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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박근령, 청와대 6억? “어디에 쓴지 모른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2-10일자 기사 '박근령, 청와대 6억? “어디에 쓴지 모른다”'를 퍼왔습니다.
[단독 인터뷰]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해서 받았다? “아버지 살아계셨다면 사회를 위해 사용했을 것”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 4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가 주최한 첫 TV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전두환 정권에게 받은 6억 원’에 대해 묻자 “당시 아버지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배려하는 차원에서 준다고 했을 때,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그것을 받았다”고 말했다. 6억 원은 청와대 비서실 금고에서 보관돼 있던 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아파트 30채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거액이었다.
박근혜 후보는 ‘어린 동생들’을 이유로 들었지만 동생 박근령씨(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이사장)의 증언은 박 후보의 말과 달랐다. 박근령씨는 언니 박근혜 후보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면서도 돈의 용처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근령씨는 이 돈을 만져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밤 서울시 가양동 모처에서 만난 근령씨는 “언니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박근령씨는 6억 원을 ‘통치자금’, ‘눈 없는 돈’, ‘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근령씨는 지난 68~69년께 패스만 미국 하원의원이 육영수 여사에게 25만 불을 줬지만 정수직업훈련원 건립에 사용했고, 박 전 대통령이 포항제철 건립 과정에서 받은 돈도 포항공대를 만드는데 사용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공(公)을 위해 사용하셨을 것인데 집행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6억 원의 사용 용처에 대해서도 박근령씨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근령씨는 돈의 사용처를 청와대에서 나올 때 ‘이사 비용’, 박정희 전 대통령 ‘유품 정리 비용’으로 추정했다. 그는 “우리가 (청와대에서) 이사 나가는데 돈이 들었지 않았겠느냐. (이사하는데) 도와주는 사람 있었나? 아버지 기념사업, 모든 유품을 정리해야 하고… 그게 모두 경비”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린이회관 시설 보수에 사용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근령씨는 “언니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라면서 “돈의 성격에 따라서 (아버지의 기준) 거기에 준하는 사용처에 쓸 분인데 어떻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나?)”라고 말했다. 그는 ‘6억 원’은 “국민의 세금이라든가 그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로서는 가족 걱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언니가 바보인가? 돈의 성격도 모르고 가족이 쓴다(는 것은) 용납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1차 토론 이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은 박근혜 후보에게 6억 원의 용처에 물으며 사회 환원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6억 원을 재산으로 신고한 적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박 후보가 10일 2차 토론에서 사용처를 밝히고 사회 환원을 약속할지 주목된다.

다음은 ‘6억 원’ 관련 인터뷰 전문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친동생 박근령씨는 지난 총선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후보였다. 근령씨가 출마한 지역은 충북 보은ㆍ옥천ㆍ영동이다. 특히 충북 옥천군은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다. ⓒ연합뉴스

-이정희 후보가 ‘청와대 6억 원’ 문제를 제기했다. 시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궁금해한다. 박 후보는 토론에서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해서’라고 얘기했다.
“대통령은 통치자금이 있다. 통치자금 없는 대통령이 어디 있나? 말해보라. 아버지 보고 훌륭하다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통치자금, 정치자금을 얼마나 자기 주머니로 넣지 않고 사회로 환원시키느냐, 사회를 위해 썼느냐, 거기서 아버지가 청렴하다고 듣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으면 그 6억을 사회를 위해 쓰실 것인데 그 돈을 다 집행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본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면 68년인가 69년도에 패스만 미국 하원의원이 한센인병 정착촌 찾고, 소록도도 가면서 좋은 일을 하는 영부인이 따로 쓸 수 있는 돈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어머니께 ‘이건 당신이 혼자 알아서 써라’라면서 줬다. ‘눈 없는 돈’이라고 하나? 단체나 국가를 끼고 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게 25만 불을 줬다. 거기서 1만 불도 안 남기고 그대로, 우리가 가난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대로 아버지와 의논하셔서 정수직업훈련원을 만들었다. 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기술을 축적해야 하는데 직업훈련원을 만들어 기술자를 양성하려 했다. 그때 ‘일인일기(一人一技)’라고 해서 아주 기술자 우대하던 시절이다. 어머니가 탈탈 털어서 그렇게 하셨다.

