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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7일 목요일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


이글은 시사IN 2012-09-27일자 기사 '박근혜 삼남매, 오래된 이야기'를 퍼왔습니다.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박근혜·박근령·박지만 삼남매 간에 벌이는 송사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후보는 가족 간의 송사도 진행 중이다. 제부인 신동욱씨를 고소한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2009년 신씨는 익명으로 박 후보의 미니홈피에 “중국에서 신동욱을 납치해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육영재단을 강탈했다”와 같은 글을 계속해서 올려, 박근혜·박지만 남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되었다. 

신씨는 ‘처남인 박지만씨가 중국에서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박씨를 살인교사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숙소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박지만씨는 맞고소를 했다.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은 신씨는 항소를 했지만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되었다(3년을 구형한 검찰 또한 항소를 했다). 신씨는 상고를 포기했지만, 검찰이 상고를 했다. 원심의 판단이 확정되면 신씨는 18대 대선 이후인 내년 2월에 감옥에서 풀려나게 된다. 

ⓒ뉴시스 육영수 여사 34주기 추도식에서 박근혜·박근령·박지만(오른쪽부터) 남매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판 와중에 신씨의 추가 기소도 있었다. 박씨 남매 명예훼손 관련 송사가 진행되던 지난해 1월, 신씨가 ‘서○○씨 “육영재단 박근혜 측근 개입” 주장, 육영재단 접수는 박지만이 아니라 박근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한 언론사 기자에게 보낸 혐의다. “육영재단 강탈사건에 박지만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그 배후는 박근혜 측근이다.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을 다른 사람도 아닌 설립자 유자녀가 폭력재단으로 만들어버렸다” 따위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박 후보는 신씨와 이 글을 쓴 전직 육영재단 직원 서 아무개씨(61)를 고소했다. 이 건으로 추가 기소된 신씨는 지난 7월 명예훼손 혐의(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유죄 판결을 추가했다. 

1990년 11월 (동아일보) 기사

서 아무개씨 또한 박 후보로부터 위증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서씨는 신동욱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육영재단 강탈 배후에 박근혜 후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가 고소를 당했다. 검찰은 위증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했고,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기소를 했다.

서씨는 “박 후보 쪽이 내가 재판에서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위증이라고 했다. 재판조서에도 그런 내용이 없다. 그래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그쪽을 고소했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현재 박 후보에 대한 명예훼손 1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삼남매 사이의 분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과거 기사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11월23일 (동아일보)는 그해 8월 청와대에 날아든 탄원서를 소개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의 유자녀 중 근령·지만 씨의 이름으로 한 통의 탄원서가 날아들었다. ‘사기꾼 최태민을 엄벌해 최씨에게 포위당해 있는 언니 박근혜를 전직 국가원수 유족의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7-18일자 기사 '재산다툼·폭력·법정소송…박근혜 삼남매 잔혹사'를 퍼왔습니다.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앞줄 왼쪽부터)과 남편 신동욱씨가 지난 2010년 11월 경북 영주시 화수사 추모관법당에서 열린 고 육영수 씨 ‘85주기 탄신제전’에 참석해 합장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령·신동욱 

