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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8일 화요일

보수정치 시대와 386정치인의 시대정신

이글은 대자보 2013-05-27일자 기사 '보수정치 시대와 386정치인의 시대정신'을 왔습니다.
[진단] 젊은 야당 정치인의 반성과 성찰만이 진보정치 되살려낼 희망이다

지난해 대선패배 이후 제1야당인 민주당 안팎에서 정권탈환 실패에 따른 책임론, 쇄신론이 비등하다. 얼마전 민주당은 5.4전당대회를 치러 지도부를 교체했는데 당선자의 면면을 따져보면 구주류의 몰락과 함께 386정치인들이 보이지 않는 점도 특징적이다. 대표적인 386들은 아예 출마를 하지 않았고, 그나마 입후보한 후보들도 모두 낙선하였다. 국민과 당원들이 386정치인들에게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대선시 획득한 48%의 지지표를 들어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받는 고통보다 대선의 결과로 별다른 희망없이 이 답답하고 암담한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국민들의 고통이 더욱 크기에 그 비판은 지극히 정당하다. 48%에 자족하는 정치로는 절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승리와 패배, 그 중간지대에 있는 유권자층의 섬세한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정치인과 정당만이 승리할 수 있다. 불과 몇 %의 차이로 패배했지만 그 안에 시대정신과 국민의 다수 정서가 녹아있다고 봐야한다. 그러므로 특히 미래정치의 주역이 될 젊은 야당 정치인들의 치열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것이다. 

바야흐로 보수의 시대가 돌아온 듯하다.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까지 10년 연속 보수세력의 집권이 이루어졌으며, 제1야당 민주당 내부의 우파는 진보적 이념의 과잉이 대선 패배의 주된 원인이라고 성토하며 강령 개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진짜 진보정당은 사분오열되어 지리멸렬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서구적 기준에서 볼 때 민주당이 진보세력이라기보다 보수세력에 가깝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보수의 천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정치를 지배해온 주된 흐름은 보수정치 내부의 주도권 다툼, 더 구체적으로 말해 극우보수세력과 온건보수세력의 각축전이라 규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나라의 극우보수층이 볼 때는 민주당 정도의 온건보수세력조차도 때로 좌파, 빨갱이로 간주된다. 그것은 과거 독재정권 시대부터 권력에 협조하지 않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어온 양심적 보수에 대한 적대감에서부터 기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우군이 아닌 모든 사람들을 빨갱이로 매도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생존방식이기도 했다. 때로 보수야당 내부에서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진보적 목소리들은 극우파들의 확신을 더욱 짙게 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 목소리들은 주로 과거 운동권 출신인 386세대 정치인들로부터 표출된다. 특히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유연한 접근과 평화적 해법의 강조는 북한에 대한 극우보수세력의 원초적 적개심과 맞물려 집중적 성토의 대상이 된다. 

복지정책의 확대 이슈 역시 그러했다. 2010년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시발점으로 복지를 이슈화시켰을 때 새누리당의 첫 대응은 좌파매도 공세였다. 하지만 양극화의 폐해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민생복지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국민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오세훈 전서울시장의 추락이 상징하는 시대정신의 충격은 컸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후보가 복지정책과 경제민주화 이슈를 들고 나온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세력은 그것을 시대적 대세로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복지확대의 불가피성을 인정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복지는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입장 위에 서있다. 보수세력은 여우의 간지를 발휘하여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술 수단으로서 그것을 적극 활용했을 따름이다. 실상은 원조보수시대의 부활이다. 

그렇다면 2012년 야당의 연이은 패배에 대해 386정치인들은 얼마나 책임이 있는 것일까? 최근 민주당 내부의 한 인사는 386세대들이 당 운영을 주도했으며 민주당을 정파적 패권주의의 사당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비판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386의 역할을 과대평가한 데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과 내부성찰의 초점이 다른 데서 찾아져야 한다고 본다. 민주당 386정치인들은 통합진보당의 386세대와는 달리 당 운영을 주도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과거의 운동정신을 망각한 채 뿔뿔히 흩어져서 각기 다른 지도자들을 추종한 속물적 계파정치에의 매몰이 문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386세대들이 과거의 동일한 사고틀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치적 견해들로 분화해가고 그것에 기초한 정파활동을 행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민주당 내부의 다수 386세대들은 정치적 견해에 따른 정파활동보다는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줄서기, 줄잡기에 급급한 행태를 보였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당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실무부대로서 성실하게 복무하면서 시대정신의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린 이들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민주당이 마땅히 수행했어야할 시대적 역할, “불공정한 특권구조의 해체와 사회경제적 약자의 대변”이라는 소명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 결과 국민들이 점차 민주당을 외면하게 되면서 이길 것으로 예상되던 총선에 패배하였고, 대선에서는 적은 차이나마 정권마저 새누리당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386세대의 과잉책임론을 비판하면서도 왜 이런 패배들이 386의 책임이라고 또 말하는가? 그것은 민주당의 보수적 토대 속에서 그나마 386만이 민주당의 시대적 책임 수행을 견인할 수 있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공정한 기회의 보장과 사회경제적 약자의 정의를 지켜주는 일은 민주당 내부 보수정치인들의 몫이 아니라 386정치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새누리당 내에서 당의 혁신과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는 것이 극우적 중진 의원들이 아니라 젊은 386 보수정치인들의 몫인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친노든 비노든 민주당의 386들은 대통령과 당지도자들을 교주화하고 계파의 관점에서 추종할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입각해 그들에게 동지적 비판을 제기하고 견인했어야 했다. 386정치인들의 집단적 노력은 무엇이 시대정신이고 자신들의 사명인지를 찾고 정련하는 데 바쳐져야 했다. 그런데 이런 노력들이 무시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진 데에 민주당의 비극이 있었던 것이다. 

이같은 민주당 386정치인들의 한계는 광주정신의 올바른 계승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다. 1980년의 광주항쟁은 단지 정치적 민주화만을 요구한 운동이 아니었다. 차별당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의 사회경제적 권리 요구가 분출된 민중운동이었다. 그 전해인 1979년의 부마항쟁도 마찬가지였는데, 처음에는 학생들의 작은 민주화요구 시위로부터 시작되어 나중에 기층 민중들이 결합한 거대한 민중봉기로 치달은 것이 그 단적인 양상이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권력교체 그리고 추상적 정의에만 몰두해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적어도 국민들이 우리를 그런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특히 경제적 형편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불안해져가는 근로대중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우리는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치집단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것이 그간의 현실이었다. 

또한 386정치인들은 때로 우리 사회의 집단이성이 인식하는 바, 북한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을 보여주지 못했다. 진정한 민주주의자(혹은 진보주의자)라면 당연히 북한체제의 문제점들, 특히 봉건적 전제정치, 권력세습 등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적 입장을 천명했어야만 했다. 그리고 북한인민의 인권과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진영의 다수 386정치인들은 북한체제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른바 ‘내재적 접근론’을 취함으로써 보편적 상식의 틀을 벗어나는 언행을 일삼기 일쑤여서 민주주의자로서의 참 면모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런 노력들은 정부의 남북협력정책, 평화정책과는 별개의 개인적 실천으로 전개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주동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386정치인들이 자신의 임무를 배반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이 직면한 최대의 정치적 실패는 신뢰의 실패이다. 야당은 몇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 다수 국민들에게 구태의 집단으로 비쳐지고 있다. 특히 386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다는 점과 애초 정치입문 초기에 받았던 기대 때문에 더욱더 실망스러운 평가를 얻고 있다. 우선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봉사의 이미지가 퇴색되어버렸다. 야당과 진보정당 정치인들이 과거 민주화운동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경력 때문에 새누리당 등 보수정치인들에 비해 국민들로부터 높은 도덕적 평가를 얻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도덕적 측면에서의 상대적 우위는 여전할지 모르지만 이제 국민들은 그 점 때문에 야당 정치인들을 더 높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득권력이 되어버린 야당 정치인들(여당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는 국민들이 더많이 목격되는 것이 현재의 민심이다. 국민의 고통에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정치인들, 이것이 국민 다수가 느끼는 정치인상이다. 이른바 안철수현상은 국민들의 이런 심정적 반발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둘째는 국가 경영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야당은 국민들로부터 우리 사회와 국가가 직면한 엄혹한 현실을 경영해나갈 능력이 있는지 의문시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금 이대로 가서는 성장발전도 복지확대도 다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의 복잡다단한 현실은 정당들로 하여금 전지구적 경쟁체제 속에서 기업경쟁력, 국가경쟁력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또 양극화가 초래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심화를 완화하고 사회통합을 기할 수 있는 해법은 무엇인지 하는 등의 모순되는 제반 문제들을 동시에 타개해나갈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점들에 대해 현재의 집권자인 박근혜대통령도 특별난 해법을 갖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신중함과 문제의식의 소유라는 점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 신뢰를 더 얻은 것같다. 야당과 과거의 진보세력들은 이렇게 상호충돌하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너무 단순하게 한 가지 측면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때론 입장을 정반대로 바꿔가면서까지 말이다. 그러니 국민들로부터 국가경영능력과 자세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천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하루 종일 땀흘려 열심히 일해도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 교육시킬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국민들은 한국호가 어디로 가야 있는지 길을 밝혀주고 비전을 제시할 통찰력있는 정치지도력을 소망하고 있다. 이러한 비전과 지도력을 만들어내는 일이 과거 세대보다 386세대에게 더 용이할 것은 자명하다. 또 젊은 세대가 마땅히 자임해야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구세대 선배들에게 미룰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러한 사명을 게을리할 때 386정치인들은 그야말로 구태정치의 계승자로 낙인찍혀버릴 것이다. 안철수의원의 부각도 국민들이 그의 정치적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하지만 뭔가 새로운 비전을 우리 정치에 제시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안적 비전이 IT산업의 부흥같은 작은 차원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업과 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고 국가발전의 잠재적 기초가 되는 교육 등 제반 사회 영역에서 지배적 가치를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과 노동의 존엄한 가치를, 그리고 개인과 가족의 행복한 삶에 대한 존중을 우리 사회의 지배적 작동 원리로 앞장세우는 것이다. 인본사회, 인본경제의 원리가 관철되고 꽃필 때 제로성장 단계에 접어든 우리 경제도 다시 성장잠재력을 풍성하게 되살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 젊은 야당 정치인들의 반성과 성찰만이 민주당, 진보정치를 되살려낼 희망이라는 김영춘 전 의원 © 김영춘 전 의원 누리집

