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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1일 일요일

죽음의 땅 후쿠시마 떠나지 못한 동물들


이글은 한겨레신문 환경전문 조홍섭기자 블로그 물바람숲 2013-0325일자 기사 '죽음의 땅 후쿠시마 떠나지 못한 동물들'을 퍼왔습니다.

후쿠시마에 남은 개와 고양이의 눈망울엔 그리움이 있었다
비정상 핵발전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런 고통 계속 돼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죽음의 땅’ 일본 원전 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책공장더불어/ 1만1000원

제주에 사는 아홉 살 조카가 울면서 전화했다. 강아지를 기르고 싶은데 엄마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이모를 엄마보다 서열이 높은, 엄마를 꾸짖어 줄 존재로 여기는데 의기양양해서 강아지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아차’ 싶었다. 다시 전화를 해서 열 살이 될 때까지 공부부터 하자고 했다. 무엇을 먹이고 어떻게 기를지, 병들거나 죽으면 어떻게 할지 함께 고민하다 보면 아이가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

하지만 아이는 강아지에 대한 열망에 들떠 어른 책이라도 상관없으니 열심히 읽겠단다. 그러는 가운데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을 만났다.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돌본다 해도 세상 자체가 너무 위험하고(핵발전소까지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겐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여전히 따뜻한 생명과 교감하고 싶은 아이의 밝은 마음을 편들고 싶기도 하다.


» 쓰나미로 파괴된 후쿠시마 해안에서 닥스훈트 한 마리가 사진가를 바라보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일까.


» 전자상가 주차장을 풀려난 소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보통은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 던져준 개 사료는 떠돌이 돼지에게 마지막 만찬이었을 것이다. 이튿날 이들은 모두 살처분된 상태로 발견됐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2011년 3월 쓰나미와 대지진, 핵발전소 사고를 겪은 뒤 후쿠시마에 남겨진 가축들, 개와 고양이, 돼지와 말, 닭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과 함께 살던 가축들이니 사람이 떠난 뒤 죽거나 굶주리며 외롭게 떠돌고 있다.

책을 낸 오오타는 사진작가인데 동물보호단체와 자원봉사자들과 협력해 동물들을 구조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오오타는 ‘아이들’이라고 부르며 개와 고양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표정과 행동을 통해 동물들의 마음을 읽는다. 아이들이 구조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덧붙인 것을 보고 ‘이 사람 정말 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구나!’ 싶다. 이 정도는 되어야 강아지든 고양이든 기를 수 있을 것 이다.


» 방사능 때문에 주인을 떠났지만 개들은 집을 지킨다. 맨 앞 우두머리 개의 왼쪽 앞뒷다리가 모두 무언가에 의해 잘렸다.


» 깡통에 든 먹이를 주자 정신없이 먹고 있는 고양이들. 슬프도록 말랐다.


» 지치고 힘들어 보이는 이 고양이는 사진가의 부름에 다가왔다.


» 묶인 채 죽은 개. 주인은 그렇게 오래 집을 떠날지 몰랐을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덮은 수건 위에 사진가가 마당에서 꺾은 꽃을 올려놓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뒤에 나온 많은 책들이 이 기회에 ‘탈핵’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온 터다. 나는 핵발전소가 위험하고, 한번 사고가 나면 사람과 자연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시시콜콜 핵발전소의 구조나 정치경제학을 거론하며 탈핵을 주장하는 무겁고 진지한 책들은 사지 않는다. 핵발전소로 유지되는 거대한 세상과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며 책을 덮는 일이 싫어서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글이 적은 대신 사진이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개의 눈이나 불안한 고양이의 눈빛, 대형 마트 앞을 서성이는 소들, 비어있는 마을을 지키는 개와 말들이 소리치는 듯하다. “핵발전소는 당신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지 않아요. 빨리 없애세요!”

오오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장으로 달려가 동물들을 구조하는 일, 사진을 찍는 일, 후쿠시마의 비극을 알리는 책을 내는 일 모두 그냥 지나치면 안 될 하나의 진실로 이어진다. “원전에 대해 모두 침묵해 버리는 비정상적인 이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모두들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하기에는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내용이다. 말 못하는 아이들, 죄 없는 동물들이라서일까? 사람 이야기보다 더 마음이 언짢고 가엾다. 하지만 핵발전소 사고와 굶주려 죽어가는 동물 이야기 사이 사이, 인간 본성이 주는 희망이 빛난다.

도쿄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동물구조에 힘쓰는 자원봉사자와 지름 20㎞ 안의 사람은 무조건 대피하라는 소식에 허겁지겁 집을 떠났지만 기르던 고양이를 생각해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사진 찍는 일보다 동물 구조에 더 힘쓰는 사진작가의 모습에서 따뜻한 희망을 본다. 그래서 더욱 착한 사람들, 착한 동물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비정상적인 사회와 핵발전소가 미워진다.    

글 이성실/ 자연그림책 작가, 사진=오오타 야스스케, 책공장더불어

2013년 2월 20일 수요일

동물은 '새로운 노예'! 차별에 눈물 흘리는 당신은?


