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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박근혜 "그 사진 딱 찍어서 악랄하게 유포" 사진팀장 "이례적 상황 사실보도일 뿐...잠 확 깼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11-27일자 기사 '박근혜 "그 사진 딱 찍어서 악랄하게 유포"사진팀장 "이례적 상황 사실보도일 뿐...잠 확 깼다"'를 퍼왔습니다.
[단독 TV 토론] (오마이뉴스) 보도 사진에 맹비난... "악랄하다? 심히 유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한 지지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손을 잡으려 하자 "손이 아프다"며 악수를 사양하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26일 '국민면접 박근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단독 TV토론에서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사진에 대해 "악랄하게 유포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해당 사진을 찍고 보도했던 권우성 (오마이뉴스) 사진팀장은 "이례적 상황에 대한 사실보도였다"면서 "악랄하다는 표현에 심히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박 후보는 이날 오후 11시 15분부터 공중파 3사(KBS·MBC·SBS)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단독 TV토론에서 2장의 보도사진에 대해 해명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 중 한 장이 (오마이뉴스)가 지난 5일 보도했던 '악수 사양하는 박근혜' 사진(위 사진)이다.

이 사진에는 당시 박 후보가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중앙회를 방문해 건물로 들어서기 전 한 노년 여성 지지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악수를 청하자 양 손을 등 뒤로 돌린 채 사양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오마이뉴스)는 사진 설명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한 지지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다가와 손을 잡으려 하자 '손이 아프다'며 악수를 사양하고 있다"고 명시(☞ 해당사진 보기)했다.

보도한 '악수 사양' 사진에 "악랄" 비난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6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생방송 TV토론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 후보는 이 사진에 대해 "그 사진을 딱 찍어서 악랄하게 유포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들이 제손을 꽊 잡아서 제 손이 부실하다. 악수도 많이 하고 반갑다고 하면서 꽉 잡는 분도 많아서. 그(해당 여성이 다가오기) 전에 어르신이 잡은 게 아팠다. 그래서 제가 (손을 뒤로하면서) 이렇게 하고 주무르면서 맛사지를 하고 있는데, 어르신이 오신 거다. '손이 아파서'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사진을 딱 찍어서 악랄하게 유포를 시켰다. 어르신이 사정을 알고 인터뷰를 해서 (당시 상황이) '사람을 차별하는 게 아니다'라고 인터뷰까지 한 동영상이 떴다."

하지만 권우성 사진팀장은 정상적인 보도사진에 대해 "악랄"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비난한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했다.

권 팀장은 "박 후보가 악수를 많이 하고 다녀서 손이 아프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손이 아파서 그랬다는 것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사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정치인들은 가만히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가서서 일부러 악수를 한다, 박 후보도 보통 수행원이 제지하거나 그랬지 뒤로 숨기지는 않았다"면서 "그런데 손을 뒤로 감추면서까지 악수를 피한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인 장면이어서 보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악랄하다는 표현은 최고 수위의 표현"이라며 "생방송에서 대놓고 '악랄하다'고 하는데 잠이 확 깼다, 심히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사진을 보도한 직후에는 크게 논란이 된 게 아니었다, 박 후보가 이어서 대한노인회 간부들과는 악수를 하는 장면을 보고 누리꾼들이 다른 사진과 붙여서 퍼나르면서 '직책이 높은 사람과는 악수하고 일반인과는 악수를 피하는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를 했고 파장이 커졌다"며 "박 후보가 말한 악랄이 해당 사진을 보도한 게 악랄하다는 건지, 사진을 퍼 나른 게 악랄하다는 건지, 둘 다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갈치시장 '물가 무지' 사진에도 "상당히 악의적"... 왜 이러나

▲ 26일 오후 경기도 고양킨텍스에서 열린 '생방송 2012대선후보 TV토론'에서 송지헌 아나운서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에게 대한노인회를 방문했을 때 악수를 사양하는 <오마이뉴스> 사진(왼쪽)과 또 한장의 사진을 보여주며 해명할 기회를 주고 있다. ⓒ 오마이TV 화면

박 후보는 또 한 장의 사진([오마이뉴스] 사진 아님)에 대해서는 "상당히 악의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비난했다. 해당 사진은 지난 9일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꽃게·가리비·대합 등 해산물을 한가득 받아든 박 후보가 5000원권 1장과 1000원권 3장 등 8000원을 꺼내들고 있는 장면이다.

당시 상황에 대해 박 후보는 "꽃게를 사러 왔는데 제 주머니를 찾아보니 8000원 밖에 없었고, 가리비도 대합도 샀는데 턱 없이 부족해서 그걸 들고 '턱없이 부족한데 어떡하나'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조윤선 대변인이 5만 원을 꾸어줘서 제가 그 걸로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후보는 해당 보도에 대해 "상당히 악의적인 보도"라며 "어떡하지 고민하는 순간을 딱 집어서 '물가도 모른다'며 악의적으로 유포를 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취재내용을 보면 충분히 그런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자갈치시장 현장 상황은 박 후보를 보러 몰려든 인파로 인해 취재 기자들이 모두 가지 못하고 몇 개 언론사가 대표로 취재를 해서 내용을 공유하는 일명 '풀 취재'로 운영됐다. 당시 공유된 취재내용을 보면 해산물이 담긴 봉지를 건네받은 박 후보는 8000원을 꺼냈고, 상인은 가격은 말하지 않고 멋적게 웃으며 그 돈을 받았다. 그 뒤 조윤선 대변인이 5만 원짜리를 박 후보에게 건넸고, 박 후보가 "이게 맞나요?"라면서 돈을 지불했다. 상인은 "네 맞습니다"라면서 돈을 받았다.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조 대변인은 "먼저 몇 천 원을 줬다가 아주머니 표정이 이상해서 내가 돈을 준 게 아니다, 후보가 주머니에 돈이 그거밖에 없어서 '모자라는데…' 하는 난처한 표정을 했다, 그래서 내가 돈이 있는 걸 드렸더니 아주머니가 '이거 5만원 정도 한다' 그러더라"며 "풀 취재내용에 있는 대로 '나머지 돈(후보가 준 돈)을 돌려줬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취재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안홍기(anongi)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이한열·김구 사진, 교과서에서 삭제 위기


이글은 경향신문 2012-10-21일자 기사 '이한열·김구 사진, 교과서에서 삭제 위기'를 퍼왔습니다.

ㆍ국사편찬위 ‘재수정 권고’ 지연

국사편찬위원회가 김구 선생·이한열 열사의 사진설명과 사진을 역사교과서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재검토하기로 해놓고 아직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교과서 출판사들은 다음달 중 교과서 인쇄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문제의 교과서가 내년에 그대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과서 검증을 맡은 국사편찬위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임시정부 요인 사진설명에서 김구 선생을 제외하고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빼도록 출판사에 권고(경향신문 10월9일자 12면 보도)한 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는 21일 “국사편찬위의 공식 결정을 아직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교과서 문제는 검증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가 절차적 차원에서 심의위원회를 다시 열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사편찬위 이태진 위원장은 지난 9일 국정감사에서 여야 정치권의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문제가 된 사항을 바꾸는 것이 옳다”고 시인했다. 그는 지난 16일 이한열기념사업회가 국사편찬위를 항의방문했을 때도 “교과부에 원상복구 건의를 할 것을 적극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사들은 11월부터 내년도 교과서를 인쇄하기 때문에 재수정 권고가 빨리 내려오지 않으면 이한열 열사·김구 선생이 빠진 교과서가 그대로 인쇄될 수도 있다.

