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분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분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4월 14일 일요일

분열하는 한국의 보수주의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4-10일자 기사 '분열하는 한국의 보수주의'를 퍼왔습니다.
기획·한국의 보수

<운명>, 1867-빅토르 위고


2012년 대선 기간을 통과하면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의 출현은 보수주의의 전면화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익숙한 대립 구도에서 다시 보수가 집권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농담처럼 운위되던 '이명박 뒤에 박근혜 있다'는 명제는 현실화됐다. 그러나 이 상황을 단순히 '보수의 승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익숙한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지난 대선은 그 사실을 보여줬다. 물론 이런 현실을 진보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수라고 분류된 새누리당이 더 재빨랐다. 진보의 의제를 벤치마킹한 것은 물론, 아예 환골탈태해서 자신들을 새로운 정당으로 포장해버렸다. 동일한 의제를 놓고 겨루는 상황이라면 유권자는 능력을 보고 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능력에 신뢰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뢰를 잃었던 정당이 쇄신의 의지를 보여주면서 다시 지지세를 회복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사실은 기본적으로 정당의 이념이 유권자의 표심을 좌지우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보수가 자신을 '진보'라고 포장하는 일은 비단 한국에 국한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데이비드 캐머런이 주도한 영국의 보수당도 '진보'를 정체성으로 들고나와서 내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인민자본주의, 보수의 반격

보수가 진보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인민 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비효율적인 '큰 정부'에 저항하는 것이 도덕적 선택인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저항하는 이미지를 각인시킴으로써 과거와 단절하는 새로운 보수를 내세웠다.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알게 모르게 전개된 보수의 혁신이었다. 이 혁신은 일부 좌파 지식인이 지적하는 것처럼 '뻔뻔스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파렴치한 행동이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보수의 변신은 레오 스트라우스나 에인 랜드 같은 전투적인 보수주의 철학자를 통해 논리를 획득했다.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집어던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런 보수의 변신은 레오 스트라우스나 에인 랜드 같은 전투적인 보수주의 철학자를 통해 논리를 획득했다. 특히 랜드는 철학뿐만 아니라, (아틀라스)라는 소설을 통해 '세상의 주인'을 자본가로 설정하고 가상의 국가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였다. 소설의 내용은 정부의 조세제도를 거부하면서 자본가들이 연대해서 파업을 단행하고 세상에서 사라져버린다는 줄거리로 구성돼 있다.
애덤 스미스 이래 자본가에게 부과된 책임의식을 랜드의 소설은 부조리한 정부 시책에 대항하는 영웅의 저항의식으로 대체시켰다. 과거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미지로 대변됐던 가치가 자본가의 것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랜드의 소설은 그냥 허구에 그치지 않고 이후 신자유주의를 이념 지표로 내세운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장악에 명분을 제공했다. 정치적 투쟁뿐만 아니라 미학적 투쟁에서도 보수는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조짐은 철학이나 문학의 영역을 넘어서서 대중문화에까지 확대됐다. 1980년대를 풍미한 '람보'라는 캐릭터는 실제로 좌파의 전유물이라고 할 게릴라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베트남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반전 여론에 일대 반격을 가했다. 이런 방식을 보수의 역전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존 가치를 둘로 쪼개서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구분한 뒤 전자를 취하고 후자를 무마시키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보수는 박정희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이런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위기를 넘어갔다. 부정적 박정희와 긍정적 박정희가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구사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독재자의 딸이라고 해서 독재자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여기에 덧붙여서 '연좌제'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독재자의 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연좌제'라는 것이었다. 이 또한 기존 판단을 헷갈리게 만드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가치와 사실을 서로 겹쳐서 가치를 통해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보수의 반격은 기존에 강고해 보였던 보수와 진보의 구도를 뒤흔들어놓았고, 급기야 그 구분 자체를 무용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진보는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궤멸했다. 특히 한국의 진보는 과거 '87년 체제'로 대표되는 가치에 집착한 나머지 보수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87년 체제'는 무엇이었던가? 이 체제의 가치는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명제로 상징할 수 있었다.

