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파생상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파생상품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2년 9월 9일 일요일

당국·은행·트레이더 모두 공모자였나?


이글은 이코노미 인사이트(Economy Insight) 2012-09-01일자 제29호 기사 '당국·은행·트레이더 모두 공모자였나?'를 퍼왔습니다.
Special Report Ⅰ ● 리보 사태 전말 파헤치기- ① 조작은 어떻게 이뤄졌나


유럽 거대 은행들이 지난 수년간 리보를 조작해왔다. 처음엔 트레이더들의 카르텔이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개입한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금리 카르텔'이다. 은행 스캔들은 과거에도 많았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규모의 스캔들은 처음이다. 정치권과 감독기관은 이번 사태를 은행들의 조직적인 소비자 기만 행위로 보고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들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감독당국·은행·트레이더가 서로 합작 또는 묵인한 한 편의 금융 사기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금융회사들은 민·형사 소송과 함께 수백억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_편집자

소규모 카르텔이 발단… 금융위기 뒤 은행 경영진도 금리 낮춰 보고하라 압박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이 리보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세계 금융시장에 파문을 일으켰다. 리보 사태는 바클레이스가 2005~2009년 차입금리를 고의로 낮춰 보고한 사실이 들통난 것을 의미한다. 바클레이스의 리보 조작 파문은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들의 탐욕을 보여주는 신호탄에 불과하다. 영국 3위 은행인 바클레이스가 리보 조작에 가담했다면 다른 글로벌 금융기관들도 공모했을 개연성이 높다. (슈피겔)이 밀착 취재를 통해 리보 조작의 전말을 파헤쳤다.
에두아르트 포메란츠와 롤프 마센은 사실 국제 금융시장이라는 거대한 상어 수족관 속에서 한 마리의 작은 물고기에 불과하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적한 마을에 근거지를 둔 이들의 헤지펀드 FTC캐피털은 겨우 1억5천만유로를 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 FTC캐피털의 창립자 포메란츠와 법률 담당 부서 책임자 마센은 커다란 상어들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존재가 됐다.
가지런히 자른 앞머리가 살짝 흐트러진 마센이 "리보(Libor·런던 은행 간 금리) 조작은 아마 역사상 가장 큰 금융 스캔들일 것"이라며 빈 사람 특유의 뼈 있는 유머를 섞어 말했다. 몇몇 국제 은행들이 수년간 리보를 조작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마센은 이같은 일을 그냥 넘기는 인물이 아니다. 그 또한 금융업계에서 잔뼈가 굵었고, 이제 사기를 당한 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영국과 미국의 금융감독 기관이 영국의 거대 은행 바클레이스에 5억달러의 벌금을 부과하고, 바클레이스의 최고경영자(CEO) 밥 다이아몬드를 해임시켰다. 이후 금융가는 일종의 전쟁 상황에 돌입했다. 금융기관 조사관들은 혐의를 받고 있는 용의자들을 공격하고, 사건에 연루된 은행들은 처벌이 완화되기를 희망하며 다른 은행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밀고하고 있다. 그리고 마센 같은 소규모 투자자들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마커스 에이지어스 전 바클레이스은행 회장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스 지점 앞에 서 있다. 에이지어스 전 회장은 리보 조작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뉴시스 REUTERS