이글은 프레시안 2013-02-19일자 기사 '동물은 '새로운 노예'! 차별에 눈물 흘리는 당신은?'을 퍼왔습니다.
[구제역 대학살, 2년] 동물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

2010년 11월 29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구제역으로 9000마리의 소, 돼지 생매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간 전국 방방곡곡에서 무려 1000만 마리에 달하는 소, 돼지, 닭, 오리 등이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를 이유로 이른바 '살처분'을 당했다. 그 중에는 단지 감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 가축들도 부지기수였다.

수천 마리의 소, 돼지가 생매장이 되는 아비규환을 보면서, 또 그렇게 매장된 가축들이 썩으면서 내뿜는 침출수가 삶의 터전을 오염시키는 것을 보면서, 많은 이들은 '인간의 욕망'의 가장 어두운 면을 환기했다. 그리고 공장식 축산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증가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작은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에서 공장식 축산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반성이 이뤄진 적은 없다. 한국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집약되는 대통령 선거 중에도 어떤 후보, 정당도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공론화하지 않는다. 구제역과 소, 돼지의 절규는 이렇게 잊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1월 29일 녹색당과 동물 보호 시민 단체 카라가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시민 소송'에 나섰다. 이 시민 소송은 2년 전 구제역이 유행하던 당시 고통을 받았던 농민들을 원고로 하는 민사 소송과 공장식 축산에 대한 헌법 소원으로 이뤄진다.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 한국 최초의 소송이다. (☞원고 모집 바로 가기)

이들은 29일 기자 회견을 시작으로 2013년 1월까지 시민들을 상대로 원고 모집에 들어가, 이후 민사 소송과 헌법 소원 제기, 동물보호법 개정안 국회 발의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소송 계획에 맞춰 (프레시안)은 녹색당, 카라와 공동으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속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peta.org

고기가 참 흔한 세상이 되었다. 먹자골목에 가면 온통 고기집이고, 큼직한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나 국민 간식이라 할 수 있는 치킨을 파는 곳은 얼마나 많은가? 이런 고기의 홍수 속에서도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라는 말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을 '금연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채식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금연을 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는 것처럼 채식을 하는 사람들도 건강 때문에 고기를 멀리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 건강 생각해서 금연하는 사람을 '금연주의자'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건강을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채식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

무슨무슨 '주의(主義)'는 개인적인 의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보편화하려고 할 때 붙이는 단어이다. 가령 내가 '민주주의'를 옹호한다고 할 때는 나만 그 제도를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고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국가를 세우도록 애쓸 것이다. 마찬가지로 채식주의자고 말할 때는 남들은 어떻든 상관없이 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아니라, 고기를 먹는 것은 누가 됐든 옳지 않다는 신념에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채식을 실천하는 자신의 생각이 그렇게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로 보통 윤리적인 동기를 제시한다. 아니 고기를 먹는데 웬 윤리적인 문제? 고기를 안 먹는 것이 윤리적이라면, 거꾸로 고기를 먹으면 비윤리적인 사람, 그러니까 나쁜 사람이 된다는 것인가? 듣기 좀 거북하겠지만, 그럴 소지가 다분하다.

'윤리적'이라는 말이 거창하게도 들리고 구닥다리같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윤리적인 행동 중에 가장 기본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이유 없이 남을 때리지 않는 것, 이유 없이 남을 죽이지 않는 것은 누구나 실천하는 것인데,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해서 거창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구닥다리 같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왜 남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될까?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치면 싫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면 그는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지사지만 해 보면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남'을 동물까지 확대하는 것이 윤리적 채식주의이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동물에게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 동물을 죽이지 않고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고, 죽이는 것만큼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만 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도 죽는 것을 싫어한다. 파리나 모기 같은 동물들도 죽는 것을 싫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즐겨먹는 소나 돼지나 닭이 죽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도 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그때는 동물을 죽일 때만 해를 끼쳤다. 그러나 현대의 축산은 도살뿐만 아니라 사육 과정에서 동물에게 엄청난 해를 끼친다. 몸을 돌리지도 못하게 가두어 놓고 길러지는 암퇘지나 A4 한 장 크기의 공간에서 길러지는 닭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적 사고인 역지사지를 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A4 한 장 크기의 공간에서 평생(그래봐야 한 달 정도)을 자라야 하는 닭의 처지는 사람으로 치면 공중전화 부스에서 서너 명이 평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실천으로 옮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동물에게는 그런 역지사지를 하지 않을까? 동물은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알아도 애써 무시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파리나 모기 같은 동물들이 고통을 느끼는지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거리가 된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즐겨먹는 소나 돼지나 닭이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이나 그들의 고통이나 피하고 싶은 성격의 것임은 똑같다.

