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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2일 일요일

'라면 상무' 향한 분노는 왜 대한항공 앞에 멈췄을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3-05-10일자 기사 ''라면 상무' 향한 분노는 왜 대한항공 앞에 멈췄을까'를 퍼왔습니다.
[인권오름] '갑을 관계'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평등

'갑을'이 바람을 탔다. 지난달부터 연이어 언론에 보도된 '라면 상무', '빵 사장', '조폭 우유'가 갑을 관계를 도마에 올렸다. '갑을'은 불평등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 이 바람은 평등을 향해 불어가야 할 것이다.

적어도 '갑을'의 문제가 몇몇 개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드러나는 듯하다. 영업 사원이 대리점주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동영상이 공개된 후 남양유업은 "임직원들의 인성 교육 시스템을 재편"하겠다며사과했지만 남양유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더욱 확산하는 분위기이고, 남양유업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걸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7일 국회에서 열린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사례 발표회'에서 쏟아져 나온 증언들은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강매, 리베이트 요구 등이 남양유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렸다. (관련 기사 : 수많은 '남양유업'들…"CJ·롯데·한국GM·농심 등 횡포") 민주당은 "도를 넘는 대기업 횡포 근절"을 위해 경제 민주화에 앞장서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바람이 정말 평등을 향하고 있는지 묻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 9일 오전 서울 중구 브라운스톤 LW컨벤션센터에서 남양유업 김웅 대표(오른쪽 네 번째) 등 임직원들이 '영업 직원 막말 음성 파일'로 불거진 강압적 영업 행위에 대한 사과의 뜻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바람이 멈춘 곳

'라면 상무'는 비행기에서 여승무원을 폭행한 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기업 임직원'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자만해 '비도덕적 태도'를 보인 것이 분노를 산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포스코는 임직원이 더욱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며 반성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갑'이라고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대한항공은 고객 정보 관리가 허술했던 점을 보완하겠다며 오히려 간접적으로 '라면 상무'에게 사과를 하는 듯 보이고, 정작 폭행을 당해야 했던 여승무원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서비스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서비스 이용자들과 맺는 관계에서 '사건'화된다. 그러나 항공기 여승무원들이 '진상 고객'들에게 시달리게 되는 이유는 어떤 고객들이 '진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떤 고객을 맞든 친절해야 하며 행여 불만이 있으면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자본은 고객 불만 건수에 따라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빼앗아 간다. 서비스 노동자들의 진정한 '갑'은 직업이 대기업 임직원인 서비스 이용자가 아니라 노동자를고용한 자본이다. 그런데 남양유업 영업 사원의 욕설이 단순히 그가 '진상'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많은 사람의 바람은 왜 대한항공 앞에서 멈춰 섰을까.

어떤 사건을 해석하는 데에는 개개인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욕설과 폭행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던 것은 그만큼 그것이 준 모욕감에 공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하면 먹고살 만해질 거라는 기대가 납득할 수 없는 '갑'의 요구로 번번이 좌절당할 때,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항의하고 맞설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 심지어 욕을 듣거나 맞아도 되는 사람인 듯 취급하며 '갑질'하는 사람과 마주할 때, 그것이 우리의 존엄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너무나 잘 안다는 것. 그만큼 불평등이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 있기 때문에 저마다 공감의 계기를 만날 수 있었다는 역설.

그러나 어떤 욕설과 폭행은 사람들의 분노를 그리 일으키지 못하기도 한다. 학교에서교사가, 가정에서 가부장이, 작업장에서 사장이 퍼붓는 욕설이나 폭행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불평등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공감의 계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헤아리지 않으면 모습은 바뀔지언정 불평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남양유업 너머를 향하고 있는 분노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을 지목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항공 앞에서 멈춘 분노는 '있을 수 있는 일'의 경계에 갇혀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공정해야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는 어쩔 수 없다는 인식. 경제 민주화 주장도 딱 이 경계에 있다.

불평등의 힘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박근혜 대통령도 이미 경제 민주화를 주창했다. 그 배경은 두 가지로 짚어볼 수 있다. 하나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확신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대기업 친화 정책이 불황 극복의 신화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을 박근혜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규제 완화를 하며 대기업의 자유를 극대화하지 않아도 이미 대기업들은 충분히 자유롭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내 하청, 파견, 특수고용 등의 형태로 노동력에 대한 책임 없이 노동력을 지배할 구조를 갖추었고 그 사슬을 따라 줄줄이 배치된 다단계 하청 구조의 '사업자'들 역시 대자본의 지배력 아래 단단히 붙들려 있다. 이것은 협박과 강요의 불공정 거래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 주장은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기조로 각종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나 횡포를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대기업이 힘을 얻게 되는 지점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대기업의 힘은 그들의 경영 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지배력으로부터 나온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대'기업'의 문제라기보다는 자본의 문제다. 자본이 노동을 함부로 취급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지는 만큼 재벌과 대기업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슬에 노동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이나 가맹점, 대리점 등이 더욱 붙들리게 된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이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힘을 만드는 방식이다. 더욱 값싼 노동을, 더욱 낮은 위험 부담으로, 더욱 폭넓게 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 맞서는 노동자들의집단적 저항은 더욱 강경하게 진압한다.