근령씨 부부-지만씨, 육영재단 놓고 불화…청부살인 진위공방
‘자산 3조원’ 재단 이사장직 근혜→근령→지만 순으로
각종 소송·폭력사태 이어져

신동욱씨 “박지만, 날 죽이려 해” 현재 무고 혐의로 재판받는 중

3남매간 불화의 시작은 육영재단이었다. 처음엔 박근령-박지만이 합세해 박근혜와 갈등을 빚었고, 다시 박근령과 박지만 쪽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1990년 10월28일 ‘고 박정희 대통령·육영수 여사 숭모회’라는 단체가 어린이회관 앞에서 최태민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표면화된 다툼 끝에 결국 다음달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기고 칩거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18년 만인 2008년 육영재단은 온갖 소송과 폭력사태 끝에 다시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2001년 성동교육청은 감사를 벌인 뒤 운영상의 여러 비리를 이유로 박근령에 대한 이사장 승인을 취소했다. 오랜 소송 끝에 이 결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과정을 거쳐 법원은 박근령과 재단 쪽이 추천한 이사 후보들을 배제하고 박지만이 추천한 이사 후보 9명을 임시이사로 선임했다.■ 너무도 깊은 골 생긴 자매간 경기여고와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박근령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던 언니의 개인비서를 자청해 활동하다 10·26을 맞았다. 이후 언니와 같이 생활하던 중 1986년 4월 미국으로 건너갔고, 1990년 귀국해 언니로부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겨받았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박지만 쪽과 다툼이 이어지던 2008년 총선 때는 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박근혜가 당시 공천 결과에 강하게 반발, 당의 지원 유세 요청을 거부한 채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물고 있던 상황에서였다.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생활비가 없어 은행 신용대출을 받아 생활했는데, 대출이자가 몇달씩 연체될 정도로 힘든 생활을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한국재난구호 총재와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 세계바둑표준화협회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지난 4·11 총선 때는 충북 보은·옥천·영동에 출마해 다시 한번 언니를 곤혹스럽게 했다. 애초 자유선진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하지만 곧 사퇴했다. 그는 후보 등록 때 재산이 한푼도 없지만 5년 동안 소득세로 4079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 “청부 살인” 고소해 구속 
박근령은 2008년 10월 14살 연하인 신동욱 백석문화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식에 언니와 동생은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령과 신동욱 모두 재혼이다. 박근령은 1982년 풍산그룹 창업자의 아들과 결혼했다 6개월 만에 이혼한 바 있다.신동욱은 부산 성도고와 부산 경상전문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했다. 영화 수입 일을 하다 호서대 벤처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2005년 말에는 한나라당 디지털정당 위원장에 응모했다가 한나라당 전국위원이 돼 정계에 발을 디딘다.신동욱은 2006년 육영재단 자문위원이 된 뒤 다음해 2월4일 단 둘이서 관악산에 올라 약혼식을 올렸으며, 곧바로 재단 감사실장이 됐다. 2008년 총선 때는 서울 중랑을에 공천을 신청했다 떨어지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신동욱은 지난해 8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1년6월 판결을 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박근혜와 박지만에 대한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다. 2009년 5월 박근혜의 미니홈피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이 40여 차례 올라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가 신동욱인 것으로 드러났다.신동욱은 2007년 박근령 남매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자신에게 “박근혜 경선 캠프의 심부름을 간다”며 중국 칭다오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용철 및 박용철의 친구인 김아무개와 함께 2007년 7월1일 칭다오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48)가 박용철에게 자신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근령씨와의 결혼을 막으려던 지만씨가 있다는 것이다.(조선일보)가 보도한, 당시 주칭다오 한국영사관이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문서엔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신씨 일행은 1일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뒤 성매매 혐의로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김씨는 다음날 귀국했지만, 신씨는 공안 사무실로 연행돼 다음날 오후 5시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신씨는 이날 밤 호텔 속옷만 입은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허벅지 골정상을 입었고, 시내를 배회하다 택시기사 신고로 파출소로 인계됐다. 파출소는 시 공안국에 ‘신원불명 외국인 행려자’로 신고했고, 신씨는 외사과 경찰관에게 자신을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 약혼자”라고 말했다. 공안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김아무개 영사를 보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를 납치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사경찰관에 대해선 “김책이라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하는 등 “환각상태가 지속됐다”고 문서는 적었다.이에 대해 신동욱은 “당시 박용철 일행의 꾐에 빠져 술을 마시고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으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치고 박용철이 나를 놔둔채 귀국해버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한다. 신동욱은 귀국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용철이 스스로 “중국에서 신동욱과 함께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씨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그런데 신동욱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던 2010년 7월 박용철은 갑자기 육영재단 여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철은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지만 7개월 만에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는 그 뒤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 회장 쪽이 나를 쫓아냈다”고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동욱은 박용철을 증인석에 세웠고, 그는 “정용희가 나에게 신동욱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정용희는 이것이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박용철은 “박지만이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며 “그런데도 신동욱 쪽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덧붙였다.신동욱은 박용철의 증언을 근거로 2010년 9월 박지만을 살인 교사 혐의로, 정용희와 박용철을 그 공범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해 3월 박지만 등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됐고, 박지만과 정용희가 다시 신씨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신씨가 구속된 것이다.한편 정용희는 박용철의 증언이 있기 전인 2010년 4월 증인신문에서 “2007년 7월1일~3일 중국 청도 2박3일 박용철 출장비로 2000만원을 통장으로 계좌이체했다”며 “회사명으로 입금한 것이 아니라 정용희 이름으로 입금했으며, 대표이사가 가수금을 꺼내서 그 돈을 보내준 것”이라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박씨가 숨진 뒤인 다음해 11월 다시 증인으로 나와 이를 번복했다. “2007년 10월 박용철에게 1000만원을 송금한 것은 이지홈테크 영업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박용철의 영업지원비로 법인계좌에서 보냈고, 내 개인계좌에서 2차례에 걸쳐 1000만원을 보낸 것은 당시 육영재단 사건과 관련해 보냈다”는 것이다.

■ “사촌간 살인사건도 수상” 지난해 9월6일 박용철(당시 49살)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안내센터 부근 노상 주차장에서 얼굴과 상체 등 모두 15곳을 흉기로 찔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곧바로 3㎞가량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박용수(당시 51살)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로, 사촌간이다.신동욱 쪽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달 26일로 예정됐던 재판에서 박용철이 자기 쪽 증인으로 채택된 상태였는데, 혐의를 벗겨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갑자기 살해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했던 박용수가 몇년 전부터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애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동생 박용철이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에 원한을 품고 ‘박용철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의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신동욱 변호인인 조성래 변호사는 “별다른 증거는 없지만, 이 사건에는 의혹이 없을 수 없다”며 “최근 경찰 수사기록을 열람했는데, 경찰이 주변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는 등 수사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