사실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도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나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은 고통을 느껴도 무시한 것이 바로 인종 차별이다. 흑백 차별의 역사에서 지금의 공장식 사육과 비슷한 행태를 찾을 수 있다. 노예 수송선이 바로 그것이다. 주경철의 (산처럼 펴냄)에 보면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까지 흑인 노예를 강제 운송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배 밑바닥의 짐칸에 500여 명의 노예들은 통조림 속의 정어리처럼 포개져서 바다를 건너야 했다. 선창의 공기는 산소 부족으로 불이 꺼질 정도였고, 끔찍한 위생 상태와 음식, 물 부족은 항해 중에 많은 수의 노예들을 죽게 만들었다. 백인들은 흑인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몰랐을까? 고통을 느끼든 말들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다르니까.

이제는 이런 인종 차별을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런 인종 차별과 동물 차별이 뭐가 다른가? 최소한의 이동의 자유도 보장되지 않은 채 짐칸에 포개져 운송되는 흑인 노예들이나, 활개도 칠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는 닭이나 그 처지는 똑같다. 동물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대량 사육하다 보면 쉽게 병에 걸리므로 사육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항생제를 넣은 사료를 동물에게 먹인다. 아마 흑인 노예 운송선 시절에도 항생제가 있었으면 노예들에게 그것을 먹였을 것이다. 흑인들의 건강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세계적인 동물 권리 운동 단체인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우하는 사람들)는 흑백 차별과 동물 차별을 빗댄 포스터를 만들어 "동물은 새로운 노예인가?(Animals are the New Slaves?)"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포스터는 논란을 일으켰는데, 흑인을 동물에 비유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인종 차별 시대에 흑인을 대하는 백인들의 시선이나 공장식 사육을 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나 다른 점은 없다. 나와 다른 종류의 존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부색이 희든 검든 고통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 그것을 깨달은 것이 인종 차별을 깨뜨리게 된 계기가 되었고 우리의 윤리 의식을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또 한 번의 윤리 의식의 도약이 필요하다. 사람이 됐든 동물이 됐든 고통을 느끼는 것은 똑같다고 깨닫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차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여자라고 남자에게 차별 받을 수도 있고, 지방 출신이라고 서울 사람들에게 차별 받을 수 있고, 고등학교만 나왔다고 대학 나온 사람들에게 차별 받을 수 있고, 비정규직이라고 정규직으로부터 차별 받을 수 있으며, 황인종이라는 이유로 백인들로부터 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누구나 하나쯤은 그런 경험을 할 것이다.

그런 차별의 경험에 가슴 아파한 사람이라면 역지사지로 차별 받는 존재의 고통을 이해할 줄 알아야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똑같다. 그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 현대의 공장식 축산이다.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2012년 12월 4일 화요일

동물의 생명은 천한 것일까?


이글은 프레시안 2012-12-03일자 기사 '동물의 생명은 천한 것일까?'를 퍼왔습니다.
[나는 '초록'에 투표합니다] 동물 복지, 정말 배부른 소리인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단 한 번 태어나고, 단 한 번 살다가 단 한 번 죽는다. 어떤 우월한 (그런 가치가 존재한다면) 생명도 자신의 생명을 두 번으로 늘릴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다. 사람도 동물도 땅속에 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곤충이나 미생물까지도 이 세상에서 부여받은 삶의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대접받고 편하게 살다가 죽을 생명과 고통받고 학대받다가 죽을 생명은 어떻게 구별되는 걸까? 

▲ 불법포획한 남방큰돌고래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는 제주 퍼시픽랜드. 법원에서 몰수형이 선고된 뒤에도 항소와 상고를 계속하고 있다. 그동안 폐사하는 돌고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당신의 생명은 얼마입니까?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고 동물의 생명은 천한 것일까? 멸종 위기의 동물은 보호받아야 하고 흔해 빠진 돼지는 음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걸까? 생명의 가격은 누가 정하는 걸까? 약육강식의 법칙은 모든 생명에 예외 없이 적용되고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하게 우월한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시장을 만들어 생명을 포함한 사고팔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래한다. 인간은 인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투쟁을 해왔고 그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동물은 스스로 권리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동물들의 권리는 동물들 스스로 지켜야 하는 걸까?

지금 인류는 동물의 복지나 환경을 돌볼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다.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오가며 가계 경제를 압박하고 식량과 연룟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강대국은 지속적해서 세계화를 부추기고 상품을 팔고 분쟁을 촉발시켜 경제를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는 최악이고 실업률은 오르고 정부나 개인이나 빚더미에 묻혀서 살아간다. 사회는 살벌하고 경제는 팍팍하다. 그런 분위기에서 동물의 복지를 얘기하는 건 '배부른 소리'라고 터부시한다. 특히 정치에서 아직 동물의 권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얘기하는 것조차 꺼리는 이들도 많다.