이한열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이한열 사진이 빠진 교과서 출판사에서는 10월 말까지 재수정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하면 교과서를 그대로 인쇄해야 한다고 했다”며 “시한이 촉박해 유야무야 넘어갈까 봐 걱정된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 관계자는 이날 “국사편찬위는 검정기관이며 교과서를 재수정하는 권한은 교과부에 있다. 교과부에서 행정절차를 밟고 국사편찬위 검정심의회에서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 재수정해도 좋다는 권고가 있어야 원상복구가 가능하다”면서 “최대한 빨리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2012년 10월 3일 수요일

고양이를 불로 태워 죽인 사진 '파문'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10-02일자 기사 '고양이를 불로 태워 죽인 사진 '파문''을 퍼왔습니다.
"이런 일을 어떡해"…'수사청원' 서명운동 4일만에 77% 기록

▲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에 네티즌 십숑키가 올린 사진.
고양이를 불로 태워 죽인 뒤, 동영상을 캡처한 사진이 트위터에서 퍼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 씹쌩큐라는 네티즌이 지난달 30일 벌인 이슈청원(서명운동) '고양이 바베큐란 제목으로 한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수사 촉구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해당 사진에는 작은 새끼 고양이에 라이터 기름을 부은 뒤, 불을 붙여 죽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래 '고양이'라는 동물이 경계심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기름까지 맞으면서 주변에 있었다는 점을 두고 "고양이를 키우던 주인이 이런 행위를 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
네티즌 씹쌩큐는 "뉴빵카페 킹왕짱이슈 게시판에서 '고양이 바베큐'란 제목으로 어떤 한 사이트에서 올린 게시물을 캡처한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이트에서 누가 이 게시물을 올린 것인지 아이디가 뭔지 자세한 것을 모릅니다"라면서 "하루빨리 수사에 착수해서 범인을 잡아서 벌을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서명해주십시오ㅜㅜ"라고 글을 올렸다.(☞ 서명운동 바로가기)
이에 트위터리안들은 "어떤 미친놈이 고양이 불태워서 죽인 다음 사진 찍어서 올린 거야. 그래서 빨리 사이버수사해서 범인 잡아야 해요! 서명해주시고 RT(리트윗) 부탁 드려요"라면서 멘션을 잇따라 올리고 있다.
다음 아고라의 서명운동은 불과 4일만에 77%(2,315명, 2일 2시 32분) 서명률을 기록했고, 수많은 트위터 여론은 "이런 태워죽일 놈!", "작은 생명조차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인륜에 벗어난 인간!", "미친 것 아닌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제발 잡혀라!", "똑같이 해서 죽여야", "아 열받아", "나도 고양이를 싫어하지만, 이건 아니다" 등의 비난과 개탄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한편, 이같은 행위를 한 사람이 수사대에 잡힐 경우 현행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김경환 기자  |  1986kkh@pressbyple.com

2012년 10월 1일 월요일

박정희 '일왕 스타일' 사진 "뼛속까지 친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9-28일자 기사 '박정희 '일왕 스타일' 사진 "뼛속까지 친일"'을 퍼왔습니다.
(박근혜 바로보기) '사무라이 박정희 섹스파티' 중에서

▲ 출처=트위터
28일 트위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육영수씨의 사진이 화제다.
이 사진은 박정희 대통령기념관에 있는 것으로 흰 나비넥타이에 어깨띠, 목걸이훈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복장이 사진에 있는 일왕의 모습가 비슷해 역대 일왕의 사진이라고 말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를 본 트위터들은 "왕이 되고 싶었던 남자!", "일본육사 출신인걸 자랑스럽게 광고하나봐요", "‏헉 진짜 일왕스타일..ㅋㅋㅋ박정희기념관 빨리 없애야 하는데"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이 얼마나 일본을 동경했는지는 (박근혜 바로보기)에 잘 서술돼 있다. 
다음은 (박근혜 바로보기)의 일부. ('사무라이 박정희'의 섹스파티 50쪽)
△박정희의 ‘심복’으로서 한때 비서실장 이후락이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던 강창선(전 보안사령관)의 증언을 보기로 하자. 그는 중앙일보 1991년 12월 14일자에 이렇게 썼다.
“(···)계엄 선포 한 달쯤 전인가(1971년 10월 17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박 대통령이 나를 불러요. 집무실에 들어갔더니 박 대통령은 일본군 장교 복장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죽장화에 점퍼 차림인데 말채찍을 들고 있었어요. 박 대통령은 가끔 이런 복장을 즐기곤 했지요. 만주군 장교 시절이 생각났던 모양입니다. 다카키 마사오 중위(박정희의 일본 이름)로 정일권 대위 등과 함께 일본군으로서 말 달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박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할 때면 그분은 항상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김삼웅, [친일정치 100년사], 293~294쪽에서 재인용)
박정희는 5·16 쿠데타 이후 가장 먼저 일본에 친선사절단을 보냈으며, 그가처음으로 공식 방문을 한 나라도 일본이었다. 일본을 방문한 박정희는 도쿄의 한 고급요정에서 그 나라 정·재계의 ‘거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
일본 자민당 부총재 오노는 1963년 12월 17일에 열릴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전에 도쿄에서 기자회견 열고 “박정희 대통령과는 부자 사이 같은 관계로서 아들의 경축일을 보러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다”고 공언함으로써 한국민들을 격분시켰다. 박정희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의 총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벌어지자 주한일본대사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외교관은 (국가와 정보)라는 책에 ‘대일본제국 최후의 군인이 죽었다’고 기록했다.
박정희는 청와대에 머물던 시기에 마당에서 닛뽄도(일본도)를 휘두르면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가 하면 일본의 전통대중가요인 ‘엔카’ 또는 제국주의 군가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민족적 민주주의’와 ‘조국 근대화’를 외치던 국가원수가 실제로는 일본 봉건시대의 사무라이나 침략군의 장교처럼 행동했던 것이다.
박정희는 현역 군인 시절은 물론이고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에도 청렴하고 결백하고 서민적이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으려고 애를 썼다. 제대로 된 자기 집이 없다거나 쌓아둔 재산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는 얼마쯤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그가 대통령으로서 모내기 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사발 채 들이키는 모습은 ‘빈농의 아들’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윤경진 기자  |  ykj23@pressbyple.com

2012년 9월 5일 수요일

기무사, 입대 전 미니홈피까지 감시했다


이글은 시사IN 2012-09-05일자 기사 '기무사, 입대 전 미니홈피까지 감시했다'를 퍼왔습니다.
이 대위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군대 내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찾았다. 비공개로 쓴 인터넷 게시물부터 군 입대 전 스크랩한 사진까지 지우라는 명령을 받은 이도 있었다.