500조달러가 넘는 파생상품 시장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10여 개 이상의 금융회사들이 조직적으로 리보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비판대 위에 올라 있다. 이같은 카르텔은 지금까지 담배 산업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감독기관들은 이를 '조직적인 기만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법무 담당 집행위원인 비비안 레딩은 '은행가'(Banker)가 아니라 '은행 조폭'(Bankster·Banker+Gangster)이라고 불러야 한다며 분개했다. 하지만 이같은 분노의 외침은 여러 담당 관청, 특히 뉴욕과 런던의 감독기관들이 자신의 실책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비친다. 감독기관들이 그들의 코앞에서 벌어진 범행을 몇 년 동안이나 모르고 지나쳤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은 정신을 차린 뒤에야 은행 내의 범인들을 매섭게 쫓고 있다. 그들의 조사 범위는 은행의 CEO까지 포함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6개 이상의 각국 관청이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특수감사 임무를 부여받은 10여 명의 독일 금융감독청(BaFin) 직원들이 몇 달 전부터 도이체방크에 파견돼 있다. 이들은 도이체방크 프랑크푸르트 본사를 감사하고, 머니 트레이더들이 일하는 런던으로 출장가고, 도쿄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도이체방크의 신임 CEO인 안슈 자인과 위르겐 피트셴도 예외 없이 조사관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했다. 리보 조작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간에 도이체방크의 투자금융 부문과 단기자금 거래 책임자였던 자인에게 이는 특히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리보와 유리보(Euribor·유로존 은행 간 금리)는 전세계적으로 수백조유로에 달하는 자금 거래의 기준으로 쓰인다. 은행이 기업가에게 변동금리로 대출해줄 때 그 계약의 기준이 되는 것이 유리보다. "심지어 콜머니의 조정에도 유리보가 결정적 가이드라인이 되는 사례가 많다"고 프랑크푸르트 금융경영대학 교수 팔코 페히트는 말한다. 특히 스페인은 수만 개의 은행 대출이 유리보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고, 미국에서는 수백만 개의 저당 계약이 리보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카르텔을 맺은 은행가들의 표적은 당초 전혀 다른 사업 분야였다. 이들은 애초 외환업무 부서의 동료들을 위해 거대한 이자율 파생상품과 통화 파생상품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 이 분야의 거래 규모는 2011년 말 기준으로 567조달러에 달했다. 이는 금리가 0.01%포인트만 변해도 많은 은행가들에게 수억달러의 수익 또는 손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물론 감독기관조차 최근 몇 년 동안 감독에 느슨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다.
리보 결정에는 최대 18개 은행이 참여하는데 여기에는 도이체방크도 포함돼 있다. 매일 아침 각 은행은 당일에 담보 없이 자금시장에 대출해줄 수 있는 금리를 보고하고, 금융정보 서비스 업체 톰슨로이터가 이 정보를 바탕으로 금리 평균값을 산출한다. 유리보 산출도 비슷한 방식에 따라 이뤄진다. 다만 유리보 결정에는 43개 금융회사가 참여해 리보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다를 뿐이다.
하지만 이같은 금리 산출이 신뢰할 만한 것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데이터에 반영됐어야 할 단기자금 시장은 경제위기 이후 사실상 죽어 있는 상태다. 현재 담보 없이 대출을 해주는 은행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지금까지 은행 CEO도 감독기관도 주요 금리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각한 이익 충돌 상황에 놓인 일반 트레이더들이 금리 보고를 담당하는 사례가 자주 있었고, 이들은 이를 통해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독일 금융감독청장 엘케 쾨니히는 이같은 상황에 대해 "리보 조작을 하라고 대놓고 부추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 남성이 이탈리아 로마의 도이체방크 지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REUTERS
파생상품 직원들의 비밀스런 회동