사람들은 그저 살기 위해 먹고 또 어떤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살기도 한다. 자신이 먹는 음식이 어떤 동물이었고 어떻게 키워지고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물을 키우고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 동물이 주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 동물이 버려진 다음에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갈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사람들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동물들의 재롱을 보며 즐기고 좋아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그 동물들이 어떻게 포획됐고 어떤 환경에서 살다가 어떻게 죽는지, 또 그 동물들이 과연 그 안에서 행복한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동물들에게 그들로서는 거의 전지전능하기까지 한 인간이 자신들을 착취하고 도살하는 것을 막을 힘 따위는 없다. 동물들은 그저 사람에게 자비를 구할 뿐이고 모든 결정권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있다. 사람의 결정에 따라 동물은 행복할 수도 또 한없이 처참해질 수도 있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딸이 그토록 원하던 강아지를 20만 원에 구입해서 생일 선물로 준다. 남자는 연인을 위해 고양이를 선물하지만 그들이 헤어지면 고양이의 운명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공급이 넘쳐서 가격이 폭락한 소고기 가격 때문에 10만 원도 못 받는 소들은 사료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 세계적인 경마대회에 나갈 명마를 위해 정자를 공급하는 씨수말의 가격은 수백억을 호가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필요와 요구 때문에 임의로 생명에 가격을 매기고 그 생명을 사고판다.

▲전 주인에게 학대받아 목이 돌아간 강아지. 주인은 남자친구와 함께 강아지를 입양했으나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강아지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안락사 직전에 구조돼 동물자유연대에서 보호 중이다. ⓒ동물자유연대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생명에 가격을 매기는 건 다르지 않다. 살아있는 생명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 그것이 동물의 살점이든, 그들의 털이든, 그들의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든, 그들의 희소성이든 오로지 '상품'으로 인식될 뿐이며 대체로 아주 정확하게 '가격'이 매겨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람도 사고파는 세상에 동물에 가격을 매기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사람에게 동물의 가격을 매길 권리와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동물을 보호하고 약자를 보듬어야 할 의무와 능력도 분명 있는 게 아닐까?

인류는 20세기를 지나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인권, 우리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시기를 보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자연스럽게 인간 외의 생명, 환경과 우리별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환경과 동물복지는 이제 우리 배가 부르고 우리가 살만해져야 생각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일찍이 간디는 '한 나라의 위대성과 그 도덕성은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꼭 위대하고 도덕적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우리보다 약하고 무지한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살다가 가지 않도록 돌봐야 할 것이다. 또 그것이 단순한 동정심이든, 또 그것이 이타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이든 우리가 우리보다 약한 존재들을 보살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하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동물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낼 수 있도록 신경 쓰자는 데 공감하는 이들도 많지만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게 현실이다.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우선순위는 각자가 다르고 그 선택은 개인의 몫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가 단 한 번, 아주 잠깐 살다가 가는 이 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센 종족이 그렇지 못한 동물들을 위해 조금만 자비롭고 조금만 여유 있는 마음으로 동물들을 대하자는 게 그렇게 못 할 짓은 아니라고 믿는다. 굳이 사후를 생각하거나 윤회를 믿지는 않더라도 그저 동물들의 눈을 바라보고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분명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다른 생명을 존중하고 약한 존재를 보살피는 선한 마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런 마음이 이젠 조금 더 드러나고 조금 더 실천될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동물도, 환경도, 이 지구도 같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사람끼리의 소통도, 정치도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고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정치하는 세상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지난 4년 반, 반환경정부가 진행한 온갖 국토 파괴 사업들은 이 땅의 생명들에게 너무나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4대강은 중장비 굉음만 가득한 거대 공사장으로 변했고, 국토는 골프장 등 각종 개발사업에 시달렸으며 평화의 섬 제주도는 강정 미군기지 건설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세계 각국이 원자력발전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흐름 속에서 정부는 신규 원전을 늘리고 있고, 구제역 대처에서 보듯 여전히 동물의 생명권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태의 민주화가 가능해야 경제의 민주화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번 18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현 정부의 반환경 정책에 대한 심판이나 진일보한 환경정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초록정책을 공유하고 새로운 5년이 생태적 치유와 복원의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범 환경진영은 '나는 초록에 투표합니다'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웹사이트(www.vote4green.org)에서 가장 많이 초록 약속을 받은 제안들은 대선 후보들과 협약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김현성 동물자유연대 이사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동물도 죽음을 슬퍼하나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9-07일자 기사 '동물도 죽음을 슬퍼하나'를 퍼왔습니다.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나. ‘장례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최근 밝혀진 서부덤불어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토요판] 생명 조홍섭의 자연 보따리