필자는 386정치인들이 이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현을 위해 이제 과거의 이념적 고정관념(이념은 사라졌으나 고정관념은 남았다)을 벗어나 과학적 자세로 철저하게 실증하고 공부하는 정치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정련된 대안을 집단 실천하는 정파적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 길에 민주당이, 진보정치가 되살아날 희망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서 이미 그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정치인들이 있으니 조만간 가시적 성과로 드러났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여기에 쓴 이 글이 다른 이들을 폄하하려는 글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성찰과 자기비판을 포함해서 386정치인들의 문제를 냉정하게 짚어보는 고백록으로 읽혀졌으면 좋겠다. 

* 김영춘 전. 국회의원.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에 출간된 기고문입니다.


김영춘

2013년 1월 24일 목요일

저소득층이 외면하는 진보정치, 어떡하지?


이글은 미디어스 2013-01-23일자 기사 '저소득층이 외면하는 진보정치, 어떡하지?'를 퍼왔습니다.
계급투표가 실현되도록 할 수 있는 방법과 향후 전망

‘왜 저소득층은 진보정당을 지지하지 않을까?’ 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오늘날의 진보정치는 ‘서민은 서민정당을 지지하자’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일종의 ‘계급투표’를 전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현된 예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은 의문들이 던져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러한 의문은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연구 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여론조사 결과나 통계 등을 통해 추론한 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었다.
23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가 내놓은 ‘사회계층과 투표 선택’ 연구는 이러한 추론에 또 하나의 근거로 작용하게 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통계청이 밝힌 우리나라 2012년 3분기 평균 가계소득(414만 2천원)을 기준으로 하(199만원 이하), 중하(200~399만원), 중(400~499만원), 중상(500~699만원), 상(700만원 이상) 등 5개로 소득계층을 구분할 경우 가장 소득이 높은 상위계층은 18대 대선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처지에 충실한 투표를 했다. 상위계층의 57.4%가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것이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한 경우보다 약 15% 높은 것이다. 이들은 또한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등 진보세력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의 계급적 처지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하위 집단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박근혜 후보가 65.7%의 지지를, 문재인 후보는 31.4%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를 검토하면 저소득층의 정치적 지향이 보수층에 쏠려있다는 결론을 내기에 충분한 것이다. 즉, 서민을 대변하겠다는 이념적 지향을 갖고 있는 정치세력을 저소득층이 지지하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내며 '노동계의 입'으로 불리기도 했던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 보좌관. ⓒ권우성(오마이뉴스)

그간 진보진영에서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이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해왔다. 진보진영의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꼽히는 손낙구 보좌관(최원식 의원실)의 경우 ‘부동산 계급사회’ 등의 저서를 통해 부동산의 소유 등을 기준으로 계급배반투표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지 여부를 다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저소득층이 보수적 지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중 진보진영에 표를 던질만한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하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이다.

계급배반투표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응

그래서 일각에서는 저소득층이 실질적으로 투표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 등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윤현식 진보신당 정책위원은 2012년 9월 경 한국정치학회의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투표참여 실태조사에 관한 연구(2011)’를 인용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고용계약 등에 따른 노동조건 때문에, 다시 말해 먹고 살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한 비율이 무려 70%에 육박한다’며 투표시간 연장을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참고 : , 진보신당 홈페이지)
또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진영의 선거전략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한다. 진보정당에서 오랫동안 지역정치 활동을 한 활동가는 ‘선거 때 언론의 관심을 받는 의제들은 저소득층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들이 많다’면서 ‘평소에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말하다가도 선거 때가 되면 관심을 많이 받는 의제들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히 2012년 총선 등에서 ‘야권연대’, ‘정권심판’ 등의 의제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그는 주장했다.
진보정당들이 특정 계층을 겨냥하기 보다는 전체 대중을 겨냥하고 던져온 메시지들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다 최근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는 한 진보정의당원은 ‘계급투표보다는 오랫동안 진보정치가 보수정치보다 깨끗하고 유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에 더 공감해왔는데 더 이상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돼 실의에 빠져있다’고 고백했다. 소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건’ 등 때문에 진보정치가 깨끗하고 유능한 것이 아니라 더럽고 음모적이라는 인식이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정당에 비해 열악한 지역 조직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진보신당의 지역당원협의회 관계자는 ‘보수정치인들은 아파트자치회나 주민자치위원회, 하다못해 성당이나 교회 등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을 자신의 핵심 지지자로 만들 수 있다’면서 ‘진보정치에게도 자신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들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구로 민중의 집 내부. 진보신당의 경우 각 지역조직에서 민중의 집 등의 '거점 사업'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참세상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민중의 집 운동’등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지난 해 8월 정경섭 마포 민중의 집 대표는 ‘민중의 집 : 술과 이웃 토론과 배움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집’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탈리아, 스웨덴, 스페인 등의 서유럽 국가에서 발달했던 민중의 집을 소개한 바 있다. 마포 민중의 집은 ‘동네 주민들과 만날 수 있는 지역 단체들의 사랑방’을 자처하며 방과후 교실, 자전거·독서 등 각종 소모임, 밥상모임 등을 통해 주민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지역의 대형 마트 입점 투쟁 등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주민 조직화를 도모하고 있다.

‘계기’가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새로운 시도들은 단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그 자체로 제각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저소득층이 진보정치를 지지하지 않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조건들로 충분한 것인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당장 놓여있는 정치적 상황들이 문제다. 진보정치가 위기 속에서 활로를 찾았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어떤 ‘계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2002년 지방선거에서 8%의 정당득표를 얻은 동력을 생산적으로 활용해 2004년 10여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것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등의 진보정당들은 그 당시 확보했던 역량들을 소진하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 당시 민주노동당의 성공이 있었기에 위에 서술한 문제의식들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계기가 없는 상황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민주통합당은 그 책임을 놓고 계파별로 대립하며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실추된 이미지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진보정의당은 향후의 노선에 대한 내부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으며 진보신당 역시 대선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론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진보정의당이 쌍용차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국회 로비를 점거하고 진보신당이 지도부 선거에 돌입하는 등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나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이고 앞으로의 전망을 예상해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촉구 농성을 벌이고 있는 진보정의당 의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가졌다. 심상정 의원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즉, ‘공중전’의 영역에서는 장기간의 시련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계급투표가 실행될 수 있도록 하는 여러 대응들이 단기간에 효과를 거두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지역에서 거점을 만들거나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더라도 '투표할 대안'이 존재하지 않으면 계급투표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지상전에서 오래 버티는 것’이 답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지구전인 셈이다. 지구전에서의 승자가 언젠가 벌어질 공중전에서의 승부에서도 승자가 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여전히 어려운 싸움이다.