'87년 체제' 관성에 매몰된 진보

독재에 반하는 인민주권에 의한 공동의 정치 형태인 공화주의가 곧 '87년 체제'의 이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에 대해 평등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 공화주의의 핵심이었고, 대통령 직선제는 이런 이념을 물질화한 제도였던 셈이다. 공화주의에서 언급하는 인민주권은 루소가 말하는 것처럼 일반의지의 표현이다. "일반의지는 공동이익밖에 염두에 두지 않지만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전체의지는 개별의지의 총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루소의 견해였다. 일반의지는 전체의지와 다르다는 점에서 언제든지 이미 존재하는 정치체를 전복시킬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일반의지는 개별의지에서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을 감산하고 상쇄한 차이의 합계다. 알랭 바디우가 지적하듯이, 이런 일반의지의 문제야말로 오늘날 정치에서 핵심을 이룬다. 일반의지는 공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공백은 사회의 몫을 분배하는 감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이 공백이 국가의 부분집합에 고정되지 않고 방황하기 시작할 때, 정치 상황이 발생하는 법이다. 이 공백의 방황을 붙잡아두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시민사회'의 개념일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제시하는 연대의 구성은 공화주의에 내재한 불안의 항구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시민사회는 공화주의를 통해 구성된 국가의 불완전성을 채워주는 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87년 체제'는 공화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확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민주주의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루소의 명제를 상기시킨다. 한국의 계급갈등은 평등주의를 사이에 두고 발생했다. 평등주의는 필연적으로 평등의 고원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어떤 평등 제도도 완전하게 평등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모순이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사실은 과두통치에 근거한 '귀족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플라톤의 것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통치자와 피치자를 동일한 것으로 상정한다는 역설을 내재한다. 민주주의가 확산될수록 만인이 통치하고 만인이 그 통치의 대상이 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는 자기모순을 내장하고 있는 셈인데, 보수는 이런 민주주의의 역설을 이용해서 민주주의 무용론을 곧잘 주장해왔다.
그러나 민주주의야말로 국가를 재구성하고 정치를 복원시켜서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이 없다면 사실상 국가는 변할 수 없다. 한국의 '87년 체제'는 이 사실을 적실하게 보여줬다. 2008년 촛불은 '87년 체제'의 이념이 발현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이념의 귀환을 '소극'으로 판단한 이도 없지 않지만, 실제로 촛불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공화주의의 실체를 보여준 중요한 계기였다. '87년 체제'가 확산시킨 평등주의는 독재로부터 자본을 해방시켜서 시장주의를 확산시켰다. 이 평등주의 이념은 시민사회의 연대에 대한 요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소비자민주주의'로 전환됐다. 평등은 곧 동일한 상품을 공평하게 구매할 수 있는 권리로 바뀌었다. 최근 불거진 음원 종량제 논쟁에서도 소비자민주주의는 여지없이 등장한다.
음원권리자, 다시 말해 창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자는 취지로 논의된 음원 종량제에 대한 어떤 기사에서 한 '소비자'는 지나치게 이 논의가 창작자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음원을 창작하는 이를 위한 제도가 창작자의 이익만을 고려한 나머지 소비자의 이익에 무관심하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공평한 소비'를 평등의 핵심으로 이해하는 소비자민주주의라는 이념이다.
평등주의가 만들어내는 평등의 고원을 넓히자는 쪽이 진보였다면, 보수는 그것을 좁히자는 쪽이었다. 그러나 진보 역시 평등의 고원 자체를 없애는 근본적인 방법을 폐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진보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대안을 만들어낼 수 없게 되었다. 진보 역시 평등의 고원을 없애자는 쪽이라기보다, 그것을 조금 넓혀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진입하게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쪽이었던 것이다.
진보가 궤멸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여기에 있었다. 2008년 촛불에서 진보의 한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노래가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실제로 이 공화국의 요체는 '명박산성'으로 드러났다. '명박산성'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은 결국 거기에서 멈추었다. 국가는 호출되지 않았다. '87년 체제'의 공화주의가 제공한 불편한 진실이 '명박산성'에서 여지없이 폭로됐던 것이다. 공화주의가 요구한 저항은 그렇게 공화주의가 제공하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외면으로 종결됐다. 말하자면 공화주의가 허락하는 인민주권의 주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것이다.