슬픔은 고양된 정신활동이다. 영원한 상실을 뜻하는 죽음은 각별한 슬픔이고 정신적 충격이다. 그래서 죽음을 애도하는 건 가장 인간적인 행동의 하나로 꼽인다. 그런데 동물도 슬퍼하는 마음 또는 적어도 슬퍼하는 행동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이런 발견은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느냐는 오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핀다.놀랍게도 지능이 높은 사회성 동물인 침팬지나 코끼리가 아닌 새에게서 마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은 행동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까마귀과 새의 일종인 서부덤불어치는 동료가 죽으면 시끄럽게 울면서 주검 주변에 모인다. 평소에 이 새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죽은 동료를 발견한 어치는 이 가지 저 가지로 돌아다니며 시끄럽게 울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른 어치도 가까이 날아와 따라 울고 조용히 주검을 지켜보기도 한다.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어치들은 이틀이 지날 때까지 먹이를 먹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어치는 동료의 죽음을 슬퍼해 장례식 비슷한 의식을 치르고 금식 행동을 한 것일까. 이 관찰을 한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캠퍼스의 과학자들은 다르게 설명한다. 동료의 죽음을 부른 위험을 널리 알리려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금식 행동도 위험에 노출되는 걸 피하려는 동기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똑똑하기로 유명한 까마귀과 새들은 단지 위험 정보를 나누는 것으로는 설명이 힘든 ‘장례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이전부터 알려져 있다. 캐나다 캘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포플러나무에 날아와 가지에 앉던 까치 한 마리가 무슨 이유에선지 포장도로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5분 안에 까치 10여 마리가 주검 주변에 모이더니 둥글게 둘러쌌다. 주검을 쪼거나 하는 행동은 없었다. 한 마리는 주검에 다가가 부리로 가볍게 건드리고 떠났다. 나머지 새들은 약 5분간 그 자리에 머물다 일제히 날아갔다. 이들은 특이한 죽음을 맞은 동료에게서 어떤 정보를 얻으려 한 것일까, 아니면 의식적인 모임이었을까. 이 관찰은 학술지에 보고된 것이다.지적이거나 사회적인 동물 범주에 들지 않는 기린에게도 최근 죽은 새끼나 동료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듯한 행동이 잇따라 관찰됐다. 사산한 새끼를 어미가 여러 시간 동안 핥으면서 지키고, 동료 10여 마리가 죽은 새끼 기린을 둘러싸고 청소동물이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가 하면 3주일 전 죽은 기린의 주검을 찾아가 냄새를 맡고 건드리는 등의 행동을 했다.침팬지나 고릴라는 동료의 죽음에 범상치 않은 반응을 한다. 잠비아의 한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9살짜리 수컷이 죽자 보호구역에 있는 43마리 가운데 30여 마리가 주검 둘레에 모였다. 이들은 주검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만지거나 냄새를 맡기도 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아프리카코끼리는 아마도 동료의 죽음을 가장 오래 기억하는 동물일 것이다. 이들은 오래전 죽은 코끼리의 뼈를 보면 흥분하고 코와 발, 상아로 건드리며 꼼꼼히 조사한다. 특히 상아는 그 코끼리가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부위여서인지 오래 자세히 조사한다. 마치 성묘하듯, 친척의 유골을 찾아간다는 주장도 있다.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마음은 없을지 모른다. 죽음에서 위험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를 나누려는 본능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은 이의 뜻을 받들고 넋을 기리는 우리의 행동도, 따지고 보면 죽음에서 얻은 정보를 공유하려는 것 아닌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세기의 개 재판’, 동물은 물건인가 아닌가?


이글은 한겨레신문 2012-08-24일자 기사 '‘세기의 개 재판’, 동물은 물건인가 아닌가?'를 퍼왔습니다.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의 박소연 대표가 구조한 발바리 5마리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의 동물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새끼를 밴 발바리는 구조 직후 새끼 여러 마리를 낳았고 이 가운데 ‘리카’는 입양돼 지금 서울 포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산다. 지난 23일 박 대표가 리카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생명 고소당한 동물보호운동가
주인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굶기진 않았다고 주장
검찰도 징역1년을 구형
변호인은 이득 취할 목적일때
절도가 성립된다고 항변