김민하 기자  |  acidkiss@gmail.com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1-11일자 기사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를 퍼왔습니다.
Corée 박근혜는 어떻게 승리했는가

<겨울 이야기> 시리즈(N36), 2009-파올로 벤투라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주 어린 꼬마조차 마틴 루서 킹(미국의 목사, 흑인운동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때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문장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이 사람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무슨 꿈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에서 인용한 이 이야기처럼(1), 이번 대선에서 우리의 처지를 잘 비유해주는 게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지금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꿈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제크는 루서 킹의 예를 자유주의적 전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이 없는 평등에 머물렀을 때, 그는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빈곤과 군사주의 문제로 한참 더 나아가고 '평등의 공리'를 실천하려 했을 때, 그는 소수파가 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위험인물이 되었다. 공공연히 베트남전쟁에 반대했고, 마침내 1968년 4월 미국 멤피스에서 살해되었을 때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 중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난 뒤에야,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백인과 흑인의 평등은 더욱 자명한 정치·윤리적 공리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1920∼30년대만 해도 인종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 정치 세력은 공산주의자뿐이었다는 사실도 그러므로 환기될 여지가 없었을 터다.

우리는 어떻게 퇴행의 길로 접어들었나

어디선가 '대선 힐링'이란 말을 읽은 것 같다. 상처가 생기자마자 힐링이 제공되는 이 놀라운 속도의 서비스 체계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치유의 길은 상처의 독을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열릴 것이다. '멘붕'(멘털 붕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선 이후의 집단적 패닉 상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증폭되고 과장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이성과 열정, 그리고 그 좌절이 가져온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적 현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치의 종교화'는 일찍이 냉전시대에도 존재했고, 미국 9·11 사태 이후 아들 부시의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느 때부턴가 지배적 정치 세력인 보수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쪽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손호철 교수의 지적처럼 '이명박의 저주'에 '노무현의 저주'(2)까지 겹친 덕에, 2012년 대선은 이를테면 1987년 대선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정권 교체가 그 자체로 절박했던 그때조차 그것 말고도 다른 꿈이 선택 항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그 이전 시간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하나의 목표가 다른 정치적 주장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완벽히 삼켜버린, (실상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목표의 모호함까지 가려버린) 종교전쟁에 가까운 총력전 선거에서 패배하자 이번에는 인식의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 마치 종교적 열광 뒤에 다가오는 환멸과 같은 집단적 열패감은 그것대로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남겨진 채. 도대체 우리는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퇴행하기에 이른 것일까?

'좌파' 전선은 어떻게 분열되었나

'모든 향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향수'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우리 모두에게 마냥 좋았던 시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존재했던 것이 있다면, 어떤 소수의 집단에는 하염없이 좋았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해야 했던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래도 '진보적 정권 교체'(이는 시작부터 출마를 포기했거나 나중에 도중하차한 '진보정당' 후보가 썼던 말이다) 이후 시작될 민주정부 '시즌 3'가 그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온통 부정할 근거는 물론 없다. 일련의 사람들이 믿는 것이 있고, 이들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때로는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운영'된다는 기발한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대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 되어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전액 합의해준 민주통합당의 행태 한 가지만으로 있지도 않을 미래를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경우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있었던 사실을 지우려는 욕망이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차별과 해고의 고통을 견뎌온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의 지극히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꼭 이맘때에도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 죽은 노동자들은 '민주화된 시대'가 도래했다는 정황을 미처 숙고하지 못한 '빗나간 죽음' 취급을 당했다. 그런 언설을 가능하게 했던 윤리적 우월감은 그것의 반인간성, 즉 반윤리성으로 인해 스스로 사라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까지 남아 민주-반민주 구도의 토대가 되었다. 이 흔들림 없는 윤리적 우월감은 혹시 떨림과 흔들림이 없는 인간을 낳은 건 아닐까? 더 뻔뻔하고 나쁜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 윤리적 우월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무감한, 차라리 감옥보다 교활하게 잔인한 손배 가압류의 시대는 그렇게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죽음'으로 상징되는, 노동하는 인간의 비극은 장기 지속되어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말은 곧장 이런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 세력이 '노동정치'의 실현을 존재 이유로 삼는 좌파라는 걸 의미한다. 이쯤에서 밝혀두지만, 이 글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도 좌파(나 자신까지도 포함된)임을 주장하는 집단의 자기성찰을 시도하려는 목적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다. '진보신당 전 대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오늘, 1년 가까운 현실정치인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두 개의 상이 있다. 하나는 움켜쥐고 있던 플래카드의 끝자락이라는 유형의 상이고, 다른 하나는 온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이라는 무형의 상이다. 애당초 중앙이나 높은 자리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결국 플래카드의 끝자락조차 놓아버려 "사진에 나와야 합니다. 놓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던 당직자를 실망시켰는데, 높은 성벽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활동가들에게 활동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기보다 끊임없이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바깥보다 내부에서 쌓아올린 배제의 성벽들은 참으로 강고하고 높았다. 가령 한 정파가 노조 집행부를 장악한 현장에 다른 정파 활동가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도 정파의 노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배타적 지지'의 관리 대상이었을 뿐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주체가 아니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이전에 조직노동 스스로 민주주의 바깥에 있었고, 주체 형성은 각 정파의 성벽 안에 가둬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침묵이나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태는 현실적 역량이 부족한 좌파라는 말로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의도적 묵살일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출신 '노동자 대통령 후보'는 경찰의 주먹에 얻어맞기 전 진보 정당들에 의해,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노동에 의해 외면당했다. 여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벽이 작용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는 '세계를 구축하는 차이'를 의미 있게 보여주지 못한 주체의 무능과 더불어 삭제되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하나여야 했던 노동자 후보가 둘이 된 실패의 참담함과 함께.