진보의 궤멸과 보수의 진화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사회 합의를 통해 연대의식을 구성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민이 아닌 시민의 호출이 이 지점에서 필요했다. 그런데 '87년 체제'의 관성에 빠져 있던 진보는 여기에 적절하게 호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보수 언론이 당시 상황을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칭송하면서 시민의식의 성숙을 주문했다. 상황의 변화를 간파한 쪽은 진보라기보다 보수였다. 이 보수를 보통 '합리적 보수'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이 보여준 향후 행보는 진보의 자리를 점유하면서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표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의회제도는 일반의지를 국가에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의회제도를 강화하는 선거는 공화주의의 불안을 관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보수가 의회제도에 근거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보는 의회제도로 재현될 수 없는 다른 정치가 있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제도의 한계를 확장시키려고 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의회제도를 부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이러한 태도가 정치적 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낳는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더 이상 정치적 기능을 할 수 없었다. 1980년대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성장했던 진보의 가치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자신의 이념 기반을 상실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와 마찬가지로 진보의 의제를 보수에게 넘겨버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에 회자된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정부'라는 표현은 시의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리처드 세이무어가 지적하듯이, 블레어 정부는 진보의 의제를 보수의 것으로 만들었다. '혁신'이라는 말은 공공영역의 민영화를 의미했고, '성장발전'이라는 말은 기업을 위한 감세로 나타났다. 진보가 정권을 잡은 기간에 보수의 가치는 축소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확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 진보의 가치와 대립적이던 요소를 대거 진보의 이름으로 도입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를 '재벌개혁'이라는 진보의 의제와 결합시켰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박근혜 정부의 장관 후보자로 지목됐다가 자진 철회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김종훈이 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에 관심 없던 자신이 정쟁에 휘말려 마녀사냥을 당하고, 그 결과 조국에 봉사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일하겠다는 결심을 포기했다는 주장은 그 뒤 이어지는 한국 재벌과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을 비판하는 내용과 쌍을 이룬다.
김종훈의 논리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한국의 파워엘리트가 자신의 조국에 대해 느끼는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념을 떠나서 한국의 파워엘리트는 고리타분한 사회 분위기에 대해 적대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김종훈을 진보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그는 보수에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그가 한국에서 받은 느낌은 평소 진보가 한국의 보수에 대해 토해냈던 불만과 유사했다. 한국 사회에 대한 편견이 작동한 것이다. 이 편견은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를 뒤처진 것으로 보고,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입장에 기인한다.

<정의>, 1857-빅토르 위고


2008년 촛불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한국의 진보는 '87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낡은 공화주의의 논리를 고집했다. 그러나 이 공화주의는 정작 '명박산성'이라는 합의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로써 발본성을 상실한 진보의 이념은 촛불과 더불어 운명을 다했던 것이다. 촛불은 공화주의의 발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시민사회의 구성 내지는 복원을 요청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공화주의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다른 요소가 촛불에 있었던 것이다. 이 요소가 복지 요구로 발전해 지난해 선거에서 표출됐던 것이라고 하겠다.
이미 확인했듯이, 이런 요구를 발 빠르게 받아 안은 쪽은 진보라기보다 보수였다. 보수의 표상이던 새누리당은 무늬만 바꾸는 것에 불과했다고 하더라도, 여하튼 변화를 모색했다. 그 결과 보수는 표심을 얻는 데 성공했고 효과적으로 의회제도를 방어했다.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의제를 새누리당에 빼앗겼다. 그 이유를 민주당의 무능에서 찾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가치의 전도 현상 때문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진보의 의제가 보수의 것으로 전환돼버린 상황에서 선거의 승패는 누가 더 보수의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누가 진정한 보수주의를 표방할지가 관건이었다. 진보의 이념이 생명을 다한 조건에서 남은 문제는 보수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미국처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새로운 가치로 부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87년 체제'의 잔재는 완강했고, 선거는 독재 대 민주, 또는 박정희 대 노무현이라는 거짓 대립으로 치러졌다. 당연히 잘못된 의제를 내세운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안철수, 한국 보수주의 분열의 상징