우리가 서로 먹여 살리기 위해 필요한 노동들이 자본을 통해서만 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관계란 자본의 힘을 벗어날 수 없다. 화물차 운전기사가 운전 일을 하기 위해서는 CJ대한통운과 같은 유통 기업과 계약을 맺어야 한다. 유통 기업은 그를 고용하지 않고 화물차를 빌리도록 하고 오히려 보증금과 수수료 등을 받는다. 이 계약은 화물차 운전기사들이 운임은커녕 기업에 빚을 지게 만든다. (관련 기사 : "노예 계약 CJ, 우리 그냥 죽으란 건가") 이 억울한 사정을 사회는 '사업자'들 간의 불공정한 계약으로 읽는다. 그러나 갑을 관계는 갑을 '계약'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약 너머에 숨어 있는 갑을 관계가 계약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들의 '을'의 위치는 계약 조건만 공정하게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이들의 노동이 어떻게 '갑'에 붙들려 있는지, 계약 너머를 보지 않는다면 '갑'의 힘을 겨룰 수 없다.

섣불리 대안을 말하기 전에

'대기업'만 문제 삼을 때 갑을 계약의 당사자인 대기업의 모습은 바꿀 수 있어도 자본의 힘은 꺾을 수 없다. '갑을 관계'가 평등한 관계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불평등의 근원과 그 연결 고리들을 직시할 때만 불평등에 맞설 수 있다. 불평등이 어떻게 이토록 뿌리 깊게 우리를 옥죄고 있는지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다. 아니, 오히려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자본은 저 홀로 힘을 갖추어 불평등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드는 불평등의 장면들에는 그 힘과 우리가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살필 수 있는 힌트들이 있다.

불매운동은 자본에 타격을 줄 수 있다(남양유업 불매운동이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가 불매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을'인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사지 않을 때 잠시 누릴 수 있는 '갑질'의 힘이기도 하다. 그 위치는 '을'의 위치에 있는 서비스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때 불편을 성토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을'들과 함께하는 마음은 그 위치를 충분히 살피지 않으면 '을'들을 배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드러날 때 '갑'을 보지 못하고 '갑질'에만 눈을 돌리면 우리는 '을'들을 만날 수 없다.

불평등에 맞선다는 것은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존엄을 이룰 수 있다. 부당한 상황에 맞서기 위해 항의하고 호소하고 힘을 모으고 행동할 수 있다. 불평등은 그것을 가로막는 데에서 힘을 얻는다.

지난달에는 롯데백화점 입점업체 직원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진 직후 롯데백화점은 직원 전체에게 협박에 가까운 입 다물기를 강요했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 불법 파견 판정을 받고도 정규직화를 거부하는 자본에 맞서 철탑에 오르고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은 노숙도 허용하지 않겠다며 연행을 해대고 있다. 말하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곳,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떤 '을'들의 외침이 들리는지 귀 기울이자. 경제 민주화가 불평등을 해소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 것보다는, 힌트를 얻기 위해 우리의 위치를 조금 더 헤아려야 한다. '을'들의 연대는 그렇게 시작될 수 있고, 그때 '갑'의 힘은 사그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 글은 "[인권으로 읽는 세상] '갑을'의 대안이 경제 민주화라고 말하기 전에"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www.freeuse.or.kr을 찾아가면 됩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안철수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들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21일자 기사 '안철수가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들'을 퍼왔습니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한국사회 특수성 깊이 이해해야

안철수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후 선거판이 요동치고 있다. 안철수에게 쏟아진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생각할 때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안철수에게 쏠리는 관심과 지지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안철수표 국가발전모델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현안과 모순들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안철수 캠프가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점들을 몇 가지 열거하고자 한다.