좌파 엘리트들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

앞선 몇 차례의 대선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은 국민이 지닌 평균적 정치 수준의 향상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따른 불안감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실패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그 근간에서부터 뒤흔들고,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양극화될 뿐 아니라 이전의 노동과 복지 의제들이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턱없이 못 미치는 현실이 닥치는 상황에서 예의 고전적 정당정치론은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실패한 자본주의가 가져온 민주주의의 위기는 마침내 '대표성의 위기'가 아니라 '대표성의 착란'을 가져온다.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 분명한 정치권력이 민생정부를 표방하고 '100% 대한민국'을 주창하는 것이야 승자의 수사라 치더라도, 계급의 이해를 초월하는 국민 통합을 보수주의에 청탁하는 기이한 현상이야말로 정당정치론의 '비상사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던 대의제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노동 세력이 꼭 정당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다"(3)고 회의적인 진단을 내리면서도, 안철수의 '제3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한국 정치사와 정당 체제의 중대한 변화"라고 이야기할 때, 그가 말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의 상처들'은 정치의 바깥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 완성이라는 건 애당초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저 멀리 물러난다. 민주주의의 성숙이 '민'의 성숙, '민주' 의식의 형성 없이 가능하지 않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적 주체 형성 없이 다다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층위란 어디쯤일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두루 공부하는 사회 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공부한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선배를 '잘못' 만나거나 해고나 차별을 직접 당하고 싸운 경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아예 가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사회적 갈등과 모순, 인간의 고통이나 요구, 이해. 이것들 모두가 정당으로 대표되는 것을 통해 극복되고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선택 가능성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더구나 노동 세력이 반드시 스스로 정당으로 발전할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99%의 인간들을 언제라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떤 문제도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오로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 가치들은 균등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 정확히 조응하는 정치의 물신화와 다름없다. 문제는 이런 자유주의적 협박을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치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애초의 목표는 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엘리트와 조직노동의 상층 간부의 정치적 진출의 공간 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돼버렸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갇힌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보편적 복지 의제의 제출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체제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가능한 사민주의적 정책 몇 가지를 제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의회 진출 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활동을 통해 존재 이유를 지닐 수 있었던 좌파 정치는 의회 권력 안에서 생존하는 데 몰두하면서 "주요 엘리트들이 정치적 자원을 증대하기 위해 대의도 없는 편의적 통합"(최장집)을 하기에 이른다. 이 '진보의 허구적 존속'이 어떻게 급속히 파산에 이르렀는지는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에서 '진보는 나로써 통합되었다'는 의미의 패권주의와 배타성을 읽은 것은 정치적 소수파의 눈이었겠지만, 최초 당대표 3인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금세 눈에 들어왔던 건 진보 정당 대표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현장노동자 출신이 주로 나오는 유럽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좌파 정당의 진정한 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조차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지 회의하는 마당에 좌파의 존재 이유이자 대의인 '자본주의 극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거의 없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기존 대의제로는 대표가 불가능한 존재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벌거벗은 생명'들-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현실에 있다. 자본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단계로 이행한 지 오래이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하는 삶을 항상적인 비정상 상태(비정규직화)에 몰아넣거나 노동 밖의 잉여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고용과 성장'이 순환적 관계에 있을 때나 가능했던, 이미 위기에 처한 유럽의 '관리사회형 복지 모델'을 베끼려고 시도하는 사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좌파의 정치적 임무는 유효기간이 끝난 석유 문명 이후를 고민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불안에 휩싸인다고 해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위기가 총자본 보호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민생'과 '복지'가 보수주의의 정치적 수사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머잖아 목격하게 될 것은 성난 대중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애로운 보수 정치의 얼굴일 것이다. 설사 다른 손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할지라도. 때맞춰 상영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효과를 주고 있는 영화 에서 이끌어내고 싶은 얘기는 빅토르 위고가 벌써 150년 전 했던 말이다. "왜 사람들은 온정, 시혜에 관해 말할 때 항상 주는 쪽에 서 있나?", "파리는 항상 이(齒)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그의 말에서 주체는 보이되 객체는 보이지 않는다. 온정과 시혜, 그것을 주는 자에겐 말하는 입이 있지만, 받는 자에겐 고픈 배를 채울 입이 있을 뿐 말하는 입이 없다. 주체와 대상은 항용 그렇게 갈린다.
사람들의 삶이 파산되고 신음하는 장소를 그저 찾아다니기만 하는 '민생진보'는 존엄성이 이미 훼손된 존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의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대의제에 갇혀 고사당하는 정치를 해방시켜, 편재된 고통에서 정치의 장소를 재발견하고 그 장소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를 통해 대의제를 포위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좌파 정치는 '반드시' 정당으로 조직되어야겠지만, 민중이 삶과 노동의 장소에서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는 길을 사유·실천하지 못하고 민중을 통계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선거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좌파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경기장'의 대기실에서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의 적은 바로 자신의 자폐성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진보신당 강령 전문 중에서)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4)를 묻고 노동자가 경영권을 갖는 주체가 되는- 기업이라는 폴리스(Polis)의 주인이 되는- 대안이 추구되지 않을 때, 국가권력을 주어로 하는 재벌 개혁은 오늘의 난폭한 자본주의를 과연 통제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유지될 때 '해방된 주체'들을 자원으로 삼지 못하는 좌파 정치는 대의제 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좌파들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1차 파국과 함께 시작된 총자본의 공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 가 '포섭과 배제' 전략에 따라 진행되면서 노동 사회 내부는 분열되고 수직적 분업 체계로 재편되었다. 노동자이자 주식투자자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하다가 일시적으로 노동하지 않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비노동 상태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노동하는 존재인"(5)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나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호소하거나 노동이 중심이 된 좌파 정당의 출현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좌파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 기댄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꿈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엄연한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는 좌파 정치는 노동자들을 '과잉인구'로 만들어버리는 '고용 없는 자본주의'에 노동자 경영권을 통해 민주적 통제를 실행하는 길을 모색하거나, 기본소득제의 실현을 통해 권력의 자원으로 봉사하는, 아니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금융자본을 공공화해 민중의 인간다운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길을 동시에 모색하는 길을 공세적으로 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성숙의 길이 각자 몸이 있는 자리마다 주인이 될 때, 다시 말해 집안과 배움터와 일터에서 주체로 살 때 그만큼 열릴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영혼이 잠식되는 것을 막지 못할 때 발가벗은 존재의 입들은 오로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좌파는 먼저 사라진 '노동의 세계'에 대한 향수와 왜곡된 선민의식에 갇힌 심각한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라 할지라도 오늘의 자본주의를 어제의 자본주의로 되돌릴 수는 없다. 오늘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현실을 두고, 이미 잉여가 되어버린 광범한 실업인구를 두고, '완전고용' 사회가 가능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허위이다. "정규직화된 고용조차 불가능한 오늘의 자본주의가 지닌 한계 지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만" 비정규직의 완전한 철폐는 정치적 요구로서 유의미하다. "그것이 차라리 불가능한 요구이고,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그 요구를 의미 있게"(6)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삶은 살아져야 할 뿐 아니라 영위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산을 멈춰 세우게 하는 파업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100만 원씩 줘보라, 세상이 안 바뀌나!"(7) 오늘 비참함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국가복지의 수도꼭지 앞에 줄 서게 하는 수치의 감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영위하는 당당한 주체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좌파 정치의 내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선취해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좌파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전 편집인.
(1) 슬라보이 지제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김성호 옮김, 창비, 79쪽. 
(2) (경향신문) 손호철의 정치시평, 2012년 12월 24일. 
(3) 최장집, ‘신년기획: 2013년을 말하다(2)’, (경향신문), 2013년 1월 1일. 
(4)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꾸리에, 2012. 
(5) 이진경, ‘노동자는 하나다?… 흘러간 옛노래’, (프레시안) 2012년 1월 2일
.(6) 이진경, 위의 글.
(7) 김종철 대담,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보자’, (프레시안), 2011년  11월 25일. 

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1-11일자 제52호 기사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를 퍼왔습니다.
Corée 박근혜는 어떻게 승리했는가

<겨울 이야기> 시리즈(N36), 2009-파올로 벤투라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주 어린 꼬마조차 마틴 루서 킹(미국의 목사, 흑인운동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때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문장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이 사람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무슨 꿈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인용한 이 이야기처럼(1), 이번 대선에서 우리의 처지를 잘 비유해주는 게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지금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꿈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제크는 루서 킹의 예를 자유주의적 전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이 없는 평등에 머물렀을 때, 그는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빈곤과 군사주의 문제로 한참 더 나아가고 '평등의 공리'를 실천하려 했을 때, 그는 소수파가 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위험인물이 되었다. 공공연히 베트남전쟁에 반대했고, 마침내 1968년 4월 미국 멤피스에서 살해되었을 때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 중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난 뒤에야,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백인과 흑인의 평등은 더욱 자명한 정치·윤리적 공리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1920∼30년대만 해도 인종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 정치 세력은 공산주의자뿐이었다는 사실도 그러므로 환기될 여지가 없었을 터다.

우리는 어떻게 퇴행의 길로 접어들었나

어디선가 '대선 힐링'이란 말을 읽은 것 같다. 상처가 생기자마자 힐링이 제공되는 이 놀라운 속도의 서비스 체계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치유의 길은 상처의 독을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열릴 것이다. '멘붕'(멘털 붕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선 이후의 집단적 패닉 상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증폭되고 과장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이성과 열정, 그리고 그 좌절이 가져온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적 현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치의 종교화'는 일찍이 냉전시대에도 존재했고, 미국 9·11 사태 이후 아들 부시의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느 때부턴가 지배적 정치 세력인 보수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쪽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손호철 교수의 지적처럼 '이명박의 저주'에 '노무현의 저주'(2)까지 겹친 덕에, 2012년 대선은 이를테면 1987년 대선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정권 교체가 그 자체로 절박했던 그때조차 그것 말고도 다른 꿈이 선택 항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그 이전 시간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하나의 목표가 다른 정치적 주장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완벽히 삼켜버린, (실상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목표의 모호함까지 가려버린) 종교전쟁에 가까운 총력전 선거에서 패배하자 이번에는 인식의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 마치 종교적 열광 뒤에 다가오는 환멸과 같은 집단적 열패감은 그것대로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남겨진 채. 도대체 우리는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퇴행하기에 이른 것일까?

'좌파' 전선은 어떻게 분열되었나

'모든 향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향수'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우리 모두에게 마냥 좋았던 시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존재했던 것이 있다면, 어떤 소수의 집단에는 하염없이 좋았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해야 했던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래도 '진보적 정권 교체'(이는 시작부터 출마를 포기했거나 나중에 도중하차한 '진보정당' 후보가 썼던 말이다) 이후 시작될 민주정부 '시즌 3'가 그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온통 부정할 근거는 물론 없다. 일련의 사람들이 믿는 것이 있고, 이들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때로는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운영'된다는 기발한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대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 되어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전액 합의해준 민주통합당의 행태 한 가지만으로 있지도 않을 미래를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경우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있었던 사실을 지우려는 욕망이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차별과 해고의 고통을 견뎌온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의 지극히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꼭 이맘때에도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 죽은 노동자들은 '민주화된 시대'가 도래했다는 정황을 미처 숙고하지 못한 '빗나간 죽음' 취급을 당했다. 그런 언설을 가능하게 했던 윤리적 우월감은 그것의 반인간성, 즉 반윤리성으로 인해 스스로 사라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까지 남아 민주-반민주 구도의 토대가 되었다. 이 흔들림 없는 윤리적 우월감은 혹시 떨림과 흔들림이 없는 인간을 낳은 건 아닐까? 더 뻔뻔하고 나쁜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 윤리적 우월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무감한, 차라리 감옥보다 교활하게 잔인한 손배 가압류의 시대는 그렇게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죽음'으로 상징되는, 노동하는 인간의 비극은 장기 지속되어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말은 곧장 이런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 세력이 '노동정치'의 실현을 존재 이유로 삼는 좌파라는 걸 의미한다. 이쯤에서 밝혀두지만, 이 글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도 좌파(나 자신까지도 포함된)임을 주장하는 집단의 자기성찰을 시도하려는 목적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다. '진보신당 전 대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오늘, 1년 가까운 현실정치인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두 개의 상이 있다. 하나는 움켜쥐고 있던 플래카드의 끝자락이라는 유형의 상이고, 다른 하나는 온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이라는 무형의 상이다. 애당초 중앙이나 높은 자리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결국 플래카드의 끝자락조차 놓아버려 "사진에 나와야 합니다. 놓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던 당직자를 실망시켰는데, 높은 성벽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활동가들에게 활동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기보다 끊임없이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바깥보다 내부에서 쌓아올린 배제의 성벽들은 참으로 강고하고 높았다. 가령 한 정파가 노조 집행부를 장악한 현장에 다른 정파 활동가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도 정파의 노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배타적 지지'의 관리 대상이었을 뿐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주체가 아니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이전에 조직노동 스스로 민주주의 바깥에 있었고, 주체 형성은 각 정파의 성벽 안에 가둬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침묵이나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태는 현실적 역량이 부족한 좌파라는 말로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의도적 묵살일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출신 '노동자 대통령 후보'는 경찰의 주먹에 얻어맞기 전 진보 정당들에 의해,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노동에 의해 외면당했다. 여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벽이 작용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는 '세계를 구축하는 차이'를 의미 있게 보여주지 못한 주체의 무능과 더불어 삭제되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하나여야 했던 노동자 후보가 둘이 된 실패의 참담함과 함께.

