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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13일 일요일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1-11일자 제52호 기사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를 퍼왔습니다.
Corée 박근혜는 어떻게 승리했는가

<겨울 이야기> 시리즈(N36), 2009-파올로 벤투라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주 어린 꼬마조차 마틴 루서 킹(미국의 목사, 흑인운동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때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문장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이 사람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무슨 꿈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서 인용한 이 이야기처럼(1), 이번 대선에서 우리의 처지를 잘 비유해주는 게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지금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꿈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제크는 루서 킹의 예를 자유주의적 전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이 없는 평등에 머물렀을 때, 그는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빈곤과 군사주의 문제로 한참 더 나아가고 '평등의 공리'를 실천하려 했을 때, 그는 소수파가 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위험인물이 되었다. 공공연히 베트남전쟁에 반대했고, 마침내 1968년 4월 미국 멤피스에서 살해되었을 때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 중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난 뒤에야,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백인과 흑인의 평등은 더욱 자명한 정치·윤리적 공리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1920∼30년대만 해도 인종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 정치 세력은 공산주의자뿐이었다는 사실도 그러므로 환기될 여지가 없었을 터다.

우리는 어떻게 퇴행의 길로 접어들었나

어디선가 '대선 힐링'이란 말을 읽은 것 같다. 상처가 생기자마자 힐링이 제공되는 이 놀라운 속도의 서비스 체계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치유의 길은 상처의 독을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열릴 것이다. '멘붕'(멘털 붕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선 이후의 집단적 패닉 상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증폭되고 과장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이성과 열정, 그리고 그 좌절이 가져온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적 현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치의 종교화'는 일찍이 냉전시대에도 존재했고, 미국 9·11 사태 이후 아들 부시의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느 때부턴가 지배적 정치 세력인 보수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쪽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손호철 교수의 지적처럼 '이명박의 저주'에 '노무현의 저주'(2)까지 겹친 덕에, 2012년 대선은 이를테면 1987년 대선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정권 교체가 그 자체로 절박했던 그때조차 그것 말고도 다른 꿈이 선택 항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그 이전 시간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하나의 목표가 다른 정치적 주장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완벽히 삼켜버린, (실상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목표의 모호함까지 가려버린) 종교전쟁에 가까운 총력전 선거에서 패배하자 이번에는 인식의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 마치 종교적 열광 뒤에 다가오는 환멸과 같은 집단적 열패감은 그것대로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남겨진 채. 도대체 우리는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퇴행하기에 이른 것일까?

