 이를 꼭 닮았다. 자신 소유도 아닌 물건을 주인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몰래 팔아버리려는 짓거리가 장물아비의 행태 그대로다.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을 불법으로 처분하려는 음모가 들통 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8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등 3인이 밀실에 모였다. 정수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는 MBC 지분(전체 주식의 30%) 및 부산일보사 주식(100%) 매각과 그 활용 방안을 논의 하는 자리였다. 제 분수도 모르는 이들이 위험한 도박판을 벌이려 했던 것이다.

경북 구미 ‘박정희 체육관’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정수대전’에서 테이프 컷팅을 하는 박근혜 후보와 정수문화예술원 신재학 이사장(가운데), 김관용 경북도지사(오른쪽) ⓒ최민희 의원실

공영방송인 MBC의 지분을 팔기 위해서는 국민들과 MBC 구성원들, 그리고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뜻을 물어야 한다. 부산일보사의 지분 정리 역시 부산일보 구성원들과 원 주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리감독기관인 서울시교육청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최필립이나 이진숙, 김재철 MBC 사장 등 아무런 권한도 없는 객들이 허무맹랑한 사기극을 벌이려 한 꼴이다. 하긴 장물아비들의 안중에는 법 따위야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죄의 근원은 불의한 장물들이다. 박정희는 18년 철권통치 기간 동안 정수장학회 뿐 아니라 한국문화재단과 영남학원, 육영재단 등 덩어리 큰 장물들을 챙겼다. 이들 4대 장물을 합치면 현재 공시가격 기준으로도 조 단위를 훌쩍 넘어선다고 한다. 지금 박정희 장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물론 박근혜다. 이를테면 박근혜는 계열사들을 여럿 거느린 ‘장물재벌 회장’인 셈이다. ‘장물재벌’ 박근혜가 거느린 계열사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알짜배기는 역시 정수장학회다.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 경향신문사 부지 2385㎡, 은행예금 200억여 원 등을 소유한 알토란같은 재단이다.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가 부산기업인 고 김지태로부터 강제로 빼앗은 장물이다. 김지태 유족들이 줄기차게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강탈한 재산임을 인정하면서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박근혜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11억3720만 원을 받았다. 상근도 하지 않으면서 많을 땐 2억 원 이상의 연봉을 챙겼다고 한다.
두 번째로 소개할 장물은 한국문화재단이다. 박근혜는 1980년 7월 이후 지금까지 32년 째 한국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 3월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에 의해 ‘명덕문화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됐지만, 이듬해인 1980년 7월 전중윤 회장을 포함한 삼양식품 관계자 전원이 물러나고 대신 박근혜 후보를 이사장에 앉혔다. 박근혜가 사실상 재단을 상납 받았다는 게 세간의 해석이다. 이사진들이 하나같이 박근혜의 측근들로 구성된 걸 보면 이를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 장물인 영남재단은 1967년 대구대와 청구대를 통합해 만들어졌다. 삼성의 소유였던 대구대는 사카린 밀수사건 무마용으로, 경주 최부자집 소유였던 청구대는 회계비리 및 본관신축공사 붕괴사고 무마용으로 박정희에게 헌납된다. 그 장물을 상속받은 박근혜는 지금도 영남재단의 이사진 7명 중 4명의 임명권을 행사하면서 실질적인 소유주 노릇을 하고 있다.
지저분한 장물을 처분하다보면 반드시 지저분한 싸움이 벌어지게 마련. 서울 한 복판인 광진구 능동에 대지 10만3267㎡(3만여 평), 연건평 1만7176㎡(5200여 평)를 차지하고 있는 육영재단은 ‘30년 장물전쟁’을 촉발시켰다. 그 경영권을 둘러싸고 박근혜와 동생인 박근령, 박지만 등 세 남매와 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 등이 뒤엉켜 법정 소송 등 추한 싸움판을 벌여온 것이다. 국민들의 세금과 성금으로 키운 육영재단을 놓고 왜 박정희의 자식들이 서로 아귀다툼을 벌이는 지….
박근혜가 챙긴 것이 어디 장물뿐인가. 박근혜는 1979년 10·26 직후 청와대 금고에서 나왔다는 현찰 6억 원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으로부터 받아 챙겼고, 1981년엔 신기수 당시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성북동 집을 공짜로 받았으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삼성동 집을 무슨 돈으로 샀는지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박근혜의 재산은 대부분 아버지의 장물과 그 부하들이 챙겨준 떳떳치 못한 재물들뿐이다.
‘장물재벌’ 박근혜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섰다. 새누리 정권 재창출에 혈안이 된 박근혜의 측근과 지지자들은 장물 중 일부를 팔아 선거운동용 공작정치를 벌이려는 정황까지 드러났다. 이런 사태의 전개만으로도 어이상실이거늘 박근혜의 반응은 더 가관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걸 가지고 야당이나 저나 법인에 이래라저래라 할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사회에서 알아서 결정할 일이지 제가 관여할 일도 간섭할 일도 아닙니다.”
그야말로 ‘유체이탈 화법’의 정수다. 이사장을 포함한 다섯 명 이사진 전원이 자신의 측근들로 채워져 있는 정수장학회가 어떻게 자신과 무관하달 수 있는가. 정수장학회 이사진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두터우면 자신이 직접 간여하지 않아도 이사회에서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고 했을까.
심지어 전과 14범도 대통령이 되는 나라다. ‘장물재벌’이라고 해서 대통령이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국민은 두 번 속지 않는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만큼은 유체이탈 화법과 거짓말, 꼼수, 말 바꾸기에 능한 인물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직하고, 진솔하고, 선한 인물이 다음 대통령으로 선출될 것이다.
길은 있다. 그 길을 택할 용기와 양심이 부족할 뿐이다. 정녕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국민들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아버지의 장물들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라. 마침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박근혜가 새로운 입장을 밝히기로 했단다. 또 다시 꼼수 혹은 임기응변식 처방, 정치공학적 접근 방식을 택한다면 아예 나서지 않는 편이 낫다. 정수장학회 뿐 아니라 한국문화재단과 영남학원, 육영재단 등 4대 장물들을 모두 내려놓아라. 정수장학회처럼 눈 가리고 아옹 하는 식이 아니라 명목과 실질 모두 내놓아야 한다.
마음도, 곳간도, 모두 비우고 국민들 앞에 서라. 그리고는 겸허히 그 심판을 기다리시라.