(시사IN)은 이 대위 사건을 계기로 온라인상 또 다른 표현의 자유 침해 사례를 찾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군 복무를 했던 이들 중에는, 비공개로 쓴 인터넷 게시물부터 민간인 시절 스크랩한 사진까지 지우라는 일을 겪은 이도 있었다.  

2010년 공군 일반병으로 입대한 김한준씨(가명·22)는 훈련소에서 개인 신상정보를 써내며 개인 홈페이지 주소란도 채웠다. 며칠 후 소대장이 따로 김씨를 불렀다. 그는 김씨에게 개인 홈페이지에 군대나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시사IN 조남진 트위터에 대통령에 대한 글을 올려 ‘상관모욕죄’로 기소된 이 아무개 대위에 대한 공판이 8월22일 열린 가운데 군 관계자들이 재판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김씨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소대장은 당장 삭제를 명했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던 군 생활 초기라 그는 곧바로 집으로 연락해 블로그를 비공개로 바꿨다. 김씨 외에도 온라인 활동을 한다고 적어낸 5명 중 음악 블로그를 하는 한 사람 외에는 모두 비공개 처리를 해야 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그는 또 상사에게 불려갔다. 주임원사의 첫마디는 “싸이월드에 반정부적인 글을 올린 적이 있느냐”였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더니, 상사는 미국산 쇠고기 비판 같은 걸 올린 적이 없느냐고 되물었다. 그제야 무언가가 생각난 김씨는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삭제한 후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군에서 문제가 된 온라인 게시물들 중 이명박 대통령이 레닌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
기무사에서 다 보고되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2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미니홈피에 관련 웹툰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것도 그가 직접 작성한 게 아닌 스크랩 게시물이었다. 김씨는 “잘 기억도 안 나는 예전에 쓴 게시물을 지금 군인이라고 해서 지우라니 좀 황당했지만, 지시에 안 따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어 군말 없이 삭제했다”라고 말했다. 

비공개 미니홈피까지 털려

2009년 해병대에 일반병으로 입대한 김준호씨(가명·23)는 입대 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해병대 관련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렸다. 해병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미리 뒤적여보면서 별 생각 없이 올린 사진이었다. 김씨 또한 해병대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지적을 받고 사진을 삭제해야 했다. 2010년 공군에 입대한 이진이씨(가명·24)는 싸이월드 다이어리 글을 지워야만 했다. 그가 입대 전 해, 우측통행으로 바뀐 세태에 대해 불편하다고 투덜거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썼던 글은 “우파 정권이 나라를 잡으니 걷는 것도 오른쪽으로 바뀌나”였다.

심지어 자신의 싸이월드 주소를 군에 알리지 않았는데도 ‘기무사의 검열’에 걸린 사람도 있다. 2010년 공군에 입대한 이가현씨(가명·24)는 군 입대 전 미니홈피에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올린 적이 있었다. 1989년 이 대통령이 당시 소련 모스크바의 레닌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씨는 사진과 함께 “그럼 이명박 대통령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농담 투로 썼다. 자대 배치를 받고 3개월가량이 지난 때, 상사가 불러 해당 게시물에 대해 추궁했다. 이씨는 곧 게시물을 삭제해야 했다. 

군에서 문제가 된 온라인 게시물들 중 미국산 쇠고기 관련 웹툰
비공개 게시물 때문에 영창에 갈 뻔한 사연까지 나왔다. 2010년 G20 정상회의가 끝난 시점, 강민우씨(가명·22)는 ‘미니홈피에 상관모욕죄에 해당하는 게시물이 있다’라는 통보만 받았다. 2009년 육군 일반병으로 입대하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니홈피 사진첩을 비공개로 전환해 둔 터라, 그는 무슨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중대장과 함께 미니홈피에 접속해 30분 동안 비공개 게시물을 뒤지다가 이명박 대통령 합성사진을 발견했다. 군에 가기 전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합성-필수요소’ 갤러리에서 퍼온 사진이었다. 강씨는 이 건으로 사단 법무부까지 조사를 받으러 갔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군 입대 전 게시물이라는 게 참작이 되어 구두 조치로 끝났지만 그땐 정말 이러다 인생이 끝날까봐 무서웠다. 그 이후에 싸이월드 사진첩 폴더 자체를 아예 다 삭제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지금도 당시 충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비공개 게시물도 누군가 마음먹으면 볼 수 있는 상황을 겪은지라, 온라인에 무언가를 올리는 걸 꺼리게 되었다.

최강욱 변호사는 “이건 군인의 표현의 자유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구차한, 유신이 부활한 듯 느껴지는 일이다. 민간인일 때 올렸던 글까지 삭제하라고 한 건, 군인을 군대의 소유물로 보는 것 같아 황당하다”라고 말했다. 이재정 변호사는 병사의 미니홈피를 검열하고 삭제를 지시하는 것은 기무사의 권한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국군기무사령부령에 명시된 직무 범위는 군에 대한 보안 및 방첩 업무, 대정부 전복·대간첩 작전 등과 관련한 첩보 등이다.

김은지 기자 | smile@sisain.co.kr

2012년 9월 3일 월요일

4대강 공사 전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이글은 프레시안 2012-09-03일자 기사 '4대강 공사 전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를 퍼왔습니다.
[포토]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강의 마지막 얼굴

4대강 공사가 끝났습니다. 강은 바다가 돼 버렸습니다.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을만큼 흔적조차 깊은 물에 잠겼습니다. 이 모든 공정이 불과 3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인 2008년부터 남한강을 기록한 사진가 박용훈씨가 4년 동안 기록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아름답던 풍경은 물론, 참혹한 공사현장과 어색하게 변해버린 오늘의 강변까지를 담았습니다. 공사 전 마지막까지 웃고 있던 강의 얼굴은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기까지 합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아련한 풍경과 함께,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할 아프고 불편한 기억을동시에 전합니다.

사람들이 여강이라고 부른 여주 남한강은 소박하고 정겨운 강이었다. 낙동강처럼 고운백사장이 강 따라 끝없이 펼쳐지던 그런 풍경은 없었지만 하얀 속살을 보이는 여울에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을 기다리는 백로, 깔깔대며 맑은 강에서 노는 아이들, 여기저기 습지와 갈대의 춤사위, 올망졸망 펼쳐진 조약돌 강변, 그 강변에서 알을 품다가 사람을 따돌리느라 애간장을 태우던 작은 물떼새, 아늑한 백사장과 강변 버드나무 수풀, 놀라 뛰어 달아나던 고라니와 꿩 그리고 모래에 부채를 그리는 방동사니와 개미지옥과 도리섬 사구에서 자주 만났던 표범장지뱀, 일년을 살아야 겨우 손가락만하여 애써 척박한 돌밭만 찾아다니지만 가을이면 노란 꽃술에 연보랏빛 청초한 꽃을 한꺼번에 피워내던 단양쑥부쟁이들, 아침햇살에 반짝이던 도리마을 앞 강물과 붉은 낙조를 뿜어내던 흥원창... 여강은 아름다웠고, 구비구비 강 따라 보석이었다.