©연합뉴스

또 있다. 칼빈총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무기를 샀다. 무기회사에서 아버지에게 ‘고맙다’면서 ‘이건 공식적으로 나가는 커미션이니 유용하게 쓰라’면서 얼마를 줬다. 처음에 아버지께서 그걸 사양하셨다. 그랬더니 그 사람(군수업체)이 ‘너한테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다 똑같이 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이 돈을 내가 받을 테니 이만큼에 해당하는 무기로 바꿔 달라’고 했다. 그 사람이 아버지에게 감명을 받아 어딘가에 인터뷰를 했다. 그게 그대로 알려졌다.

그리고 포항공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포항제철 만드는 과정에서 아버지께서 외국에서 시설을 들여왔다. 박태준 회장님이 ‘이건 공식적인 커미션이니 나라 발전을 위해 쓰시라’고 했더니 아버지가 ‘이걸 이대로 쓸 것이 아니라 학교를 하나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포항공대가 만들어졌다.

그런 아버지고 그런 어머니신데 그걸 굳이 6억 원을 가지고… 내가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지금 20억은 사탕값이더라. 지금 모대통령 부인 수표가 600억 짜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 비판을 이정희씨가 한다면 천벌 받는다.”

-박근혜 후보 말대로 생활비로 사용했나.
“박 후보가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나는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런 돈은 아버지께서 유용하게 쓰려고 한 것이니까 언니가 잘못 알고 한 얘기라고 느껴지는데 그렇게 큰돈이라면 아버지라면 (사회를 위해) 그렇게 쓰셨을 것이다.”

-시민들은 그 6억 원을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썼는지를 궁금할 수 있다.
“언니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하는 사람이다. 그 돈의 성격에 따라서 (아버지의 기준) 거기에 준하는 사용처에 쓸 분이다. 어떻게 개인적으로 (쓸 수 있나?). 아버지는 어떤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보다는 공(公)을 위해 쓰셨을 것이다. 언니가 어떤 차원에서 얘기를 했는지 잘 모른다.”

-6억 원은 어떤 돈인가.
“공식적인 커미션인지 그것도 모른다. 언니는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가족 얘기를 했지, 그것이 공적 자금이라면 절대 그렇게 얘기 안 했을 것이다. 가족이 써도 상관없는 돈이라고 알았기 때문에 언니가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공적 자금이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언니는 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막막하니까 ‘이건 아버지가 받으신 당당한 커미션이라면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 계신데 먹고 살아야지, 동생들 부양도 해야 하고…’ 그런 각도에서 말을 한 것이다. 그건 공적 자금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니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 그냥 써도 상관없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부인이 일일이 사람들을 만날 때 쓰는 돈을 한 부처에서 받아서 쓸 수는 없지 않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통치자금이라는 것인가.
“그렇다. 그리고 국민의 세금이라든가 그런 돈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로서는 아버지, 어머니도 없는 상황에서 가족 걱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니가 바보인가? 돈의 성격도 모르고 가족이 쓴다? 그건 용납도 안 되는 일이다.”

-박근혜 후보가 동생 지만씨와 박 이사장을 위해 사용했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 내가 알기로는 사적인 부분이고, ‘언니, 어디에 썼어?’라고 물어볼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청와대에서) 이사 나가는데 돈이 안 들었지 않겠느냐. (이사하는데) 도와주는 사람 있었나? 아버지 기념사업, 모든 유품을 정리해야 하고… 그게 모두 경비다. 기념관은 금세 생기지는 않았어도 유품 정리해야 하고, 서류도 정리해야 하고, 미국 같은 데서는 도서관 형식으로 만든다. 대통령으로 있을 적에 알아서 사저도 준비해놓고….

나는 아버지 경호실에 계셨던 분들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정말로 거리에 돌아다니면서 병품을 팔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었다. 보통 도로공사 같은 국영기업체에도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하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셔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살아가는 생존권이 필요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아버지 유품 때문에…. 어린이 회관도 큰 영애가 계실 적에 시설도 보수하고, 그때 회관이 가난하다 보니까 대통령이 살아있으면 기금도 들어오고 하는데 이사장이 직접 내기도 해야 하고, 그러니까 육영재단이 유지된 것 아니겠느냐.”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특집| 박근혜 바로보기]대권 최대 아킬레스건은 친인척 문제?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01일자 기사 '[특집| 박근혜 바로보기]대권 최대 아킬레스건은 친인척 문제?'를 퍼왔습니다.