좌파 엘리트들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

앞선 몇 차례의 대선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은 국민이 지닌 평균적 정치 수준의 향상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따른 불안감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실패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그 근간에서부터 뒤흔들고,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양극화될 뿐 아니라 이전의 노동과 복지 의제들이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턱없이 못 미치는 현실이 닥치는 상황에서 예의 고전적 정당정치론은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실패한 자본주의가 가져온 민주주의의 위기는 마침내 '대표성의 위기'가 아니라 '대표성의 착란'을 가져온다.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 분명한 정치권력이 민생정부를 표방하고 '100% 대한민국'을 주창하는 것이야 승자의 수사라 치더라도, 계급의 이해를 초월하는 국민 통합을 보수주의에 청탁하는 기이한 현상이야말로 정당정치론의 '비상사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던 대의제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노동 세력이 꼭 정당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다"(3)고 회의적인 진단을 내리면서도, 안철수의 '제3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한국 정치사와 정당 체제의 중대한 변화"라고 이야기할 때, 그가 말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의 상처들'은 정치의 바깥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 완성이라는 건 애당초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저 멀리 물러난다. 민주주의의 성숙이 '민'의 성숙, '민주' 의식의 형성 없이 가능하지 않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적 주체 형성 없이 다다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층위란 어디쯤일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두루 공부하는 사회 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공부한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선배를 '잘못' 만나거나 해고나 차별을 직접 당하고 싸운 경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아예 가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사회적 갈등과 모순, 인간의 고통이나 요구, 이해. 이것들 모두가 정당으로 대표되는 것을 통해 극복되고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선택 가능성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더구나 노동 세력이 반드시 스스로 정당으로 발전할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99%의 인간들을 언제라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떤 문제도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오로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 가치들은 균등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 정확히 조응하는 정치의 물신화와 다름없다. 문제는 이런 자유주의적 협박을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치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애초의 목표는 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엘리트와 조직노동의 상층 간부의 정치적 진출의 공간 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돼버렸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갇힌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보편적 복지 의제의 제출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체제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가능한 사민주의적 정책 몇 가지를 제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의회 진출 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활동을 통해 존재 이유를 지닐 수 있었던 좌파 정치는 의회 권력 안에서 생존하는 데 몰두하면서 "주요 엘리트들이 정치적 자원을 증대하기 위해 대의도 없는 편의적 통합"(최장집)을 하기에 이른다. 이 '진보의 허구적 존속'이 어떻게 급속히 파산에 이르렀는지는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에서 '진보는 나로써 통합되었다'는 의미의 패권주의와 배타성을 읽은 것은 정치적 소수파의 눈이었겠지만, 최초 당대표 3인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금세 눈에 들어왔던 건 진보 정당 대표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현장노동자 출신이 주로 나오는 유럽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좌파 정당의 진정한 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조차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지 회의하는 마당에 좌파의 존재 이유이자 대의인 '자본주의 극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거의 없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기존 대의제로는 대표가 불가능한 존재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벌거벗은 생명'들-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현실에 있다. 자본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단계로 이행한 지 오래이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하는 삶을 항상적인 비정상 상태(비정규직화)에 몰아넣거나 노동 밖의 잉여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고용과 성장'이 순환적 관계에 있을 때나 가능했던, 이미 위기에 처한 유럽의 '관리사회형 복지 모델'을 베끼려고 시도하는 사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좌파의 정치적 임무는 유효기간이 끝난 석유 문명 이후를 고민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불안에 휩싸인다고 해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위기가 총자본 보호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민생'과 '복지'가 보수주의의 정치적 수사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머잖아 목격하게 될 것은 성난 대중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애로운 보수 정치의 얼굴일 것이다. 설사 다른 손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할지라도. 때맞춰 상영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효과를 주고 있는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이끌어내고 싶은 얘기는 빅토르 위고가 벌써 150년 전 했던 말이다. "왜 사람들은 온정, 시혜에 관해 말할 때 항상 주는 쪽에 서 있나?", "파리는 항상 이(齒)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그의 말에서 주체는 보이되 객체는 보이지 않는다. 온정과 시혜, 그것을 주는 자에겐 말하는 입이 있지만, 받는 자에겐 고픈 배를 채울 입이 있을 뿐 말하는 입이 없다. 주체와 대상은 항용 그렇게 갈린다.
사람들의 삶이 파산되고 신음하는 장소를 그저 찾아다니기만 하는 '민생진보'는 존엄성이 이미 훼손된 존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의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대의제에 갇혀 고사당하는 정치를 해방시켜, 편재된 고통에서 정치의 장소를 재발견하고 그 장소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를 통해 대의제를 포위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좌파 정치는 '반드시' 정당으로 조직되어야겠지만, 민중이 삶과 노동의 장소에서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는 길을 사유·실천하지 못하고 민중을 통계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선거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좌파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경기장'의 대기실에서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의 적은 바로 자신의 자폐성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진보신당 강령 전문 중에서)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4)를 묻고 노동자가 경영권을 갖는 주체가 되는- 기업이라는 폴리스(Polis)의 주인이 되는- 대안이 추구되지 않을 때, 국가권력을 주어로 하는 재벌 개혁은 오늘의 난폭한 자본주의를 과연 통제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유지될 때 '해방된 주체'들을 자원으로 삼지 못하는 좌파 정치는 대의제 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좌파들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1차 파국과 함께 시작된 총자본의 공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 가 '포섭과 배제' 전략에 따라 진행되면서 노동 사회 내부는 분열되고 수직적 분업 체계로 재편되었다. 노동자이자 주식투자자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하다가 일시적으로 노동하지 않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비노동 상태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노동하는 존재인"(5)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나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호소하거나 노동이 중심이 된 좌파 정당의 출현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좌파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 기댄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꿈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엄연한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는 좌파 정치는 노동자들을 '과잉인구'로 만들어버리는 '고용 없는 자본주의'에 노동자 경영권을 통해 민주적 통제를 실행하는 길을 모색하거나, 기본소득제의 실현을 통해 권력의 자원으로 봉사하는, 아니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금융자본을 공공화해 민중의 인간다운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길을 동시에 모색하는 길을 공세적으로 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성숙의 길이 각자 몸이 있는 자리마다 주인이 될 때, 다시 말해 집안과 배움터와 일터에서 주체로 살 때 그만큼 열릴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영혼이 잠식되는 것을 막지 못할 때 발가벗은 존재의 입들은 오로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좌파는 먼저 사라진 '노동의 세계'에 대한 향수와 왜곡된 선민의식에 갇힌 심각한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라 할지라도 오늘의 자본주의를 어제의 자본주의로 되돌릴 수는 없다. 오늘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현실을 두고, 이미 잉여가 되어버린 광범한 실업인구를 두고, '완전고용' 사회가 가능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허위이다. "정규직화된 고용조차 불가능한 오늘의 자본주의가 지닌 한계 지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만" 비정규직의 완전한 철폐는 정치적 요구로서 유의미하다. "그것이 차라리 불가능한 요구이고,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그 요구를 의미 있게"(6)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삶은 살아져야 할 뿐 아니라 영위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산을 멈춰 세우게 하는 파업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100만 원씩 줘보라, 세상이 안 바뀌나!"(7) 오늘 비참함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국가복지의 수도꼭지 앞에 줄 서게 하는 수치의 감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영위하는 당당한 주체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좌파 정치의 내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선취해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좌파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전 편집인.

