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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목요일

5.18, 도청 끝까지 지켰던 시민군 이양현의 ‘임을 위한 진혼곡’

이글은 플러스코리아 2013-05-30일자 기사 '5.18, 도청 끝까지 지켰던 시민군 이양현의 ‘임을 위한 진혼곡’'를 퍼왔습니다.
"죽음 몰려와도 도청 버릴수 없었다, 먼저간 이들을 위해”

[광주민주항쟁은 수구언론과 일베(일간 베스트 저장소)라 불리는 자칭 보수세력들에 의해 왜곡 전파되어 광주민중항쟁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작전지휘권은 아직도 미국에 있다. 광주 5.18민중항쟁 당시에도 미군의 명령없이는 실질적인 작전을 할 수 없었다고 군인들은 증언한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의 책임을 묻고 미문화원을 점거한 이들 대부분은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배신은 5.18 민중항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도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있다. 미국은 5.18 민중항쟁과 관련하여 책임도 사과도 없이 전시작전권을 움켜쥐고 있다.  끝나지 않은 광주민중항쟁은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공동선언을 실천, 이행하여 민족의 자주적인 통일만이 광주민중항쟁의 진정한 의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광주시민군출신 이양헌 선생의 광주민중항쟁 회고담을 인용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한다. 편집자주]

[플러스코리아-자주역사신보 공유기사]김회정 기자=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을 마지막까지 지키던 시민군들이 계엄군에 진압된 뒤 포승줄에 묶여 끌려나오고 있다(위쪽 사진). 5·18 시민군 출신 이양현 씨가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서 그날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씨는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며 5·18은 미완의 역사라고 말했다. <사진,글 동아일보DB·광주>

《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입으로 5·18민주화운동은 비극적 막을 내렸다. 신군부 5·17 비상계엄령 확대조치에 맞선 항쟁의 불꽃은 10일 만에 꺼졌지만 ‘민주·인권·평화’의 5·18 정신은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5·18 정신을 모독하고 왜곡하는 일부의 행태로 인해 5·18의 진실과 역사적 의미가 새삼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33년 전 오늘 전남도청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죽을 목숨인 줄 알면서도 도청을 지켰던 ‘시민군’ 참가자와 당시 광주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동아일보 기자들로부터 그날의 진실을 들어봤다. 》

‘비상! 비상! 계엄군이 오고 있다.’

1980년 5월 27일 오전 4시경. 전남도청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시민군 기동타격대 차량의 엔진소리가 적막한 광주의 새벽을 깨웠다. “광주시민 여러분.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기 위해 계엄군이 오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도청으로 와주십시오.” 처절한 여성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도심에 울려 퍼졌다. 외곽지역에서 간헐적으로 울리던 총성이 점점 가깝게 들리기 시작했다. 도청에는 157명의 시민군이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승리의 가능성은 전혀 없고, 이제 꼼짝없이 죽을 목숨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자리를 지켰다. 카빈 소총을 든 두 청년이 전남도청 민원실 2층 회의실 창가에 기대섰다. 그리고 서로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저승에서 만납시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이자 동지입니다.”

○ 도청을 지킨 ‘마지막 시민군’ 

당시 항쟁지도부 기획위원이던 이양현(63)씨는 33년 전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그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 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 윤상원(당시 30세·이 노래는 윤 씨를 추모하는 노래극을 위해 만들어졌음)이였다. 

이 씨는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을 때 시민군 한 명이 뒤편이 무너졌다며 황급히 뛰어왔다. 계엄군은 후문을 넘어 순식간에 도청 안으로 진입했다. 계엄군 정예 병력인 3특전여단이었다. “어이쿠.” 옆에 있던 윤상원이 옆구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급히 이불을 찾아 깔고 그를 뉘었다. 잠시 뒤 동공이 초점을 잃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때 뒤에서 “꼼짝 마, 손들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다리에 힘이 쭉 빠져 주저앉았다. 공수부대원들이 결박하더니 셔츠 뒤쪽에다 매직펜으로 뭔가를 쓰는 것 같았다. 굴비를 엮듯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 앞 사람을 보니 ‘극렬분자. 실탄 10발 소지’라고 쓰여 있었다.