2005년 모로코 출신의 한 젊은 머니 트레이더가 바클레이스은행에 입사했다. 현재 44살인 필리프 모르유세프다. 바클레이스는 그가 거쳐간 많은 직장 가운데 하나다. 그는 소시에테제네랄, 바클레이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모건스탠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본 노무라은행에서 일했다. 노무라은행은 모르유세프가 금리 카르텔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지자 그를 해고했다.
런던의 금융가에서 모르유세프는 쿨한 성격으로 그다지 튀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스쿠버다이빙과 독서를 좋아하는 그는 아내, 두 자녀와 함께 런던의 부촌인 세인트존우드 지역의 250만파운드짜리 빌라에 살았다. 바클레이스에서 일하는 동안 모르유세프는 이자율 파생상품을 거래했다. 그와 동료들은 리보 또는 유리보의 미세한 변화가 그들에게 어떤 손실 혹은 수익을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금리의 예상치 못한 변동을 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모르유세프는 거의 매일 금리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은행 내·외부의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전자우편을 보내 연락을 취했다. 또 리보 보고를 담당하고 있던 동료 직원, 즉 머니 트레이더들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문의를 했다.
정글 같은 투자신탁 세계에서 머니 트레이더의 서열은 금융위기 전까지 꽤 아래쪽에 있었다. 큰 거래를 담당하지 않는 이들에게 주식이나 채권 딜러들이 받는 어마어마한 상여금은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한 전직 투자은행 직원은 "머니 트레이더들은 항상 먹이사슬에서 맨 아래쪽에 위치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 먹이사슬의 약자들이 소속 은행을 떠나 한 달에 한 번 정도 뉴욕, 런던, 프랑크푸르트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모임을 열었다. 은행에 돈이 넘쳐흐르는 것처럼 보였던 2000년대 중반, 이들은 모두 같은 처지에 있었다. 거대 금융기업의 먹이사슬에서 항상 동료들에게 비웃음을 사거나 무시를 당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금리가 시시각각 어떻게 변하는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 트레이더 한두 명이 금리의 상승과 하락을 조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늦어도 2005년에는 트레이더들이 그들의 작은 모임에서 서로 합의하면 자신들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갖게 될지 깨닫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같은 합의를 위해서는 거대 기업의 공식적인 계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친한 친구들 사이에 간단한 약속이면 충분했다. 이쪽에서 손짓 한 번, 저쪽에서 점심 식사 한 번, 이 정도면 일본에서 유럽을 거쳐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인 카르텔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리보 조작에 성공한 뒤 한 딜러는 "시간 나면 한번 들러, 볼랭저 샴페인을 터뜨릴 테니"라고 동료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영국 금융감독청장 어데어 터너는 이 전자우편을 두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 문화의 증거"라며 혀를 찼다.
"금리가 변동하지 않으면 난 죽은 목숨"이라고 한 딜러가 2006년 10월 리보를 담당하는 동료에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2005년부터 2009년 5월 사이 딜러들은 최소 173차례 이같은 요청을 했고 종종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 금융감독청(FSA)의 조사 기록에 '딜러 E'로 칭해지는 모르유세프는 유리보 전문이었다. 그는 30억유로를 특정 방향의 금리 변동에 베팅했다. 그는 "(금리 조작) 비결은 절대로 혼자 하지 않는 것"이라며 HSBC·소시에테제네랄·도이체방크에서 그와 손발을 맞춘 외부 동료에게 자랑스럽게 설명했다고 한다.
처음에 딜러들이 원했던 것이 자신들의 보너스를 올리는 것이었다면 금융위기 동안 금리 조작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됐다. 2007년 은행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많은 금융회사들의 자금 조달이 더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은 일반적으로 리보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자 바클레이스의 최고 경영진들이 리보 담당 딜러들에게 차입금리를 더 낮춰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2008년 10월께는 금리 조작이 바클레이스의 생존 자체를 좌지우지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10월29일 현 영국은행 부총재 폴 터커가 바클레이스의 CEO 다이아몬드에게 걱정스레 문의했다. "바클레이스는 왜 요즘 그토록 지속적으로 높게 리보 금리를 보고하느냐." 다이아몬드는 최근 의회 청문회에서 터커가 자신에게 더 낮게 리보 금리를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터커는 이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같은 날 터커와 나눈 전화 통화에서 정치적 압력을 엿볼 수 있는 메모를 남겼다. 다이아몬드는 이 사안을 놓고 단기자금 거래 직원들과 논의했다. 먹이사슬의 최하위 그룹이 돌연 최고경영자의 자문 상대가 되고, 은행을 구원할지도 모르는 인물이 된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 시내에 걸린 UBS 로고. UBS는 리보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영국과 미국의 금융 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AP

금융위기 이후 은행 차원 개입 혐의

2008년 가을, 자금난에 허덕이던 은행은 바클레이스뿐만이 아니다. 바클레이스 외에 현재 유력한 '용의자'로 손꼽히고 있는 스위스은행(UBS), 시티그룹 그리고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이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당시 리보 보고에 참여했던 독일의 서독일지방은행(WestLB) 역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이 보고해온 리보 금리를 보면 그런 위기 상황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도이체방크는 2011년 가을 당시 리스크 담당 부서 책임자인 휴고 뵈치거가 내부 감사를 했다. 수백만 개의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차트를 판독했다. 급기야 뵈치거는 법률회사에 조사를 의뢰했고, 당시 법률회사 담당 팀의 규모는 50명에 달했다. 하지만 조사를 할수록 좌절만 거듭됐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인 조사관이 혐의가 있는 딜러 두 명의 이름을 제시한 뒤에야 뵈치거는 당시 은행 총재인 요제프 아커만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할 수 있었다. 아커만은 매주 조사 결과를 보고받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게 될지 짐작하고 있었다. 두 명의 딜러는 즉시 해고됐다.
아커만, 뵈치거 그리고 도이체방크의 전 감사팀장 클레멘스 뵈르지히가 도이체방크를 떠난 뒤 새로운 감독이사회 의장 파울 아흐라이트너가 리보 스캔들 처리를 맡고 있다. 그는 은행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보를 조작한 적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다. 또 아흐라이트너는 총재인 안슈 자인이나 최고 경영진의 일부가 이 스캔들에 연류됐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 두 명의 정신 나간 딜러가 카르텔을 주도했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이들의 상사나 규정 준수를 감시하는 직원들은 왜 조작 행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도이체방크는 통화와 금리 거래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 기업임을 자부하고 있다. 리보 결정을 위한 패널에도 언제나 속해 있었다. 그런데도 도이체방크는 이번 리보 스캔들에서 자신들이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리보가 조작되던 기간 동안 단기자금 시장을 책임지고 있던 알란 클로에테는 이같은 조작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는 왜 리보 관련 조사와 내부 감사가 이미 실시되는 상황임에도 지난 3월 안슈 자인에 의해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진의 한 명으로 임명될 수 있었을까? 일부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클로에테가 리보 문제에 관해 잘못한 것이 없다는 증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클로에테가 이런 상황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 역시 리보 스캔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스벤 뵐 Sven Böll /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 크리스토프 파울리 Christoph Pauly / 토마스 슐츠Thomas Schulz / 안네 자이트 Anne Seith (슈피겔) 기자

