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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목소리만 크더니…구멍 뚫린 '대북 정보력'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12일자 기사 '목소리만 크더니…구멍 뚫린 '대북 정보력''을 퍼왔습니다.
[대선읽기](37)북한 로켓 이슈와 대선의 상관 관계

12일 아침자 (조선일보) 1면 톱 기사는 "北, 123단 로켓 모두 분리해 수리"였다. 부제는 "北 발표보다 문제 심각한 듯", "'연내 발사 불가능' 관측도" 였다. 그러나 신문이 배달된 후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여의도에서는 이런 농담이 돌았다.

"어르신들, 아침에 (조선일보) 신문 펼치면서 '로켓 발사' 소식을 TV 속보로 들었을 때 '멘붕'을 경험했을 것 같다"

북한은 '성공'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외 전문가들 역시 대체로 성공적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최소한 발사체가 북한이 예고한 지점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들이다.

▲ 보수 단체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프레시안(최형락)

새누리당 정부의 무능 적나라한 상황 속 유권자들 판단은?

당장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로켓 발사를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나. 정부는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로켓 발사장 상황을 자세히 중계해 왔다. 전날에 이어 12일 새벽까지도 "정부 소식통"들은 "북한이 로켓을 분리해서 수리 중에 있다"고 언론을 통해 '중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기만 전술'에 놀아난 셈이라는 정부 일각의 반응은 오히려 '무능'하다는 고백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력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이 "(로켓 발사) 임박 부분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한 것처럼 우리 군과 정보 기관이 이번 로켓 발사를 예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부는 '언론 탓'을 하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 긴급 회의에 출석해 (조선일보) 등의 보도와 관련해 "오보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정부에서 발사할 것을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은 채 "우리는 미사일 발사 실체에 주목하고 있었다"며 "우리가 미리 미리 대비해서 바로 발사 시간에 포착을 할 수 있었다"고만 말했다. 심지어 이 대통령은 어제 오후에 발사체가 장착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까지 말했다. 정부에 따르면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 말대로 "민망한 집단 오보 사태"가 난 것이다. 주요 일간지 및 주요 방송, 통신사 까지 수십개 매체가 모두 '오보'를 내버린 것으로 설명하며 국방부는 오히려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다만 북한 규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입장, 논평을 발표했다. 박근혜 캠프 중앙선대위 정옥임 대변인은 정부에 "6자회담국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특히 유엔과 협력해서 한반도, 동북아 안보, 그리고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는 주문만 했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이 국회 국방위에서 "정부의 정보력 부재가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정부를 질타했지만 공식적으로 이를 문제삼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대북 정보력 부재 이슈가 부각될수록 새누리당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언론 탓'을 하고 있는 정부를 마냥 옹호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정권의 정보력 부재가 도마에 오른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에도 정부는 이틀 뒤에 TV를 보고 알았다.

아직 진위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지만, 민주당 측에서 국정원 대선 개입설을 제기한 가운데, 이번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주목된다. 민주당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정원이 "국내 정치에만 개입하고 대북 정보 수집 활동은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로켓 발사 자체는 변수 안 될 듯…'안보 무능' 영향은 있을까?"

정치권이 주목하는 부분은 '이명박 정부 안보 무능론'이나 '여성 대통령 안보 불안론', 혹은 '보수발(發) 북풍 가능성' 등이다. 그러나 수 차례에 걸쳐 예고됐던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 이슈는 대선 판에서 주요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박근혜 캠프 한 관계자는 "로켓 발사 이슈는 청와대 욕 먹고 지나갈 수 있는 이슈다. 야권에 호재가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간 야권은 대여 공세에 무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 이슈가 나왔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론에 대한 자격 시비가 불거질 수 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북한 로켓 발사' 리스크는 현재 지지도에 반영이 돼 있다는 말이다. 로켓 발사가 기정 사실로 보도됐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신중한 모습이다. 문재인 캠프 관계자는 "천안함 사태 직후 지방선거가 있었지만 많은 예상을 뒤엎고 새누리당의 '북풍' 여론몰이가 먹히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로켓 발사가 야당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표피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는 큰 영향을 미치기 힘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안보 보수'를 비롯한 보수층 결집은 거의 끝난 상황이다. 더 결집할 여지가 없다. 반면 정부의 안보 무능을 실감한 층들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로켓 변수'가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기란 어려운 상황이지만 야당에 다소 유리한 상황"이라고 평했다.