민주당은 더 이상 진보의 대표 정당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문제는 민주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보수주의의 분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진보와 보수라는 대립 구도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단일한 보수주의였다. 냉전체제에서 만들어진 이 보수주의는 북한을 대항 테제로 삼아서 반공을 국시로 여겼다. 그러나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한국이 고립된 섬사회에서 세계체제로 편입되면서 이렇게 단순한 보수주의는 견뎌낼 수 없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전개된 시장주의의 확산은 민주주의 이념의 도입과 더불어서 보수주의 내부에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한국은 자체적으로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선진국에서 완성돼 있는 것을 도입해서 거기에 적응하는 것을 능력으로 인정해왔다. 전용 아이스링크장이 없다고 개탄했던 김연아가 승승장구하면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야구선수의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기보다 적응성이다. 선진국 시스템에 어떻게 잘 적응하는지 여부가 관건인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영어 능력'인 것이다.
여하튼 이런 측면에서 한국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이념과 무관하게 외부의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을 보였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변화 방향은 본격적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로 편입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의 가치도 새로운 체제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보수주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난 대선은 이명박 정부를 계승한 박근혜 정부가 집권했다기보다, 다른 보수가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막연하게 진보로 분류되는 현상이 실제로 보수의 분열을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현상'은 한국 보수의 분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과거 1990년대 초반에 있었던 자유주의자들의 커밍아웃을 연상시키는 보수의 커밍아웃이 지난 선거 기간에 두드러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줄까? 말할 것도 없이 보수의 분열이 가속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보가 궤멸한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보수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정부의 출현이 한국의 보수에 유리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증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선된 뒤 보여준 내각 구성의 난항과 리더십 부재는 한국의 보수가 내용으로부터 분리된 형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인민주권에 대한 공포를 항시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한국의 보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연대의 강조일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제도 확대'라는 의제는 바로 이런 보수의 위기를 무마하기 위한 공약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정작 새롭게 등장한 보수 정부는 이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복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박근혜 정부는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져 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창조경제'라는 의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보수의 경쟁이 시작됐다

때늦은 종북 논쟁도 보수의 위기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공화주의에 멈춰 있다는 점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모순의 피해자가 되기 일쑤다. 민주주의 원칙은 우상파괴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 모두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가 제대로 자신의 위치를 보전하려면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강조해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종북 논쟁은 결과적으로 공화주의 원리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종북 논쟁은 지금 한국의 보수가 추구해야 할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파괴하고, 만인에 대한 만인의 심판이라는 마녀사냥을 호출하게 된다.
종북 논쟁이 보수의 공화주의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진보의 공화주의는 지난 대선을 '패배'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실패한 혁명으로 선거 과정을 포장하는 정서적인 반응을 영화 에 대한 동정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선거는 혁명이 아니며, 또한 (레미제라블)의 상황은 21세기 한국과 동떨어져 있다. 공화주의가 하나의 판타지로 작동하는 것을 박근혜 정부의 출범을 통해 재차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또 다른 보수 정권의 출현이라기보다, 한국의 보수가 자기 한계에 도달한 완성의 순간을 보여준다. 박정희의 딸이 청와대로 돌아감으로써, 한국의 정치는 근대의 기원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보수의 뿌리 같은 것이 박정희이지만, 정작 박정희는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파시스트였고, 시장주의에 적대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측면에서 박정희 체제의 계승이라고 보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는 '불가능한 박정희'를 보여준다. 더 이상 효용성을 가질 수 없는 박정희를 확인시키는 것이 박근혜 정부다. 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없이 유지될 수 없는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는 균형을 잃고 표류할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는 과거에 안정적이던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분열하게 될 것이다. 보수의 경쟁이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진보의 자리를 점하고 있던 보수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을까 한다. 너도나도 보수주의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내걸고 말이다. 물론 그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중도보수'일 테다. 중도보수는 쉽게 말하자면 기존 의회제도를 수렴할 수 없는 보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보수의 방향은 어디로 향할까? 아직은 당분간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 영국 셰필드대학 영문학 박사. 계간 편집위원. 저서로 등이 있다.