이 씨는 광주일고를 다니던 시절 ‘향토반’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전남대 사학과를 다니던 1975년 학교를 그만두고 청계천 연합노조에 몸을 담았다. 2년 뒤 광주의 조그만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운명의 5월을 맞았다. 18일 강연을 위해 광주에 온 이창복 씨(74·16대 국회의원)를 따라 전남대 인근을 지나다 계엄군의 몽둥이에 무참히 쓰러지는 대학생들을 봤다. 피가 끓어올랐다. 사흘 뒤 금남로에서 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할 때 시위대의 맨 앞에 섰다. ‘계엄철폐’를 외치던 그의 머리 위로 총알이 지나갔다. 시민들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당시 도심 곳곳에서는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버스에 타고 있던 무고한 시민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어린아이와 부녀자들까지 조준사격에 희생됐다. 시민들은 손에 총을 들고 금남로에 다시 모였다. 이 씨는 “시민들이 총을 든 것은 계엄군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없이 두려운 죽음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 “우리의 죽음을 증언해 달라”

26일 계엄군이 최후통첩을 하자 시민들 사이에서는 무기를 반납하고 사태를 수습할 것이냐,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울 것이냐 논쟁이 벌어졌다. 항쟁 지도부는 이대로는 항복할 수 없다고 했다. 

외곽에 머물던 계엄군이 광주를 죄어오자 그는 26일 밤 시민군들에게 밥을 해주던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내는 한사코 같이 있겠다고 했지만 ‘세 살짜리 아들을 누가 키울 거냐’며 화를 내자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다. 항쟁 지도부는 시민군에 자원해 도청 안에 남아 있던 중고교생들을 불러 ‘나중에 우리의 죽음을 증언해 달라’며 도청에서 내보냈다.

‘5월 광주’의 불꽃이 꺼지고 상무대 영창에 끌려가 조사를 받던 이 씨는 내란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년 남짓 감옥생활을 하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세상에 나서기가 부끄러웠다. 저승에서 만나자던 윤상원에게 더욱 그랬다. 이 씨는 윤상원과 노동운동을 하다 세상을 떠난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지던 1982년 2월 20일 망월동 5·18묘지를 찾았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그곳에서 그는 목 놓아 울었다. 

서울에서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27일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부활제’를 하루 앞두고 옛 전남도청 앞에 섰다. 그는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새롭게 꾸며지는 도청 건물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광주를 품고 있는 무등산은 알고 있을 겁니다. 누가 집단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행방불명된 사람들이 어디에 묻혔는지…. 5·18은 여전히 미완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도 마침표를 찍을 수 없어요.”


김회정 기자 

2013년 2월 9일 토요일

‘오유’ 운영자 “국정원 도청·미행하는지 무서워요”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3-02-08일자 기사 '‘오유’ 운영자 “국정원 도청·미행하는지 무서워요”'를 퍼왔습니다.


‘오늘의 유머’ 운영자 이호철씨
 언론 보도뒤 서버 장애·신상털기
국정원 도청·미행도 하는지 걱정
“국정원에 고소당해 무섭지만 
종북누리집 매도 참을수 없어”
“국정원 ‘오유’ 사찰…생각만해도 소름 돋아요”
“‘오유’ 종북사이트 매도?…공포보다 분노”