ⓒ박용훈

ⓒ박용훈

강이 죽었다고 했던가? 그 강을 살린다며 2010년 들어선 어느 겨울날 바위늪구비 일대의 버드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뽑아내고 아예 습지를 수장하고, 강에서 폭약을 터뜨리고 바위들을 깨부수고, 물막이로 강을 나누고 강물을 다 뽑아내고, 물고기들이 떼로 죽거나 물이 빠져 드러난 바위 틈틈이 머리를 처박고 죽거나 조개들은 우왕좌왕하다가 말라죽거나 갈 곳 잃은 새들은 공사장을 배회하고, 단양쑥부쟁이는 뿌리가 뽑혔다. 그리고, 강이 좋아 백사장이 보이는 곳에 집을 지었던 한 시인은 망가지는 강을 보며 저녁마다 울었다.

강바닥을 파고 닥닥 긁어낸 후 다시 강물을 채웠다. 강은 넓고 깊어졌고 강을 가로질러기둥을 크게 박은 보는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강을 만들었다. '생명이 깨어나는' 그 강에 잘 포장된 자전거도로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었다. 한 때 농토였고 수변습지였으며 고라니의 침실이었고 버드나무 군락지였던 곳들은 4대강변 따라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하는 자전거길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강 따라 마주선 절벽이 깎여나갔고, 과수밭이 잘려나가고, 한적한 도로가 있어도 자전거길은 강을 바로 마주보며 달려야했다. 바위늪구비 남은 땅에도 더 이상의 공존은 없다. 오로지 사람을 위한 땅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강 따라 펜스가 쳐지고 펜스 길따라 사람의 왕래가 없어서 무성한 풀이 앞을 막는다. 사람들은 전처럼 강에서 물놀이를 하지 못하고 펜스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커지기만 한 강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만 있을 뿐이다.

강에 그렇게 많은 물을 채웠는데 가뭄해소에 요긴했다거나 전보다 더 맑은 물을 더 잘 사용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기후변화에 대비한다고 하였지만 4대강의 녹조창궐은 18년 만에 찾아온 폭염 탓일 뿐이다. 22조를 들였다는데 무엇이 좋아진 것일까? 아름답던 백사장과 뛰놀던 고라니와 도리섬 옆에서 한가롭던 고니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파란하늘 뭉게구름 그리는 강에서 맑은 웃음소리 강물 따라 흘려보내며 한 여름을 놀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반만년 비단결 같은 금수강산이라는 이 땅에다 고작 2년 반 동안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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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훈 사진가

2012년 7월 9일 월요일

‘머리끄덩이녀’ 사진, 최악의 포토 저널리즘


이글은 미디어오늘 2012-07-09일자 기사 ' ‘머리끄덩이녀’ 사진, 최악의 포토 저널리즘'을 퍼왔습니다.
[슬로우뉴스] 정말 대선 구도 흔들까… 보수 언론의 바람일 뿐

19대 총선 과정에서 비례대표의 당내 경선 부정과 관련하여 벌어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석기, 김재연 두 국회의원의 사퇴 문제를 놓고 여전히 논란이 그치지 않는 상태다. 이번 사태로 가장 유명해진 이는 두 사람이겠지만, 이들처럼 스스로 공인으로 나선 것도 아니고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닌데 덩달아 하루아침에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지난 5월 12일 당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벌어진 몸싸움 과정에서 조준호 전 공동대표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당기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유명해진 2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다.
이를 악물고 다부지게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박씨의 모습이 조 대표의 괴로워하는 표정과 함께 찍힌 이 사진은, 극단으로 치닫던 통합진보당의 당내 갈등과 혼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되었다. 이-김 두 사람의 거취를 놓고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사진에 찍힌 박씨의 문제도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경찰은 당내 폭력 사태 수사를 위해 박씨를 찾고 있지만, 박씨가 잠적한 탓에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진은 중앙일보 조용철 사진기자가 찍었다. 당시 비슷한 장면을 잡은 다른 사진들도 있지만, 이 사진이 널리 알려졌다. 또 가장 잘 찍혔다. 이 사진이 나온 직후, 나는 슬로우뉴스 내부 논의에서 “개인적으로는 상 주고 싶은 사진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한국사진기자협회는 6월 18일 ‘제113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시상에서 이 사진을 스팟뉴스 부문 최우수상으로 뽑았다.
그런데 이 사진이 보도되었을 당시, 사진과 관련해 몇 가지 논란이 일었다. 1) 찍힌 사람(박씨)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가능성, 2) 사진이 보수 언론에 의해 지나치게 해석되고 악용되는 점 등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란을 짚어보고, 더 나아가 보도 사진과 관련해 언론 종사자와 독자들이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을 훑어보고자 한다.