'좌파' 전선은 어떻게 분열되었나

'모든 향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향수'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우리 모두에게 마냥 좋았던 시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존재했던 것이 있다면, 어떤 소수의 집단에는 하염없이 좋았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해야 했던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래도 '진보적 정권 교체'(이는 시작부터 출마를 포기했거나 나중에 도중하차한 '진보정당' 후보가 썼던 말이다) 이후 시작될 민주정부 '시즌 3'가 그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온통 부정할 근거는 물론 없다. 일련의 사람들이 믿는 것이 있고, 이들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때로는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운영'된다는 기발한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대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 되어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전액 합의해준 민주통합당의 행태 한 가지만으로 있지도 않을 미래를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경우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있었던 사실을 지우려는 욕망이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차별과 해고의 고통을 견뎌온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의 지극히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꼭 이맘때에도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 죽은 노동자들은 '민주화된 시대'가 도래했다는 정황을 미처 숙고하지 못한 '빗나간 죽음' 취급을 당했다. 그런 언설을 가능하게 했던 윤리적 우월감은 그것의 반인간성, 즉 반윤리성으로 인해 스스로 사라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까지 남아 민주-반민주 구도의 토대가 되었다. 이 흔들림 없는 윤리적 우월감은 혹시 떨림과 흔들림이 없는 인간을 낳은 건 아닐까? 더 뻔뻔하고 나쁜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 윤리적 우월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무감한, 차라리 감옥보다 교활하게 잔인한 손배 가압류의 시대는 그렇게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죽음'으로 상징되는, 노동하는 인간의 비극은 장기 지속되어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말은 곧장 이런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 세력이 '노동정치'의 실현을 존재 이유로 삼는 좌파라는 걸 의미한다. 이쯤에서 밝혀두지만, 이 글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도 좌파(나 자신까지도 포함된)임을 주장하는 집단의 자기성찰을 시도하려는 목적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다. '진보신당 전 대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오늘, 1년 가까운 현실정치인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두 개의 상이 있다. 하나는 움켜쥐고 있던 플래카드의 끝자락이라는 유형의 상이고, 다른 하나는 온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이라는 무형의 상이다. 애당초 중앙이나 높은 자리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결국 플래카드의 끝자락조차 놓아버려 "사진에 나와야 합니다. 놓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던 당직자를 실망시켰는데, 높은 성벽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활동가들에게 활동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기보다 끊임없이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바깥보다 내부에서 쌓아올린 배제의 성벽들은 참으로 강고하고 높았다. 가령 한 정파가 노조 집행부를 장악한 현장에 다른 정파 활동가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도 정파의 노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배타적 지지'의 관리 대상이었을 뿐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주체가 아니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이전에 조직노동 스스로 민주주의 바깥에 있었고, 주체 형성은 각 정파의 성벽 안에 가둬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침묵이나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태는 현실적 역량이 부족한 좌파라는 말로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의도적 묵살일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출신 '노동자 대통령 후보'는 경찰의 주먹에 얻어맞기 전 진보 정당들에 의해,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노동에 의해 외면당했다. 여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벽이 작용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는 '세계를 구축하는 차이'를 의미 있게 보여주지 못한 주체의 무능과 더불어 삭제되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하나여야 했던 노동자 후보가 둘이 된 실패의 참담함과 함께.