2013년 1월 20일 일요일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


이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01-11일자 기사 '진보정치에 내일은 있는가'를 퍼왔습니다.
Corée 박근혜는 어떻게 승리했는가

<겨울 이야기> 시리즈(N36), 2009-파올로 벤투라

"모든 사람이, 심지어 아주 어린 꼬마조차 마틴 루서 킹(미국의 목사, 흑인운동지도자)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유명한 순간은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때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한 문장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이 사람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뿐이다. 그것이 무슨 꿈이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슬라보이 지제크가 에서 인용한 이 이야기처럼(1), 이번 대선에서 우리의 처지를 잘 비유해주는 게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정권 교체라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 꿈이 실패로 돌아가고 난 지금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에게 꿈이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꿈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제크는 루서 킹의 예를 자유주의적 전유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인종 차별이 없는 평등에 머물렀을 때, 그는 미국의 정신적 지도자로 칭송되었다. 그러나 그가 거기서 빈곤과 군사주의 문제로 한참 더 나아가고 '평등의 공리'를 실천하려 했을 때, 그는 소수파가 되었고 제거되어야 할 위험인물이 되었다. 공공연히 베트남전쟁에 반대했고, 마침내 1968년 4월 미국 멤피스에서 살해되었을 때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 중이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고 난 뒤에야,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명연설을 남긴 위대한 인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시대에 이르러 백인과 흑인의 평등은 더욱 자명한 정치·윤리적 공리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1920∼30년대만 해도 인종 사이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 정치 세력은 공산주의자뿐이었다는 사실도 그러므로 환기될 여지가 없었을 터다.

우리는 어떻게 퇴행의 길로 접어들었나

어디선가 '대선 힐링'이란 말을 읽은 것 같다. 상처가 생기자마자 힐링이 제공되는 이 놀라운 속도의 서비스 체계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지만, 치유의 길은 상처의 독을 제거한 뒤에야 비로소 열릴 것이다. '멘붕'(멘털 붕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대선 이후의 집단적 패닉 상태는 (그것이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증폭되고 과장된 것임을 감안하더라도) 정치적 이성과 열정, 그리고 그 좌절이 가져온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종교적 현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정치의 종교화'는 일찍이 냉전시대에도 존재했고, 미국 9·11 사태 이후 아들 부시의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느 때부턴가 지배적 정치 세력인 보수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지향한다는 쪽에서도 반복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손호철 교수의 지적처럼 '이명박의 저주'에 '노무현의 저주'(2)까지 겹친 덕에, 2012년 대선은 이를테면 1987년 대선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정권 교체가 그 자체로 절박했던 그때조차 그것 말고도 다른 꿈이 선택 항으로 존재했다는 점에서 본다면, 어쩌면 그 이전 시간으로 되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정권 교체라는 하나의 목표가 다른 정치적 주장의 여지조차 남겨두지 않고 완벽히 삼켜버린, (실상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목표의 모호함까지 가려버린) 종교전쟁에 가까운 총력전 선거에서 패배하자 이번에는 인식의 진공 상태가 발생했다. 마치 종교적 열광 뒤에 다가오는 환멸과 같은 집단적 열패감은 그것대로 정체불명의 덩어리로 남겨진 채. 도대체 우리는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퇴행하기에 이른 것일까?