ⓒ Der Spiegel 2012년 31호 Das Kartell 번역 황수경 위원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부동산과 금융의 결합, 한국판 서브프라임 서막인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05-24일자 기사 '부동산과 금융의 결합, 한국판 서브프라임 서막인가?'를 퍼왔습니다.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빗장 풀기의 1막 1장 : 강남 투기지역 해제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신화가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시절, 주택담보대출(모기지론)은 자본주의의 최첨단 금융기법 신기원을 열어준 것처럼 보였다. 이자가 쌓이는 속도보다 빠르게 집값이 올라갈 때는, 너도 나도 대출을 내서 집을 사고 되파는 것만으로도 꽤 쓸 만한 돈벌이가 되었다.

주택담보대출이 성행하자 세계금융의 핵심이라 할미국에서 돈벌이의 새로운 수단을 고안해냈다. 서민들이 대출을 받으면 은행과 채권·채무 관계가 성립하는데, 담보대출 수익률이 높아지자 이제 채권을 거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이 계속 올라가면 서민들은 집을 되팔아 빚을 갚는데 어려움이 없었기에, 담보대출 채권의 수익률도 안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런데 미국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택담보대출 채권과 다른 금융상품을 섞어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냈다. 어떤 금융상품들을 얼마의 비율로 섞고 여기에 이자율(채권의 경우 수익률)을 얼마 적용해서 판매하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수학 공식까지 탄생했다.

미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많은 상품이 미국으로 수입되어도, 부동산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바탕으로 탄탄한 소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성장 동력의 70%가 탄탄한 소비에 근거해 있었다.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는데, 오히려 부동산을 통한 수익은 늘어났기에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공식은 "집값은 내려가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만 작동 가능한 것이었다.


▲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한 주택이 매물로 나와 있다. ⓒ로이터=뉴시스

썩은 사과 하나가 과일바구니 전체를 삼키다

서브프라임(Subprime)은 쉽게 말하면 개인의 신용등급을 뜻한다. "모자란다"는 뜻의 '서브(Sub-)'라는 접두사가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프라임(Prime)보다는 낮은 신용등급을 의미한다. 미국에는 넓게 보면 3가지 신용등급이 존재하는데, 프라임, 알트에이(Alt-A), 서브프라임이 그것이다. 다시말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의 낮은 등급, 즉 서민들의 주택담보대출을 말하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서브프라임 등급에서까지 성행했다는 말은, 그만큼 광범위한 서민들이 이런 대출에 의존해 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제 그의 연봉이 얼마냐가 아니라 그가 은행에서 얼마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부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신화가 깨져버렸다.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집값의 70~80%까지 대출을 받아도 수익이 나던 시절과 달리, 이제 집값이 대출금보다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대출상환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서브프라임 등급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서민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채권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파생상품 시장에도 비상벨이 울렸다. 다른 금융상품이 아무리 수익률이 높더라도 파생상품에 끼워 판 담보대출 채권 부실이 심각해지자, 파생금융상품 전반의 수익률이 떨어졌다.

서민들이 파산하고 부실대출이 늘어나자, 금융기관들이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업체 몇 개 파산할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 등 굴지의 투자은행까지 무너져 내렸다. 이게 바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몰고 온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의 전개과정이다.