좌파 엘리트들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

앞선 몇 차례의 대선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은 국민이 지닌 평균적 정치 수준의 향상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따른 불안감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실패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그 근간에서부터 뒤흔들고,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양극화될 뿐 아니라 이전의 노동과 복지 의제들이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턱없이 못 미치는 현실이 닥치는 상황에서 예의 고전적 정당정치론은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실패한 자본주의가 가져온 민주주의의 위기는 마침내 '대표성의 위기'가 아니라 '대표성의 착란'을 가져온다.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 분명한 정치권력이 민생정부를 표방하고 '100% 대한민국'을 주창하는 것이야 승자의 수사라 치더라도, 계급의 이해를 초월하는 국민 통합을 보수주의에 청탁하는 기이한 현상이야말로 정당정치론의 '비상사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던 대의제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노동 세력이 꼭 정당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다"(3)고 회의적인 진단을 내리면서도, 안철수의 '제3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한국 정치사와 정당 체제의 중대한 변화"라고 이야기할 때, 그가 말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의 상처들'은 정치의 바깥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 완성이라는 건 애당초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저 멀리 물러난다. 민주주의의 성숙이 '민'의 성숙, '민주' 의식의 형성 없이 가능하지 않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적 주체 형성 없이 다다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층위란 어디쯤일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두루 공부하는 사회 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공부한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선배를 '잘못' 만나거나 해고나 차별을 직접 당하고 싸운 경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아예 가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사회적 갈등과 모순, 인간의 고통이나 요구, 이해. 이것들 모두가 정당으로 대표되는 것을 통해 극복되고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선택 가능성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더구나 노동 세력이 반드시 스스로 정당으로 발전할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99%의 인간들을 언제라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떤 문제도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오로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 가치들은 균등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 정확히 조응하는 정치의 물신화와 다름없다. 문제는 이런 자유주의적 협박을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치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애초의 목표는 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엘리트와 조직노동의 상층 간부의 정치적 진출의 공간 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돼버렸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갇힌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보편적 복지 의제의 제출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체제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가능한 사민주의적 정책 몇 가지를 제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의회 진출 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활동을 통해 존재 이유를 지닐 수 있었던 좌파 정치는 의회 권력 안에서 생존하는 데 몰두하면서 "주요 엘리트들이 정치적 자원을 증대하기 위해 대의도 없는 편의적 통합"(최장집)을 하기에 이른다. 이 '진보의 허구적 존속'이 어떻게 급속히 파산에 이르렀는지는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에서 '진보는 나로써 통합되었다'는 의미의 패권주의와 배타성을 읽은 것은 정치적 소수파의 눈이었겠지만, 최초 당대표 3인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금세 눈에 들어왔던 건 진보 정당 대표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현장노동자 출신이 주로 나오는 유럽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좌파 정당의 진정한 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조차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지 회의하는 마당에 좌파의 존재 이유이자 대의인 '자본주의 극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거의 없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기존 대의제로는 대표가 불가능한 존재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벌거벗은 생명'들-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현실에 있다. 자본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단계로 이행한 지 오래이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하는 삶을 항상적인 비정상 상태(비정규직화)에 몰아넣거나 노동 밖의 잉여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고용과 성장'이 순환적 관계에 있을 때나 가능했던, 이미 위기에 처한 유럽의 '관리사회형 복지 모델'을 베끼려고 시도하는 사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좌파의 정치적 임무는 유효기간이 끝난 석유 문명 이후를 고민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불안에 휩싸인다고 해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위기가 총자본 보호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민생'과 '복지'가 보수주의의 정치적 수사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머잖아 목격하게 될 것은 성난 대중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애로운 보수 정치의 얼굴일 것이다. 