(1) 슬라보이 지제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김성호 옮김, 창비, 79쪽.
(2) (경향신문) 손호철의 정치시평, 2012년 12월 24일. 
(3) 최장집, ‘신년기획: 2013년을 말하다(2)’, (경향신문), 2013년 1월 1일.
(4)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꾸리에, 2012. 
(5) 이진경, ‘노동자는 하나다?… 흘러간 옛노래’, (프레시안) 2012년 1월 2일.
(6) 이진경, 위의 글.
(7) 김종철 대담,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보자’, (프레시안), 2011년  11월 25일.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진보정치 최고의 두뇌를 떠나보내며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21일자 기사 '진보정치 최고의 두뇌를 떠나보내며'를 퍼왔습니다.
[기고] "이제 누가 있어 장량소잔의 방책을 실행할건가"

내 오랜 벗 하나가 세상을 떴다.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그이는 그나마 다행히도 편안하게 잠들듯 세상을 떠났다 한다. 그이의 이름은 이재영이다.

진보정당의 "실현 가능한 정책과 대안"을 말할 때, 늘 빠짐없이 상징적 존재의 하나로 거론되고 인정되었던 인물. 2004년 총선을 마주한 민주노동당이 "부자들에게 세금을, 서민들에게 복지를"이라는 구호를 내세울 수 있게 정책적 기초를 닦았던 인물. 그이가 바로 이재영이다.

이런 그이의 세상 떠남에 대해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진보정치의 꽃이 졌다"고 했고, 장상환 경상대 교수(故 이재영 장례위원회 공동위원장)와 그이의 선배 이근원은 "진보정치의 왕별이 떨어졌다"고 했다. 김형석 등은 "진보정당운동의 심장이 멈췄다"고도 했다. 이재영 그이의 진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수 있는 말이고, 진보정당의 정책을 담당하던 동료로서 그이와 가장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내가 보기에도 맞는 말이다.

1993년 스치듯 한 번 얼굴을 본 적이 있고, 1%의 성공 가능성밖에 보이지 않던 1997년의 '국민승리21'에 결합하면서부터 이재영 그이와 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이와 나는 너무나 많이 달랐다. 성격 등의 면에서도, 언제나 밝고 명랑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던 이재영과 비교할 때 나는 매사에 지나치게 진지했고 까칠하기까지 했다. "밥은 굶어도 술은 굶을 수 없다"며 술자리를 즐겼던 그이와는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술 자체를 좋아하지 않고 술자리는 가급적 피하는 스타일이었다.

사상이나 가치지향도 달랐다. 이재영 그이는 유럽좌파 사민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가치 지향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옹호했다. 반면에, 나는 모두에게 생소하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공동체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주장했다. 또 북한을 포함한 소비에트 유형의 사회주의(국가주의 사회) 또는 이를 연상시키는 모든 유형의 '모호한 사회주의' 자체를 반대했다.

심지어 정책을 다루는 방식이나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서도 입장이 달랐다. 예컨대 부유세 문제에 접근할 때 그이는 조세 투명성 등을 기초로 접근하는 윤종훈 회계사식 접근도 옹호했다. 반면에, 나는 늘 조세의 수직적 형평성 등의 관점에서 접근했고 그이의 생각에 반대했다.

이렇듯 따지면 따질수록 그이와 나는 달랐다. 그만큼 많이 티격태격하면서, 나는 경제정책(부분적으로는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담당자로, 그이는 나머지 모든 정책을 총괄하는 담당자로 1997년 이후 10년을 같이했다.

그이와 나의 거의 유일한 공통점은, 주어진 현실에 발 딛고 서서 최선의 정책적 대안을 찾고, 이를 사회화시킴으로써 그이가 방점을 찍었던 "진보정치"와 내가 방점을 찍었던 "노동의 정치"가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정책에 대한 혜안을 가지고 있던 사람답게, 이재영 그이는 자본론 연구를 통해 내가 얻게 된 독특한 정책능력을 한눈에 알아봐 줬다. 또 그는 내가 그이를 신뢰했던 것 이상으로 단 한 번도 나에 대한 신뢰의 끈을 버린 적이 없다.

이재영 그이는 늘 내 정책적 활동의 가장 강력한 우군이었고, 그이와 다르거나 반대되는 내 주장까지도 존중해주는 유일한 인물이었다(이재영은 나에 대한 그이의 글에서 나와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활동에 대해 "단지 '개량주의'였던 정책위원회만"이 "소극적으로 엄호해주었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실은 "이재영만이 적극적으로 엄호해주었을 뿐"이라고 했어야 옳다!).

1997년 국민승리21의 선대본 시절, 경제정책 우선순위 등을 놓고 정책교수 자문단의 일부 교수들과 내가 정면충돌했을 때에도 그랬다. 이재영 그이는 "진보정당의 정책을 위해서는 교수 100명보다 송 박사 한 명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한마디 말로 교수들의 양해를 얻어내기도 했다(이런 말로 교수들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이재영 말고는 없을 것이다!).

또는 내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의 위험성도 모르는 사람들은 퇴보세력이지 어떻게 진보냐" 등의 독설을 퍼부으며 아주 까칠하게 소란을 피웠을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쟤는 짤라야 하지 않을까"던 천영세 전 의원(당시 선대본부장)의 말에 "틀린 얘기는 아무것도 없는데요"라며 나를 옹호했다.

1998년 청산위기에 직면했던 국민승리21의 기적 같은 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실업대책운동(한국 최초의 대안적 정치운동)의 배후에서 내가 거칠게 정리했던 노동ㆍ실업정책을 처음부터 신뢰하고 옹호해줬던 이도 이재영이었다.

▲ 1998년 국민승리21(민주노동의 전신) 삼선교 시절의 동료들 - 뒷줄 맨 왼쪽의 필자, 앞줄 맨 왼쪽의 초록색 점퍼가 이재영; 앞줄 왼쪽부터: 이재영 김창현 황정아, 뒷줄 왼쪽부터: 송태경, 이상현, 최철호, 김해근, 박용진, 오현아, 김두수, 이근원. ⓒ송태경 사무처장 제공

민주노동당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경제민주화 운동본부의 탄생배경에도 이재영의 나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당시 권영길 대표의 지시 반 부탁 반으로 고심 끝에 작성한 경제민주화 운동본부 정책기획안은, 창당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터무니없이 부족한 인력과 자금 문제로 유보된 채, 내 책상 위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에 대한 내 고민을 얘기했을 때, 이재영 그이는 "나도 노(노회찬 의원,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으로 기획안을 유보했었다)와 생각이 같다, 지금 꼭 이걸 만들어야 해요?"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답하자, 이재영 그이는 "송 박사가 그렇다면 (자신은 안 그렇다 생각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며 반칙을 쓰는 방법도 있음을 알려줬다.

나는 이재영 그이가 알려준 방법대로, 노회찬 당시 정책기획위원장이 없는 틈을 타서 기획안을 정책위원회 보고 안건의 하나로 상집회의에 올렸다. (아직도 이 반칙에 대해서는 노회찬 의원에게 미안한 맘이 크게 남아있다!) 그리고 권영길 대표는 그것을 전국대표자회의 안건으로 올려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민주노동당 성장사에서 한 획을 긋는 경제민주화 운동본부는 그렇게 탄생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재영 그이의 신뢰가 없었더라면, 재벌 및 전두환 재산환수 운동부터 상가임대차운동을 넘어 신용회복운동 및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까지 이어졌던 민주노동당 주도의 경제민주화운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재영이 내게 보여줬던 신뢰는 그이가 가진 독특하고 출중한 정책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의 발현이었다.

내가 정책을 다루는 방식이 주로 현실의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정책대안을 생산‧가공하고 이를 대안적 정치운동을 통해 사회화시킴으로써 노동자 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신뢰 및 참여를 끌어내는 방향이었다면, 이재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주로 이에 필요한 정책 인재를 찾고 이들이 하모니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얻기를 원했다. 예컨대 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의 박창규와 부유세의 김정진을 정책위원회로 영입한 것은 이재영 그이가 가진 독특하고 출중한 정책적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을 드러내는 사례 일부다.

2002년 부유세의 김정진을 영입할 때의 일이다. 흥이 나면 으레 보여주는 약간 과장된 몸집으로 이재영이 내게 말했다. "송 박사, 변호사 하나가 있는데, 조세재정문제와 부유세를 연구했데요, 이건 대단한 거야." 그이에게 내가 물었다. "그래 그런 분이라면 모셔오면 좋은데, 가능할까? 정책위 티오 없는 건 재영이 국장이 잘 해결하겠지만, 상근활동비 60만 원으로 그런 분 모셔오는 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재영 그이가 웃으며 반문했다. "송 박사, 나랑 내기하자. 내가 데려오면 술 한 잔 사는 거지? 내가 장담하건대 아주 고맙다고 하면서 올걸."