이 소장은 "이번 로켓 발사를 국내 정치용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국민들에게 보이게 되면 여든 야든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다만 보수 언론을 구독하는 새누리당 지지층들은 혼란에 빠져들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박근혜 지지층은 '콘크리트' 지지층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찍는다"며 "이번 대선은 별 다른 대결이 아니다. '인물' 대결이고 '개인기' 대결"이라고도 귀띔했다.


 /박세열 기자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반란 주역에게 사열을 허락하는 나라에서


이글은프레시안 2012-06-13일자 기사 '반란 주역에게 사열을 허락하는 나라에서'를 퍼왔습니다.
[최강욱의 '시야비야']아름다운 조직을 만들기 위해

'피터의 원리(The Peter Principle)'라는게 있다. 무능력이 개인보다는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는 이론으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와 작가인 레이몬드 헐(Ramond Hull)이 1969년 공저한 책을 통해 주장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고위직 인사들의 무능력, 무책임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불편을 겪으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무능력은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능한 사람들이 계속 승진하고 성공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능과 유능은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로렌스 피터와 레이몬드 헐은 우리 사회의 무능이 개인보다는 연공서열만을 앞세우는 폐쇄적 위계조직의 메커니즘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가면 결국 다 터진다조직생활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지 모르나, 정말 본받고 싶은 제대로 된 윗사람을 모시는 행운을 만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진정 능력있고 바른 사람들이 조직에서 도태되거나 조직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조직의 상층부에서 늘 고민하고 노력하는 이들에겐 송구한 일일지 모르나,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조직생활이 어떤 이가 가진 고유의 장점을 개발하여 증진시키기 보다는 '조직의 이익'이나 '조직의 입장'을 내세워 인권과 상식을 억압하고, 개성과 인격을 말살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언제 한 번이라도 내부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나 조직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들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승진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권력자의 충견들이 그를 대신한 감옥살이를 하고 나서 진실로 반성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미담을 들어 본 적은 있는가?

다시 이론으로 돌아가 보자. 이들이 제시한 위 원리의 핵심은 "조직체에서 모든 종업원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위계를 가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은 승진을 통해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위 직책을 맡게 된다.그리고 승진한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다시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할 기회를 얻는다. 따라서 조직을 구성하는 모든 개인들은 자신의 무능력이 드러나는 단계까지 승진하게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직위는 그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무능한' 구성원들에 의해 채워지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 직위에서 거둔 업무 성과(job performance)에 대한 보상으로 승진을 시켜 주는 관행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데 승진된 자리에서 요구되는 역량은 현 직위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그 성질이 다르기에 무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계속 부여되지만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자신의 직책을 다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런 현상은 조직의 폐쇄성과 연공서열의 타성이 강할수록 뚜렷이 나타난다고 피터는 말한다. 이런 타성이 방치될 경우 무능한 사람들이 주로 윗자리를 채우며, 결국 조직 전체가 무능해지는 결과를 빚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보다 감투가 더 커지면 마침내 자신과 조직이 동시에 희생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주위의 기대와 자신의 책임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역량에 비해 주어진 과제가 너무 벅차지만 이미 시간은 늦었다. 결국 책임을 전가하고 거짓말로 상황을 호도하는 가운데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모든 걸 다 아는 것처럼 뻥뻥 큰소리치다가 정작 결과가 엉뚱하게 나오자 이리저리 둘러대는 지식인이나 권력자들도 그런 전형적 사례다.