박상주·언론인| media@mediatoday.co.kr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


이글은 시사IN 2012-09-27일자 기사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박근혜·박근령·박지만 삼남매 간에 벌이는 송사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가족 간의 송사도 진행 중이다. 제부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09년 신씨는 익명으로 박 후보의 미니홈피에 “중국에서 신동욱을 납치해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육영재단을 강탈했다”와 같은 글을 계속해서 올려, 박근혜·박지만 남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되었다. 

신씨는 ‘처남인 박지만씨가 중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숙소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박지만씨는 맞고소를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신씨는 항소를 했지만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되었다(3년을 구형한 검찰 또한 항소를 했다). 신씨는 상고를 포기했지만, 검찰이 상고를 했다. 원심의 판단이 확정되면 신씨는 18대 대선 이후인 내년 2월에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뉴시스 육영수 여사 3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박근령·박지만(오른쪽부터) 남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판 와중에 신씨의 추가 기소도 있었다. 박씨 남매 명예훼손 관련 송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1월, 신씨가 ‘서○○씨 “육영재단 박근혜 측근 개입” 주장, 육영재단 접수는 박지만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한 언론사 기자에게 보낸 혐의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에 박지만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그 배후는 박근혜 측근이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설립자 유자녀가 폭력재단으로 만들어버렸다” 따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후보는 신씨와 이 글을 쓴 전직 육영재단 직원 서 아무개씨(61)를 고소했다. 이 건으로 추가 기소된 신씨는 지난 7월 명예훼손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유죄 판결을 추가했다. 

1990년 11월 (동아일보) 기사

서 아무개씨 또한 박 후보로부터 위증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서씨는 신동욱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육영재단 강탈 배후에 박근혜 후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가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위증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고,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기소를 했다.

서씨는 “박 후보 쪽이 내가 재판에서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위증이라고 했다. 재판조서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 그래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그쪽을 고소했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현재 박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삼남매 사이의 분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과거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11월23일 (동아일보)는 그해 8월 청와대에 날아든 탄원서를 소개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 중 근령·지만 씨의 이름으로 한 통의 탄원서가 날아들었다.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 있는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8일자 기사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를 퍼왔습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앞줄 왼쪽부터)과 남편 신동욱씨가 지난 2010년 11월 경북 영주시 화수사 추모관법당에서 열린 고 육영수 씨 ‘85주기 탄신제전’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령·신동욱 