'좌파' 전선은 어떻게 분열되었나

'모든 향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향수'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우리 모두에게 마냥 좋았던 시절은 존재한 적이 없었다. 존재했던 것이 있다면, 어떤 소수의 집단에는 하염없이 좋았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밑바닥으로 추락해야 했던 '민주정부 10년'이 있었다. 그래도 '진보적 정권 교체'(이는 시작부터 출마를 포기했거나 나중에 도중하차한 '진보정당' 후보가 썼던 말이다) 이후 시작될 민주정부 '시즌 3'가 그전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믿음을 온통 부정할 근거는 물론 없다. 일련의 사람들이 믿는 것이 있고, 이들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때로는 현실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테니 말이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으로 운영'된다는 기발한 단서가 붙기는 했지만, 대선이 끝난 지 보름도 안 되어 제주 해군기지 예산을 전액 합의해준 민주통합당의 행태 한 가지만으로 있지도 않을 미래를 재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경우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자신들의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있었던 사실을 지우려는 욕망이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차별과 해고의 고통을 견뎌온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의 지극히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노무현 당선인' 시절 꼭 이맘때에도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 시절에 죽은 노동자들은 '민주화된 시대'가 도래했다는 정황을 미처 숙고하지 못한 '빗나간 죽음' 취급을 당했다. 그런 언설을 가능하게 했던 윤리적 우월감은 그것의 반인간성, 즉 반윤리성으로 인해 스스로 사라지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까지 남아 민주-반민주 구도의 토대가 되었다. 이 흔들림 없는 윤리적 우월감은 혹시 떨림과 흔들림이 없는 인간을 낳은 건 아닐까? 더 뻔뻔하고 나쁜 집단이 존재하는 한, 이 윤리적 우월감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무감한, 차라리 감옥보다 교활하게 잔인한 손배 가압류의 시대는 그렇게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물론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죽음'으로 상징되는, 노동하는 인간의 비극은 장기 지속되어온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이 말은 곧장 이런 현실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 세력이 '노동정치'의 실현을 존재 이유로 삼는 좌파라는 걸 의미한다. 이쯤에서 밝혀두지만, 이 글은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에도 좌파(나 자신까지도 포함된)임을 주장하는 집단의 자기성찰을 시도하려는 목적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다. '진보신당 전 대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오늘, 1년 가까운 현실정치인의 기간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두 개의 상이 있다. 하나는 움켜쥐고 있던 플래카드의 끝자락이라는 유형의 상이고, 다른 하나는 온통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이라는 무형의 상이다. 애당초 중앙이나 높은 자리와 인연이 없었던 나는 결국 플래카드의 끝자락조차 놓아버려 "사진에 나와야 합니다. 놓지 마세요"라고 당부하던 당직자를 실망시켰는데, 높은 성벽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활동가들에게 활동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하기보다 끊임없이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바깥보다 내부에서 쌓아올린 배제의 성벽들은 참으로 강고하고 높았다. 가령 한 정파가 노조 집행부를 장악한 현장에 다른 정파 활동가는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도 정파의 노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배타적 지지'의 관리 대상이었을 뿐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주체가 아니었다. '노동 없는 민주주의' 이전에 조직노동 스스로 민주주의 바깥에 있었고, 주체 형성은 각 정파의 성벽 안에 가둬져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는 식의 침묵이나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태는 현실적 역량이 부족한 좌파라는 말로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좌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의도적 묵살일 공산이 크다. 비정규직 출신 '노동자 대통령 후보'는 경찰의 주먹에 얻어맞기 전 진보 정당들에 의해, 무엇보다 정규직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노동에 의해 외면당했다. 여기에 '내가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성벽이 작용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는 '세계를 구축하는 차이'를 의미 있게 보여주지 못한 주체의 무능과 더불어 삭제되어서는 안 될 기억으로 남아야 할 것이다. 당연히 하나여야 했던 노동자 후보가 둘이 된 실패의 참담함과 함께.

좌파 엘리트들만의 '노동자 정치 세력화'