ⓒAP=연합뉴스

부동산과 금융의 합작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5.10 부동산 대책'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마지막 남은 투기지역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빗장을 풀어버린 것을 두고 'MB의 변치 않는 강남 사랑'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누누이 지적해 왔지만, 'MB 중심 프레임'에 갇혀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문제를 정반대의 각도에서 접근하는 보수적인 경제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들여다보자.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강남을 투기지역에서 해제한다고 해서 곧바로 주택거래가 활성화되지는 않는다. 부동산시장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DTI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DTI(Debt to Income)란 무엇인가? 총소득에서 대출상환금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예를 들어 내 소득이 연간 4000만 원인데 대출 원리금을 갚아나가는데 1년에 2000만 원이 소요된다면 DTI는 50%가 된다. DTI 규제는 일정 비율 이상으로 DTI가 초과되지 않도록 대출 규모를 제한하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DTI 규제를 40%로 적용한다고 하면, 나는 대출 원리금을 갚아나가는데 연간 1600만 원(연소득 4000만 원의 40%) 이상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용으로만 보면 DTI 규제는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금융 정책에 가깝다. 그런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 핵심이 DTI 규제 완화가 되어야 한다니? 바로 여기에 부동산과 금융이 긴밀히 결합되는 첨단 자본주의 비밀이 놓여 있다. 사실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말 속에 이미 부동산과 금융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지 않은가!

가계 부채 1000조 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주택담보대출만 390조 원이 넘어 전체 가계 부채의 4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가계 부채 중 대출만 따로 떼어놓으면 약 640조 원 규모이니, 이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가계 대출에 대한 정책은 이제 부동산 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빗장 풀기는 시작에 불과

정부는 5.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DTI 규제 완화 논의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되살려보면, 강남 3구를 투기지역에서 해제하는 문제 역시 작년까지만 해도 이 정부에서 논의가 금기시되던 사안이었다. 기존 입장을 전격적으로 뒤집으며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은, 정부가 적신호를 느꼈기 때문이다. 투기지역 해제와 함께 강남지역에 그동안 적용되던 DTI 비율을 40%에서 50%로 완화해 주었다.

그런데 'MB의 강남 사랑'을 비난하는 이들과 정반대의 이유에서 보수적인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너무 미흡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DTI 규제라는 빗장까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정부가 DTI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입장이 바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쪽에서는 "금융기관이 충분히 개인의 신용등급을 조사하여 부실 대출 가능성을 줄이고 있으니 DTI 규제를 완화·폐지해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서 서브프라임 사태 전개에서 봤던 '개인신용등급'이라는 익숙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사실 DTI 규제라는 것은 연소득이라는 기준으로 개인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규제를 폐지한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대출 규모와 승인 모두 금융기관의 자율에, 즉 그냥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강남 투기지역 빗장 풀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경제 상황이 점점 악화되는 것이 피부에 느껴지기 시작하면, 언제든 정부는 입장을 바꾸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9명의 후보들 중 이혜훈 의원을 제외한 8명 모두 DTI 규제 완화에 찬성 의견을 제시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15일 제1차 전당대회에서 개표 후 손 흔드는 새누리당 황우여 새 대표와 전당대회 후보들. ⓒ연합뉴스

점점 안개 속에 빠져든다 : 불투명한 미래

(인사이드 경제)는 파국만을 예고하는 '닥터 둠(Dr. Doom)'을 자처할 의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떠한 조치가 취해진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는 점점 예측 불가능한 안개 속으로 빠져든다는 사실이다.

강남 투기지역 해제와 DTI 규제 완화가 부동산 거래량을 늘리게 될까? 예측할 수 없다. 집값이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하는 수요자들이 많아지면 거래량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없을 경우, 부동산 거래는 안 되면서 DTI 규제완화로 가계 대출만 늘어날 수도 있다. (강남지역 DTI 규제가 40%에서 50%로 완화되면서, 가구별로 집을 담보로 하여 수천만 원 규모 추가 대출의 길이 열린 상태이다.)