설사 다른 손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할지라도. 때맞춰 상영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효과를 주고 있는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이끌어내고 싶은 얘기는 빅토르 위고가 벌써 150년 전 했던 말이다. "왜 사람들은 온정, 시혜에 관해 말할 때 항상 주는 쪽에 서 있나?", "파리는 항상 이(齒)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그의 말에서 주체는 보이되 객체는 보이지 않는다. 온정과 시혜, 그것을 주는 자에겐 말하는 입이 있지만, 받는 자에겐 고픈 배를 채울 입이 있을 뿐 말하는 입이 없다. 주체와 대상은 항용 그렇게 갈린다.
사람들의 삶이 파산되고 신음하는 장소를 그저 찾아다니기만 하는 '민생진보'는 존엄성이 이미 훼손된 존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의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대의제에 갇혀 고사당하는 정치를 해방시켜, 편재된 고통에서 정치의 장소를 재발견하고 그 장소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를 통해 대의제를 포위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좌파 정치는 '반드시' 정당으로 조직되어야겠지만, 민중이 삶과 노동의 장소에서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는 길을 사유·실천하지 못하고 민중을 통계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선거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좌파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경기장'의 대기실에서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의 적은 바로 자신의 자폐성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진보신당 강령 전문 중에서)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4)를 묻고 노동자가 경영권을 갖는 주체가 되는- 기업이라는 폴리스(Polis)의 주인이 되는- 대안이 추구되지 않을 때, 국가권력을 주어로 하는 재벌 개혁은 오늘의 난폭한 자본주의를 과연 통제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유지될 때 '해방된 주체'들을 자원으로 삼지 못하는 좌파 정치는 대의제 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좌파들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1차 파국과 함께 시작된 총자본의 공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 가 '포섭과 배제' 전략에 따라 진행되면서 노동 사회 내부는 분열되고 수직적 분업 체계로 재편되었다. 노동자이자 주식투자자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하다가 일시적으로 노동하지 않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비노동 상태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노동하는 존재인"(5)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나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호소하거나 노동이 중심이 된 좌파 정당의 출현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좌파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 기댄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꿈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엄연한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는 좌파 정치는 노동자들을 '과잉인구'로 만들어버리는 '고용 없는 자본주의'에 노동자 경영권을 통해 민주적 통제를 실행하는 길을 모색하거나, 기본소득제의 실현을 통해 권력의 자원으로 봉사하는, 아니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금융자본을 공공화해 민중의 인간다운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길을 동시에 모색하는 길을 공세적으로 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성숙의 길이 각자 몸이 있는 자리마다 주인이 될 때, 다시 말해 집안과 배움터와 일터에서 주체로 살 때 그만큼 열릴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영혼이 잠식되는 것을 막지 못할 때 발가벗은 존재의 입들은 오로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좌파는 먼저 사라진 '노동의 세계'에 대한 향수와 왜곡된 선민의식에 갇힌 심각한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라 할지라도 오늘의 자본주의를 어제의 자본주의로 되돌릴 수는 없다. 오늘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현실을 두고, 이미 잉여가 되어버린 광범한 실업인구를 두고, '완전고용' 사회가 가능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허위이다. "정규직화된 고용조차 불가능한 오늘의 자본주의가 지닌 한계 지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만" 비정규직의 완전한 철폐는 정치적 요구로서 유의미하다. "그것이 차라리 불가능한 요구이고,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그 요구를 의미 있게"(6)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삶은 살아져야 할 뿐 아니라 영위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산을 멈춰 세우게 하는 파업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100만 원씩 줘보라, 세상이 안 바뀌나!"(7) 오늘 비참함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국가복지의 수도꼭지 앞에 줄 서게 하는 수치의 감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영위하는 당당한 주체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좌파 정치의 내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선취해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좌파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 /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전 편집인.