국가정보원 직원 김아무개(29)씨가 ‘오늘의 유머’ 누리집에 91건의 정치적 글을 올리는 등 인터넷 여론조작 활동을 벌였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온 지난달 31일, ‘오늘의 유머’(누리집 갈무리) 운영자 이호철(41)씨는 난데없는 일을 겪었다.이날 오후 ‘오늘의 유머’ 서버가 40분간 멈춰 접속장애가 일어났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이날 밤 12시께엔 이씨의 ‘오늘의 유머’ 운영자 계정이 해킹을 당해 전화번호 등 이씨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웃음을 전하겠다는 꿈을 인터넷에 펼쳐온 이씨가 졸지에 사이버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올해 들어 그의 주변에서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일’의 절정은 국정원의 고소였다. 지난 5일 국정원 직원 김씨는 자신의 아이디를 외부로 유출했다며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이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그냥 겁이 난 게 아니고 무서웠어요. 주저앉고 싶었어요. 상대가 국정원이잖아요.” 7일 오후 (한겨레)와 만난 이씨는 한숨을 쉬었다. 국정원이 그저 고소만 했을까, 자신을 미행하거나 도청하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이 많지만 이씨는 언론 인터뷰를 마다하진 않았다. “이젠 공포보다 분노가 더 커요. ‘오유’(오늘의 유머)를 종북 사이트라고 매도하는 건 참을 수가 없거든요.”대선 개입 의혹이 번지자 국정원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북한과 연계한 친북 인사들이 ‘오늘의 유머’ 등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직원 김씨의 여론조작이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과정에서 들이댄 논리였지만, 이씨로선 천부당만부당한 이야기였다.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닌 이씨는 당시만 해도 종종 벌어지던 집회·시위 현장에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졸업 뒤엔 인쇄업체에서 명함이나 전단지를 디자인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무료한 일상을 달랠 겸 1998년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은 전자우편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인기가 폭발했다. 전자우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넘쳤다. 2000년 ‘오늘의 유머’라고 이름 붙인 누리집을 정식으로 열었다. 뒤이어 직장을 그만두고 누리집 관리에만 매달렸다.

18대 대선 당시 불거진 국정원의 불법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29·오른쪽)가 25일 오후 3차 소환 조사를 마친 뒤 변호인과 함께 서울 강남구 수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 13년 동안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씨는 ‘오유’ 누리집을 혼자 관리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는지 살펴보면서 누리집이 성장하는 모습에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급기야 회원이 20만명이 넘는 인기 누리집 가운데 하나가 됐다. 소소한 웃음과 재미를 찾는 누리꾼들은 가끔 정치·사회·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고, 그것 역시 수많은 누리꾼들이 주고받는 정상적인 표현과 소통의 과정이었다.그런 누리집을 ‘종북주의자들이 우글거리는 곳’으로 국정원이 몰고 가자, 이씨는 자신의 존엄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10여년 동안 그 무엇보다 사랑했던 오유가 모욕당하는 느낌이었어요.”김씨의 업무에 대해 국정원은 “대북 심리전을 위해 종북글을 추적하는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 주장대로라면 국정원은 오유 이용자의 상당수를 추적하면서 사찰한 셈이다. “국정원이 매일 우리 누리집을 살펴봤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요.”오유에서 이씨의 별명은 ‘바보’다. 착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이씨의 바람이 깃든 별명이다. 하지만 국정원은 이씨를 ‘바보’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있다.“국정원이 오유를 종북 사이트로 모는 것은 김씨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이라고 봐요. 어떻게든 우리 사이트를 종북으로 덧씌워야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화되니까요. 하지만 입대 영장 사진이 게시판에 올라오면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판으로 옮겨지는 게 오유예요. 나라를 아끼는 마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종북이죠?” 이씨는 되물었다.이씨는 요즘 경찰 수사에 협조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발 경찰 수사가 잘돼서 이번 일이 제대로 밝혀졌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죠.” 이제는 김씨의 고소에 대응하느라 또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상황이다. “제가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마음은 힘들지만 오유 회원들의 응원 때문에 힘을 얻어요.”이씨는 얼마 전 전자우편 하나를 받았다. “10년 넘게 회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무 말도 안 했지만 힘내세요. 이런 사이트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내용이었지만 무엇보다 힘이 됐다.권력기관인 국정원에 혼자 맞서야 하는 이씨는 며칠 동안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하고 있다. 회원들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누리집을 살피고 가꾸는 일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늘 했던 일이지만, 요즘 들어 더욱 새롭다. 인터뷰를 마친 뒤 이씨는 초저녁 어스름을 뚫고 누리집을 관리하는 자신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2012년 10월 28일 일요일

비밀대화 드러나자 적반하장


이글은 한겨레21 2012-10-29일자 제933호 기사 '비밀대화 드러나자 적반하장'을 퍼왔습니다.
[특집] 정수장학회 MBC 지분 6천억원 대박 터뜨려 박근혜 후보 도우려 한 최필립과 김재철의 무리수…법적으로 불가능한 일 추진하다 대화록 공개되자 ‘도청’ 우기며 고발자 고발하고 답변은 미루는 구태

 
»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서울 중구 정동의 정수장학회 사무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재철 MBC 사장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그리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삼각 고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겨레)가 보도한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대화록은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각 주체들의 욕망이 어디를 지향하는지 명백하게 드러낸다.