30일 법원 판결을 앞두고
“방치도 학대, 긴급구조 합법화”
동물단체 촉구가 이어진다

데카르트가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 지칭한 이래 인간은 동물과 달리 호모 파베르(도구를 쓰는 인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 호모 로퀜스(언어를 쓰는 인간) 등 다른 존재로 정의되어 왔다. 근대법 체계에서도 인간 아닌 것은 모두 물건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최근 동물행동학 연구는 인간의 독보적 지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침팬지는 도구를 쓰고 돌고래는 경주를 하고 더 많은 동물들은 고유의 언어를 쓴다. 대체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게 무언가? 과학자들에게 회의론이 퍼지는 사이 근대법도 도전을 받고 있다.지난해 11월 중순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 차를 타고 가던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의 귀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차를 세운 그는 울부짖는 소리를 쫓아 야산에 올랐다. 소음의 진원지는 좁고 허름한 개 농장이었다. 개 여러 마리가 뜰장(철제그물 위에 개가 살고 그 밑으로 배설물이 떨어지는 구조)에 갇혀 있었고 배설물은 10㎝ 이상 쌓여 있었다. 지난 20일 박 대표가 말했다.“누가 봐도 사람이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어요. 추운 날씨에 배설물이 얼었다 녹은 흔적이 보일 정도로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밥그릇에도 먹이를 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죠. 목줄 여러 개와 빈 소주병, 칼과 도마 그리고 솥단지까지 보였습니다. 닭들도 배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고요.”며칠 뒤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밥그릇은 말라 있었고 개들은 컹컹 짖어댔다. 소유주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락처가 담긴 쪽지를 붙이고 가죠. 그렇게 주인을 만나 동물을 포기할 생각이 없냐고 하고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파는 건 어떠냐고 설득하거든요. 이번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박 대표는 동물들을 구조하기로 결심한다. 11월26일 새벽 3시, 박 대표는 활동가 3명과 함께 개 농장에 잠입한다. 절단기로 뜰장의 자물쇠를 뜯고 발바리 5마리와 닭 8마리를 데리고 나온다.이튿날 개 소유주인 김종철(가명)씨는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한다. 김씨는 21일 통화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자물쇠가 부서진 걸 보고 경찰에 신고했죠. 처음엔 그냥 좀도둑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달 뒤 동물사랑실천협회에 (구조) 동영상이 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저도 열악한 상황에서 사육했다는 건 인정해요. 하지만 매일 노인복지회관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얻어다 줬어요. 굶기진 않았어요.”재판 서류에 표기된 김씨의 직업은 ‘약탕집 운영업자’다. 그는 문원동 야산에서 10마리 안팎의 개를 13년 동안 길러왔다.사유재산권을 침해한 절도일까? 정당한 동물 구조 활동일까? 수원지방법원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지난 16일 두 번째 공판에서 박 대표에게 특수절도죄로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절도죄와 달리 특수절도죄는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다. 동물보호활동가가 징역형에 처할 위기에 빠진 것이다.법적으로 보면 동물은 ‘물건’이다. 동물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도 당연히 ‘절도’다. 하지만 박 대표 쪽은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절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박 대표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제니스의 김동훈 변호사가 말했다.“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할 목적(불법영득)으로 물건을 훔쳐야 절도가 성립됩니다. 박 대표는 동물을 데려와 자기 비용으로 치료하고 먹이를 줬습니다. 일반적으로 훔쳤다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건데, 박 대표는 오히려 자신의 돈을 썼어요.”김 변호사는 또 박 대표의 행위가 사회 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도 들었다. 형법 20조는 이를 정당행위로 규정해 처벌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박 대표가 훔쳐도 될 정도로 문원동 야산의 개들이 절박한 상황이었는가는 이번 재판의 또다른 쟁점이다. 이와 관련해 동물보호법은 일부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해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도살하는 행위, 도구나 약물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행위, 동물을 오락이나 도박에 이용하는 행위 등이 동물학대다. 당시 개들이 법이 규정한 학대 상황인지에 대해선 양쪽의 말이 엇갈린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동물보호법 4조는 국민이 동물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며 “박 대표는 이 의무를 다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사실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을 ‘훔치는’ 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급박한 상황일 때에는 소유자의 허락 없이 동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방치하면 생명을 잃거나 상습적 학대로 해결 방법이 없어 보일 때다. 동물사랑실천협회의 경우 한 노숙자가 자기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 개에게 빨간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한 사건(2011년), 한 할아버지가 같은 이유로 개의 두 귀를 하나로 꿰맨 사건(2007년) 등에서 ‘긴급 구조’를 실시한 적이 있다. 박소연 대표가 말했다.“법적으로 재물일진 몰라도 동물은 엄연히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입니다. 동물보호운동가로서 생명이 학대받는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순 없죠. 도살 직전이거나 법적으로 해결 방법이 없을 땐 어쩔 수 없어요. 실제로 여러 번 그런 방법을 썼고요.”국내에선 현재까지 동물보호운동가가 절도죄로 처벌된 적은 없었다. 대부분 동물 소유자가 고발하지 않았거나 실제 수사에 이르렀어도 정상 참작이 됐다. 동물 구조로 유명한 박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2006년 인천 ‘장수동 개지옥’ 사건 때에도 소유자가 절도죄로 고발했지만 검찰이 ‘혐의 없음’으로 기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럼 국가가 나서 학대받는 동물을 구조할 수는 없을까? 동물보호법에는 ‘보호 조치’라는 게 있다. 동물학대를 발견한 사람이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면 동물을 소유자에게서 격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동물 보호 조치는 구체적인 시행령이 없어 거의 실행되지 않고 있다. 담당 공무원조차 이 조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동물단체들은 지적한다. 이 조처가 시행된 거의 유일한 사례는 지난 6월 경남 거제시에서 술에 취한 소유주에게 상습적으로 몽둥이로 맞은 개가 구조돼 보호소로 이송된 정도다.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돼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동물단체는 정신적 학대나 방치도 동물학대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농림수산식품부는 그렇게 할 경우 너무 많은 범법자가 생길 거라는 점을 우려한다. 박 대표는 동물학대의 빈 공간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2007년 한 케이블방송이 돼지를 번지점프 시킨 적이 있었어요. 돼지는 엄청난 공포를 겪었죠. 경찰에 동물학대로 고발했지만 상해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았어요.”지난 1월 전북 순창군에서 벌어진 ‘소 아사’ 사건도 이런 점에서 논란이다. 한 농장주가 정부의 한우 정책에 항의해 정부가 제공하는 사료 급여를 거부하며 소를 집단으로 굶어 죽였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를 동물학대로 봤고 이런 해석에 따라 순창군은 농장주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문가들은 동물학대 범주를 확대하고 지자체뿐만 아니라 민간 동물보호단체도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동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박 대표의 1심 판결은 30일 내려진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동물단체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유죄가 선고되면 동물단체가 해왔던 ‘긴급구조’가 상당 부분 제약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 휴메인소사이어티 등이 박 대표의 무죄 판결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보내는 등 이 문제는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사이에서도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박 대표가 구조한 발바리 5마리는 현재 경기도 포천시의 동물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임신한 발바리는 구조 직후 새끼 여러 마리를 낳았다. 이 가운데 ‘리카’는 입양돼 지금 서울 포이동의 한 아파트에서 산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2년 8월 2일 목요일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1일자 기사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를 퍼왔습니다.
잉여인간을 위한 위안서