정말 신기하게도, 김정진 변호사는 그렇게 그것도 이재영 그이의 장담처럼 "스스로 고마워하며" 정책위에 합류했고, 덕분에 2002년 대선후보 권영길은 내가 정리한 2개의 성장론 중의 하나인 "분배를 통한 성장"과 함께 "김정진의 부유세"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었다.

지나가는 말로 덧붙이면, 이재영 그이와 이와 같은 종류의 내기에서 나는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이겨본 일이 없다. 번번이 나는 내기에서 졌고, 다만 술 한 잔을 사는 대신에, 드물게 그가 있는 술자리를 찾아가는 것으로 그 벌을 대신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으레 이재영은 "송 박사와 술자리를 같이하는 건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며 너스레를 떨고는 했다.

내가 이재영 그이와의 내기에서 단 한 번 이긴 것은 "정책 때문에 이렇게 둘 다 과로하며 살고 있는데 둘 중 누가 더 오래 살까"하는 것이었는데, 그이와 나 모두 매우 밝고 명랑하게 사는 이재영이 더 오래 사는 데 걸었고, 결국 나는 그이의 장례식장에서 좀체 마시지 않던 소주를 삼켜야 했다.

어쨌든 내 오랜 벗 이재영은 이제 세상을 떠났다. "자본론 박사"라 불리며 자본론의 통찰에 기댔던 나 이상으로 정책적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 면에서 누구보다 출중했던 바로 그이가 세상을 뜬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금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이미 "진보정치의 꽃"으로 "진보정치의 왕별"로, "진보정당운동의 심장"으로, 특히 "진보정당 최고의 정책두뇌"로 마땅히 평가받았어야 할 그이가 살아생전에는 결코 그리 평가받고 대우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살아생전 진행된 일은 거꾸로다. 진보정당의 정책적 기초를 다졌고, 정책적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 면에서 누구보다 출중했던 그이에게 진보정당 운동이 되돌려주었던 첫 번째 큰 선물은 "사실상의 해고조치"였다.

2006년 자주파, 그중에서도 경기동부의 이용대 씨가 정책위 의장이 되면서 그이는 정책위뿐만 아니라 중앙당 상근까지 포기해야 했다. 정파적 이해관계가 그이의 경험과 노하우 및 출중한 정책적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보다 우선했다.

진보정당 운동이 그에게 돌려준 두 번째 큰 선물은 대장암이었다. 과로와 불규칙한 식사 등으로 위장이 모두 다 망가졌지만 치료받는 것으로 충분했던 나와는 달리, 그이에게는 대장암이 따라붙었고 더욱 불행하게도 생존확률 15%밖에 안 된다는 대장암 말기가 돼서야 그 병을 발견했다.

물론 내 오랜 벗 이재영 그이는 진보정당 운동이 그에게 준 두 가지 불행한 선물 모두에 대해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었다. 그이는 세상을 뜨는 그 순간까지도 진보정치의 건강한 성장을 바랐으며, 내게도 농담하듯 "송 박사, 내 생존확률이 25%래요, 살면서 이렇게 큰 확률을 잡아본 적 없어, 이건 로또야 로또"라며 삶을 희망했다. "25%는 무슨 15%라던데"라는 내 반문에도 "그거면 어딘데"라며 웃음 짓던 그였다.

"자본의 정치에 대항하여 주어진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 토대에서 더 나은, 더욱 바람직한 상태로의 이행을 촉진하기 위한 정치", 즉 진보정치에 대해 이재영 그이는 자본론의 통찰에 기댄 나처럼 개념정의에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더 '진보정치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실천적으로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열망했다.

진보정당들이 현재 처한 현실과 관련해서도, 이재영 그이는 누구보다도 출중했던 진보정치의 정책두뇌답게 중국의 전략가 장량의 '장량소잔(張良燒棧)의 방책'을 끌어들여 "잔도를 불사르고 파촉(巴蜀)에 깃드는 것만이 장래의 출사를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듯 (진보신당이라는) "작은 영지(領地)나마 소중히 가꾸어 나가는 것이 현 단계 진보정당운동의 과제"라며 그이에게는 마치 하나의 "과학"과도 같았던 그이의 두 선배 주대환ㆍ노회찬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내게 부탁이란 걸 해본 적이 없던 이재영 그이는 "자신이 몸으로 피부로 체득한 진보정치"를 위해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을 간곡하게 하기도 했다. 2008년 분당 이후 진보정당 운동과 거리를 둔 채 그저 강태공의 심정으로 때를 기다리며 민생연대로 나와 있던 내게 진보신당 상근을 부탁한 것이다.

"마땅히 진보정치ㆍ노동의 정치라면, 주어진 현실에 발 딛고 서서 더 나은 더 바람직한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함으로써 노동자 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신뢰 및 참여를 끌어내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나와 과거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구성원들(이선근, 임동현 등)이 공유했던 정치철학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보신당을 위해 절실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난해 여러 상황 변화에도, 통합논의가 이상하게 흘러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으로 재정립되면서 딜레마에 처해 있던 내게 이재영이 던진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 그렇지만 나는 그이의 부탁에 대해 선뜻 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선뜻 거절할 수도 없었다.

이재영 그이가 내게 특별한 존재이고 그런 존재의 최초의 부탁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재영과 달리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어떤 확신이 서지 않는 한 행동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해보겠다"고만 답했다. 그리고 한 달 후쯤 이재영의 부탁에 이어 존경하는 장상환 교수까지 찾아와 "처음부터 다시 하자" "진보신당을 위해 고생 좀 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결국 수락했다.

아픈 그이에게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이재영 그이는 어린애마냥 참으로 기뻐했다. "3만 원도 괜찮은 때가 있었는데, 진보신당은 그래도 150만 원에서 많으면 200만 원까지는 챙겨 줄 거야, 대신 내가 빨리 퇴원해서 맛있는 거 사줄게"라며 경제적 문제에 대한 위로도 잊지 않았다.

장상환 교수의 부탁과 대표였던 홍세화 선생의 강력한 뜻에도, 진보신당 상근이 좌초되며 큰 충격에 빠졌을 때도, 이재영 그이는 내게 웃으며 "조만간 퇴원해서 말끔히 정리"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랬었다. 진보정치가 무엇이고 자신이 진보정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몸으로 피부로 알고 체득하고 있었던 이재영 그이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진보정치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이재영 그이는 없다. 뒤늦게나마 그이의 진가를 인정하고 평가하고 이재영 그이가 가졌던 진보정치의 넋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늘어나도, 누구보다도 출중했던 그이의 정책적 혜안과 정책기획 및 실행능력을 이어갈 사람은 없다. 진보정치를 위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장량소잔의 방책"을 준비하고 실행해 옮기고 성사시킬만한 사람은 이제 없는 것이다. 제갈공명조차 준비하고 실행에는 옮겼으나 성사시키지는 못했던 그 방책을 진보정당 영역에서 천하의 이재영 말고 또 누가 있어 준비하고 실행하고 성사시킬 수 있을까? 그런 인재가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다시 나올 수 있기는 할까?

특히 이재영 그이가 "파촉"(巴蜀)으로 생각했던 진보신당마저 가치지향 및 이행의 사회적 전망에서 사실상 소비에트 유형의 사회주의로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지금, 그의 방책은 더더욱 실현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것이 내 오랜 벗 이재영을 잃은 또 다른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슬픔이기도 하다.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한국 진보정당 운동이 낳은 최고의 정책두뇌 이재영 그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장량소잔의 방책"을 누군가 새롭게 준비하고 실행시키지 않는 한, 이재영 그이의 꿈이자 나의 꿈이기도 했고 진보정당 운동영역 모두의 꿈이기도 한 진보정치의 건강한 성장과 이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최고의 상태는 최선의 상태에서뿐만 아니라 종종 최악의 상태에서도 나올 수 있는 것이므로, 이 또한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이재영 그이와 대화할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슬프다. 지금 내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온통 슬픔뿐이다.

p.s 한국 사회의 정치적 구도는 이미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 및 "민생 VS 반(反)민생의 대립구도"로 완연하게 재편되었으나, 정작 그 중심축에 있어야 할 진보정당 운동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내 오랜 벗 이재영이 마지막 남긴 "장량소잔의 방책"을 누군가 새롭게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만이 지금의 문제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된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 최재천 의원실 보좌관

2012년 9월 7일 금요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4인, '탈당 공식 선언'


이글은 미디어스 2012-09-07일자 기사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4인, '탈당 공식 선언''을 퍼왔습니다.
"혁신된 모습의 진보정치를 만들겠다"