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정치적 효과

김재철 사장과 최필립 이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소유한 MBC 지분 30%를 처분하려고 했다. 그렇게 마련된 재원의 이자수입으로 부산·경남 지역에서 박근혜 후보를 측면 지원하는 선심성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게 불순한 계획의 골자다. ‘부당하게 강탈한 장물’이라는 비판을 희석시키겠다는, 일종의 ‘착시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 쪽에 줄을 대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던 김재철 사장의 노림수는 명백하다. 숙원이던 ‘MBC 민영화’로 가는 첫 관문을 열겠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재철 사장은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승인 없이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애초의 계획대로 20% 신주 발행과 함께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매각해도 방문진은 여전히 최대 주주다. 70%의 방문진 지분이 58%로 낮아질 뿐 현재의 공영방송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새누리당 이상돈 정치쇄신특별위원은 “(MBC) 민영화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있고 입법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최필립 이사장이나 김재철 사장·이진숙 본부장 등은 기본적으로 법적인 소양과 자질이 없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조해진 의원도 “지금부터 MBC 지분 매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주식 재평가, 상장 심의, 이사회 의결, 주주총회 의결, 정관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치면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그것을 팔아 박근혜 후보를 위해 쓴다는 것 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재철 사장과 최필립 이사장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왜 추진하려고 했을까. 실제 추진되는지는 나중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계획의 발표에 따르는 정치적 효과다. 정수장학회 사무실에서 비밀 회동이 열린 시점은 10월8일 오후 5시께다. 이들은 10월19일 문제의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려고 했다. 지분 매각과 관련해 이진숙 본부장과 이상옥 부장의 ‘브리핑’을 받은 최필립 이사장은 “(10월)19일에 발표하게끔 해주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10월19일은 대선을 불과 61일 앞둔 시점이다. 박근혜 후보가 부마항쟁 피해자들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하고 4·19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통합’ 행보에 재시동을 건 직후다.
계획의 설계자는 MBC였다. 대화록에 나타난 이진숙 본부장의 말이다. “이자수익을 반값 등록금으로 활용하겠다는 (장학회의) 천명이 있으니까 대학생들 또는 젊은 층이 많이 지나다니는 장소를 골라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대형 광장이나 대학을 정했는데 이건 아직까지 저희가 섭외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대중들에게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을 저희가 찾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자도 또 누구를 정해야 하잖아요. 가능하면 MBC 아나운서를 배제하고요, 외부 프리랜서 아나운서 또는 진행자 가운데 신뢰를 줄 수 있는 그런 마스크를 가진 사람을 골라서 하겠습니다.” 이 본부장은 “그림은 좀 괜찮게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이게 굉장히, 말하자면 정치적으로도 임팩트가 크기 때문”이라고 친절한 설명도 곁들인다.