하지만 편법과 미봉책으로 막고, 거짓으로 둘러대는 데도 한계가 있다. 막다른 길목에 가서 모든 사실이 폭로되면서 파국에 이른다. 당사자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신체적ㆍ심리적 '번아웃'(burnout) 상태가 되고 만다. 더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지경이다. 그 다음은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 퇴장하든지, 스트레스 질환으로 나가떨어지든지 둘 중 하나다. 유능하다는 주위의 평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신 혹평과 질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유능함이 한 칼에 무능함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들' 뿐 아니라 우리의 '무능'도 문제다

잠재적 역량을 알아보는 지도자의 눈은 그래서 소중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도자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잘 쓰는 것'에 있다.

제 아무리 스스로 올바르고 뛰어난 지도자라도 제대로 된 이들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본래 의도한 성과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폐해를 남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지도자가 스스로 무능과 독선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상황이 되면 '유유상종'으로 일관하게 되고, 결국 조직을 망치는 것은 물론 많은 실패와 피해를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하여는 일언반구 없다가 갑자기 '종북 논란'에 불을 지피는 행태를 보면 짚이는 바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게 비단 윗 자리에서 아랫 사람을 골라내는 이들에게 국한된 문제이자 능력일까?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들이야말로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홍보하는 이들을 '선거'라는 장치를 통해 얼마만큼 식별하여 제대로 걸러내고 있을까. 조직에 헌신한다는 이름으로 조직논리만을 앞세우고, 결국 조직을 괴물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조폭문화'의 현실은 또 어떠한가. 세간의 시선과 비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의 의중을 살펴 사냥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아, 모든 일에서 예상대로 행동하는 일관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 하다는 비아냥을 듣는 검찰 조직이 과연 개인의 역량이 저열해서 그토록 한심한 일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혼자서 살아가지 않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도모하여 이뤄내기 위해 각종 조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아를 실현하며 행복감을 느끼고자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과연 조직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조직 내에서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권력관계는 인성을 황폐하게 만들고 수많은 아첨과 협잡을 낳기도 하고, 더 없이 억울한 죽음을 양산하기도 한다.

스스로의 능력을 확신하지 못하고 비선을 통해 자신이 임명한 자들을 감시하게 만든 이를 최고 권력자로 둔 우리의 무능은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극히 어려운 환경을 기어이 이겨내고 초인적인 인내와 노력으로 조직 안에서 '성공 신화'를 일구고 삶의 목표를 이루었다는 이들은 따뜻한 성정으로 자신이 과거를 추억하며 힘든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언행을 하는 경우보다, 그들의 게으름과 현실안주를 탓하며 조소와 채찍질만을 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결국 그 조직 구성원들조차 권력과 출세에 눈이 멀어 상식을 외면하는 결정을 남발하고, 결국 조직을 망가뜨리기에 이르는 것이다. 또 그토록 치열한 싸움과 경험을 통해 일구어낸 이 땅의 진보와 진보정당의가치가 '조직'을 앞세운 폭력과 전횡으로 얼룩지고 있다는 한탄은 과연 '조직'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원망에서 제외될 수 있을 것인가.

조직의 위계질서로서만 지킬 수 있는 더러운 권력

 ▲ 7일 육군사관학교의 기념 행사에서 육사 생도들을 사열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모습. 오른 쪽으로 부인 이순자 여사와 손녀의 모습이 보인다. ⓒJTBC 화면 캡쳐

자신의 부하에게 '충성'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나서, 적절한 답을 찾느라 머뭇거리는 이에게 "충성은 직속상관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그것이 위계질서 속에서 쌓이면 당연히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을 완성하는 것"이라며 득의양양하게 말하던 한 법률가의 무서운 확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간 관리자의 독선과 전횡으로 힘겨워하는 실무자의 고충을 최고 관리자에게 일러 주면, 그들이 보이는 한결같은 반응은 조직을 위해 그러한 실무자와 같은 하급자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역시 그들의 머릿 속에는 자신의 안일을 보장하고 평온한 복종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위계질서가, 단연코 약자의 고충을 앞서는 것이었다.

재벌의 해외재산을 관리하고 지키느라 갖은 편법은 물론, 감옥살이도 마다 않는 현대의 수많은 '마름'들의 모습이나,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사명보다는 자신의 승진이나 권세를 위해 자신의 상급자가 저지르는 수많은 불법과 위헌적 전횡을 앞장서 돕고 찬양하기까지 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들의 모습이 오늘도 우리 눈 앞에 수없이 명멸한다.