앞선 몇 차례의 대선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낸 것은 국민이 지닌 평균적 정치 수준의 향상에 기인한다기보다는 사회·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따른 불안감과 미래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만약 자본주의의 실패 자체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그 근간에서부터 뒤흔들고, 사회가 걷잡을 수 없이 양극화될 뿐 아니라 이전의 노동과 복지 의제들이 사회적 고통을 해결하는 데 턱없이 못 미치는 현실이 닥치는 상황에서 예의 고전적 정당정치론은 무슨 말을 들려줄 수 있을까? 실패한 자본주의가 가져온 민주주의의 위기는 마침내 '대표성의 위기'가 아니라 '대표성의 착란'을 가져온다. 총자본의 이해를 대변할 것이 분명한 정치권력이 민생정부를 표방하고 '100% 대한민국'을 주창하는 것이야 승자의 수사라 치더라도, 계급의 이해를 초월하는 국민 통합을 보수주의에 청탁하는 기이한 현상이야말로 정당정치론의 '비상사태'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던 대의제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하는 정당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노동 세력이 꼭 정당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는 없다"(3)고 회의적인 진단을 내리면서도, 안철수의 '제3 정당'이 만들어진다면 "한국 정치사와 정당 체제의 중대한 변화"라고 이야기할 때, 그가 말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의 상처들'은 정치의 바깥으로 내던져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에 완성이라는 건 애당초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다가갈수록 저 멀리 물러난다. 민주주의의 성숙이 '민'의 성숙, '민주' 의식의 형성 없이 가능하지 않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정치적 주체 형성 없이 다다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층위란 어디쯤일까?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두루 공부하는 사회 과목에서 자본주의에 관해 공부한 게 별로 없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것조차, 선배를 '잘못' 만나거나 해고나 차별을 직접 당하고 싸운 경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한 사회에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에 아예 가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사회적 갈등과 모순, 인간의 고통이나 요구, 이해. 이것들 모두가 정당으로 대표되는 것을 통해 극복되고 해결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유일한 선택 가능성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더구나 노동 세력이 반드시 스스로 정당으로 발전할 이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민주주의는 99%의 인간들을 언제라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주의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어떤 문제도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 틀 안에서 '실현 가능한 이념과 정책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때 정치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주장은, 오로지 시장에서 교환될 수 있는 가치만 남기고 나머지 가치들은 균등화하는 자본주의 체제 논리에 정확히 조응하는 정치의 물신화와 다름없다. 문제는 이런 자유주의적 협박을 '진보를 대표한다'는 정치 세력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애초의 목표는 의회에서 노동자를 대표하는(한다고 주장하는) 정치 엘리트와 조직노동의 상층 간부의 정치적 진출의 공간 확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돼버렸다. 
그렇다면 대의제에 갇힌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무상교육·무상의료'라는 보편적 복지 의제의 제출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체제가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가능한 사민주의적 정책 몇 가지를 제출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의회 진출 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치 활동을 통해 존재 이유를 지닐 수 있었던 좌파 정치는 의회 권력 안에서 생존하는 데 몰두하면서 "주요 엘리트들이 정치적 자원을 증대하기 위해 대의도 없는 편의적 통합"(최장집)을 하기에 이른다. 이 '진보의 허구적 존속'이 어떻게 급속히 파산에 이르렀는지는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에서 '진보는 나로써 통합되었다'는 의미의 패권주의와 배타성을 읽은 것은 정치적 소수파의 눈이었겠지만, 최초 당대표 3인이 모두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이 금세 눈에 들어왔던 건 진보 정당 대표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현장노동자 출신이 주로 나오는 유럽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좌파 정당의 진정한 위기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조차 자본주의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한지 회의하는 마당에 좌파의 존재 이유이자 대의인 '자본주의 극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좌파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거의 없다. 대의제민주주의의 진정한 위기는 기존 대의제로는 대표가 불가능한 존재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벌거벗은 생명'들- 이 시대의 '레미제라블'(비참한 사람들)- 이 넘쳐나게 되었다는 현실에 있다. 자본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단계로 이행한 지 오래이고,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노동하는 삶을 항상적인 비정상 상태(비정규직화)에 몰아넣거나 노동 밖의 잉여적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고용과 성장'이 순환적 관계에 있을 때나 가능했던, 이미 위기에 처한 유럽의 '관리사회형 복지 모델'을 베끼려고 시도하는 사이, 자본주의의 극복이라는 좌파의 정치적 임무는 유효기간이 끝난 석유 문명 이후를 고민하는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의 몫이 되어버렸다.