하필 삼성 출신 부장이 개입

실제 매각이 성사된다면 MBC와 정수장학회는 모두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김재철 사장 쪽은 기업을 공개할 경우 MBC의 기업 가치를 약 2조원대로 추산했다. 정수장학회는 30%의 지분을 처분해 6천억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이자수입만 200억원대에 이른다. 장학회가 반값 등록금 사업에 사용하려고 했던 돈도 바로 이 이자수입이다. 그동안 정수장학회는 자신의 자산은 계속 불려가며 MBC와 (부산일보)에서 받는 기부금만을 장학사업에 지출해왔다. 자산은 남기고 생색은 가욋돈으로 냈다. “참으로 정수장학회다운 발상”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게 무리는 아니다.
실무를 총괄한 이상옥 전략기획부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1976년생인 이상옥 부장은 1995∼99년 삼성영상사업단에서 근무했다. 일각에서 ‘삼성과의 연관성’이 거론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부장이 삼성 내에서 중책을 맡았던 것도 아니고 근무기간도 짧기 때문에 현재의 논란과는 무관하다는 게 삼성 쪽의 태도다. 삼성은 자사의 공식 트위터 등을 통해 “삼성 출신인 이상옥 부장이 MBC 민영화 TF(태스크포스)를 주도하고 있어 일부에서는 삼성이 MBC 민영화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며 “이 부장은 신입사원으로 삼성에 입사해 3년여 만인 1999년에 퇴사했다”고 해명했다. 퇴직 시점 이상옥 부장의 직함은 대리였다.
이후 이 부장은 2005년 계약직 전문위원으로 MBC에 입사해 정규직으로 전환한 뒤 영상 콘텐츠 유통, 방송사 소유구조 개편 등과 관련된 연구를 해왔다. 이 부장이 근무하는 전략기획부는 그동안 MBC의 시니어급 기자·PD·카메라기자 등이 경영수업 차원에서 거쳐가는 조직이었다. 하지만 MBC 노조가 170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업무에 복귀한 지난 7월께, 김재철 사장은 이상옥 부장에게 민영화 프로젝트를 전담케 했다. CJ 출신 김동현씨, TV조선 출신 정재훈씨 등이 계약직으로 합류한 것도 같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매각과 민영화 프로젝트 전반은 철저하게 김재철 사장과 그의 핵심 측근인 이진숙 본부장의 작품이라는 게 MBC 내부 사장을 잘 아는 인사들의 관측이다. MBC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이상옥 부장이 이번 민영화 프로젝트에서 뭔가 결정권을 갖고 움직인 것은 아닌 걸로 파악한다”며 “모든 결정은 김재철 사장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박근혜 후보가 10월21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정수장학회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사장 퇴진으로 해결될 문제 아니다”

파문이 불거지자 박근혜 후보 쪽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나와 무관하다”는 견해를 되풀이해왔다. 하지만 최초 보도가 나온 직후인 10월13일 정수장학회와 박 후보 측근들이 접촉한 사실이 추가로 폭로돼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민주통합당 배재정 의원이 공개한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의 통화 내역에 따르면, 이 사무처장은 박근혜 캠프의 최외출 기획조정특보와 박근혜 의원실의 ‘실세 보좌관’으로 통하는 정호성씨와 각각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남대 교수인 최외출 특보는 그 자신이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출신이다. 박근혜 후보가 32년째 이사장을 지내고 있는 ‘한국문화재단’ 이사도 맡고 있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양쪽이 접촉해 대책을 논의한 것이 아니냐는 게 야당의 주장이다. 배재정 의원은 “박 후보의 최측근인 두 사람이 정수장학회와 사건의 파장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며 “박근혜 후보는 왜 측근들이 자신과 상관없다는 장학회 사람들과 접촉했는지 국민 앞에 해명하라”고 촉구했다.
박근혜 후보는 지분 매각 논란과 관련해 10월17일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루 뒤인 18일 다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지난번에 다 말씀드렸다”는 애매모호한 답변만을 내놨다. ‘박근혜의 입’을 자처하는 이정현 공보단장은 “지난번에 다 말씀드렸다는 건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는 전날의 언급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새누리당과 캠프 내부에서는 박 후보의 오랜 측근인 최필립 이사장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요구가 적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그동안 “나와는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해온 박 후보가 이제 와서 최필립 이사장에게 공개적으로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안팎에서 “최필립 이사장의 자진 사퇴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주문이 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박 후보가 직접 최 이사장을 거론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것보다 최 이사장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책임을 지는 쪽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으리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최 이사장 한 명의 퇴진으로 모든 논란이 덮어질지는 미지수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 쪽의 진성준 대변인은 10월19일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최필립 이사장의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며 “하지만 이사장 한 사람을 물러나게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최 이사장을 비롯한 현재의 이사진을 모두 퇴진시킨 뒤 유족들에 대한 피해 보상과 진정한 의미의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태도다.