▲ 통합진보당 정진후, 김제남, 박원석, 서기호 의원이 7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 의원들은 서울시당기위원회에서 전날 제명을 당한 것과 관련, "통합진보당을 떠나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펼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통합진보당 혁신파 4명의 비례대표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7일 정진후·박원석·서기호·김제남 등 4명의 의원은 "통합진보당을 떠나 국민이 원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펼치고자 한다"며 탈당했다.
이들은 "저희들은 지난 5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당내 문제로 본연의 의정활동을 수행할 수 없었고, 통합진보당은 4.11 총선 때 국민이 보내주신 10% 이상의 지지를 상실하였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밝혔다.
이들 의원들은 이날 오후 제명절차를 밟기 위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이날 의원총에서 4명의 비례의원에 대한 제명이 결정될지 관심이다. 정당법상 제명절차가 마무리되면 탈당한 비례의원은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전날인 6일 저녁 서울시당 당기위원회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4인과 광역지방비례의원 2명, 기초지방비례의원10명에 대한 제명을 결정했다.
이들 4인의 비례대표 의원은 지난 4.11총선 당시 교육분야, 녹색·탈핵분야, 시민운동분야, 사법개혁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통합진보당의 전략명부 비례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진후 의원은 전교조, 김제남 의원은 환경운동, 박원석 의원은 참여연대에서, 서기호 의원은 법관으로 활동하거나, 직을 수행한 바 있다.  4명의 비례대표의원은 "통합진보당이 끝내 파국을 맞이했다"며 "저희들 또한 책임의 한 당사자로서 진보정치를 지지하고 성원해주신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보다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다고 강변하는 구태와 패권적인 모습과 결별하고자 한다"며 밝혔다. 이어, "강기갑 대표와 함께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국민이 바라는 진정으로 혁신된 모습의 진보정치를 만들어가는 데 함께 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특히, 이들은 "결코 개인이나 정파적 이해관계에서 의원직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라며 "의정활동에 전념하고, 진보정치를 펼치기 위함이기에 소신에 근거하여 스스로 제명을 수용하는 것이며, 국민의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신동근 기자  |  qkdkqh1@gmaill.com

2012년 8월 21일 화요일

박근혜 패퇴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


이글은 레프트21 2012-08-20일자 기사 '박근혜 패퇴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를 퍼왔습니다.

이 글은 노동자연대다함께가 8월 18일에 발표한 성명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주노총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했고, 통합진보당은 한 지붕 두 가족을 넘어서 실질적 분당으로 나아가고 있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에게 주된 책임이 있는 여러 불미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단결과 투쟁의 무기이기는커녕 골치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통합진보당은 현재 법안 하나 논평 하나 제대로 못 내는 식물정당 상태다. 에스제이엠과 만도 침탈 같은 상황에서도 어떠한 정치적 대응도 못하고 있다.
이런 공백을 민주당이 파고들면서 자신들이 진정한 노동자들의 대변자인 양 하고 있다. 우파 지배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틈만 나면 종북 마녀사냥을 벌이며 진보진영을 탄압하고 있다.
심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노동운동의 정치적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진보정치의 위기는 민주노총의 8월 말 정치파업 계획에도 찬물을 끼얹는 효과만 냈다.

△올해 2월 5일 통합진보당 총선승리전진대회에 참석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은 결국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 철회를 선언해야 했다. 진보의 정체성과 노동 중심성을 후퇴시키며 만든 통합진보당 실험은 파산했다. ⓒ사진 이미진

그래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내에서도 이런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다양한 목소리가 ‘백가쟁명’ 수준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로 대표되는 흐름, 신당권파의 진보정치혁신모임, 노동계 중심의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는 흐름, 진보신당의 ‘진보좌파정당’ 건설 프로젝트, 급진좌파들의 당 건설 추진모임, 민주당의 ‘왼쪽 방’으로 가자는 흐름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사실상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포기하고 민주당의 ‘왼쪽 방’으로 가자는 흐름은 진보진영이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노동계급의 독자적 목소리가 사라지고 1퍼센트의 왼팔과 오른팔만이 존재하는 미국식 정치 구조는 재앙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 대안체가 필요한가? 각각의 세력들이 각개약진하는 방식으로는 반새누리당 비민주당 진보정치 대안을 대중적으로 건설하기 어렵다. 그래서 근본적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로서 우리는 하나의 전술로서 진보대연합을 제안한다. 유시민처럼 진보가 아니고 ‘민주당 왼쪽 날개도 대안일 수 있다’는 세력들을 빼고 급진좌파부터 민주노총,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진보적 NGO까지 광범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진보진영에 끼어들어 온 참여당계는 이번 기회에 떨쳐내야 한다. 물론 참여당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여당계 평당원까지 배제의 낙인을 찍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나 피억압 사회집단에 속하며 진보진영으로 견인해야 마땅하다.
핵심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요직을 차지하고 각종 배신과 개악을 주도했던 유시민, 천호선 등 참여당계 리더들이다.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과 결과가 보여 주듯이, 이들의 참여는 진보대연합의 대의와 명분을 훼손하며 오히려 진보의 분열만 조장한다. 지금도 참여당계와 공동행보를 지속하려는 일부 진보 인사들의 태도는 불신과 비판을 낳고 있다.
따라서 친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세력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에 기반한 다양한 세력과 정파, 단체 들이 폭넓게 합세해서 진정한 진보의 단결을 이뤄야 한다.
그리고 진보진영 공동의 행동강령적 투쟁 과제를 중심으로 연합을 구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보편적 무상복지, 부자 증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핵발전 폐기 등이 그런 요구다.

통합진보당을 파산으로 몰아간 특정 세력의 민주주의 훼손과 패권주의를 방지하려면 진보대연합의 조직 구조와 운영 방식은 가능한 느슨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진보진영의 각 세력과 정파 들 사이에는 다양한 쟁점을 두고 정치적 이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치와 조직 모두에서 매우 엄격한 동의 수준을 요구하는 당 모델보다는 각 정치 경향의 정치적ㆍ조직적 독자성을 보장하고, 이견에 대해서는 토론하면서도 단결을 추구할 수 있는 공동전선적 방식이 필요하다. 이것은 특정 정파가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패권을 부리는 것을 제약하는 데 이로울 것이다. 혁명적 원칙을 가진 급진좌파도 독자적 선전ㆍ선동ㆍ조직과 행동을 보장받으며 여기에 참가할 수 있다. 정치 원칙이 다른 세력들이 한 구조물 안에서 숨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진보대연합체는 심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지배자들의 고통전가에 맞서서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고무하는 중요한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다. 경제 위기 일수록 노동자들의 사기와 투지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적ㆍ이데올로기적 투쟁과 대안 제시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대선과 연립정부에 대한 입장

특히, 진보대연합체를 구성하면서 당장 다가오는 대선 국면에서부터 진보의 독자적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말기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세력이 우파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민주당이 워낙 지리멸렬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백 덕분에 안철수가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진보대연합체는 독자 후보를 준비하고 출마시켜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 후보나 안철수 등이 결코 온전히 대변할 수 없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보의 독자적 주장과 요구 들을 선전ㆍ선동하며 대중을 결집시키며 박근혜에 맞설 뿐 아니라 민주당 등의 한계도 비판해야 한다.
물론 이 진보 독자 후보가 반드시 끝까지 완주한다고 못 박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박근혜의 집권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걱정과 반감이 강력한 상황에서 진보 후보가 끝까지 단일화를 거부해서 박근혜 당선에 도움을 줬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민주당과 안철수 등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하면서도 전술적으로 비판적 투표의 가능성을 열어 둘 수 있다.(예컨대, 지난 4월 프랑스 대선 때 좌파전선의 장뤼크 멜랑숑은 1차 대선에서 좌파 후보로 출마해 급진적 선거 운동을 해 12퍼센트를 득표한 뒤 2차 결선에서는 사회당에게 비판적 투표를 했다. 결선투표라는 제도적 차이는 있지만 응용이 가능한 전술이다.)
그러나 이처럼 박근혜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을 가진 대중과 소통을 위해 불가피한 전술적 타협을 하더라도, 그것이 민주당과의 연립정부에 대한 지지로 나아가선 결코 안 된다.

△새누리당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 박근혜 패퇴와 노동운동의 전진을 위한 진보정치 연합체가 필요하다. ⓒ이미진

지금의 경제 위기 상황과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상 연립정부는 십중팔구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 정부는 두 차례 집권 경험이 있고, 집권 직후부터 온갖 신자유주의ㆍ친제국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지지자들과 노동계급을 공격한 바 있다.
이런 민주당과의 연립정부에 진보진영이 참가한다면 발목이 잡혀 그 정부가 자기 지지 기반을 공격하는 것에 동참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연립정부를 같이 만들었으면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개혁을 이룰 진정한 동력인 노동계급 투쟁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대연합체는 연립정부에 대한 반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처럼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이 폭넓게 단결하면서 ‘이명박근혜’에 맞서며 민주당과도 다른 급진적 주장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진보대연합이 만들어진다면, 지금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위기는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온갖 악랄한 공격을 추진하는 지배자들에 맞서서 노동운동의 정치적 대응과 단결 투쟁 건설에 중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연대다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