ㆍ두 동생 근령·지만, 올케 서향희 변호사 지난 행적들 정치적 부담

9월 10일 민주통합당 장병완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의 조카 가족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40여억원의 부당이익을 얻고, 이를 감추기 위해 허위공시를 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의 조카사위인 박영우씨는 대유신소재 회장이다. 대유신소재는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된다. 장병완 의원은 박영우 회장과 조카 한유진씨, 그들의 자녀 2명이 “주가조작과 허위공시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한유진씨의 어머니인 박재옥씨는 박근혜 후보와 어머니가 다른 자매지간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35년 김호남씨와 결혼하고 1950년에 이혼한 후 같은 해 육영수 여사와 재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과 김호남씨 사이의 딸이 박재옥씨다. 박영우 회장은 박근혜 후보의 고액후원자 중 한 사람이다. 민주당에서는 10월에 열리는 국정감사에서 박영우 회장의 증인채택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사올통’ 눈총 받는 서 변호사

박근혜 후보의 친인척이 구설수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을 친인척 문제로 본다. 특히 가장 가까운 혈육인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와 박지만 EG그룹 회장, 올케 서향희 변호사 등은 정치적 부담이다. 지난 7월 24일 열린 새누리당 경선 후보 TV토론회에서 화제가 된 말은 ‘만사올통’이었다. 당시 김문수 후보는 박 전 위원장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 문제를 언급했다. 김 지사는 박 후보에게 “혹시 ‘만사올통’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느냐. (이명박 정부에서) 만사가 형(兄)통하다가 이제는 올케에게 다 통한다는 뜻”이라며 “36세의 젊은 변호사가 26명을 거느리는 대규모 로펌 대표이며, 비리로 영업정지된 삼화저축은행 법률고문이었다가 대선을 앞두고 갑자기 홍콩으로 출국했다”고 말했다.

8월 15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동생 지만씨가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 박민규기자

서 변호사는 2009년부터 3년간 삼화저축은행 고문변호사를 지내 부실저축은행 로비와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서 변호사는 젊은 나이에도 다양한 직책을 맡아온 것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그가 박 후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활용해 법률자문 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2004년 박지만씨와 결혼한 서 변호사는 결혼 이후 직함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2006년 신우 사외이사, 2007년 씨엔에이치 감사 및 인선이엔티 고문, 2009년 법무법인 주원 공동대표, 삼화저축은행 고문 등을 지냈다.

EG그룹 회장인 박지만씨도 부실저축은행 로비에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박지만 회장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친구관계로 신삼길 회장이 체포되기 직전 함께 식사했다는 점이 알려져 구설에 올랐다. 대위 출신인 박지만씨는 1986년 제대 이후 마약 투약 혐의로 수 차례 입건되기도 했다. 마약사건이 불거지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였던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박지만씨의 후견인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회장은 1989년 박지만씨에게 삼화전자와 포항제철이 각각 50%씩 투자한 삼양산업(EG그룹 전신) 부사장직을 맡겼다. 이듬해 박지만씨는 삼양산업 대표에 오르고 유상증자에 참여해 1대 주주가 된다. 이 과정에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지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만 회장은 이후에도 마약 복용이 적발돼 몇 차례 구속기소됐지만 EG그룹은 계속 성장해 지난해에는 재벌닷컴이 발표한 400대 그룹에 들기도 했다. 회장의 잇따른 마약 복용 적발로 정상적인 회사 경영이 어려웠음에도 EG그룹이 고속성장한 배경에 특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방계혈족까지 잇달아 구설수 올라

박근혜 후보 동생인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 | 강윤중 기자

여동생 박근령씨도 박근혜 후보에게는 부담이다. 박 후보와 박근령씨는 오랜 기간 구원이 쌓여 서로 등을 돌린 상태다. 둘은 1990년 육영재단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당시 박근령씨를 지지하는 ‘숭모회’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 후보 퇴진운동을 벌였고, 결국 박근혜 후보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지난해에는 박근령씨의 남편인 신동욱 교수가 박지만씨를 여러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 일로 신 교수는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고 있다.