고발자 고발하고 침묵만 길어지고

하지만 이미 실기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박근혜 후보는 최초 보도가 나온 뒤 이도저도 아닌 태도로 일주일을 흘려보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곧바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해도 불똥을 피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미 너무 늦었다”는 탄식이 나온다. 대신 MBC와 새누리당은 ‘도청’과 ‘도촬’의 프레임으로 맞불을 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부적인 대화록이 보도된 것은 (한겨레)의 도청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MBC는 대화록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를 10월16일 고발했다. 새누리당도 이창원 정수장학회 사무처장의 통화 내역을 공개한 배재정 의원에 대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이상일 대변인은 “배재정 의원은 도둑촬영 여부에 대해 정직하게 고백하고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사죄해야 한다”고 비난했고, 이정현 공보단장은 “이번 사건은 문재인 후보 쪽의 도촬 게이트”라고 주장했다.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던 박근혜 후보는 여전히 말이 없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상처는 커진다. 박 후보는, 그리고 최필립 이사장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박근혜 후보가 32년째 이사장 맡은 재단
정수장학회 다음은 한국문화재단?

정수장학회의 지분 매각 논란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다른 재단들의 활동에 대한 의혹도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다음 폭탄은 박 후보가 32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 삼양식품의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이 ‘명덕문화재단’이라는 명칭으로 설립했지만 다음해인 1980년 전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전원이 사퇴하고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이 됐다. 박 후보는 지금까지 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박 후보의 측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점도 정수장학회와 닮은꼴이다. 민주통합당 김경협 의원에 따르면 한국문화재단 이사는 박근혜 캠프의 최외출 기획조정특보를 비롯해 변환철·김달웅·김덕순씨 등 친박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최외출 특보는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논란이 불거진 직후 정수장학회 쪽과 통화를 하고 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김덕순씨는 한국문화재단과 정수장학회 양쪽에서 모두 이사를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문화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사업이나 ‘정치인 박근혜’를 측면 지원하는 사업을 벌여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는 715명으로, 이 중 538명이 박 후보의 지역구인 대구·달성 지역 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박근혜 후보 미니홈피 접속 수 200만 회, 300만 회 돌파를 기념해 수백만원 상당의 물품을 영아원과 어린이 시설에 지원했다. 명목은 ‘문화활동비’였다.
한국문화재단 문제는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에도 거론된 바 있다. 재단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데, 당시 박 후보의 비밀 외곽조직 ‘신사동팀’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문제의 한국문화재단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재단의 장학금 지원이 박 후보 지역구에 집중된 사실 등을 거론하며 “한국문화재단은 마포팀과 같은 박 후보 측의 또 다른 외곽조직”이라며 “2002년 박 후보가 탈당 기자회견을 준비한 장소도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이며, 최태민씨 사위이자 박 후보 비선라인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정윤회씨가 재단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해고된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
“위탁 관리인이 신문사 팔겠다니”

정수장학회 비판 기사를 실었던 편집국장은 끝내 해고됐다.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를 부산 지역 기업들에 팔아치우겠다며 ‘장물아비짓’을 도모하고 있는 와중이다.
“(부산일보)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 것이 아니잖아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뺏은 것이고, 최 이사장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위탁관리인일 뿐이죠.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것도 부적절하다는 게 국민의 판단인데 그걸 자기가 팔겠다니, 한마디로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정호 (부산일보) 편집국장은 지난해 11월 (부산일보) 노조의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촉구 기자회견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는 이유 등으로 두 차례 대기발령을 받았고, 10월18일 회사로부터 ‘근로관계를 취소하는 문서’를 받았다. 9월10일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과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는 길거리 농성을 하고 있다. 10월1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해임을 당했다.
=예정된 일이다.
-(부산일보) 사태가 매각 추진으로 번지고 있는데.
=최 이사장은 (부산일보)가 성가시고 귀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부산 기업을 중심으로 매수 여부를 타진해온 것 같은데, 법적으로 주식 처분이 금지돼 있다.
-새누리당에서도 최 이사장 퇴진 요구가 나온다.
=박근혜 후보가 급한 대로 이사장을 바꿀지도 모르겠지만, 얼굴만 바꾸고 본질은 그대로 둔다는 얘기다.
-해법은 뭔가.
=핵심은 공적 소유다. 시작(강탈)과 과정(이사진 구성, 편집권 침해 등)이 모두 잘못됐으니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부산일보)가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하려면 공적 소유가 이뤄져야 한다.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분들, 학계와 시민사회, (부산일보) 사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익법인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최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부산일보) 경영진의 신문 발행 중단 사태 이후 (부산일보) 임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주식 매각을 언급했으며, 최근 조성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만나 지분 매각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10월8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의 대화록에는 (부산일보)에 대한 최 이사장의 저열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차마 매각은 못하겠지 이러고 앉아가지고 ([부산일보]) 노조에서 지랄들 하고 있는데 마음대로 해라.”
“부산의 왕초 하나가 제일 많은 지분 내고, 대표도 경영도 그쪽에서 맡는 것. (부산일보)가 이때껏 부산 여론을 이끌어가는 리더였는데, 노조가 차고 앉아서 자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질적으로 굉장히 많다는 거야. (중략) 기업의 빽으로 (부산일보)를 쓴다는 거라. 찾아와서 인수하고 싶다길래, 나는 그냥이라도 주고 싶었다고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매각이 불가능하다. 부일장학회를 빼앗긴 고 김지태씨의 유족들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부산일보) 주식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이 지난 3월 받아들여진 상태다. 주식 반환과 국가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본소송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2012년 2월 17일 금요일