사회·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사람들의 삶이 불안에 휩싸인다고 해서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위기가 총자본 보호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민생'과 '복지'가 보수주의의 정치적 수사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머잖아 목격하게 될 것은 성난 대중의 반란이 아니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애로운 보수 정치의 얼굴일 것이다. 설사 다른 손에는 '법과 원칙'이라는 몽둥이가 들려 있다 할지라도. 때맞춰 상영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힐링 효과를 주고 있는 영화 에서 이끌어내고 싶은 얘기는 빅토르 위고가 벌써 150년 전 했던 말이다. "왜 사람들은 온정, 시혜에 관해 말할 때 항상 주는 쪽에 서 있나?", "파리는 항상 이(齒)를 드러내고 있다. 웃지 않으면 화를 낸다"는 그의 말에서 주체는 보이되 객체는 보이지 않는다. 온정과 시혜, 그것을 주는 자에겐 말하는 입이 있지만, 받는 자에겐 고픈 배를 채울 입이 있을 뿐 말하는 입이 없다. 주체와 대상은 항용 그렇게 갈린다.
사람들의 삶이 파산되고 신음하는 장소를 그저 찾아다니기만 하는 '민생진보'는 존엄성이 이미 훼손된 존재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조금도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대의제민주주의를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오로지 대의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대의제에 갇혀 고사당하는 정치를 해방시켜, 편재된 고통에서 정치의 장소를 재발견하고 그 장소에서 새로운 정치적 주체화를 통해 대의제를 포위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 좌파 정치는 '반드시' 정당으로 조직되어야겠지만, 민중이 삶과 노동의 장소에서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는 길을 사유·실천하지 못하고 민중을 통계의 형태로 환원시키는 선거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좌파 정당은 '기울어진 운동경기장'의 대기실에서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의 적은 바로 자신의 자폐성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진보신당 강령 전문 중에서)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4)를 묻고 노동자가 경영권을 갖는 주체가 되는- 기업이라는 폴리스(Polis)의 주인이 되는- 대안이 추구되지 않을 때, 국가권력을 주어로 하는 재벌 개혁은 오늘의 난폭한 자본주의를 과연 통제하는 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현실이 유지될 때 '해방된 주체'들을 자원으로 삼지 못하는 좌파 정치는 대의제 안에서 얼마나 생존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오늘 초라한 모습으로 남겨진 좌파들에게는 어떤 길이 남아 있을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1차 파국과 함께 시작된 총자본의 공세-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 가 '포섭과 배제' 전략에 따라 진행되면서 노동 사회 내부는 분열되고 수직적 분업 체계로 재편되었다. 노동자이자 주식투자자인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과 "노동하다가 일시적으로 노동하지 않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비노동 상태로 살면서 일시적으로 노동하는 존재인"(5) 비정규직 노동자는 하나일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호소하거나 노동이 중심이 된 좌파 정당의 출현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망해 보인다. '좌파의 황금기'에 대한 향수에 기댄 '노동자계급 정당' 건설의 꿈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이런 엄연한 현실에서 자본주의의 극복을 지향하는 좌파 정치는 노동자들을 '과잉인구'로 만들어버리는 '고용 없는 자본주의'에 노동자 경영권을 통해 민주적 통제를 실행하는 길을 모색하거나, 기본소득제의 실현을 통해 권력의 자원으로 봉사하는, 아니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금융자본을 공공화해 민중의 인간다운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삶의 자원으로 전환시키는 길을 동시에 모색하는 길을 공세적으로 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 성숙의 길이 각자 몸이 있는 자리마다 주인이 될 때, 다시 말해 집안과 배움터와 일터에서 주체로 살 때 그만큼 열릴 것이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영혼이 잠식되는 것을 막지 못할 때 발가벗은 존재의 입들은 오로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열릴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좌파는 먼저 사라진 '노동의 세계'에 대한 향수와 왜곡된 선민의식에 갇힌 심각한 자폐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가득 찬 세계라 할지라도 오늘의 자본주의를 어제의 자본주의로 되돌릴 수는 없다. 오늘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현실을 두고, 이미 잉여가 되어버린 광범한 실업인구를 두고, '완전고용' 사회가 가능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설령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허위이다. "정규직화된 고용조차 불가능한 오늘의 자본주의가 지닌 한계 지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만" 비정규직의 완전한 철폐는 정치적 요구로서 유의미하다. "그것이 차라리 불가능한 요구이고, 그 불가능성이야말로 그 요구를 의미 있게"(6) 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삶은 살아져야 할 뿐 아니라 영위되어야 한다. 그것은 생산을 멈춰 세우게 하는 파업으로만 달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100만 원씩 줘보라, 세상이 안 바뀌나!"(7) 오늘 비참함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국가복지의 수도꼭지 앞에 줄 서게 하는 수치의 감수자가 아니라, 자기 삶을 영위하는 당당한 주체로 사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 한 좌파 정치의 내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선취해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좌파를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글 홍세화 진보신당 전 대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전 편집인.
(1) 슬라보이 지제크,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김성호 옮김, 창비, 79쪽. 
(2) (경향신문) 손호철의 정치시평, 2012년 12월 24일. 
(3) 최장집, ‘신년기획: 2013년을 말하다(2)’, (경향신문), 2013년 1월 1일. 
(4)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꾸리에, 2012. 
(5) 이진경, ‘노동자는 하나다?… 흘러간 옛노래’, (프레시안) 2012년 1월 2일
.(6) 이진경, 위의 글.
(7) 김종철 대담, ‘모든 시민에게 100만 원씩! 세상이 안 바뀌나보자’, (프레시안), 2011년  11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