근령씨 부부-지만씨, 육영재단 놓고 불화…청부살인 진위공방
‘자산 3조원’ 재단 이사장직 근혜→근령→지만 순으로
각종 소송·폭력사태 이어져

신동욱씨 “박지만, 날 죽이려 해” 현재 무고 혐의로 재판받는 중

3남매간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다. 처음엔 박근령-박지만이 합세해 박근혜와 갈등을 빚었고, 다시 박근령과 박지만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1990년 10월28일 ‘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라는 단체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최태민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표면화된 다툼 끝에 결국 다음달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8년 만인 2008년 육영재단은 온갖 소송과 폭력사태 끝에 다시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2001년 성동교육청은 감사를 벌인 뒤 운영상의 여러 비리를 이유로 박근령에 대한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다. 오랜 소송 끝에 이 결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과정을 거쳐 법원은 박근령과 재단 쪽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을 배제하고 박지만이 추천한 이사 후보 9명을 임시이사로 선임했다.■ 너무도 깊은 골 생긴 자매간 경기여고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박근령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이후 언니와 같이 생활하던 중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90년 귀국해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박지만 쪽과 다툼이 이어지던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근혜가 당시 공천 결과에 강하게 반발, 당의 지원 유세 요청을 거부한 채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물고 있던 상황에서였다.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생활비가 없어 은행 신용대출을 받아 생활했는데, 대출이자가 몇달씩 연체될 정도로 힘든 생활을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한국재난구호 총재와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지난 4·11 총선 때는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마해 다시 한번 언니를 곤혹스럽게 했다. 애초 자유선진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곧 사퇴했다. 그는 후보 등록 때 재산이 한푼도 없지만 5년 동안 소득세로 4079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 “청부 살인” 고소해 구속 
박근령은 2008년 10월 14살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언니와 동생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령과 신동욱 모두 재혼이다. 박근령은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신동욱은 부산 성도고와 부산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에는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했다가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발을 디딘다.신동욱은 2006년 육영재단 자문위원이 된 뒤 다음해 2월4일 단 둘이서 관악산에 올라 약혼식을 올렸으며, 곧바로 재단 감사실장이 됐다. 2008년 총선 때는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신동욱은 지난해 8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와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다. 2009년 5월 박근혜의 미니홈피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이 40여 차례 올라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가 신동욱인 것으로 드러났다.신동욱은 2007년 박근령 남매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자신에게 “박근혜 경선 캠프의 심부름을 간다”며 중국 칭다오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용철 및 박용철의 친구인 김아무개와 함께 2007년 7월1일 칭다오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48)가 박용철에게 자신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근령씨와의 결혼을 막으려던 지만씨가 있다는 것이다.(조선일보)가 보도한, 당시 주칭다오 한국영사관이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문서엔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신씨 일행은 1일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뒤 성매매 혐의로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김씨는 다음날 귀국했지만, 신씨는 공안 사무실로 연행돼 다음날 오후 5시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신씨는 이날 밤 호텔 속옷만 입은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허벅지 골정상을 입었고, 시내를 배회하다 택시기사 신고로 파출소로 인계됐다. 파출소는 시 공안국에 ‘신원불명 외국인 행려자’로 신고했고, 신씨는 외사과 경찰관에게 자신을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 약혼자”라고 말했다. 공안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김아무개 영사를 보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를 납치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사경찰관에 대해선 “김책이라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하는 등 “환각상태가 지속됐다”고 문서는 적었다.이에 대해 신동욱은 “당시 박용철 일행의 꾐에 빠져 술을 마시고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으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치고 박용철이 나를 놔둔채 귀국해버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한다. 신동욱은 귀국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용철이 스스로 “중국에서 신동욱과 함께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씨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그런데 신동욱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0년 7월 박용철은 갑자기 육영재단 여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철은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지만 7개월 만에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는 그 뒤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 회장 쪽이 나를 쫓아냈다”고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동욱은 박용철을 증인석에 세웠고, 그는 “정용희가 나에게 신동욱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정용희는 이것이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박용철은 “박지만이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며 “그런데도 신동욱 쪽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덧붙였다.신동욱은 박용철의 증언을 근거로 2010년 9월 박지만을 살인 교사 혐의로, 정용희와 박용철을 그 공범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3월 박지만 등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고, 박지만과 정용희가 다시 신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신씨가 구속된 것이다.한편 정용희는 박용철의 증언이 있기 전인 2010년 4월 증인신문에서 “2007년 7월1일~3일 중국 청도 2박3일 박용철 출장비로 2000만원을 통장으로 계좌이체했다”며 “회사명으로 입금한 것이 아니라 정용희 이름으로 입금했으며, 대표이사가 가수금을 꺼내서 그 돈을 보내준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박씨가 숨진 뒤인 다음해 11월 다시 증인으로 나와 이를 번복했다. “2007년 10월 박용철에게 1000만원을 송금한 것은 이지홈테크 영업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박용철의 영업지원비로 법인계좌에서 보냈고, 내 개인계좌에서 2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보낸 것은 당시 육영재단 사건과 관련해 보냈다”는 것이다.

■ “사촌간 살인사건도 수상” 지난해 9월6일 박용철(당시 49살)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안내센터 부근 노상 주차장에서 얼굴과 상체 등 모두 15곳을 흉기로 찔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곧바로 3㎞가량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박용수(당시 51살)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로, 사촌간이다.신동욱 쪽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달 26일로 예정됐던 재판에서 박용철이 자기 쪽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였는데, 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갑자기 살해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했던 박용수가 몇년 전부터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애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동생 박용철이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에 원한을 품고 ‘박용철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의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신동욱 변호인인 조성래 변호사는 “별다른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에는 의혹이 없을 수 없다”며 “최근 경찰 수사기록을 열람했는데, 경찰이 주변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는 등 수사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