김인규가 호언장담하던 '수신료 인상'은 끝났다


이글은 미디어스 2012-02-16일자 기사 '김인규가 호언장담하던 '수신료 인상'은 끝났다'를 퍼왔습니다.
[기자수첩] 불법도청 등 전대미문의 오점 남기며 자동폐기 신세

"반드시 내년에는 수신료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수신료가 현실화되고 재원이 안정되면 광고비중도 점차 줄여나가 진짜 제대로 된 공영방송을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2009년 11월 24일 취임사에서)
"(야권, 시민사회가 '불공정보도'를 이유로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현재 (방송3사 가운데) KBS 뉴스의 시청률이 가장 높습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데 시청자들이 많이 보겠습니까?"(2010년 11월 22일 KBS가 개최한 수신료 인상 기자회견에서)
"올해 제일 중요한 첫 번째 과제는 2월에 수신료 인상을 관철시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신료 인상의) 가능성을 묻는데, 저는 '가능성 90%'라고 말합니다."(2011년 1월 3일 시무식에서)
"만약 KBS가 과거처럼 '편파보도'를 이유로 국민들로부터 지탄받았다면 (수신료 인상의 마지막 관문인) 이 단계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2011년 4월 15일 국회 문방위 KBS 업무보고 자리에서)
"일부 야당의 반대로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늦어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신료 인상이 무산된 것은 아닙니다. 수신료 인상안은 국회 문방위 전체회의에 상정돼 있는 만큼 다음 국회가 열리면 곧바로 다시 처리에 들어갈 것입니다. 눈앞에 다가온 수신료 현실화를 위해 다시 한 번 우리의 모든 역량을 하나로 모읍시다."(2011년 7월 1일 KBS직원 월례조회에서)
"도청 의혹은 수신료 인상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공영방송의 미래가 달린 수신료 인상은 지속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2011년 7월 27일 KBS이사회에 참석해)
"새해에는 수신료가 반드시 현실화 돼야 하고, 결국 그렇게 될 것입니다."(2012년 1월 2일 신년사)
김인규 KBS 사장이 2009년 11월 24일 취임한 이후,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쏟아낸 발언들이다. "현재 KBS는 '공정보도'를 하고 있으며, '일부 야당'이 반대하고 있지만, KBS 직원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힘을 모으면, 조만간 수신료가 인상될 것"이라는 한 문장으로 수신료 인상과 관련한 김인규 사장의 생각을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 2010년 11월 22일 열린 '수신료 인상 기자회견'에서 김인규 사장은 직접 프레젠테이션까지 진행하며 '무료지상파 디지털TV 플랫폼 구축'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사진출처:KBS)