(1) 슬라보이 지제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김성호 옮김, 창비, 79쪽.
(2) (경향신문) 손호철의 정치시평, 2012년 12월 24일. 
(3) 최장집, ‘신년기획: 2013년을 말하다(2)’, (경향신문), 2013년 1월 1일.
(4)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꾸리에, 2012. 
(5) 이진경, ‘노동자는 하나다?… 흘러간 옛노래’, (프레시안) 2012년 1월 2일.
(6) 이진경, 위의 글.
(7) 김종철 대담,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보자’, (프레시안), 2011년  11월 25일. 

2012년 5월 28일 월요일

“기존 진보정치 자기비판·성찰 있어야 ‘진보시즌2’ 가능”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5-27일자 기사 '“기존 진보정치 자기비판·성찰 있어야 ‘진보시즌2’ 가능”'을 퍼왔습니다.

조국의 만남
 홍세화 진보신당 재창당 준비위 상임대표

‘남민전’의 ‘전사’로 유신체제와 싸우다가 프랑스로 망명하여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되었던 사람, 20년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하여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며 과잉우경화된 한국 사회에 ‘빨간 신호등’을 켰던 사람, 총선 시기 선명히 ‘좌파’를 내세운 소수정당 대표로 변신한 이 사람을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7층 편집국장실에서 만났다. 향후 진보의 재구성 작업에서 충돌할 두 가지 요구, ‘선명한 진보’와 ‘진보의 대중화’ 문제를 미리 검토하기 위함이었다. 쓸쓸한 표정과 깊어진 주름 뒤에 숨어 있는 결기와 열정을 보았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트위터 @patriamea