DTI 규제를 완화·폐지하면 가계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인가? 알 수 없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규제가 완화된다 하더라도 은행들이 부실을 우려해 서민에게 대출을 늘리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과감하게 대출을 늘릴 수도 있다. 오직 확실(?)한 사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뿐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들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미국 금융위기와 함께 집값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일 뿐이다. 여전히 가계 부채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뉴시스
게다가 집값이 올라가던 시절에 급증한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만기가 점차 도래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현재 390조 원에 달하는 주택담보대출 중 올해에 만기가 도래할 것으로 추정되는 액수만 무려 50조 원에 달한다. 집값이 오를 것을 잔뜩 기대하고 대출을 받았던 서민들이, 집값 하락으로 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여서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체 가계대출 중 50세 이상 고연령층의 가계부채 비중은 2003년 33.2%에서 2011년 46.4%로 무려 13.2% 포인트나 상승했다. 은퇴를 앞둔 이들이 노후설계를 위해 거액의 대출을 안고 집을 장만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특히 집값이 빠르게 상승하던 2005~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 고연령층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했다. 이미 상당수가 은퇴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상환능력에는 문제가 없을까?

올해 초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경영계획서에 따르면, 올해 25조 원의 가계 대출을 늘릴 예정이며 특히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에 주력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담보대출의 위험성이 늘고 있음을 은행들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신용대출을 늘린단 말인가? 주택 외에 특별한 담보가 없는 낮은 신용등급의 서민들에게 말이다.

결국 신용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은행이 대출 규제를 완화할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부실 대출 위험성이 늘기 때문에 대출 이자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5.7% 증가에 머문 반면 비은행권 대출은 11.6%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서민들이 높은 이자율을 물더라도 대출 문턱이 낮은 비은행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은행이 대출 규제를 완화한다? 이건 DTI 규제 완화론자들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했던 얘기 아닌가?

진퇴양난(進退兩難) : 그러나 길이 본래부터 두 갈래는 아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규제를 풀자니 무분별한 대출 증가로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우려되고, 규제를 묶자니 시중에 돈이 돌지 않게 되어 경기침체(디플레이션)가 우려된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명박 정부는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반드시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자본의 입장에 충실한 정권의 성격상, 현재로서는 규제 완화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규제를 묶는 길이 좀 더 서민적인 방식일까? 수차례 강조하지만 'MB 중심 프레임'에 빠져서는 제대로 된 시야를 확보할 수 없다. 규제를 묶는 경우 실제로 투자·대출·소비가 위축되어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나 야권연대가 정권을 잡는다 한들, 경기침체 위험 앞에 규제완화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군말을 덧붙이자면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규제완화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이들이다. 어떤 이는 DTI 규제를 노무현 정부가 만들었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 규제를 풀려 한다는 식의 'MB 중심 프레임'을 설파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저축은행을 활성화하고 PF 대출의 각종 규제를 풀어헤치면서 중요한 빗장들을 다 풀어버렸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이 너무 과열되어 집값상승률이 물가인상률의 몇 배에 달하게 되자,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는 판단으로 아주 소폭의 규제에 해당하는 DTI 규제를 고안해낸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부동산 거품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주요 규제완화 정책을 확실히 밀어붙였던 세력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길이 두 갈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중에 돌아야 할 돈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를 찾아보면 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00대 기업 등기임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3억7670만 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23.8% 올랐다고 한다. 지난 4년간 법정최저임금은 고작 평균 5%가 올랐는데 말이다.

등기임원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곳은 삼성전자로 1인당 무려 109억 원에 달했다. 로또 당첨금보다 많은 돈을 한해에 벌어들이고 있다. 직업병인 암으로 숨져가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 높은 어르신들은 돈방석에 앉아 있다. 왜 노동자들 임금은 23.8%씩 올려주지 않는 것인가?

ⓒ연합뉴스

돈이 없다고? 한국의 10대 그룹 사내유보율이 이미 1200%를 넘어섰다. 쉽게 말해 자기 자본의 12배에 달하는 돈을 곳간에 쌓아두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 등골이 휘어지도록 일 시켜서 정부 한해 예산보다 많은 수백 조 원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 돈만 노동자와 서민들의 수중에 풀려도 가계 부채나 경기침체 걱정은 덜게 될 것이다.

"어허!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나? 기업하는 사람들 돈을 몰수해서 노동자·서민에게 분배하자구? 그런 위험한 사상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용납되질 않아!" 벌써 이런 말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그렇다. 이놈의 시스템은 두 갈래 길 외에 다른 길을 상상하는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통진당 사태를 뒷배경으로 깔아놓고 눈을 가린 후, 국가보안법이란 사슬로 이런 사상을 퍼뜨리는 이들을 잡아가두는 공안몰이가 시작된 이유 아닐까? 어허!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라 당장 도 몸을 사려야 될 때가 온 것일까.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