그러나, 김인규 사장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수신료 인상안은 18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될 전망이다. 17일은 임시국회의 마지막 날. 총선을 코 앞에 두고 3월 임시국회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월 17일은 김인규 사장의 막무가내식 수신료 인상 추진이 결국 처참한 실패로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역사적인(?) 날인 셈이다. 지난 몇 년간 KBS를 두고 쏟아진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에 '아웃 오브 안중' 모드로 일관하며 수신료 인상 통과에만 혈안이었던 김 사장을 비롯한 KBS 경영진들로서는 뼈아픈 치욕의 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동폐기'라는 결과만 놓고 보자면, 4000원 인상안을 추진했던 2007년 당시 상황과 같지만 내용은 전혀 다르다. 김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수신료 드라이브는 KBS 기자가 야당의 비공개 회의를 '불법도청'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등 사상 최악의 오점을 KBS 역사에 선명히 남겼기 때문이다. 수신료 인상 추진 과정에서, KBS 기자들이 '취재' 대신 '여야 정당 압박'에 나서고, 수신료에 비협조적인 민주통합당의 당대표 경선 중계방송을 거부한 행태 역시 '부끄러운 KBS의 역사'로 기록됐다. 이번의 실패를 단순히 '17대 국회에 이어 18대 국회에서도 자동폐기'라고 볼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과정의 민주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저돌적 드라이브로 이 같은 일들은 앞으로도 두고두고 KBS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수신료 인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실패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고, 앞으로 오랫동안 작용하게 됐으니, 도끼로 제 발등을 단단히 찍은 모양새다. 
김 사장이 2009년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것 가운데, 지켜지지 않은 것은 수신료 인상 뿐만이 아니다. '무료지상파 디지털TV 플랫폼 구축' '세계적인 콘텐츠 개발' 등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성과를 낸 게 없다. 취임 당시 일각에서 제기됐던 '김인규 유능론'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KBS를 지키러 왔다"는 대목 역시 현재의 KBS 상황에 비춰보면 실소만 나올 뿐이다. "제가 대선 캠프에 있었다고 해서 현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부 입맛에 맞게 방송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사람으로 보이느냐?"고 펄펄 뛰던 김 사장. 임기 내내 뚜렷한 실적 하나 올린 것 없는 김 사장이 '확실하게' 한 일이 있으니 바로 시민들의 뇌리에 'KBS는 권력의 나팔수'라는 각인을 시켜준 것이다. 김 사장의 임기 2년여 간, 불거진 불공정 보도 논란은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다. 
MB측근비리 침묵, G20홍보 특집프로 3300분 편성, 추적60분 4대강편 불방, 친일파 백선엽 미화 다큐, 독재자 이승만 찬양 다큐, 김미화ㆍ김제동 등 블랙리스트 논란, 박재완 논문 이중게재 9시 뉴스 누락, 메인뉴스를 통한 수신료 인상 홍보….
당장 KBS에서는 총파업이 일어날 조짐이다. 김 사장을 비롯한 KBS 경영진의 '염원'과 달리 미디어렙법만이 홀로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날인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김현석)는 성명을 내어 "이제 김인규는 사장 취임 이후 수신료 인상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회사를 망가뜨린 책임을 져나가야 할 것"이라며 "수신료 인상 실패와 KBS를 총체적으로 망가뜨린 책임을 묻는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노보에서 김 사장의 3대 업적(?)으로 △공정방송 개박살 △막장인사 △수신료 실패 등을 꼽았던 KBS본부는 현재 김인규 사장의 퇴진을 위한 총파업 돌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정연주 KBS 사장 해임무효 소송의 최종 결과도 조만간 내려지는 등, 김 사장의 남은 임기 9개월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수신료 인상이 최종 실패했음에도 유독 조용한 곳이 있으니 지난해 6월 24일, 민주당이 수신료 인상에 협조하지 않자 영등포 민주당사 앞까지 찾아가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던 KBS노동조합(위원장 최재훈)이 바로 그곳이다.
10일 성명을 내어 "시민사회를 설득하려는 그간의 노력에 김인규 사장과 경영진이 어떻게 대응했고, 그것이 과연 정당하고 온당했는가에 대해 하나 하나 따지고 들자면 입만 아프다"고 말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오지 말아야 할 자리에 와서 떠나지 않는 자,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는 이들. 둘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