홍세화 진보신당 재창당준비위원회 공동대표(왼쪽)가 지난 24일 한겨레신문사 옥상정원에서 조국 교수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진보진영 상황이 좋지 않다. 통합진보당 상황은 당권파만이 아니라 비당권파, 나아가 당 밖의 진보세력 및 민주통합당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보신당 역시 예외가 아니다. 먼저 지난 총선에서 진보신당 대표로 나섰던 이유가 무엇인가?
“상황의 부름에 응답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노·심·조’(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로 대표되는 진보신당의 구 지도부가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진보신당을 소중히 지켜온 당원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나라도 진보신당에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야권연대가 승리하여 ‘2013년 체제’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지금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지만, 그 집권세력도 임박한 세계 경제위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더 진보적인 야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득표율은 1.13%였다. 2%에 미달해 등록 취소가 되었다.
“참담했다. 2%는 넘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당력 부족이 핵심이었다. 우리처럼 소수 정당의 경우 비례대표 전략이 중요한데, 이를 진행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배제된 자의 서사(敍事)’ 전략을 채택했지만, 청소노동자인 김순자씨를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선택하는 것도 너무 늦게 이루어졌고…. 현상에서 나타난 변화의 열망에 동의하지만, ‘섬세함’의 사라짐이 아쉬웠다. ‘반엠비(MB)’ 구도 속에서 진보신당은 압도 또는 억압됐다고 할까.”
-압도를 넘어 억압되었다고 함은 무슨 뜻인가?
“‘반엠비’가 중심이 되면서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시민사회에서나 언론에서나, 한겨레나 경향 등 진보매체에서도 홀대했다.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다. 특히 유명 정치인이 없는 상황…, 당의 존재감이 너무 취약했다.”
-과거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의 문제이기도 할 것 같다. 홍세화 대표의 대표 취임사나 진보신당 홍보물을 보면 ‘진보’ 만이 아니라 ‘좌파’ 정당임을 강조한다.
“‘진보좌파’란 표현은 한국 사회 노동운동과 노동정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품고 있다. 우리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에 중심을 두는 진보정치를 하고자 한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배제됨은 물론이고, 노동운동조직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 그리고 주체 형성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렇게 이중으로 배제된 사람들은, 통합진보당과 이 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해온 민주노총에 의해서도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참패와 비정규직

반MB 구도 속에서 압도당해
어쨌든 우리 역량 부족했다
자본과 권력·노동운동조직에서
이중배제된 사람 위한 정치 할 것

-진보신당 창당 전후로 진보적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의 지지가 줄을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나 전농 등 대중운동조직의 지지는 없었다. 당 홈페이지에는 ‘우주 최강 노동자정당’이라는 슬로건이 올라와 있지만, 현재 진보신당은 선명한 좌파노선을 견지하는 ‘지식인 정당’, 정치권력에는 거리를 두는 ‘문화좌파’ 같은 느낌을 준다.
“이념적으로는 ‘녹좌파’다. 자본주의 극복과 생태주의를 결합한 ‘적-녹 동맹’이다. 한국에서 진보좌파의 정치역량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분단이 중요한 원인이다. 분단이 보수와 진보 모두를 왜곡한다. 보수가 제대로 서지 못하고 수구나 극우의 품에 안겨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엔엘(NL)파’(자주파)도 다른 나라에서라면 우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중으로 배제되고 있는 사람들이 주체로 서는 것은 정말 어려운 과제이다. 그래서 현재의 진보신당은 지식인 중심으로 돼 있다. 젊은 당원들에게 말한다.(주먹을 쥐며) `우리 세대에서 못 하면 다음 세대에 넘기는 장기적 과제로 삼자, 현실적 역량이 안 된다고 해서 자리를 옮겨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에 넘긴다는 말, 이해하면서도 갑갑하다. 정치는 철학이나 예술과 다르게 당대의 문제를 즉각 해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 진보신당이 중심에 놓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당수는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 심지어 새누리당을 찍고 있다.
“지금까지의 노동정치 또는 진보정당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자본과 권력을 향해 구호로만 외쳤을 뿐이다.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시키지 않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철저히 하지 않았다. 진보정당도 어렵고 먼 길이라고 놔버리고 실리 중심이랄까 그쪽으로 갔던 것이 아니냐. 진보신당은 지역정치와 노동정치의 결합을 추진할 것이다.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등에서 100년 전부터 작업해온 ‘민중의 집’ 기획이 모델이다. ‘민중의 집’은 지역 노동자들이 같이 어울려 공부하고 토론하고 놀 수 있는 ‘기지’이다. 문화, 교육, 놀이의 공간이다. 물론 이는 계급의식 성장의 공간이기도 하고 민주주의 성숙의 공간이기도 하다.”
-‘민중의 집’ 기획은 진보진영 전체가 공동으로 꾸려나가면 좋겠다.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정당은 권력을 잡고 구성하여 현실을 바꾸는 계획과 힘을 가져야 한다. 진보신당은 운동체로서의 모습과 정당으로서의 모습이 섞여 있는 것 같다.
“맞다. 운동체적 성격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한국 사회 구성원의 처지와 의식의 괴리로 볼 때 어쩔 수 없지 않나 싶다. 권력을 잡아야 한다. 어디까지가 권력이고 아니냐를 섬세하게 봐야 한다. 레닌주의식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소수자가 계속 소수자로 머물더라도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하고 실천을 하면 그것이 결국은 영향을 끼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꼭 정권을 잡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10년 전 당시 민주노동당이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주장했을 때 허황된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후 이 구호가 노동자와 서민의 상황과 만나면서 집권세력은 양보해야 했다. 반값등록금 정책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민중권력’이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민중권력’은 그 말을 통해 권력을 쥐기 위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민중이 얼마만큼 권력에 견제와 비판력을 갖는가, 민중이 얼마나 성숙하는가 하는 것이다.”
-정권을 직접 잡지 않지만 갈 길을 비추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인데, ‘등대정당’으로 가려는 것인가?
“글쎄, 그게 꼭 ‘등대정당’이라고 표현되어야 할지.(웃음) 전태일을 다시 호명하려 한다는 의미로 받아 달라.”
-‘전태일 정신으로 기어이 돌아가자’라는 글에서 ‘노·심·조’ 등 진보신당의 구지도부, 민주노총 지도부, 진보적 언론과 지식인 등을 비판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이념과 행태는 다 알고 있었는데, 병이 커질 만큼 커져 터진 후에야 비판하는 것은 불성실한 것이 아닌가. 방조하거나 침묵하거나 심지어 동조하지 않았던가. 당권파의 몰상식한 모습이 갑자기 나타난 양 비판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합리화 아닌가. 분노보다는 슬픔, 슬픔보다는 쓸쓸함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거쳐야 할 폭풍