비판의 일관성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비판의 일관성을 먼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남을 깔 때에는,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늘 미리 점검해 보는 게 좋다. 이 사진이 보도되고 큰 관심을 모았을 때, 일부에서는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사진이 찍혀 폭력 사태의 주인공인 것처럼 등장하게 된 박씨의 권리, 이를테면 초상권 등이 침해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예컨대 오마이뉴스는 ‘머리끄덩이 잡은 여성은 초상권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비슷한 문제를 꺼냈다(관련 기사). 이 기사에서는 중앙일보의 지면 이미지를 그대로 인용하면서도 박씨의 얼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그러나 오마이뉴스는, 작년 8월 15일에 60대 여성(이 사람도 박씨다)이 대중 집회에 참석중인 정동영에게 갑자기 다가가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정동영, 보수 단체 회원에게 봉변’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당사자의 얼굴이 명확히 노출된 사진을 그대로 실었다(아래 사진, 관련 기사).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 보도에 보인 관심과 문제의식에 일관성이 있다면, 이런 자사 보도를 놓고 ‘정동영 폭행 여성은 초상권 없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는 정동영을 폭행한 박씨의 사진은 당시에도 지금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으며, 초상권을 따지는 기사도 쓰지 않았다. 오마이뉴스뿐만 아니라 당시 이 박씨의 초상권 침해 가능성을 제기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래가지고서야 아무런 설득력도 갖기 어렵다. ‘너는 불륜, 나는 로맨스’의 사례만 하나 더 생산하였을 뿐이다. 통합진보당 사태 때 벌어진 가해자의 초상권을 염려한다면, 예컨대 앞으로 새누리당 내부에서 친박계와 친이계가 몸싸움을 하여 각 계파의 두 당원이 주먹다짐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초상권 때문에 이런 사진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래야, 주장의 옳고그름을 떠나서 일관성은 유지함으로써 최소한 면피는 할 수 있다. 이 점은 일부 언론뿐 아니라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을 놓고 초상권을 따지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그렇다면 초상권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사진으로 박씨의 초상권이 침해되었을 가능성은 없다. 정동영과 박원순을 폭행한 60대 박씨도, 통합진보당의 20대 박씨도, 또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새누리당의 또 다른 박씨도 모두 보도 사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옳다.
공인이 아닌 개인이 사진에 찍혀 유명 인사가 된 이 사진은, 구태여 따지자면 두 가지 점에서 얼굴을 밝혀 내보낸 보도 행위의 법률적 정당성을 점검해 볼 수 있다. 1) 프라이버시(사생활) 관련 이슈와 2) 재산권의 성격을 갖는 퍼블리시티권 이슈다.
우선 염두에 둘 것은, 두 이슈 모두에서 광고와 같이 직접적인 이익을 위해 활용한 경우와 독자나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 보도의 경우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규제가 엄하고, 후자는 약하다.
미국의 경우 뉴스 보도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데 대한 규제 필요성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90년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드러내는 매체인 사진이 처음부터 이러한 규제의 주요 대상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초기 사례들은 주로 광고 사진에 집중되었다.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이름이나 사진을 광고에 쓰는 경우는 대부분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는 법이 여러 주에서 속속 제정되었다.
그러나 뉴스 보도의 경우는 달랐다. 미국 법원들은 어떤 사건이 정당한 공공의 관심(public interest, 내용상 ‘이익’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게 협소하다)과 관련이 있는 경우, 거의 예외 없이 대중의 알 권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쳤다. 1927년에 켄터키 주에서 나온 ‘브렌트 대 모건’ 판결은 프라이버시 권리에 대한 규정을 성립시킨 고전적 판결로 평가된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란 일반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다시 말해 당사자가 부당하게 공공에게 드러나지 않을 권리, 또는 공공의 관심사가 아닌 사안에 대해 대중으로부터 부당하게 간섭을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뒤집어 말하면, 혼자 남아 있으려는 상황이 아닌 때, 또 공공의 관심사에 연루되었을 때는 사생활 보호의 범위가 축소된다는 것이다.
이후 프라이버시 침해와 관련한 수많은 소송과 판례가 나왔지만, 큰 그림은 이러한 규정 아래에서 그려졌다. 핵심적인 부분은 1) 쟁점이 되는 정보의 공개가 당사자에게 매우 중대한 피해를 가져오는가와 2) 해당 사건이 대중의 정당한 관심사인가의 두 가지다. 예컨대 (타임)은 식사 장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여성 환자의 사진을, 본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보도했다가 프라이버시 소송을 당하고 패소했다. 이 경우는 환자 개인의 특정 질병을 공공 관심사로 보기 어렵고 따라서 단순히 환자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 인정되었으며, ‘게걸 들린 폭식가’ 같은 표현을 써서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도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시위, 행사 등 공공 장소에 나온 사람을 찍은 사진이 사생활 침해로 소송을 당하고 패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저널리즘 교수인 로버트 로드와 (덴버 포스트) 사진 책임자인 플로이드 맥컬이 1961년에 미국보도사진가협회(NPPA)의 감수를 받으며 펴낸 고전적인 책 (보도 사진: 카메라로 보도하기)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공공 행사나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은 해당 행사나 사건 보도의 일부분으로서 촬영되고 보도될 수 있다. 찍힌 사람 본인은 자신이 행사에 참석하였다는 사실을 다른 독자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해당인의 동의 없이 특별한 주목을 받도록 돌출되어 보도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해당인이 공인의 성격을 갖고 있거나, 혹은 당시의 시점에서 뉴스 가치가 있는 상황이라면 예외가 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하고 구체적 사례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좀 난감한 지침이지만, 공공 관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다룬 보도 사진에서 프라이버시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지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적용해 보면, 통합진보당 박씨의 사진은 1) 당시 한국 정치에 큰 파란을 일으키며 공공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시비 및 이와 관련한 폭력 사태를 보도하기 위한 사진이었으며, 2) 당사자는 이러한 공당의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사람이고, 3) 사진기자들이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었음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황이며, 4) 해당 장면은 개인에 국한된 사적인 활동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공의 상황에 개입한 것으로서 ‘혼자 있을 권리’라는 프라이버시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진이 해당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을 재산권의 성격을 갖는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 권리의 측면에서 보아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광고 등 상업적으로 이용된 사진이 아니며, 2) 공공의 정당한 관심사와 관련한 사진이기 때문에, 해당인은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이것을, 출산 관련 장면을 찍으면서 산모의 동의를 받지 않아서 초상권 침해 판결을 받은 사건과 비교해 보면 그 사적/공적 성격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씨 사진과 비슷한 사례가 있는가?

널려 있다. 이런 사진을 뉴스 보도에 쓸 수 없다면, 뉴스에 나오는 사진이라고는 본인 허락을 얻은 인터뷰 사진이나 국무회의를 여는 대통령 사진, 혹은 곡식이 익어가는 황금 들판 사진밖에 없을 것이다. 앞서 예를 든 정동영 폭행범 박씨의 사진도 초상권 등의 논란이나 문제의식조차 없이 사진이 쓰인 경우지만, 사진 노출이 좀 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었음에도 보도 사진으로 문제없이 쓰인 경우들을 몇 가지 보자.


유명한 사진이다. 1960년 일본의 3당 당수 연설회 도중, 우익 청년 야마구치 오토야가 일본사회당 위원장 아사누마 이네지로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 당시 17세이던 야마구치는 얼마 뒤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은 당시 마이니치신문 사진기자였던 나가오 야스시가 찍었다. 야마구치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초상권 침해는커녕, 그 해 세계보도사진 대상을 받았다.


1957년 미국 아칸소에서 고등학교의 흑백 통합 교육을 둘러싸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난리법석을 피울 때의 사진이다. 통합 교육에 반대하기 위해 몰려온 불량배들이 등교하는 흑인 학생들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 사진 전문 통신사 매그넘의 버트 글린이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찍힌 사진. 새로 백인 학교에 등교하게 된 흑인 여고생을 동료 백인 학생들과 학부모가 따라가며 괴롭히는 장면이다. 이 사진에서 인종차별적인 구호를 외치던 학생들은 그 뒤 모두 신원이 밝혀져서 유명 인사가 되었다. 가운데 입을 벌리고 악다구니를 치고 있는 여학생은 헤이즐 브라이언트, 왼쪽에서 책을 잔뜩 들고 비실비실 웃으며 보조를 맞추는 여학생은 앤 톰슨이다. 톰슨은 자식 둘, 손자 둘을 낳고 아칸소에서 평생 잘 살았는데, 나중에 말하기를 당시 나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세상이 자기네들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물론 초상권 침해 소송 따위는 제기되지 않았다. UPI의 코비스 뱃먼이 찍었다.