과연 그들이 사람으로 태어나 이루고자 했던 일은 무엇이고, 사람으로 살아가며 남기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현인들이 '무능의 상징'이라 평가한 '자리'에 그토록 집착하며 모든 고결한 가치를 팽개치게 만드는 것일까. 가장 탐욕스럽고 무능한 이를 제일 높은 자리에 앉힌 우리의 무능은 지금까지의 가혹한 형벌을 딛고, 과연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 그 더러운 권력을 위해, 그 더러운 권력을 지켜내고 이어가기 위해 지독하게 노력하는, "일심으로 충성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바라며 날을 새울 수 있을까. 권력에 빌붙어 더 큰 욕망을 실현하려는 수 많은 불나방들이 영원히 그들 곁에서 날갯짓을 해 주리라 믿을까. 아직도 한 줌 남은 더러운 권력을 지키느라 스스로의 존재마저 부정하며 길거리를 헤매는 '출세한 언론인'의 타락한 영혼은 이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욕망을 앞세운 판단 착오로 인해 그저 참아내고 견뎌야 했던 우리의 지난 세월은 어떤교훈과 미래를 우리에게 남기고 사라져 갈까. 반란의 주역에게 사열의 영광을 허락하는 사관학교를 둔 나라에서, 만일 그 세월이 더 흉칙하게 화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면 아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으려면, 우리는 어떻게 어깨 걸고 아름다운 조직을 만들어 다시 올지 모를 어둠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최강욱 변호사

2012년 4월 13일 금요일

숨은 표는 왜 숨어버렸나


이글은 프레시안 2012-04-12일자 기사 '숨은 표는 왜 숨어버렸나'를 퍼왔습니다.
[창비주간논평] 심판론에 안주하고 진영논리에 갇힌 야권의 아쉬운 패배

여론조사도, 출구조사도 빗나갔다. 숨은표를 말하던전문가들의 예상도 어긋났다. 2012년 의회권력과 행정부권력을 교체하는 두번의 선거 중 한번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획득으로 끝났다. 새누리당이 획득한 승리라기보다 야당이 헌납한 승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듯하다. 국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지도 못하고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다.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 부조리함과 불공정함의 원흉으로 비난받던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은 위기 속에서 진화한 반면 민주진보진영은 심판론이라는 손쉬운 카드에 기대었다. 쇄신과 변화는커녕 퇴행을 반복했다. 기대에 못 미친 투표율이 이를 말해준다. 그 결과 끝까지 유보적 태도를 보이면서 숨어 있던 젊은층에게 투표할 이유를 제공하지 못했다. 역대 선거에서 야권의 승리는 늘 높은 투표율, 특히 젊은층의 적극적 참여 덕분이었다. 투표할 적극적 이유와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때 정치와 거리를 두었던 층도 투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드러냈던 것이다.

숨은 표를 끌어내지 못한 무능과 오만

두어달 전만 하더라도 젊은층의 정치적 관심과 선거참여 의지는 매우 높았다. 지난 2월 2040세대를 대상으로 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이전보다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다는 응답이 20대는 59.7%, 30대는 49.9%에 이르렀다. 이를 떠받치고 있던 것은 정치적 효능감으로 '총선과 대선에서 시민의 참여가 정치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의견이 63.2%에 이르렀다. 하지만 지난 2개월 동안 민주진보진영이 보여준 행태는 무능과 오만 자체였다. 이미 준비가 된 2040세대를 다시 숨어버리게 하고 결국 투표장으로 끌어오지 못한 무능, 별다른 노력 없이도 이 층은 야권지지 표밭이라는 오만이 낮은 투표율로 나타난 것이다.