당권파의 이념·행태 알면서
일 터진 뒤 비판하는 건 불성실
몰상식 강조만으로 문제해결 안돼
당내 민주주의 꼭 정착시켜야

-그래서 조지 오웰에 대하여 동병상련을 표시한 것인가. 당시 좌파는 오웰을 배척했고, 오웰은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웃음) 심정이 좀 그랬다. 갈 길이 멀어도 제자리에 서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진보의 재구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때는 당권파의 패권주의가 유지되어 표출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헤게모니를 잃게 되니 엄청난 파열음이 나오게 된 거다. 이번 사태는 한번은 거쳐야 할 폭풍이다. 정태인 선생이 제안한 `진보 시즌2’를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자기비판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만 같이 마주 앉을 수 있다. 당권파의 몰상식함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문제해결의 길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민주노총 지도부는 ‘배타적 지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얼마나 무리수를 두었는가.”
-굳이 따지면 홍 대표는 통합진보당 당권파와 같은 ‘엔엘’ 출신이다.
“(폭소) 유신시절 한국 민주화운동권의 대부분은 ‘엔엘’이었다. 난 ‘원조 엔엘’이었다고 해야 하나.(웃음) 이후 여러 경험, 관찰, 공부 속에서 진화하고 진보했다.”
-당권파 헤게모니 외 통합진보당의 묵은 병통이 드러나게 된 것은 유시민과 참여당 세력의 적극적 문제제기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관점에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당 문제는 무엇이든지 대중적 차원에서 검증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남민전의 동지 이학영씨가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 되었다. 전태일의 누이 전순옥씨도, 사노맹의 여전사였던 은수미씨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진출한다. 이들은 ‘변절’한 것인가?(웃음) 사실 저는 이학영, 은수미 두 분의 후원회장이다.
“아! 거 참 어렵다.(웃음)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 어딜 바라보는가보다 중요한 것이 그가 어디에 발을 담그고 있는가이다. 따라서 그분들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선택을 ‘변절’이라고 딱지 붙이지는 않는다. 내가 원래 ‘톨레랑스’를 강조하는 사람 아닌가.(웃음) 단, 그분들이 원래의 긴장을 계속 유지해주길 희망한다. 그분들이 서있게 된 그런 자리의 일상이 주는 위험성에 대하여 항상 자각하길 희망한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제 통합진보당, 민주노총은 물론 민주통합당도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도, 우리 사회의 진보적 변화를 위해서도 넓은 의미에서의 진보가 손을 잡아야 하지 않는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하나의 정당으로 뭉치자는 주장은 솔직히 폭력적이었다고 본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특히 가치와 이념 중심으로 모인 정치결사체인 진보정당의 경우는 ‘군자의 정치’를 해야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나 프랑스식 결선투표제가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독일이나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소수정당이 생존하기 어려운 선거제도를 갖고 있다. ‘타협’이라고 비난받더라도 넓은 의미의 진보가 뭉쳐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먼저 아닐까. 하나의 원내교섭단체 안에 진보신당파도 다른 파도 인정하면서 말이다. 여러 파가 다 정당이 되어 선거에 나가면 번호가 분산된다. 일반 유권자에게 16번을 찍으라는 건 매우 어려운 요구였다.(웃음)
“1.13%밖에 안 되지만 진보신당을 선택한 분들은 1~4번을 선택한 분들에 비해서 결이 다르다.”(웃음)
-‘반엠비’가 중심이 된 야권연대에서 배제되었음에도 16번을 선택했으니 충성도가 매우 높은 분들임에 틀림없겠다.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드러났지만, 당내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 정당에 들어가서 뜻을 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창당 그리고 연대
민주·통합진보당서 우리 배제
이학영·전순옥 ‘변절’로는 안봐
노동정치세력·녹색당과 논의
6개월 안에 재창당 끝낼 것

-이제 통합진보당도 당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선거는 계속된다. 야권연대에 대한 진보신당의 생각은 무엇인가?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에 우리가 스스로 빠진 게 아니고 배제됐던 것이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합의로 우리를 배제했다. 우리가 고립전략을 쓴 것처럼 알려져 있는데 정말 억울하다. 실제 거제에서는 김한주 후보로 야권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선거 과정에서 야권연대는 실익이 있어야만 이루어진다.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엉망이니까 민주통합당에서 연대하지 말자고 하지 않는가. 진보신당이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또 배제될 수 있다. 재창당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4월17일 진보신당 연대회의 이름으로 재창당 준비위원회를 등록했다. 5개 시도에서 1000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해서 6개월 안에 재창당을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합류해주면 좋겠다. 향후 6개월 동안 노동정치세력, 녹색당 등과 논의를 할 것이다.”
-청년시절 폭압적 불법국가 체제였던 유신체제와 싸웠고, 20년간 망명생활을 했고, 10년간 한국에서 진보정치에 몸을 담았다. 대선 이후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이냐, 그런 예언 말고….
“어렵다. 2013년 이후에 우려되는 것은 경제위기이다. 이 점을 중심에 놓고 보게 되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거나 아닌 거나 노동자와 민중들에게 어떤 차이가 구체적으로 있을지 고민이 된다. 경제위기가 쓰나미처럼 온다면….”
-세계공황을 말하는가?
“그렇다. 지금 그리스에서 시작되고 있는 흐름들이 2013년 이후 한국에까지 온다면, 우리 산업구조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가 받는 타격과는 또 다른 양상일 것이다. 사실 그 위험은 박근혜냐 아니냐보다 훨씬 크다. 물론 그런 위험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리고 이명박 뒤에 박근혜, 이것도 좀 아니었으면 좋겠다.”(웃음)
-10년 전 발간한 책에서 진급하는 ‘장교’가 되지 않고 끝까지 ‘사병’으로 남겠다고 공언했다.
“그 마음 여전하다. 당시의 표현대로 ‘셀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

정리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