1976년 보스턴에서 흑백 학생을 통학버스에 함께 타도록 한 정책에 반대하는 백인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는 현장에서, 근처를 지나던 흑인을 시위대가 공격하는 장면이다. 역시 초상권이나 프라이버시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었으며, 사진을 찍은 (보스턴 헤랄드 어메리칸)의 스탠리 포어맨은 이 사진으로 1977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상이 사례들은 언론 보도의 자유가 비교적 넓게 인정되는 미국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 기본적인 판단에서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 초상권 등이 인정된 경우를 보면 모두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예컨대 보도 사진과 관련한 초상권 소송의 대표적인 경우로 손꼽히는 이화여대 학생들과 <뉴스위크> 간의 소송은, 여학생들의 사진이 기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그렇게 오해할 수 있도록 쓰였기 때문에 초상권 침해가 인정되었다.

사진 자체는 그렇다 쳐도, 그것이 쓰인 맥락은?

통합진보당 박씨 사진과 관련하여 이 부분은 짚어볼 여지가 있다. 아래는 이 사진을 1면 머리기사로 올린 5월14일자 중앙일보 모습이다. 이러한 지면은, 이 사진과 관련한 문제의 핵심은 사진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부당한 메시지 이식이라는 점을 한눈에 보여준다.
백문이나 백독(百讀)은 불여일견이고, 한 장의 사진이 수천 단어 분량의 기사를 대신하기도 하며, 보는 것이 믿는 것이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작품 사진이 아닌 보도 사진에는 늘 텍스트가 동반되며, 이 텍스트는 사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를 지시하고 인도한다. 이미지의 메시지를 텍스트 메시지가 제한하고 간섭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이러한 텍스트는 사진의 맥락을 제공해 이해를 높이려는 정당한 목적과 필요에 따라 쓰인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이미지에서 직접 추출되지는 않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위의 중앙일보 1면 제목 ‘이 장면, 올 대선 구도 흔드나’는 이처럼 이미지에 텍스트를 더해 그 메시지를 사진과 직접 관련이 없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경우를 생생히 보여주는 사례다. 해당 사진이 보여주는 액면 메시지는 최대한 넓게 잡는다 해도 ‘야당에서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년이나 남은 대통령 선거와 연결될 수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사이에 수많은 연결 고리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이 신문은 독자가 사진을 보면서, 이런 고리를 건너뛰고 사진의 장면과 직접 관계없는 12월 대선을 생각해 보라고 직접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연계성이란 그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기 때문에, ‘흔드나’처럼 선무당 점괘 내는 것 같은 표현을 썼다. 이런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했던지, 스트레이트 뉴스가 아닌 해설 기사(‘뉴스 분석’)를 1면 머리기사에 올리는 보기 드문 일을 벌였다. 이것이 언론의 정도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문화연구학자 스튜어트 홀에 따르면, 보도 사진의 가치는 공식적인 뉴스 가치와 그 뒤에 깔리고 해석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데올로기적 차원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위에서, 머리채를 잡는 박씨의 사진을 놓고 ‘상 주고 싶은 사진’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것은 이 사진이 표현하고 있는 공식적인 뉴스 가치 때문이다. 이 사진은 사진기자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 개념을 잘 구현했으며, 극적인 장면이고, 큰 논란이 벌어진 중요한 사건을 집약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사회적 논란을 촉발했다.
반면 이 사진이 지면에 사용되고 해석되는 방식은 철저히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1면 머리기사에 배치된 이 사진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는 ‘진보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이며, 이 때문에 국민이 이들을 외면하여야 한다는 당위이다. 심지어 동반한 제목을 통해 ‘올 대선 구도를 흔드는 장면’이 되기를 희망하는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사진은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받더라도, 사진이 쓰인 기사는 ‘이달 최악의 기사상’을 줄 만하다.

사진 메시지의 이데올로기적 전용에 성공한 사진들

사진 이미지가 이렇게 전용되거나 악용되는 것은 어떤 점에서 숙명이기도 하다. 보도 사진은 일견 현실을 명확하게 그려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함축성 때문에 언제나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해석의 여지에서 이데올로기가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한창 잘 나가던 배우이자 열렬한 반전/여성 운동가 제인 폰다는 위의 사진으로 한 방에 갔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2년에 베트남 현지에 가서 찍은 사진이다. 그런데 폰다가 찾아간 곳은 미국이 후원하던 남베트남이 아니라, 미국과 싸우고 있던 북베트남의 하노이였다. 이곳에서 베트남인들의 생활을 살펴보고 미국의 무차별 폭격을 비난하던 폰다는,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얼떨결에 베트콩군의 대공포 사수 자리에 앉게 됐다. 바로 위의 사진이다.
이 사진 한 장 때문에 제인 폰다는 많은 미국인 사이에서 두고두고 쳐죽일 여자가 됐다.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빠인 헨리 폰다의 후원 때문인지 완전히 매장되지는 않았고, 지금도 잘 활동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 찍힌 빨갱이 낙인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젊은이가 끝도 없이 희생되는 전쟁 상황에서, 적국에 찾아가서 자기네 나라 병사들이 탄 비행기나 헬기를 쏘아 거꾸러뜨리는 대공포에 태연하게 앉아서 희희낙락하는 장면은, 어떤 미국인에게는 반역자나 다름없는 행동인 것으로 비쳤던 것이다.
폰다는 나중에, 자신은 무기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던 터라 어디 앉았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그러면서도 전쟁 희생자 가족을 포함한 국민에게 백배사죄했다. 폰다가 어디 앉았는가는 사실상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짚단 위에도 앉을 수 있었고 바위 위에도 앉을 수 있었다. 마침 거기 대공포가 있어서 앉았을 뿐이다.
대공포에 앉은 폰다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더라도, 하노이를 찾아갔다는 것만 가지고도 똑같은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에 지나지 않았던 상황을 찍은 이 사진은 이러한 감정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증폭해 토해내도록 하는 배출구 역할을 했다. ‘미국 연예인이 북베트남의 촌락에서 주민들을 만났다’라는 사진의 명목상의 메시지를 넘어 ‘조국의 병사들 가슴을 겨누는 포대에 앉은 반역자 연예인’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메시지로 확장되어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반전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도매금으로 빨간색 페인트를 덮어씌우기에 안성맞춤인 사진이었다.