이 글을 쓰려고 하니까 너희들을 먹으면서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더위 속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꿀꿀이, 꼬꼬, 멍멍이여 미안하다.   


굉장한 더위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집에서 찬물 받아 놓고 만화책이나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 뭐 비행기를 타고 아예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잉여의 피서법은 만화책이나 왕창 빌려 보는 게 손쉬운 피서법이다.


그렇게 불쌍한 눈빛으로 잉여를 바라보지 마시라. 하찮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이게 편하고 재미까지 있는 법.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자기 집 방바닥에 누워서 라면을 삶아 먹고 만화책이나 원껏 보길 소원 하고 있다.


이 무더위에 진실로 불쌍한 친구는 따로 있다. 바로 복날에 희생되는 많은 동물들이다. 지난 7월28일은 중복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8월7일은 말복이다. 그 날만 되면 많은 '영양탕' 집은 킬링필드 현장이 된다. "덜덜~"

▲ 우리가 뭘 잘못 했는데!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자는 건 아니다. 잉여가 그렇게 고귀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없어서 못 먹었으면 못 먹지! 그래도 복날에는 우리를 위해 희생한 가축 친구를 위해 묵념 한번 하고 먹는 건 어떨까?
고개 숙였으면 고기 먹는 것에 죄책감까지야.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구조 아닌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사형수 목이 뎅강 하고 날아간 순간 그에게 해방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덕분에 많은 가축은 자유를 찾았다. (뭔 황당 논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기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송아지, 꿀꿀이, 멍멍이, 꼬꼬닭들은 목숨이 끊어졌을 때 신체적 자유를 얻는다. 왜 죽어야만 자유를 찾을까….
그 이유는 효율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온 생활에 스며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는 아닌데 농가라고 버틸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많은 가축은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실감하며 자라난다. A급 상품이 되기 위하여!
가축이 먹는 사료에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들어 있다. 작은 우리에 가축들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공간, 토지는 곳 돈이다. 좁을수록 비용은 적게 든다. 그리고 그 뜻은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로 통한다. 이미 그 가축은 생명체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건 말건 상관없다.
그런 동물을 보며 잉여는 속으로 말한다. "자유롭게 자라고 편안히 죽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살아서는 쓸모없고 죽어서야 상품이 되는 존재를 보면 잉여들은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이 사회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잉여이기 때문이다. 혹 모르겠다. 끔찍해서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장기기증 서약이라도 했다면…. 
지난 2010년 겨울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그 결과 소, 돼지, 닭과 오리, 염소, 사슴을 포함한 880여만 마리가 2011년 2월까지 생매장됐다. 이렇게 야만적일수가? 가축이라 해도 하나의 생명체를 무참히 죽인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도시에 산다면 그 참혹함을 느끼기 어렵지만 생매장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아야 하는 농가는 그야말로 흉흉한 분위기였다.

▲ 인간이 가진 생매장에 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생매장'은 공포영화에도 자주 등장 한다. 아예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것은 공포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것 이다.(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로 알려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생매장')

구제역 발생 시점에 초기 관리에 실패한 현정부는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가축을 생매장했다. 상품에 하자가 생겼을 땐 가차 없이 빠른 행동을 보여주는 정부다. 사람에게도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구제역은 비인륜적으로 가축을 사육해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이 구제역을 불러왔고 또 가축을 살처분하는 데 있어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흙에 묻힌 채 공포와 고통 속에 모두들 죽어갔다. 단번에 목숨이 끊기는 자유도 못 얻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 하는 권리가 있을까? 물론 직접 그 작업을 실행한 인원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살처분 작업과 관련해 큰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일을 지시한 '윗선' 이다.  훌륭하고 높으신 분이니 그 분들의 뜻을 깊이 알 리 없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잉여는 그저 울부짖는 돼지를 보며 등골이 오싹할 뿐이다.
허공에서 정부가 나를 바라보며 확성기로 "아, 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도 허튼 생각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돼지하고 똑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상 끝"이라고 외치는 악몽을 꿀 정도다.
아 그런데 영국 정부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는 1979년 가축에게도 보장돼야 할 '5대 자유'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 자유가 무엇인가 하면 ①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으로부터의 자유 ③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⑤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동물뿐 아니라 2012년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유다.