야권연대도 큰 울림을 주지 못했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을 이미 이런 틀로 치른 바 있어 신선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야권연대를 채울 내용, 즉 아젠다와 전망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내용적으로는 더 후퇴했다. 관악을, 성남중원 후보 사퇴 파동은 진보진영의 자기성찰, 자기검열이 얼마나 안이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13석을 획득한 통합진보당도 외형적으로는 선전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정체성 위기 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정당'이 울산, 창원 등 노동자 지역에서 외면당했다. 노동자 기반을 상실한 진보정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또한 비례득표율도 10.3%에 그치면서 2004년 총선의 13.1%에도 못 미쳤다. 정책과 가치를 중시하는 진보정당의 특성상 지역구보다는 비례대표에서 득표율이 대체로 높다.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정치제도 개혁의 가장 중요한 화두도 독일시 정당명부제 등 비례대표 확대였다. 그런데 비례대표 후보들의 면면이나 선출과정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면서 비례득표율도 낮게 나타났다. 아무리 좋은 정책, 공약을 제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정치인이다.



▲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당선자들의 현충원 참배 ⓒ뉴시스

심판론에 갇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선거

그렇다면 민주진보진영이 역사적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처참하게 패배한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요인들이 서로 엉켜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심판론에 갇혀 변화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의 대부분의 선거가 사실상 정부 여당에 대한 중간평가, 심판론으로 치러졌다.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선거는 심판선거의 절정이었다. 심판으로 나타난 분노의 에너지는 순간의 열기는 뜨겁지만 지속되기 힘들다. 그 자리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전망으로 채워야 했으나 야권은 이를 채울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지난 5년간 성찰과 치열한 준비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지 못하고 반MB 정서와 근거 없는 낙관에 안주해온 셈이다.

무엇보다 무상급식 논란 이후 복지, 경제민주화 등의 정책이슈를 통해 새로운 균열축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1%만 대변하는 낡은 틀을 대체해 지금까지 정치로부터 배제되었던 서민,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99%를 위한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외면했다. 아니, 수행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특히 복지 이슈의 경우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무상'만 강조할 뿐 구체적 실행프로그램이 부실하다보니 박근혜식 복지와 차별화되기 어려웠다. 말만 앞세우고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정책은 힘이 없다. 오히려 재원 문제 등에 대해 여당의 공격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주진보진영의 패배와 관련해 묵과할 수 없는 것은 진영논리의 위험성이다. 내부의 과오는 진영논리 앞에서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었다. 민주통합당의 임종석 사무총장 임명 및 단수 공천, 이화영 공천은 그 단적인 사례다. 재판중이거나 수사중임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의도된 수사라는 명분,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한명숙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는 이들을 감싸안기에 급급했다. 만일 새누리당이 동일한 상황에 처할 때도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 역시 관악을 선거에서 부정이 드러났음에도 이를 단순한 실수로 축소하고자 했고, 또한 성추행 의혹 후보를 감싸안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는 더이상 도덕적 우위를 내세우기 어렵게 되었다.

진영논리의 위험성, 공정하지 못한 이중잣대

진영논리가 위험한 것은 내부를 향한 비판이 들어설 여지가 없으며, 성찰의 공간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성찰의 공간이 부재할 때 그 공간은 안팎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고인 공간, 진화가 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또한 진영논리는 공정하지 못하다. 내부와 외부에 다른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중잣대다. 국민이 이명박정부에 분노했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부자, 재벌에게만 기회가 열려 있고 서민에게는 기회가 닫혀 있는 불공정한 질서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진보진영도 진영논리에 갇히면서 공정성을 상실했다. 지금까지 야권에 유리한 역사적 기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 '나꼼수'도 반MB라는 명분하에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의 과오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민주진보진영이 진영논리에 갇히고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결국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다. 큰 명분보다 작은 실리에 집착하고 오만 속에 역사적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는 공천의 부실함으로 이어졌고 충청권과 강원지역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정당득표율에서 야권연대는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을 합친 득표율 46% 못지않은 46.6%를 얻었다.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을 압도했다. 문제는 대선까지 남은 7개월 동안 치열한 내부 반성과 쇄신의 노력을 실천할 수 있느냐다. 미래를 준비하고 정책과 아젠다를 통해 지지층을 다시 결집해내기에 이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