직계 형제 외에도 방계 혈족까지 연이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5남 2녀 중 막내이고 육영수 여사는 1남 3녀 중 셋째라 4촌 이내 친인척만 50여명에 가깝다. 2010년 6·2 지방선거 때는 박 후보의 사촌인 박준홍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친박연합’을 만든 뒤 3500만원을 받고 시의원 공천을 준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박 후보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또다른 5촌인 박용철씨를 채무 등의 이유로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친인척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박근혜 후보는 8월 20일 후보 수락연설문에서 “친인척과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해 사전에 강력하게 예방하고, 문제가 생기면 상설특검을 통해 즉각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9월 12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서 대통령 친인척과 권력실세 비리를 차단하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쇄신하기 위한 ‘특별감찰관제’를 입법화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부실저축은행 로비와 관련한 박지만씨 의혹이 불거지자 박 후보는 “(지만씨) 본인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했으니 그걸로 끝난 것”이라고 일축한 바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


이글은 시사IN 2012-09-27일자 기사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박근혜·박근령·박지만 삼남매 간에 벌이는 송사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가족 간의 송사도 진행 중이다. 제부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09년 신씨는 익명으로 박 후보의 미니홈피에 “중국에서 신동욱을 납치해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육영재단을 강탈했다”와 같은 글을 계속해서 올려, 박근혜·박지만 남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되었다. 

신씨는 ‘처남인 박지만씨가 중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숙소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박지만씨는 맞고소를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신씨는 항소를 했지만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되었다(3년을 구형한 검찰 또한 항소를 했다). 신씨는 상고를 포기했지만, 검찰이 상고를 했다. 원심의 판단이 확정되면 신씨는 18대 대선 이후인 내년 2월에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뉴시스 육영수 여사 3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박근령·박지만(오른쪽부터) 남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판 와중에 신씨의 추가 기소도 있었다. 박씨 남매 명예훼손 관련 송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1월, 신씨가 ‘서○○씨 “육영재단 박근혜 측근 개입” 주장, 육영재단 접수는 박지만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한 언론사 기자에게 보낸 혐의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에 박지만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그 배후는 박근혜 측근이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설립자 유자녀가 폭력재단으로 만들어버렸다” 따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후보는 신씨와 이 글을 쓴 전직 육영재단 직원 서 아무개씨(61)를 고소했다. 이 건으로 추가 기소된 신씨는 지난 7월 명예훼손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유죄 판결을 추가했다. 

1990년 11월 (동아일보) 기사

서 아무개씨 또한 박 후보로부터 위증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서씨는 신동욱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육영재단 강탈 배후에 박근혜 후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가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위증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고,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기소를 했다.

서씨는 “박 후보 쪽이 내가 재판에서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위증이라고 했다. 재판조서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 그래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그쪽을 고소했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현재 박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삼남매 사이의 분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과거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11월23일 (동아일보)는 그해 8월 청와대에 날아든 탄원서를 소개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 중 근령·지만 씨의 이름으로 한 통의 탄원서가 날아들었다.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 있는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8일자 기사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를 퍼왔습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앞줄 왼쪽부터)과 남편 신동욱씨가 지난 2010년 11월 경북 영주시 화수사 추모관법당에서 열린 고 육영수 씨 ‘85주기 탄신제전’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령·신동욱 