한국의 현대 학생운동사에서 이 사진을 빼놓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6월에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이 외국어대에 수업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마지막 강의를 끝내고 나가는 신임 총리서리에게 학생들이 달걀, 밀가루, 페인트, 빈 병 등을 닥치는 대로 던지고 폭행했다. 공격을 당한 정원식의 충격적인 모습을 담은 사진은 다음날 신문들의 1면에 큼지막하게 실렸으며,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동아일보는 사진 설명으로 ‘왜들 이럴까’라는 말을 달았는데, 왜들 그랬는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었다. 정원식은 노태우 정부에서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전교조를 불법화하고 해직 교사를 양산한 장본인이다. 그 뒤 국무총리로 레벨업이 된 상황이었다. 당시는 87년 이후 사회 전 영역에서 솟아오른 저항의 기운이 전두환 군사독재를 계승한 노태우 정부와 격렬히 충돌하던 때다. 분신자살이 잇달아 벌어지고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학생이 사망하기도 하는 등, 격앙된 감정이 한국을 휩싸고 있던 때였다. 학생들이 정원식 개인을 공격한 일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왜들 이럴까’ 하는, 순진함을 가장한 위선적인 말은 붙일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 충격적인 사진 한 장으로 정국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앙일보 제목 식으로 말하자면 ‘이 사진, 정국 뒤집나’였으며, 그렇게 뒤집었다. 87년 6월 민주화 운동을 일궈내며 정당성을 인정받던 학생운동에 대해 정권과 보수 언론들은 ‘스승을 패는 패륜 폭력 집단’ 같은 딱지를 붙이며 선전전을 펼치기 시작했고, 공격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학생운동 전반을 탄압하는 다양하고 집요한 조처가 병행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반정부 운동은 대중적인 지지에 큰 손상을 입은 채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며, 이 사진 한 장은 이러한 정국 변화의 일등 공신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진이 그 액면의 메시지, 혹은 공식적인 뉴스 가치를 넘어서 흔히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되고 활용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제인 폰다와 정원식의 사진은 이미지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극대화시켜 활용하려 한 시도가 성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의 박씨 사진을 놓고 보수 언론들이 비슷한 시도를 하는 노골적인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사진의 문제는 사진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메시지 전용 및 변질이 이루어지는 점에 있다. 찍은 사진 기자는 자랑스러워 할 만하지만, 편집자들은 부끄러워해 마땅한 일이다. 보수 언론의 바람대로 이 사진이 ‘대선 구도를 흔들’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사진 자체가 주는 느낌은 강하지만, 통합진보당 폭력 사태는 그간 계속되어 온 부정 선거 시비와 당내 갈등의 연장에서 벌어진 일이라서, 사진 한 장이 정국을 흔들만큼 큰 충격을 주기에는 독자들의 면역력이 이미 높아진 상태다. 사진이 아니라도 떨어져 나갈 사람은 이미 충분히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흔들릴 만한 대선 구조랄 것도 여전히 별로 없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말이다.

(미디어오늘은 슬로우뉴스와 기사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원문 주소는 http://slownews.kr/4277. 블로거들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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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2일 화요일

'개는 출입금지'... 이 말에 충격받는 개가 있다


이글은 오마이뉴스 2012-06-11일자 기사 ''개는 출입금지'... 이 말에 충격받는 개가 있다'를 퍼왔습니다.
[안내견 슬기가 보는 세상④] 안내견에 대한 안 좋은 시선, 슬픕니다

안녕하세요? 세계 최초의 안내견 기자 김슬기입니다. 지난 8일, 우리 아빠가 근무하시는 중도실명자들의 재활기관 안마수련원에서 모든 훈련생들과 교강사들이 인천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왜냐고요? 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이 주최한 '사단법인 인천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개설 30주년' 기념식과 '시각장애인 한마음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지요.
그곳으로 저도 함께 따라가 시각장애인들의 한바탕 잔치를 취재하려고 합니다. 이날 프로그램의 참여자들 중 1급 시각장애인인 중증 장애인들은 '인천시각장애인 심부름센터'에서 운영하는 차량으로 인천대공원에 가기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안내견인 저와 함께 가는 관계로 그 차량에는 탈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차량에 태워야 하는 관계로 자리가 비좁았던 것이죠.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이해하고 다른 교통편을 통해 '인천대공원'까지 한숨에 달려갔습니다.

쉬다가 당한 봉변

▲ 앉아 쉬고 있는 슬기 ⓒ 김경식

수많은 시각장애인들과 그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활동보조인들, 그리고 여러 관계자들로 운동장이 떠들썩합니다. 우리는 운동장 한쪽에 마련된 천막 안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흥겨운 음악들이 스피커를 통해 쾅쾅 울려옵니다.
잠시 후, 기념식이 시작되고, 지역구 국회의원과 유관 단체에서 단체장들이 나와 축하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또 몇 분의 모범 시각장애인들과 후원 단체들이 각종 표창장과 감사패를 받습니다. 이후에는 맛있는 도시락이 배달돼 참가자들을 즐겁게 합니다.

아빠와 엄마도 급한 손길로 간단히 요기하고, 운동장 이모저모를 둘러보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떠납니다. 오후에는 여흥 프로그램과 각종 운동 경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보다 저희는 이날 프로그램에 참가한 분들 중 몇 분을 만나 인터뷰하고, 행사의 취지도 관계자들로부터 들어야 했기 때문에 급한 발길로 공원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화장실에 먼저 들러야 한다는 아빠의 뜻에 따라 먼저 화장실로 향합니다.

제가 또 누굽니까. 오늘 같은 경우는 취재기자기도 하지만, 아빠의 단 하나뿐인 안내견 아니겠어요? 능숙한 솜씨로 아빠를 모시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 소변기 앞까지 안내합니다.
이후 아빠를 이끌어 다시 밖으로 나오는데,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 학생들이 화장실 앞에 서서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여자 화장실에 간 엄마를 기다리며 근처 벤치에 아빠를 앉히고 저도 그 앞에 다리를 뻗고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학생이 발로 제 발을 밟으려 다가옵니다. 화들짝 놀란 제가 땅바닥에 엎드려, 길게 뻗었던 두 발을 거두고 상체를 급히 일으켰습니다. 때마침 엄마가 나타나 그 학생의 행동을 제지합니다.
"가만 있는 애를 왜 밟으려 그러니?"
멋쩍은 듯 뒤로 물러서는 남학생 주변으로 친구로 보이는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몰려듭니다. 어디서고 이런 폭력에 노출된 채, 저와 아빠는 늘 불안과 초조함 속에 보행을 하곤 합니다.
놀란 엄마의 비명으로 깜짝 놀란 아빠도 갑자기 경계 태세를 갖추며 남학생 쪽으로 시선을 던집니다. 황급히 다른 곳으로 이끄는 엄마의 안내로 우리는 다시 공원 내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원 내 수목원 앞에서 봉변 아닌 봉변을 당하고 맙니다.

안내견은 갈 수 있는 곳... 개라서 못 들어간다?

▲ 슬기와 아빠 ⓒ 김경식

"여기는 개를 데리고 입장할 수 없습니다."
 경비로 보이는 70대 어르신께서 우리 앞을 가로막으며 돌아가라고 제지했습니다.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라 안내견입니다. 수목원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여기는 안됩니다."
"안내견 입장을 막으면 법적으로 제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300만 원까지 벌금을 맞을 수도 있어요."
"그래요? 그럼 법적으로 해보셔야지 뭐..."
빈정거리는 듯한 어르신의 말씀에 아빠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럼 여기 책임자가 어디 있습니까?"
"저기 관리사무소로 가보시우..."
"어르신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법적으로 허용된 안내견의 출입을 막으셨으니 문제 삼아야겠습니다."
"흥!"

일체 대꾸없이 돌아서는 어르신 앞에서 아빠가 언성을 높여 계속 묻습니다.

"어르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러나 묵묵부답인 수목원 출입구 앞에서 엄마가 황급히 아빠를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건물로 향했습니다.