윤개굴 자유기고가  |  byple@daum.net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


이글은 프레스바이플 2012-08-01일자 기사 '꿀꿀이, 꼬꼬, 멍멍이가 편히 죽을 자유를!'를 퍼왔습니다.
잉여인간을 위한 위안서

이 글을 쓰려고 하니까 너희들을 먹으면서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더위 속에서 이름도 없이 스러져간 꿀꿀이, 꼬꼬, 멍멍이여 미안하다.   


굉장한 더위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집에서 찬물 받아 놓고 만화책이나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 뭐 비행기를 타고 아예 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잉여의 피서법은 만화책이나 왕창 빌려 보는 게 손쉬운 피서법이다.


그렇게 불쌍한 눈빛으로 잉여를 바라보지 마시라. 하찮아 보여도 막상 해보면 이게 편하고 재미까지 있는 법. 회사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장인들은 자기 집 방바닥에 누워서 라면을 삶아 먹고 만화책이나 원껏 보길 소원 하고 있다.


이 무더위에 진실로 불쌍한 친구는 따로 있다. 바로 복날에 희생되는 많은 동물들이다. 지난 7월28일은 중복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8월7일은 말복이다. 그 날만 되면 많은 '영양탕' 집은 킬링필드 현장이 된다. "덜덜~"

▲ 우리가 뭘 잘못 했는데!
그렇다고 고기를 먹지 말자는 건 아니다. 잉여가 그렇게 고귀한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없어서 못 먹었으면 못 먹지! 그래도 복날에는 우리를 위해 희생한 가축 친구를 위해 묵념 한번 하고 먹는 건 어떨까?
고개 숙였으면 고기 먹는 것에 죄책감까지야. 먹고 먹히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구조 아닌가?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자신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사형수 목이 뎅강 하고 날아간 순간 그에게 해방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우리 덕분에 많은 가축은 자유를 찾았다. (뭔 황당 논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기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송아지, 꿀꿀이, 멍멍이, 꼬꼬닭들은 목숨이 끊어졌을 때 신체적 자유를 얻는다. 왜 죽어야만 자유를 찾을까….
그 이유는 효율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효율성이라는 단어는 온 생활에 스며들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도 예외는 아닌데 농가라고 버틸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많은 가축은 말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실감하며 자라난다. A급 상품이 되기 위하여!
가축이 먹는 사료에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들어 있다. 작은 우리에 가축들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공간, 토지는 곳 돈이다. 좁을수록 비용은 적게 든다. 그리고 그 뜻은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로 통한다. 이미 그 가축은 생명체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건 말건 상관없다.
그런 동물을 보며 잉여는 속으로 말한다. "자유롭게 자라고 편안히 죽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살아서는 쓸모없고 죽어서야 상품이 되는 존재를 보면 잉여들은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이 사회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는 존재가 잉여이기 때문이다. 혹 모르겠다. 끔찍해서 이런 말 안하려고 했는데, 장기기증 서약이라도 했다면…. 
지난 2010년 겨울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발생했다. 그 결과 소, 돼지, 닭과 오리, 염소, 사슴을 포함한 880여만 마리가 2011년 2월까지 생매장됐다. 이렇게 야만적일수가? 가축이라 해도 하나의 생명체를 무참히 죽인 것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도시에 산다면 그 참혹함을 느끼기 어렵지만 생매장에 죽어가는 생명을 보아야 하는 농가는 그야말로 흉흉한 분위기였다.

▲ 인간이 가진 생매장에 대한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따라서 '생매장'은 공포영화에도 자주 등장 한다. 아예 제목으로 나오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것은 공포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것 이다.(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로 알려진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영화 '생매장')

구제역 발생 시점에 초기 관리에 실패한 현정부는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많은 가축을 생매장했다. 상품에 하자가 생겼을 땐 가차 없이 빠른 행동을 보여주는 정부다. 사람에게도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구제역은 비인륜적으로 가축을 사육해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효율성이 구제역을 불러왔고 또 가축을 살처분하는 데 있어도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흙에 묻힌 채 공포와 고통 속에 모두들 죽어갔다. 단번에 목숨이 끊기는 자유도 못 얻었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여야 하는 권리가 있을까? 물론 직접 그 작업을 실행한 인원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살처분 작업과 관련해 큰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진정한 문제는 이런 일을 지시한 '윗선' 이다.  훌륭하고 높으신 분이니 그 분들의 뜻을 깊이 알 리 없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잉여는 그저 울부짖는 돼지를 보며 등골이 오싹할 뿐이다.
허공에서 정부가 나를 바라보며 확성기로 "아, 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도 허튼 생각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돼지하고 똑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상 끝"이라고 외치는 악몽을 꿀 정도다.
아 그런데 영국 정부의 농장동물복지위원회(FAWC)는 1979년 가축에게도 보장돼야 할 '5대 자유'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 자유가 무엇인가 하면 ①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불편으로부터의 자유 ③고통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정상적인 활동을 할 자유 ⑤공포와 불안으로부터의 자유다.
동물뿐 아니라 2012년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유다.

윤개굴 자유기고가  |  byple@daum.net