한국사회가 지닌 특수성을 중심에 놓고 사고해야

안철수 캠프는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함에 있어 무엇보다 한국사회가 지닌 특수성에 착목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지닌 특수성을 열거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한국사회의 사익추구집단(재벌, 관료, 조중동, 검찰 등)과 진보,개혁 진영이 가진 물적, 상징적 자원의 비대칭성이 심각하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더욱이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이라는 공통의 절대목표가 있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는 무시하고 단결하는 반면, 진보, 개혁 진영은 계기만 있으면 분열을 거듭한다. 양 세력이 가진 자원의 크기가 의미하는 바는 자명하다. 사익추구집단은 설혹 실수를 하거나 집권에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언제나 기회가 있지만, 진보, 개혁 진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양 진영이 지닌 힘의 차이는 집권 기회뿐 아니라 집권 이후의 국정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신자유주의 이외의 한국사회 특유의 구조적 모순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사회는 식민통치, 외세에 의한 해방과 분단, 전쟁, 군사독재, 압축적ㆍ폭력적 산업화, 민주화 등을 1세기 만에 경험한데다 그 이행과정이 질곡으로 점철돼 있기에 식민, 분단, 반민주 등의 적폐가 여전히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런 적폐들이 반칙, 특권, 불공정, 비합리, 몰상식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구체적인 양태들이 공정한 경쟁의 부재, 승자 독식 및 패자부활전의 부재, 불로소득 추구행위의 만연, 패거리주의와 학벌주의의 기승, 사익추구행위의 창궐 등이다.

신자유주의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모순과 한국사회의 전근대성 혹은 불공정성에서 기인하는 구조적 모순은 구별되어야 하며 그 처방도 달라야 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신자유주의의 개념적 징표들을 나열해 보면 각종 정부 규제의 철폐, 경제의 금융화경향, 주주자본주의, 민영화, 시장개방, 무역자유화, 고용유연화, 경쟁의 촉진, 제조업에 대한 금융업의 우위,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등일 것이다. 확실히 신자유주의적 정책 가운데 어떤 것들은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이들이 더 가난해지는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현안인 양극화(산업간, 기업간, 지역간, 노동간, 계층간)의 주범이 신자유주의인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부동산 및 주식 불로소득의 편중으로 인한 자산양극화 및 부동산 가격 폭등, 기회(교육과 의료, 금융 서비스 등)불균등의 심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한 내수 시장의 위축 및 실업률 상승 등이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아닐까 싶다. 주지하다시피 위와 같은 문제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특권과 반칙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나 횡행하던 특권과 반칙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주름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한민국은 아직도 근대 이전에 있으며 특권과 반칙, 불공정성, 비정상성, 반/비합리성을 폐절하고 근대성과 공정성을 회복하는 것이 절박하다.

셋째, 한국인들 특유의 집단심성을 고려해야 한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특수한 역사적 기원과 경로를 통해 형성된 한국인들의 집단적 심성에 주목해야 한다. 증세하더라도 복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우세한 현실,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모델이 미국이라기 보다는 스웨덴이라는 여론이 우세한 현실 이면에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것 보다 좋다'라는 여론이 엄존한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집단 심성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즉 대한민국 국민들은 모든 걸 국가가 해 주는 후견적 국가 보다는 사회 안전망을 튼실히 구축해 주는 국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게임의 룰을 만들고 집행하는 국가, 출발의 합리적 평등과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지지하는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건국 이후의 역사적 경험과 발전 경로가 한국인들의 심성을 그렇게 주조한 것이다.

넷째, 토지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토지가 지닌 중요성은 새삼 긴 말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토지문제 해결은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첩경이다. 토지문제를 단순히 주거복지나 집값 안정 차원에서 다루지 말고 국가발전모델을 구성함에 있어 핵심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국가경쟁력 제고,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 담보, 자산 및 소득 불평등 완화, 부정과 부패 청산, 저성장모델의 탈피, 예산의 왜곡과 낭비의 시정 등을 실현할 길은 없다.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 시장과 노동에 대한 적절한 관점을 세워야

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며, 시장과 노동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도 안철수표 국가발전모델을 설계하는데 무척 중요한 포인트다. 국가는 개인이 창의와 자유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하도록 법과 제도로 보장하고, 경쟁에 참여할 수 없거나 경쟁에서 낙오한 개인들을 보살펴주는 후견적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 시장은 불완전하고 국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지만 현존하는 최적의 생산시스템이라는 인식, 노동은 생산요소의 하나이며 자본과의 힘의 비대칭성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가 헌법과 법률로 노동 3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관점이 시장과 노동에 대한 적확한 관점이 아닐까 싶다.

안철수표 국가발전모델은 정의롭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해야

안철수표 국가발전모델은 총체적이고 유기적이어야 하며, 현실적합성이 있어야 하고지속가능해야 한다. 또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형평, 분배와 효율 같이 길항관계에 있다고 평가되는 요소들이 그 안에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 요컨대 안철수표 국가발전모델은 정의롭고, 평등하며,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