근령씨 부부-지만씨, 육영재단 놓고 불화…청부살인 진위공방
‘자산 3조원’ 재단 이사장직 근혜→근령→지만 순으로
각종 소송·폭력사태 이어져

신동욱씨 “박지만, 날 죽이려 해” 현재 무고 혐의로 재판받는 중

3남매간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다. 처음엔 박근령-박지만이 합세해 박근혜와 갈등을 빚었고, 다시 박근령과 박지만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1990년 10월28일 ‘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라는 단체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최태민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표면화된 다툼 끝에 결국 다음달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8년 만인 2008년 육영재단은 온갖 소송과 폭력사태 끝에 다시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2001년 성동교육청은 감사를 벌인 뒤 운영상의 여러 비리를 이유로 박근령에 대한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다. 오랜 소송 끝에 이 결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과정을 거쳐 법원은 박근령과 재단 쪽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을 배제하고 박지만이 추천한 이사 후보 9명을 임시이사로 선임했다.■ 너무도 깊은 골 생긴 자매간 경기여고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박근령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이후 언니와 같이 생활하던 중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90년 귀국해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박지만 쪽과 다툼이 이어지던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근혜가 당시 공천 결과에 강하게 반발, 당의 지원 유세 요청을 거부한 채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물고 있던 상황에서였다.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생활비가 없어 은행 신용대출을 받아 생활했는데, 대출이자가 몇달씩 연체될 정도로 힘든 생활을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한국재난구호 총재와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지난 4·11 총선 때는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마해 다시 한번 언니를 곤혹스럽게 했다. 애초 자유선진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곧 사퇴했다. 그는 후보 등록 때 재산이 한푼도 없지만 5년 동안 소득세로 4079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 “청부 살인” 고소해 구속 
박근령은 2008년 10월 14살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언니와 동생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령과 신동욱 모두 재혼이다. 박근령은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신동욱은 부산 성도고와 부산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에는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했다가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발을 디딘다.신동욱은 2006년 육영재단 자문위원이 된 뒤 다음해 2월4일 단 둘이서 관악산에 올라 약혼식을 올렸으며, 곧바로 재단 감사실장이 됐다. 2008년 총선 때는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신동욱은 지난해 8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와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다. 2009년 5월 박근혜의 미니홈피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이 40여 차례 올라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가 신동욱인 것으로 드러났다.신동욱은 2007년 박근령 남매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자신에게 “박근혜 경선 캠프의 심부름을 간다”며 중국 칭다오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용철 및 박용철의 친구인 김아무개와 함께 2007년 7월1일 칭다오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48)가 박용철에게 자신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근령씨와의 결혼을 막으려던 지만씨가 있다는 것이다.(조선일보)가 보도한, 당시 주칭다오 한국영사관이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문서엔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신씨 일행은 1일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뒤 성매매 혐의로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김씨는 다음날 귀국했지만, 신씨는 공안 사무실로 연행돼 다음날 오후 5시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신씨는 이날 밤 호텔 속옷만 입은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허벅지 골정상을 입었고, 시내를 배회하다 택시기사 신고로 파출소로 인계됐다. 파출소는 시 공안국에 ‘신원불명 외국인 행려자’로 신고했고, 신씨는 외사과 경찰관에게 자신을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 약혼자”라고 말했다. 공안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김아무개 영사를 보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를 납치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사경찰관에 대해선 “김책이라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하는 등 “환각상태가 지속됐다”고 문서는 적었다.이에 대해 신동욱은 “당시 박용철 일행의 꾐에 빠져 술을 마시고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으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치고 박용철이 나를 놔둔채 귀국해버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한다. 신동욱은 귀국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용철이 스스로 “중국에서 신동욱과 함께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씨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그런데 신동욱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0년 7월 박용철은 갑자기 육영재단 여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철은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지만 7개월 만에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는 그 뒤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 회장 쪽이 나를 쫓아냈다”고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동욱은 박용철을 증인석에 세웠고, 그는 “정용희가 나에게 신동욱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정용희는 이것이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박용철은 “박지만이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며 “그런데도 신동욱 쪽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덧붙였다.신동욱은 박용철의 증언을 근거로 2010년 9월 박지만을 살인 교사 혐의로, 정용희와 박용철을 그 공범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3월 박지만 등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고, 박지만과 정용희가 다시 신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신씨가 구속된 것이다.한편 정용희는 박용철의 증언이 있기 전인 2010년 4월 증인신문에서 “2007년 7월1일~3일 중국 청도 2박3일 박용철 출장비로 2000만원을 통장으로 계좌이체했다”며 “회사명으로 입금한 것이 아니라 정용희 이름으로 입금했으며, 대표이사가 가수금을 꺼내서 그 돈을 보내준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박씨가 숨진 뒤인 다음해 11월 다시 증인으로 나와 이를 번복했다. “2007년 10월 박용철에게 1000만원을 송금한 것은 이지홈테크 영업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박용철의 영업지원비로 법인계좌에서 보냈고, 내 개인계좌에서 2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보낸 것은 당시 육영재단 사건과 관련해 보냈다”는 것이다.

■ “사촌간 살인사건도 수상” 지난해 9월6일 박용철(당시 49살)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안내센터 부근 노상 주차장에서 얼굴과 상체 등 모두 15곳을 흉기로 찔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곧바로 3㎞가량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박용수(당시 51살)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로, 사촌간이다.신동욱 쪽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달 26일로 예정됐던 재판에서 박용철이 자기 쪽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였는데, 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갑자기 살해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했던 박용수가 몇년 전부터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애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동생 박용철이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에 원한을 품고 ‘박용철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의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신동욱 변호인인 조성래 변호사는 “별다른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에는 의혹이 없을 수 없다”며 “최근 경찰 수사기록을 열람했는데, 경찰이 주변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는 등 수사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