"저 공원 관리 사무소가 어디인가요?"
"왜 그러시는데요?"
유아용 유모차를 빌려주고 관리하는 듯한 여직원이 묻습니다.
"안내견을 데리고 수목원에 입장하려는데, 못 들어가게 해서요."
아빠가 화가 난 표정으로 언성을 높여 항의합니다.
"법적으로 보장된 안내견의 출입을 시립공원에서 막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건 저쪽에 있는 관리사무소로 가셔서 말씀해보시죠."
쭈뼛거리며 대답하는 여직원을 향해 아빠가 또 몹시 화가 난 억양으로 말을 맺었습니다.
"전 꼭 이거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것입니다."
  
그런데 건물 밖으로 나온 엄마가 울그락불그락 화가 난 얼굴로 아빠 앞에 다가섭니다.

"당신 도대체 지각이 있는 사람이야? 그러고도 선생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어? 아까 말씀하신 분은 70대나 80대쯤 돼 보이는 어르신이야. 그분이 모르고 말씀을 그렇게 하실 수도 있지. 그렇다고 당신이 어르신에게 그렇게 언성을 높여가며 싸움박질하듯 덤벼들어도 되는 거야? 그리고 저 여직원은 유모차 관리 담당인 듯한데, 저 여직원에게 따지고 덤벼들어야 무슨 소용 있어?"
"어르신이라고 사람을 그렇게 깔보고 비아냥거려도 되는 거야? 법적으로 한 번 해보자고 하잖아. 게다가 관리사무소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옥신각신 열이 오른 음성으로 말싸움을 한창 하시던 엄마아빠는 다시 관리사무실을 찾아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걷고, 몇 번을 더 물어서야, 한 건물에 도달했습니다. 거기서 우리 사정을 말하고 관리사무소가 어디냐 물으니, 아래 층으로 가보랍니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갑니다. 엄마는 주춤거리는 발걸음으로 조심스레 직원에게 묻습니다.

"저, 여기가 공원 관리사무소인가요?""예. 무슨 일이신가요?"

40~50대로 보이는 남자 직원이 응대합니다. 그러자 아빠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안내견을 동반하고 수목원에 들어가려 했는데, 제지당했습니다. 안내견은 법적으로 보장된 시각장애인의 보조견입니다. 출입을 통제하시면 벌금을 부과 받는 등, 불이익 처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뒤에 있던 젊은 직원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잇습니다.

"아, 그건 직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바로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맥이 풀린듯, 아빠의 어조가 다소 수그러듭니다.

"그렇지요? 그럼 지금 바로 입장할 수 있게 전화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러죠... 지금 다시 가보세요."

왔던 길을 되돌아, 한참을 다시 걸어 수목원 앞에 닿았습니다. 문 앞에 나와있던 그 어르신 경비와 한 여직원이 나와 우리를 맞습니다.

"나는 여기 책임자도 아니고, 이 분이 책임자니 이 분하고 얘기 하시우..."
"미안합니다. 저희가 안내견에 대해 잘 몰라서..."

말끝을 흐리시는 여자분과 뒤로 빠져 책임을 모면하려는 경비의 태도 모두 눈에 거슬렸습니다. 아까 책임자를 찾을 땐 누구도 나와보지 않더니 말이죠. 게다가 어르신은 법적으로 해보자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나 몰라라 하며 뒷짐을 집니다. 엄마와 한바탕 설전으로 화가 한풀 꺾인 아빠가 경비에게 사과를 합니다.

"어르신 아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한 남학생에게 제 안내견이 밟힐 뻔한 터라... 너무 화가 나서..."
"안에 들어가면 측백나무도 있으니 좋은 냄새 많이 맡으시고, 좋은 시간 갖으시우..."

그제서야 살았다는 듯, 덕담하는 경비가 곱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피며 돌아다니려니,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던 두 분이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며 돌연 발길을 돌려 밖으로 나갑니다.

"아빠 이러면 안 돼요. 오늘 사람들 인터뷰도 해야 하는데..."
묵묵부답. 견줄만 끌어 앞으로 향하는 아빠에게 무슨 말이 먹히겠습니까. 언제쯤 안내견 기자의 취재권과 보행권, 그리고 안내견으로서의 본분을 다 할 날이 올까요. 저기 공원에서는 TV 공개방송 녹화에 각종 운동 경기로 떠들썩한데... 제대로 취재 한 번 못 해보고 이렇게 돌아서야 한다니...

"슬기야 미안하다. 언제쯤 우리 슬기의 출입이 자유로울 날이 올까. 우리 슬기랑 더불어 행복한 나들이를 할 수 있는 날이 올지... 10일, 다시 연안부두에 나가 사진도 찍으며 새롭게 취재해 보자. 응?"
"아빠는 그땐 그때고, 오늘은 약속된 인터뷰를 해야 하잖아요."
"슬기야, 미안해. 도저히 이런 기분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어. 너도 봤잖아, 그리고 당했고. 어쩌겠니... 오늘 취재는 10일에 다른 소재로 바꿔 다시 써보자. 응? 슬기야..."
하는 수 없이 아빠의 뜻에 따라 힘겨운 발길을 옮겨, 집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무거운 발길에 후두두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아이고. 피곤하고 참담한 이놈의 안내견 신세. 은퇴할 날도 멀지 않았는데... 우리 아빠는 나 없이 대체 어떻게 살아갈는지..."
 한숨이 거푸 무거운 입술을 비집고 나옵니다.

"털 날리니... 다른 손님들이 싫어해요"

▲ 연안부두에서 쉬고 있는 슬기 ⓒ 김경식

지난 10일, 사진 멘토 선생님과 동료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그리고 아빠와 저. 이렇게 여러 명이 장애인콜택시를 불러 연안부두로 향합니다. 그런데, 콜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시네요.
"저는 개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석달 전 까지만해도 애완견을 키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이 개, 털이 너무 날리네요..."

아빠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쉽니다. 연안부두에 도착해, 몇 시간 동안 사진 촬영을 하는데, 저는 영 흥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까 그 기사님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한동안의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시 장애인콜택시를 부르기 위해 아빠가 전화를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한동안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합니다.

"왜 그러세요?"
사진 멘토 선생님이 기다렸다는 듯 궁금해 묻습니다.
"안내견 털이 너무 날려 기사들 말이 많다네요."
풀 죽은 아빠의 대답에 멘토 선생님이 불끈 화를 냅니다.
"장애인택시가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을 갖고 털이 날린다느니, 다른 사람한테 해롭다느니 말을 하면 어쩌자는 거죠?
"그러게 말입니다."
잠시 후, 도착한 택시 기사님에게도 똑같은 이야기가 흘러 나옵니다.

"저번에도 한 번 태워드렸는데, 털이 많이 날려, 다른 승객들에게서 말이 좀 나오더라고요."
"네..."
아빠의 풀 죽은 대답이 제 부아를 돋구고,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아빠, 우리 그럼 항상 걸어 다녀야 하는 건가요? 우리는 그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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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www.noulpoet.kr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김경식 (kmks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